오해, 피곤함

잡기장
요 몇달간 심각한 찌질표면화 현상으로 고생했다. 두달 가까이 설사가 원인이자 증상으로 드러난 것 같은데, 몸과 마음이 모두 약해지면서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많이 힘들었고, 미련과 후회 등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날 괴롭혔다. 이제는 확실히 바닥을 치고 올라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설사가 멎었고 (워레이~) 성격도 밝아지는 것 같다. 깜박 깜박 지~잉 뽁!
아.. 너무 갑자기 오버하는 걸로 보이려나.. 일단 자제하고.

아무것도 안해도 피곤한데 일은 일대로 많고, 사람들 대하긴 힘들고 해서 일에 더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작년 한 해 동안 어느 정도 벗어난 듯 했던 일 중독이 다시 도졌다. 자전거도 안타고 사무실과 집만 왔다갔다 하는데, 증산동 본집도, 남산 빈집도 모두 소홀히 하게 됐다. 집안일은 안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대 살았는데, 지금껏 서른살 될때까지 "그래 나 힘들어. 이럴땐 기대도 되는 거야" 속으로 이렇게 말하면서 기댄 건 처음이다. 어쩌면 정말 오랫만에 자신에게 솔직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대화도 점점 안하게 됐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재섭는 사람이 되가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답답해하는, 그러니 더 사람들과 부딪힐 기회를 피하게 되고, 그럴수록 더 익숙한 다이얼로그만 구사하는 메마른 사람이 되어 가는 듯 했다. 그럴때 오히려 블로그를 썼으면 정신건강에 좋았겠지만, 진보블로그에는 여러가지 기억과 감정의 찌꺼기가 얽혀 있는지라 글을 쓰는 거는 커녕 내 블로그에 들어오는 것도, 다른 사람의 글을 찬찬히 듣는 것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런데 나만 힘들었던 거는 역시 아니고 다른 사람도 늘 힘들게 살고 있다보니, 내가 내 힘든것에 짓눌려 마음을 닫으면, 그것은 나와 깊던 얕던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것을 느끼면서 나는 더 당혹스러움을 느낀다. 피곤하고, 오직 쉬고 싶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고 싶고,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나를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고 이런데 그럴수록 오해는 쌓이고 찜찜한 느낌은 점점 커져 압박해오고, 서로 이해와 우호적인 감정이 바탕이 되서 매끄러웠던 일, 관계가 모두 힘들어지는 것이다. 오히려 전에는 한마디 말로 충분했을 것을 이제는 세마디, 네마디, 열마디를 해도 오히려 부족해진다. 이렇게 되면 남는 것은 오직 탈출하고픈 욕망, 벗어나고 이탈하고픈 마음 뿐이다. 하지만,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고 있다.

어찌보면 그런 시간을 통과하면서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던걸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 나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혹은 멀지만 그럭저럭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싶었던 몇 사람과의 관계가 좀 더 사실적으로 인식이 된다. 어느새 오해가 많이 쌓여 감정적으로 대하게 되버려 피곤해진 사람도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내 얘긴가" 싶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다. 이렇게 내가 쓰는 이유는 내 스스로 홀가분해지고, 다시 관계에 임하려는 마음인거니까.

언제부터, 어떻게 지금의 이런 상황에 스스로 처하게 될 사이클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평소에 이기적인 편은 아니고 오히려 너무 사람들에게 맞춰 주는 삶을 살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런 내가 잠깐 이기적이 되려하니 갑자기 내가 엄청난 압박을 받게 됐다. 이 안팎의 압박은 그 자체로의 의미도 있지만 일단 어떤 패턴이 일그러지는데서 오는 파열음이다. 그 패턴은 "구속"이라는 말보단 날 이끄는 "인도"하는 역할일테다. 어떤 선을 절대 넘어서 안될 건 없지만 그랬다간 아주 피곤하기에 스스로 그것에 맞춰 살고 결국엔 잊고 있는 것. 그러다 그게 전면에 드러나면 엄청난 피곤함이 되는 거고.

재미 없게 말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급 마무리 모드. -_- (사실 일해야 되서.. -_-;)
그냥 지금의 내 상태가 그렇다. 한 차례 강한 바람이 휩쓸고 갔는데 제자리를 찾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뭐든지 통과하고 나면 달리 보이게 된다. 그때 조금 더 징징댔으면 이참에 한꺼풀 더 제껴 내 자신을 모처럼 바라볼 수 있었겠지만, 분명 그땐 그것만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쨌든 그 피곤함의 "기억"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그동안 쌓인 오해를 풀고, 미뤄온 소통들을 다시 시작하고 하는 일들을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떤 것은 그냥 포기하고 가게 될 것 같다.

어쨌든 난 지난 한 두달 동안 드러난 나의 찌질함이 사실 내 힘의 원천이라고 생각해버리기로 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찌질표면화 현상의 흔적을 계속 갖고 살것 같다. 내가 충분히 찌질하지 않게 된다면, 나는 네트워킹에 대한 열의를 그만큼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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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0 14:33 2008/07/30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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