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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 ‘계급·계층 투표’ 뚜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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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낙구 선배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라는 책을 펴낸다고 한다. 그와 관련된 기사가 경향신문에 났는데, 많이 흥미로운 기사다. 1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책이기에 이를 누가 사볼까 싶지만, 의외로 관심을 갖는 이들이 꽤 있을 듯하다.책 내용의 핵심은 경향신문의 인터뷰 기사에 있다. 

 

손씨는 “지금까지 서민들이 부유층 지지 정당인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분석과 시각이 많았는데, 주된 경향은 아니었다”면서 “부유층은 열심히 계층 투표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야당을 찍는 식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유권자들은 철저하게 계급투표를 한다는 것이다. 주택소유자와 아파트가 많은 곳일수록 한나라당에 투표하는데, 이는 집값을 올리기 위한 합리적 선택의 결과이다. 그리고 셋방 사람이 많고 아파트 비율이 낮은 곳일수록 민주당에 투표를 하는데, 이는 집없는 사람들의 경우 80%가 2년에 한 번씩 이사를 하는 등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사는 곳을 '내 동네'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있어 지역 정체성도 떨어지고, 투표율 또한 낮게 된다. 지방정치가 잘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손낙구 선배는 파악한다.

 

나름 의미 있는 분석이다. 게다가 거기에 들어간 손낙구 선배의 노력이 만만치 않으니... 한 동안 뜸하더니 이 책을 쓰려고 했나 보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이 조금은 일면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분명 서울에서 주택 보유 여부가 정치적 성향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가장 주된 요인일까. 그리고 서울, 수도권과 지방은 그 성향이나 변수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지방에서 집이 있다는 자체는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또한 연구의 함의도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다. 뉴타운정책이 민주당의 지지층과 어긋난다는 사실이 연구결과에서 드러났다고 치자. 그리고 자기 지지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내야 하는 것도 맞다. 그렇다면 민주당이나 진보정당은 어떠한 주택 정책을 펴야 할까.

 

그 지지층들도 집을 얻게 되면 민주당을 버린다는 뜻인데, 민주당은 될수록 주택보유율을 낮추어야 하는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결과가 맞다면 집 보유 자체가 지지를 결정하는 변수가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구체적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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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남이라도 대치1동·역삼1동 ‘표심’ 극명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2-07 18:28:50)
ㆍ집가진 사람들 ‘집값 상승’ 위해 여당에 투표
ㆍ이사 잦은 빈곤층, 야당 지지해도 선거 무관심
ㆍ한나라 ‘뉴타운 수혜’… 민주 정책방향 바꿔야

 
대치1동과 역삼1동. 두 동네는 이른바 ‘강남’에 속해 있다. 그러면 둘 다 부자 동네일까. 그렇지 않다. 손낙구씨가 쓴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치1동은 거주자의 88%(다주택자 16% 포함)가 주택을 소유하고 있고, 97%가 아파트에 산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강남 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강남구의 역삼1동은 무주택자가 80%에 이르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6%밖에 되지 않는다. 혼자 사는 가구 비율도 대치1동은 3%이지만, 고시원과 원룸이 많은 역삼1동의 1인가구는 55%에 이른다. 두 동네는 부동산 자산 보유 측면에서 빈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셈이다.
 
그것이 선거정치에 갖는 의미는 분명해 보인다. 대치1동의 2004년 총선 투표율은 72%, 그 가운데 한나라당 지지가 64%였다. 반면 역삼1동에서는 유권자의 49%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중 한나라당 지지는 41%에 불과했다. 당시 역삼1동의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43%로 한나라당을 앞섰고, 민주노동당 득표율도 13%에 달했다. 역삼1동만 그런 것이 아니다. 논현1동, 대치4동, 일원1동, 수서동 등이 아파트와 부동산 보유의 측면에서 본 ‘강남 속의 강북’이라 할 만하다. 투표 행태까지 역삼1동과 비슷하다. 이는 강남을 한 덩어리로 보았을 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는 서울 전체로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잠실7동 등 10개 동네를 보면 평균 84%가 집을 가진 사람이고, 아파트 거주자가 98%다. 반면 투표율이 가장 낮은 논현1동 등 10개 동네는 집을 가진 사람이 26%, 아파트 거주자가 5%에 불과하다.
 
1인가구와 (반)지하 거주자는 투표율 상위 10개 동네에서 각각 5%, 1%에 불과하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동네에서는 43%, 17%로 높다. 투표율 상위 10개 지역의 한나라당 지지는 2004년 총선에서 57%,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76%에 달했지만 투표율 하위 10개 지역은 한나라당 지지가 각각 32%, 58%로 상대적으로 낮았다. 투표율 상위 10곳과 하위 10곳의 선거권자는 각각 28만명, 29만명으로 비슷하다. 하지만 실제 투표자수는 19만명 대 13만명으로 6만명의 차이가 났다. 투표율이 낮은 동네가 높은 동네에 비해 6만표 만큼 민의가 덜 반영된 셈이다.
 
이러한 경향은 수도권 전체 1186개(실제 분석은 자료가 있는 1164개) 동네로 확대해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씨는 이렇게 정리했다. “아파트가 많고 주택 소유자가 많은 부자 동네는 열심히 투표를 하고 대개 한나라당을 찍는다. 아파트가 적고, 무주택자가 많은 가난한 동네는 투표를 잘 안 하지만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

 
부동산 보유 여부가 이런 투표 행태로 이어지는 데는 이사를 얼마나 자주 다니느냐가 중요 변수이다. 셋방 사는 사람들이 집 주인보다 이사를 더 자주 다닐 것임은 짐작 가능하다. 손씨가 인용한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절반 이상이, 셋방 사는 가구의 80%가 최소 5년에 한 번 씩 이사를 다닌다. 전 국민의 30%, 셋방 가구의 52%는 2년에 한 번씩 집을 옮긴다. 수도권은 더 심해서 2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 사람 3분의 1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 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 사람의 3분의 2가 바뀐다. 여기엔 뉴타운 재개발이 한몫한다. 단기간 내에 재개발로 상당수 주택이 아파트로 교체된 성동구에 지역구를 두었던 최재천 전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은 “불과 4년 만에 동네가 모두 아파트로 바뀌는 바람에 선거 조직 자체가 들어갈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최 의원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2004년 성동구의 아파트 비율은 57%였지만, 그가 낙선한 2008년에는 아파트가 70%를 넘은 상태였다.
 
