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스마트폰, 트위터, 차분하게 봐야...

View Comments

최근에 스마트폰, 트위터에 관한 기사들이 넘쳐난다. 뭔가 대단한 것이 있는 듯 보이고, 실제 화제도 꾸준히 생산되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지 않으면 왠지 세상에 뒤떨어진 루저라는 생각이 들 만큼 압박을 하고 있고, 트위터의 긍정적인 기능, 이를테면 속보성과 확산가능성을 찬양하는 얘기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이 자신에게 '플러스'가 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서는 비용편익분석(BC분석)을 하지 않는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편익보다는 부담이 훨씬 많을 것 같은데... 또한 트위터의 효과 또한 지나치게 과장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와는 무관하게 스마트폰과 트위터를 연결하여 다루고 있는 미디어오늘의 기획기사를 담아온다. 모바일 인터넷의 확산과 함께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급증하리라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트위터의 확산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
스마트폰, 뉴미디어 '총아' 될까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3:58:53 김종화·안경숙 기자)
언론사들 서서히 경쟁체제 돌입
 
블로그 ‘광파리의 글로벌 IT 이야기’를 운영하는 김광현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최근 포스팅에서 “이제 실시간이 아니면 웹이 아닌가”라는 화두를 재차 던졌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모바일 인터넷이 급성장할 테고 리얼타임 웹도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 판도가 바뀔 수도 있다. 선두주자라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밀려날 지도 모른다.”
 
언론사들은 그동안 인터넷 포털에 뉴스를 제공하는 것처럼 이동통신사와 컨텐츠 공급 계약 후 뉴스를 제공하고, 이동통신사는 자사의 무선페이지(네이트, 쇼, 오즈)에서 뉴스를 서비스해왔다. 하지만 이는 SK텔레콤과 KT, LG텔레콤 등 통신사업자의 공급자 기반 월드 가든(walled garden)에 언론사가 갇혀 있는 꼴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이 시작되기 전 하이텔이나 천리안, 나우누리를 통해서만 PC통신을 할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언론사들은 지난 연말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해 잰 걸음으로 뉴스콘텐츠를 모바일에 직접 제공하고 있다. 뉴스 소비자들은 기존 종이지면, 방송, 유선 웹에서 벗어난 또 다른 뉴스콘텐츠 소비 플랫폼을 갖게 됐다. 뉴스 제공자들은 이 시대의 흐름을 선도하거나 최소한 밀려나지 않기 위해 뛰어들고 있지만, 양태와 고민은 제각각이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사가 아이폰 등 스마트폰에 뉴스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먼저 연합뉴스는 뉴스통신사답게 모바일이라는 실시간 웹에 맞게 속보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 연말 아이폰 뉴스 애플리케이션을 선보인 연합뉴스는 자사 인터넷 홈페이지 업로드와 아이폰 애플 업로드를 연동해 속보 강점을 최대화하고 있다. 초기화면 상단에 카테고리 메뉴를, 하단에 북마크 등의 메뉴를 놓는 등 유저인터페이스가 상대적으로 편하다는 평이다. 서비스 초기와 다르게 기사 안에 사진도 함께 배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관계자는 “누적 다운로드 횟수를 밝히긴 어렵다”면서도 “실시간 속보 강점을 최대한 살려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일보 아이폰 애플리케이션은 지면 PDF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무료애플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지난해 12월20일 출시했다. 지난 12일 현재 한국일보 5개 계열사 콘텐츠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3만208건에 달했다. 해외에서도 1만2249건이나 받았다. 왼쪽 상단 i 버튼을 누르면 한국일보뿐만 아니라 서울경제, 코리아타임즈, 스포츠한국, 주간한국 등 5개 계열 매체를 한 어플을 통해 모두 볼 수 있다. 하지만 블로거들은 이런 매력에도 다운받는 시간과 패킷 과금이 부담이라는 반응이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모바일 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운영하는 뉴스코리아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서비스를 하고는 있지만, 자체 애플은 아직 없다. 문제는 이 뉴스코리아 애플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있긴 하지만 이 카테고리별로 100개의 기사가 무작위로 뜨는 형식이어서 사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지적이다. 블로거들은 로딩 시간도 오래 걸리고, 기사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배치하다보니 검색도 어렵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겨레 쪽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자체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사들도 스마트폰 대열 전면에 나서고 있다. CBS는 지난해 초 국내 방송 사상 처음으로 아이폰과 아이팟 터치에서 실시간 라디오 듣기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MBC와 KBS도 이 대열에 합류해 라디오 애플을 서비스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주문형 라디오도 가능할 전망이다.
 
문제는 결국 수익모델, 콘텐츠 유료화다. 동아일보는 자타가 인정하는 ‘유료 콘텐츠의 값진 반란’이다. 동아일보는 자사 미래전략연구소가 발행하는 경영전문 매거진인 동아비즈니스리뷰(DBR)의 모바일 콘텐츠가 애플 앱스토어의 유료 비즈니스 콘텐츠 분야 종합 1위에 올랐다고 밝혔다. 국내외 경영 전문가의 ‘위기경영’ 진단과 해법을 모아 모바일용 전자책(e-book) 형태로 가공한 이 콘텐츠는 유료 콘텐츠(2.99달러)이지만 앱스토어 서비스 시작 이후 줄곧 최상위권을 유지해 왔다. 국내 언론사 가운데 콘텐츠를 유료화한 최초 사례다. 언론사들이 제각기 모바일 서비스에 나서고 있지만,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장대환 매일경제 회장은 이달 초 신년사에서 “앞으로 모바일 플랫폼은 미디어시장의 중요한 팩터(factor)가 될 것”이라며 “독자들이 돈을 지불할 만한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서 언론사가 얼마만큼 통제권을 확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매일경제는 한국일보처럼 모바일 PDF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으며, 매경이코노미 등의 콘텐츠를 유료화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현재 아이폰 애플에서 종이신문과 마찬가지로 하단에 광고를 싣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찾고 있다. 조선일보 쪽은 “장기적으로 가입자를 많이 확보하게 되면 서비스의 유료화도 가능할 것”이라며 “아이폰, 옴니아, 안드로이드폰 등 단말기는 다르지만 모바일 뉴스 서비스를 하나로 묶은 광고 모델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최진순 한국경제신문 기자는 ‘온라인저널리즘의 산실’에서 “가입자 100만이 광고 수익의 기준자”라고 밝혔다. 최 기자는 “언론사들의 전방위적인 모바일 서비스 강화가 과거 모바일 서비스나 인터넷 뉴스유통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인지는 미지수”라며 “스마트폰 대열에 합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 때문에 무분별한 공짜 뉴스 구조를 또 한 번 만들고 있다는 자성론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꼬집었다.
 
-------------------------------
콘텐츠는 연합뉴스, 속도는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2010년 01월 21일 (목) 11:11:02 이정환 기자)
[아이폰 앱 전문가 평가] 13개 언론사 큰 차별화 안 돼
 
국내에서 아이폰 앱을 출시한 언론사는 머니투데이와 매일경제, 서울경제, 서울신문, 아시아경제, 연합뉴스, 중앙일보, 전자신문, 주간한국, 지디넷코리아, 한국일보, MBC와 KBS 등 13개 언론사다. 아직까지는 모바일에 특화된 별도의 기사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온라인 기사 목록을 모바일로 옮겨오는 수준이지만 언론사마다 전략은 조금씩 다르다. 당장 큰 수익은 되지 않지만 초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콘텐츠는 연합뉴스, 속도는 머니투데이, 편의성은 한국일보가 앞서 있다고 평가했다.
 
------------------------------
“모바일에 맞는 콘텐츠 차별화 절실”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1:17:22 이정환 기자)
개인화 서비스, PDF·노티피케이션 등 유료화 가능성 무궁무진
 
매일경제와 서울신문, 전자신문 등의 아이폰 앱을 개발한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은 “기술적으로 안 되는 건 없다”고 말한다. “언론사들이 모바일에 맞게 얼마나 콘텐츠를 잘 가공하느냐에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사장에 따르면 대부분 언론사들이 뭘 해야 할지 잘 모르고 그래서 기사 목록을 제공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사장은 “앱은 그릇일 뿐”이라면서 “여기에 담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기사를 트위터에 올리는 기능은 전자신문 밖에 없지만 웹에서나 모바일에서나 기술적으로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해외 언론사들은 기사 댓글과 트위터를 연동시키거나 마이스페이스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연계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아이폰 출시가 2년 반 이상 늦었을 뿐만 아니라 소셜 네트워크도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라 언론사들 역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분위기다.  
 
이 사장은 “앱을 만들고 모바일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떤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어떻게 구성하고 유통할 것인지는 결국 개발자들이 아니라 편집자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를테면 사용자의 위치 정보를 확인해 그 지역 뉴스를 띄워주거나 특화된 광고를 내보내는 것도 가능하다. 데이터 비용을 절감하려면 와이파이 모드일 때 기사를 통째로 내려받는 기능도 필요하다. 트위터와 연동해 기사와 관련한 논쟁을 붙일 수도 있다. 한국일보 등이 모바일 PDF 서비스를 하고 있지만 이 사장은 “PDF도 하는 것과 PDF만 하는 것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시사·경제 주간지나 월간지들도 유료화에 적합한 콘텐츠다. 이미 동아일보가 동아비즈니스리뷰의 과거 기사들을 묶어 2.99달러에 서비스하고 있다. 주간지들은 발매 1주일 뒤 온라인에 기사를 무료로 공개하고 있는데 이번 주 기사를 모바일에서 유료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중요한 기사가 뜰 때마다 알려주는 노티피케이션 서비스도 소액으로 유료화할 수 있다. 모바일에서는 상대적으로 유료화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는 것도 기회요인이다. 이성규 태터앤미디어 팀장은 “연합뉴스와 머니투데이를 제외하면 대부분 언론사들이 업데이트 주기가 너무 늦다”고 지적한다. 오프라인 신문사들이 아직도 오후 4시 마감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 팀장은 “모바일에 맞는 차별화된 콘텐츠 전략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전종홍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연구원은 “언론사들도 쓰리 스크린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쓰리 스크린이란 TV 또는 신문과 인터넷, 모바일 등 3개의 화면을 말한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콘텐츠를 어떻게 다른 플랫폼에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전 연구원은 “누가 얼마나 모바일 환경에 빨리 잘 적응하느냐에 따라 언론시장의 판도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
포털 공룡, 모바일서도 잘 나갈까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1:23:35 이정환 기자)
"여전히 영향력 유지할 것"
 
최병태 연구원은 모바일에서도 대형 포털의 영향력이 유효할 것으로 보는 5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첫째, 모바일은 인터넷의 대체제가 아니라 보완재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PC통신이 몰락한 것과 달리 모바일은 유선 인터넷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다음의 경우 유선 인터넷 트래픽이 오전 8시까지 1% 미만에 머무는데 모바일 트래픽은 6시부터 2%를 넘어선다.
 
둘째, 포털은 이미 공룡이 됐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메트 칼프의 법칙이 모바일에서도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최 연구원은 “포털이 확보하고 있는 광범위한 데이터베이스가 사용자들의 이탈을 막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털이 확보하고 있는 콘텐츠의 대부분이 포털 안에서만 검색된다는 것도 진입장벽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개방성이 확대되겠지만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다.
 
셋째, 개인화 서비스는 신뢰가 전제돼야 하는데 포털만큼 로그인 사용자를 많이 확보한 사이트는 없다. 네이버와 다음이 최근 캘린더와 포토앨범, 가계부, 주소록, 엔드라이브 등의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본격적인 개인화 서비스를 대비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런 서비스들은 그대로 모바일로 확장될 수 있다. 향후 위치정보와 지도, 증강현실 등을 연계한 서비스 역시 로그인 기반이 될 것이고 포털은 이미 경쟁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넷째, 우리나라 포털은 PP(플랫폼 제공자)면서 CP(콘텐츠 제공자)이기도 하다. 검색 사이트 구글이 외부의 검색 결과로 트래픽을 넘겨주는 말 그대로 관문(포털) 역할만 하는 것과 달리 네이버와 다음은 블로그와 카페, 백과사전, 연예인 정보 등 대부분의 콘텐츠를 자체적으로 확보하고 있다.
 
다섯째, 검색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텍스트 뿐만 아니라 이미지와 동영상 검색도 늘어날 전망이다. 증강현실을 활용해 휴대전화의 카메라로 음식점 간판을 찍으면 메뉴와 가격 정보, 사용자 평가를 띄워주는 서비스도 가능하다. 굳이 검색어를 입력하지 않아도 보는 것이 곧 검색이 되는 셈이다.
 
최 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도 네이버와 다음, 네이트 등 상위 포털의 영향력이 모바일에서도 유지 또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연구원은 “다음의 로드뷰와 같은 지도 서비스에 지역광고를 결합한다거나 위치 정보를 활용, 근처 매장의 할인쿠폰을 보내주는 등 다양한 수익모델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모바일 인터넷,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4:52:52 함석진 한겨레미디어전략연구소장)
[기고]함석진 한겨레미디어전략연구소장
 
우선 아이폰이 이끈 가장 큰 변화는 이동통신 사업자들이 더 이상 폐쇄적인 울타리 비즈니스(Walled Garden)를 유지할 수 없게 됐다는 점이다. 아이폰에 기본으로 들어간 무선인터넷(Wi-Fi) 접속 기능은 통신업체들이 그동안 아이폰 도입을 꺼려왔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비싼 돈 들여 깐 이동통신망을 통하지 않고 데이터가 오가는 것은 수익모델을 직접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폰의 등장은 통신업체가 오랫동안 틀어쥐고 있던 권력의 해체를 의미하는 동시에 새로운 비즈니스 생태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문제는 역시 이것이 새로운 돈벌이 수단이 될지 여부다. 현재로선 부정적이다. 모바일에서만큼은 포털에 기선을 빼앗긴 인터넷의 재판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 정도이지 이렇다할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많은 언론사가 아이폰 앱스토어에 뉴스제공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앞다퉈 올리고 있는 것도 이미지 홍보 효과라도 있으니 일단 올려놓고 보자는 쪽에 가깝다.
 
콘텐츠 유료화 모델은 해당 콘텐츠가 돈을 주고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가 관건이다. 지금처럼 많은 언론사가 쏟아내는 1차 가공정보 형태의 뉴스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선뜻 열릴 것 같지는 않다. 초기 모바일은 일반 인터넷보다 어느 정도 과금 저항이 덜할 것이지만, 환경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은 결국 같은 음식을 다른 그릇에 담은 것 정도로 인식할 가능성이 크다. 속보나 주식, 부동산 등 일부 돈 되는 정보, 교육용 콘텐츠, 뒷얘기 등 차별적이고 독점적인 정보 정도가 그나마 제한적으로 유료화가 가능한 영역일 것이다.
 
포털에 집중됐던 트래픽이 모바일에서는 어느 정도 분산될 것이기 때문에 광고 모델은 그나마 기대를 걸어볼 수 있으나, 광고시장 규모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옮아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모바일 쪽에서는 외부 대행사에 의존하지 말고 초기부터 언론사들이 스스로 뭉친 형태의 연합광고대행사를 만들어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창의성만 발휘된다면 의외의 곳에서 수익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스마트폰의 강력한 부가기능과 하루에도 수없이 앱스토어에 올라오는 많은 애플리케이션이 그 실마리다.
 
-------------------------
트위터, 언론 사각지대 감시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1:05:53 김상만 기자)
온두라스 한지수 사건·아이티 구호 정부관심 이끌어
 
대형 언론사들은 코웃음을 치겠지만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는 사각지대에 방치된 ‘뉴스’를 발굴하고 여론을 확산시키는 데 있어서는 소셜미디어의 경쟁력이 기존 언론을 능가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이티에 대한 구호의 손길도 기존 언론사보다 더 빨랐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아이티의 참혹한 상황을 사진과 동영상, 짧은 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하면서 각종 구호단체에서 진행하는 성금모금 사이트 목록을 수만 명의 이용자들에게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트위터는 아이티 지진과 같은 천재지변이나 한지수씨 사례처럼 언론의 사각지대에 있는 사건을 가장 빨리, 폭넓게 알릴 수 있는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
트위터로 눈을 돌려라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1:00:33 김상만 기자)
[기획-언론트렌드 바꾸는 소셜 미디어] 해외 언론 적극활용, 새 취재 방식 속속 등장 … 한국은?
 
쇼셜미디어의 중심엔 트위터가 있다. 등장 당시 ‘조만간 문 닫는 것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던 트위터는 최근 1~2년 사이 급성장하며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소셜미디어는 등장한 지 3년 만에 인터넷 역사상 처음으로 포르노를 제쳤다. 이제 사람들은 소셜네트워크에서 놀고, 정보를 얻는다.
 
세계 최대의 사교육 업체인 EF에듀케이션즈 온라인마케팅 담당 글로벌 부사장인 에릭 퀄먼은 자신의 저서 <소셜노믹스>에서 “소수가 정보와 뉴스를 소유하고 수백만 사람들에게 배포하는 방식에서 수많은 사람이 정보를 함께하고 소수(틈새시장)에 배포하는 세계로 접어들었다”며 전통매체의 쇠락을 예고했다. 그는 “전통적인 신문사와 잡지사는 이제 사람들이 자동무료구독(RSS)이나 친구의 입소문을 통해 뉴스가 스스로를 찾아오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 언론들조차 변화의 속도를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가능성에 일찍 눈 뜬 것은 분명해 보인다. CNN(@cnnbrk), 뉴욕타임즈(@nytimes) 등과 같은 유력 언론사들은 트위터를 통한 새로운 취재방식을 개발하고 있고, 블로거와 트위터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IT매체(매셔블닷컴)가 등장해 눈부신 성장을 기록하는 등 미디어 환경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반면 국내 언론들은 소셜미디어에 대한 인식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그나마 최근 들어 회사와 별개로 소셜미디어의 가능성에 주목한 개별 기자들의 활동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라는 점은 고무적이다.
 
언론사 차원의 전략으로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 조선일보가 지난해 6월 트위터 영문(@EnglishChosun)과 중문(@chinesechosun)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거의 읽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방치하고 있다. 그나마 SBS(@sbsnewsreporter), 한겨레(@hanitweet), 시사인(@sisain_editor) 정도가 1000~2000여 명 수준의 팔로어를 확보하고 있지만 아직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웹에서는 실시간 기사를 올리고, 기사가 화제로 떠오르면 다시 후속기사로 화제를 지속하는 순발력이 필요한데 국내 언론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기존 기사를 모아 트위터에 올리는 것은 당장 트래픽을 올릴 수 있을지 몰라도 쌍방향성과 소통이라는 소셜미디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들어선 언론사의 소셜미디어 활용사례 가운데 전자신문인터넷 계열사인 ‘이버즈(ebuzz)’의 시도는 주목할 만하다. 이버즈는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에 참가한 기자에게 스마트폰으로 트위터에 실시간 속보를 올리도록 했다. 그리고 트위터에 올라온 속보와 독자 반응을 가공해 다시 기획기사로 만들었다.
 
매체에 따라 변화에 반응하는 속도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IT분야 전문가인 한국경제신문의 김광현 기획부장(@kwang82)은 “소셜미디어는 당장 기존 인쇄매체에는 위기”라고 진단했다. 그는 “기존 신문사로서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온라인 트래픽을 늘릴 수 있겠지만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신문광고는 감소하기 때문에 신문사 차원에서는 트위터를 장려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시사주간지인 시사인은 지난 18일 모든 기자들이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는 “폭넓은 취재원과의 소통이 가능한 소셜미디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취재를 하면서 전화나 이메일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해외 언론 트위터 활용법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0:44:04 이성규 태터미디어 팀장)
[기고] 전담 에디터 두고 리얼타임 뉴스 강화… 팔로워 매입
 
트위터는 속보에 최적화된 ‘속보의 미디어’다. 대형 재난재해나 선거, 대형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마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언론들은 트위터의 리스트 기능을 이용해 속보에 즉각 대응할 정도다.  예를 들면 아이티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하루도 채 안돼 유력 언론사 트위터 페이지에 @abc/haiti-earthquake, @nytimes/Haiti-earthquake,@cnnbrk/haiti, @breakingnews/ haiti-quake, @nprnews/haiti-earthquake 등이 개설된 사례를 들 수 있다.  
 
시민저널리즘 선구자인 제이 로젠 뉴욕대학교 저널리즘 스쿨 교수는 이렇게 언급했다. “현재의 트위터는 속보를 전하는 데 단일 언론사보다 더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이란 대선, 인도 뭄바이 테러, 마이클 잭슨 사망, 아이티 대지진 등 전세계적인 이목과 관심, 시선을 집중시키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트위터는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특히 속보에 관한 한 어떤 뉴스 조직도 속도나 확산의 범위 면에서 트위터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쏟아지면서 트위터는 전 세계 속보 전파의 진지로 자리매김했다.
 
잃어버린 속보 기능을 보강하려는 언론사의 전략은 ‘트위터 계정 매입’이라는 신 비즈니즈를 낳았다. 아예 예산을 들여 트위터 팔로어수를 늘려 자사 속보의 전파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언론사도 등장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9만3000명 수준인 트위터 팔로어 규모를 올해 75만 팔로어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수만 파운드의 예산을 배정하고 본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트위터 등을 전담하는 에디터를 둘 정도로 열성적이다. 트위터의 대표적 수혜주인 뉴욕타임스는 지난해 5월 자사 기자 출신의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 교수였던 제니퍼 프레스톤을 소셜 미디어 에디터로 영입, 독자와의 커뮤니케이터 역할을 맡겼다.
 
트위터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를 이용해 별도의 서비스를 오픈하거나 자사 온라인 사이트에 접목시키는 언론사도 늘어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인디펜던트는 지난해 7월 트위터 기반 정치인 커넥팅 서비스인 트윗민스터의 협업을 통해 라이브와이어(wire.tweetminster.co.uk)라는 사이트를 선보였다. 인디펜던트는 이 서비스를 통해 정치인, 정치 평론가, 정치 기자의 트윗을 감시하며 정치 관련 기사 소스를 확보하고 있다.
 
트위터를 기술적으로나 저널리즘 관점에서 가장 폭넓게 수용하고 있는 언론사를 꼽는다면 단연 미국의 정치 전문지 허핑턴포스트를 들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주요 이슈가 발생할 때마다 트위터의 리스트 기능을 활용해 ‘라이브 트위터’라는 코너를 개설, 아이티 대지진과 CES 2010 등 이슈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이슈 때마다 개설되는 이 페이지 상단에 광고를 게재해 수익도 올리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8 05:18 2010/01/28 05:18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사법부의 독립이 뭐길래...

View Comments

점입가경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건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사안이었는데, 조중동 때문에 관련기사를 담아놓게 되었다. 그 만큼 조중동의 의제설정능력이 뛰어나다는 걸까. (문화, 경제지들에게는 미안하다. 그 역량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못해서...)
 
사법부의 보수적인 판결이 바뀌어야 한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나로서는 사법부의 독립에 대해 옹호하게 된 작금의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노무현 정권 하에서는 정부에 대해 대쪽의 소신을 보였던 검찰이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정부의 주구가 되어 그 칼날을 법원에 돌리고 있는 점도 역설적이고... 그렇다고 조중동이 원하는대로 사법부의 변질이 이루어지는 건 더 문제가 있겠지. 어쩌면 지금은 매카시즘에 대해, 파시즘의 도래에 대해 걱정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래저래 법치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저들의 법치주의'를 통해 '법'이라는 것이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임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논리의 근저에 법치주의를 깔고(물론 이 때의 법은 일반적으로 언급되는 법은 아니지만) 거기에서부터 온갖 주장을 펼쳤던 하이에크가 보면 자신의 신봉자들에 의해 '법치주의'가 더럽혀지는 사태에 통탄하지 않을까. 
 
아무튼 관련기사를 발췌해놓는다. 이럴 때는 미디어오늘의 기사가 퍽 도움이 된다.

