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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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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의 인터뷰를 모아보았다. 물론 발췌한 기사들.
시간이 있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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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스의 ‘국가만능주의’는 위기 해결 못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3호] 2009년 10월 06일 (화) 18:08:46 한광덕|국내 편집장)
[한국판 창간 1주년 특집] 국가의 의미를 묻다-김수행 인터뷰
  
-주류 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는 뭐라고 보나.
=주류 경제학은 개인의 본성과 행태를 연구해 그 개인의 합이 사회라고 본다. 반면 마르크스경제학은 특정 사회가 이미 주어져 있고 그 사회가 개인의 행태를 규정한다고 설명한다. 개인의 합이 사회라고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컨대 개인 모두가 저축하면 사회 전체의 저축도 늘어나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모두가 저축을 한다면 누가 물건을 살 건가. 공장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노동자는 소득이 없어 저축할 수 없으므로 사회 전체의 저축은 0이 된다. 케인스는 이걸 ‘구성의 모순’이라고 했다. 또한 개인의 본성과 행태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주류 경제학은 인류 사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자본주의 사회라고 보는데 이것은 현실 역사와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주류 경제학엔 경제사가 없다.
 
-주류 경제학에 공황 이론이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인가.
=맞다. 개인이 모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면 사회도 합리적 행태를 보일 것이므로 공황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회의 빈부 격차와 계급 문제가 사라진다.
 
-<자본론>의 부제는 ‘정치경제학 비판’인데 마르크스경제학을 왜 ‘정치경제학’이라 부르는지 궁금하다.
=마르크스 이전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분석틀은 사회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를 마르크스가 비판해서 완성한 게 <자본론>이다. 이후 1870년대에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하면서 ‘경제학’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때부터 사회는 사상되고 에코노미쿠스(경제인) 중심의 경제학이 나온 것이다. 한국에선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한다고 하면 잡혀갈 상황이라 공안 당국이 헷갈리도록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렀다.
 
-초기의 고전학파(정치경제학)를 비판했다는 차원에서는 ‘정치경제학 비판’이지만 현재 주류 경제학에 대비되는 개념으론 ‘정치경제학’이란 용어가 적합하고, 한국에선 운동권이 은어로 사용하다가 굳어졌다고 이해하면 되나.
=모순되는 것 같지만 그렇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애덤 스미스를 마르크스경제학의 원조로 본 것인가.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는데.
=애덤 스미스는 당시 중상주의자들이 금을 국부로 보는 논리를 반박했다. 금이 많이 있는 나라는 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죄다 물건을 사오는 통에 그 나라의 산업은 죽어버리고 국민은 가난해졌다. 그래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를 노동생산물이라고 봤고 그것을 만드는 노동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동가치설을 마르크스가 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국부론>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사회 전체의 이익도 증가한다’란 대목이 나온다. 이것을 후대에서 ‘시장’이라고 아전인수했을 뿐이다.
 
-지난해 전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경제위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각국 정부는 ‘출구 전략’을 앞다퉈 논의했다. 마르크시스트들이 말한 대공황은 대체 어찌된 건가.
=1850년대 금본위제도 당시엔 투기적 붐이 일어났다가 기업이 대출을 못 갚아 망하고 이어 은행도 망했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economic crisis’라고 불렀고 ‘공황’이라 번역했다. 그런데 불태환지폐와 관리통화 제도로 바뀐 1945년부터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경기가 공황으로 빠지지 않고 회복되기도 했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땐 돈을 뿌렸어도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파산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나는 마르크스의 ‘economic crisis’ 국면을 회복이냐 공황이냐의 경제위기 국면과 공황 국면으로 나눈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2007년초부터 2008년 3월까지는 경제위기 국면이었고 베어스턴스가 파산한 2008년 3월부터는 공황 국면에 빠졌다고 본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가 한 일이라곤 금융기관에 구제금융을 준 것밖에 없는데 V자니 U자니 W자니 하며 회복한다고 떠들어대는 것은 참으로 한심하다. 문제의 원인인 제도와 정책을 고치지 않고는 경제 회복이 불가능하다. 실물을 보라. 나아진 게 전혀 없다. 경기회복의 지표는 고용이다. 생산활동이 일어나지 않으면 회복이 안 된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경제의 금융화로 금융 부문이 비대해졌다. 그러나 금융은 새로운 부나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주주자본주의는 단기 이윤만을 챙길 뿐이고 ‘카지노 자본주의’는 소득을 가난한 사람으로부터 부자에게 이전시킨다. 금융시장이 반등했다고 하는데 투기의 결과일 뿐이다. 골드만삭스가 이익이 많이 난 건 경쟁업체의 파산으로 독점력이 커진 덕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생긴 부실 자산을 여전히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진보운동가 크리스 하먼도 지금의 위기를 금융이 아닌 실물경제의 위기로 규정했다. 그런데 자본주의에 주기적으로 공황이 도래한다면 자본도 학습을 통해 주기적으로 자기 보정을 꾀할 수 있지 않나. 자본의 역사적 생명력과 확장성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같다.
=마르크스도 자본주의가 ‘경제적’으로 붕괴한다고 보지는 않았다. ‘제2인터내셔널’은 이윤율이 제로까지 떨어져 자본가들이 투자를 못해 경제적 파탄이 올 것이라는 경제주의에 빠져 실패했다.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강력해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주체적 실천을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단결을 소홀히 하면서 임금 인상 투쟁에 함몰된 민주노총의 태도가 아쉽다.
 
-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말했는데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에 따른 철칙이 여전히 ‘암송’되고 있는 느낌이다. 마르크스경제학이 좀더 실증적으로 풍부해졌으면 한다.
=<자본론>을 읽을 때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다시 대학노트에 공식(S/C+V)을 적어가면서) 신기술과 신기계를 도입해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가 이뤄지면 이윤율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신기술이 필요투자비용을 절감하거나 잉여가치율을 올리면 이윤율은 증가하는 경향도 있다. <자본론> 3권의 13장과 14장에 각각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면 15장에서 어느 요인이 더 크다라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론적으로는 어느 경향이 더 크다고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윤율 저하 경향의 법칙은 이윤율이 실제로 저하하리라고 예측한 것이 아니라 신기술을 도입하면서 진행되는 자본 축적 과정에서 공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예를 들어 신기술을 도입한 기업이 초과이윤을 얻고 다른 경쟁자들이 망한다면 공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공황론을 두고 마르크시스트들 사이에서도 이윤율 저하론뿐만 아니라 과잉생산론, 과소소비론 등으로 엇갈리고 있다.
=마르크스는 모두를 얘기했다. 공황의 폭발에서 결정적인 것은 투기다. 투기로 인한 생산 저하, 이게 아니면 공황을 설명할 수 없다. 1974년 석유파동으로 인한 공황을 두고 석유수출국기구(OPEC)만 나쁘다고 할 게 아니다. 1972년 미국의 닉슨이 대통령 재선을 위해 확장적 재정금융 정책을 쓰면서 투기가 일어난다. 미국이 엔과 마르크의 평가절상을 요구하자 일본은 넘치는 외화로 원자재를 싹쓸이한다. 캐나다의 삼림까지 매점매석하는 바람에 당시 영국에 있던 나는 아이 기저귀를 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 1973년 10월 이스라엘과 아랍의 전쟁이 일어나 유가가 3달러에서 12달러로 갑자기 인상되자 석유를 원료로 한 제품들이 팔리지 않게 됐다. 이때 사재기로 투기한 사람은 모두 망했다. 이것이 1974년의 세계 대공황이다.
 
-마르크시스트들은 국가 개입 강화라는 케인스주의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경제위기로 무덤에서 부활한 두 사람 중 마르크스의 공황론은 잦아들고 케인스를 찾는 ‘유효수요’는 급속도로 창출되고 있다. 죄송하지만 교수님 제자들 중에 케인시언으로 전향한 사람도 있다.
=케인스는 자유방임의 종언을 주창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케인스 사상의 뿌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조바심과 애국심에 있다. 그가 국가의 개입을 주장한 1920년대 영국 자본주의는 1930년대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경제의 중심이 이미 미국으로 넘어가 산업 경쟁력이 뒤지고 실업률이 치솟던 영국은 미국의 원조로 연명했다. 소련을 방문한 케인스는 단결된 소비에트 사회를 보고 경악한다. 물욕에 빠져 있는 자본주의의 실업과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회주의에 패배할 것이라고 우려해 시장에 맡기지 말고 국가가 개입해 소비와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일반이론’ 을 전개한 것이다. 그의 정책 제안은 많았지만 대부분 채택되지 못했다. 투자 촉진을 위해 금리생활자를 안락사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안락사는 불가능하다. 이율을 떨어뜨리기 위해 대량으로 화폐를 발행하면 인플레로 가는 상황이었다. 영국의 재무부 장관 고문 때도 정부가 투자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정작 돈을 구해올 방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흔들릴 수 있어서다. 기껏 도로·철도·항만을 건설하는 데 그쳤다. 되레 미국의 케인시언들이 케인스에게서 군비지출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 실천에 옮겼다. 케임브리지대 교수인 아버지와 케임브리지 시장인 어머니 사이에서 케인스는 유복하게 자랐다. 그런 그에게 자본주의는 결코 무너져선 안 되는 것이었다. 케인스는 부자여서 주식투자를 했다가 쫄딱 망하기도 했다. 그의 인생 철학은 ‘굿 라이프’였다. 버나드 쇼가 <자본론>을 추천하자 ‘뭐 이렇게 재미없는 책이 있나. 비과학적이다’라며 내팽개쳤다고 한다.
 
-케인스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흐르는 것 같다.
=그럴까봐 케인스가 게이였다는 말은 차마 안 했는데. (웃음) 물론 성적 소수자의 인권은 존중한다. 어쨌든 남색에 빠진 탓에 42살에야 결혼했다. 상대는 영국에서 공연한 러시아 발레단의 프리마돈나였다. 그가 소련을 방문한 것도 처가가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에 있어서다. 그는 자본주의가 망할까 겁나고, 영국이 망할까 두려워 확장적인 재정금융정책을 추천했다.
 
-1930년대 대공황을 끝낸 건 뉴딜정책이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었고, 따라서 일등공신은 케인스나 루스벨트가 아닌 히틀러라는 희화적 얘기가 있다.
=공황의 자본주의적 극복책으로 루스벨트의 뉴딜과 히틀러의 파시즘이 등장했다. 1차 대전에서 패해 배상금 부담을 지고 있던 독일 국민은 연합군에 대해 악감정을 갖게 됐다. 눈치 빠른 케인스는 베르사유에 가서 독일을 너무 짜내면 소련하고 붙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가 배상금을 삭감해주지 않자 히틀러는 폴란드를 침입했다. 전쟁이 시작되면 정부가 군수산업을 일으키고 생산시설을 완전 가동하고 실업자를 군인으로 동원함으로써 실제로 1939년부터 경기가 회복됐다. 완전고용을 이뤄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렸던 1950~70년 유럽의 복지국가 혹은 혼합경제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전시통제 경제의 경험을 활용한 것이다.
 