손씨는 “셋방 사는 사람들은 2년도 채 살지 못하고 떠나니까 내 동네라는 관념이 생길 수 없고, 따라서 지방선거든 총선이든 지역에서 벌어지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하지만 아파트와 자기 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동네는 아파트 값을 올려줄 것이라고 믿는 후보를 찍기 위해 열심히 투표장에 나오게 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최근 몇년간의 선거를 두고 ‘강남지역은 계급 투표(한나라당 지지)를 하는 반면, 강북지역은 계급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문제’라는 이미지 수준의 분석은 틀린 것이 된다. 2008년 총선 결과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심판의 연장이라는 측면 못지않게 서울의 동네별 인구, 주택 구성이 바뀌어버린 것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뉴타운 재개발의 수혜자는 한나라당이었으며, 지금 같은 수도권 재개발이 계속 추진된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발붙이기 어렵다는 얘기가 가능하다.
 
▲어떻게 조사했나
2005년 통계청 인구주택 총조사부터 ‘타지주택 소유 여부’와 ‘거주 층’ 문항이 추가돼 자기 집을 전세 놓고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 통계가 잡히게 됐다. 손낙구씨는 이 자료를 행자부의 다주택 소유 자료, 선관위의 투표 자료와 대비하며 동네별 주택 소유 여부와 거처 종류를 나누고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을 견주어 비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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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계급·계층 투표’ 뚜렷 (경향, 손제민 기자, 2010-02-07 18:37:01)
ㆍ수도권 1164개 읍·면·동 ‘정치사회 지도’ 분석
ㆍ아파트 많은 동네, 투표율 높고 한나라 지지
ㆍ세입자 많은 동네, 투표율 낮고 민주당 지지

 
내 집을 가진 사람과 아파트가 많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높고, 그렇지 않은 지역일수록 투표율이 낮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또 주택소유자와 아파트가 많은 동네일수록 한나라당에 투표하고, 셋방 사는 사람이 많고 아파트 비율이 낮은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에 투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돈 없는 서민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반하고 한나라당에 표를 준다는 일각의 통념과 달리 유권자들이 철저한 계급·계층 투표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계급사회>의 저자 손낙구씨는 다음주 출간할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후마니타스)에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1164개 읍·면·동별 주택 소유 실태와 투표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얻어냈다. 책에 따르면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투표율 상위 20% 동네에서는 집을 소유한 사람 비율이 67%, 아파트 거주자 비율이 76%인 반면 투표율 하위 20% 동네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이 37%, 아파트 거주자가 10%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투표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낮은 지역에서는 당시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득표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투표율 상위 20% 지역에서 각각 한나라당 64%, 민주당·열린우리당 27%, 하위 20%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56%, 민주당·열린우리당 33%의 득표율을 보였다. 즉 집 소유,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투표율이 높았고, 이 동네가 한나라당에 투표한 흐름도 뚜렷하게 나타났다. 2004년 총선으로, 서울을 전체 수도권으로 확대해도 비슷한 흐름이 나왔다.
 
민주당·열린우리당은 무주택자 비율이 높은 동네에서 득표율은 높았지만, 한나라당에 비해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많이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한편 민주노동당 득표율은 주택 소유와 큰 상관관계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뚜렷한 지지 기반이 없는 것으로 해석됐다.
 
학력과 종교도 투표 행태와 일정한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투표율 상위 20% 동네 주민의 대졸 이상 비율은 65%, 투표율 하위 20% 동네는 43%였다. 종교 인구도 투표율 상위 20% 동네의 경우 59%였지만, 하위 20% 동네는 52%였다. 이런 투표 경향은 수도권 1164개 동네를 투표율 순서에 따라 20%씩 다섯 구간으로 나눴을 때 예외없이 단계적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2005년 인구·주택 총조사 통계와 역대 선거 투표 자료 등을 분석한 손씨는 “사람들이 부동산·학력 등에 따라 계층 투표를 해왔다는 것이 확인됐다”며 “민주당 등 야당은 한나라당을 따라갈 수 없는 뉴타운 같은 정책보다 자기 지지층이 진정으로 원하는 정책을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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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방 떠도는 이들 삶 속에 진보 해법 있다” (경향, 김종목 기자, 2010-02-07 18:24:46)
ㆍ‘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저자 손낙구씨 
 
손낙구씨(47)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구상한 것은 서민들의 실제 생활을 반영하지 못하는 진보 정치·운동의 현실과 한계 때문이었다. 손씨는 “반지하 전세·월세방을 떠돌며 사는 이들의 삶을 들여봐야 한국 사회와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진보 정치·운동의 대안과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주목한 게 읍·면·동 단위의 동네다. 미시 분석을 하자 통념과 다른 사실이 나왔다. 손씨는 “지금까지 서민들이 부유층 지지 정당인 한나라당을 찍으면서 계급 배반 투표를 한다는 분석과 시각이 많았는데, 주된 경향은 아니었다”면서 “부유층은 열심히 계층 투표를 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아예 투표를 안 하거나 야당을 찍는 식의 투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손씨는 전국의 3573개 동네 가운데 수도권의 1164개 동네를 분석했다. 손씨는 “수도권에 셋방 사는 사람들 중 80%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집주인을 포함한 수도권 주민 가운데 3분의 2가 5년에 한 번씩 이사한다”면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기에 ‘내 동네’라고 여기지 못한다. 동네정치, 지방정치가 제대로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손씨는 “이 책이 정치에 국한된 책은 아니다. 어느 동네에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며 “우유 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영업에 꼭 필요하겠다’면서 책이 나오면 빨리 달라고 하더라”며 웃었다.
 
1631쪽의 방대한 분량. 손씨는 “한편으로 속시원하고, 한편으로 허전하다”면서 “읍·면·동별 통계를 내느라 고생한 통계청 공무원들에게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는 “수도권 이외 지역도 곧 분석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한국 사회를 더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부동산 계급사회>(2008)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손씨는 노동운동 현장을 떠나지 않았던 활동가다. 1999년부터 2004년 초까지 민주노총 대변인을 지냈고, 심상정 전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다. 

 

2010. 2. 12

한겨레가 손낙구 선배의 책에 관한 기사를 경향에 비해 왜 이리 적게 다루었을까 의문이 갔는데, 한겨레21에서 지면을 대폭 할애해서 커버스토리로 다루었다. 양이 많으니 더욱 심층적이다.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도 다루었는데, 그의 논지는 손낙구 선배의 주장과는 조금 핀트가 어긋난다. 이는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 기사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손낙구 선배의 분석의 한계 중의 하나는 아파트, 고학력의 투표 성향과 무주택, 저학력의 투표 성향 차이를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에 대한 지지율로 나타낸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민주당 사이의 차이로 본 것이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경우 한겨레21의 기사에 나온 대로 주택 소유·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어디에서도 그 지지층 고유의 특색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그렇게 분석했을 텐데, 이는 그 동안 손낙구 선배나 진보정당 쪽에서 주장하는 바와는 어긋난다. 보수정당으로서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층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게급투표와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분석이 맞다면 민주당의 하위계급에 대한 흡수능력이 뛰어나고, 자신의 본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중간계급의 포용능력이 부족하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분석에 앞서 정당들에 대한 정의가 명확하게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뭐라고 하든 손낙구 선배의 분석틀에서 보면 현재 소위 진보정당으로 간주되는 당들 중에서도 진보신당의 지방선거 정책이나 공약 등은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어정쩡한 서민층 흡수전략이 있을 뿐 자신의 고유한 지지층을 발굴하고 확보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지방선거라지만, 노동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과연 어떻게 민주당과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덧붙여, 한겨레21의 관련기사를 보면 오바한 면이 보인다. 예를 들면 '진부함'에 갇힌 언어라는 대목이 그거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위건부두로 가는 길>에서 조지 오웰도 지적한 바이기는 하나, '동지'라는 언어 사용을 예로 들어 운동권적 언어 습관을 비판한다. 대중적이고 신선한 언어를 사용하여 딱딱한 진보의 이미지를 깨야 한다는 것이다. 