 

-----------------------------------
헌재의 '미디어법 참극', 왜 일어났나? (프레시안,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2009-11-03 오전 8:29:14)
[기고] 정치의 정상화와 헌재 구성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미디어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결정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기각한 헌재의 결정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는 정부 및 여당과 조선ㆍ중앙ㆍ동아 등의 과점신문들이야 차치하더라도 헌재의 결정은 그 자체로 충분히 논쟁적이기 때문이다. 헌재의 결정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측에서는 헌재가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결정을 내리면서 미디어법의 표결과정에서 벌어진 절차적 흠결을 지적한 대목에 주목한다. 반면 헌재의 결정이 철저히 정치적인 셈법에 기초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는 입장은 헌재가 미디어법의 표결과정에서 벌어진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하면서도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기각한 것은 상식과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면서 헌법질서를 수호해야 할 헌재가 자신의 임무를 방기했다고 주장한다. 헌재가 언제부터 국회의 자율성을 그렇게 존중했느냐는 비아냥도 뒤따른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건 비판하건 간에 이번 헌재의 결정은 헌재와 대의기구와의 관계, 헌재의 구성 등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지양한 생산적 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헌법재판소와 대의기구와의 관계를 살펴보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청구사건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청구사건을 계기로 불거진 '정치의 사법화'(judicialization of politics) 현상은 이제 일상화된 듯 하다.
 
근래 들어 사법작용 그 중에서도 특히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눈에 띄게 올라간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민에 의해 선출돼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정치력을 발휘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헌법재판소로 들고가는 데서 연유하는 바 크다.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사안은 가급적 국민들의 기본권의 영역에 한정하는 것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선출직 대의기구들은 정치사회적 의제나 선출직 대의기구들의 헌법적 결단이 요청되는 국가적 과제를 헌법재판소에 의탁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이는 이중으로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데 주권자인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이 마땅히 행사해야 할 헌법적 권한을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도 않았고 국민에게 책임을 지지도 않는 헌법재판소에 사실상 양도해 국민들의 의사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헌법재판소가 자신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최고의 헌법기관이 되어 선출직 대의기구들이 져야 할 책임까지 부담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같은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의사형성 및 형성된 의사의 전달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정당의 발달이 필수적이고, 활성화된 정당정치의 기초 위에 선출된 대의기구들의 문제해결 능력 및 정치력 배양이 강력하게 요청된다. 물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표와 책임의 원리'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정당 및 정치인을 선택하는 국민들이다. 
 
이번에는 헌재의 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차례다. '87년 체제'의 아들이라 할 헌법재판소는 1988년 설립된 이후 수다한 결정을 통해 국민들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철저히 법조인 위주로 구성된 헌법재판소 재판관 및 연구관들이 급변하는 사회 전 부문의 변화 양상을 정확히 포착해 헌법의 정신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헌재가 가끔 국민들의 일반적인 의사와는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헌재의 구성이 지나치게 경직돼 사회 전 부문의 빠른 변화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것도 주요한 원인일 것이다. 따라서 헌재는 재판관 및 연구관들의 충원방식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전문적 식견을 가지고 있는 각계의 전문가,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과 시대적 요청을 정확히 전달해 줄 수 있는 교양인들을 재판관 및 연구관으로 채용해야 한다. 헌재가 헌법의 본령을 수호하고 국민들의 기본권 증진을 꾀할 생각이라면, 분명히 헌재는 그럴 생각이겠지만, 헌재의 구성을 민주화하고 다양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미디어법 관련 권한쟁의심판사건의 결정 결과를 두고 일각에서는 헌재 폐지를 운위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모든 국가작용을 헌법질서에 따라 통제해야 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기능과 권능은 반드시 필요하고, 설령 헌재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역할은 다른 헌법기관이 대신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를 복원해 헌법재판소가 지고 있는 과중한 짐을 덜어주고 헌재의 구성을 민주화, 다양화해 헌재가 사회의 변화 및 시대적 사명에 부응하는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과 헌법재판소가 상생하는 길이 바로 그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존재는 선거를 통해 국가권력을 조직하는 국민이다. 
    
-----------------------------
[한겨레프리즘] 판사의 양심이 위협받는 나라 (한겨레, 이본영 법조팀장, 2010-01-19 오후 09:51:14)
 
재판도 마땅히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러나 대원칙은 그것이 법리적으로 적절한가, 다음으로는 일반의 상식에 얼마나 부합하는가로부터 비판의 초점이 너무 멀리 이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두 사안에는 분명히 논쟁적 요소가 있다. 보수언론처럼 ‘어쨌든 폭력행위인데 무죄를 선고하는 게 합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질 사람도 제법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꾸로, 원내정당 대표가 문이 열려 있는 국회 사무총장실로 들어간 것도 죄라며 징역 3년에까지 처할 수 있는 방실침입 혐의를 적용한 검찰의 행태는 왜 주목받지 않는지 의문이다. 
 
일부 언론은 더 가관이다. 이참에 우리법연구회라는 판사들 연구모임을 재부각시켜 실컷 욕보인다. 두 재판장 중 한 명은 이 모임을 탈퇴했고, 다른 이는 회원이 아니라는데도 막무가내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박시환 대법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의 이름까지 새삼 거론된다. 이들과, 용산사건 항소심 재판장인 이광범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우리법 4인방’으로 언론의 표적이 된 지 오래다. 매카시즘 광풍의 표적이 된 예술가들인 ‘할리우드 10인’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법연구회는 진보적이고, 진보는 잘못된 것이고, 결국 우리법연구회는 잘못된 모임이라는 엉터리 순환논법도 사용된다. 촛불사건 재판 개입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일부 언론은 문제제기를 한 판사들 중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많다며 칼날을 그리로 돌렸다. 정당한 비판도 우리법연구회의 냄새가 나면 불문곡직하고 불순한 행동으로 치부된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특정 세력과 조직에 책임지우고 끊임없이 그 이름을 불러내 타자화하는 게 색깔론의 주특기다. 배척 대상은 조직·배후·성향 같은 말들로 한 묶음을 만들어 쳐내려는 기획이다.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 운동을 이끈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피에트로 검사는 정권과 보수언론으로부터 좌파로 몰렸었다. 수십만건 중 한두 사건에서 기회를 포착하는 기민함이야말로 한국 매카시즘의 예민한 촉수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원조 매카시즘도 건드리지 못한 판사들까지 제물로 삼을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사법부에 대한 이들의 향수도 이번 갈등의 본질인지 모른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 판사'들을 질타한 고위직 판사 출신의 변호사가 법조비리 사건 때 떡값 수수를 이유로 법복을 벗은 인사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은가. 국가폭력에 사후승인 도장을 찍고, 가진 자에게 솜방망이를 휘두르고, 전관예우가 횡행하는 사법부의 옛 모습, 그것이 판사들의 양심을 오그라들게 만들려는 이들의 이상인가.
 
--------------------------
판사 양심 위협하는 언론 '매카시즘'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0일 (수) 08:40:53 김종화 기자)
[아침신문 솎아보기] 조선, 우리법연구회 정조준…한국 "근거부족"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전교조 시국선언 1심 무죄>를 올리고 1면 관련기사 <변협 "강기갑 무죄 판결 수긍하기 어렵다">, 3면 머리기사 <검찰.교과부 "교육의 정치중립 정면으로 깨뜨린 판결">, 4면 머리기사 <"일부 판사 판결 국민 상식 무시">, 4면 관련기사 <여 "우리법연구회 해체시킬 것"> 등을 지면에 담았다. 사설은 <"법관은 외부뿐 아니라 자기로부터도 독립해야">를 실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 <법-검 '강기갑 갈등' 속 법조 수장 비공개 회동>에 이어 3면 머리기사 <이번엔 전교조 무죄 파장...징계무효-손배소 줄소송 오나>와 같은 면 관련기사 <'십자포화' 속의 대법원>, <'언터처블' 형사 단독> 등을 실었다. 중앙일보는 3면에 <견제 안 받는 단독판사 '편향판결' 논란의 핵으로>와 <한나라 "사법부 독립 뒤에 숨어서"/법원행정처장 "입법부 판결 토론에 우려">를 실으며 조선일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과 낮은 톤으로 사법부 논란을 보도했다.
 
반면 경향신문과 한겨레는 각각 <여당, 사법부 흔들기 도 넘었다>와 <한나라당, 법원에 무차별 색깔공세>를 1면 머리기사로 올려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향신문은 3면 머리기사 <여당.변협.보수단체 ‘벌떼공세’>에서 "용산사건 재판기록 공개에 대한 검찰의 반발에서 시작된 사법부 흔들기가 보수층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며 "보수층이 집단적으로 사법부를 공격하고 있는 것은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정책이 법원 판결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겨레는 1면 머리기사에서 "촛불재판 개입으로 판사들의 사퇴요구가 빗발친 신영철 대법관 사건 때는 사법부 독립을 외치며 침묵했던 한나라당이 강기갑 의원 무죄 판결을 이유로 법원에 대한 색깔 공세에 나선 것은 시대착오적일뿐만 아니라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가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가 이날 사설에서 "법관도 자기 개인의 가치관과 자기 나름의 정치 소신을 가질 수는 있으나 만일 법관이 국민 상식과 한참 동떨어진 자기만의 가치관과 자기만의 정치 소신.생각을 판결문에 그대로 옮긴다면 국민이 그 재판을 믿을 리가 없다"고 짐짓 꾸짖은 것과 대조적이다.
 
어찌됐든 조선일보는 우리법연구회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4면 기사 <극소수 인터넷글이 '법원 의견'처럼 포장돼>에서 "법원 내 이른바 진보성향 서클인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는 150명 정도. 전체 2500명 판사 중 10%도 안 된다. 하지만 이들은 이용훈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에서 법원 수뇌부조차 어쩌지 못하는 가장 '목소리가 큰 집단'으로 불린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 보도는 이렇게 이어진다. "대표적으로 작년 11월 민노당 당직자에게 공소 기각 판결을 내린 서울남부지법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후원금을 내 물의를 빚었을 때 서울중앙지법의 이옥형 판사는 '언론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하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 마 판사를 두둔했다. 그는 '신영철사태' 때도 신 대법관을 비판하는 글을 올렸고, 같은 모임의 이정렬 동부지법 판사도 비슷한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들의 글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문형배 부산지법 부장판사, 문수생·송승용·유지원 판사 등의 글을 촉발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며 법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이번에 '공중부양 무죄' 판결을 내린 이동연 판사는 지난 2006년 9월 이 대법원장의 '수사기록 서류를 던져버리라'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자 '당시 현장에서 이 원장 발언을 직접 들었는데, 참뜻이 잘못 알려졌다'는 글을 올려 이 대법원장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 판사들은 이에 대해 비판적이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바로 위에 배치한 기사 <여 "우리법연구회 해체시킬 것">에서 이주영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법원내 사조직' 해체를 강조했다. 반면 한국일보는 3면기사 <일부 언론 '사법부 색깔공세' 근거는 합당한가>에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사법부 비판이 날로 거세지면서 과연 이들의 비판 자체가 합당한가 하는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이른바 '사법부 좌편향 현상'의 핵심근거로 제시하는 우리법연구회와 이용훈 대법원장 책임론도 철저히 사실에 근거한 비판이라기보다 정치적 색깔공세에 치우쳐 있다는 지적이 많다.…최근 논란이 된 판결을 우리법연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다소 억지스럽다는 지적이다. 보수언론에서 연일 우리법연구회 성향 판결로 소개하는 '강기갑 대표 무죄판결'의 이동연 서울남부지법 판사는 정작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니다. 반면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김흥준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최근 정부가 시위로 파손된 경찰버스 수리비, 전의경 치료비 등을 배상하라며 민주노총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4억7,000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안을 제시해 진보진영을 당혹스럽게 했다. 보수신문들은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김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했다는 사실은 한 줄도 언급하지 않았다. 최근 한 보수신문은 우리법연구회 회원인 마은혁 서울남부지법 판사가 국회 홀을 불법 점거한 민주노동당 당직자 12명에 대해 전원 공소기각 판결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이 신문은 '같은 법원의 정계선 판사는 같은 혐의로 약식 기소된 민노당 당직자에게 벌금형(유죄)을 선고했다'고 비교했다. 그러나 확인 결과 정 판사 역시 우리법연구회 회원이었다."
  
------------------------------
조중동, 법원 길들이기 ‘위험한 광풍’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0일 (수) 13:46:59 류정민 기자)
‘강기갑 무죄’ 보수정서 자극, 여론재판 유도
 
이번 논란은 ‘강기갑 사건’이 계기가 됐지만, 권력 집단의 ‘사법부 길들이기’ 의도에 주목해야 한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주요 사건과 관련해 법원 판결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로 동아는 19일자 8면에 <폭발? 잠복?…내일 ‘PD수첩 1심’이 분수령>이라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PD수첩’ 판결을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유선호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검찰과 일부 언론이 (법원이 위법을 저지른 것처럼) 공격하고 비판하는 것은 위험하고 부적절하다”면서 “일부 정치권과 언론에서 법관의 전력과 이력을 문제를 삼는 것은 사법권 독립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조선일보가 지난해 5월14일자 사설에서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조선은 “법관은 상사(上士)와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여론과 외부 압력으로부터 독립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언론의 말 바꾸기는 신뢰를 해치는 가장 큰 적이다. 언론이라면 논조를 정하기에 앞서 과거 자신의 주장을 살펴보는 노력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
법원은 정말 좌경화 됐나?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 2010-01-20 오후 5:38:31)
[분석] "'우편향'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자초한 착시 현상"
 
검찰이 징역 3년 등 중형을 구형한 'PD수첩' 제작진에 대해 1심 재판부가 20일 무죄판결을 내리면서 '사법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고 있다. 정치적·법리적 성격으로만 보면 사건마다 차이는 있지만, 최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전교조 시국선언 교사, 그 이전의 정연주 전 KBS 사장, '미네르바' 재판에서 '릴레이 무죄 판결'이 이어지면서 정부와 여권으로선 당혹스런 기색이다. 사법 갈등의 한 축인 검찰도 격앙된 반응이다. 지난 14일 강기갑 대표의 무죄판결에 대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분개'했던 검찰은 불과 1주일도 지나지 않아 또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역시 "납득할 수 없는 편향적 판결이다. 우리법연구회가 문제다", "'노무현의 대못' 이용훈 대법원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서강대 법학대학원 임지봉 교수는 "그 쪽 (보수 진영)의 입장에서 보면 편향된 판결일 수도 있겠지만, 사건의 경우 기소 단계에서부터 무죄가 예견됐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법원 판사들의 성향이 갑자기 바뀌었겠냐"고 반문하면서 "군사 정권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법원은 지난 정권 때나 현 정권 때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우경화로 인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는 "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정연주 전 KBS사장 사건,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사건 모두 기소 자체가 무리했다"면서 "무리하게 기소가 되고 재판이 열리니 재판에서 줄줄이 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요컨대, 검찰이 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우편향된데다 무리한 기소를 남발해 재판이 열리니 법원이 예나 지금이나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도 판결이 좌편향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자신들의 '착시'를 부정하기 위한 근거로 '우리법연구회'라는 모임을 법원 내 '좌파조직'의 '실체'로 부각시킨다. 하지만, <월간조선>이 지난해 9월호에서 이미 회원 명단을 공개했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인 문형배 부산지법부장판사도 지난 해 11월 법원전자게시판에 글을 올려 "논문집 6집을 발간하면서 논문집 끝에 첨부하는 방법으로 회원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법연구회 멤버가 아닌 한 판사는 "판사들이 얼마나 개인적이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인지 잘 아는 법조기자, 검찰 출신 국회의원들이 '우리법연구회가 재판을 다 조종한다'고 주장하는 꼴이 가관"이라고 말했다.
 
16일자 <조선일보>는 법원 '좌편향'의 근거로 "법조계에선 1990년대 후반부터 법조인 선발인원이 늘어나면서 판사들이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진 것을 원인으로 꼽는다"면서 "이른바 '운동권'들이 대거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검사에 임용됐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1990년대 후반 사법고시 정원 확대와 시기적으로도 맞지 않고, 설령 정원확대에 비례해 '과거 운동권'들이 수가 늘어났을지언정 목적의식적인 법조계 진출과는 더더욱 무관하다 지적이 지배적이다.
 
또한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 판결 한 이동연 판사, 제작진에 무죄를 판결한 문성관 판사 등은 전형적 형사단독판사의 경력을 갖춘 인물들이다. 이들은 모두 40대 초반으로 임용된 지 10년 가량 됐다. 문 판사의 경우 1997년 연세대 법학과를 졸업해 그 해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2000년 판사로 임용됐다. '운동' 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조선일보 주장대로 1990년대 후반부터 판사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면 정말 다행한 일"이라면서 "그 때가 바로 개천에서 용 나기 어려워진 시점 아니냐"고 반박했다. 이 변호사는 "199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운동권 출신이, 청소부 아들이 판검사에 임용이 됐네 하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있었지만 근 10년간 그런 기사 본 적 있느냐"면서 "운동권 여부를 떠나 없는 집 자식들은 사시 합격하기도 어렵고, 합격하더라도 연수원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판사로 임용되기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지난 해 10월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9년까지 임용된 판사 중 171명이 특목고 출신이고 이 가운데 대원외고 출신이 64명이다. 배출 인원으로 보면 대원외고는 현직 법조인 순위 2위, 판사 순위 1위다. 우리법연구회나 경기고 출신보다 대원외고 출신 판사가 사실상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를 주름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특목고와 강남3구 출신 신규 임용 판사 비율은 점증해 지난해에는 40%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8학군 출신'으로 판사들이 '동질화'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법원 내에서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
보수언론, 반성없이 촛불·법원 ‘마녀사냥’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08:22:51 최훈길 기자)
[아침신문솎아보기] 검찰 vs 법원 갈등 부각하며 색깔론 제기 
 
경향은 3면 기사<언론의 정책 비판 ‘사회적 책무이자 권리’ 재확인>에서 “MBC「PD수첩」광우병 보도 사건에 대한 20일 법원의 무죄 판결은 언론의 정부 비판 폭을 상당히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강도높은 수사 끝에 기소한 검찰로서는 또다시 정권의 의도에 코드를 맞췄다는 따가운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한겨레는 3면 기사<반성 모르는 검찰…총장마저 “국민 불안” 원색 반응>에서 “‘피디수첩’ 제작진에게 무죄가 선고되자, 검찰은 김준규 총장이 간부회의를 열어 법원을 직접 비판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며 “검찰은 무리하게 기소했던 ‘시국사건’들에 무죄 선고가 잇따르고 있는데도 성찰이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이날 아침신문 중 유일하게 광우병 관련 보도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5면 기사<보수언론 ‘촛불 배후론’은 ‘마녀사냥’이었다>며 “피디수첩 때리기에 골몰했던 보수언론은 자성해야 한다”며 이창현 국민대 교수의 발언을 첫 문장으로 꼽고 관련 문제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또 이번 판결이 현 정권의 ‘역주행’에 제동을 걸었다는데 주목한 보도도 있었다. 경향은 6면 기사 에서 “이명박 정권 초기 국정장악과 여론통제를 목적으로 진행된 정권 차원의 각종 무리수들이 집권 중반에 접어들며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며 “표현의 자유와 공공기관장 임기제 등 정당한 민주적 제도와 절차들을 겨냥해 진행됐던 집요한 역주행이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져내리는 양상”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은 관련 사례로 미네르바 무죄 선고,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해임처분 취소 판결, 강기갑 대표 무죄 선고, 시국선언 교사 무죄 판결 등을 지적했다. 한겨레도 4면 기사이라는 기사에서 KBS, YTN 사례를 지적했다.
 
반면, 대다수 신문에선 이번 판결을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4면 기사<강기갑-전교조 이은 ‘판결 쇼크’… 檢 “법원, 상식도 안통해”>에서 “이날 법원의 무죄 선고는 이미 활활 타오르고 있던 ‘법원과 검찰 간 갈등’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며 갈등을 부각시켰다. 조선일보는 3~4면에 이전 민사재판과 이번 형사재판의 쟁점을 5개로 나눠 법원을 비판했다. (<“핵심 5가지 허위보도” 고법 판결, 지법이 180도 뒤집었다>, ) 특히, 조선은 4면 기사<작년 ‘국보법 위반’ 이천재씨에도 “무죄”>에서 문성관 판사 관련 ‘색깔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민일보는 4면 머리기사로 <검 “법원 판결에 불안해 하는 국민 많다”>며 검찰의 주장을 부각시켰다.
 
주목되는 점은 이날 일제히 게재된 사설이다. 특히 보수언론은 격양된 반응을 보이며 사법부 ‘개혁’을 주장했지만, 촛불 집회 당시 보도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은 없었다. 동아일보는 사설<“PD수첩 허위 없다”는 문성관 판사 어이없다>에서 “최근 국민의 상식을 뛰어넘는 판결이 쏟아져 현기증을 느낄 정도”라며 “일부 법관이 아집에 사로잡혀 상식과 사리를 벗어난 판결을 하는 것은 독재권력 이상으로 위험하다. 사법부가 건강성을 잃으면 법의 지배는 의미를 상실한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중앙은 사설<무엇이 사법부 독립을 위태롭게 하는가>에서 “문제의 본질은 국민의 법 감정과 상식에 배치되는 잇단 판결이다. 나아가 판결에서 엿보이는 정치성과 이념적 편향”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양형의 불균형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 또 판결에 정치성이나 편향성이 개입되지 않도록 어떻게 제도적인 장치를 만들 것이냐가 해법의 첫 수순이다. 단독 판사의 '독단적인' 판결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이며, 법원 내 '사조직'은 어떻게 할 것이냐도 과제”라고 주장했다. 중앙은 “언론의 자유 못지않게 책임도 막중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자사의 보도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은 사설<문(文)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 있었나>에서 촛불집회를 선동이라며 ‘흠집내기’까지 했다. “PD수첩이 과장하고 날조했던 이런 TV 화면, 이런 자막, 이런 음성이 젊은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앞세워 거리로 나오도록 불러냈고, 철모르는 여중생들이 울먹이며 거리의 시위대에 합세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문 판사는 같은 화면, 같은 자막, 같은 음성을 듣고서도 이것이 '세세한 점에선 다소 과장이 있지만 중요 부분은 사실과 합치된다'는 것이다. 문 판사는 유모차를 앞세운 젊은 어머니와 죽기 싫다는 어린 여학생들이 거리를 메우고 정체불명의 선동자들이 '청와대로 가자'를 외쳐대던 2008년 5~8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서울신문도 사설에서 “사회적 합의와 소통을 자꾸 비켜나는 등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사법개혁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 봐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일보도 사설<법관의 자질을 못 믿게 된 상황>에서 “이번 재판은 민사 1, 2심의 허위보도 판단과 배치됨으로써 법관들의 자질과 능력에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드러냈다”며 “국민의 상식과 어긋나고 법관에 따라 똑같은 사실도 정반대로 판단하는 상황이 거듭된다면 어떻게 법원에서 정의를 구할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세계일보도 사설<사과까지 한 PD수첩 광우병 보도가 허위 아니라니>에서 “3심제이므로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문제가 심각하다. 재판부에 따라 이처럼 거듭 판결이 상이하게 나오는 상황은 법원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며 “법원의 권위를 스스로 세우기 위한 내부 개혁 차원의 단독판사제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기수 경향신문 사회부 차장은 칼럼 <법을 흔드는 광풍을 멈춰라>에서 “행정(수사권) 독주와 대통령의 사면권이 남발되는 시대, 사법의 존재감은 더 강조돼도 지나치지 않다”며 “법을 사유하고 편익하고 겁박하는 작금의 붉은 광풍은 역사의 순풍일 수 없다.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향은 사설에서 “그동안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보수언론의 도리질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기소는 이명박 정부와 검찰, 그리고 보수언론이 합작한 촛불 죽이기이며, 촛불 원인을 방송 탓으로 돌려 쇠고기 국면을 공안정국으로 돌리려는 공작이었던 것”이라며 “국민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논평했다. 한겨레도 사설<‘정치검찰’의 억지 기소 일축한 피디수첩 판결>에서 “이번 판결은 헌법과 법을 무시한 검찰의 억지를 바로잡은 것”,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가 헌법을 무시한 불법이라는 점도 이번 판결로 확인됐다”며 “검찰은 이번 판결을 두고 또다시 법원을 비난하며 반발할 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최근 일련의 ‘마녀사냥’식 행태를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우려되는 것은 이번 판결을 다시 우리 사회의 이념적 대립을 증폭하는 기제로 활용하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번 판결은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보도를 언론의 사회적 책무이자 권리로 인정해온 기존 대법원 판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촛불 시위 정국을 거치며 보수ㆍ진보의 대척점이 된 PD수첩이 대상이라는 사실만 다를 뿐, 일반 언론보도 소송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기갑 민노당 대표 무죄 선고,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 파장의 연장선상에 이 판결을 올려놓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 흔들려는 행위는 배격해야 마땅하다.”
 
