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사무실에 가기 느무 싫어 어제 휴가를 냈습니다.
연말, 연초 분위기 휩쓸릴 겨를도 없이 계속 코드만 들여다보고, 견딜 수 없이 머리 속이 스트레스로 꽉 찼을때 다운받아놓은 드라마 몇장면을 반복해서 보고 웃고, 울고 몸 한번 펴고는 다시 코드를 들여다봐야했죠. 술도 안마시고, 사람도 안만나고 그렇게 보낸 연말, 그리고 1월의 두 주였습니다. 10일에 프로젝트 어케 겨우 마무리, 숨돌릴 틈도 없이 금속연맹/노조 단체협약 DB 작업. 그게 월요일에야 겨우 제가 할 작업이 끝났습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IT노조 조합원모임이 있어 꼬뮨터도 안하고 그 준비를 해야했어요. 지각생은 문화부인데, 자신 말고는 다른 IT노동자의 삶을 깊이 알지 못하는지라 기껏해야 한다는게 무슨 행사때 분위기 띄우는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얻지 못하는 편이죠. 뭘 준비해놓고 정작 지각생은 멍하니 딴생각을 하거나, 괜히 센치해지기도 합니다. 이날도 왠지 흥이 안나더군요. 윷놀이를 하자고 해서 윷 사오고, 판을 그렸습니다. 회의실에서 비정규직교수노조가 회의중이어서, 아예 분위기 좋게 사무실 방 바닥에 담요를 넓게 깔고 둘러 앉아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이게 아주 좋더군요.
원래는 윷판에 함정도 만들고 재밌게 아이디어를 넣어볼까 했습니다. 사용자팀과 노동자팀으로 나눈다던지, 무리한 플젝 일정으로 몸살에 걸려 한 턴 쉬어야 한다던지, "단결 (혹은 연대)"라는 찬스를 쓰면 주변의 말들을 모아 업을 수 있게 한다던지 뭐 등등.. 그랬는데 이거 준비하는 사람이 흥이 안나니 그냥 오리지널 윷놀이를 했습니다. 그래도 재밌더군요. 또 막상 게임을 하다보니 지각생이 기분이 좋아져서 주책도 떨고, 좀 설쳐댔습니다. 결과는 초반에 꼼수부린게 부메랑이 되어 뒤통수를 맞아 패배. -_- 3차는 가볍게 술.
일요일은 어케 보냈는지도 모르게 보냈습니다. 이때만해도 허리가 안아팠어요. 근데 월요일부터 아프더군요. 단협 DB 막바지 작업이 남아 쉬지는 못하고 "오늘 끝내버리자" 맘 먹고 우워~ 해서 겨우 해치웠습니다. 뭐 그렇다고 허리가 도저히 몸을 못 가눌 정도는 아니고, 앉아 있다가 일어날때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 몸을 뒤로 젖힐때 아프다는 거니 큰 지장이 있는 건 아닙니다. 자전거도 타고 다닐 만하고. 스트레스도 원인일 거야 싶어 어제 하루 휴가를 냈습니다. 조금 괜찮은가 싶더니 삼실 와서 더 느낌이 오는 거 보니 역시 그 영향이 있긴 있나봅니다.
단협DB 작업은 각 노조에서 체결한 단체협약문을 수집해서, 그걸 일정한 포맷으로 변환 후 DB에 입력하고, 검색을 위해 각 조항에 분류값을 달고, 액세스로 가져와 CD로 제작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전에는 완전 생 수작업(노가다라는 말을 안쓰자는 소리를 어디서 들은 것 같군요) 이었는데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있어 많이 간소화되긴 했습니다. 그래도 각 조항을 분류하는 건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거라 직접 하긴 해야죠. 총칙, 조합활동, 사회적 책무와 경영참가, 인사, 고용보장, 임금...부칙까지, 각 장별로, 내용별로 분류값이 정해져 있습니다. 금속연맹/노조다 보니 노동안전보건 부분이 내용도 많고, 분류도 까다롭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 부분을 맡았는데, 예를 들면 "재해 및 직업병 인정"은 1012, "의무실 설치 및 구급시설"은 1008, "재해자 및 질병자의 보상"은 1015, "건강진단.."은 1011 이렇게 됩니다.
허리가 안 아팠으면 모르되, 아프니 "나도 직업병인데.."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군요. 산재는 활동가도 보호 받아야 하는건데.. 왜 이리 늘 쫓기며 작업해야 하나. 누가 딱히 업무를 세세히 지시한 건 아니고 내 스스로 일정 잡아 한 거긴 한데, 거의 모든 일이 이런 식으로 되어 가니 참 깝깝합니다. 한명 한명 활동가, 그리고 활동가끼리는 자율적으로 일을 꾸려 가는 것 같아도 전체적으로는 서로 엉키고 맞물려 끊임없이 돌고도는 강제에 의해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닌지 생각이 또 듭니다. IT노조에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지금 몸담은 단체에 대해 뭔가 하기도 왠지 깝깝하고, 그렇다고 활동가들 조직하러 다니는 것도 못하겠고.
올만에 하는 포스팅이 우는 소리가 되는군요. 어여 정리하고 트랙팩 걸린 것들에 참여하면 좋겠구만. 머리속은 텅 비고, 귀차니즘에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뭔가 다시 불을 지필게 필요합니다. 누구 불 좀 붙여주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