 

글쎄다. 분명 대중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게 사용 언어에 대한 지적이라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언어, 담론이라는 건 지배체제의 기본토대가 아닐까. 이를 흔들지 못하는 한 기존 체제를 바꾸기는 어렵다. 대중문화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일상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적과 싸우면서 닮아간달까. 진군, 분쇄 등의 군사용어식의 용어 대신 사용해야 하는 것이 미국식 자본주의에 물든, 자본이 제시하는 용어라면 그게 그거다. 좀더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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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정인환 기자)
수도권 1186개 동네 투표 성향 분석한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
아파트·고학력 적극 투표하고, 무주택·저학력 ‘정치 소외’ 두드러져
 
정치로부터 소외된 계급, 이들은 ‘얼굴 없는 시민’이다.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들 또한 어떤 정당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도를 더해갈수록 ‘정치적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지고 있다. 조만간 출간되는 노동운동가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후마니타스 펴냄·이하 <정치·사회 지도>)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구서다.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1186개 동네를 대상으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한 각종 통계와 2004년 총선 및 2006년 지방선거 등 최근 치러진 주요 선거 결과를 모아 분석했다. 메시지는 뚜렷하다. △부유층과 빈곤층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투표한다 △대다수 빈곤층은 투표하지 않는다 △계층 간 종교적 분화가 분명하다 등이다.
 
먼저 계층과 투표 여부의 상관관계에 대한 설명이다. 서울에서 투표율이 가장 높은 동네 10곳과 가장 낮은 동네 10곳이 있다(표1 참조). 이를테면 2004년 총선에서 양천구 목6동은 동네 유권자의 4분의 3이 투표에 참여했다. 강남구 논현1동은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투표를 포기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송파구 잠실7동은 동네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한 반면, 논현1동은 3분의 2 이상이 투표를 포기했다. 두 집단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부자 동네’라는 사실이다. 84%가 자기 집을 갖고 있었다. 송파구 잠실7동과 문정2동은 동네 사람 가운데 90%가 주택 보유자다. 무주택자는 10%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10곳 중 무주택자가 가장 많은 강동구 둔촌1동에서도 무주택자 비율은 27%밖에 되지 않았다. 주택 소유 여부와 함께 거주하는 주택의 종류도 계층을 나누는 주요 기준이다.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 가운데 6곳이 100% 아파트 동네였다. 전체 아파트 비율은 98%로 나타났다. 그 밖에도 이들 10개 동네는 대체로 1인 가구(7%)도 적고 (반)지하 등 열악한 거주 환경의 가구(1%)도 드물었다.
 
투표율이 낮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정반대였다. 가구를 기준으로 했을 때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74%였다. 강남에 있지만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75%가 무주택자이고 1인 가구 비율이 48%에 이르렀다. 역삼1동도 전체 가구의 80%가 무주택자였다. 이들 지역은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이 압도적으로 많고, (반)지하 주거 비율도 10~13%로 투표율이 높은 10개 동네의 평균(1%)보다 월등히 높았다. 주택 소유자가 그나마 많은 동네인 강북구 미아2동도 무주택자가 절반을 넘었다(55%).
 
주거 형태도 투표율에 따라 천양지차였다. 투표율이 낮은 10곳에 사는 사람 가운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서민의 보금자리는 단독주택이었다. 76%가 단독주택 아니면 다세대주택에 살았다. 17%는 (반)지하나 옥탑, 쪽방에 살고 있었다. 전체의 43%가 1인 가구였다. 학력과 종교도 마찬가지였다. 투표율이 높은 동네일수록 학력이 높고 종교 인구가 많았다면(64%), 반대의 경우 학력이 낮고 종교 인구 비율도 낮았다(49%).
 
투표율에 따른 주거 및 학력의 양극화는 그 범위를 518개에 이르는 서울 모든 동네로 넓혀도 비슷했다. 남승우씨는 강남구 논현1동과 역삼1동에 이어 서울에서 세 번째로 낮은 투표율을 기록한 구로구 가리봉2동에서 구의원을 두 차례 지냈다. 남씨의 투표율 분석이다. “지역 주민 가운데 건설 일용직 노동자가 많아요. 하루하루 일해서 수입을 얻어야 하니까 투표에 참여하는 게 쉽지 않죠. 또 하나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좀 큽니다. 상대적으로 소득과 생활 수준이 워낙 낮아 정치를 통해 자신의 소득이 올라갈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겁니다.”
 
특히 관심을 가질 부분은 투표율과 정당별 득표율의 관계다. 결과적으로 말해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등 두 차례 선거에서 투표를 많이 한 동네일수록 한나라당 득표율이 올라가고, 투표를 적게 한 동네일수록 민주당(열린우리당 시절 포함) 득표율이 올라갔다. 무주택자 비율이 높고, 주거 환경이 열악하며, 주민의 학력이 낮은 지역일수록 민주당 득표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보수 정당에 투표한다는 ‘계급 배반 투표’ 이론을 뒤엎는 결과다.
 
서울의 전체 동네를 투표율순으로 나열해 다섯 묶음으로 나눠, 투표율이 가장 낮은 묶음을 1분위(하위 20%), 가장 높은 묶음을 5분위(상위 20%)라 정하면 좀더 이해하기 편하다(표2 참조). 한나라당은 투표를 가장 적게 한 1분위 104개 동네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을 보였는데, 2·3·4분위로 투표율이 올라가면서 득표율도 함께 증가하다가 투표를 가장 많이 한 5분위 104개 동네에서 최대 득표율을 올렸다. 민주당은 그 반대였다. 1분위 동네에서 가장 득표율이 높았고, 5분위 동네에서 표를 가장 적게 얻었다.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투표도 많이 했고,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에서는 투표를 포기한 사람이 많았다는 뜻이다.
 
민주당으로서는 아주 고약한 일이다. 이런 흐름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였다. 당시 진보·개혁 진영이 지지한 주경복 후보는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7곳에서 이겼다. 반면 공정택 후보는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 3구에서 몰표를 얻었다. 최종 승리는 공 후보 몫이었다.
 