-----------------------------
이명박 정권 '법치' 허구 명백히 드러나 (레디앙, 2010년 01월 21일 (목) 08:56:17 김정진 / 변호사)
[기고] "법원, 판례 따른 판결일 뿐…강기갑 밉다고 판례 무시하라고?"
 
요즈음 같은 정치적 분위기에서 일부 법관들이 소신있는 판결을 한 것은 분명히 용기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전에 냉정하게 평가하여야 할 것은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고 있는 사건들의 경우에 법원에서 이례적인 기준으로 판단한 것은 결코 아니며 기소단계에서부터 많은 전문가들이 무리한 기소라는 의견이 비등했다는 것이다.
 
법률에 나와 있는 포괄적 글귀를 해석하는 권한은 전적으로 판사에게 달려 있다. 배심제가 일부 도입되기는 했지만 절대 다수의 사건에서 법에 나와 있는 글귀의 해석권은 판사에게 있다. 강기갑 의원 사건도 그렇다. 과거의 권위주의 시절부터 법원은 적법한 공무집행이 아니면 경찰을 폭행해도 공무집행방해가 안된다고 하였고, 이는 확고한 대법원 판례이다.
 
광우병은 아직도 심지어 전파 경로에 대해서도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질병이다. 완전히 규명되지 않은 질병의 위험성을 보도하는데 그것이 업무방해나 명예훼손이 된다고 한다면 아마 더 이상 언론의 자유는 질병이나 위생 분야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미네르바 사건의 경우도 그렇고 정연주 사장 사건도 그렇다. 이것은 특별히 이상한 신조를 가지지 않아도 판사라고 한다면 기존의 법률해석을 가지고 충분히 무죄라는 결론을 내릴만한 사건들이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결국 왜 이렇게 무리한 수사와 기소가 있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무죄판결들은 사법부가 독립되어 있고 인권의 최후에 보루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법해석이 누적된 결과에 기인한 것이다. 개별 판사들에게 기존의 법해석과 다른 논리로 재판하라고 하는 것은 수십년 간 쌓여온 법학과 판례들을 무시하라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현 정부가 생각하는 법치는 자기들에게만 유리한 법치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악법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글귀로 되어 있는 이상 보편적 속성을 갖는다. 자기에게도, 타인에게도 적용되는 것이다. 이것을 억지로 자기에게만 적용시키지 않고 타인에게만 적용하려고 하면 사람들은 체제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이렇기 때문에 그람시는 법원이 가장 약한 국가기구라고 하였던 것이다.
 
법원은 기구의 속성 상 현 질서를 옹호하려고 한다. 현 질서가 쓰여져 있는 것이 법률이고 자신들이 그 법률을 해석한 것이 판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무죄사건은 결코 법원의 기존 입장에서 벗어난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현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법치의 개념을 4공 내지 5공 식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 때야 법원은 행정부의 하나의 부서에 불과한 때였고, 정보기관 직원들이 재판을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사태의 본질, 무리한 기소-상식적 판결 (레디앙, 2010년 01월 21일 (목) 08:02:01 논설위원실)
여권, 민주적 허용 넘어선 반헌법 행위 
[입장] 법원 공격하는 우파에게 "내뱉는다고 다 말은 아니다"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체제 하에서 현재의 논란의 핵심은 한나라당의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대법원장에 대한 부당한 요구가 사법부의 독립과 법관의 독립을 해치는 반헌법적 행위인지 아니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허용될 수 있는 정당한 비판과 토론의 자유의 범주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이다. 한나라당 주장의 핵심은 무죄판결을 내린 판사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내심에는 마음에 들지 않는 판사를 자르고 싶다는 욕구와 무죄판결의 수정이나 재발방지를 위해 자기를 옹호해주는 판사만으로 재판기관을 구성하고 싶은 욕구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욕구에 협조하라고 인사권자라고 인식하는 대법원장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스스로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법관 자격을 내던진 신영철 대법관은 옹호하면서 검찰이 정치적 판단에 의해 무리하게 기소를 한 사건들에 대해 상식적인 차원에서 무죄로 판결한 판사들을 물러나라고 욕한다면 그 얼마나 우스운 행태인가. 입으로 내 뱉는다고 모두 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지난해엔 '독립' 강조, 이번엔 '흔들기'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1일 (목) 16:57:14 류정민 기자)
조중동의 표리부동…우리법연구회 난타하며 여론몰이
 
최근 상황은 사법부 흔들기를 넘어 ‘사법 테러’ 사태로 번지고 있다. 법관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까지 왔다.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이 법관 상징물에 불을 붙였다. 일부 회원들은 법원 진입을 시도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자유개척청년단’ 등 보수단체 소속 회원들은 21일 오전 이용훈 대법원장 관용차량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법원 판사들의 집을 찾아가 시위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이런 상황 때문에 법원은 판사 신변보호 조치를 내렸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바로 그 신문이다. 중앙일보는 21일자 3면에 <이주영 위원장 “우리법연구회,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이념 사조직”>이라는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장을 부각시킨 편집이다. 사법부 흔들기 논란이 벌어질 수도 있는 기사지만, 중앙일보는 이를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는 6면 머리기사에는 보수단체들의 법원 앞 규탄집회 장면을 부각시켰다. 사법부 밖의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그 중앙일보가 맞는 것일까. 중앙일보는 야당의 ‘사법부 흔들기’ 우려와는 상반된 시각의 사설도 실었다. 중앙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판결에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면서 “비판 역시 사법부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법관 신분보장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정치권력이 법관의 독립을 흔들었던 시대는 지났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 19일자 사설 제목은 <이 대법원장 남은 임기 20개월이 걱정스럽다>이다. 여권에서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용훈 대법원장을 교체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동아일보가 이 대법원장의 거취와 관련한 사설을 내보냈다는 점이 주목할 대목이다. 한나라당 마음에 들지 않으면 대법원장도 바꿀 수 있는 것일까.  
 
조선일보는 지난해 사법부는 여론의 압력에서도 독립해야 한다면서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21일자 4면에 <무죄 판결한 문성관 판사는 작년 ‘국보법 위반’ 이천재씨도 “무죄”>라는 제목의 기사와 함께 문성관 판사 사진을 내보냈다. 보수층 정서를 자극하는 기사제목을 달고 판사 얼굴을 사진으로 내보낸 이유는 무엇일까.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조선일보가 사법부 흔들기 여론몰이에 나섰다고 지적한다면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가 궁금하다. 조선일보는 21일자 지면에 <문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에 있었나>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대법원장 관용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판사 집까지 찾아가 시위를 하는 상황, 급기야 법원에서 판사에게 신변보호 조치를 내리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여론몰이식 보도도 영향을 줬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은 그때그때 다른 시각을 보일 사안이 아니다. 사법부 독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2009년에도 중요하고 2010년에도 중요하다. 그러나 조중동의 2009년과 2010년 보도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쯤 되면 말 바꾸기의 달인으로 불러줘야 하지 않을까. 조중동의 ‘말 바꾸기 논조’를 조정하는 데 참고할 만한 칼럼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다름 아닌 중앙일보 칼럼이다. 중앙일보는 지난해 3월13일자 31면에 김민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정략적 ‘사법부 흔들기’ 안 된다>라는 칼럼을 실었다.
 
중앙일보 칼럼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정치판사로 몰아세워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사법부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법부의 독립은 행정권이나 정치 권력단체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특정의 압력단체나 정치 세력으로부터의 독립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일부 사회단체나 언론으로부터 압력이나 협박으로 법관이 위협받는 사례가 빈발하고, 이는 사법부 및 법관의 독립에 매우 큰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법관에게 심리적 위협을 주는 집단적 행동을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라 할 수 있는 사법부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
경향, 보수신문 작심 비판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2일 (금) 08:39:13 김상만 기자)
[아침신문 솎아보기] "냉정 잃은 보수세력 선동 자제해야"
 
조선일보는 3면 이시윤 전 헌법재판관을 인터뷰해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단독판사에게 맡기면 안 된다"는 말을 끌어냈다. 이는 여당이 주장하는 사법개혁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 조선일보는 이 인터뷰에서 "MBC가 사과방송을 한 것을 보면 '일방의 견해만 방송한 사실이 있다'고 했더라"면서 "자백을 한 것인데 그 이상의 (유죄) 증거가 있느냐"는 이 전 헌법재판관의 말을 전했다. 그러나 이 인터뷰에선 MBC 사과방송이 방송사의 내부에서 이뤄진 결정이 아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청자 사과' 결정으로 인한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중앙일보도 1면 머리기사에서 우리법연구회에 이념적인 잣대를 들이댔다. 중앙일보는 기사에서 "과거 군의 하나회와 같은 사조직이 법원 내에 있어 집단적 움직임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요구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의 말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더 나아가 사설 <'우리법연구회'부터 자진 해체하라>에서도 진앙은 단독판사들의 '독단적인' 판결"이라며 "일련의 판결에 '집단적 편향'이 느껴진다"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상식 이하 판결 뒤의 "사법부 독립" 외마디>)에서도 "이 대법원장은 법조계의 의견을 모아 법관과 재판의 오류를 시정하고 제도적인 허점을 보완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취할 조치를 서두르는 것이 옳다"며 "잘못된 재판에 대한 비판이 마치 사법권 독립을 흔드는 것처럼 말할 일은 아니다"라고 정당화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한나라당의 사법부 개혁 추진에 대해 '사법부 개조'라고 못 박았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 <정권의 입맛대로 '개조' 속셈>에서 "한나라당이 '사법부 개조'를 밀어 붙이고 있다"며 " 제작진 무죄 등 최근 잇따른 법원의 무죄판결을 문제 삼으며 '사법개혁'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법관 임용 관여, 인사권 장악 등을 통해 법원을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고 보도했다.
 
경향신문은 또 단독판사 자격을 법조경력 10년 이상된 부장판사로 하자는 일부 언론과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한나라당 방안은 '초선 의원은 어느 상임위원회에 들어가면 안 된다'는 식으로 지나친 사법권 침해"라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또 사설을 통해 보수신문들의 지나친 사법부 흔들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작금 소위 보수신문들의 보도행태에 대하여>에서 " 1심 무죄판결 이후 이른바 보수신문들의 비이성적 보도 행태가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재작년 광우병편이 방송된 후 계속된 자신들의 비난 일변도 보도에 대해 일말의 자제나 반성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보수세력의 총공세를 선도하는 모양새"라며 "일방적 정부 편들기 보도나 검찰 수사에 무리가 없었는지 법리적으로 따져보려는 냉정함은 찾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조중동을 보수신문이라 부르는 데 유보적인 주요 이유는 일관성 없는 이중잣대의 논조다. 이들은 탈이념을 강조하다가 필요할 때는 이념편향을 걸고 넘어진다. 작금의 법원, 검찰 갈등 국면에 '우리법 연구회'를 불순한 조직으로 모는 것이나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대한 보도 태도 돌변 등이 그 사례다. 이런 이중잣대의 기준은 오로지 자기 이익으로 파악되는 바 진정한 보수, 제대로 된 우파와는 거리가 멀다."
 
한겨레는 검찰의 억지 주장을 지적했다. 한겨레는 사설 <억지만 부리는 정치검찰, 이대로 둬야 하나>에서 '민사재판 결과를 형사재판이 뒤집었으니 잘못된 판결이다'는 식의 논리부터 말이 안 된다고 밝혔다. 반론과 정정보도,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보다 형사처벌을 정하는 형사재판에서는 민사보다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는 만큼 민사와 형사 소송은 접근방식부터가 다르다는 얘기다. 한겨레는 검찰이 이런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라며 "(검찰의) 주장은 정치적 선동의 구호는 될지언정 법률가에겐 어울리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한국일보 역시 일부 보수단체와 언론의 사법부 압박이 위험수위를 넘었다고 우려했다. 한국일보는 1면 머리기사 <도를 넘었다>에서 이용훈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지고 법원 앞에서 피켓을 불태우는 등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 사건 등 정치적 논란이 됐던 사건들에 대한 법원의 잇단 무죄 판결에 반발하는 보수진영의 비판과 항의가 도를 넘어 공격적인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일보는 "여당과 일부 보수언론이 연일 이념적 잣대로 사법부를 흔들면서 이들을 선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며 "3심제라는 사법적 절차로 풀어야 할 판결에 대한 불만이 장외 이념대결로 확산될 경우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밝혔다.
    
----------------------------
‘매카시즘’ 언론, 법원 자기검열 유도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7일 (수) 15:06:30 류정민 기자)
[기획]조중동-검찰-한나라당 삼각편대의 마녀사냥
 
검찰은 ‘언론탄압’ ‘야당탄압’ 논란을 무릅쓰고 기소를 강행하다 체면을 구겼지만, 여당과 조중동의 측면 지원에 따라 여론의 집중 비판을 피할 수 있었다. 조중동의 프레임(생각의 틀) 전환이 일정부분 성공을 거뒀는지는 모르지만, 사법부를 이념대결의 전쟁터로 떠민 행동은 한국사회 전체에 부담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판사 개개인의 판단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이념의 잣대를 들이댈 경우 사법부는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다.
 
조중동의 최근 보도는 ‘매카시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판사 개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며 이념적 정치적 판단이 개입된 것처럼 몰아갔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21일자 지면에 판결을 담당한 문성관 판사 얼굴 사진을 게재하며 국가보안법 사건에 무죄판결을 내렸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보수단체 회원들은 법원 앞에서 문 판사 얼굴사진을 불로 태우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남부지법이 지난해 11월6일 민주노동당 당직자들에게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을 때도 보수신문은 재판을 담당한 마은혁 판사 신상을 파헤치며 이념 덧칠에 나섰다. 동아일보는 마은혁 판사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후원회에 참석했다는 것을 보도했고, 11월12일자 12면에는 <사회주의 혁명조직 핵심 멤버였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중앙일보는 11월12일자 1면에 <법, 이념 앞에서 길을 잃다>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서울남부지법이 지난 14일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받은 강기갑 대표에게 무죄판결을 내리자 보수신문은 호재를 만난 듯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법원은 검찰이 공무집행방해죄를 적용한 것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처음부터 단순 폭행 사건으로 접근했다면 판단이 달라졌을 것이란 여지도 남겼다. 보수신문은 법원이 국회 폭력을 정당화시킨 것처럼 몰아갔지만, 법원이 지적한 것은 공무집행방해죄 적용의 문제점이었다. 동아일보도 16일자 사설에서 “강 대표의 행위가 국회의원직을 상실할 정도의 범죄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릴 수 있다”면서 검찰 구형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전주지법이 20일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의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판결했을 때도 보수정서를 자극하는 기사와 사설 칼럼은 이어졌다. 조중동은 법원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 논란을 집중 부각시키면서 이념 여론몰이에 들어갔다. 중앙일보는 22일자 <‘우리법연구회’부터 자진 해체하라>는 사설을 실었다. 조중동 보도만 놓고 보면 우리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이 최근 논란이 된 판결을 주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우리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박상훈 변호사는 경향신문 26일자 35면 칼럼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미네르바 사건, 촛불 집회 중 야간 집회 사건, 정연주 전 KBS 사장 사건,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사건,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 사건, 전교조 시국선언 사건, MBC 사건 등 7건의 무죄 판결은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닌 일반 법관들이 한 것”이라며 “일부 언론에서는 마치 우리법연구회가 배후에 있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신문이 우리법연구회 문제를 집중적으로 부각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을 이념 대립의 문제로 몰아가기 유리하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22일자 사설에서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는 ‘운동권이 사법조직에 편입됐고 그런 사람들이 모여 우리법연구회가 탄생했다’는 글을 썼다”고 주장했다.
 
보수신문과 한나라당이 법원 ‘마녀사냥’을 강행한 배경에는 정권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입법부와 행정부, 지방정부를 사실상 장악한 집권세력은 ‘민간독재’ 논란을 빚으며 일방통행 국정운영을 펼치고 있지만, 사법부는 껄끄러운 대상이었다. 주요 시국사건 판결이 줄줄이 예고돼 있고, 4대강 사업도 법원 판단에 따라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등 민감한 정치적 사건도 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법원이 한명숙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 한나라당 서울시장 선거 전략은 흔들릴 수 있다. “법원을 손봐야 남은 임기 3년이 편안하다”는 위험한 발상은 어느새 현실이 되고 있다
 
-------------------------------
정부·여당, 사법부 장악 우려…“세종시 수정안, 사이비 법치주의”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7일 (수) 15:10:54 류정민 기자)
MB ‘법치주의’는 어디로 
 
----------------------------
지난해엔 ‘사법부 독립’ 강조, 이번에는 ‘흔들기’ 주도 (미디어오늘, 2010년 01월 27일 (수) 15:12:57 류정민 기자)
‘말 바꾸기 달인’ 조중동 
 
조중동은 지난해 신영철 대법관이 ‘촛불 재판’ 개입 논란으로 법원 안팎에서 사퇴 압력을 받자 사법부 독립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올해는 논조가 달라졌다. 지난해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했던 중앙일보는 지난 21일자 사설에서 “비판 역시 사법부의 권위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지난해 법관의 신분보장을 강조했던 동아일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임명됐던 이용훈 대법원장의 거취를 압박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에 대한 언론의 가치 판단은 달라질 수 없지만, 2009년과 2010년 조중동 논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말 바꾸기’ 논조는 언론 신뢰 하락의 원인이다. 
 
--------------------------------
[막말의 시대] 정부입장과 다르면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인가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인권오름 제 188 호 [입력] 2010년 01월 27일 15:51:27)
사법부의 독립에 관한 국제원칙에 한참 못 미처
 
최근 몇 주간 이 나라의 권력을 쥐고 흔드는 여당, 검찰, 보수언론이 힘을 모아 법관들을 공격하고 있다. 'PD 수첩' 제작진에 대한 무죄판결, 강기갑 의원 무죄 판결, 시국선언 교사들에 대한 무죄판결 등이 잇따르자 이에 대한 대책으로 법원 흔들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위 사건들은 정부정책을 비판하였거나 정부의 불법행태에 대한 항의를 했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검찰에서 기소를 했기에 생긴 일이며, 재판부가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판결한 내용이 검찰과 달랐다는 점, 정부의 의중과 어긋난다는 점이 특징일 뿐이다. 대통령이 꽉 장악한 행정부, 한나라랑 국회의원이 전체의원의 과반수를 넘어 입법권을 틀어쥔 이명박 정부는 이제 사법부까지 장악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지난 1월 21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사법제도개선특위 회의에서 “좌편향 불공정 사법사태를 초래한 대법원장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마땅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으며, 25일에는 “정치성향이 강한 법관은 형사재판에서 배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는 막말을 하며 사법부를 흔들고 있다. 지난 신용철 대법관이 촛불재판에 개입하는 직무수행을 하여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했을 때와는 너무나 다른 태도이다.
 
“보도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 및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 기능에 관한 점인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경우 방송사에게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한다면 언론사로서의 비판 기능이 위축될 수밖에 없으므로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은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언론의 기능을 확인시켜주었다.
 
또한 교사와 공무원들이 시국선언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징계를 받고 기소당하는 현실은, ‘무조건 입 다물라’는 독재의 망령일 뿐이다. 그래서 작년에 한국을 방문한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도 한국의 이러한 상황에 우려를 표현했고 올해 한국을 공식방문하기로 하였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표현행위가 처벌당한다면 어떠한 표현도 할 수 없고 결국에는 생각조차 재단당할 수밖에 없기에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재판부는 그저 "이들의 행위는 공익의 목적에 반하는 게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국가에 대한 비판을 한 것에 불과하다"며 "이는 헌법이 규정하는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것일 뿐이다.
 
이미 10980년대에 국제사회에서도 법관의 시민적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합의한 바 있다. 198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사법의 독립에 관한 기본원칙’(유엔총회 40회 40/32)에서는 법관에게 시민적 자유를 보장하고 결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유럽 각국에는 60년대 말부터 법관 조합이 결성되었으며 1985년에 설립된 유럽법관조합에는 여러 나라들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도 학술적 연구모임인 ‘우리법연구회’를 공격하는 것은 이후에는 법관이 양심에 따른, 법의 상식에 따른 재판을 할 수 없게 하려 하는 의도일 뿐이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이용훈 대법원장 취임 이후 무죄가 늘어났다면서 공판중심주의를 공격한다. 조선일보는 “사법부에서 무죄가 늘어난 것은 형사재판의 '공판(公判)중심주의'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검찰이 정치권을 옹호하는 칼이 되어 ‘위법’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기소하고 있기 때문에 무죄가 늘고 있지 않은가.
 
보수우익단체가 폭력을 행사해도 경찰과 검찰은 수사조차 하지 않는다. 보수단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천막을 부수며 전기총으로 사람들을 위협했어도 이를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용산에서 과잉진압으로 숨진 철거민들에 대한 추모행사는 언제나 불법시위로 해석·적용하여 참가자들을 연행하고 구속하였다. 이러한 편향된 수사와 편향된 기소가 있는 한 무죄가 늘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에서는 “검사수사기록보다 법정에서 피고인과 재판당사자들에 대한 심리결과를 판결에 더 반영하는 공판중심주의”가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독립성이 강한 ‘판사의 역할’을 축소하고 정치권력화된 '검찰의 입김을 강화하자‘는 이야기이다. 권력에 너무나도 충실한 정치검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현실에서 검찰 수사기록에만 의존한다면 ‘공정한 재판’은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지금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부추기는 ‘사법부 개혁과 사법부 독립성’이라는 논쟁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할 게 있다. 바로 인권의 원칙과 법의 지향이다. 지난해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한국심의에서도 정부에게 권고한 바와 같이 한국의 사법부가 국제인권규약을 고려하거나 그에 입각한 재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인권의 원칙에 입각한 판결이 너무나 부족하다. 실제 사회권 규약을 원용한 판결이 거의 없는 현실은 척박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러한 현실은 ‘왜 사법부의 독립성이 필요한지’, 인권의 관점에서 볼 것을 요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법이 인권보호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지, 그러한 관점에서 집행되고 판결되는지를 가늠하는 일이다.
 
--------------------------------------------------
'문제의 판결'이야말로 '사법부 독립'을 실현한 판결 (프레시안,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0-01-27 오후 4:04:31)
[법치의 표리(表裏)]<26> 검찰ㆍ언론ㆍ여당의 사법부 흔들기를 우려함
 
법원의 판결에 대해 국민이나 국민여론을 선도하는 언론은 비판을 할 수 있다. 판사가 행사하는 재판권도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비판에도 지켜야 할 한계가 있다. 사건의 내용과 본질에 대한 논리적이고 학리적인 비판이어야 한다는 한계가 그것이다. 그러나 법원 판결에 대한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의 비판은 사건의 본질이나 판결의 내용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일부 시민단체들이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던지고, 판결을 내린 판사의 집 앞에서 위협적인 시위를 벌이는 비이성적 사태까지 벌어졌다.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판결이 내려졌다고 무차별적으로 가해지는 이러한 근거없는 비판과 비이성적 공격은 관련 판사들에 대한 지독한 명예훼손이며 도를 넘은 정치공세이고 사법부 독립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위헌적 행위로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집권여당, 검찰, 몇몇 언론들, 대법원장과 판사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시민단체들은 지금 분명 이 '국민을 위한'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고 있다. 사법부 독립의 출발이자 기본이 '법관의 독립'이다. 판결에 대한 간섭의 주체인 '법원 내외부'에는 우선 소송당사자가 포함된다. 그 사건 판결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는 소송당사자의 간섭이 일차적으로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이라는 것이 분쟁의 당사자인 소송당사자들의 주장을 듣고 중립적 제3자인 판사가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판단자인 판사가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소송당사자로부터의 독립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명확해진다. 검사가 바로 형사사건의 '원고'라는 소송당사자이다.
 