-‘달러 캐리 트레이드’가 말해주듯 달러가치가 다시 떨어지고 새 기축통화 논의가 끊이지 않는데 미국이 언제쯤 ‘영국’이 될 것인가.
=1960년대 이후 서독과 일본의 경제가 부흥하면서 미국은 무역적자를 내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쟁으로 돈이 풀려 금값은 올라가고 달러가치가 하락하자 1960년대 말 프랑스 드골 대통령은 미국에 달러를 주고 받아온 금을 금 시장에 팔아 차익을 얻는다. 다른 나라들도 미국에 금을 내놓으라고 우르르 달려오자 1971년 닉슨이 달러를 금으로 태환하는 것을 중단하면서 달러가 종이돈이 됐다. 지금 종이 달러 한 장 찍어내는 비용이 35센트인데 여기에 100달러라고 써서 윤전기를 돌리면 미국은 99달러 이상을 공짜로 얻는다. 달러가 세계화폐이기 때문에 얻는 시뇨리지(화폐발행수익) 효과다. 금융기관을 살리려 제로금리를 쓰는 바람에 달러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표시된 미국의 주식과 국채를 아무도 가지지 않으려 할 것이므로 1929년처럼 미국 증시가 대폭락할 수 있다. 그러면 전세계가 타격을 입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협조해 현상 유지를 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니들 까불면 다 죽는다’며 군사력으로 전세계에 시위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파병 강요, 이게 ‘조공’을 받아 살아가는 메커니즘 아닌가. 경쟁력 있는 산업도 없고 실질임금이 하락해도 미국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값싼 소비재 덕분이다. 중국처럼 싼 소비재를 만들 수 없고 자동차도 망했으니 수입 초과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적자 탈출을 위한 뾰족수가 없는 미국은 또 다른 전쟁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전쟁을 통해 군사력을 과시하지 않으면 세계가 우습게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설마 전쟁의 대상이 북한은 아닐 것으로 보는데… 북-미 직접 대화도 추진되고 그래도 오바마이니까.
=건강보험 하나 못 밀어붙이는 오바마다. 부자 감세도 못 건드리고 있다. 미국은 시민이나 노동자 세력이 약한데다 애국주의가 강해 전쟁이 나면 결집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라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북한 대립 정책을 쓰고 있다. 북-미 대화에도 고춧가루를 뿌리고 있는데 제발 좀 가만히 있었으면 한다.
 
-미국의 ‘대체재’라는 중국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2조 달러의 미국 유가증권을 가지고 있는 중국의 딜레마는 미국이 자국의 가장 큰 시장이란 점이다. 이해가 상충해 미 국채를 투매하면 제2의 금융공황이 온다. 그래서 판을 깨진 못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가지도 못하고 있다. 중국은 분명한 자본주의 체제이면서 공산당 독재를 하고 있어 박정희 개발독재와 비슷하다. 경제는 불안정한 상태로, 연안의 공장들이 대거 문을 닫고 있지만 이미 농촌은 돌아가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노동자의 불만이 비등하고 있다. 민주화 요구가 나올 것이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면 외국 투자는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걸로 알고 있다.
=대중경제론을 주창한 DJ에게 기대가 컸는데 정작 집권해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많이 썼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대로 대기업의 부채 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과정에서 헐값에 발행한 주식이 외국인 손에 넘어갔다. 벤처 육성도 ‘묻지마 투자’로 변질돼 서민을 울렸다.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은 잘했다. 아쉬운 건 이런 복지정책을 확대하려면 세출 면에서 군사비와 정보비를 많이 줄여야 하는데 남북 화해의 일념을 가진 DJ답게 군비 축소로 과감하게 나갔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군 근무 연한을 줄이긴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아시아 금융 허브는 엉터리였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정치적 목적으로밖에 해석이 안 된다. 농어촌이 4억 달러 손해를 보더라도 자동차 수출로 10억 달러 이익을 보니 국익은 6억 달러 늘어난다는 방식으로 홍보했다. 그런데 그 6억 달러가 정부 돈인가? 재벌 돈이지. 따라서 정부가 농어민의 손해를 보전해줄 수 없다. 이런 건 국익이 아니다. 권위주의 해체와 민주화 측면에선 훌륭했다.
 
-당시엔 신자유주의가 맹위를 떨쳤고 국가 부도 위기에서 불가피했다는 항변도 있다.
=1980년대 들어 영국의 대처와 미국의 레이건은 노동자 세력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경제 회복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긴축으로 돌아섰다. 정책의 목표가 완전고용에서 인플레 억제로 바뀐 것이다. 실업자가 많이 생기니 노동조합의 힘을 꺾기가 쉬워졌다. 자본가 독재의 강화다. 기업은 이윤을 못 보는 산업보다 금융 활동을 하려 한다. GM과 GE도 생산보다 해외 주식시장 투자에 주력했다. 감세로 사회보장제도가 줄어들어 국내 시장이 위축된 선진국 자본은 후진국에 개방을 요구한다. 자본의 세계화로 후진국의 유치산업은 망하게 된다. 1997년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 시장은 IMF의 긴축정책으로 외국 자본에 다 먹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흐름을 읽은 대통령이라면 외세에 쉽사리 굽혀선 곤란하다.
 
-외국에선 지금 한국이 가장 빨리 경제위기를 벗어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도 상승하고 있다.
=외국 자본은 국내 시장에서 이익만 보면 그만이다. 그외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다. 우리 국민은 계급의식이 약하다. 가난한 사람도 종부세 폐지에 찬성한다. 반면 아파트나 주식 가격이 오르는 데는 민감하다. 이명박 정부는 건설족과 자산가를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수출에 의존해 경제위기를 타개할 수 없는데도 양극화를 심화해 국내 시장도 커질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자칫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국내 증시 반등은 환차익을 노린 투기적 해외자본이 들어온 탓이다. 기업의 수익성과 괴리된 주가의 거품은 터질 수밖에 없다. 외국 투기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주가 폭락과 환율 폭등의 악순환이 재현된다. 가계 부채로 쌓아올린 국내 부동산 투기는 더 큰 거품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 인플레까지 덮치면 서민과 노동자는 파멸이다.
 
-국민소득 몇만 달러니 경제성장률 몇 %니 하는 ‘747’ 수치 놀음이 국민경제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편의상 2천만 원이라고 하자. 4인 가족이면 8천만 원이다. 이 연간 8천만 원은 세금을 낸 뒤의 숫자다. 내가 지난해 서울대 교수 정년 퇴임할 때도 네트로 8천만 원이 안 됐다. 우리나라 가구 중 연간 8천만 원을 받는 비중이 몇 %나 되겠나.
 
-가구 기준은 아니지만 2007년 국세통계를 보면, 소득이 8천만 원을 넘는 노동자는 전체 납세 노동자의 2.2%에 불과하다고 한다.
=국민계정이란 게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쨌든 4인 가족에게 8천만 원을 줄 수 있다는 건데 독일의 기본소득제 개념으로 절반 정도를 현금으로 주면 어떻겠나. 얼마나 힘들면 맨홀 뚜껑을 훔쳐 팔아먹겠는가. 못살기 때문에 범죄나 자살이 느는 것인데 법과 질서 유지에 돈을 많이 쓰고 있다. 게다가 민주주의를 후퇴시켜 ‘촛불’을 진압하느라 시국 치안 비용이 늘고 있지 않은가. 빈곤을 없애는 데 돈을 쓰는 게 훨씬 낫다. 영국처럼 공공 장기 임대주택의 월세를 소득에 비례해 매기고, 실업을 당하면 공짜로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친서민 행보의 진정성을 인정받는 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할 때 정운찬 교수와 사이는 어땠나.
=정 교수는 경제학과 5년 후배다. 경제학 교수 선발 과정에서 정 교수는 다른 교수들을 설득하며 내가 임용되도록 도와줬다. (원로교수들의 친일 행적을 거론한 논문으로 인해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 서울대 미대 교수 사건 때는 내가 복직위원장을 맡았는데 당시 정운찬 교수는 총장 후보에 나선 상황이었다. 그때 복직 문제를 해결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총장이 되더니 생각이 많이 바뀌더라. 물론 총장 주변을 에워싼 보직 교수들이 보수적인 탓도 있었다. 그때 나는 김민수 교수가 총장실 앞에서 텐트를 치고 농성하는 것을 도왔다. 대법 판결까지 간 지난한 투쟁이었지만 일부 보직교수들의 반대에도 정 총장이 복직을 최종 수용해줄 땐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정운찬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총리 지명을 수락한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케인스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한 정 교수는 평소 성장과 경제적 자유를 우선하는 ‘공급경제학’을 비판해왔고 감세를 ‘부자의 경제학’이라고 단정했다.
=케인스주의자들은 국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국가 물신주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국가의 총리로 들어갈 수 있다. 케인시언은 서민 정책을 정부가 시혜를 베푼다는 차원에서 생각한다. 못사는 사회 구성원의 정당한 권리라는 개념이 없다. 정 교수는 좌파가 아니다.
 
-정 교수는 ‘경제학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세계관의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선을 그어왔는데 총리 내정 발표 직후엔 이명박 대통령과 경제 철학에서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김수행 교수는 어느 글에서 사상적 전향을 하는 뉴라이트는 분명한 근거를 대야 한다고 했다.
=정 교수가 총리가 된 뒤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아니요’라고 할지는 솔직히 확신을 못하겠다. 다만 케인스학파도 주류 경제학이므로 주류 사회의 총리가 되는 것이 이상할 게 없지 않나. 내가 청문회 받는 것 같다. (웃음) 이쯤 하자.
 
-안산 상록을 10월 재보선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할 예정인 임종인 후보를 야권 단일 후보로 지지하는 선언에 참여했다. 그동안 시국선언은 많이 했지만 현실 제도 정치권에 대한 개입은 이례적으로 보이는데.
=전교조 안산지회에서 강의하고 있는데 임종인씨가 가끔 들렀다.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선거가 중요하다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줄여 실업자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처럼 입법으로 할 수 있는 게 많다. 집권 세력을 잘 뽑아 좋은 정책을 활용할 수 있으면 더 좋다. 정말 투표 좀 잘해보자.
 
-진보 진영의 선거 승리만큼 마르크스경제학이 대중성을 얻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된다. 삼성경제연구소 같은 재벌 연구소에 맞설 든든한 진보 경제연구소가 나왔으면 좋겠다.
=아픈 얘기다. 제자들과 함께 ‘김수행 콜로키움’을 만들어 성공회대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발표 모임을 열고 있다. 연구단체를 운영하는 게 사실 굉장히 어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연구해서 현실경제를 분석하고 사회를 바꿔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경제이야기>란 책도 쓰셨는데 한국 사회의 대안은 뭐라고 보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사민주의 모델인가. 계획적 자본주의, 참여계획경제 같은 용어도 많이 나오던데.
=특정한 모델은 없다. 모든 사람이 잘살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모델이 나올 것이다. 각 나라들의 모델은 그 사회의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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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19 13:16
아래 글은 홍세화님과 김수행 교수가 나오기는 하지만,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논하고 있는 글이다. 이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고,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세계화가 논의되는데, '세계화’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이고, 이는 제국주의화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벌써 한달 전에 한겨레신문에 나온 것이지만, 그냥 묵혀두긴 뭐해서 퍼다나른다. 한겨레도 저작권이 어쩌고 저쩌고 해서 전문을 퍼오는 것이 조금 찜찜하지만, 그래도 밑줄 그으면서 읽어야 맛이지, 링크만 해놓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실 여기에 좀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만, 이는 생략... 
  
‘신자유주의’ 탈출구 없는가 (한겨레, 정리 김성재 기자, 편집 2005.04.18(월) 17:11)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 ‘대부’ 김수행 교수
 
신자유주의의 벽을 뚫을 탈출구는 없는가? 홍세화 기획위원이 지난 11일 목련꽃이 피기 시작한 서울 신림동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국내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김수행(62)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 그 가능성을 찾아봤다. 홍 기획위원은 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비판해 왔고, 김 교수는 그동안 강단과 미디어를 통해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예고해왔다. 진보적 운동가와 백발의 노교수의 이날 대담은 ‘마주보기’라기 보다는 어쩌면 ‘함께보기’에 더 가까웠다.
 