서울에서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대표적 동네가 종로구 창신2동이다. 이곳에서 민주당은 2004년·2006년 선거에서 평균 56%를 얻었다. 서울에서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문제는 투표율에 있었다. 창신2동의 투표율은 2004년 60%, 2006년 51%에 그쳤다. 전국 평균 수준이거나 약간 못 미치는 결과였다. 최악은 아니었지만 ‘표밭’에서 최대한 차이를 벌려야 하는 선거의 속성상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정치·사회 지도>를 보면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도 수도권 주민의 주거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수도권에 집 가진 사람의 절반은 평균 5년에 한 번씩, 셋방 사는 사람의 절반은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있다. 전체의 3분의 2가 평균 5년에 한 번씩 이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이상 한집에 사는 사람은 100가구당 17가구에 불과했다. 손낙구씨는 “수도권에서 무주택자 비율이 평균 이상인 547개 읍·면·동에 사는 선거권자 768만 명 가운데 투표에 참가한 사람은 442만 명으로 투표율이 58%에 못 미쳤다”며 “수도권에서 투표에 잘 참여하지 않는 동네가 있다면 분명 집 없이 셋방을 떠도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정치학 박사)가 주목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수도권 하층의 불안정한 주거 현실이 정치의식 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정치 공동체로서의 ‘마을’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정주 시스템이 필요하다. 복지든 교육이든, 아니면 일자리 정책이든 자기 마을에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있어야 하는데, 2년에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셋방을 옮겨가야 하는 현실이라면 공론 형성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가 바빠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배제되는 면도 있다.”   
 
이런 가운데 ‘얼굴 없는 시민’을 대변해줄 유력 정당은 없었다.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지정된 뒤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창신2동 사례가 그랬다. 임성수 회장의 증언이다. “2008년 4월 총선 때였죠. 내가 증거도 가지고 있는데, 그때 박진 한나라당 의원이 선거를 이틀 앞두고 막판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어요. 그때 내놓은 게 ‘뉴타운 용적률을 높여주겠다’ 이거였습니다. 집 가진 사람들의 뉴타운 분담금을 덜어주겠다는 소리잖아요. 막말로 여기 집 가진 사람이 많습니까, 보증금 없이 월세 15만원을 주고 사는 사람이 많습니까. 대다수 세입자를 위한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대다수 세입자’에 해당하는 창신2동 주민은 정치적 요구를 조직하는 데 익숙지 못했다. 대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밥 먹여준다’는 확신을 가진 이들이 등장했다. ‘이해관계’를 매개로 똘똘 뭉쳐 투표에 열심히 참가하는 사람들이다. ‘적극 투표층’으로 분류되는 이들은 ‘거래’에 익숙했다.
 
강남 부유층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한나라당은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감면으로 보답했다. 2009년 세제 개편안을 내놓을 때도 정부는 서민·중산층에 감세 효과가 더 많이 돌아갈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감세 혜택을 가장 많이 입는 쪽은 고소득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대신 저소득층 복지 정책에는 인색했다는 평가다. 2009년 12월 경기도 교육위원회가 초등학교 무상 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모두 11명인 경기도 교육위원은 전원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서울 중랑구 면목2동에 사는 이명수(55·가명)씨는 폐가전제품을 매입해 재활용업자에게 넘겨 생계를 꾸리고 있다. 1t짜리 고물차 한 대가 유일한 재산이다. 3층 다가구주택의 반지하 방 2칸에서 부인과 아들 둘, 그렇게 네 식구가 살고 있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는 25만원이다. 이씨가 사는 면목2동에는 9780가구 2만8517명이 산다. 이 가운데 전체의 18%인 1768가구가 이씨와 마찬가지로 반지하에 산다. 2008년 총선에서 이씨와 그의 이웃들인 면목2동 유권자는 절반 이상이 투표를 하지 않았다. 이씨는 민주당을 찍었다.
 
“우리 같은 서민을 위한다고 하니까 찍었죠. 물론 민주당이 꼭 서민을 대표한다고는 안 봅니다. 그래도 한나라당보다는 서민을 좀더 위해주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는데, 반영이 안 돼 그렇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없는 건 아닙니다. 당장 우리 아들도 한 놈은 군대에 있고 한 놈은 대학생인데, 취업 제대로 하려면 중소기업을 살려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대기업 중심인 한나라당보다 민주당이긴 한데, 모르겠습니다. 투표를 한다면 민주당 찍을 확률이 80%는 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헌법 1조의 내용이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대표적 수단은 투표다. 그래서 투표율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지표다. 2008년 4월9일 치러진 18대 총선의 투표율은 46.1%였다. 2004년 17대 총선(60.6%)에 비해 14.5%포인트 떨어진 수치다. 17대 때보다 유권자가 220만 명 늘어났지만 투표에 참여한 국민은 되레 421만여 명 줄었다.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국민이 모두 2042만여 명이었다. 2010년 6월2일엔 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이씨는 투표를 하게 될까? ‘얼굴 없는 시민’의 경계를 오가는 이씨에게 꼭 맞는 정당이 나타나느냐 여부에 달렸다.
 
정당 득표율과 종교의 상관관계
천주교는 한나라당 지지층 종교?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보면, 수도권에서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 정당별 득표율과 종교 형태는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4년 17대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 결과를 바탕으로, 서울 518개 동네를 ‘한나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과 ‘민주당(열린우리당 포함)을 가장 많이 찍은 10곳’으로 나눠 살펴보니, 강남구 압구정1동 등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평균 65%였다. 서초구 반포본동이 가장 높았고(68%), 강남구 청담1동이 낮았다(63%). 종교 인구 가운데서는 특히 천주교 신자(26%)가 많아서 불교(15%)는 물론 개신교(24%)까지 제치고 최대 신자 수를 기록했다. 한국 천주교 신자가 평균 11%인 것과 비교할 때,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의 천주교 비율은 2배 이상 높았다.
 
민주당을 가장 많이 찍은 10개 동네의 사정은 반대다. 종로구 창신2동 등 이 10개 동네의 종교 인구 비중은 50%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는 동네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관악구 신림6동(56%)처럼 주민의 절반 이상이 종교가 있다고 응답한 지역도 있었지만, 영등포구 대림2동(44%)은 꽤 많은 차이를 보였다. 민주당이 표를 많이 얻은 지역의 주민이 선호하는 종교는 개신교(21%)였다. 불교(18%)가 그 뒤를 이었고, 천주교(10%)는 큰 차이를 보이며 처졌다. 개신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지역과 민주당을 많이 찍은 지역에서 비슷하게 높게 나타났다면, 천주교와 불교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 셈이다. 쉽게 말해 한나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천주교 인구 비율이, 민주당 지지층이 많은 지역일수록 불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를 바탕으로 “천주교가 한나라당 지지층의 종교”라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특정 지역의 천주교 신자 비율과 한나라당 지지율이 상관관계를 갖는다 해도, 두 가지 사실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려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그동안 대체로 저소득·저학력층에서 불교 신자 비율이, 고소득·고학력층에서 천주교와 개신교 등 기독교 신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특정 종교와 정당 지지층을 연결짓는 문제는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최근 천주교가 일련의 시국사건에 보인 보수적 태도로 볼 때 이번 조사 결과를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정치사회팀장은 “지난해 2월 용산 참사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시국농성을 허락하지 않은 것 등 천주교의 보수화 논란을 설명할 때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조사 결과를 종교계 내부에서는 어떻게 볼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핵심 관계자는 “천주교 신자 비율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은 주요 성당이 서울 강남에 많이 진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력과 학력을 갖춘 신도가 새롭게 편입되다 보니 ‘신도의 보수화’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설명이다.
 