따라서 이번처럼 검찰이 법원의 일심판결에 대해 자극적인 문구를 동원해 법원 판결을 폄훼하는 것은 소송당사자로부터의 사법부 독립 침해가 될 수 있다. 검찰은 법원 판결에 대한 불만을 언론에 의도적으로 흘리기에 앞서, 무죄판결을 받은 사건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나 기소에 무리한 법적용은 없었는지, 각종 혐의사실들에 대한 입증을 다했는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중립성을 지키며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국민을 위해 행사했는지를 조용히 되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이번의 무죄판결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이를 항소이유서에서 법리적으로 소상히 규명하고 이심법정에서 그 점을 강변하면 될 일이다.
 
집권여당 고위당직자의 사법부 때리기는 간접적으로 행정부의 사법부 흔들기가 될 수 있다.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대법원장에게 정치성향이 강한 판사들을 형사재판에서 배제시키라거나 10년 뒤 재임용시 판사들의 자질검증을 하라는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은 집권여당과 행정부가 사법부의 사법권 행사를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다. 판사에 대한 인사권도 사법행정권으로서 사법부에게 전속된 '사법권'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다수의석으로 입법부를 장악하고 대통령을 배출해 행정부까지 쥐게 된 집권여당이, 사법부의 판결을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사법권 행사에 까지 간여하려 하는 것은 헌법상의 삼권분립원리와도 충돌한다.
 
최근의 법원 무죄판결들에 대한 이러한 비이성적 비판은 문민정부 이후 법원 외부세력에 의한 가장 노골적인 사법부 독립 침해 시도로 사법사에 기록될 것이다. 그간 관료화된 사법부 구조하에서 법원상층부로부터 '개별법관의 독립'이 우리 사법부 독립의 중요한 화두였다면, 작금의 사태는 다시 법원외부의 정치세력으로부터 사법부 독립이 유린되는 상황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8 04:27 2010/01/28 04:27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노조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문제 있다

View Comments

지난 21일에는 인권위 주최로 '업무방해죄와 노동인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업무방해죄가 논란이 된 것은 작년 말 철도파업 때였는데, 거의 한달이 지난 즈음에 관련 토론회가 열린 것이다. 인권위의 대응이 그 만큼 느리다고 질책할 수도 있겠지만, 최근 인권위의 상황을 보면 노조의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에 비판적인 이들로 토론회를 구성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책토론회는 연합뉴스, 뉴시스와 경향신문을 제외한 다른 언론매체들에서 외면당했다. 작년 철도파업과 관련된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했던 것을 두고 논란을 벌였던 것이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모두 기억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지금도 철도공사에서는 파업노조원들에 대한 징계조치를 정신없이 진행시키고 있다. 여기에서 업무방해죄가 차지하는 비중도 만만치 않을 텐데, 왜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일까. 괜시리 그들에게 미안해진다.
 
정책토론회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대법원의 입장 전환을 촉구한다. 최근 일련의 판결로 사법부가 주목을 받고 있지만, 그들이 시각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업무방해죄 관련 사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갈수록 법의 영향력이 증대하는 상황을 보면서, 사법부에 대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민중통제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 
 

 

-----------------------------
“노조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 안돼” (레디앙, 2009년 12월 29일 (화) 17:03:33 정상근 기자)
조승수 형법개정안 제출…통과시 무분별한 파업 고소 제동될 듯
 
지난 11월 26일 파업에 돌입한 철도노조는 파업 철회 후 철도공사로부터 ‘업무방해죄’ 혐의로 182명이 고소당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1심 노동형사사건 7,624건 중 업무방해죄가 30%에 달하는 등 정부와 기업이 ‘업무방해죄’를 노동자 파업에 광범위하게 적용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의 단체행동권을 탄압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철도노조의 경우처럼 노동법에 따라 정당한 절차를 거쳐 파업에 나섰으나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면 처벌대상이 되는 것이다. 즉 ‘업무방해죄’가 정부와 기업의 노조무력화 기제로 사용될 수 있다.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은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업무방해죄’ 적용범위 내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 따른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죄가 성립되지 않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제출한다고 밝혔다. 조 의원은 “현 정부는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며 노조의 정당한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업무방해죄를 남발하고 있다”며 “현재 형법 상 업무방해죄는 모든 파업에 적용될 수 있어 정부가 합법여부를 가리지 않고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업무방해죄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조합 활동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지 않는 것은 이미 전 세계적 추세”라며 “프랑스와 일본의 경우 각각 1864년, 1907년에 노동조합 탄압을 위해 업무방해죄 조항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혀 적용하지 않고 있는데, 오직 이명박 정부만이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의원은 “노동조합의 합법적인 파업에 대해 정부가 업무방해죄를 적용하여 처벌하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것”이라며 “헌법상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이번 개정안을 제출하며, 더 이상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에 대해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지 않도록 개정안 통과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철도노조 서재열 부위원장은 “철도노조는 법률에 근거해 그 목적과 절차에 정당한 파업을 했지만 공사는 노조가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조합원들을 고소했고, 검찰은 15명의 간부에 대해 검거에 나섰다”며 “파업종료 후에는 노조 간부들을 해고시키고 지금도 탄압을 계속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업무방해죄가 계속 적용된다면 합법적 노동운동이 되겠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노동관련 사항을 노동관계법에 근거하지 않고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것은 법 적용 남용이자 노조 탄압”이라며 “노조법에서는 구속이 안되는 사항을 형법에서 구속시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로, 노동조합의 일을 형법에 적용하는 것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
철도노조 “철도공사가 또 파업을 부른다” (참세상, 이꽃맘 기자, 2009년12월29일 18시18분)
철도공사 교섭은 뒷전 징계만...야4당 파업에 업무방해죄 적용금지 발의
 
홍영표 민주당 의원,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 등 16명의 야4당 국회의원들은 29일 공동으로 파업에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도록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철도노조의 파업에서 드러나듯이 현 정부는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몰아붙이며 노조의 정당한 파업을 무력화하기 위해 업무방해죄를 남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에 업무방해죄를 단체교섭 및 쟁의행위에 적용할 수 없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6년까지 1심 노동형사사건 7624건 중 업무방해죄가 30%에 달했으며 최근 철도노조 파업에서 철도공사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노동조합 집행부 등 182명을 고소하기도 했다. 야4당 국회의원들은 “정부는 합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업무방해죄를 무차별적으로 적용하고 있다”며 “헌법으로 보장된 노동3권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 이번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
업무방해죄를 방해하라 (한겨레21 2009.12.11 제789호, 조계완 전종휘 기자)
[특집] 노동운동 탄압을 위해 만들어진 법조항…
“근로 제공 거부 이유만으로 업무방해죄 적용은 한국뿐” 개정 목소리

 
대한민국 노동사에서 ‘쟁의 있는 곳에 업무방해 있다’는 등식은 여전히 아찔한 진실이다. 사실상 노조의 업무를 방해하기 위해 태어난 ‘업무방해죄’는 국가보안법·집시법과 함께 우리 사회의 3대 악법으로 지목되면서도 왕성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번 철도노조 파업에서도 어김없이 업무방해죄가 등장했다. 코레일은 노조가 철도 운행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며 조합원 188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노조 집행부 15명에 대해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
 
이와 관련해 적법한 쟁의활동을 탄압할 때 회사나 수사기관이 주 무기로 들이대는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철폐하거나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다시 일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는 “업무방해죄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위계·위력을 이용해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때 처벌하도록 하고 있으나, 위계와 위력 등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등 별도로 처벌하는 법률 조항이 존재하는 만큼 해당 조항 자체가 불필요하다”며 “그럼에도 노조의 쟁의활동이나 소비자 불매운동 등 다른 법조항을 적용하기 애매한 행위를 탄압하는 주요 근거가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업무방해죄는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재개발 관련 세입자대책위의 집회 등에도 적용돼왔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하며 사장실 점거농성을 벌인 노종면 YTN 노조위원장 등이 지난 9월 벌금형을 선고받은 것도 업무방해 혐의에서 유죄가 인정됐기 때문이다.
 
업무방해죄가 노동운동 탄압의 주요 도구로 활용된 지는 오래됐다. 민주노총이 펴낸 <민주노조, 투쟁과 탄압의 역사>를 보면 구속 노동자 명단이 나온다. 그 첫 인물은 방용석 전 노동부 장관이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의 선봉으로 불렸던 원풍모방 노조지부장을 지낸 방 전 장관에게 1972년 9월15일 적용된 구속 사유는 ‘업무방해’였다. 사실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노동운동가들의 구속·해고 사유 중에 업무방해죄는 그리 많지 않았다. 형법 314조(업무방해)가 노동운동과 파업을 와해시키는 수단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건 1989년 이후부터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가 펴낸 <한국노동운동탄압백서>에 따르면, 1988년 3월~1991년 7월 사이 구속 사유가 확인된 노동자 1400여 명 가운데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경우가 785명에 이른다.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은 357건이었다. 업무방해죄는 1988년 17건에 불과했지만 89년 248건, 90년 308건으로 대폭 늘었다.
 
우리나라 형법에 업무방해죄가 들어온 배경을 보면 업무방해죄가 태생적으로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것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형법은 일본 형법의 업무방해죄 규정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 법학계의 정설이다. <민주법학>(1997)에 실린 ‘파업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불가론 및 업무방해죄의 위헌성’(김순태) 논문을 보면, 사실 업무방해죄가 파업을 다스리기 위해 도입됐지만 그 본질을 흐리기 위해 노동운동이 아닌 다른 경우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업무방해’라는, 다양한 내용을 지칭하는 용어가 사용됐다고 한다. 물론, 이처럼 본래의 의도를 감추려다 보니 그 처벌 범위가 지나칠 정도로 광범위해지기도 했다.
 
합법 파업에는 업무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지만, 흔히 파업의 목적 등을 꼬투리잡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 뒤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게 요즘의 양상이다. 특히 폭력 행위 등이 수반되지 않는 단순한 노무 제공 거부 행위도 업무방해에 해당될 수 있느냐가 쟁점이다.
 
이번 철도 파업에서도 코레일과 경찰 쪽은 “철도 운행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에 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강문대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노동조합법에 폭력을 수반한 쟁의행위 등에 대한 벌칙 조항을 따로 두고 있음에도 파업에 관행적으로 형법상 업무방해까지 함께 적용하고 있다. 출근하지 않고 노무 제공을 거부한 것에 대해 집단적으로 그런 행위가 이뤄졌다는 이유로 민사 책임을 넘어 형법을 동원해 적용하는 건 업무방해죄 남용”이라며 “일본이나 유럽 등지에서 파업을 업무방해로 다스리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사실 사용자들은 노조가 쟁의행위에 돌입하면 교섭보다는 조합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일에 몰두하기 일쑤다. 이렇게 과도하게 업무방해죄에 의존하는 이유는 뭘까? 노동조합법은 “쟁의행위 기간 중에는 현행범 이외에는 노조법 위반을 이유로 구속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업무방해를 적용하면 이를 피할 수 있다. 업무방해죄는 형량(5년 이하 징역)이 노조법 위반(3년 이하 징역)보다 더 높아 조합원을 구속시키기도 쉽다. 이러다 보니 파업이 시작되면 노조 간부들이 ‘구속결단식’을 치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김기덕 변호사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의 경우 처음에는 쟁의행위를 범죄로 보고 형사처벌했으나 1870년대 이후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면책이 정착되고 쟁의행위를 범죄가 아니라 권리로 승인하는 과정을 보였다”며 “오늘날 근로 제공을 거부했다는 이유만으로 파업에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사례는 한국뿐이다”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펴낸 <노동사건에 대한 형벌적용 실태조사 보고서>(2007)에 따르면, 2002∼2006년간 노동자의 쟁의행위와 관련된 1심 노동형사사건에서 적용된 죄의 개수(한 사람에게 여러 죄목이 적용됐을 경우 각각의 죄목을 따로 계산해 합한 것)는 총 7624건인데, 이 중 업무방해죄가 2304건(30.2%)에 달했다. 반면 노조법 위반은 241건에 불과했다. 특히 노동형사사건 중 점거와 피케팅 등을 제외한 평화적인 파업·태업·준법투쟁이 57.9%에 달했는데, 이런 쟁의행위에 적용된 업무방해죄의 1.1%만이 무죄로 선고됐다. 이는 곧 위력을 동반하지 않는 단순한 노무 제공 거부 행위가 대부분 업무방해죄로 다스려지고 있음을 말한다.
 
업무방해죄는 수사기관이 인지를 하거나 고소·고발이 들어오는 경우 실제 기소까지 이어지는 비율도 다른 형법상 범죄에 비해 높은 편이다. 대검찰청이 펴낸 ‘2009 검찰연감’을 보면, 2008년에 업무방해 혐의로 접수된 건은 모두 2만5799건인데 이 가운데 기소된 비율은 48.7%(1만2576건)에 이르렀다. 이는 같은 해 특수강도(36.2%), 강도(27.5%), 강도상해(43.3%), 절도(39.9%), 업무상 횡령·배임(24.8%) 등 업무방해보다 죄질이 좋지 않다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범죄의 기소율보다 훨씬 높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권영국 변호사는 “업무방해죄는 피케팅부터 시작해 파업에 이르기까지 주로 노사관계에서의 쟁의행위를 처벌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졌고 이를 실제로 적용하기 때문에 기소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고 해석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7년 결사의 자유위원회 보고서에서부터 매년 “(한국 정부가) 어떤 폭력도 내포하지 않은 수많은 쟁의행위에 대해 업무방해를 이유로 조합원들을 체포·구속하고 있고, 업무방해죄가 파업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체계적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며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결사의 자유 원칙에 부합하도록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도재형 이화여대 교수(법학)는 “파업은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의 행사이기 때문에 쟁의행위 자체는 업무방해죄와 무관하다. 또 근로자가 계약에 따라 근로를 제공할지 여부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사법상 권리·의무 관계의 문제일 뿐이고, 근로계약에 위반해 근로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채무불이행에 해당할 뿐”이라며 “따라서 노동법적 정당성을 갖추었느냐와 상관없이 집단적 근로 제공 거부는 업무방해죄에 해당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오래전부터 양대 노총은 노동기본권 차원에서 형법상 업무방해죄 적용 문제를 의제로 설정해왔다. 그러나 형법 적용의 문제라서 노사관계 영역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못한데다, 파업이 벌어질 때마다 불법이냐 합법이냐는 논란에 갇혀 업무방해죄 문제가 논쟁의 전면에 부각되지 못했다. 도재형 교수는 “현행 형법의 업무방해죄는 사회적 약자들의 직접행동을 무력화하고, 소비자의 불매운동이나 항의 서명과 같은 합법적 소비자운동에도 적용되는 극단적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제라도 폭행이나 협박, 파괴행위를 수반한 쟁의행위만 업무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노조법에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노조 파업 업무방해죄 개선 필요", 인권위 토론회 (뉴시스, 조현아 기자, 2010-01-21 16:29)
  
김기덕 변호사는 "지난 2007년까지 업무방해죄가 적용된 쟁의행위사건은 30% 이상을 차지한다"며 "최근 비정규직 근로자의 노조 파업에도 업무방해죄 처벌 조항이 남용되는 추세"라고 밝혔다. 강성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는 노동기본권에 대한 우리정부의 과도한 처벌 문제 개선을 거듭 권고했다"며 "우리정부는 OECD 국가 중 파업에 대해 가장 까다로운 규제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업무방해죄와 관련해 노동쟁의행위에 대한 정당성 및 노조법 해석을 개선해야 한다"며 "노조법에 단서를 신설해 쟁의행위에 죄를 적용치 않는 등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선수 변호사는 "업무방해죄가 노동자의 파업에 대한 탄압의 도구로 활용된 것의 1차적인 책임은 대법원에 있다"며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면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기소치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법을 개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법원의 입장 변화를 촉구하는 활동과 구체적인 사건에서의 법률투쟁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노동쟁의 사건에 ‘업무방해죄’ 남발 (경향, 이로사 기자, 2010-01-22 00:37:39)
ㆍ인권위 토론회… 죄목 중 30% 이상 차지
ㆍ“형사처벌 대상서 제외, 기본권 보장돼야”
 
검찰과 경찰이 노동쟁의 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을 남발하고 있으며, 쟁의행위는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업무방해죄로 형사처벌하는 데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대표적인 분쟁 현장으로는 철도파업이 꼽혔다. 21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인권위 주최로 ‘업무방해죄와 노동인권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발제를 맡은 김기덕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헌법에 보장된 기본적 노동쟁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이 광범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형법상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단순한 파업 등을 범죄행위로 처벌하는 법리가 판례로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철도파업은 평화적으로 단순히 노무 제공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며 “설사 목적과 절차에서 쟁의행위의 정당성이 없다고 해도 폭력·파괴가 수반되지 않는 파업을 업무방해죄 등으로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선수 변호사도 “철도파업 사건을 대법원 판례 변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철도노조 파업의 검찰 공소사실을 보면 수단과 방법상의 문제는 없고, 준법 투쟁·집단적 노무제공 거부 등으로 영업 손실을 가져온 ‘업무방해’로 한정돼 있다”며 “노조법상 절차 위반은 아예 기소조차 않고 업무방해죄만으로 기소해 노조간부 처벌을 무겁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무방해죄가 노동자 파업에 대한 탄압의 도구로 활용된 1차적 책임은 대법원에 있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면 검찰이 업무방해죄로 기소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대법원의 입장 변화를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폐지와 노조법상 형사처벌 규정의 삭제 등을 촉구했다. 김기덕 변호사는 “쟁의행위에 대해 형사책임을 묻는 문제는 영국·프랑스·독일 등 외국에서는 이미 100여년 전에 논의된 것”이라며 “쟁의행위 자체를 형사처벌하는 예는 없으며 과정에서의 폭력행위 등은 행위자에 대해 형법상 범죄로 처벌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또 “헌법상 단체행동권 보장은 쟁의행위에 대한 형사 면책을 선언한 것”이라며 “따라서 쟁의행위를 더 이상 형법상 범죄구성요건으로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조국 서울대 교수는 “1998년 헌법재판소는 업무방해죄의 합헌 결정을 내렸으며 그후 10여년이 지났으니 한 번 더 판단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며 “헌법에 보장된 (노동)기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법학의 임무이며, 쟁의행위의 형사처벌은 하위법인 형법이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8 03:40 2010/01/28 03:40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김수행 교수 인터뷰

View Comments

김수행 교수의 인터뷰를 모아보았다. 물론 발췌한 기사들.
시간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다보니...

 
------------------------------
케인스의 ‘국가만능주의’는 위기 해결 못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3호] 2009년 10월 06일 (화) 18:08:46 한광덕|국내 편집장)
[한국판 창간 1주년 특집] 국가의 의미를 묻다-김수행 인터뷰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는 뭐라고 보나.
=주류 경제학은 개인의 본성과 행태를 연구해 그 개인의 합이 사회라고 본다. 반면 마르크스경제학은 특정 사회가 이미 주어져 있고 그 사회가 개인의 행태를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개인의 합이 사회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컨대 개인 모두가 저축하면 사회 전체의 저축도 늘어나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모두가 저축을 한다면 누가 물건을 살 건가.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는 소득이 없어 저축할 수 없으므로 사회 전체의 저축은 0이 된다. 케인스는 이걸 ‘구성의 모순’이라고 했다. 또한 개인의 본성과 행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인류 사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주의 사회라고 보는데 이것은 현실 역사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엔 경제사가 없다.
 
-주류 경제학에 공황 이론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맞다. 개인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사회도 합리적 행태를 보일 것이므로 공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회의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가 사라진다.
 
-<자본론>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인데 마르크스경제학을 왜 ‘정치경제학’이라 부르는지 궁금하다.
=마르크스 이전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분석틀은 사회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마르크스가 비판해서 완성한 게 <자본론>이다. 이후 1870년대에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하면서 ‘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때부터 사회는 사상되고 에코노미쿠스(경제인) 중심의 경제학이 나온 것이다. 한국에선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잡혀갈 상황이라 공안 당국이 헷갈리도록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초기의 고전학파(정치경제학)를 비판했다는 차원에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지만 현재 주류 경제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론 ‘정치경제학’이란 용어가 적합하고, 한국에선 운동권이 은어로 사용하다가 굳어졌다고 이해하면 되나.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를 마르크스경제학의 원조로 본 것인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는데.
=애덤 스미스는 당시 중상주의자들이 금을 국부로 보는 논리를 반박했다. 금이 많이 있는 나라는 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죄다 물건을 사오는 통에 그 나라의 산업은 죽어버리고 국민은 가난해졌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를 노동생산물이라고 봤고 그것을 만드는 노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동가치설을 마르크스가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국부론>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가한다’란 대목이 나온다. 이것을 후대에서 ‘시장’이라고 아전인수했을 뿐이다.
 
-지난해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경제위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각국 정부는 ‘출구 전략’을 앞다퉈 논의했다. 마르크시스트들이 말한 대공황은 대체 어찌된 건가.
=1850년대 금본위제도 당시엔 투기적 붐이 일어났다가 기업이 대출을 못 갚아 망하고 이어 은행도 망했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economic crisis’라고 불렀고 ‘공황’이라 번역했다. 그런데 불태환지폐와 관리통화 제도로 바뀐 1945년부터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기가 공황으로 빠지지 않고 회복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땐 돈을 뿌렸어도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의 ‘economic crisis’ 국면을 회복이냐 공황이냐의 경제위기 국면과 공황 국면으로 나눈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2007년초부터 2008년 3월까지는 경제위기 국면이었고 베어스턴스가 파산한 2008년 3월부터는 공황 국면에 빠졌다고 본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가 한 일이라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준 것밖에 없는데 V자니 U자니 W자니 하며 회복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문제의 원인인 제도와 정책을 고치지 않고는 경제 회복이 불가능하다. 실물을 보라. 나아진 게 전혀 없다. 경기회복의 지표는 고용이다. 생산활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회복이 안 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제의 금융화로 금융 부문이 비대해졌다. 그러나 금융은 새로운 부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주주자본주의는 단기 이윤만을 챙길 뿐이고 ‘카지노 자본주의’는 소득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 이전시킨다. 금융시장이 반등했다고 하는데 투기의 결과일 뿐이다. 골드만삭스가 이익이 많이 난 건 경쟁업체의 파산으로 독점력이 커진 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생긴 부실 자산을 여전히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진보운동가 크리스 하먼도 지금의 위기를 금융이 아닌 실물경제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주기적으로 공황이 도래한다면 자본도 학습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기 보정을 꾀할 수 있지 않나. 자본의 역사적 생명력과 확장성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붕괴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제2인터내셔널’은 이윤율이 제로까지 떨어져 자본가들이 투자를 못해 경제적 파탄이 올 것이라는 경제주의에 빠져 실패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강력해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주체적 실천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단결을 소홀히 하면서 임금 인상 투쟁에 함몰된 민주노총의 태도가 아쉽다.
 
