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연합뉴스]에 국민의례를 꼴사납다고 한 장학사 이야기가 실렸다. 기사에는 이런 글도 있다. "박 장학사의 발언에 도교육청 관계자와 초·중등학교 교원 500여명을 물론 외국인도 다수 참석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생각 없이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경향신문에도 오늘 같은 기사가 실렸다.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의 제목은 이렇다. "국민의례 꼴사납다" 장학사 발언 논란.

내가 경향신문에 특별한 애착을 가져서 일수도 있지만 나는 이 기사 제목을 보고 아, 역시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국민의례에 대해 좀 비판적인 기사를 기대했으나 연합뉴스의 기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오늘 확인해 보니 댓글이 4000개 넘게 달렸다. 연합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찬반이 거의 반반이다. 난도 댓글을 달았는데,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선진국" 중에 국민의례를 하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지, 국민의례는 국가주의의 상징이다. 이 멍청이들아, 이런 식의 댓글을 달았다. 새벽에 달고 나서 아침에 후회했다. 지울까 하다 그냥 두었는데 오늘 경향신문 기사를 보니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앞섰다. 경향신문의 이 기사는 온라인에서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앞의 기사와 연동해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오피니언 난을 펼치니 "애국심은 위험하다"는 제목을 단 김철웅 논설실장의 칼럼이 실렸다. 안타깝게도 김철웅 칼럼도 그저 그런 글이다. 진짜 애국심과 가짜 애국심을 구분한 후 가짜 애국심은 위험하다는 식의 글이다. 나는 애국의 의미와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글일 거라고 지레 짐작했다. 그런데 국가를 사랑하라는 외침이 여기저기서 들리는데 왜 국가를 사랑해야 하는가?

 

[김철웅칼럼]애국심은 위험하다
김철웅 논설실장
 
애국심은 거룩한 것이다. 그런데 영국 문필가 새뮤얼 존슨(1709~1784)은 “애국심은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라고 악담을 했다. 지금도 심심치 않게 인용되는 이 말은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그러나 무슨 생각에서 이 말을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앞뒤 맥락이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인즉 존슨이 이 말을 했다고 세상에 알린 사람은 그의 전기를 쓴 동시대인 제임스 보스웰이었다. 보스웰은 존슨이 비난한 건 전반적 애국심이 아니라 가짜 애국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한편 사전 편찬자이기도 했던 존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자신이 만든 영어사전에 ‘애국자’에 대해 “가짜 주화를 가려내듯 외관만 그럴듯한 가짜 애국자를 가려야 한다”고 썼다. 애국자를 자처하면서 당파적 분란만 일으키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존슨이 뭘 말하려 했는지 어느 정도는 파악된다.

애국심에 관해서라면 박근혜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아버지의 서거 소식을 듣고도 제일 먼저 한 말이 “전방은요”였다고 한다. 투철한 국가관·안보관이 몸에 배어 있음이다. 2006년쯤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의원에게 어떤 기자가 “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정치인 가운데 박근혜만큼 애국심이 깊은 사람은 없다”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재미있다. “MB는 한참 뒤떨어진다. 자기 생각만 하고 산 사람 아닌가.” 

김 의원의 말이 아니더라도 박 대통령은 정말 나라 생각만 하고 사는 것 같다. 지난달 말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도 3년 전 연평도 사태 때 “휴가를 포기하고 복귀한 장병들의 애국심”을 치하했다. 안보를 지키는 데 무기보다 훨씬 중요한 건 “국민들의 애국심과 단결”이라고도 했다. 

대통령이 뜨거운 애국심으로 단결을 호소하는데 나라는 왜 이리 분열로 치닫는 것인가. 답은 애국심 자체가 아니라 어떤 애국심이냐에서 찾을 수 있다. 존슨이 설파했듯 만약 가짜 애국심이라면 ‘악당의 마지막 도피처’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애국심의 독선성이다. 국정 운영이 독선·불통인데 나라사랑마저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애국심은 결코 특정인이나 집단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애국의 길, 방법론은 여러 가지인 것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이것만이 애국”이라 외치는 독선적 애국심, 이를테면 ‘애국독점주의’는 때로 아주 위험하다. 남이 하는 애국은 애국이 아니고, 내 것만 진짜 애국이라는 독선은 자칫 독재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이다. 