조계종 핵심 관계자는 “1994년 이후 진보적 인사가 종단 요직에 많이 진출했다”며 “총무원 집행부와 중앙종회 핵심부에 198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스님들이 포진하면서 종단의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런 가운데서도 참여정부 때까지는 정치적 균형과 중립을 많이 강조해왔다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종교 편향이 심해지면서 종단 내부에서도 진보 진영의 목소리가 좀더 힘을 받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가 ‘정치의 양극화’를 견인했다면, 정치의 양극화는 다시 ‘종교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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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지지층 이사가고 쫓겨나고 (한겨레,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기자)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 ‘뉴타운’ 공략 답습,
지지층인 무주택자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 내놓지 못해

 
2008년 18대 총선의 판세를 가른 것은 뉴타운 공약이었다. 서울이 특히 그랬다. 뉴타운 약속의 효과는 대단히 컸다. 당시 서울 지역 당선자 명단과 그들의 공약을 비교하면 알 수 있다. 서울 48개 지역구 가운데 뉴타운 공약이 등장한 지역구는 26곳이었다. 또 이들 지역구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당선된 사람은 19명이었다. 뉴타운 열풍은 한나라당이 서울에서만 40개 지역구를 싹쓸이할 수 있었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적지 않은 민주당 후보도 비슷한 공약을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정착률을 높여야 한다거나, 공영개발을 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기도 했지만 포장은 똑같이 ‘뉴타운’이었다. 민주당이 뉴타운 광풍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그나마 7명의 당선자를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뉴타운 바람에 편승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2009년 초 용산 참사에서 드러났듯 일방적인 뉴타운 개발이 세입자의 주거 환경이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민주당 내부에서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총선 기간 내내 민주당은 뉴타운 광풍에 대해 중앙당 차원에서 별다른 원칙을 제시하지 않았다. 각 지역과 후보의 판단에 맡겼다. 후보들이야 표만 된다면 뭐든 한다는 태도를 취했다. 유인태 전 의원은 그런 행태를 두고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뉴타운 광풍처럼 개발 이슈가 선거의 주요 변수로 등장할 때 이를 외면하거나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쉬운 선택은 아니다. 개발에 대한 기대감에 따라 실제로 표가 움직이기 때문이다. 18대 총선에서 중랑을의 진성호 한나라당 후보는 중화 뉴타운 추진을 지원한다는 공약을 내세워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5선의 김덕규 민주당 후보를 가볍게 따돌렸다. 도봉갑 신지호 한나라당 후보도 비슷한 방식으로 열린우리당 의장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김근태 민주당 후보를 제쳤다.
 
문제는 뉴타운 사업에서 소외돼 있는 더 많은 무주택자를 움직일 만한 선거 전략이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부유층과 저소득층이 ‘계급배반’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할 준비가 돼 있다면, 민주당 등 진보·개혁 정당이 주로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지지층인 저소득층이었다. 민주당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서울 518개 동네에서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가장 높게 나오는 곳인 종로구 창신2동 사례가 참고가 된다.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이 새롭게 출범하며 44%를 가져갔고, 새천년민주당은 18%를 얻었다. 둘을 합치면 62%였다.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참패한 2006년 지방선거 때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각각 26%와 24%를 얻어, 합치면 50%대의 지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뉴타운 개발 바람이 몰아친 2008년 총선 는때 결국 47%를 얻으며 50% 선이 무너졌다.
 
민주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는 동안 창신2동의 투표율도 함께 떨어졌다. 2004년 60%, 2006년 51%, 2008년 47%였다. 민주당 지지층이 점점 투표를 멀리했다는 뜻이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 등이 선거에 뛰어든 만큼 민주당에서 빠져나간 지지층이 모두 한나라당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었지만, 민주당으로서는 ‘표밭’에서 지지층이 이탈하는 결과를 감수해야 했다. 창신2동 전체 유권자의 60%는 뉴타운이 추진되면 오히려 쫓겨나야 할 무주택자였다.
 
민주당의 반성은 2008년 총선이 끝난 뒤 시작됐다. 2009년 1월 용산 참사가 터지자 민주당은 참사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된 뉴타운 및 재개발 정책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뉴타운 태스크포스(TF)단’을 발족했다. 이미경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한 뉴타운 TF에는 김희철·박영선 등 서울 지역 국회의원과 국회 국토해양위 소속 의원들이 참여했다.
 
민주당은 뉴타운 TF에서 △세입자 보호장치 강화 △소형 가옥주의 재산권 보호장치 강화 △순환형 재개발사업 추진 의무화 △공익적 재개발 확대 및 국가의 지원과 책임 강화 대책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각 과제별로 세부 계획까지 비교적 촘촘히 세웠다.
 
출범 초기만 해도 뉴타운 TF는 재벌 건설사와 투기 세력을 강력하게 비판하는 등 도시 서민과 세입자를 위한 대책 마련에 상당한 의지를 보였다. 같은해 2월에는 ‘뉴타운·재개발 제도개선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개발 담론을 극복하기 위한 민주당의 노력은 당 안팎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결실을 맺는 데는 실패했다. 뉴타운 TF에 참여했던 당 관계자는 “나름대로 의욕을 갖고 시작했는데, 뉴타운 국회 특위 구성 등에 대해 한나라당이 소극적으로 나오면서 여야 간 협상이 잘 안 됐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뉴타운 TF는 그 이후 다시 잠잠해졌다. 초기의 의욕과 호응을 정치적 성과로 이어가는 데 미숙했던 것이다. 이것이 18대 총선 이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해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댄 최초이자 마지막 시도로 평가된다.
 
최근 교육 및 일자리 부문의 정책 비전을 담은 뉴민주당 플랜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도 실천 계획이 의심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민주당 지지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저소득층 대책이 미흡한 사실도 눈에 띈다. 개혁 성향인 최문순 의원은 1월25일 뉴민주당 플랜 총론과 교육정책이 발표된 직후 “지난 10년간 심화된 빈부 격차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민주당이 새로운 수권 세력이 되려면 분배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까지 이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남은 기간 민주당이 지지 계층을 위한 획기적 아이디어를 내놓을 확률은 그렇지 못할 확률보다 높아 보인다. 만약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하던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서울 지역 구청장 선거를 준비하는 민주당 관계자는 말했다.
 
