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팩님의 [대추리에 평화를 ! 릴레이 선언] 에 관련된 글.
바쁘다는 핑계로 한번도 내려가보지 못하다가
너무나 처참히 당했다는 소식에..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끼며
만사 제쳐놓고 내려갔다.
대추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같이 탄 몇명이 "이 버스는 검문한대" 하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그런 뒤 얼마 안돼 버스가 멈췄다. 검문인가.. 아니었다. 아예 경찰이 길을 원천 봉쇄한 것이었다.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비상식량을 넣어주기 위해 왔던 사람들조차 들어갈 수가 없었다.
본정리에서 집회를 한다고 그곳으로 이동하자고 하여 이 차 저 차 붙잡고 탔다. 그런데 계양오거리라는 곳에서 또다시 차가 막혔다. 오늘 너무 열심히 일하는 거 아냐? 조금 있으니 학생들이 도착했다. 어제 일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분노했을 학생들은 순식간에 경찰을 밀어내고 길을 열었다. 이 때부터 행군이 시작됐다.
차가 막힌 탓에 걸어서 본정리 농협으로 향했다. 날은 따뜻한데 물 한모금 축이지 못하며 계속 걸어간다. 하늘에는 경찰 헬기가 저공 비행을 한다. 부산APEC때가 생각났다. 그때도 저렇게 낮게 날면서 사람들을 위협하고, 혼란시키려 했지. 사진을 몇개 찍었는데.. 나중에 카메라를 잃어버려 여기에 넣지를 못하게 됐다.
농협 앞 비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는데, 먼저 온 경찰이 벌써 세갈래 길을 모두 막고 있었다. 대추리로 가는 빠른, 큰 길인 듯 교회가 있는 한 길에 경찰이 수십겹(과장 아님 ㅡㅡ)으로 서 있었다. 큰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막 정면에서 밀고 당기기가 시작될 무렵 대오가 오른쪽 길로 이동했다. 어느새 그쪽 길을 열어낸 것이다.
다시 행군이다. 좁은 골목길을 지나 꾸불꾸불한 길을 따라간다. 시야가 트이니 앞에, 뒤에 걸어가는 사람들의 긴 줄이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많았어?" "힘이 솟네"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여기서도 사진을 좀 찍었지만 분실을 ㅡㅜ) 오른쪽에 논이 펼쳐졌다. 그런데.. 그 논은 이미 알다시피 흔히 생각하는 그런 논이 아니었다. 군이 쳐 놓은 윤형 철조망..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바리케이트와 경계하는 군병력들..
도두리로 들어서자 다시 경찰이 길을 막았다. 하지만 성난 주민, 학생과 투쟁대오를 오래 붙잡아 둘수는 없었다. 마을 주민분들이 경찰들을 향해 호수로 물대포를 쏘아주시기도 했다 ^^ 금방 길은 뚫리고, 대오는 드디어 그 흉칙한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는 논에 다다랐다. 날은 덥고 오래 걸으며, 싸우며 길을 열은지라 다들 목도 마르고 힘도 들만한데, 철조망과 군대를 보니 피곤과 두려움은 어디 가고 없는지 선봉대가 논으로 들어가 철조망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대추분교로 가던 대오가 잠시 멈춰 있다가, 선봉대가 마침내 철조망을 뚫고 군대를 제치며 앞으로 나가자 따라서 논으로 들어갔다. 이때까지는 군은 무장은 하고 있지 않았다. 물론 기만이었던 셈이지만.. "폭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계속 외치는 군 방송, 그럼 어제의 그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 자신들의 폭력은 정당한 집행이라하고, 사람들의 저항은 대안없는 폭주라니.
다시 멀리서 따라오기 시작하는 경찰, 앞을 막고 있는 군.. 그래도 사람들은 군을 따돌리고, 밀어내며 길을 열어 달려나갔다. 넓은 논에서 이곳 저곳으로 달리며 길을 여는 광경이란.. 그렇게 해서 결국 대추리 평화공원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전화기 배터리가 떨어진 탓에 사람들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사람 저사람 전화기를 빌려가며 겨우 통화를 했는데.. 그러다 마침내 연결이 되자 기쁜 마음에 달려가다가 그만 카메라를 잃어버렸다. ㅜㅜ 안 그랬으면 이 때까지의 과정을 좀 더 생생히 전달할 수 있었을텐데. 일단 가방을 맡기고, 전화기 충전할 곳을 찾아 충전하고 다시 카메라를 찾으러 왔다가 돌아가 보니 그 새 집회는 끝나고 다시 철조망을 걷기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경찰들이 골목들을 빈틈없이 틀어막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논에서의 2차 전투(?)가 벌어졌다. 드디어 군이 본색을 들어내고 곤봉과 방패를 들고 나왔다. 함성을 지르고 위협하더니 훈련의 성과를 보여주려는 듯 사람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논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사람들의 이동은 좁은 논둑만을 이용해야했기에 무척 더디고 위험했는데, 군과 경찰은 넓은 들을 앞, 뒤, 옆에서 포위하며 조여온다. 노인과 어린 아이들도 있었건만 그 시간, 공간에서 그들에게는 들 전체가 "빨갱이로 가득차" 보였나 보다.