홍세화 기획위원=자본주의 역사를 보면, 인간 본래의 탐욕을 공공성이나 양심 같은 것들로서 적절히 제어해 왔지요. 그런데 요즘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는 그런 제어장치를 배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교수님은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규정하는지, 그것부터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수행 교수=신자유주의라는 게 자본주의의 불황을 극복해 보려는 정책으로서 등장한 것이에요. 20세기 들어 두번째 대불황을 겪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극복할 것인지가 서구 자본주의에 가장 큰 과제로 대두됐죠.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기업가에게 이익을 많이 주고, 그 이익으로 재투자를 하게 하고… 이렇게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죠.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복지사회다, 사회보장제도다 하는게 사회적 합의였고, 완전고용이나 노동조합의 권리를 향상시키는 게 정부의 몫이자 목표였지만, 그 후로는 불황극복을 위해 이런 합의와 구실이 축소되고 해체되는 과정이 일어났습니다. 기업가·자본가에게 이익을 더 주려면 세금을 낮춰야 했고, 그러다 보니 사회보장제도나 완전고용, 노조 권리는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국제통화기금·세계은행·세계무역기구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해 그 정책기조를 세계시장에서 관철시킨다고 하지 않습니까?
=‘세계화’라는 것의 핵심은 결국 선진국 자본이 세계 각지로 진출하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 다른 나라 시장을 뺏으러 나가는 거예요. 밖으로 나가려면 남들이 문을 열어야 하는데, 그 첨병이 바로 국제통화기금이니 세계무역기구니 하는 것들입니다. 세계 각 나라가 투자한 주식회사인 국제통화기금에서는 미국이 거부권을 쥐고 있어 다른 나라들이 꼼짝 못하게 되어있어요. 요즘은 ‘세계화’보다는 ‘제국주의화’라는 말을 경제학에서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정부의 축소를 주장하는 ‘작은정부론’을 들고 나옵니다. 다국적기업이 제국주의적 힘을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을 보면, ‘작은정부론’이란 게 결국 민족국가의 틀을 약화시키고 제국의 힘을 키우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죠. 다국적기업의 힘이 강해지면 국민국가의 힘을 능가해서, 정부는 축소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국민국가는 절대 없어지지 않을 거예요. 미국이나 영국같은 국민국가가 다국적기업을 뒤에서 엄청나게 지원하고 있지 않습니까? ‘국민국가가 사라진다, 약화된다’하는 얘기는 후진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공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작은정부’라고 해도 우리와 외국(선진국) 사이에는 관점이 많이 다릅니다. 외국에서는 ‘정부가 국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우리는 ‘세금도 안 거두고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기조를 갖고 있는 노무현 정부는 ‘참여복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그 실체가 어떤 것이라고 보십니까?
=앞서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도 나름대로의 소임을 갖고 있었죠. 김영삼 정부가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든가,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김정일 주석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들입니다. 노 정권은 사회의 기본질서를 잡아야 한다는 나름의 의무를 안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부정부패를 없애고, 사회질서를 바로 잡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죠. 이걸 해내려면 노동자계급과 노동자 조직의 힘을 빌려야한다고 생각했는데, 노 정권은 생각보다 노동자계급을 적대시하는 것같습니다. 노동자를 대량해고하고나서 무슨 사회복지가 있겠습니까? 노 정권의 복지정책의 한계가 여기서 확연히 드러나죠. 홍 위원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에, 기업 쪽에 기울어져 있던 노사관계의 균형을 임기 마칠 때까지는 잡아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철도·물류 파업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변하더군요. 노 정권의 권력 자체가 민중적이지 못했다는 점, 노 정권을 떠받치는 지지세력의 계급적 한계 탓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수구 언론과 미국의 입김도 있었을 것이고요.
=그동안 역대 정권이 내세운 복지정책의 기본은 ‘경제성장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란 것이었습니다. 기업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죠. 복지는 가족이 담당해라… 이런 식이었는데, 복지는 가족이 아니라 사회가 담당해야하는 것입니다. 노 정권의 복지정책도 이전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 모든 나라가 경쟁력을 높이고 수출도 늘리고 그렇게 해서 고용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정책은 모두 실패할 수 밖에 없어요. 수출 늘리고 경쟁력 높이려면 가장 쉬운 방법이 노동자 임금 깎고 사회보장제도 줄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런 정책은 국내 시장을 엄청나게 줄이게 되는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죠. 모든 나라에서 국내 수요가 줄고 국내 시장이 좁아지면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이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아무도 신자유주의로 성공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노 정권이 하고 있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생각을 바꿔야 해요.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빈부격차를 줄이고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자, 고소득층한테서 세금을 많이 거두고 군사비는 줄여서 못사는 사람에게 혜택을 넓히자, 이렇게 해서 국내시장을 키우는 것이 우리 경제가 발전하는 토대를 만드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노 정권이 사회적 연대의 제도화라든지, 공공성과 사회정의의 토대를 굳건히 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갖고 있는데, 이걸 저버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거죠.
=노 정권은 한국사회를 어떻게 이끌어 가야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외국의 신자유주의 사상을 굉장히 많이 도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의 경우 이미 한참 전에 사회보장제도를 운영하다가 그것이 문제가 있다고 보고 신자유주의적 복지정책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에는 과거에 사회보장이란 게 없었죠.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가 외환위기를 맞은 것을 보면, 우리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조건으로 금융시장 개방을 급속히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 이런 정책을 추진한 정부의 핵심 정책 운영자들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있거든요. 그러니 참여정부 역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은 학계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맞습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굉장히 자유주의적이고, 시장에 모든 걸 맡기자는 방식 아닙니까? 교수들 대부분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사람들인데, 노 정권을 ‘좌파’라고 부를 정도로 미국식 시장주의에 쏠려있습니다. 큰 문제입니다.
 
=노 정권을 ‘좌파’라고 하는 얘기를 들을 때 당혹스럽더군요. 노 정권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저는, 분단 이후에 ‘반공주의 우파’가 집권했다면,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은 ‘시장주의 우파’가 집권한 것이라고 봅니다. 반공주의 우파 집권기에는 노동운동이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인식되고 국민들의 동의를 받았죠. 그런데 시장주의 우파정부 아래서는 노동운동이 오히려 더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노 대통령이 “민주화된 시대에 노동자 분신이라니…”라고 말하더군요. 고려대 최장집 교수의 말처럼,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이제 우리 화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민주화 운동 세력이 노동자 대투쟁에 엄청나게 반대를 한 거예요. 그들의 반노동자 정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말하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라는 것이 결국엔 성장중심을 말하는 것이죠. 국민들이 이런 점을 인식해야 하는데, ‘선순환’이니 ‘소득 2만불’이니 하는 데에 현혹되고 있는 거죠. 실제로는 삶이 아주 팍팍해지고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도 자꾸 커지고 있거든요. 과거 정권이 ‘안보 이데올로기’를 퍼뜨렸다면 지금은 ‘불안 이데올로기’인 것 같아요. 사회 구성원들이 자아실현 같은 데에는 관심도 못 가지고, 심지어 젊은 대학생들도 취업걱정에 사로잡혀 있어요. 결국 경제동물화하는 사회 분위기가 퍼지고, 계층 상승의 가망성은 보이지 않고 사회는 더욱 험악해지는 겁니다. 노동운동에서도 노동자들이 자기 정체성보다는 자본주의적 심성에 포섭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래서 저는 좀 비관적인 편이예요.
=성장과 분배 문제를 말할 때 자꾸 이런 얘기를 합니다. ‘분배에 치중하다보면 성장을 못한다,’‘빵을 우선 키워놓고 난 뒤에 갈라먹어야 한다’라고요. 이런 얘기는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늘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빵을 키워놓아도 누가 그걸 갈라줍니까? 아무도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계속 구호만 나오는 거죠. 사실, 지금 같은 생산 수준에서 분배를 잘만 하면 모두가 잘 살 수 있습니다. 지금 국민소득이 1만달러라고 하면, 한달에 한사람의 소득이 대략 100만원이란 얘기고, 한가족이 4명이라고 할 때 4백만원이 되죠. 이렇게 계산하면 모두 먹고살 만한 소득이잖아요. 문제는 부가 집중되어있다는 겁니다. 한번 주위를 둘러 보세요, 돈이 없어서 병원에도 못가고 자살하고 노인들은 외롭고…. 은행에 앉아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봐도, 일은 정규직보다 더 많이 하면서 봉급은 반인데다 사회보험 혜택도 못받잖아요.
 
=일부에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심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까?
=위험한 생각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10%밖에 안돼요. 전체 노동자 가운데 이 10%는 자기 먹고 살기도 힘들고 자기 권리 옹호하기에도 바쁩니다. 그들은 나머지 90%를 위해 뭔가 해낼 방법이 없어요.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이 자기 봉급 깎아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아닙니다. 지난번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 논란 때 민주노총 사람에게 “자꾸 노사정위원회 들어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어요. 대신, ‘어떻게 비정규직을 조직화하고 그들과 연대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조 조직률 10%라고 하면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인데, 이들이 대기업에는 영향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문제에서는 힘이 안됩니다. 또 정규직은 갈수록 줄어들지 않겠어요?
  
=민주노총으로서도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거론되도록 해야 할지 고민이 많더군요. 현장에서는 비정규직 조직화가 잘 안 이뤄지고, 현재 법체계에서도 어렵고… 그래서 가능한 어떤 틀이라도 얻어내려고 한 것이 노사정위 복귀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노동운동에서는 노조가 힘이 셀 때에만 무언가 얻어낼 수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노 대통령이 노동정책을 펼치면서 노조하고 상의하는 것 봤습니까? 그건 노조가 힘이 약하다는 뜻이예요. 힘이 약할 땐 타협으로는 별 소득이 없어요. 이건 역사가 증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민주노총 상층부가 이 문제를 좀 안이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가 아직 분배냐 성장이냐하는 틀거리에 머물러 있습니다.
=공장에서 부가가치를 창조하는 것은 결국 노동자입니다. 이 부가가치를 이윤과 임금으로 나누는데, 임금도 분배의 문제이고 이윤도 마찬가지예요. 이윤 중에서 사내유보와 배당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분배입니다. 그런데 분배를 얘기할 때 항상 임금만 가지고 말합니다. 임금이 너무 많으니 깎자고요. 우리나라 노동자 임금은 노동생산성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타결되고 있습니다. 주주들이 배당을 많이 요구하는데, 이를 좀더 합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배당을 줄여서 사내유보로 돌리고 재투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임금을 말할 때, 기업이 직접 노동자에게 주는 부분을 ‘직접적 임금’이라고 하고, 사회보장을 통해 노동자에게 주는 여러 혜택을 ‘간접적 임금’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경우는 노동자들이 병원비·교육비·연금 등 얼마나 많은 간접적 임금을 받습니까? 우리는 그렇지 못하죠. 간접적 임금으로 받지 못하는 부분은 직접적 임금으로 커버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임금이 높다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세금 잘 내서 사회복지를 늘리면 직접적 임금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사회죠.
 