“1인 가구를 포함한 저소득층이 주요 지지층이라는 사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찾아가도 만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를 자주 다니기 때문에 지역 현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공식적인 선거운동 기간은 짧고 공략해야 할 유권자는 많은데, 그렇다면 투표 참여가 불투명한 80%의 유권자보다 투표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나머지 20%의 여론 주도층을 상대로 선거전을 펼칠 수밖에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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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정당, 계급색이 없네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조혜정 기자)
주택 소유·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어디에서도 진보 정당 지지층 특색 안 보여
 
지난 10년 동안 겪었던 진보 정당의 이런 부침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노동운동가 손낙구씨는 민주노동당이 계층적 지지 기반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지자의 경우 부자·고학력층은 한나라당, 서민·저학력층은 민주당이라는 구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지지층은 자산·거주형태·학력 등 계층별 특성과 정당 지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손낙구씨의 저서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수도권편>을 보자. 2004년 총선에서 서울·경기 등 수도권 읍·면·동 1164곳에서 민주노동당이 얻은 평균 득표율은 13%였다. 이 가운데 평균 이상으로 민주노동당에 지지를 보낸 동네는 501곳(평균 지지율 15%)인데, 이들 지역 거주 가구의 56%가 주택 소유자다. 반대로 민주노동당 득표율이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동네 663곳(평균 지지율 11%)의 주택 소유자는 55%다. 주택 소유자 비율이 거의 같다. 거꾸로 주택 소유자의 비율이 수도권 평균인 56%보다 높은 617곳에서 민주노동당의 득표율은 전체 평균 득표율과 같은 13%였다. 주택 소유자 비율이 평균보다 낮은 547곳의 득표율은 14%였다. 민주노동당을 많이 찍은 곳이건 적게 찍은 곳이건 주택 소유자 비율은 별 차이가 없고, 집을 가진 사람이 많건 적건 민주노동당 지지율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서민층 분포와 관련 있는 지표인 1인 가구와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 비중으로 따져보면 어떨까? 민주노동당을 평균보다 높게 지지한 501곳과 평균 미만으로 지지한 663곳의 1인 가구 비중은 19%로 같고, 지하·반지하 가구 비중은 각각 8%와 10%로 2%포인트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한 지하·반지하 가구가 수도권 평균보다 많은 498곳과 평균보다 낮은 555곳에서 민주노동당에 보낸 지지율에도 차이가 없다. 서민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도 민주노동당에 ‘유별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 된다.
 
이런 현상은 아파트 거주 여부, 학력 수준, 종교, 투표율 등의 변수로 분석해도 마찬가지다. 계층적 특성과 민주노동당 득표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는 이런 현상은 2004년 총선과 2006년 지방선거에서 반복됐다. 달라진 건 서울에서 3%포인트, 인천에서 2%포인트씩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빠졌다는 것뿐이다.
 
민주노동당 당직자 출신의 한 인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풀이했다. “2004년의 높은 득표율·지지율은 ‘탄핵 후광 효과’와 민주노동당이라는 ‘새로운 정치 상품’에 대한 기대에 크게 힘입었다. 이후 지지율이 하향 곡선을 그린 건, 이런 거품이 빠진데다 진보 정치를 맛보게 해달라는 기대감을 당이 만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노동당 지지율은 민주당(참여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지지율과 동반 상승하거나 동반 하락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 역시 2006년 지방선거에선 지고 말았다. 민주노동당 내 일부 세력조차 창당 시기엔 ‘시기상조론’을 근거로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지지를 주장했을 만큼, 두 당의 정체성 차이는 크지 않은 것으로 비쳤다. ‘보수 세력’으로 확고히 자리잡은 한나라당에 반대한다는 명분이 같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혁 세력’이 잘 하면 ‘진보 세력’도 따라 지지받고, 못하면 같이 비판받는 상황이 전개됐다. 문제는 민주당에 비해 민주노동당의 지지기반은 확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원내 진출 2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지지층이 누구인지, 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파악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지지층 이탈을 불러왔다는 진단이다.   
 
물론 고민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07년 초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은 “당이 원론에만 맴돌 뿐, 서민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당 정책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서민 생활 속으로 더 들어가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현장과 당 활동을 일치시켜야 한다”며 ‘반성과 청산’을 주장한 바 있다. 노회찬 당시 의원도 “당장의 현실이 버거운 사람, 월소득 150만원 이하의 사람들 사이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율이 한나라당에 밀린다. 비정규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민들에게 희망을 못 주고 있다”는 지적을 반복했다. 하지만 ‘실천’은 뒤따르지 않았다. 건강한 리더십도 구축되지 못했다.
 
조현연 진보신당 정책위의장(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부소장)은 저서 <한국 진보 정당 운동사>에서 “‘좋은 정치’의 실현이란 민중들의 삶의 문제를 구체적인 정책 대안으로 조직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파라는 이름의 ‘운동권 동창회’ 집합소였던 민주노동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민주노동당은 ‘대중 정당’이 아니라, 자주파(NL)와 평등파(PD)가 노선 투쟁이나 당내 소권력 투쟁을 벌이는 ‘운동권 단체’였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자기 정파의 지지를 얻어 주요 당직을 맡거나 정파의 세력을 확장하는 데 골몰한 나머지 ‘보통 사람’의 생각과 동떨어진 일들이 반복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민주노동당이 국가 비전으로 내세운 ‘코리아 연방공화국’ 논란이다. ‘코리아 연방공화국’은 경제가 최대 화두였던 2007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처음으로 발표한 공약이었다. 다수파인 자주파의 목소리가 관철된 결과였다. 평등파는 “통일보다 자녀 교육비나 돌아오는 카드 결제일이 더 큰 관심사다. 현 단계의 통일은 떡도 밥도 아니다”(조승수 당시 진보정치연구소장)라고 반발했다. 언론은 ‘코리아 연방공화국’의 내용보다 두 정파의 다툼을 보도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연히 ‘표’를 쥔 대중의 관심에선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지적엔 민주노동당도 공감한다.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갖지 못한 채 내부 정파 갈등, 내부 정치에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원내 진출이라는 하늘이 준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게 김창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위원장의 얘기다.
 