다치는 사람들이 속출하면서 대오는 도두리 마을회관 쪽으로 향했다. 긴 행렬이 좁은 논둑을 통해 이동하니 속도는 무척 더뎠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과 상황에 멍해졌다. 안 그래도 겁이 많은데 급하게 나 혼자 내려오느라 계속 함께 할 대오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논을 벗어나 마을회관 앞으로 오니 기운이 쭉 빠진다. 그러고 보니 "탐식 빈대"가 간단히 아침을 때운것 외에는 먹은 것이 없다.
적극적으로 싸우지 않은 내가 이럴진대, 몸으로 부딪혀 싸우고 있는, 땀과 흙범벅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더 힘들 것인지.. 차마 힘들다는 기색도 못내겠다. 정리집회를 기다리고 있는데 대오가 다시 온 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옆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상황을 들으니, 포위되어 있는 동지가 있다고, 구출하러 가는 거라고 한다. 해는 이미 졌고, 어두운 논으로 돌아가니 도저히 앞이 보이지가 않는다. 어렴풋이 앞쪽에서 경찰과 군이 사람들이 지나간 곳을 정리하는 거 같은데.. 좁은 논둑을, 철조망도 쳐져있는 어두운 길을 지나갈 수는 없다. 결국 대오는 멈췄다.
뭘 할 수 있을까, 어떻게 되는 걸까, 뭘 해야 하나... 그저 기다릴 뿐인데 협상하러 들어간 사람들마저 억류되어 있다고 한다. 일단 사람들은 도두리 마을회관으로 돌아왔다. 정리집회를 간단하게 마쳤다. 도두리 주민 분들이 고맙게도 저녁밥을 해서 나눠주셨다. 아.. 어찌나 맛있는 밥인지. 그리고 이 밥이 어디서 나는 밥일런지. 바로 지금 그렇게 지켜내려고 하는 거기서 나는 밥이 아닌지.
상황이 안좋아지나보다. 경찰 병력이 증강된다는 소식이 들렸다. 대추리에 남을 사람들을 빼고는 본정리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그랬다간 연행될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나온다. 잠시 더 있다 보니 대추리 쪽에도 경찰 병력이 증강되며 서서히 도두리 마을회관쪽으로 좁혀 온다고 한다. "전원 연행 방침"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은 "설마" "이 어두운 밤에" "그럴 수 있겠어"하는 반응.. 하지만 내게는, 작년 홍콩때가 떠오르면서, 이놈들이 이토록 맛이 가버렸으니 이젠 설마..를 생각하지 말아야되는게 아닌가 걱정이 됐다.
드디어 대오가 이동을 시작했다. 재빨리 앞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며 어두운 길을 걸어간다. 해는 졌지만 여전히 날씨는 따뜻하고, 몸과 마음은 열이 가시지 않아 조금만 걷고 뛰어도 땀이 줄줄 난다. 그렇게 가다보니 종종 사람들이 멈춘다. 경찰들이 길을 다 틀어막고 있어 길을 찾는데 어려움이 있나보다. 정말 악랄한 짓이다. 사람들 진을 빼려는 것인가? 마치고 돌아가는 사람들, 게다가 어두운 밤, 대개 지리도 익숙치 않은 지친 사람들을 막아서다니..
결국 길을 찾아 빠져나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된 걸까. 전화기를 두고 왔으니 더 갑갑하다. 대오가 있는 것도 아니니 더 답답하다.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고. 더 환장할 것은 들려오는 이야기, 대추리를 다시 경찰이 침탈했다고 한다. 사복이 미리 봐두었다가 집집마다 들어가 사람들을 잡아간다고 한다. 아...
난 이렇게 나와 있는데, 결국 나는 안전한 곳으로 와 있는데, 그곳을 떠나지 않은 사람들은...
서울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갈증이 참을 수 없이 몰려온다. 차비 빼놓고는 없어 물도 사먹기가 곤란하다. 지하철을 타고 오다 보니... 밖에 비가 내린다. 비가 .. 많이 내린다. 갈증은 더 해 간다. 아... 비까지 내리면 어찌 하나. 정말.. 어쩌란 말인가.
평택은 이미 특정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군대가 투입되고, 경찰은 이성을 상실했으며, 정부는 스스로의 역할을 포기했다. 보수언론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저항해야 할 문제다. 모두들.. 힘을 모아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