안중근 의사의 유묵 가운데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란 게 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뒤 1910년 뤼순감옥에서 순국하기 전 남긴 것이다.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애태운다”라는 글엔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위기를 염려하는 애국정신이 절절히 흐른다. 나는 이 휘호를 천주교 순교성지인 서소문 공원에서 처음 접했다(원본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있다). 경찰이 설치한 입간판 안보 포스터에 사용됐는데, ‘함께하는 안보의식 행복한 대한민국’이란 표어와 함께였다. 안 의사의 휘호가 천주교 성지에서, 하필 범죄·간첩신고 독려 표어에 쓰였다는 게 심한 부조화로 여겨지긴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안보 포스터로 적절하다는 게 경찰의 판단인 것을.

민주주의는 생각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저 사람이 추구하는 애국적 가치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인정해 주는 거다. 애국심이라고 해서 무슨 금단의 성역이 아닌 것이다. 
 
박정희는 1940년 23세 때 교직을 팽개치고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해 충직한 일본제국의 군인이 된다. 장준하는 1944년 26세 때 일본 학병을 탈출해 중국군 유격대에 가담하면서 독립운동가로 나선다. 지금 새삼 두 사람의 인물론을 펴려는 게 아니다. 둘의 운명은 결국 독재자와 민주투사로 갈렸지만 다카키 마사오 생도를 움직인 것도 긴 안목으로 본 애국의 길이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지금 급속히 공안시대로 가는 것을 두고 여러 갈래 분석이 가능하지만 이 애국적 가치에 대한 편협한 이해가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그래서 국가안보를 지킨다는 명분 아래 공안시대 종북몰이를 정당화하는 데 애국심이 동원되는 것이다. 9·11 테러 후 미국이 제정한 패트리엇법(애국자법)은 무제한적 개인정보 접근을 허용하는 등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 위협이란 비판을 받았다. 긴 법이름의 두문자를 딴 이 법은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결집하자는 의도였지만, 오도된 애국의 전형적 사례로 비판받았다. 

실로 애국자들이 넘쳐나는 공안시대다. 대통령의 애국심이 전염성이 강한 탓에 소나 개나 애국을 부르짖는 것 같다. 그럴수록 찬찬히 살펴보고 진짜와 가짜 애국심을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예리한 감식안이 필요한 이유다.
* 원문은 이곳에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2032015465&code=990344&s_code=ao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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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4 17:14 2013/12/04 17:14

이곳이 밀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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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2 14:59 2013/12/02 14:59

정의구현사제단

좋은글 2013/11/23 15:49

불교를 믿음으로 접하고 난 후 나는 기독교와 카톨릭을 종교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여적]정의구현사제단 
양권모 논설위원
 
유신독재의 사슬이 민주주의를 압살하던 1974년 9월26일 명동성당.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우리는 인간의 위대한 존엄성과 소명을 믿는다”로 시작하는 ‘제1시국선언’을 발표했다.

“민주제도는 정치 질서에 있어서 국가 공동체가 그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정치 제도임을 우리는 믿는다. 교회는 이와 같은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그의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나 가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행동하는 신앙의 양심’을 내건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화를 향한 그 지난하고도 혹독한 도정에서 함께했다. 늘 약하고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었다. 인혁당 사법살인, 김지하 양심선언, 3·1명동선언, 오원춘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광주 5·18민주항쟁,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등. 사제단은 민주가 짓밟히고 정의가 유린될 때마다 온몸으로 독재에 맞섰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는 고단한 이들의 등불이 되었다.

군사독재의 마지막 발악이 피바람을 일으키던 1987년 5월17일 명동성당.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목숨을 걸고 사제의 양심으로 폭로한 ‘박종철 고문치사 조작’은 군부독재의 심장을 쏘는 탄환이 되었고, 불붙은 6월항쟁으로 이 땅에 ‘민주화’가 이뤄졌다.

그리고 2013년, 사제단이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고 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최대 규모의 천주교 시국선언이 나왔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외면과 회피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훼손하고 오염시키는 민주주의” 때문이다. 급기야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어제 시국미사를 통해 국가기관 대선개입을 규탄하고 박 대통령 사퇴를 촉구했다. 대통령 사퇴 요구의 ‘적절성’을 두고는 시비와 논란이 많을 터이다. 다만 ‘박정희 독재’의 총칼에 맞서 민주화의 새벽을 연 사제단이 다시 민주주의를 갈구하며 기도하고 시국선언을 해야 하는 현실. ‘박근혜 시대’의 질곡을 이만큼 함축해서 보여주는 것도 없으리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222055195&code=9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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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3 15:49 2013/11/23 15: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