운동권만의 관심사에 골몰한 건 분당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 정권 퇴진 운동’을 당론으로 확정한 민주노동당 방침을 놓고선 핵심 당직자조차도 “황당하다. 정당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정책으로 승부하고 선거에서 심판받아야지…”라며 혀를 찬다.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고 있지만, 재벌 비판에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뻔한 원인과 대안을 내놓는 데 그치고 있다고 지적받는다. 어느 쪽도 서민이 믿고 의지할 대안 정당, 찍으면 내게 이익이 될 정당이라는 믿음은 주지 못한 채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진보 정당은 지역에서 주민의 삶과 호흡하는 데도 서툴렀다. 박용진 진보신당 강북구위원장은 두 당 모두를 비판했다. “당원은 집회 때 ‘머릿수’를 채워주는 존재밖에 안 됐다. 당이 지역 주민들이 뭘 원하는지 늘 귀기울이고, ‘손에 잡히는 복지정책’을 제시할 수 있었다면 진보 정당이 이렇게 힘들어졌을까? ‘우리가 당신들 편입니다, 입당하세요’라는 ‘5천원(최소 당비)의 신뢰’조차 만들지 못한 정당이 무슨 진보 정당이냐.”
 
진보 정당엔 미래가 없는 걸까? 대선 이후 분당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선택은 크게 네 가지였다. 남아 있거나, 떠나 진보신당·국민참여당으로 옮겨가거나, 아예 정당에 가입하지 않거나. 다들, 대중 정당으로 길을 잡지 못한 결과물인 분당으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서민의 이해를 진짜로 반영해줄 진보 정당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무당파’로 남은 광주의 전 당원은 “진보적 가치를 대중적으로 얘기할 수 있게 된 건 민주노동당 활동의 큰 성과다. 이젠 그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도부의 복잡한 셈법과 달리 당원 혹은 당원 출신들은 이번 지방선거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으니 정책에 기반한 선거 연합을 통해 ‘진보 정당표 정책’을 국민이 경험하도록 하고, 실력을 인정받으면 한발한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기대가 현실이 될지, 꿈에 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건 살아남으려면 이겨야 하고, 이기려면 자신들이 누구의 대리인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기러기떼의 선두는 뒤따르던 기러기들이 자기가 가는 방향과 조금 떨어진 방향으로 이동하면 즉시 그 쪽으로 이동해 앞장선다고 한다. ‘20 대 80’ 사회인 이 땅에서 80%가 과연 어디를 보고 있는지, 진보 정당이 다시 살펴야 할 때가 아닐까.
 
‘진부함’에 갇힌 언어
‘님’도 ‘씨’도 있는데 왜 굳이 ‘동지’?

 
“투쟁, 진군, 사수, 분쇄…. 이런 진부한 표현들에 갇히지 않을 때 상상력이 나온다. 흔히 노동자를 ‘세상을 바꾸는 존재’라고 한다. 그 세상을 바꾸는 존재가 자신은 얼마나 바꾸었나. 좀 세련되게, 그리고 전복적으로 바꿀 생각은 없단 말인가.” 고경태 전 <씨네21> 편집장은 자신의 책 <유혹하는 에디터>에서 진보 진영의 딱딱하고 상투적인 언어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 68운동 때 민주사회학생연맹(SDS) 지도자로 “웃음은 우리의 정치적 깃발”이라는 말을 남긴 제리 루빈을 인용하면서 그는 진보의 언어가 재기발랄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덧붙였다.
 
진보 진영, 특히 대중 정당을 표방하는 진보 정당의 경직된 ‘운동권 용어’는 대중이 진보 정당에 거리감을 느끼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지적된다. 생존권·동지·투쟁 같은 낯선 말이 밥·친구·싸움 같은 ‘일상의 언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런 용어는 진보 정당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는 유용할 수 있지만, 대중에겐 ‘구별짓기’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2004년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데는 TV 토론회 등에서 “불판을 갈아엎자”는 등 신선한 언어로 딱딱한 진보의 이미지를 깬 게 크게 작용했다.
 
김기주 민주노동당 의정기획실장은 “쉬운 말, 일상적인 말을 쓰려는 노력은 많이 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운동권과 관계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쉽게 바뀌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심상정 진보신당 경기지사 예비후보 캠프의 김성희 공보실장도 “진보 정당은 국민들이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정치 영역이자 개념이기 때문에 일상의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진보 진영 안에서 ‘우리는 다르다’는 자의식이 강한 것도 ‘운동권 용어’를 고치지 못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언어는 생각의 집’이란 말이 있듯, 오랫동안 유지해온 생각의 틀과 언어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나마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일이 많은 국회의원이나 유명 정치인은 ‘단련’될 기회가 많기 때문에 나은 편이다. 하지만 정책을 만들고 연설문 따위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은 그렇지 않다. 이 때문에 진보 정당 주변에선 “대통령 문서는 17쪽을 넘기는 일이 없지만, 진보 정당 문서는 최소한 170쪽”이란 우스개도 나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만,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도 없다. 관건은 얼마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노력하느냐가 아닐까. 민주노동당 출신의 한 인사는 “축약어·은어 같은 운동권 용어 100개 가운데 98개는 안 쓸 수 있다. ‘님’도 있고 ‘씨’도 있는데 왜 굳이 ‘동지’냐. ‘투쟁’이란 말은 들어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며 “가급적이면 쉽고 일상적인 말, 적어도 어렵더라도 몇 번 들으면 친숙해지는 말을 의식적으로라도 골라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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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투표자를 대변할 차이를 만들어라” (한겨레21 2010.02.19 제798호, 최성진 기자)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인터뷰
“대연합에 앞서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는 영역을 찾아야”

 
선거 경쟁과 수의 힘을 핵심 원리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민중이라 불리는 시민의 다수는, 민주주의가 허용하는 여러 제도적 메커니즘을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개선되기를 기대한다. 이 때문에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면 사회복지에 친화적이고 노동통합적인 생산·분배 체제가 발전할 가능성이 다른 체제에 비해 훨씬 더 크다. 그런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절차적 차원에서 공고화되고 제도적 차원에서 안정화 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왜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는 무기력한가?
 
2006년 나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민주주의의 민주화>는 이런 물음에서 출발하고 있다. 5년 전 최 교수가 지적한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편>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됐다. 최 교수가 민중이라 부른 시민의 다수는 정치를 통해 자신의 삶의 조건이 나아지리라고 기대하기보다 투표 불참을 선택하고 있었다. 학력과 소득이 낮고 주거가 불안정해 자주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으며 투표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계급적 정체성을 배반하지 않은 이들 정치 소외계급에 대한 최 교수의 견해를 들어봤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학력이 높은 사람이 한나라당을 찍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투표하지 않는 ‘정치적 양극화’가 드러난다. 이런 현상은 저서 <민주주의의 민주화>에서도 지적한 바 있는데.
=정치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느냐를 이해하는 데 투표율만큼 좋은 지표는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987년 민주화 이후 20여 년 동안 투표율이 대선, 총선, 지방선거, 재·보궐 선거 모두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2007년 대선 투표율은 63%다. 투표 안 한 사람이 40% 가까이 된다. 이명박 정부는 투표한 63% 가운데 절반도 안 되는 표로 들어섰다. 정치적으로 보면, 유권자의 3분의 1밖에 안 되는 사람의 지지로 대통령이 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3분의 2까지 통치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슈마다 전쟁을 치르듯이 싸우고, 이명박 정부가 반민주적이다, 민주 대 반민주 구도가 어떻다고 하지만, 이건 어찌 보면 ‘허상’이다. 투표한 사람들만의 정당 선호로 싸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투표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 즉 정치적으로 대표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괴리와 균열이다.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정치적 선호가) 개표되지 않았고, 그 많은 시민이 뭘 요구하는지 표출되지 않았다.
 