=교수님은 대체로 우리 사회의 변혁을 낙관적으로 보시는군요.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어느 정도 낙관하십니까?
=신자유주의로 인해 유럽에서는 실업문제도 제대로 해결 못하고 사회복지도 후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실행하기가 어려워졌어요. 5월에 있을 영국 총선에서는 아마 보수당이든, 노동당이든 사회보장제도를 더 축소하겠다는 얘기를 꺼내지 못할 거예요. 외국도 이런 상황으로 가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 쪽에서 먼저 무너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진국으로 신자유주의 해체가 넘어오겠죠. 그래서 우리가 자꾸 현재 서구의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잡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후진국에서는 선진국보다 더 빈부격차가 심하고, 실업자는 많고, 외국 자본의 횡포는 심해서, 반발이 거세질 것이고요. 결국 세계적인 민중연대가 상당히 진척될 가능성이 큽니다. 선진국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가 터져나오고, 후진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시작되면, 신자유주의는 수년내에 막을 내릴 것이라고 봐요. 신자유주의를 이끄는 미국의 힘은 군사력에서 나옵니다.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죠. 그래서 반전운동도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의 일환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무너지고 난 뒤의 대안은 무엇입니까?
=자본 쪽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갈 것입니다. 불만이 폭발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예요. 자본 이동을 너무 자유롭게 해서 금융공황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규제하는 방법을 연구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도 이런 쪽이 힘을 얻을 것이고요. 또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평등주의적인 사회를 요구할 거예요. 자본과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하지만 그 안에서 수익성 위주로만 가는 방식에 규제를 가하게 될 것이고, 생태 문제를 포함해 모든 결정에 더 많은 사람이 주체로 참여하는 경제형태로 갈 것입니다. 복지국가가 되살아나면서 좀더 평등하고, 좀더 많이 참여하고, 계획성이 더 많이 도입되는 자본주의입니다. 복지국가의 개념에서, 기본적으로는 자본가가 주도권을 갖겠지만, 노동자와 일반 시민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한단계 높은 수준의 자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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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가 문화사회연구소에서 개최하는 문화사회아카데미 ‘한국의 맑스주의 지형연구´ 강좌에서 현 노무현 정부는 우파라고 규정하였다. 당연한 말을 반복한 것이다.
 
“비정규직 양산 노무현 정부는 우파” (서울신문, 박홍환기자, 2007-01-10  29면)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김수행 서울대 교수
 
9일 미리 배포한 ‘한국사회와 자본의 세계화´라는 주제의 강의자료에서 그는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보수대연합 등을 통해 노동자·민중을 제압할 수 있는 헤게모니를 구축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현 정부의 잘못된 경제정책으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모토로 한 정책 정비 ▲비정규직 관련법 제정 ▲노동의 유연화와 노동운동의 무력화 ▲여러 국가와 자유무역협정 추진 등을 꼽았다. 그는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자를 ‘임금노예´로 만들어 고용을 증가시키려는 정부의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면서 “노동자들이 건전한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고용과 임금을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유럽의 선진국들은 1945년에 이미 복지국가를 건설했는데 한국은 지금도 자살, 범죄, 인권유린이 판치는 야만상태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내수기반 확충→안정적 경제성장→인권유린과 증오의 해소→사회적 타협의 확대´라는 유럽 선진국의 길을 따라야 한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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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정년퇴임하는 김수행 교수 인터뷰 2007/09/13 16:17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둔 김수행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모았다. 학부 때 김수행 교수의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수강한 적이 있는데, 학점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실 김수행 교수의 강의가 김진균 교수의 강의 못지 않게 약간은 지루한 내용이었기에 학습유발동기가 약했다고나 할까. 정운영 교수의 [가치론] 수업은 나름 학점이 잘 나왔으니 강의방식의 차이라고 해두자. 
  
아무튼 내년에 김수행 교수 후임으로 훌륭한 맑스경제학자가 임용되었으면 좋겠고, 김수행 교수가 참여하는 사회과학대학원도 잘 되었으면 한다. 시간이 나면 나도 거기서 강의를 들어볼까나.
 
  
‘마르크스 경제학’ 강단서 밀려난다 (한겨레, 강성만 기자, 2007-09-04 오전 02:31:27)
서울대 김수행 교수 후임채용때 전공 특정 않기로
전공교수 5개 대학으로 줄듯…비주류 경제학 소외

  
김 교수는 현재 마르크스 경제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 연구자 9명을 지도하고 있다. 또 학부에서 ‘현대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 교수는 “서울대 학부에는 ‘정치경제학 입문’과 ‘마르크스 경제학’ 등 모두 3개의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선택 강의가 있는 데 수강생은 합해서 모두 200여명”이라면서 “다른 주류 경제학 강의에 비해 학생수도 많고 박사과정 연구자도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도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두지 않으려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자들은 1980년 초·중반 활발하게 대학 강단에 진출했으나 1990년대 이후에는 단 2명만이 정규직 교수로 신규 채용되는 등 이 분야 학맥이 대학 강단에서 끊기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마르크스 전공자들의 ‘전향’도 겹치면서 현재 서울대와 연세대, 전남대, 경상대 등 6개 대학만이 마르크스 경제학 전공 교수를 채용하고 있다고 경상대 정성진 교수는 밝혔다. 정 교수는 “대학 학부에서 자본주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류와 비주류 등 상반된 관점을 동시에 지도해야 하는 데 우리의 경우 ‘학문적 동종교배’가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평생 마르크스 연구하고 가르쳐… 자본론은 세상을 보는 올바른 눈” (서울신문, 이문영기자, 2007-09-11  24면) 

1982년, ‘불온사상’ 마르크스경제학을 전공한 김 교수를 받아들인 첫번째 학교는 당시 군사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던 한신대학교였다. 김 교수는 그런 한신대의 민주화를 주장하다 고 정운영 교수와 동반 사직했고,89년 2월 서울대에 자리를 얻었다. 그의 서울대 임용은 ‘정치경제학’ 전공 교수를 원하는 서울대 대학원생들의 수업거부 및 타교 학생들의 연대시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교수는 “이 사건은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크게 확장하고, 각 대학이 진보적 교수들을 대거 영입해 교과과정을 대폭 개정하게 한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위기’, 나아가 ‘종언’을 이야기하는 시대.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가 위기였던 적은 없다.”고 단언한다. 평생 마르크스를 읽고, 연구하고, 가르쳐온 그는 “90년대 이후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급격한 쇠퇴는 마르크스주의 그 자체의 쇠퇴가 아니라, 학문적 유행에 민감하게 처신하며 마르크스주의를 폐기처분한 지식인들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변종 마르크스주의’인 스탈린주의가 맹위를 떨쳤던 한국 사회에서 ‘스탈린주의 몰락’을 ‘마르크스주의 몰락’으로 등치시킨 지식인들이 철저한 반성적 평가 없이 너무 빨리 사상적 포기를 단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 사회과학계는 하나의 화두에 천착해 평생을 연구하는 풍토가 취약하다.”고 일침을 놓았다.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심각한 과제 중 하나로 거론되는 학문후속세대의 재생산 문제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비관하지 않았다. “양극화 심화, 비정규직 급증 등 신자유주의가 양산하는 현실적 문제가 대안적 사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고, 대안적 사상의 중심엔 늘 마르크스주의가 있어 왔다.”는 주장이다. 김 교수는 “최근 몇 년 동안 마르크스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감지된다.”면서 “현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주류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6월 말 제3회 ‘맑스 코뮤날레’를 개최하며 상임대표를 맡았던 그가 “우리는 전진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표현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김 교수는 무엇보다 제대로된 연구와 공부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에 회의를 갖기 전에 마르크스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철저하게 공부해야 한다.”면서 “그 후에야 어떻게 실천할지, 어떻게 마르크스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자신 ‘마르크스주의 전파자’로서 역할을 설정하고, 평생 수많은 책을 읽고 쓰며 마르크스주의와 더불어 살았기 때문에 가능한 지적이다. 김 교수가 한국 학계에 기여한 가장 큰 공로는 역시 ‘자본론’ 완역을 꼽을 수 있다. 엄혹했던 시절, 일본에서 귀국하는 친구 이삿짐 속에 북한판·일본판본까지 숨겨와 번역한 ‘자본론’은 마르크스주의에 목말랐던 국내 학계의 지적욕구를 해갈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교수는 여전히 ‘자본론’을 “세상을 올바로 보는 눈이자, 자본주의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파악하는 유익한 도구”라고 믿는다. 다만 “‘자본론’의 현재화를 위해서는 마르크스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독점과 금융공황, 대외관계 등을 오늘에 맞게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수행, "맑스주의 전파 계속 힘쓸 것" (참세상, 유영주 기자, 2007년09월06일 13시14분)
사회과학대학원(준) 2학기 개강, 자본론 강의 
 
김수행 교수는 지금 학부에서 현대마르크스경제학을, 대학원에서는 고급마르크스경제학연구 강의를 하고 있다. 학부는 약 200명 정도 되지만 박사과정과 석사과정은 각각 9명, 3명으로 마르크스경제학을 연구하는 연구자의 숫자도 열 손 안에 꼽히는 실정이다. 연구자가 재생산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예상은 했지만 간명한 답이다. "취직을 못하니까... 지금 공부하는 친구들도 힘들 거다. 노동운동을 하든가 민주노동당 같은 데로 갈 수는 있지만.. 국책연구소로 가기도 하고......"  
 
사회과학대학원 활동은 퇴임 후에도 마르크스경제학을 전파하기 위한 연구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난 6월 맑스코뮤날레 상임대표를 김세균 교수에게 맡긴만큼 사회과학대학원 일에 보다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사회과학대학원 준비모임은 이야기 나온 건 벌써 5년이 되었다. 연구자들이 수차례 만나 사회과학대학원 설립 문제를 의논하기도 했지만 당장 설립이 쉽지는 않다. 설립은 교육부 인가 문제인데 인가 조건을 맞추기가 상당히 어렵다."
 
설립 이야기가 나온 지 꽤 되었지만 현재로서는 설립 자체보다 교육운동, 학술운동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수행 교수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동안 교육운동의 차원에서 맑스주의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거기서 학생들간의 유대관계를 만들고 세력화하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했다.  
 
사회과학대학원은 지난 학기 5일간 7시30분부터 10까지 문학과경제, 노동과정론, 역사와혁명, 정치경제학, 욕망과혁명 등 다섯 과목 강의를 개설 운영했다. 8학기 과정을 두고 오는 9월 10일부터는 1-2학기를 시작한다. 김수행 교수가 맡은 과목은 '자본론', 모든 학생이 들을 수 있도록 필수 과목으로 선정했다. 1-1학기에는 학생 40명이 수강했다. 40명 중에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몇 명 안 되고 오히려 일반인들이 많았다. "노조 조합원, 교사, 일반 직장인도 있고... 대학원이므로 '석사' 과정이라 봐야 하는데 사회과학대학원이 그걸 해주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쨌든 프리랜서가 많이 온다. 여러 분야에서 맑스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학생들이 학생회 조직을 잘 만들고 있다. 1학기 학생들과 강화도로 엠티를 갔는데 강의에 대한 평은 좋아보였다. 다만 교육 행정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힘이 부친다."   
  
마르크스경제학과 타 분야 학문과 운동에 대한 연계에 대한 관심도 비쳤다. "내가 볼 때 인터넷도 발달하고 이런 과정에서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조류는 많이 발달하고 있다. 여성운동, 문학, 환경도 그렇고 맑스에 의지한다고나 할까...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보는데 하나로 뭉치는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학과 경제가 연결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그런 게 가능하다고 본다. 앞으로 각 분야가 연결될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더 많아지지 않겠나." 
 
