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가 잠들기 전에(Befor I go to sleep)> 이 영화를 봤는데, 영 실망이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상투성을 벗어나지 못한 영화. 영화를 보고 이 영화 주제가 뭘까? 감독의 의도는 뭘까? 어떤 서브 텍스트가 감춰져 있을까? 이런 물음은 전통적인 분석을 위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물음들이다. 

 

“여자가 외도하면 자신도 잃고 좋은 남편도 잃고 친구도 잃고 심지어 아들도 잃는다. 여자여 외도하지 마라!”

내가 얻는 답은 이 정도일까?

 

로빈우드는 <베트남에서 레이건까지>라는 책에서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일관성(coherence)과 비일관성 (incoherence)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는데, 어떤 영화들은 동일한 장르 영화라 하더라도 장르의 일관성을 침식하는 어떤 이질적인 기호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라고 해서 옛날 영화를 말하는 건 아니다. 고전적인 할리우드 편집 스타일에 따라 제작된 영화를 고전적 할리우드 영화라고 하고, 사실 거의 모든 할리우드 영화들은 고전적 편집 스타일에 따른다. 물론 완전히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거부하는 영화들이 있을 수 있는데, 로빈우드는 고다르의 <동풍>이나 <주말>을 이런 의미에서 일관성을 갖고 있다고 한다. 

 

특정 장르 영화든 복합적인 영화든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유지하지만 완전하게 고전적 스타일을 규현하려고 하지 않는 영화들도 있다. 코폴라의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이 그렇고, 리들리 스콧의 1979년의 <에이리언>도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로빈우드는 이 책에서 <태시 드라이버>와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를 들고 있다.

 

어떻게 이런 고전적 편집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비일관성이라는 어떤 이질성을 가질 수 있을까? 이 물음은 한편의 논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여튼 최근 수년 동안 내가 본 할리우드 영화에서 로빈우드가 분석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비일관성을 드러내는 영화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건 아마 할리우드 영화의 서사가 시각효과에 짓눌리고 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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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38 2019/05/26 21:38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는 <택시 드라이버>와 옴니버스 영화인 <뉴욕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뉴욕 스토리>에서 첫 번째인 "인생수업"을 연출했다. 시니컬한 인물과 화려한 이미지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모두 20대 중반에 본 영화들이니 20년도 더 지난 영화들에 대해 어떤 감흥을 되살리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 두 영화 이후에도 몇 편을 더 봤는데, 이 두 영화와 비교해서 큰 인상을 받지 못했다.

 

어제 우연히 <휴고>(2011)란 영화를 봤는데, 내가 알고 있던, 내가 이전에 본 그 영화의 감독이 맞나 싶었다.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우스꽝스러운 인물들과 우스꽝스럽고 유치한 설정과 내러티브. 단지 조르주 멜리어스를  추모하기 위한 영화라면 굳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시계와 테엽 장치와 로봇이라는 기계적 장치만 부각되고 멜리어스가 왜 그토록 괴로워 하는지 그 이유는 보이지 않는다. 우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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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37 2019/05/26 21:37

나에게 어떤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어떤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건 무엇일까? 나에게 활력을 주고 나를 위안하고 나를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그런 것들. 뭐 몇 가지가 있겠지만 영감을 얻고 어떤 좋은 느낌을 받기 위해 나는 온천탕에 간다

 

내가 자주 가는 온천장 금천탕은 1시 전후가 가장 좋다. 물도 좋고 사람들도 별로 없다. 금천탕은 시사저널이나 주간경향, 때로는 주간조선까지 주간지 기사를 오려 코팅해서 탕에 놓아 둔다. 매번 주간지를 찾아서 읽지 않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 좋은 배려다.

 

따뜻한 탕에 들어가 기사 하나를 다 읽으면 나와서 쉬고 또 들어가서 읽고 다시 나오기를 서너 번 반복하면 1시간이 그냥 간다. 중국이 만들고 있는 남중국해의 인공섬이 미국의 심기를 얼마나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지, 금세기에 화성에 10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스페이스 X의 계획, 겨울에 감기에 걸리지 않는 비법, 화학주(소주)가 미치는 해악 등. 일주일에 두 번 가면 국제, 경제, 북핵, 문화, 건강, 심지어 육아까지 다 챙길 수 있다.

 

이렇게 자주 온천탕에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그냥 쉬러 가는 것이다. 목욕탕에서 쉰다는 말이 좀 그렇지만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몸을 편안하게 하는 데는 온천이 제일이다. 이렇게 쉬면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온천이 나에게는 일종의 삶의 위안인 셈이다. 위안이 없는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며칠 전 우연히 마이크 리 감독의 <비밀과 거짓말>을 또 보았는데, 이 영화는 나에게 좀 특이한 인연이 있는 영화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보고 <부산매일신문>에 비평을 썼다. 당시 학부 학생이었던 내게 비평을 쓸 생각이 있느냐 물었던 사람은 시간강사였던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신문에는 내 이름이 이니라 이 선생님 이름으로 글이 실렸다. 이 분은 내게 신문사에서 학생은 안 되고 영화평론가만 된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폐간 되고 없는 신문사인데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 꼬시다고 생각했다.

 

여튼 그때 보고 그 사이 또 한 번 봤으니 며칠 전 본 게 세 번째인 모양이다. 지금 그 글을 찾을 수도 없고 그때 내가 어떤 글을 썼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 나는 어떤 글을 쓴 것일까? 다시 이 영화의 비평을 쓴다면 첫 문장은 어떻게 시작할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

한 참을 생각하다 겨우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삶을 위안할 수 있는 어떤 것이 하나도 없다면 그건 도대체 어떤 삶일까?” 그래 하루하루가 구질구질하고 옷에 달라붙은 오래된 껌처럼 빨아도 빨아도 지워지지 않고 더 지저분하게 변색되는 그런 오물 같은 것이라면 도대체 우리는 이런 일상을 감내할 이유가 있을까? <비밀과 거짓말>은 그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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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6 21:36 2019/05/26 2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