-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말했는데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철칙이 여전히 ‘암송’되고 있는 느낌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이 좀더 실증적으로 풍부해졌으면 한다.
=<자본론>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다시 대학노트에 공식(S/C+V)을 적어가면서) 신기술과 신기계를 도입해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이뤄지면 이윤율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신기술이 필요투자비용을 절감하거나 잉여가치율을 올리면 이윤율은 증가하는 경향도 있다. <자본론> 3권의 13장과 14장에 각각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면 15장에서 어느 요인이 더 크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어느 경향이 더 크다고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이윤율이 실제로 저하하리라고 예측한 것이 아니라 신기술을 도입하면서 진행되는 자본 축적 과정에서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신기술을 도입한 기업이 초과이윤을 얻고 다른 경쟁자들이 망한다면 공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공황론을 두고 마르크시스트들 사이에서도 이윤율 저하론뿐만 아니라 과잉생산론, 과소소비론 등으로 엇갈리고 있다.
=마르크스는 모두를 얘기했다. 공황의 폭발에서 결정적인 것은 투기다. 투기로 인한 생산 저하, 이게 아니면 공황을 설명할 수 없다. 1974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공황을 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만 나쁘다고 할 게 아니다. 1972년 미국의 닉슨이 대통령 재선을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을 쓰면서 투기가 일어난다. 미국이 엔과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요구하자 일본은 넘치는 외화로 원자재를 싹쓸이한다. 캐나다의 삼림까지 매점매석하는 바람에 당시 영국에 있던 나는 아이 기저귀를 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일어나 유가가 3달러에서 12달러로 갑자기 인상되자 석유를 원료로 한 제품들이 팔리지 않게 됐다. 이때 사재기로 투기한 사람은 모두 망했다. 이것이 1974년의 세계 대공황이다.
 
-마르크시스트들은 국가 개입 강화라는 케인스주의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경제위기로 무덤에서 부활한 두 사람 중 마르크스의 공황론은 잦아들고 케인스를 찾는 ‘유효수요’는 급속도로 창출되고 있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제자들 중에 케인시언으로 전향한 사람도 있다.
=케인스는 자유방임의 종언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케인스 사상의 뿌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조바심과 애국심에 있다. 그가 국가의 개입을 주장한 1920년대 영국 자본주의는 1930년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제의 중심이 이미 미국으로 넘어가 산업 경쟁력이 뒤지고 실업률이 치솟던 영국은 미국의 원조로 연명했다. 소련을 방문한 케인스는 단결된 소비에트 사회를 보고 경악한다. 물욕에 빠져 있는 자본주의의 실업과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주의에 패배할 것이라고 우려해 시장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개입해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일반이론’ 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정책 제안은 많았지만 대부분 채택되지 못했다. 투자 촉진을 위해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안락사는 불가능하다. 이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대량으로 화폐를 발행하면 인플레로 가는 상황이었다. 영국의 재무부 장관 고문 때도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정작 돈을 구해올 방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기껏 도로·철도·항만을 건설하는 데 그쳤다. 되레 미국의 케인시언들이 케인스에게서 군비지출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실천에 옮겼다.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아버지와 케임브리지 시장인 어머니 사이에서 케인스는 유복하게 자랐다. 그런 그에게 자본주의는 결코 무너져선 안 되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부자여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 철학은 ‘굿 라이프’였다. 버나드 쇼가 <자본론>을 추천하자 ‘뭐 이렇게 재미없는 책이 있나. 비과학적이다’라며 내팽개쳤다고 한다.
 
-케인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럴까봐 케인스가 게이였다는 말은 차마 안 했는데. (웃음) 물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한다. 어쨌든 남색에 빠진 탓에 42살에야 결혼했다. 상대는 영국에서 공연한 러시아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였다. 그가 소련을 방문한 것도 처가가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 있어서다. 그는 자본주의가 망할까 겁나고, 영국이 망할까 두려워 확장적인 재정금융정책을 추천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끝낸 건 뉴딜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었고, 따라서 일등공신은 케인스나 루스벨트가 아닌 히틀러라는 희화적 얘기가 있다.
=공황의 자본주의적 극복책으로 루스벨트의 뉴딜과 히틀러의 파시즘이 등장했다. 1차 대전에서 패해 배상금 부담을 지고 있던 독일 국민은 연합군에 대해 악감정을 갖게 됐다. 눈치 빠른 케인스는 베르사유에 가서 독일을 너무 짜내면 소련하고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가 배상금을 삭감해주지 않자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입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정부가 군수산업을 일으키고 생산시설을 완전 가동하고 실업자를 군인으로 동원함으로써 실제로 1939년부터 경기가 회복됐다. 완전고용을 이뤄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렸던 1950~70년 유럽의 복지국가 혹은 혼합경제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전시통제 경제의 경험을 활용한 것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말해주듯 달러가치가 다시 떨어지고 새 기축통화 논의가 끊이지 않는데 미국이 언제쯤 ‘영국’이 될 것인가.
=1960년대 이후 서독과 일본의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은 무역적자를 내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쟁으로 돈이 풀려 금값은 올라가고 달러가치가 하락하자 1960년대 말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미국에 달러를 주고 받아온 금을 금 시장에 팔아 차익을 얻는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금을 내놓으라고 우르르 달려오자 1971년 닉슨이 달러를 금으로 태환하는 것을 중단하면서 달러가 종이돈이 됐다. 지금 종이 달러 한 장 찍어내는 비용이 35센트인데 여기에 100달러라고 써서 윤전기를 돌리면 미국은 99달러 이상을 공짜로 얻는다. 달러가 세계화폐이기 때문에 얻는 시뇨리지(화폐발행수익) 효과다. 금융기관을 살리려 제로금리를 쓰는 바람에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된 미국의 주식과 국채를 아무도 가지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1929년처럼 미국 증시가 대폭락할 수 있다. 그러면 전세계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해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니들 까불면 다 죽는다’며 군사력으로 전세계에 시위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강요, 이게 ‘조공’을 받아 살아가는 메커니즘 아닌가. 경쟁력 있는 산업도 없고 실질임금이 하락해도 미국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 덕분이다. 중국처럼 싼 소비재를 만들 수 없고 자동차도 망했으니 수입 초과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적자 탈출을 위한 뾰족수가 없는 미국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세계가 우습게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마 전쟁의 대상이 북한은 아닐 것으로 보는데… 북-미 직접 대화도 추진되고 그래도 오바마이니까.
=건강보험 하나 못 밀어붙이는 오바마다. 부자 감세도 못 건드리고 있다. 미국은 시민이나 노동자 세력이 약한데다 애국주의가 강해 전쟁이 나면 결집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 대립 정책을 쓰고 있다. 북-미 대화에도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데 제발 좀 가만히 있었으면 한다.
 
-미국의 ‘대체재’라는 중국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2조 달러의 미국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이 자국의 가장 큰 시장이란 점이다. 이해가 상충해 미 국채를 투매하면 제2의 금융공황이 온다. 그래서 판을 깨진 못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다. 중국은 분명한 자본주의 체제이면서 공산당 독재를 하고 있어 박정희 개발독재와 비슷하다. 경제는 불안정한 상태로, 연안의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고 있지만 이미 농촌은 돌아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노동자의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민주화 요구가 나올 것이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외국 투자는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걸로 알고 있다.
=대중경제론을 주창한 DJ에게 기대가 컸는데 정작 집권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많이 썼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과정에서 헐값에 발행한 주식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벤처 육성도 ‘묻지마 투자’로 변질돼 서민을 울렸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잘했다. 아쉬운 건 이런 복지정책을 확대하려면 세출 면에서 군사비와 정보비를 많이 줄여야 하는데 남북 화해의 일념을 가진 DJ답게 군비 축소로 과감하게 나갔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 근무 연한을 줄이긴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는 엉터리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정치적 목적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농어촌이 4억 달러 손해를 보더라도 자동차 수출로 10억 달러 이익을 보니 국익은 6억 달러 늘어난다는 방식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그 6억 달러가 정부 돈인가? 재벌 돈이지. 따라서 정부가 농어민의 손해를 보전해줄 수 없다. 이런 건 국익이 아니다. 권위주의 해체와 민주화 측면에선 훌륭했다.
 
-당시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쳤고 국가 부도 위기에서 불가피했다는 항변도 있다.
=1980년대 들어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은 노동자 세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경제 회복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긴축으로 돌아섰다. 정책의 목표가 완전고용에서 인플레 억제로 바뀐 것이다. 실업자가 많이 생기니 노동조합의 힘을 꺾기가 쉬워졌다. 자본가 독재의 강화다. 기업은 이윤을 못 보는 산업보다 금융 활동을 하려 한다. GM과 GE도 생산보다 해외 주식시장 투자에 주력했다. 감세로 사회보장제도가 줄어들어 국내 시장이 위축된 선진국 자본은 후진국에 개방을 요구한다. 자본의 세계화로 후진국의 유치산업은 망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 시장은 IMF의 긴축정책으로 외국 자본에 다 먹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읽은 대통령이라면 외세에 쉽사리 굽혀선 곤란하다.
 
-외국에선 지금 한국이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다.
=외국 자본은 국내 시장에서 이익만 보면 그만이다. 그외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우리 국민은 계급의식이 약하다. 가난한 사람도 종부세 폐지에 찬성한다. 반면 아파트나 주식 가격이 오르는 데는 민감하다. 이명박 정부는 건설족과 자산가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출에 의존해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없는데도 양극화를 심화해 국내 시장도 커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칫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시 반등은 환차익을 노린 투기적 해외자본이 들어온 탓이다. 기업의 수익성과 괴리된 주가의 거품은 터질 수밖에 없다. 외국 투기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의 악순환이 재현된다. 가계 부채로 쌓아올린 국내 부동산 투기는 더 큰 거품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까지 덮치면 서민과 노동자는 파멸이다.
 
-국민소득 몇만 달러니 경제성장률 몇 %니 하는 ‘747’ 수치 놀음이 국민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편의상 2천만 원이라고 하자. 4인 가족이면 8천만 원이다. 이 연간 8천만 원은 세금을 낸 뒤의 숫자다. 내가 지난해 서울대 교수 정년 퇴임할 때도 네트로 8천만 원이 안 됐다. 우리나라 가구 중 연간 8천만 원을 받는 비중이 몇 %나 되겠나.
 
-가구 기준은 아니지만 2007년 국세통계를 보면, 소득이 8천만 원을 넘는 노동자는 전체 납세 노동자의 2.2%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계정이란 게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쨌든 4인 가족에게 8천만 원을 줄 수 있다는 건데 독일의 기본소득제 개념으로 절반 정도를 현금으로 주면 어떻겠나. 얼마나 힘들면 맨홀 뚜껑을 훔쳐 팔아먹겠는가. 못살기 때문에 범죄나 자살이 느는 것인데 법과 질서 유지에 돈을 많이 쓰고 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촛불’을 진압하느라 시국 치안 비용이 늘고 있지 않은가. 빈곤을 없애는 데 돈을 쓰는 게 훨씬 낫다. 영국처럼 공공 장기 임대주택의 월세를 소득에 비례해 매기고, 실업을 당하면 공짜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친서민 행보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정운찬 교수와 사이는 어땠나.
=정 교수는 경제학과 5년 후배다. 경제학 교수 선발 과정에서 정 교수는 다른 교수들을 설득하며 내가 임용되도록 도와줬다. (원로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거론한 논문으로 인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 사건 때는 내가 복직위원장을 맡았는데 당시 정운찬 교수는 총장 후보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때 복직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총장이 되더니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 물론 총장 주변을 에워싼 보직 교수들이 보수적인 탓도 있었다. 그때 나는 김민수 교수가 총장실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것을 도왔다. 대법 판결까지 간 지난한 투쟁이었지만 일부 보직교수들의 반대에도 정 총장이 복직을 최종 수용해줄 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정운찬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총리 지명을 수락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케인스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한 정 교수는 평소 성장과 경제적 자유를 우선하는 ‘공급경제학’을 비판해왔고 감세를 ‘부자의 경제학’이라고 단정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국가 물신주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총리로 들어갈 수 있다. 케인시언은 서민 정책을 정부가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에서 생각한다. 못사는 사회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라는 개념이 없다. 정 교수는 좌파가 아니다.
 
-정 교수는 ‘경제학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선을 그어왔는데 총리 내정 발표 직후엔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 철학에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수행 교수는 어느 글에서 사상적 전향을 하는 뉴라이트는 분명한 근거를 대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가 총리가 된 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아니요’라고 할지는 솔직히 확신을 못하겠다. 다만 케인스학파도 주류 경제학이므로 주류 사회의 총리가 되는 것이 이상할 게 없지 않나. 내가 청문회 받는 것 같다. (웃음) 이쯤 하자.
 
-안산 상록을 10월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인 임종인 후보를 야권 단일 후보로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했다. 그동안 시국선언은 많이 했지만 현실 제도 정치권에 대한 개입은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전교조 안산지회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임종인씨가 가끔 들렀다.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선거가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여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처럼 입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집권 세력을 잘 뽑아 좋은 정책을 활용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정말 투표 좀 잘해보자.
 
-진보 진영의 선거 승리만큼 마르크스경제학이 대중성을 얻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재벌 연구소에 맞설 든든한 진보 경제연구소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픈 얘기다. 제자들과 함께 ‘김수행 콜로키움’을 만들어 성공회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발표 모임을 열고 있다. 연구단체를 운영하는 게 사실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현실경제를 분석하고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이야기>란 책도 쓰셨는데 한국 사회의 대안은 뭐라고 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인가. 계획적 자본주의, 참여계획경제 같은 용어도 많이 나오던데.
=특정한 모델은 없다. 모든 사람이 잘살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모델이 나올 것이다. 각 나라들의 모델은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
2005/05/19 13:16
아래 글은 홍세화님과 김수행 교수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논하고 있는 글이다. 이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고,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화가 논의되는데, '세계화’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이고, 이는 제국주의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한달 전에 한겨레신문에 나온 것이지만, 그냥 묵혀두긴 뭐해서 퍼다나른다. 한겨레도 저작권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전문을 퍼오는 것이 조금 찜찜하지만, 그래도 밑줄 그으면서 읽어야 맛이지, 링크만 해놓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여기에 좀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만, 이는 생략... 
  
‘신자유주의’ 탈출구 없는가 (한겨레, 정리 김성재 기자, 편집 2005.04.18(월) 17:11)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 김수행 교수
 
신자유주의의 벽을 뚫을 탈출구는 없는가? 홍세화 기획위원이 지난 11일 목련꽃이 피기 시작한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수행(62)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그 가능성을 찾아봤다. 홍 기획위원은 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비판해 왔고, 김 교수는 그동안 강단과 미디어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예고해왔다. 진보적 운동가와 백발의 노교수의 이날 대담은 ‘마주보기’라기 보다는 어쩌면 ‘함께보기’에 더 가까웠다.
 
홍세화 기획위원=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인간 본래의 탐욕을 공공성이나 양심 같은 것들로서 적절히 제어해 왔지요. 그런데 요즘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는 그런 제어장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교수님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것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수행 교수=신자유주의라는 게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에요. 20세기 들어 두번째 대불황을 겪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서구 자본주의에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됐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가에게 이익을 많이 주고, 그 이익으로 재투자를 하게 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죠.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복지사회다, 사회보장제도다 하는게 사회적 합의였고, 완전고용이나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게 정부의 몫이자 목표였지만, 그 후로는 불황극복을 위해 이런 합의와 구실이 축소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일어났습니다. 기업가·자본가에게 이익을 더 주려면 세금을 낮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제도나 완전고용, 노조 권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다른 나라 시장을 뺏으러 나가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면 남들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첨병이 바로 국제통화기금이니 세계무역기구니 하는 것들입니다. 세계 각 나라가 투자한 주식회사인 국제통화기금에서는 미국이 거부권을 쥐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꼼짝 못하게 되어있어요. 요즘은 ‘세계화’보다는 ‘제국주의화’라는 말을 경제학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작은정부론’을 들고 나옵니다. 다국적기업이 제국주의적 힘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면, ‘작은정부론’이란 게 결국 민족국가의 틀을 약화시키고 제국의 힘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국적기업의 힘이 강해지면 국민국가의 힘을 능가해서, 정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나 영국같은 국민국가가 다국적기업을 뒤에서 엄청나게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국가가 사라진다, 약화된다’하는 얘기는 후진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작은정부’라고 해도 우리와 외국(선진국) 사이에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금도 안 거두고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 실체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앞서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도 나름대로의 소임을 갖고 있었죠. 김영삼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든가,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주석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들입니다. 노 정권은 사회의 기본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를 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이걸 해내려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 조직의 힘을 빌려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노 정권은 생각보다 노동자계급을 적대시하는 것같습니다.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고나서 무슨 사회복지가 있겠습니까? 노 정권의 복지정책의 한계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죠. 홍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기업 쪽에 기울어져 있던 노사관계의 균형을 임기 마칠 때까지는 잡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도·물류 파업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변하더군요. 노 정권의 권력 자체가 민중적이지 못했다는 점, 노 정권을 떠받치는 지지세력의 계급적 한계 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수구 언론과 미국의 입김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동안 역대 정권이 내세운 복지정책의 기본은 ‘경제성장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란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죠. 복지는 가족이 담당해라… 이런 식이었는데, 복지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담당해야하는 것입니다. 노 정권의 복지정책도 이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나라가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도 늘리고 그렇게 해서 고용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수출 늘리고 경쟁력 높이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노동자 임금 깎고 사회보장제도 줄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국내 시장을 엄청나게 줄이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죠. 모든 나라에서 국내 수요가 줄고 국내 시장이 좁아지면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신자유주의로 성공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노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고소득층한테서 세금을 많이 거두고 군사비는 줄여서 못사는 사람에게 혜택을 넓히자,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키우는 것이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토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 정권이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라든지, 공공성과 사회정의의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는데, 이걸 저버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거죠.
=노 정권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신자유주의 사상을 굉장히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사회보장이란 게 없었죠.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을 보면, 우리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조건으로 금융시장 개방을 급속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런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핵심 정책 운영자들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거든요. 그러니 참여정부 역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방식 아닙니까? 교수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인데, 노 정권을 ‘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쏠려있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노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당혹스럽더군요. 노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저는, 분단 이후에 ‘반공주의 우파’가 집권했다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시장주의 우파’가 집권한 것이라고 봅니다. 반공주의 우파 집권기에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인식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죠. 그런데 시장주의 우파정부 아래서는 노동운동이 오히려 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 분신이라니…”라고 말하더군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우리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화 운동 세력이 노동자 대투쟁에 엄청나게 반대를 한 거예요. 그들의 반노동자 정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것이 결국엔 성장중심을 말하는 것이죠. 국민들이 이런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선순환’이니 ‘소득 2만불’이니 하는 데에 현혹되고 있는 거죠. 실제로는 삶이 아주 팍팍해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자꾸 커지고 있거든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인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들이 자아실현 같은 데에는 관심도 못 가지고, 심지어 젊은 대학생들도 취업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결국 경제동물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퍼지고, 계층 상승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고 사회는 더욱 험악해지는 겁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좀 비관적인 편이예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말할 때 자꾸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분배에 치중하다보면 성장을 못한다,’‘빵을 우선 키워놓고 난 뒤에 갈라먹어야 한다’라고요. 이런 얘기는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그걸 갈라줍니까? 아무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호만 나오는 거죠. 사실, 지금 같은 생산 수준에서 분배를 잘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소득이 1만달러라고 하면, 한달에 한사람의 소득이 대략 100만원이란 얘기고, 한가족이 4명이라고 할 때 4백만원이 되죠. 이렇게 계산하면 모두 먹고살 만한 소득이잖아요. 문제는 부가 집중되어있다는 겁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 보세요,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자살하고 노인들은 외롭고…. 은행에 앉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봐도, 일은 정규직보다 더 많이 하면서 봉급은 반인데다 사회보험 혜택도 못받잖아요.
 
=일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 10%는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권리 옹호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들은 나머지 90%를 위해 뭔가 해낼 방법이 없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이 자기 봉급 깎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지난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 논란 때 민주노총 사람에게 “자꾸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어떻게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연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조직률 10%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이 대기업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문제에서는 힘이 안됩니다. 또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들지 않겠어요?
  
=민주노총으로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거론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더군요.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잘 안 이뤄지고, 현재 법체계에서도 어렵고… 그래서 가능한 어떤 틀이라도 얻어내려고 한 것이 노사정위 복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서는 노조가 힘이 셀 때에만 무언가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노동정책을 펼치면서 노조하고 상의하는 것 봤습니까? 그건 노조가 힘이 약하다는 뜻이예요. 힘이 약할 땐 타협으로는 별 소득이 없어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상층부가 이 문제를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 분배냐 성장이냐하는 틀거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입니다. 이 부가가치를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는데, 임금도 분배의 문제이고 이윤도 마찬가지예요. 이윤 중에서 사내유보와 배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배입니다. 그런데 분배를 얘기할 때 항상 임금만 가지고 말합니다. 임금이 너무 많으니 깎자고요.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은 노동생산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고 있습니다.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를 좀더 합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당을 줄여서 사내유보로 돌리고 재투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임금을 말할 때, 기업이 직접 노동자에게 주는 부분을 ‘직접적 임금’이라고 하고, 사회보장을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간접적 임금’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노동자들이 병원비·교육비·연금 등 얼마나 많은 간접적 임금을 받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간접적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적 임금으로 커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이 높다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세금 잘 내서 사회복지를 늘리면 직접적 임금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죠.
 
=교수님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변혁을 낙관적으로 보시는군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낙관하십니까?
=신자유주의로 인해 유럽에서는 실업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사회복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졌어요. 5월에 있을 영국 총선에서는 아마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사회보장제도를 더 축소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거예요. 외국도 이런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쪽에서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진국으로 신자유주의 해체가 넘어오겠죠. 그래서 우리가 자꾸 현재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잡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후진국에서는 선진국보다 더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자는 많고, 외국 자본의 횡포는 심해서,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요. 결국 세계적인 민중연대가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후진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면, 신자유주의는 수년내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봐요. 신자유주의를 이끄는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죠. 그래서 반전운동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자본 쪽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예요. 자본 이동을 너무 자유롭게 해서 금융공황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규제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쪽이 힘을 얻을 것이고요. 또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요구할 거예요.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그 안에서 수익성 위주로만 가는 방식에 규제를 가하게 될 것이고, 생태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결정에 더 많은 사람이 주체로 참여하는 경제형태로 갈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되살아나면서 좀더 평등하고, 좀더 많이 참여하고, 계획성이 더 많이 도입되는 자본주의입니다. 복지국가의 개념에서, 기본적으로는 자본가가 주도권을 갖겠지만,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입니다. 
 
-------------------------------
김수행 교수가 문화사회연구소에서 개최하는 문화사회아카데미 ‘한국의 맑스주의 지형연구´ 강좌에서 현 노무현 정부는 우파라고 규정하였다. 당연한 말을 반복한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부는 우파” (서울신문, 박홍환기자, 2007-01-10  29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서울대 교수
 
9일 미리 배포한 ‘한국사회와 자본의 세계화´라는 주제의 강의자료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보수대연합 등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제압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모토로 한 정책 정비 ▲비정규직 관련법 제정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운동의 무력화 ▲여러 국가와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을 꼽았다. 그는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자를 ‘임금노예´로 만들어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면서 “노동자들이 건전한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고용과 임금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럽의 선진국들은 1945년에 이미 복지국가를 건설했는데 한국은 지금도 자살, 범죄, 인권유린이 판치는 야만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내수기반 확충→안정적 경제성장→인권유린과 증오의 해소→사회적 타협의 확대´라는 유럽 선진국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제시했다. 

 

-------------------------------
2008년 2월 정년퇴임하는 김수행 교수 인터뷰 2007/09/13 16:17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김수행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모았다. 학부 때 김수행 교수의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학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김수행 교수의 강의가 김진균 교수의 강의 못지 않게 약간은 지루한 내용이었기에 학습유발동기가 약했다고나 할까. 정운영 교수의 [가치론] 수업은 나름 학점이 잘 나왔으니 강의방식의 차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내년에 김수행 교수 후임으로 훌륭한 맑스경제학자가 임용되었으면 좋겠고, 김수행 교수가 참여하는 사회과학대학원도 잘 되었으면 한다. 시간이 나면 나도 거기서 강의를 들어볼까나.
 