재정 기반은 녹록치 않다. 현재로서는 학생의 등록금이 주된 수입원이다. 김수행 교수는 "강사료, 사무실 운영하고 나면 빠듯하다. 여유가 생기면 적립도 하고 계속 유지를 해나가야겠지... 무엇보다도 운동 차원에서 신뢰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앞으로 사회과학대학원이라는 교육운동에 관심있는 사람들한테 매달 얼마씩이라도 회비를 받아 일정한 수입을 확보할 생각이다. 운영은 강사모임에서 하고 학생은 학생모임을 한다. 강의 과목과 강사 운영 문제와 등록금 문제 등을 교사학생 협의체에서 한다. 등록비는 3만 원이고, 한 과목 수강료는 15만 원, 두 과목은 30만 원, 3과목 이상은 40만 원으로 되어있다.
  
곧 강단은 떠나지만 맑스주의를 전파하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퇴임하는 김수행 교수에게 있어 사회과학대학원은 마르크스주의 전파의 연장에 있는 연속된 공간인 셈이다. "살아온 길을 보면 운이 대통하다 싶다. 마르크스 공부하고 한국 들어왔지만 안 잡혀가고 지내기도 했고, 89년에 서울대 들어오는 것도 주류경제학이 아니면 들어올 수 없는데 학생들이 데모해서 받아주었고, 건강하니까 자본론 번역도 하고 책도 많이 쓸 수 있었다. 다만 밖으로 운동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점이 안타깝다. 좌파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이 나오고 정치세력화도 잘 되고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않은 데 대해 미안하고 능력부족이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럼요, 자본주의 타도해야 합니다" (오마이뉴스, 천호영 기자, 2007-06-27 09:05)
[인터뷰] 제3회 맑스코뮤날레 상임대표 김수행 서울대 교수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자본주의를 타도합시다'는 말이 진정인지? 김 교수는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 웃음과 함께 답변했다. "IMF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사민주의적인 복지국가를 이야기하는 것조차 먹히지 않고 있어요. 자본가계급의 사적 이윤 추구가 경제를 점점 더 지배하는 상황에선 중도파적인 복지정책도 곤란하거든요. 소유관계에 제약을 가하는 운동이 안 되면, 결국 복지 자체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요새는 조금 더 밀어붙여야겠다는 생각에서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 '타도'라는 표현에는 물리력을 통한 체제 전복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폭력혁명을 주장하시는 건지요?
"그렇게 느낄 수도 있는데…. 지금 상황에선 소유문제를 그런 식으로 안 하더라도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번 맑스코뮤날레에도 그런 제안이 많이 나오는데, 택지국유화를 하자든지, 민주노동당에서 얘기하는 의료나 교육 문제를 공공화하자든지, 이런 게 다 가능하거든요. 저는 그걸 다 자본주의를 타도하자는 개념에 포괄하고 있는 겁니다."
 
이번 제3회 맑스코뮤날레의 주제는 '21세기 자본주의와 대안적 세계화'. 김수행 교수는 21세기 자본주의의 특징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정리했다. "1973년 석유파동 이후 30년 넘게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고 있는데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어요. 신자유주의가 경제적으로만 보면 국내에서 사회보장제도를 많이 해체해버리니까 국내시장이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국내시장이 확 줄어드니까 자본가계급과 정부에선 결국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세계화가 그런 거거든요. 각 나라에 대해서 무역자유화, 외환자유화, 자본이동자유화가 쭉 펼쳤으니까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는 딱 묶여있는 거예요."
 
그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그에 따라 반발이 거세져 혼란의 시기가 온다며 "실제로 지금 혼란의 시기가 왔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라크전쟁을 신자유주의 세계화 진영 내부의 탈출구로, 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정권의 실험을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파악했다. 김 교수는 또 맑스코뮤날레 초대 글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대안으로 "코뮌이 우리의 목표"라고 제시하며 "새로운 코뮌적 대한민국을 건설하자"고 제안했다. "코뮌이라는 건 결국 하나의 사회가 공동체적으로 연대의식을 가지고 모두가 참여하면서 같이 잘 살자는 게 기본적인 아이디어죠. 계급 간의 차이라든가 갈등이라든가 지배라든가 그런 게 없이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회를 코뮌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는 그 같은 코뮌의 형태가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그리고 있는 자본주의 이후 '새로운 사회'의 모습과 일치한다고 했다.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에서는 인적 물적 자원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이 과정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일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돈 있는 사람은 일을 안 했는데 모든 사람이 일을 하면 노동시간이 2, 3시간 줄어들어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면서 문화도 계발하고 기술도 개발하는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현실 가능성이 없는 유토피아로 느껴지는데요?
"유토피아적인 것이 맞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거기로 갈 수 있는가죠. 이번 맑스코뮤날레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정치운동ㆍ시민운동ㆍ학술운동이 어떻게 해야 할까가 문제인데, 아직은 조금 미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럼에도 지금 시기 좌파 진영이 마르크스주의 깃발 아래 모이는 의미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지난 2회 대회의 주제는 '맑스, 왜 희망인가'였는데, 여전히 마르크스가 희망인지요?
"희망이죠. 지금 자본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상적으로 여러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걸 연구하는 사상의 핵심은 마르크스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를 가장 많이 연구하고 비판한 사람이 마르크스입니다. 이상주의적이긴 하지만 자본주의 외에도 다른 사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줬거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자기를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가 올 수 있다, 이러면 얼마나 큰 희망이 되겠습니까. 연구자들로서도 안 풀리는 문제에 대해 마르크스에서 영감을 얻어 자신의 상상력으로 새로운 걸 창조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수행 교수는 1989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국내 좌파진영의 방황 원인에 대해 두 가지 측면에서 진단했다. 첫째는 1980년대 마르크스주의 학습이 학문적 차원에서 깊이 있는 연구의 바탕없이 주로 변혁운동 차원에서 진행됐고, 둘째로 그 학습 교재조차 대부분 스탈린주의에 기반한 소련공산당 서적의 일본 번역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소련의 붕괴를 마르크스주의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좌파 진영이 흔들렸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는 철저히 분리해서 사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뮌이라는 개념도 '공산주의' '코뮤니즘'의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그 용어가 스탈린주의를 연상시키기에 차별성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스탈린주의의 기본 아이디어는 계획과 생산력입니다. 모든 것을 계획해서 생산력을 올린다는 것이죠. 그렇기에 스탈린주의에는 노동자들이나 주민들의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참여의 개념이 없어요. 마르크스가 늘 얘기했던 노동해방이나 인간해방이란 개념이 빠져있는 거죠."
  
- 그럼 지금 좌파진영의 역량은 어느 정도나 복원됐다고 보시는지요?
"소련이 망한 이후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새롭게 연구가 심화되기 시작했습니다. 들뢰즈, 가타리 등 철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많이 나왔고, 지금은 역사학, 경제학, 정치학 면에서도 역량이 상당히 많이 쌓이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특히 우리는 1997년 IMF 사태를 겪으면서, 실업문제가 커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마르크스주의가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노무현정부의 성격에 대해선 어떻게 규정합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이 권위를 안 내세우고, 민주주의적으로 하려고 하니까,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했나요? 좌파라고 얘기하려면 노동자계급, 민중세력의 이익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야죠. 독재를 안 한다는 의미에서 진보하고, 민중의 이익을 옹호한다는 의미에서의 진보를 혼동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경제면에선 완전히 보수라고 봐야죠."
 
- 그렇다면 대선정국에서 좌파진영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동자의 힘'에서 '내가 후보다'라는 운동을 한다는데, 실제로 대통령이 안된다고 하더라도 합법적인 공간에서 우리 사회가 이런 대안도 있다는 걸 많이 알리는 좌파 선전기간으로 활용하는 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 직접 현실 정치세력과 관계를 맺고 활동하실 계획은 없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저는 그런 데 능력도 없고…. 저의 목표는 마르크스경제학을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는 겁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책도 알기 쉽게 많이 쓰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마르크스주의가 사상과 학문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걸 알고, 또 그걸 통해서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적입니다. 앞으로도 글 쓰고, 번역하고, 강의하고, 이렇게 쭉 할 겁니다."
 
현재 석사과정에서 비주류경제학 전공자는 한 학년에 한두 명 정도. 박사과정은 매년 13명 정도를 뽑는데, "요새는 들어온 학생이 별로 없다"고 했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꾸 없어지기도 하고, 또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해선 취직하는 게 굉장히 어렵게 됐어요. 지난번에 상공회의소 부회장이 그랬다죠. 강정구 선생의 과목 들은 학생은 안 뽑는다고. 기업에서 취업 때 과목도 보고 그러나 본데, 그런 것과 관련이 있어 전반적으로 비판적인 학문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나 활동가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적 신념을 가슴 한편에 품은 채 살고 있는 일반 생활인들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저는 그런 분들이 많아야 이 사회가 나아갈 길에 대해 좋은 방향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누가 빨갱이라고 그러면 꼼짝 못하는 세상입니다. 저변에서 스스로 느끼고 스스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것을 깨고 우리 사회가 훨씬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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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 강연, '신자유주의시대와 학문'을 보고(이재영) 2007/09/23 03:42
 
아래 글은 혁신네트워크의 칼럼방에 있는 이재영의 글이다.  
여기저기 부착되어 있는 김수행 교수 강연안내 포스터를 보고 한번 가볼까 한번 강연을 들으러 갈까 하다가 다른 일정 때문에 결국 가보지 못했다. 그런데 글의 필자는 직접 서울대에 간 모양이다.  
이 강연을 보고나서 쓴 의견도 나름 경청할 만하다.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있고...
  
 
20년쯤 전, 한신대에서 해직되어 보따리 장사로 떠돌던 김수행은 서울대에서 『자본론』 특강을 청탁받는다. 그런데 웬걸, 강의장이라 공지된 박물관의 문은 쇠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학생들이 주최한 행사였고, 당시에 으레 그러했듯 학교는 문을 잠그는 것으로 대응했다.
  
김수행과 강의에 모여든 학생들이 데모대처럼 우우 몰려간 곳은 관악산 기슭의 노천 강당이었다. 강의는 재미 없었고, 공장 빼먹고 구경 간 나는 햇볕 아래 꼬박꼬박 졸았다.
 
지난 13일, 쫓겨났던 그 박물관 강당에서 내년 퇴임을 앞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김수행 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는 자신들의 첫 번째 포럼을 내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 기념강연으로 잡았다.
 
이날 김수행 교수가 발표한 「신자유주의 시대와 학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1974~75년 세계적 공황과 불황이 닥쳤고, 그것을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극복하기 위한 사상과 정책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물론 신자유주의 본격화는 대처나 레이건 같은 우익이 선거에서 이겼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긴축정책은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자본가계급이 기업을 수익성  있게 운영하게 하는 목적에 이바지했다. 노동자계급을 약화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원래의 목적’이다.
 
긴축정책과 인플레이션 억제에 따라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규제의 완화에 따라 금융공황이 빈발하게 되었다. 또 민영화의 파탄도 드러났다. 기간산업의 민영화는 정부독점에서 민간독점으로 바꾼 것인데, 민간자본에 대한 수익성 보장은 적자 해소라는 애초 목적을 무색케 했고, 민간자본의 장기투자 기피에 따라 영국 철도 사고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신자유주의는 쇠퇴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주주가치 극대화라는 목표 자체에 의해서도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나타난다. 기업의 수익성은 저하하는데 주가는 상승하는 현상, 즉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 사이의 간격이 1995년 이래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 간격이 어느 수준을 초과하면 주가가 자기의 토대인 배당을 반영해 폭락하고 공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
 
신고전파 시장주의는 1929년과 30년대 대공황으로 사라졌다. 케인주의적 정부 개입에서 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로의 교체는 1974~75년 공황에 의한 것이다. 결국 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 신자유주의도 사라질 것이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나 범죄의 증가, 고령화 같은 것을 시장에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국가가 개입할 것이다.
 
