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비정규직교수로 강의한지 올해 11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나는 강의를 참 잘 못한다고 생각한다. 학기말 실시하는 강의 평가가 썩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닌 어중간한 것도 내가 강의를 세련되게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의 강의 평가 시스템이 정확하다거나 적절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로 어쩔 수 없이 강의 평가를 한다고 한다. 물론 진지하게 평가에 임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가를 위한 시스템은 엉망이다. 천편일률적으로 보일 수 있는 평가 문항들은 교수의 강의 전체를 제대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할 뿐 아니라 사실, 엉망이다. 대학의 강의 평가는 그저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도 얼마 전 신문에는 어떤 대학은 계약직 교수의 강의 평가가 4.7 이하일 경우 재계약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5.0 만점에 말이다. 나는 그 대학의 평가 시스템과 평가 항목이 궁금해졌다.

하여튼, 내가 강의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떤 분들은 강의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말한다. 비록 비정규직 교수로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나는 강의가 즐겁다기보다 호구지책이라는 측면이 더 크다. 사실이다. 내가 강의에 이렇게 큰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내 강의가 재미있지 않을 거라는 건 당연하다. 학생들은 최근 부쩍 열의를 잃어간다. 나는 최선을 다해 강의를 해도 학생들은 시큰둥한 표정이거나 아예 스마트 폰을 들여다 보거나 고개를 꺽고 자거나, 어떤 학생은 그냥 엎드려 자기도 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그런 학생들에게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성인인 학생들에게 그런 잔소리를 한다는 게 나 스스로 불편하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바쁘다. 왜 그런지 매번 생각해 보지만 별 이유 없이 바쁘다. 그래서 종종 강의 준비를 게을리 하게 된다. 강의가 매끄럽게 잘 진행될리 만무하다. 다행인지 학생들도 학기초에는 바쁘다. 여러 가지 일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도 강의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요즈음 나는 대학을 떠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대학을 떠나 어떻게 할 것인가?

사실 내가 대학에서 비정규직 교수로나마 남게 된 것은 순전히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대학원을 마치고 그냥, 말 그대로 그냥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교양강의를 맡게 되고 그러면서 몇 년이 흘러가고 어느새 나는 대학에 눌러 앉아 대학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대학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라고는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빌려 읽을 수 있다는 것과 조금 연체를 할 수도 있다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인데, 여자친구는 내게 말한다. 그런게 이유라면 일반 시민으로서도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말이다.

이래 저래 고민이 많은 나이가 된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들이 마치 내가 넘어야 할 산처럼 쭉 널어서 있다. 이산 저산 산을 오르는 재미는 이미 지났다. 나는 20대 청년이 아닌 것이다. 이제 중년이다. 곧 50이 되리라. 그때 나는 여전히 대학에서 학생들을 마주보고 있을까? 나는 그런 나의 미래가 두렵고 괴롭다. 나는 내 인생의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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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9 16:19 2015/03/29 16:19

시인 김상용은 왜 사느냐고 물으면 웃는다고 했던가. 뜬금없는 물음이지만  불현듯 이 물음이 나에게 떠 올랐다. 올바르게 사는 게 어떤 건지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왜 사느냐고 물으니 나는 좀 난감해졌다. 나는 왜 사는 것일까? 그저 나도 생명이니 목숨이 다할때까지는 살아야 하기 때문일까? 나는 왜 사는 것일까? 나는 왜 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을 던지니 난감하기 짝이 없다. 

 

그 동안 매번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가를 묻기만 하고 정작 중요한 살아가는 의미에대해서는  외면하고 살아온 셈이다. 나는 지금 불현듯 떠오른 이 물음에 대답할 수 없다. '적절하게'가 아니라 말 그대로 '완전히'  대답할 수 없다. 그래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내가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가? 산다는 건 무엇인가?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도록 애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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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8 16:35 2015/03/28 16:35

아마 20대 끝무렵에 산 모양이다.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 이 책은 인민노련 시절 파업 노동자들이 법정에서 진술한 최후 변론을 묶은 책이다. 아직도 집 책꽂이 한쪽에 꽂혀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인민노련을 싫어하기 때문에 읽지 않는다고 하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난다.

이 책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이 있다. "재판장님, 버스 타고 출근하는 노동자가 양보해야 합니까, 그랜저 타고 출근하는 사장이 양보해야 합니까? 퇴근 후 공장 앞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마시는 노동자가 양보해야 합니까, 룸살롱에서 양주 마시는 사장이 양보해야 합니까?" 물론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때는 계속 글을 읽기가 힘들었다.

 

“책 안 읽는 게 문제? 읽을 수 있는 책 못 만들어 문제

한겨레신문/

출판인회의 새 회장 된 윤철호 사회평론 대표 인터뷰

이런 게 운명일까. 법정(1989년 인민노련 사건)에서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고 외쳤던 청년은 노동운동의 연장선으로 출판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십수억원의 빚을 지게 됐다. 빚을 갚으려 ‘팔리는 책’(<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등)을 만들기 시작하더니, 출판 사업가로 성공했다. 그가 한국 출판계를 대표하는 2대 단체의 하나를 이끌게 됐다.

 

지난달 한국출판인회의(출판인회의) 새 회장이 된 윤철호(54·사진) 사회평론 대표는 “부회장을 3년 반이나 했으니 의무복무를 마쳤다고 생각하고 도망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임 박은주 회장(전 김영사 대표)의 갑작스런 유고 사태로 회장 권한 대행을 맡게 됐고 9대 회장이라는 중책을 ‘끝내’ 피하지 못했다. 80학번인 그가 회장이 됨으로써 1998년 김언호(70) 한길사 대표를 초대회장으로 출범한 출판인회의는 명실상부한 2세대 시대를 맞게 됐다. 430여 단행본 출판사들을 대표하는 출판인회의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 낙하산 인사에 반대하며 1인 시위까지 벌인 적이 있다. 출판산업을 지원할 정부기관은 없고 검열기관(간행물윤리위원회)만 있는 기형적인 현실을 바꿔보려고 진흥원을 만들자고 했던 건데, 초대 원장에 출판산업을 잘 모르는 인사가 ‘투척’되자 기대가 분노로 바뀌었던 것이다.

 

“진흥원 싸움을 하면서 정부 예산을 들여다 봤거든요. 전체 문화 예산은 한 해 몇십퍼센트씩 늘어나는데 출판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어요. 출판산업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정부도 업계도 아무 생각이 없는 거에요.”

​.... 계속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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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8 15:28 2015/03/18 1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