  
‘마르크스 경제학’ 강단서 밀려난다 (한겨레, 강성만 기자, 2007-09-04 오전 02:31:27)
서울대 김수행 교수 후임채용때 전공 특정 않기로
전공교수 5개 대학으로 줄듯…비주류 경제학 소외

  
김 교수는 현재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연구자 9명을 지도하고 있다. 또 학부에서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 학부에는 ‘정치경제학 입문’과 ‘마르크스 경제학’ 등 모두 3개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선택 강의가 있는 데 수강생은 합해서 모두 200여명”이라면서 “다른 주류 경제학 강의에 비해 학생수도 많고 박사과정 연구자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두지 않으려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들은 1980년 초·중반 활발하게 대학 강단에 진출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단 2명만이 정규직 교수로 신규 채용되는 등 이 분야 학맥이 대학 강단에서 끊기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 전공자들의 ‘전향’도 겹치면서 현재 서울대와 연세대, 전남대, 경상대 등 6개 대학만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채용하고 있다고 경상대 정성진 교수는 밝혔다. 정 교수는 “대학 학부에서 자본주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류와 비주류 등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는 데 우리의 경우 ‘학문적 동종교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생 마르크스 연구하고 가르쳐… 자본론은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 (서울신문, 이문영기자, 2007-09-11  24면) 

1982년, ‘불온사상’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김 교수를 받아들인 첫번째 학교는 당시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한신대학교였다. 김 교수는 그런 한신대의 민주화를 주장하다 고 정운영 교수와 동반 사직했고,89년 2월 서울대에 자리를 얻었다. 그의 서울대 임용은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를 원하는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수업거부 및 타교 학생들의 연대시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크게 확장하고, 각 대학이 진보적 교수들을 대거 영입해 교과과정을 대폭 개정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나아가 ‘종언’을 이야기하는 시대.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였던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평생 마르크스를 읽고,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는 “90년대 이후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급격한 쇠퇴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쇠퇴가 아니라, 학문적 유행에 민감하게 처신하며 마르크스주의를 폐기처분한 지식인들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변종 마르크스주의’인 스탈린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한국 사회에서 ‘스탈린주의 몰락’을 ‘마르크스주의 몰락’으로 등치시킨 지식인들이 철저한 반성적 평가 없이 너무 빨리 사상적 포기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과학계는 하나의 화두에 천착해 평생을 연구하는 풍토가 취약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심각한 과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학문후속세대의 재생산 문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비관하지 않았다.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급증 등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현실적 문제가 대안적 사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고, 대안적 사상의 중심엔 늘 마르크스주의가 있어 왔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면서 “현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제3회 ‘맑스 코뮤날레’를 개최하며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가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제대로된 연구와 공부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회의를 갖기 전에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면서 “그 후에야 어떻게 실천할지,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 ‘마르크스주의 전파자’로서 역할을 설정하고, 평생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지적이다. 김 교수가 한국 학계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역시 ‘자본론’ 완역을 꼽을 수 있다. 엄혹했던 시절, 일본에서 귀국하는 친구 이삿짐 속에 북한판·일본판본까지 숨겨와 번역한 ‘자본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목말랐던 국내 학계의 지적욕구를 해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자본론’을 “세상을 올바로 보는 눈이자,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파악하는 유익한 도구”라고 믿는다. 다만 “‘자본론’의 현재화를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독점과 금융공황, 대외관계 등을 오늘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행, "맑스주의 전파 계속 힘쓸 것" (참세상, 유영주 기자, 2007년09월06일 13시14분)
사회과학대학원(준) 2학기 개강, 자본론 강의 
 
김수행 교수는 지금 학부에서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대학원에서는 고급마르크스경제학연구 강의를 하고 있다. 학부는 약 200명 정도 되지만 박사과정과 석사과정은 각각 9명, 3명으로 마르크스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숫자도 열 손 안에 꼽히는 실정이다. 연구자가 재생산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간명한 답이다. "취직을 못하니까... 지금 공부하는 친구들도 힘들 거다. 노동운동을 하든가 민주노동당 같은 데로 갈 수는 있지만.. 국책연구소로 가기도 하고......"  
 
사회과학대학원 활동은 퇴임 후에도 마르크스경제학을 전파하기 위한 연구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난 6월 맑스코뮤날레 상임대표를 김세균 교수에게 맡긴만큼 사회과학대학원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회과학대학원 준비모임은 이야기 나온 건 벌써 5년이 되었다. 연구자들이 수차례 만나 사회과학대학원 설립 문제를 의논하기도 했지만 당장 설립이 쉽지는 않다. 설립은 교육부 인가 문제인데 인가 조건을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다."
 
설립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설립 자체보다 교육운동, 학술운동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수행 교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교육운동의 차원에서 맑스주의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거기서 학생들간의 유대관계를 만들고 세력화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사회과학대학원은 지난 학기 5일간 7시30분부터 10까지 문학과경제, 노동과정론, 역사와혁명, 정치경제학, 욕망과혁명 등 다섯 과목 강의를 개설 운영했다. 8학기 과정을 두고 오는 9월 10일부터는 1-2학기를 시작한다. 김수행 교수가 맡은 과목은 '자본론', 모든 학생이 들을 수 있도록 필수 과목으로 선정했다. 1-1학기에는 학생 40명이 수강했다. 40명 중에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몇 명 안 되고 오히려 일반인들이 많았다. "노조 조합원, 교사, 일반 직장인도 있고... 대학원이므로 '석사' 과정이라 봐야 하는데 사회과학대학원이 그걸 해주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쨌든 프리랜서가 많이 온다. 여러 분야에서 맑스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들이 학생회 조직을 잘 만들고 있다. 1학기 학생들과 강화도로 엠티를 갔는데 강의에 대한 평은 좋아보였다. 다만 교육 행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힘이 부친다."   
  
마르크스경제학과 타 분야 학문과 운동에 대한 연계에 대한 관심도 비쳤다. "내가 볼 때 인터넷도 발달하고 이런 과정에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조류는 많이 발달하고 있다. 여성운동, 문학, 환경도 그렇고 맑스에 의지한다고나 할까...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보는데 하나로 뭉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과 경제가 연결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그런 게 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각 분야가 연결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더 많아지지 않겠나." 
 
재정 기반은 녹록치 않다. 현재로서는 학생의 등록금이 주된 수입원이다. 김수행 교수는 "강사료, 사무실 운영하고 나면 빠듯하다. 여유가 생기면 적립도 하고 계속 유지를 해나가야겠지... 무엇보다도 운동 차원에서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회과학대학원이라는 교육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한테 매달 얼마씩이라도 회비를 받아 일정한 수입을 확보할 생각이다. 운영은 강사모임에서 하고 학생은 학생모임을 한다. 강의 과목과 강사 운영 문제와 등록금 문제 등을 교사학생 협의체에서 한다. 등록비는 3만 원이고, 한 과목 수강료는 15만 원, 두 과목은 30만 원, 3과목 이상은 40만 원으로 되어있다.
  
곧 강단은 떠나지만 맑스주의를 전파하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퇴임하는 김수행 교수에게 있어 사회과학대학원은 마르크스주의 전파의 연장에 있는 연속된 공간인 셈이다. "살아온 길을 보면 운이 대통하다 싶다. 마르크스 공부하고 한국 들어왔지만 안 잡혀가고 지내기도 했고, 89년에 서울대 들어오는 것도 주류경제학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데 학생들이 데모해서 받아주었고, 건강하니까 자본론 번역도 하고 책도 많이 쓸 수 있었다. 다만 밖으로 운동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좌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정치세력화도 잘 되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미안하고 능력부족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럼요, 자본주의 타도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천호영 기자, 2007-06-27 09:05)
[인터뷰] 제3회 맑스코뮤날레 상임대표 김수행 서울대 교수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자본주의를 타도합시다'는 말이 진정인지? 김 교수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음과 함께 답변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먹히지 않고 있어요. 자본가계급의 사적 이윤 추구가 경제를 점점 더 지배하는 상황에선 중도파적인 복지정책도 곤란하거든요. 소유관계에 제약을 가하는 운동이 안 되면, 결국 복지 자체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새는 조금 더 밀어붙여야겠다는 생각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 '타도'라는 표현에는 물리력을 통한 체제 전복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폭력혁명을 주장하시는 건지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지금 상황에선 소유문제를 그런 식으로 안 하더라도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맑스코뮤날레에도 그런 제안이 많이 나오는데, 택지국유화를 하자든지, 민주노동당에서 얘기하는 의료나 교육 문제를 공공화하자든지, 이런 게 다 가능하거든요. 저는 그걸 다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개념에 포괄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제3회 맑스코뮤날레의 주제는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적 세계화'. 김수행 교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특징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정리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30년 넘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는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많이 해체해버리니까 국내시장이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국내시장이 확 줄어드니까 자본가계급과 정부에선 결국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세계화가 그런 거거든요. 각 나라에 대해서 무역자유화, 외환자유화, 자본이동자유화가 쭉 펼쳤으니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딱 묶여있는 거예요."
 
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에 따라 반발이 거세져 혼란의 시기가 온다며 "실제로 지금 혼란의 시기가 왔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라크전쟁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진영 내부의 탈출구로, 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정권의 실험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파악했다. 김 교수는 또 맑스코뮤날레 초대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코뮌이 우리의 목표"라고 제시하며 "새로운 코뮌적 대한민국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코뮌이라는 건 결국 하나의 사회가 공동체적으로 연대의식을 가지고 모두가 참여하면서 같이 잘 살자는 게 기본적인 아이디어죠. 계급 간의 차이라든가 갈등이라든가 지배라든가 그런 게 없이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코뮌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같은 코뮌의 형태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그리고 있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돈 있는 사람은 일을 안 했는데 모든 사람이 일을 하면 노동시간이 2, 3시간 줄어들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서 문화도 계발하고 기술도 개발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현실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로 느껴지는데요?
"유토피아적인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거기로 갈 수 있는가죠. 이번 맑스코뮤날레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치운동ㆍ시민운동ㆍ학술운동이 어떻게 해야 할까가 문제인데, 아직은 조금 미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지금 시기 좌파 진영이 마르크스주의 깃발 아래 모이는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지난 2회 대회의 주제는 '맑스, 왜 희망인가'였는데, 여전히 마르크스가 희망인지요?
"희망이죠. 지금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으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걸 연구하는 사상의 핵심은 마르크스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많이 연구하고 비판한 사람이 마르크스입니다.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외에도 다른 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줬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가 올 수 있다, 이러면 얼마나 큰 희망이 되겠습니까. 연구자들로서도 안 풀리는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행 교수는 1989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국내 좌파진영의 방황 원인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진단했다. 첫째는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 학습이 학문적 차원에서 깊이 있는 연구의 바탕없이 주로 변혁운동 차원에서 진행됐고, 둘째로 그 학습 교재조차 대부분 스탈린주의에 기반한 소련공산당 서적의 일본 번역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련의 붕괴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좌파 진영이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철저히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뮌이라는 개념도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 용어가 스탈린주의를 연상시키기에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스탈린주의의 기본 아이디어는 계획과 생산력입니다. 모든 것을 계획해서 생산력을 올린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스탈린주의에는 노동자들이나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참여의 개념이 없어요. 마르크스가 늘 얘기했던 노동해방이나 인간해방이란 개념이 빠져있는 거죠."
  
- 그럼 지금 좌파진영의 역량은 어느 정도나 복원됐다고 보시는지요?
"소련이 망한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새롭게 연구가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들뢰즈, 가타리 등 철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많이 나왔고, 지금은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면에서도 역량이 상당히 많이 쌓이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는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실업문제가 커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마르크스주의가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노무현정부의 성격에 대해선 어떻게 규정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권위를 안 내세우고, 민주주의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했나요? 좌파라고 얘기하려면 노동자계급, 민중세력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야죠. 독재를 안 한다는 의미에서 진보하고, 민중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의 진보를 혼동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경제면에선 완전히 보수라고 봐야죠."
 
- 그렇다면 대선정국에서 좌파진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동자의 힘'에서 '내가 후보다'라는 운동을 한다는데, 실제로 대통령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합법적인 공간에서 우리 사회가 이런 대안도 있다는 걸 많이 알리는 좌파 선전기간으로 활용하는 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 현실 정치세력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실 계획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그런 데 능력도 없고…. 저의 목표는 마르크스경제학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책도 알기 쉽게 많이 쓰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가 사상과 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또 그걸 통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적입니다. 앞으로도 글 쓰고, 번역하고, 강의하고, 이렇게 쭉 할 겁니다."
 
현재 석사과정에서 비주류경제학 전공자는 한 학년에 한두 명 정도. 박사과정은 매년 13명 정도를 뽑는데, "요새는 들어온 학생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꾸 없어지기도 하고, 또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해선 취직하는 게 굉장히 어렵게 됐어요. 지난번에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그랬다죠. 강정구 선생의 과목 들은 학생은 안 뽑는다고. 기업에서 취업 때 과목도 보고 그러나 본데, 그런 것과 관련이 있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학문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나 활동가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신념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일반 생활인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저는 그런 분들이 많아야 이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좋은 방향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누가 빨갱이라고 그러면 꼼짝 못하는 세상입니다. 저변에서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것을 깨고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김수행 교수 강연, '신자유주의시대와 학문'을 보고(이재영) 2007/09/23 03:42
 
아래 글은 혁신네트워크의 칼럼방에 있는 이재영의 글이다.  
여기저기 부착되어 있는 김수행 교수 강연안내 포스터를 보고 한번 가볼까 한번 강연을 들으러 갈까 하다가 다른 일정 때문에 결국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글의 필자는 직접 서울대에 간 모양이다.  
이 강연을 보고나서 쓴 의견도 나름 경청할 만하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있고...
  
 
20년쯤 전, 한신대에서 해직되어 보따리 장사로 떠돌던 김수행은 서울대에서 『자본론』 특강을 청탁받는다. 그런데 웬걸, 강의장이라 공지된 박물관의 문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학생들이 주최한 행사였고, 당시에 으레 그러했듯 학교는 문을 잠그는 것으로 대응했다.
  
김수행과 강의에 모여든 학생들이 데모대처럼 우우 몰려간 곳은 관악산 기슭의 노천 강당이었다. 강의는 재미 없었고, 공장 빼먹고 구경 간 나는 햇볕 아래 꼬박꼬박 졸았다.
 
지난 13일, 쫓겨났던 그 박물관 강당에서 내년 퇴임을 앞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수행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자신들의 첫 번째 포럼을 내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강연으로 잡았다.
 
이날 김수행 교수가 발표한 「신자유주의 시대와 학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74~75년 세계적 공황과 불황이 닥쳤고, 그것을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극복하기 위한 사상과 정책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물론 신자유주의 본격화는 대처나 레이건 같은 우익이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은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자본가계급이 기업을 수익성  있게 운영하게 하는 목적에 이바지했다. 노동자계급을 약화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원래의 목적’이다.
 
긴축정책과 인플레이션 억제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규제의 완화에 따라 금융공황이 빈발하게 되었다. 또 민영화의 파탄도 드러났다.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정부독점에서 민간독점으로 바꾼 것인데, 민간자본에 대한 수익성 보장은 적자 해소라는 애초 목적을 무색케 했고, 민간자본의 장기투자 기피에 따라 영국 철도 사고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신자유주의는 쇠퇴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목표 자체에 의해서도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나타난다. 기업의 수익성은 저하하는데 주가는 상승하는 현상, 즉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 사이의 간격이 1995년 이래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간격이 어느 수준을 초과하면 주가가 자기의 토대인 배당을 반영해 폭락하고 공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신고전파 시장주의는 1929년과 30년대 대공황으로 사라졌다. 케인주의적 정부 개입에서 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로의 교체는 1974~75년 공황에 의한 것이다. 결국 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 신자유주의도 사라질 것이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나 범죄의 증가, 고령화 같은 것을 시장에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개입할 것이다.
 
미래 사회는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이고, 이 모든 변혁과정은 정치적인 헤게모니 아래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대중 행사였으므로 김수행 교수의 강연은 평이했다. 하지만 노학자의 통찰을 간명한 표현으로 전해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공황에 따른 지배적 경제담론의 변화라든가, 기업 수익성과 주가의 괴리 현상이 공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진단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두어 시간의 강의로 김수행 교수의 주장을 잘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들은 바 그대로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나 이견을 품어본다.
 
김수행 교수는 케인즈주의 시대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률을 비교하며 말했다. 어느 쪽이 좋다는 주관적 평가를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률 둔화 현상을 비판의 한 논거로 썼다. 그렇다면, 민중경제와 성장률의 일반이론적 관계는 무엇일까? 현재의 한국경제에 있어 적정 성장률은 어느 정도이고, 한국의 실천적 좌파는 ‘성장’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김 교수는 노동계급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애초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이 노동운동의 약화를 목표하고, 개별 정책에도 그런 의도가 관철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나의 경제시스템이 경제외적이고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운용되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그런 분석 방법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까?
 
신자유주의 기획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신자유주의 역시 이전의 경제시스템처럼 나름의 경제운용 구조가 안정화되면서 ‘비정치적’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기후온난화나 범죄의 증가, 고령화 등이 다시 국가 개입을 부를 것이라 낙관한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 현상 역시 각각의 주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딸린 문제이고, 환경 문제에 민간자본이 더 발빠르게 대응하거나 미국 등에서 나타나는 민간자본의 감옥사업, 실버산업 등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신규 시장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물관 강당은 좀 추웠다. 에어컨이 너무 잘 나와서이기도 하고, 20년 전의 노천 강당보다 청객이 너무 적어서인 듯도 하다. 『자본론』을 번역해 내놓은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 말하는 김수행 교수가 20년 전의 그 일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강의 내내 김 교수가 거듭 역설한 소회와 주장은 그가 20년 동안 『자본론』 번역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하여 새 비전을 알리고, 새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좋은 사람 찾아서 전국적인 선거운동을 펼쳐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역시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 학문을 하더라도 이런 데 관련된 학문을 해야 하는 것이고, 맑스 이론을 전파하는 것이 내 임무다. 퇴임 후에도 강의 다니면서 맑스를 이야기하겠다.”
 
신자유주의시대와 학문
2007.09.13. 김수행
  
1. 신자유주의의 등장 
1) 1974/75년의 세계적 공황과 그 이후의 장기 불황을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극복하는 사상과 정책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자본의 수익률을 높여줌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는데, 시장근본주의를 통해 1945-1975년의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의미를 가졌다. 세계적으로 볼 때, 영국에서는 1979년 5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집권한 보수당 정부가, 그리고 미국에서는 1979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이 된 볼커와 1981-1988년의 레이건 공화당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2) 주요 정책 
i) 실업의 감축보다는 인플레이션의 억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를 받아 들여 재정금융의 긴축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자본가계급이 기업을 수익성  있게 운영하게 하는 목적에 이바지했다. 결국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ii)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재편했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목적 이외에 노동자계급이 사회보장제도(실업수당, 소득보조, 무상의 교육과 의료 등)에 의거해 자본가계급의 독재에 대항하는 것을 막는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iii) 규제를 해제했다. 외환관리와 자본통제 및 국내의 금융규제를 해제했기 때문에, 산업기업과 금융기업들이 가장 수익성 있는 시장에 자유롭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른바 자본의 세계화와 경제의 금융화를 불러온 것이다. 
iv) 국영기업과 공익사업을 민영화하거나 정부 소유 주식을 매각했다.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국영기업부문의 경영을 합리화하겠다고 선전했으나, 사실은 정부독점이 민간독점으로 바뀐 것이 대부분이다. 민영화의 진짜 이유는 정부 재정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집권 보수세력이 자기의 지지기반인 부자와 대기업에게 조세를 감면하니까 재정 적자가 크게 생겨 이것을 가장 쉽게 해결하기 위해 정부 재산을 팔아버린 것이다. 
v)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했다.
  
2.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 
1) 경제성장률의 둔화, 실업의 격증, 소득불평등의 심화, 인종폭동의 빈발. 
2) 세계적인 금융공황의 빈발 
i) 금융적 자본의 투기적 이동, 새로운 금융상품(스왑, 파생상품 등)과 금융기법의 발명 등에 의해 금융거래가 대폭 증가했지만, 이것을 규제할 공권력은 없었다.  
ii) 1979-1982년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달러가치를 안정시키며 자본 유출을 막음으로써 국내외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게 되었지만, 후진국의 외채위기는 심화되었다. 1983년 멕시코의 외채위기를 비롯해 다수의 후진국의 외채위기.  
iii) 세계 전체로 긴밀하게 연결된 국제금융시장은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서도 동요하기 쉽게 되었다. 1987년 10월의 미국과 세계의 증권시장 공황, 1980년대 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파산, 1990년대 초 일본 금융제도와 경제의 붕괴, 1992년과 1993년의 유럽통화제도의 위기, 1994-1995년의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7년 아시아 전역의 외환ㆍ금융공황, 1998년 8월 러시아 정부의 외채 지불 정지, 1998년 9월 미국 헤지펀드 LTCM의 부도 위기, 2002년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 2007년 상반기의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세계적 파급 등. 
iv) 후진국들의 금융외환위기에서는 미국의 Treasury-IMF-Wall Street Complex가 후진국들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3) 민영화의 파탄 
i) 민간투자자에게는 자본의 가치증식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민영화는 수익성 있는 국영기업과 공익사업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고, 아니면 정부가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헐값에 매각하거나 어떤 형식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야 했다
ii) 민간투자자는 대규모의 해고를 통해 거대한 이윤을 얻었지만, 이것을 장기적인 설비 개선에 투자하거나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기보다는 배당이나 주식가격을 올리는 데 사용했다.  
iii) 정부는 민영화된 독점기업들의 기본 운영방침을 제정하고, 명확한 공급기준을 확정하며,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제시하기 위해, 공공의 규제기구를 설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영국의 경우 Oftel, Ofgas, Ofwat, Ofrail. 
iv) 영국에서는 민영 철도회사인 Railtrack은 회임기간이 긴 철도 선로와 신호망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함으로써 1999년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31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초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레일트랙은 파산하고, 공적 소유의 비영리법인인 Network Rail이 인수하게 되었다.
  
4)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의 강화 
i) 1991년 소련이 멸망하기 이전에는 레이건이 Star Wars 계획을 세우면서 소련과 군비경쟁을 했고, 영국의 새처는 포클랜드(또는 말비나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1982년 4-6월에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했다.
ii) 소련이 멸망한 이후에는 미국은 세계의 최대 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어, 2001년 9월 11일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 여기에 제3의 길을 천명한 영국의 블레어 정부도 참전했다.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 큰 반대에 부닥쳤다.
  
3. 신자유주의의 쇠퇴 
1) 세계적인 규모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와 전쟁 반대 투쟁 
2) 미국 사회의 동요 
i) 주주자본주의와 분식회계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가 되면서 기업경영자들은 주식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회계를 조작하게 된 것이다. 엔론, 월드컴, K마트, 글로벌크로싱 등 미국의 대기업이 분식회계로 파산했고, 기타 대기업들도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대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결국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ii) 주가 상승과 수익성 사이의 괴리
2003년 하반기부터 주식가격은 상승하는 추세로 돌아섰지만, 문제는 기업의 수익성은 저하하는데 주가는 상승하는 현상, 즉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 사이의 간격이 1995년 이래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가가 기업의 이윤과 배당으로부터 점점 더 자립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간격이 어느 수준을 초과하면 주가가 자기의 토대인 배당을 반영해 폭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아래에서 미국 정부와 기업이 주가를 상승시키는 데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주가가 기업의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상승하다가 폭락함으로써 공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
iii) 이라크 전쟁의 종결과 인권유린의 중단
2006년 말에 행한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쟁의 종결’이라는 공약을 통해 하원과 상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침략전쟁을 확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부시 정부 아래에서 테러방지라는 이유로 취해진 시민적 자유의 제한이나 테러용의자에 대한 인권유린 등도 완화될 것이다.
 