미래 사회는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로의 이행이고, 이 모든 변혁과정은 정치적인 헤게모니 아래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대중 행사였으므로 김수행 교수의 강연은 평이했다. 하지만 노학자의 통찰을 간명한 표현으로 전해들을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공황에 따른 지배적 경제담론의 변화라든가, 기업 수익성과 주가의 괴리 현상이 공황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진단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두어 시간의 강의로 김수행 교수의 주장을 잘 파악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들은 바 그대로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나 이견을 품어본다.
 
김수행 교수는 케인즈주의 시대와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률을 비교하며 말했다. 어느 쪽이 좋다는 주관적 평가를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성장률 둔화 현상을 비판의 한 논거로 썼다. 그렇다면, 민중경제와 성장률의 일반이론적 관계는 무엇일까? 현재의 한국경제에 있어 적정 성장률은 어느 정도이고, 한국의 실천적 좌파는 ‘성장’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김 교수는 노동계급운동을 약화시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애초 목적이라고 주장한다. 신자유주의 경제철학이 노동운동의 약화를 목표하고, 개별 정책에도 그런 의도가 관철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하나의 경제시스템이 경제외적이고 정치적인 의도에 의해 운용되는 것이 가능할까 또는 그런 분석 방법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일까?
 
신자유주의 기획자들이 어떤 의도를 가졌든 신자유주의 역시 이전의 경제시스템처럼 나름의 경제운용 구조가 안정화되면서 ‘비정치적’으로 작동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김 교수는 기후온난화나 범죄의 증가, 고령화 등이 다시 국가 개입을 부를 것이라 낙관한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 현상 역시 각각의 주체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딸린 문제이고, 환경 문제에 민간자본이 더 발빠르게 대응하거나 미국 등에서 나타나는 민간자본의 감옥사업, 실버산업 등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신규 시장 창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물관 강당은 좀 추웠다. 에어컨이 너무 잘 나와서이기도 하고, 20년 전의 노천 강당보다 청객이 너무 적어서인 듯도 하다. 『자본론』을 번역해 내놓은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라 말하는 김수행 교수가 20년 전의 그 일을 기억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강의 내내 김 교수가 거듭 역설한 소회와 주장은 그가 20년 동안 『자본론』 번역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하여 새 비전을 알리고, 새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은 좋은 사람 찾아서 전국적인 선거운동을 펼쳐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궁극적으로는 역시 민중이 단결해야 한다. 학문을 하더라도 이런 데 관련된 학문을 해야 하는 것이고, 맑스 이론을 전파하는 것이 내 임무다. 퇴임 후에도 강의 다니면서 맑스를 이야기하겠다.”
 
신자유주의시대와 학문
2007.09.13. 김수행
  
1. 신자유주의의 등장 
1) 1974/75년의 세계적 공황과 그 이후의 장기 불황을 ‘자본주의적 방법’으로 극복하는 사상과 정책으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 자본의 수익률을 높여줌으로써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주된 주장이었는데, 시장근본주의를 통해 1945-1975년의 복지국가를 해체하는 의미를 가졌다. 세계적으로 볼 때, 영국에서는 1979년 5월부터 1997년 5월까지 집권한 보수당 정부가, 그리고 미국에서는 1979년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 의장이 된 볼커와 1981-1988년의 레이건 공화당 정부가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력하게 실시했다.
   
2) 주요 정책 
i) 실업의 감축보다는 인플레이션의 억제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었다.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를 받아 들여 재정금융의 긴축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크게 증가했다.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세력을 약화시킴으로써 자본가계급이 기업을 수익성  있게 운영하게 하는 목적에 이바지했다. 결국 ‘사회의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ii) 사회보장제도를 축소하고 재편했다. 이것은 자본가들의 조세 부담을 경감시킨다는 목적 이외에 노동자계급이 사회보장제도(실업수당, 소득보조, 무상의 교육과 의료 등)에 의거해 자본가계급의 독재에 대항하는 것을 막는다는 목적도 가지고 있었다. 
iii) 규제를 해제했다. 외환관리와 자본통제 및 국내의 금융규제를 해제했기 때문에, 산업기업과 금융기업들이 가장 수익성 있는 시장에 자유롭게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이른바 자본의 세계화와 경제의 금융화를 불러온 것이다. 
iv) 국영기업과 공익사업을 민영화하거나 정부 소유 주식을 매각했다. 민영화를 통해 경쟁을 도입함으로써 국영기업부문의 경영을 합리화하겠다고 선전했으나, 사실은 정부독점이 민간독점으로 바뀐 것이 대부분이다. 민영화의 진짜 이유는 정부 재정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였다. 집권 보수세력이 자기의 지지기반인 부자와 대기업에게 조세를 감면하니까 재정 적자가 크게 생겨 이것을 가장 쉽게 해결하기 위해 정부 재산을 팔아버린 것이다. 
v) 노동조합의 권리를 제한했다.
  
2. 신자유주의의 전개과정 
1) 경제성장률의 둔화, 실업의 격증, 소득불평등의 심화, 인종폭동의 빈발. 
2) 세계적인 금융공황의 빈발 
i) 금융적 자본의 투기적 이동, 새로운 금융상품(스왑, 파생상품 등)과 금융기법의 발명 등에 의해 금융거래가 대폭 증가했지만, 이것을 규제할 공권력은 없었다.  
ii) 1979-1982년 볼커의 고금리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달러가치를 안정시키며 자본 유출을 막음으로써 국내외 금융시장의 신뢰를 얻게 되었지만, 후진국의 외채위기는 심화되었다. 1983년 멕시코의 외채위기를 비롯해 다수의 후진국의 외채위기.  
iii) 세계 전체로 긴밀하게 연결된 국제금융시장은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서도 동요하기 쉽게 되었다. 1987년 10월의 미국과 세계의 증권시장 공황, 1980년대 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파산, 1990년대 초 일본 금융제도와 경제의 붕괴, 1992년과 1993년의 유럽통화제도의 위기, 1994-1995년의 멕시코 페소화 위기, 1997년 아시아 전역의 외환ㆍ금융공황, 1998년 8월 러시아 정부의 외채 지불 정지, 1998년 9월 미국 헤지펀드 LTCM의 부도 위기, 2002년 아르헨티나의 금융위기, 2007년 상반기의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와 세계적 파급 등. 
iv) 후진국들의 금융외환위기에서는 미국의 Treasury-IMF-Wall Street Complex가 후진국들을 지배하고 수탈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3) 민영화의 파탄 
i) 민간투자자에게는 자본의 가치증식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기 때문에, 민영화는 수익성 있는 국영기업과 공익사업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고, 아니면 정부가 수익성을 보장하기 위해 헐값에 매각하거나 어떤 형식의 독점적 지위를 보장해야 했다
ii) 민간투자자는 대규모의 해고를 통해 거대한 이윤을 얻었지만, 이것을 장기적인 설비 개선에 투자하거나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인하해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기보다는 배당이나 주식가격을 올리는 데 사용했다.  
iii) 정부는 민영화된 독점기업들의 기본 운영방침을 제정하고, 명확한 공급기준을 확정하며, 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제시하기 위해, 공공의 규제기구를 설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영국의 경우 Oftel, Ofgas, Ofwat, Ofrail. 
iv) 영국에서는 민영 철도회사인 Railtrack은 회임기간이 긴 철도 선로와 신호망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함으로써 1999년 런던의 패딩턴 역에서 31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초의 대형 사고가 일어나 레일트랙은 파산하고, 공적 소유의 비영리법인인 Network Rail이 인수하게 되었다.
  
4) 패권주의와 제국주의의 강화 
i) 1991년 소련이 멸망하기 이전에는 레이건이 Star Wars 계획을 세우면서 소련과 군비경쟁을 했고, 영국의 새처는 포클랜드(또는 말비나스)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1982년 4-6월에 아르헨티나와 전쟁을 했다.
ii) 소련이 멸망한 이후에는 미국은 세계의 최대 강국으로서 세계를 지배하려는 야욕을 드러내어, 2001년 9월 11일의 테러사건을 계기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했다. 여기에 제3의 길을 천명한 영국의 블레어 정부도 참전했다. 이라크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지만, 미국이나 영국에서 큰 반대에 부닥쳤다.
  
3. 신자유주의의 쇠퇴 
1) 세계적인 규모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반대와 전쟁 반대 투쟁 
2) 미국 사회의 동요 
i) 주주자본주의와 분식회계
주주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기업의 목표가 되면서 기업경영자들은 주식가격을 끌어올릴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회계를 조작하게 된 것이다. 엔론, 월드컴, K마트, 글로벌크로싱 등 미국의 대기업이 분식회계로 파산했고, 기타 대기업들도 분식회계 의혹을 받고 있다. 분식회계 의혹을 받는 대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기가 어려워 결국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ii) 주가 상승과 수익성 사이의 괴리
2003년 하반기부터 주식가격은 상승하는 추세로 돌아섰지만, 문제는 기업의 수익성은 저하하는데 주가는 상승하는 현상, 즉 기업의 수익성과 주가 사이의 간격이 1995년 이래 계속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주가가 기업의 이윤과 배당으로부터 점점 더 자립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 간격이 어느 수준을 초과하면 주가가 자기의 토대인 배당을 반영해 폭락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주자본주의 아래에서 미국 정부와 기업이 주가를 상승시키는 데 너무 집착하기 때문에, 주가가 기업의 수익성과는 무관하게 상승하다가 폭락함으로써 공황을 일으킬 수도 있다.
iii) 이라크 전쟁의 종결과 인권유린의 중단
2006년 말에 행한 총선에서 민주당이 ‘전쟁의 종결’이라는 공약을 통해 하원과 상원을 장악했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침략전쟁을 확대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부시 정부 아래에서 테러방지라는 이유로 취해진 시민적 자유의 제한이나 테러용의자에 대한 인권유린 등도 완화될 것이다.
 
4. 앞으로의 전망 
1) 신고전파적 시장주의-->케인스주의적 정부 개입-->통화주의적 시장근본주의-->? 
i) 자본주의 사회구성도 다양한 유형을 나타내는데, 영미의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달리 독일ㆍ프랑스 등과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에서는 연대주의적 복지국가가 상당히 유지되고 있다.
ii) 현실적으로 시장에 맡길 수 없는 중대한 문제가 많이 제기되고 있다. 기후온난화, 공기ㆍ물ㆍ토지ㆍ바다의 오염, 유해한 쓰레기, 에이즈 등 질병의 만연, 마약ㆍ범죄의 증가, 고령화 사회. 이것들을 시장에 맡겨 “뒷일은 될 대로 되라지!” 라고 그냥 둘 수가 없다. 결국 공권력을 가진 국가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iii) 국민보험이 아닌 사적 보험은 포괄하는 범위가 좁다. 사적 보험은 실직 위험에 대한 보험을 제공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실직은 random하게 발생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불황기에 그리고 어떤 특정 부문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적인 주택보험은 우연한 화재를 보상하지만 전시의 공중 폭격이나 지진이나 태풍에 의한 피해를 보상하지 않는다; 성인 노동자들은 사적인 건강보험에 가입하기 쉽지만, 퇴직한 노인들은 가입하기가 어렵다.
iv) 경제의 금융화를 통해 금리생활자들(부자, 금융회사, 기업 등)이 많이 증가했고, 이들이 사회의 현재의 소득과 미래의 소득을 크게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조세 저항으로 정부의 재정은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사적 이익이 공적 이익을 지배하게 되었다.
v) 공공의 투자, 사회의 안전, 주민들의 복지, 지식기반 사회의 교육, 고령화 사회를 위해 조세 수입을 증가시켜야 하고 공공으로 조직된 기여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vi) 시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비용-수익분석은 생각하기보다는 매우 어렵다. 비용과 수익에 어떤 항목을 넣을 것인가, 기간은 언제까지 할 것이고 화폐로 평가할 수 없는 항목은 어떻게 다룰 것인가 등. 무료 의료를 통해 주민들이 건강하게 된 경우, 이것의 이익은 병원의 손익계산서에 나타나지 않고, 사회 전체에 퍼질 것이다. 또한 교육이나 의료 등은 사람집약적이기 때문에 기계집약적인 제조업만큼 생산성이 상승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교사나 의사의 봉급을 다른 종사자보다 낮게 인상할 수 있을 것인가?
v) 결국 국가가 다시 개입하여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관계와, 현재와 미래 사이의 관계를 새롭게 조정하게 될 것이다.
  
2) 대의제 민주주의로부터 직접민주주의로 이행
i) 이 모든 변혁과정은 정치적인 헤게모니 아래에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ii) 지금의 기득권층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하는데, 여기에는 노동자ㆍ농민ㆍ빈민ㆍ실업자ㆍ고령자ㆍ민중적인 언론인ㆍ지식인ㆍ종교인ㆍ학생들의 단결이 절대로 필요하다. 이들이 집단적으로 새로운 사회의 비젼을 만들어 내어 그것을 정치적ㆍ사상적으로 사회 전체에 전파함으로써 선거를 통해서 새로운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직접민주주의의 예로서 베네수엘라의 주민자치위원회를 들 수 있다.
  
3) 학문의 방향
i) 현실 추수적인 학문, 현실 옹호적인 학문보다는 현실을 비판하는 학문이 필요하다.
ii) 복지사회의 건설에 장래의 후손들이 피해를 본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사회의 잉여를 너무나 많이 차지하는 기득권층의 소득을 더욱 나은 공동체를 위해 전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후온난화나 생태계 파괴를 그냥 둔다면 후손들이 더욱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iii) 대학은 대학생들이 사회인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인생관과 세계관을 가르치는 학문 도야의 장소이지 취직을 위한 강습소가 아니다.
iv) 대학의 문제는 학생과 교수와 직원들의 민주주의적 토론을 통해 해결하고, 이들이 또한 새로운 대학상을 만들어 가야한다. 학생들이 자기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야만인의 이기주의에 사로잡히면 학교의 장래뿐 아니라 자기자신의 장래도 망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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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열어가자" 2007/11/25 22:58
 
1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김수행 교수의 정년퇴임기념논문집 봉정식에 참석하려다가 말았다. 학부 시절 김수행 교수의 강의를 수강하기도 했지만, 딱히 거기에서 배운 바가 없었기에(?) 그런 인연으로 봉정식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이미 그날이 오면에서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김수행.신정완 편, 서울대 출판부)라는 제목의 논문집을 사둔 터이다. 물론 머리말밖에 보지 않았지만... 이 책을 올해 안에 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그리고 참세상의 정년퇴임과 관련된 최근 기사를 담아왔다. 나름대로 읽어볼 꺼리가 있다. 거기에서 김수행 교수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고...

 
김수행 교수 “美 주도 신자유주의 더는 활로 없다” (경향, 글 손제민·사진 박재찬기자, 2007년 11월 19일 17:34:34)
  
“미국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미국발 경제 위기가 예전과는 차원이 달라 보입니다. 이제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는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한층 강하게 듭니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정년퇴임하는 김수행 서울대 교수는 지난 1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마르크스의 공황 이론으로 박사논문을 썼다.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이윤율 저하경향의 법칙’을 새롭게 이해한 부분은 그의 학위논문이 세계 마르크스주의 학계에 특별히 기여한 부분이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이끌고 있는 미국 경제가 이제 벽에 부딪혔다고 진단한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위기와 달러화 하락은 그 상징적 신호탄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이자율을 계속 낮추고 있어 외국 투자자뿐 아니라 미국 내 투자자들이 달러 가치 하락을 우려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은 복지국가를 해본 경험도 없고, 해외로부터 일종의 ‘공납’으로 유지해온 나라인 만큼 지금 상황에서 더 이상의 활로가 없습니다. ‘불안(테러)’을 이용해 치안과 군사력으로 자본주의의 새 활로를 찾는 움직임을 보입니다만 전세계적으로 확대되는 평화·반전 담론 속에 이마저도 신통치 않을 것입니다. 무기 팔아먹을 곳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니까요.”
 
퇴임을 앞둔 그는 후배 교수들과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서울대출판부)라는 논문집을 냈다.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원리를 설명해오는 데 치중하느라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던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김교수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모색을 하지는 못했다. 퇴임 후 그가 파고들 과제다.
 
하지만 학교를 떠나는 그의 마음은 가볍지 않다. 후임을 정하지 못하고 나가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부는 김교수 퇴임 후인 내년 3월 후임 교수를 뽑을 예정이다. 서울대에서 유일했던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인 그가 퇴임하면 지금 33대 1의 싸움에서 34대 0으로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주류경제학 일색의 교수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바로 학생들입니다. 내가 서울대에 교수로 왔던 1989년에도 사정은 지금과 마찬가지였어요. 교수들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안된다고 반대했지만, 대학원생들이 농성하며 마르크스경제학 전공자를 요구했기에 내가 올 수 있었습니다.”
 
김교수는 교수들의 성향이 유별나게 더 보수화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 유학 출신의 계량경제학 전공자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한신대 교수로 있던 83년 1학기부터 서울대에서 시간 강의를 했지만 스스로도 서울대에 전임교수로 부임할 수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 대학원생이던 신정완(현 성공회대 교수), 류동민(현 충남대 교수), 안현효(현 대구대 교수), 박도영(현 영산대 교수) 등이 농성까지 벌였고, 그 덕에 그는 서울대 교수가 됐다. 47세 때였다.
 
그로부터 18년. “스스로 보수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가장 많은 학교가 된 서울대의 학생들은 김교수 후임이 누가 될지에 큰 관심이 없다. 김교수는 “국민들의 세금을 받는 국립대학으로서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적어도 국립대학이라면 “지금 당장은 쓸모 없어 보이는 학문이라도 다양하게 펼쳐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울대가 부잣집 학생들로 채워지는 것이 큰 문제”라고 했다. “집안 형편이 좀 넉넉지 않은 학생들이라면 전철이나 버스 타고 다니며 구걸하는 사람들도 보고 생각도 좀 하게 될텐데, 돈을 잘 버는 집안에서만 오니 한국사회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한국사회의 지도급으로 올라가 버리면 그런 경향은 더 심화되는 거죠. 우리 사회 전반에는 ‘노동자들이 탐욕스러워서 파업한다’ ‘노동자를 착취할 수밖에 없다’ 등의 인식이 뿌리내리겠죠.”
 
김교수는 이제 ‘벤처사업’을 하려고 한다. 바로 마르크스주의 대학원을 설립하는 것이다. ‘사회과학대학원’(가칭) 준비를 위해 몇 해 전부터 오세철 전 연세대 교수, 황동하 박사 등과 함께 일해오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80명이 등록했어요. 이 분들 가운데 대학생은 세 명뿐이고 대부분이 회사원, 노동조합 활동가, 프리랜서, 회계사 등 생활현장에서 목 말라서 온 사람들입니다. 사회가 자꾸 삐걱거리니까 이것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려고 오는 거예요.”
 
김교수는 적어도 수십억원이 필요한 대학원 설립이 가까운 장래에 가능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계기가 생기면 학교를 세우거나 다른 대학과 연대해서 프로그램을 짜는 식도 가능하겠죠. 그러나 아직은 교육운동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도 이 학교가 괜찮다, 학생들을 통해서 이런 학문이 필요하다 하는 공감대가 만들어져야죠. 그래야 모금도 가능한 거고. 결국 학생들이 필요를 느껴야 해요.”
 
"장하준 논리라면 삼성왕국 된다" (한겨레 강성만 기자 블로그, 2007/11/21 19:39)
  
마르크스를 향한 항심은 어디에 기반한 것일까. 김 교수는 솔직히 말한다. 교수라는 게 좋은 직업이라고. 일반 기업체에 취직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아내 이야기를 언론에서 다루어줬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한 길을 가는 동안 아내가 변함없이 성원을 보낸 게 큰 힘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김수행 교수 인터뷰를 하러 서울대에 가서 본 것들 가운데 2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사회과학대 교수들 대상으로 ‘와인 파티’를 연다는 공고문이 그중 하나다. 80년대 정서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풍경. 그리고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후보들의 선거 공고물이 마치 연예인의 자기 피알 홍보물을 방불케한다는 것. 화장과 포즈의 정도가 연예인 뺨친다.   
  
-요즘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지 않나.
=조금 올라온다고 생각한다. 우리 한국 경제사정 굉장히 나빠졌다. 실업자 빈곤 심해지고 양극화 많이 진행됐다. 노동계급 탄압은 심해지고 시장주의는 자꾸 나오고. 이런 것을 이론적으로 해명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주류경제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들은 시장에 맡기면 다 잘된다고 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기면 해결책 나온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학생과 사회인들이 자본주의 경제적 모순 해결해보자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이다. 최근 서울대 학부에 개설된 마르크스 강좌 3개의 듣는 학생이 200여명으로 고정된 느낌이다. 너무 적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현실적 유효성에 대해.
=자본주의 경제학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를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봤다. 지금과 같은 수의 노동자를 고용해서는 수익이 안생긴다. 그래서 해고시킨다. 그 대안으로 가장 중요한 마르크스 개념은 자본주의 이후 사회가 주민들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실업이 자꾸 나면 안된다. 실업 안나면서 노동시간 줄여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도 새로운 방향이다. 
독일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다. 정부가 개입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민간 부문의 이윤추구를 자꾸 줄여간다. 복지국가를 지향하고 학교와 병원을 공짜로 한다. 공공부문 늘여가는 것, 그런 식으로 하지 않으면 지금의 실업과 양극화를 해결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회는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자꾸 그렇게 가는 것이다. 선거에서 민노당이 이기거나 봉기가 일어나 지금 체제가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 전체를 뜯어 고치려면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점진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운동하는 세력들이 하나씩 쟁취해가면서 자신감 생기고 쟁취 과정에서 운영 능력이 는다. 능력이 커져야 한다
1919년 러시아 혁명때 노동자가 공장을 접수했는데 공장을 어떻게 운영할 지 몰랐다. 그래서 NEP라는 신경제계획으로 갔다. 하나씩이라도 조금씩 쟁취해가면서 서민과의 연대성 등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 민주화 운동과 같은 시민 운동이나 부정부패방지 운동, 환경 운동, 여성 운동 등 우리 사회 문제되는 것에 대한 이런 것이 축적돼서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르크스 엥겔스는 그 당시 사회에서 자본주의 이후 새 사회 건설을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예측해 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직접 부딪히면서 투쟁해서 건설되는 것 아니냐 생각했다. 
 