4. 앞으로의 전망 
1) 신고전파적 시장주의-->케인스주의적 정부 개입-->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 
i) 자본주의 사회구성도 다양한 유형을 나타내는데, 영미의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달리 독일ㆍ프랑스 등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는 연대주의적 복지국가가 상당히 유지되고 있다.
ii) 현실적으로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온난화, 공기ㆍ물ㆍ토지ㆍ바다의 오염, 유해한 쓰레기, 에이즈 등 질병의 만연, 마약ㆍ범죄의 증가, 고령화 사회. 이것들을 시장에 맡겨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라고 그냥 둘 수가 없다. 결국 공권력을 가진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ii) 국민보험이 아닌 사적 보험은 포괄하는 범위가 좁다. 사적 보험은 실직 위험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직은 random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불황기에 그리고 어떤 특정 부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주택보험은 우연한 화재를 보상하지만 전시의 공중 폭격이나 지진이나 태풍에 의한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다; 성인 노동자들은 사적인 건강보험에 가입하기 쉽지만, 퇴직한 노인들은 가입하기가 어렵다.
iv) 경제의 금융화를 통해 금리생활자들(부자, 금융회사, 기업 등)이 많이 증가했고, 이들이 사회의 현재의 소득과 미래의 소득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조세 저항으로 정부의 재정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을 지배하게 되었다.
v) 공공의 투자, 사회의 안전, 주민들의 복지, 지식기반 사회의 교육, 고령화 사회를 위해 조세 수입을 증가시켜야 하고 공공으로 조직된 기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vi)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용-수익분석은 생각하기보다는 매우 어렵다. 비용과 수익에 어떤 항목을 넣을 것인가, 기간은 언제까지 할 것이고 화폐로 평가할 수 없는 항목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등. 무료 의료를 통해 주민들이 건강하게 된 경우, 이것의 이익은 병원의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고, 사회 전체에 퍼질 것이다. 또한 교육이나 의료 등은 사람집약적이기 때문에 기계집약적인 제조업만큼 생산성이 상승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교사나 의사의 봉급을 다른 종사자보다 낮게 인상할 수 있을 것인가?
v) 결국 국가가 다시 개입하여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게 될 것이다.
  
2)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로 이행
i) 이 모든 변혁과정은 정치적인 헤게모니 아래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ii) 지금의 기득권층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노동자ㆍ농민ㆍ빈민ㆍ실업자ㆍ고령자ㆍ민중적인 언론인ㆍ지식인ㆍ종교인ㆍ학생들의 단결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비젼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정치적ㆍ사상적으로 사회 전체에 전파함으로써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의 예로서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위원회를 들 수 있다.
  
3) 학문의 방향
i) 현실 추수적인 학문, 현실 옹호적인 학문보다는 현실을 비판하는 학문이 필요하다.
ii) 복지사회의 건설에 장래의 후손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의 잉여를 너무나 많이 차지하는 기득권층의 소득을 더욱 나은 공동체를 위해 전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나 생태계 파괴를 그냥 둔다면 후손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iii) 대학은 대학생들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르치는 학문 도야의 장소이지 취직을 위한 강습소가 아니다.
iv) 대학의 문제는 학생과 교수와 직원들의 민주주의적 토론을 통해 해결하고, 이들이 또한 새로운 대학상을 만들어 가야한다. 학생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야만인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학교의 장래뿐 아니라 자기자신의 장래도 망치게 된다.

 

----------------------------------------
김수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열어가자" 2007/11/25 22:58
 
1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기념논문집 봉정식에 참석하려다가 말았다. 학부 시절 김수행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지만, 딱히 거기에서 배운 바가 없었기에(?) 그런 인연으로 봉정식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이미 그날이 오면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신정완 편, 서울대 출판부)라는 제목의 논문집을 사둔 터이다. 물론 머리말밖에 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올해 안에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그리고 참세상의 정년퇴임과 관련된 최근 기사를 담아왔다. 나름대로 읽어볼 꺼리가 있다. 거기에서 김수행 교수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고...

 
김수행 교수 “美 주도 신자유주의 더는 활로 없다” (경향, 글 손제민·사진 박재찬기자, 2007년 11월 19일 17:34:34)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미국발 경제 위기가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 보입니다. 이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는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한층 강하게 듭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는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새롭게 이해한 부분은 그의 학위논문이 세계 마르크스주의 학계에 특별히 기여한 부분이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 경제가 이제 벽에 부딪혔다고 진단한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위기와 달러화 하락은 그 상징적 신호탄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자율을 계속 낮추고 있어 외국 투자자뿐 아니라 미국 내 투자자들이 달러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복지국가를 해본 경험도 없고, 해외로부터 일종의 ‘공납’으로 유지해온 나라인 만큼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의 활로가 없습니다. ‘불안(테러)’을 이용해 치안과 군사력으로 자본주의의 새 활로를 찾는 움직임을 보입니다만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평화·반전 담론 속에 이마저도 신통치 않을 것입니다. 무기 팔아먹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니까요.”
 
퇴임을 앞둔 그는 후배 교수들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서울대출판부)라는 논문집을 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를 설명해오는 데 치중하느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던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김교수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색을 하지는 못했다. 퇴임 후 그가 파고들 과제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는 그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후임을 정하지 못하고 나가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부는 김교수 퇴임 후인 내년 3월 후임 교수를 뽑을 예정이다. 서울대에서 유일했던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인 그가 퇴임하면 지금 33대 1의 싸움에서 34대 0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주류경제학 일색의 교수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학생들입니다. 내가 서울대에 교수로 왔던 1989년에도 사정은 지금과 마찬가지였어요. 교수들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대학원생들이 농성하며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를 요구했기에 내가 올 수 있었습니다.”
 
김교수는 교수들의 성향이 유별나게 더 보수화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유학 출신의 계량경제학 전공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한신대 교수로 있던 83년 1학기부터 서울대에서 시간 강의를 했지만 스스로도 서울대에 전임교수로 부임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대학원생이던 신정완(현 성공회대 교수), 류동민(현 충남대 교수), 안현효(현 대구대 교수), 박도영(현 영산대 교수) 등이 농성까지 벌였고, 그 덕에 그는 서울대 교수가 됐다. 47세 때였다.
 
그로부터 18년.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가 된 서울대의 학생들은 김교수 후임이 누가 될지에 큰 관심이 없다. 김교수는 “국민들의 세금을 받는 국립대학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적어도 국립대학이라면 “지금 당장은 쓸모 없어 보이는 학문이라도 다양하게 펼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가 부잣집 학생들로 채워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집안 형편이 좀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라면 전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보고 생각도 좀 하게 될텐데, 돈을 잘 버는 집안에서만 오니 한국사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지도급으로 올라가 버리면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되는 거죠. 우리 사회 전반에는 ‘노동자들이 탐욕스러워서 파업한다’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다’ 등의 인식이 뿌리내리겠죠.”
 
김교수는 이제 ‘벤처사업’을 하려고 한다. 바로 마르크스주의 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사회과학대학원’(가칭) 준비를 위해 몇 해 전부터 오세철 전 연세대 교수, 황동하 박사 등과 함께 일해오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80명이 등록했어요. 이 분들 가운데 대학생은 세 명뿐이고 대부분이 회사원, 노동조합 활동가, 프리랜서, 회계사 등 생활현장에서 목 말라서 온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자꾸 삐걱거리니까 이것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고 오는 거예요.”
 
김교수는 적어도 수십억원이 필요한 대학원 설립이 가까운 장래에 가능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계기가 생기면 학교를 세우거나 다른 대학과 연대해서 프로그램을 짜는 식도 가능하겠죠. 그러나 아직은 교육운동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 학교가 괜찮다, 학생들을 통해서 이런 학문이 필요하다 하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죠. 그래야 모금도 가능한 거고. 결국 학생들이 필요를 느껴야 해요.”
 
"장하준 논리라면 삼성왕국 된다" (한겨레 강성만 기자 블로그, 2007/11/21 19:39)
  
마르크스를 향한 항심은 어디에 기반한 것일까. 김 교수는 솔직히 말한다. 교수라는 게 좋은 직업이라고. 일반 기업체에 취직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아내 이야기를 언론에서 다루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한 길을 가는 동안 아내가 변함없이 성원을 보낸 게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김수행 교수 인터뷰를 하러 서울대에 가서 본 것들 가운데 2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사회과학대 교수들 대상으로 ‘와인 파티’를 연다는 공고문이 그중 하나다. 80년대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 그리고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 공고물이 마치 연예인의 자기 피알 홍보물을 방불케한다는 것. 화장과 포즈의 정도가 연예인 뺨친다.   
  
-요즘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 않나.
=조금 올라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 경제사정 굉장히 나빠졌다. 실업자 빈곤 심해지고 양극화 많이 진행됐다. 노동계급 탄압은 심해지고 시장주의는 자꾸 나오고.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주류경제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장에 맡기면 다 잘된다고 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면 해결책 나온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학생과 사회인들이 자본주의 경제적 모순 해결해보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최근 서울대 학부에 개설된 마르크스 강좌 3개의 듣는 학생이 200여명으로 고정된 느낌이다. 너무 적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실적 유효성에 대해.
=자본주의 경제학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를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봤다. 지금과 같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해서는 수익이 안생긴다. 그래서 해고시킨다. 그 대안으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 개념은 자본주의 이후 사회가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실업이 자꾸 나면 안된다. 실업 안나면서 노동시간 줄여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도 새로운 방향이다. 
독일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정부가 개입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민간 부문의 이윤추구를 자꾸 줄여간다.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학교와 병원을 공짜로 한다. 공공부문 늘여가는 것,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지금의 실업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회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자꾸 그렇게 가는 것이다. 선거에서 민노당이 이기거나 봉기가 일어나 지금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뜯어 고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점진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운동하는 세력들이 하나씩 쟁취해가면서 자신감 생기고 쟁취 과정에서 운영 능력이 는다. 능력이 커져야 한다
1919년 러시아 혁명때 노동자가 공장을 접수했는데 공장을 어떻게 운영할 지 몰랐다. 그래서 NEP라는 신경제계획으로 갔다. 하나씩이라도 조금씩 쟁취해가면서 서민과의 연대성 등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화 운동과 같은 시민 운동이나 부정부패방지 운동, 환경 운동, 여성 운동 등 우리 사회 문제되는 것에 대한 이런 것이 축적돼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그 당시 사회에서 자본주의 이후 새 사회 건설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예측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직접 부딪히면서 투쟁해서 건설되는 것 아니냐 생각했다. 
 
-새 사회의 그림과 그 경로는
=자본주의 자꾸 발달하면서 우리 재벌은 큰 세력이 됐다. 공장을 사회화할 때 한꺼번에 중소기업까지 국유화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재벌 같은 큰 단체를 접수하면 관제고지(COMMANDING HEIGHT)를 점령하는 것 아니냐. 레닌 혁명때 전쟁 때문에 백군 일어나 외국군대 개입하면서 국유화 실시해 많은 문제 생겼다. 재벌 것이라도 국유화하면 이 사회 경제 움직이는 것 별 문제 없는 것 아니냐. 자본주의 발달하면서 독점이나 재벌 생긴다. 이것을 사회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쉽다. 이건희 주식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재벌은 사회의 것으로 봐야 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이야기된다.
 
-경로에 대해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대기업은 정규직 중심이다. 엄청난 비정규직을 포섭해 연대를 맺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 울산 창원에 노동자가 많다는 데 민노당 출신이 국회의원 되기 어렵냐.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어떻게 통합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학교나 병원을 공짜로 하는 운동, 즉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 하고 지식인도 이런 문제를 자꾸 제기해야 한다. 
 
-장하준의 재벌활용론에 대해
=재벌을 더 독점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재벌이든 외국자본이든 기본은 자본의 가치증식, 이윤추구이다. 재벌도 한국에서 이익 못보면 다른나라로 간다. 삼성은 홍콩 싱가포르로 많이 나갔고 현대도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 재벌이 외국자본과 경쟁해서 한국 경제나 민중을 돕는다는 것은 환상이다. 안되면 옮겨간다. 그러다간 삼성왕국된다. 돈 많이 벌어 주체 못하니까 대통령 장관 사법부 언론을 자기의 수익성 제고에 이용했다. 그렇게 독점력 키우면 안된다.
 
-마르크스 이론의 정수와 한계는
=마르크스이론은 유물사관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머리나 사상이 아니라 그 사회의 현실에 뿌리박고 있는 사회세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리적 조건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은 좋은 관점이다. 그래야 환상적인 것으로 흐르지 않는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이윤추구에 의해 움직인다. 이윤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나온다. 노동자를 착취한 게 이윤이다. 때문에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 투쟁과 갈등이 나온다. 여기까지가 자본론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1850년대 영국 사회 분석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은 지금도 자본주의,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들어 맞는 이야기다. 마르크스를 좋아한 이유가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원리 자체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추상 모델을 통해 결론 내렸다. 현실자본주의가 그동안 발달했다. 자본론에는 독점 개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독점이나 국가개입이 많이 생겨 독점 자본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국가는 뭔가 또 세계경제 체제에 대한 개념의 이해도 필요해졌다.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금노동 토지자산 국가 대외관계 세계경제 등 모두 6주제에 대한 책을 쓰려 했다. 하지만 앞의 3주제만 자본론에 반영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다루지 못한 과제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설명틀로 설명하는 게 과제이다.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해 마르크스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봤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이행기를 시초축적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하지만 이행 과정에 대한 연구는 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 무너지면 뭐가 오느냐 ‘생산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본주의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생산과 노동이 사회화된다.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자본이 주식회사가 되는 등 사회적 성격을 띤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운영되어야 마땅하다는 것 여기까지 자본론에 나온다새 사회로 가려면 이행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화폐도 상품도 없고 계획당국이 인적 물적자원과 필요와 욕구를 파악해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이행기도 자본주의 체제 속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내에 있는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본주의를 약화시키면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부 소장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이행기도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논지를 펴는 경우가 있다.
생산이 실제로 사회화된다. 생산이 사회화되려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관리하고 나누어먹고 공유하는 것 그렇게 가야 한다. 
 
-사민주의를 어떻게 보나.
=마르크스주의가 사민주의로 갔다고 하더라도 사적 소유를 근절시키면 마르크스주의가 되는 것 아니냐. 사민주의 아이디어로 자본주의 개선해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병원이나 교육을 무료로 해주면 (주민들에게) 여유가 생긴다.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노동자 타락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공황이론을 전공했다. 그 관점에서 현 세계 경제를 진단해달라.
=지금은 금융부문이 발달했다. 생산부문에서 이윤을 챙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자를 착취해 상품 팔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금융과 투기는 기존 재산을 나누어 먹는 과정이다. 미국 펀드 한국 와서 금융투기해 이윤을 빼간다. 은행을 값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금융은 생산이 아니다. 새로운 부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전세계 미국 금융망에 다 걸린다. 미국은 자기들이 생산면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없어 금융면에서 세계를 지배하며 각국의 부를 금융 통해 훑어 간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훑어갈 수 없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그런 문제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1979년 대처의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더 많이 내도록 함으로써 투자를 더 많이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실업을 없애고 경제를 키우겠다는 주의다. 자본가 위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좋은 성과가 별로 없다. 79년 이전과 비교해 성장률은 반으로 줄고 실업률은 더 높아졌다. 사회 갈등도 커졌다.
기술 발달할수록 노동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사장 비서실에 직원들이 굉장히 많았다. 지금은 컴퓨터가 다 한다. 공장 안도 마찬가지다. 서구 사회 보장제도는 실업구제의 의미가 있다. 의사나 간호사 식당 종업원 학교 등의 고용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실업부문 줄이는 방법은 공공부문 확대다. 경제 성장으로 실업 줄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수출 산업은 최신기계를 두어야 한다.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없다. 세금 더 내야 한다. 그래야 자살하려는 사람 살릴 수 있고 사회를 온화하게 만들 수 있다. 조중동은 세금 몇만원 올리면 복지비용이라고 반대한다. 1948년 영국은 소득이 2만달러에 훨씬 미치지 못했는데도 병원과 학교를 무료로 했다. 
서구는 완전고용 달성과 복지국가 건설 그리고 노조세력을 키우는 사회적 합의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가의 이윤을 늘리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를 하고 있다.
 
김수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열어가자" (참세상, 유영주 기자, 2007년11월23일 11시17분)
서울대 경제학부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봉정
  
아래는 답사 전문이다.
 
저는 자본론의 번역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구조와 운동법칙을 해명한 책입니다. 자본주의는 여러 나라에서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윤을 증가시키려는 자본가들의 활동은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생산성의 향상, 노동강도의 강화, 산업재해의 증가, 노동자들의 해고, 노동조합의 무력화 등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은 독점체를 만들어 내고, 국가기구와 관료까지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봉사하는 도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은 세계를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선진국의 자본가들은 자기 나라 정보나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 각국 정부에게 시장의 개방, 무역과 외환거래 및 이본이동의 자유화를 요구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본의 국제화와 세계화는 옛날의 제국주의를 가리킬 뿐입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세계의 주민 모두의 복지를 균등하게 향싱시키려는 세계정부가 없고 국민국가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자본은 외국에 침투할 때 자국 정보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리하여 군사적 침략이 일어나고 세계적 규모의 빈부 격차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큰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오고 있습니다. 자연 파괴와 지구 온난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 규모의 빈곤과 실업, 빈부 격차, 인간성의 고갈, 계급과 나라 사이의 갈등과 투쟁, 끊임없는 금융공황 등이 재앙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을 조금만 제어하더라도 인류는 더욱 좋은 환경에서 더욱 나은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기 이전의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학교와 병원이 무료였고, 노후 연금이 노인들이 살기에 충분했으며, 서민과 실업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충분한 소득을 보조받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것은 각 나라와 세계 전체에서 복지제도의 큰 후퇴와 빈부 격차의 심화였습니다. 사실상 IT혁명과 기타의 과학기술혁명은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기술혁명의 이익을 몇몇의 거대자본가들이 사적 이윤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서민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고 있는 사적 이윤은 자기들의 노동의 열매도 아니며 자기들의 자본의 열매도 아닙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는 대규모의 이윤은 사실상 세계 각국의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가 창의와 피땀으로 창조한 부가가치일 뿐이며, 거대자본가들이 이용하는 자본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세계 각국의 여유자본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서민들은 세계의 노동자들과 세계의 여유자본이 창조한 부가가치를 자기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세계의 거대자본가들에 대한 투쟁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이 세계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 서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6 23:27 2010/01/26 23:27

댓글1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전교조에 대한 실체적 분석?

View Comments

요즘 전교조, 공무원노조에 가해지는 이명박 정부의 공세는 엄청나다. 끊임없이 쏟아진다.
다른 사안도 많이 있기는 하지만, 대대적으로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토론회까지 개최하여 여론몰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시해놓을 필요가 있어서 관련글을 담아놓는다.

  
------------------------------------------
기어이‘빵구똥구’란 말을 듣고 싶은 교과부 (2010년 01월 19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교조를 공격하려면 제대로 된 자료를 내놓아야-
-교원노사관계의 발전은 정부의 태도변화에서 시작-
-연구를 사칭한 마타도어 대신 대화의 장에 나오길-
 
【교원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를 보며】
 
오늘 교과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한국노동연구원은 ‘교원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이란 토론회를 개최하고 연구내용을 발표하였다.
 
오늘의 발표는 지난 2009년 10월 29일 발표한 ‘학교단위 신교원노사문화 정착방안연구’의 2탄이라 볼 수 있다. 당시에도 교과부의 용역을 받은 교원대 정모 교수는 전교조 강령에 대한 왜곡, 학교장의 관료적 학교운영에 대해 민주적인 학교운영을 요구를 교사와의 관계를 ‘노사관계 갈등’으로 등치하는 오류, 학교운영의 민주화를 학교장의 권한약화로 인식하는 등 논리적 허점뿐만 아니라, 인용 자료의 오류와 출처의 미기재 등으로 공청회 당시 연구보고서의 기본 요건조차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받았으며, 최종보고서를 ‘최종보고서가 아니니 다시 수정하겠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으로 빈축을 산바 있다.
 
교과부가 용역을 주어 발표한 이번 자료 역시 그 내용의 부실함과 오류 등으로 또 한번 교과부의 7천만원짜리 헛발질에 실소를 금할 수 없다.(세부내용은 첨부 자료 【발표문에 대한 전교조 입장】참고) 또한 우리는 교과부의 반복되는 행동이 전교조를 무력화하고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전교조를 분리시키기 위한 악의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고 있다. 이번 용역보고서는 ‘학문과 연구’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교과부의 마타도어에 불과하며, 교원노조의 자주적 활동을 억압하고, 교원노조를 통제하기 위한 불순한 의도로 짜맞추어 졌음이 보고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교과부는 이러한 시도가 헛발질에 불과하며, 교과부가 주장하고 싶은 ‘합리적’이고 ‘건전한’ 노사관계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교과부가 건전한 노사관계를 원한다면 연구를 사칭한 마타도어 대신 정부가 일방적으로 중단한 단체교섭을 재개하고, 전교조에 대한 탄압부터 중단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전교조는 지난 20년 동안 수없는 흑색선전에도 굴하지 않고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 나온 것처럼 학교현장을 개혁하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질높은 공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또한 올해는 제2참교육운동의 구체적 실천으로 교실의 수업을 변화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전교조는 이런 저급한 자료 때문에 학교를 변화시키는데 매진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귀중한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교과부가 진정으로 전교조와 바람직한 교원노사관계를 형성하고자 한다면 해당 주제를 갖고 전교조 위원장과 교과부 장관의 ‘지상 공개토론’을 개최할 것을 제안한다. 더 이상 국민의 세금으로 엉터리 연구보고서 뒤에 숨어 국민들을 혹세무민하려 말기 바란다.
 

 
------------------------
"전교조 교사 많은 학교 수능성적 부진" (머니투데이 최중혁 기자, 2010.01.19 11:30)
이인재 인천대 교수 주장…전교조 "연구방법 잘못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부진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19일 한국노동연구원 주최로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열린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2004년도 한국교육고용패널(KEEP)을 활용해 교원노동조합 가입률이 수능의 언어성적과 외국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을 추정한 회귀분석 결과, 학교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가입교사 비율은 수능성적과 관련이 없었지만 전교조 가입교사비율과 수능성적 간에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관계가 나타났다.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의 10% 증가는 언어영역 수능 표준점수의 0.5~0.6점 감소(백분위 점수 1.1~1.3점) 감소의 관련이 나타났다는 것. 외국어영역에서도 표준점수 1.1~1.3점(백분위 점수 1.5~2.0점)의 감소 관련이 확인됐다. 다만 담임교사 개인의 전교조 가입 여부는 수능 성적과 유의한 관계를 보이지 않아 교원노조와 수능 성적간 부정적인 상관관계는 교사 개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교 경영 등 집단적인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
`전교조 대해부 vs 전교조 죽이기' 논란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2010.01.19 12:27)
연구팀 "전교조에 대한 실체적 분석.연구"
전교조 "전교조 죽이기 위한 악의적 의도"

 
한국노동연구원이 19일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한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연구 결과가 교육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4건의 주제발표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대표적 교원노조인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대한 `선전포고' 성격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전교조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교과부가 7천만원을 들여 이번 연구가 진행된 데다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 성적이 낮다'는 등 민감한 내용이 많아 전교조가 즉각 연구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자료를 내는 등 논란이 커지고 있다.
 