-새 사회의 그림과 그 경로는
=자본주의 자꾸 발달하면서 우리 재벌은 큰 세력이 됐다. 공장을 사회화할 때 한꺼번에 중소기업까지 국유화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재벌 같은 큰 단체를 접수하면 관제고지(COMMANDING HEIGHT)를 점령하는 것 아니냐. 레닌 혁명때 전쟁 때문에 백군 일어나 외국군대 개입하면서 국유화 실시해 많은 문제 생겼다. 재벌 것이라도 국유화하면 이 사회 경제 움직이는 것 별 문제 없는 것 아니냐. 자본주의 발달하면서 독점이나 재벌 생긴다. 이것을 사회의 것으로 돌리는 것은 쉽다. 이건희 주식 전체의 1%도 되지 않는다. 재벌은 사회의 것으로 봐야 한다.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이야기된다.
 
-경로에 대해서
=민주노총 한국노총 대기업은 정규직 중심이다. 엄청난 비정규직을 포섭해 연대를 맺어야 한다. 어떻게 해서 울산 창원에 노동자가 많다는 데 민노당 출신이 국회의원 되기 어렵냐.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어떻게 통합시킬까 고민해야 한다. 학교나 병원을 공짜로 하는 운동, 즉 모든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아이디어를 만들어내야 하고 지식인도 이런 문제를 자꾸 제기해야 한다. 
 
-장하준의 재벌활용론에 대해
=재벌을 더 독점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 재벌이든 외국자본이든 기본은 자본의 가치증식, 이윤추구이다. 재벌도 한국에서 이익 못보면 다른나라로 간다. 삼성은 홍콩 싱가포르로 많이 나갔고 현대도 미국에 공장을 지었다. 재벌이 외국자본과 경쟁해서 한국 경제나 민중을 돕는다는 것은 환상이다. 안되면 옮겨간다. 그러다간 삼성왕국된다. 돈 많이 벌어 주체 못하니까 대통령 장관 사법부 언론을 자기의 수익성 제고에 이용했다. 그렇게 독점력 키우면 안된다.
 
-마르크스 이론의 정수와 한계는
=마르크스이론은 유물사관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인간의 머리나 사상이 아니라 그 사회의 현실에 뿌리박고 있는 사회세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물리적 조건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은 좋은 관점이다. 그래야 환상적인 것으로 흐르지 않는다.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관한 책이다. 자본주의는 자본가의 이윤추구에 의해 움직인다. 이윤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나온다. 노동자를 착취한 게 이윤이다. 때문에 노동자 자본가의 계급 투쟁과 갈등이 나온다. 여기까지가 자본론의 결론이다. 이 결론은 1850년대 영국 사회 분석하면서 나온 것이다. 이 이론은 지금도 자본주의, 어느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들어 맞는 이야기다. 마르크스를 좋아한 이유가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기본원리 자체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이라는 추상 모델을 통해 결론 내렸다. 현실자본주의가 그동안 발달했다. 자본론에는 독점 개념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독점이나 국가개입이 많이 생겨 독점 자본을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국가는 뭔가 또 세계경제 체제에 대한 개념의 이해도 필요해졌다.
마르크스는 자본과 임금노동 토지자산 국가 대외관계 세계경제 등 모두 6주제에 대한 책을 쓰려 했다. 하지만 앞의 3주제만 자본론에 반영되어 있다. 마르크스가 다루지 못한 과제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제시한 설명틀로 설명하는 게 과제이다.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해 마르크스는 별 관심이 없었다. 역사는 발전한다고 봤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 이행기를 시초축적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하지만 이행 과정에 대한 연구는 되지 않았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자유로운 생산자들의 연합’이라고 표현했다. 자본주의 무너지면 뭐가 오느냐 ‘생산의 사회화’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본주의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생산과 노동이 사회화된다. 노동이 사회적 성격을 띠고 자본이 주식회사가 되는 등 사회적 성격을 띤다. 생산이 사회적으로 운영되어야 마땅하다는 것 여기까지 자본론에 나온다새 사회로 가려면 이행과정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화폐도 상품도 없고 계획당국이 인적 물적자원과 필요와 욕구를 파악해 사용하면 된다. 하지만 이행기도 자본주의 체제 속에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내에 있는 것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자본주의를 약화시키면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 지를 고민해야 한다. 일부 소장 마르크스 경제학자들이 이행기도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논지를 펴는 경우가 있다.
생산이 실제로 사회화된다. 생산이 사회화되려면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사회전체가 관리하고 나누어먹고 공유하는 것 그렇게 가야 한다. 
 
-사민주의를 어떻게 보나.
=마르크스주의가 사민주의로 갔다고 하더라도 사적 소유를 근절시키면 마르크스주의가 되는 것 아니냐. 사민주의 아이디어로 자본주의 개선해서 주민들의 생활 수준을 개선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병원이나 교육을 무료로 해주면 (주민들에게) 여유가 생긴다. 사민주의 복지국가를 노동자 타락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은 잘못이다.
 
-공황이론을 전공했다. 그 관점에서 현 세계 경제를 진단해달라.
=지금은 금융부문이 발달했다. 생산부문에서 이윤을 챙길 수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자를 착취해 상품 팔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금융과 투기는 기존 재산을 나누어 먹는 과정이다. 미국 펀드 한국 와서 금융투기해 이윤을 빼간다. 은행을 값싸게 사서 비싸게 판다. 금융은 생산이 아니다. 새로운 부를 창조한 것이 아니다. 전세계 미국 금융망에 다 걸린다. 미국은 자기들이 생산면에서 세계를 지배할 수 없어 금융면에서 세계를 지배하며 각국의 부를 금융 통해 훑어 간다. 하지만 아무 문제 없이 훑어갈 수 없다.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이 그런 문제다.
 
-신자유주의에 대해
=1979년 대처의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에게 이윤을 더 많이 내도록 함으로써 투자를 더 많이 해서 생산과 고용을 늘려 실업을 없애고 경제를 키우겠다는 주의다. 자본가 위주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 좋은 성과가 별로 없다. 79년 이전과 비교해 성장률은 반으로 줄고 실업률은 더 높아졌다. 사회 갈등도 커졌다.
기술 발달할수록 노동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전에는 사장 비서실에 직원들이 굉장히 많았다. 지금은 컴퓨터가 다 한다. 공장 안도 마찬가지다. 서구 사회 보장제도는 실업구제의 의미가 있다. 의사나 간호사 식당 종업원 학교 등의 고용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실업부문 줄이는 방법은 공공부문 확대다. 경제 성장으로 실업 줄이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수출 산업은 최신기계를 두어야 한다. 고용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없다. 세금 더 내야 한다. 그래야 자살하려는 사람 살릴 수 있고 사회를 온화하게 만들 수 있다. 조중동은 세금 몇만원 올리면 복지비용이라고 반대한다. 1948년 영국은 소득이 2만달러에 훨씬 미치지 못했는데도 병원과 학교를 무료로 했다. 
서구는 완전고용 달성과 복지국가 건설 그리고 노조세력을 키우는 사회적 합의를 했다. 하지만 우리는 자본가의 이윤을 늘리는 쪽으로 사회적 합의를 하고 있다.
 
김수행, "'자본주의 이후의 새로운 사회' 열어가자" (참세상, 유영주 기자, 2007년11월23일 11시17분)
서울대 경제학부 정년퇴임 기념논문집 봉정
  
아래는 답사 전문이다.
 
저는 자본론의 번역을 가장 큰 업적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본론은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구조와 운동법칙을 해명한 책입니다. 자본주의는 여러 나라에서 각각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자본주의는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의해 움직인다는 점에서 전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윤은 노동자들의 잉여노동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윤을 증가시키려는 자본가들의 활동은 노동시간의 연장, 노동생산성의 향상, 노동강도의 강화, 산업재해의 증가, 노동자들의 해고, 노동조합의 무력화 등을 수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은 독점체를 만들어 내고, 국가기구와 관료까지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에 봉사하는 도구로 만들려고 합니다.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은 세계를 자본의 가치증식을 위한 공간으로 변형시켰습니다. 선진국의 자본가들은 자기 나라 정보나 국제기구를 통해 세계 각국 정부에게 시장의 개방, 무역과 외환거래 및 이본이동의 자유화를 요구했습니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본의 국제화와 세계화는 옛날의 제국주의를 가리킬 뿐입니다. 세계에는 아직도 세계의 주민 모두의 복지를 균등하게 향싱시키려는 세계정부가 없고 국민국가로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선진국의 자본은 외국에 침투할 때 자국 정보의 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이리하여 군사적 침략이 일어나고 세계적 규모의 빈부 격차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자본주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에 거대한 생산력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삐 풀린 자본주의는 다른 한편으로 큰 재앙을 인류에게 가져오고 있습니다. 자연 파괴와 지구 온난화는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 규모의 빈곤과 실업, 빈부 격차, 인간성의 고갈, 계급과 나라 사이의 갈등과 투쟁, 끊임없는 금융공황 등이 재앙의 일부입니다.
 
문제는 자본가들의 이윤 추구 욕심을 조금만 제어하더라도 인류는 더욱 좋은 환경에서 더욱 나은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기 이전의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생각해보십시오. 학교와 병원이 무료였고, 노후 연금이 노인들이 살기에 충분했으며, 서민과 실업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데 충분한 소득을 보조받았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것은 각 나라와 세계 전체에서 복지제도의 큰 후퇴와 빈부 격차의 심화였습니다. 사실상 IT혁명과 기타의 과학기술혁명은 세계의 모든 인류에게 더 나은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정도의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기술혁명의 이익을 몇몇의 거대자본가들이 사적 이윤으로 독차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서민들이 단결해야 합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고 있는 사적 이윤은 자기들의 노동의 열매도 아니며 자기들의 자본의 열매도 아닙니다. 거대자본가들이 얻는 대규모의 이윤은 사실상 세계 각국의 지식노동자와 육체노동자가 창의와 피땀으로 창조한 부가가치일 뿐이며, 거대자본가들이 이용하는 자본도 주식과 채권에 투자한 세계 각국의 여유자본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서민들은 세계의 노동자들과 세계의 여유자본이 창조한 부가가치를 자기 혼자 독차지하고 있는 세계의 거대자본가들에 대한 투쟁을 제시해야 합니다. 이리하여 이 세계가 자본가들의 이윤추구 욕심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세계 서민의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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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26 23:27 2010/01/26 23:27

댓글1 Comments (+add yours?)

  1. 두리미디어 2010/04/14 15:10

    [신간소개]-김수행 교수의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국부론>

    안녕하세요? 도서출판 두리미디어입니다.

    청소년 교양 시리즈 출판의 새로운 저변을 확산시키고 있는 두리미디어에서 이번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최고 권위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전 서울대 교수) 님이 쓰신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과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출간했습니다!

    김수행 교수님의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은 국내 최초로 <자본론>을 완역한지 20여 년 만에 마르크스 경제학의 대중화를 위한 초석으로 기획됐습니다.

    <국부론> 역시 완역한 바 있는 김수행 교수는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을 통해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경제학의 고전’을 올바로 전하기 위한 작업에 나섰습니다.

    <청소년을 위한…>이란 주제를 잡고 있지만, <자본론>과 <국부론> 원전의 정확한 개념과 이해를 얻고자 하는 성인 독자들에게도 관심 있을 저작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새로운 경제학과 미래 사회의 대안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국부론>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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