◇ 어떤 내용 담겼나 = 이날 발표된 연구 결과는 `교원노조의 법률적 특수성 검토'(김재훈 서강대 로스쿨 교수), `교원노조 단체교섭 현황과 개선방안'(이성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전교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조교수), `전교조 활동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 등 4건이다. 전교조의 설립 배경과 목적, 활동 내용 전반을 법률적 해석, 심층 분석, 여론조사 등 각종 기법을 동원해 `대해부'하고 전교조 활동에 대한 근본적 재검토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교원노조 중 절대다수의 조합원을 지닌 전교조의 제반 특징에 대한 총체적이고 실체적인 분석이 미흡하다"며 연구 목적을 설명했다. 김 교수는 "교원노조는 법률적 지위와 위상이 일반노조와는 다르다"면서 "현재 교원노조의 여러 활동이 국민의 교육받을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닌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교원노조의 정치활동에 대해 김 교수는 "이미 헌법재판소 판결로써도 제한된 것이며 정치활동을 교원노조에까지 인정하면 교육에 대한 본질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16개 시도 교육청과 전교조 지부가 체결한 단체협약 내용을 분석해 "법령이나 조례 및 정부, 사학의 고유권한과 상충되는 성격의 조항이 다수 존재한다"고 결론 내렸다. 일반노조는 관련 법을 통해 경영권을 침해하는 내용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 데 반해 교원노조법에는 교섭 대상 범위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아 교육정책, 기관 운영 등에 대한 사항이 교섭의 쟁점이 되고 있다는 것. 이 연구위원은 정부 및 사학의 권한을 침해하는 대표적인 조항으로 ▲지역교육청이 주관하는 학력고사는 폐지한다 ▲교육청은 자립형 사립고를 승인하지 않는다 ▲노조가 추천한 자가 감사를 참관할 수 있게 한다 ▲교장 선출ㆍ보직제를 시범운영한다 등을 꼽았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연구 결과는 `전교조와 학업성취도와의 관계'로, 이 교수는 노동부의 2004년 한국고용패널 자료를 인용해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학생 수능성적 사이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부(-)의 관계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즉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이 10% 증가하면 언어영억 수능 표준점수가 0.5~0.6점, 백분위 점수는 1.1~1.3점 하락하고 외국어영역은 표준점수가 1.1~1.3점, 백분위 점수는 1.5~2.0점 떨어졌다는 것이다.
 
`전교조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 결과'는 전교조 활동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 인식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10월 20~60대 1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전교조 활동방식에 대해 공감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32.7%로 공감한다는 의견(23.2%)보다 많았으며 시국선언 참가에 대해서도 39.9%가 공감하지 않는다(공감한다는 30.5%)고 답했다.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를 전교조가 거부하는 것 역시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2.6%, 공감한다는 답변이 31.2%였고, 전교조의 통일운동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는다가 41.3%, 공감한다는 25.4%로 조사됐다. 교원평가제 거부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59.5%로 동의한다는 대답(17.2%)을 압도했다. 또 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에 자녀를 진학시킬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항목에는 `없다'(42.0%)가 `있다'(17.2%)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하지만 전교조의 교육현장 개혁 운동(공감한다 59.5%, 공감하지 않는다 16.7%), 평준화 정책 지지(공감한다 43.1%, 공감하지 않는다 29.4%) 등은 긍정적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를 담당한 이 본부장은 "전교조는 정치적, 이념적 성향에서 벗어나 교육현장 개혁운동으로서의 참교육 운동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를 발표한 이 교수는 "이번 결과는 전교조와 수능성적 간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자료의 한계 때문에 분석 과정에서 일부 변수는 통제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소속 학교의 비효율적인 운영에 불만을 가진 교사들이 교원노조에 가입할 확률이 높고, 이는 결국 낮은 수능 성적으로 이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교과부 용역’ 전교조 때리기 첨병으로 (한겨레, 이춘재 기자, 2010-01-19 오후 09:03:49)
노동연구원 “전교조 교사 많을수록 수능성적 떨어져”
 
성기선 가톨릭대 교수(교육학)는 “교사의 전교조 가입 여부가 학생들의 성적에 영향을 줬는지 제대로 분석하려면, 일정 기간 성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해야 하는데, 이번 연구는 단순히 2004년의 수능 성적만 갖고 분석했다”며 “최근 교육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연구를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교과부가 단체교섭을 앞두고 전교조 길들이기를 위해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이성희 교과부 학교자율화추진관은 “이번 연구 결과는 전교조와의 단체교섭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며 “연구 내용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교과부가 요구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
교과부 ‘전교조 연구’ 논란 (서울, 홍희경기자, 2010-01-20  14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가입 교사가 많을수록 해당 학교 학생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비용을 대고 한국노동연구원이 연구한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에서다. 정부는 토론회 연구를 바탕으로 교원노조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전교조는 “교과부가 ‘학문과 연구’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마타도어(흑색선전)에 불과한 용역 보고서를 내놓았다.”고 반발했다.
 
1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교원 노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라는 주제로 발표한 이인재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교조 가입교사가 10% 증가하면 수능 언어영역 표준점수가 0.5~0.6점, 외국어영역 표준점수가 1.1~1.3점 감소한다.”고 발표했다. 이 교수는 학생들의 교육경험과 진로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한국교육고용패널(KEEP)이 일반계 고3학생 2000명에 대해 실시한 2004년 조사에 포함된 ‘학교당 전교조 가입 교사수’를 ‘학생의 수능 성적 성취도’와 비교했다. 즉, 전교조 교사가 수업에 참여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교무실에 전교조 교사가 몇 명인지에 따라 개별 학생의 수능 성적이 어떻게 영향을 받는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상관 수치를 얻었다.
 
이 교수의 발표에 대해 전교조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전국에서 고등학교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전교조 교사 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라면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연구하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교수는 학생들이 재학한 기간 동안의 종단 연구 자료를 변수로 활용하면서, 성적 자료는 2004년 자료만 인용했다.”면서 “연구의 설계부터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장원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지난해 10월 20~60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면접 설문조사를 해 국민들이 전교조 활동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한다고 결론내렸다. 전교조의 활동방식에 대한 설문에서 ‘공감 안함’(32.7%)이 ‘공감한다’(23.2%)보다 앞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별 사안별로 전교조의 활동을 평가하는 눈이 달라지는 게 눈에 띄었다. ▲전교조의 교육현장 개혁운동와 관련해 ‘공감한다’(59.5%)가 ‘공감 안함’(16.7%)보다 높았고 ▲학교 평준화 정책 지지와 관련해 ‘공감한다’(43.1%)가 ‘공감 안함’(29.4%)보다 높았다. 반면 ▲전교조의 정부에 대한 시국선언 참가와 관련해 ‘공감 안함’(39.9%)이 ‘공감한다’(30.5%)보다 높았고 ▲일제고사 거부와 관련해 ‘공감 안함’(42.6%)이 ‘공감한다’(31.2%)보다 높았으며 ▲전교조의 통일운동에 대해 ‘공감 안함’(41.3%)이 ‘공감한다’(25.4%)보다 높았다. 
  
------------------------------- 
[사설]엉터리 근거 동원해 ‘전교조 죽이기’ 나선 교과부 (경향, 2010-01-20 00:44:51)
 
교육과학기술부가 국민의 세금 7000만원을 써가며 상식을 의심케 하는 일을 벌였다. 교과부는 한국노동연구원에 정책연구 용역을 주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어제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향’ 토론회를 열었다. 여기서 발표된 ‘교원노조의 법률적 특수성 검토’ ‘교원노조 단체교섭 현황과 개선방안’ ‘전교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 ‘전교조 활동에 대한 국민 의식조사’ 등 4건의 연구 결과가 하나같이 겨냥한 표적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었다. 노동연구원을 들러리로 세워 교육 난맥의 책임을 전교조 탓으로 돌려보려는 교과부의 한심한 발상이 측은해 보일 정도다.
 
교과부의 토론회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정책 토론회의 취지에 전혀 맞지 않았다. 교육적인 면은 쏙 빼놓고 전교조 때리기로 일관했다. 전교조가 정부와 사학의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고 했고,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 성적이 낮다’는 황당한 통계분석도 연구 결과란 이름으로 발표됐다. 토론회의 내용으로 보자면 ‘전교조 성토장’이고, 의도로 보자면 ‘전교조 무력화 여론몰이 출정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제의 편향성 못지 않게 충격적인 것은 정책연구의 발표자료 자체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전교조 교사 비율과 성적을 비교한 자료의 경우, 연구자의 양식을 의심하게 한다. 전교조 교사가 10% 늘면 외국어 점수가 1.3점 하락한다고 주장했지만, 여러 해에 걸쳐 특정 학교의 교사 비율을 따져본 것이 아니라 달랑 2004년의 다른 학교를 비교 대상으로 삼은 엉터리 분석이다. 학교와 지역의 특성이나 학교장의 역량과 같은 변수를 죄다 무시한 채, 어떻게든 전교조를 흠집낼 구실을 찾으려는 교과부의 입맛에 맞춰 정책연구란 이름으로 숫자놀음을 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
[첨부자료] 발표문에 대한 전교조 입장
 
●제1주제(교원노사관계의 총론적 법률 쟁점)에 대해
○교원의 노동기본권과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가 상충된다는 전제가 잘못
교원의 노동기본권과 국민의 교육 받을 권리는 서로 상충되는 권리가 아니며, 학교 현장에서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은 그 직무의 자주성, 전문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창의적으로 학생을 지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원의 노동기본권 보장은 오히려 국민의 교육을 받을 기본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한 전제라 할 것이다. 이에 모든 OECD 회원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교원의 지위를 특별히 보호하고 있다.
 
○교원의 정치활동과 정치적 의사표현을 구별 않는 교과부 주장의 재연
또한 교원의 정치활동은 교원 직무의 성질상 일정 정도 제한될 수 있으나 제한되는 정치활동은 직무와 관련되어 행해진 것으로 한정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 역시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하였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선거운동 일체를 금지하는 것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라는 개인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제한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헌재 2008. 5. 29. 선고 2006헌마1096 결정). 이에 미국, 캐나다, 유럽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정당가입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으며, 특히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적 의견표명 일체를 금지하고 이를 처벌하는 입법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제2주제(교원 단체교섭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대해
○사용자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하는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이성희 연구위원은 단체협약이 법령,조례, 공공기관 등의 고유권한과 상충될 ‘성격’의 조항들이 다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용자인 노동부와 교과부의 주장을 인용해 교육정책과 교육과정, 기관운영 등은 교섭사항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교원노조법의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주장이 전경련이나 경총 같은 사용자의 주장과 무엇이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건전한 노사관계를 연구한다는 노동연구원의 연구위원이 사용자가 주장하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 외우고 있다는 것은 연구의 객관성을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 기준에서 후진적이기만 한 의제 제한 주장
이성희 연구위원의 주장을 받아들여 교섭의제를 제한하는 것이 과연 선진적인 노사관계인지 살펴볼 일이다. 외국의 일반적 사례라면 그런 주장을 할 근거도 있지만, 연구자만의 주장이라면 현재도 낙후된 한국의 노동기본권은 ‘후진국 따라잡기’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며 한국과 같이 교섭의제(대상)를 제한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며,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처럼 민간부문과 동일하게 노동3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대다수 국가들은 ‘교섭의제’에 대한 법률적 규제가 없다. 또한 “교원평가제” 등 교원정책을 교육행정 인사정책이라는 핑계로 협상 주제에서 배제하려는 일본정부에 대해 UN산하기구인 CEART는 법률 개정을 포함해서, 교원노조와 관련된 정책의 강력한 변화를 촉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참고> ILO-UNESCO 권고
  ○ 지난 10월 29일, ILO-UNESCO 전문가위원회(CEART)는 일본 실사를 통해 일본정부에 권고하는 공식보고서에서 첫째, 교육부(교육청)가 교원노조를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데 참여해야 할 단체로 인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부분임을 강조하고, 둘째, 교원노조(단체)와의 협상을 통해 모든 일이 진행되어야 하며, 셋째, 교육 행정인사정책이라는 핑계로 ‘교원평가제’를 협상의 주제에서 배제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된다. 넷째, 현존하는 법률의 개정을 포함하여 교원노조와 관련된 정책의 강력한 변화를 일본정부에 요구함「“일본에서 실시된 진상조사에 따른 ILO-UNESCO 전문가위원회의 권고에 대하여”에서 부분 발췌(젠코 사무총장 히데오 히가시오모리)」
 

*제75항 : 당국은 교원이 그 책임을 완수할 수 있도록 교육정책, 학교조직, 교육활동의 새로운 발전 등에 관하여 교원노조와 협의할 수 있는 정당한 방안을 강구하고, 또 이를 활용하여야 한다.
*제76항 : 당국과 교원들은 교육활동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 교육연구, 새로이 개선된 교육방법의 발전과 보급 등에 있어서 교원들이 그들의 조직을 통하거나 또는 그 밖의 방법으로 참여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교원노조법상 교섭의제를 제한해야 한다는 이성희 연구위원의 주장은 한나라당 “정두언법안”과 “조해진법안”에 명분을 주어 교원노조법을 개악하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다.
 
○교원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진정한 방안은 교섭의제 확대
교원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해서는 교원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 그리고 영국, 프랑스 등 유럽 국가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민간부문과 동일하게 노동3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그 핵심 내용은 ILO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가입제한 규정 폐지, ‘교섭 의제’ 확대, 교섭의 실효성 확보 방안 강구, 창구 단일화 방안의 기술적 조정 등 그 동안 교원노사관계에서 지적되었던 법과 제도의 정비이다.
 
제3주제(교원노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에 대해
○학업성취도 평가 방법을 알고나 있는지 의문이 드는 연구
학생의 학업성적에 미치는 요인은 매우 다양하다. 
이인재 교수가 인용한 한국교육고용패널 기초분석보고서(2005) 역시 29개 항목으로 수능성적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각 요인별 영향의 가중 정도가 매우 차이가 난다. 
한국교육고용패널은 고등학교 학생이 학교경험을 하고 졸업 한 후 수능성적 자료가 첨가되어 있다. 따라서 일회적인 성취도 자료가 사용되고 있다. 학교효과, 교사효과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종단적 자료를 이용하여 학생들의 입학당시 성취도가 졸업 당시 성취도로 이어지는 일련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고, 이러한 변화와 성장에 학교와 교사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는 연구설계를 취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최근 성장모형(growth model)에 대한 논의에서 충분히 다루어지고 있는데, 이 연구는 이러한 최근의 학교효과에 대한 연구성과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횡단적인 자료에 근거하여, 그것도 상관관계 분석만을 근거로 전교조 가입률과 학생들의 성취도를 연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방법론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많다.
장님 코끼리 만지듯 연구하고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 전국에서 고등학교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은 지역은 전교조 교사 비율이 가장 높은 광주이다. 그렇다고 전교조는 전교조 가입율이 가장 높기 때문에 광주의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다고 발표하지 않는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도 이런 식으로는 표현 안할 것
또한 학업성취도를 어떻게 측정하는가에 따라서 학업성취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연구자가 인용한 자료는 종단 연구 자료이다. 그럼에도 04년 자료만을 인용한 것은 연구의 설계부터 잘못된 것이다. 
또한 이 연구는 전교조 조합원수와 수능성적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연구자가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이 증가하면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의 성적이 떨어진다’는 인과관계를 표현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분석이다. 또 다른 과목은 상관관계가 없는데 특정과목만 상관관계가 있다는 주장 역시 설득력이 없다. 
"교원 노동조합과 수능성적과의 부정적 상관관계는 교사 개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교 경영 등 집단적인 경로를 통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음"이라는 해석 역시 문제가 많이 있다. 학급담임의 효과를 제대로 분석하고 있는 모형도 아니며, 집단적 경로를 통해 운운하는 방식 역시 해석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집단적 경로를 통해 학생들의 성취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해석은 상상력을 동원한 자의적 해석으로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가 이 연구 결과를 확신한다면 교육학회, 한국교육사회학회 등과 공동으로 이러한 주제에 대한 분석을 함께 실시하여 공정한 평가를 해 나가기를 제안한다.
 
○전교조를 트집 잡기 위한 상상력을 동원한 자의적 해석 
전교조 교사가 많은 학교가 지역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는 낙후된 지역의 학교라면 이러한 결과는 문제가 된다. 학업성취도 수준이 높은 학교에 의도적으로 전교조 교사를 배치하지 않고 낙후된 지역에 집중 배치한다면 이러한 분석은 지역효과를 마치 전교조 가입교사의 비율에 따른 효과로 오인하는 우를 범하게 됨.
교원의 단체 가입률이 학생들의 성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모든 다른 변인들의 영향력을 통제한 후, 학생들의 입학성적이 졸업 당시 성적으로 변화되는 과정에서 교원의 전교조 가입률이 높은 학교가 상대적으로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 이 연구는 그러한 연구설계가 아니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의미를 찾기 어렵다. 
 
제4주제(교원노동조합 활동의 사회적 정합성과 발전방안)에 대해
○설문문항과 표본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한계
한국노동연구원이 사전에 배포한 자료에는 설문문항과 문항의 구성(앞의 질문이 뒤의 질문에 영향을 끼치는지, 답변 문항이 상호 배타적인지 등)을 확인할 수 없다. 또한 답변의 척도와 해석의 타당성 역시 평가하기 어렵다.
이장원 연구자는 전교조 운동방식이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연구를 하여, 스스로 연구대상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또한 전교조가 ‘교육’을 내용으로 국민과 관련되어 있으면서도 ‘노동조합’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는 특성을 배제한 채 일면의 성격만을 강조하고 있다.
 
○‘그저그럼’이 갖고 있는 문제와 의미에 대한 분석은 혼란
일반적인 사회조사 방법에서 5단계 척도를 사용할 경우 ‘보통’으로 표현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가치의 개입을 배제하고 특정한 답변을 유도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럼에도 연구자는 ‘그저그럼’이란 척도를 사용하여 문항의 모호함을 증가시키는 오류를 보이고 있다.
연구자가 사전에 배포한 자료에 근거할 때, 전교조의 활동방식, 전교조의 일제고사 거부, 전교조의 통일운동, 자녀 진학 의향 등에서 ‘그저그럼’이란 반응이 가장 높게 나오고 있다. ‘그저그럼’을 각자 해석할 경우 전교조 활동방식은 32.7%, 전교조의 학교현장 개혁운동은 16.7%, 시국선언은 39.9%, 일제고사 거부는 42.6%, 평준화정책은 29.4%, 통일운동은 41.3%만이 반대의견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의 민주노총 소속과 관련해서도 응답 대상자의 민주노총에 대한 가치판단을 전교조의 활동과 연관짓도록 답변지를 만들어 놓은 것은 타당하지 않다. ‘교사는 노동자와 다르기에...독자적인 노조활동을 해야한다’는 답변문항은 문항 자체가 성립되는지도 의문이다. 자료만을 볼 때도 답변자의 55.4%도 교원노조의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자녀진학 문항도 설문대상의 재구성(학부모)이 필요한 것이며, 전교조 교사가 ‘있는’ 학교와 ‘많은’ 학교의 의미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 또한 설문 대상자의 58%는 전교조 교사의 많음에 상관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절반이 안되는 결과?
설문 문항 전체를 볼 때, 교원평가에 대한 문항을 제외하고(이것 역시 조사가 진행된 09년 10월 이후 전교조의 교원평가에 대한 전향적 입장이 반영되지 않은 것임) 모든 문항이 전교조의 활동에 대해 반대한다는 명확한 의사를 밝힌 것은 절반을 넘지 않는 16.7%(학교현장 개혁운동)에서 42.6%(일제고사 거부)에 머물고 있다. 
전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야 하는 정부의 지지도도 50%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보수세력의 집요한 공격을 받고 있는 전교조에 대한 평가가 의외(?)로 좋게 나왔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연구자가 주장하는 대로 전교조 활동이 ‘전반적인 국민의 의견이 수렴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더라도, 전교조가 추구하는 가치와 정책, 활동에 대해 국민의 80%~90%가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거라고 본다. 그러기에 연구자가 ‘국민의식조사 결과 전교조의 활동방식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이고 있다’는 결론은 동의하기 어렵다.
 
--------------------------------
[정책브리핑]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낮나? 그 반대인가? (2010년 1월 19일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노동연구원의 교원 노사관계 토론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잘 구분해야
 
19일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하고 교과부가 후원하는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교원노조의 법률적 특수성 검토’ 등 4개 주제가 발표되었다. 제3주제인 “전교조와 학업성취도의 상관관계 분석”에서는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 간에 유의한 부(-)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밝힌다.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해당 연구는 상관관계 분석이다. 발표문의 결론에서도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떨어진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그 반대로 수능성적이 낮을수록 전교조 교사가 많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후자의 경우라면, 전교조 활동은 긍정적이다. 열악한 지역이나 뒤쳐진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많다는 것으로, 사회양극화와 교육양극화의 시대에 전교조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편, 담임교사가 전교조인지 여부와 수능성적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담임은 상관없고 다른 교사들의 전교조 가입비율만 관련이 있다는 의미인데, 학교생활에서 담임의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신중한 해석이 요구된다.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 사이가 직접적인 관계가 아니라 다른 변수(예컨대, 학내 비리 등)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관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는 직업능력개발원의 교육고용패널(KEEP) 1차년도 데이터를 활용하였다. 교육고용패널은 종단분석을 목적으로 설계되었고, 2004년부터 시작되어 작년 2008년까지 5차년도 데이터가 있다. 하지만 이 연구는 첫 해의 자료만 가지고 횡단분석을 하였다. 종단분석을 하기 위한 데이터임에도, 한 해의 자료를 바탕으로 횡단분석을 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서 진보신당 정책위 의장인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는 “한 해 데이터만 활용한 횡단분석, 인과관계분석이 아닌 상관관계 분석이기 때문에, 섣부른 해석은 곤란하다”고 평했다. “전교조 교사가 많으면 수능성적이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수능성적이 낮을수록 전교조 교사가 많다고 분석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수능성적과 전교조 교사 비율 사이에 다른 변수가 매개될 수 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하였는지도 의문”이라며 신중한 해석 및 보다 정밀한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언급하였다.
 
[메모]  전교조 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낮나? 그 반대인가?
노동연구원의 교원 노사관계 토론회...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잘 구분해야

송경원(진보신당/ 교육), 100119
 
□ 한국노동연구원의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
- 1월 19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여의도에서 진행
- ‘전교조와 학업성취도 간의 상관관계 분석’ 등 4개 주제 발표
 
□ 제3주제 “교원노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
- 발제문은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 간에 유의한 부의 관계가 존재한다고 밝힘. 그러면서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의 10% 증가는 언어영역 수능 표준화점수의 0.5-0.6점 감소 및 백분위 점수 1.1-1.3점 감소와 관련이 있다” 등으로 언급.
- 하지만 본 연구는 상관관계 분석임. 인과관계 분석이 아님. 결론에서도 “본 연구가 제시하는 결과는 교원 노동조합과 수능성적 간의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음.
-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 간의 반비례 관계를 의미함. 이는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성적이 낮다”로 해석할 수 있지만, “수능성적이 낮을수록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다”로 해석할 수도 있음(통계적인 검정을 해봐야 하나).
- “수능성적이 낮을수록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다”로 해석하면, 전교조 활동은 긍정적임. 열악한 학교나 뒤쳐진 학교에 전교조 교사가 많은 것으로, 사회양극화와 교육양극화의 시대에 전교조 교사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임.
- 한편, 담임교사가 전교조인지 여부와 수능성적은 아무런 관계가 없음. 다만,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반비례 관계임. 학교생활에서 담임교사의 영향력을 생각해볼 때, 담임과는 관계가 없지만 다른 선생님들의 전교조 가입여부와 관계가 있다는 뜻인데, 이는 신중한 해석을 요구함. 즉,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 사이에 다른 변수가 개입되어 있을 확률이 높음. 예컨대, 학내 비리가 있으면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아지는 것과 면학분위기 저하로 수능성적 하락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 이 때는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과 수능성적이 반비례 관계로 나옴(하지만 실제로는 학내 비리 만연이 문제).
 
□ (보론) “평준화 지역, 공립일수록 수능성적이 더 많이 높아진다”
- 발제문 108-111쪽에 관계 표가 4개 제시되어 있음.
- 변수 중 공립, 평준화지역, 학생 1인당 예산은 수능성적과 정(+)의 관계를 보임. 그리고 이 때 추정계수의 값은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보다 큼(예컨대, 108쪽 평준화지역의 경우 2.873, 4.292, 10.494, 9.643, 10.300으로 전교조 가입교사의 -0.062, -0.068, -0.056의 절대값보다 큼)
- 따라서 표 4개만 보면, “평준화지역일수록, 공립일수록 수능점수가 높다.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을수록 수능점수가 낮지만, 평준화지역과 공립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고 말할 수 있음.
-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의문임.
- 물론 이 때의 해석은 인과관계가 아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1/26 22:27 2010/01/26 22:27

댓글0 Comments (+add yours?)

트랙백0 Tracbacks (+view to the desc.)

Newer Entries Older Entries

새벽길

Recent Trackbacks

Calender

«   2026/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ag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