이 투표하지 않은 사람, 즉 ‘얼굴 없는 시민’이랄까 ‘침묵하는 다수’의 소리가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를 통해 드러났다. 자산소득, 대학 졸업 여부, 종교라는 세 가지 변수는 일차함수적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집 가진 사람, 대졸자, 종교 인구가 많을수록 한나라당 지지도 높다. 반대의 경우엔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주택과 먹고 사는 문제에서 기존 정당이 자기들의 이익·요구·의사를 대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표하지 않는 사람도 적극적 불참자와 소극적 불참자로 차이가 있지 않나.
=투표해봤자 별다른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전망 때문에 투표를 하지 않는 게 적극적 불참자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게 소극적 불참자다. 하지만 차이는 애매하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에선 자산소득과 주거 형태를 중심 변수로 봤는데, 1인 가구, 지하·반지하 가구, 전·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투표율이 낮다는 얘기는 내용적으로 이들이 비정규직 등으로 고용 조건이 나빠 투표일에 투표하러 가기 쉽지 않다는 거다.
 
-선거제도 측면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를 분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의 역할에 비판적이다. 민주주의에서 국가가 선거를 관리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다. 정당 사이의 합의로 제도를 만들고 정당이 (선거를) 관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돈 안 드는 선거’, 즉 정치의 ‘효율성’과 ‘생산성’이 정치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정당 역할이 축소되기도 했다. 선거에서 대중과 접촉하기도 어렵고, 정당은 대중과 제대로 소통이 안 되게 됐다.
 
-정당 간 협의를 통해 선거제도를 만들면 정치의 효율성·생산성이란 가치가 선거제도에 반영되지 않을 수 있나.
=효율성·생산성은 경제적인 말이다. 정치도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게 필요하지만, 정치의 가치는 시민의 소리를 제대로 대표하고, 대표된 소리를 좋은 정책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기여할 수 있느냐에 있다. 정치가 효율성·생산성이라는 가치로 이해되면 정치는 경제적 가치에 종속된다. 경제는 시장이나 생산체제처럼 정치와는 아주 다른 수준에서 발생하는 현상 아닌가. 그렇다면 시민의 소리는 어디서 대표돼야 하고, 민주주의는 뭐냐는 근본적인 문제를 던질 수 있다.
 
-그런 현상을 ‘정치의 신자유주의화’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해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민주적인 역량이고, 독자적 역할과 지평을 갖고 있다. 그래야 경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리하고,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정치와 경제가 연동돼서 움직이면 정치는 축소되거나 소멸해 민주주의의 가치가 위협받는다.
 
민주주의가 반드시 사회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구현하는 체제라는 것은 오해다. 시민이 직접 통치하는 게 아니라 대표를 선출해 통치하기 때문에 시민의 요구와 선거 결과, 그 대표가 결정한 정책 내용 사이에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대표들이 시민의 생각이나 요구와 동떨어진 정책을 펼 수도 있지만, 그게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얘기할 순 없는 거다. ‘지금은 절차적 민주주의지만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 ‘최상층을 대표하는 이명박 정부가 무슨 민주주의냐’고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통해 대표로 뽑혔기 때문에 엄연히 민주적이다. 그들이 아무리 정의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한다고 다수가 생각한다 하더라도 엄연히 민주주의다.
 
그래서 정당이 중요하다. 정당의 내용이 어떠냐에 따라 사회·경제적으로 좋은 정책이 나오고, 투표한 사람의 요구에 일정하게 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당이 나쁘면 나쁜 결과도 나온다. 용산 참사 장례식에 야당 정치인이 참석해 애도한 것까진 좋다. 하지만 ‘이벤트’다. 아니라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정부의 재개발 정책, 토지 정책, 도시계획에 대해 야당으로서 정책 대안이 있어야 할 것 아니냐. 민주당이 아무리 이명박 정부를 비판해도 그 진정성을 믿을 수 있나? 민주당 집권 때도 비슷한 일을 했잖나. ‘과거에 우리가 이렇게 했는데 잘못됐고, 이명박 정부는 더 잘못됐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 저렇게 하겠다’고 얘기하지 않는데, 저 사람들이 집권한다고 나아질 게 뭐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2010년 지방선거를 야당은 민주 대연합 구도로 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민주 대연합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한다. 그건 ‘반이명박 정부 연합’이다. 어떻게든 이명박 정부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조급함과 성급함의 발현이다. 이명박 정부는 반민주고 반대 쪽은 민주라고 정의하기 어렵다. 또한 ‘대연합’은 정치적으로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여러 사회 세력의 대연합이어야 하는데, ‘반이명박’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다양한 사회집단이 정치적으로 세력화하는 것의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대연합은 필요하다. 하지만 민주 대연합은 양당 체제적 경향이고, 소수의 이익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소수의 이익이 대변될 여지를 열어놓고, 그 위에서 이명박 정부의 대안을 만드는 과정이 우선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 간의) ‘차이’를 먼저 만드는 게 대연합보다 중요하다. 대연합도 차이에 기초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않은 영역을 찾아, 투표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투표장으로 끌어내느냐가 관건이다. 투표라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지 않은 사람들의 요구를 귀담아듣고 반영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수를 만들 수 없다. 그동안 정치학자·평론가·정치인들이 정치현상을 설명할 때 지나치게 담론 중심으로 이슈를 따라 유행하듯 하는데, 이런 걸 그만하고 우리 사회 현실을 직시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번 연구 결과가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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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계급을 가르더라…순간 소름이 돋았다” (한겨레, 이세영 기자, 2010-02-11 오후 02:29:15)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펴낸 손낙구씨
지지정당 선택 부동산자산따라 갈려
전통적 계급정치 모델과 차이 드러내
 
손낙구(49) 전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장은 최근 <대한민국 정치 사회 지도>(후마니타스)라는 수도권 지역사회 연구서를 내놓았다. 분량이 1600쪽이 넘는다. 수도권 1186개 동네(읍면동)의 사회지표를 백분률로 환산해 정리하면서, 주민들의 정치적 선택이 자산(주택)·학력·종교 같은 사회경제적 변수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 파헤친 역작이다. 그 전언 가운데 하나는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주택소유자와 고학력자가 많은 반면, 민주당을 많이 찍은 동네는 무주택자, 저학력자가 많다는 사실이다.
 
-분석 작업 전 이런 결과를 예상했나.
“엑셀 출력지를 뽑아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막연히 추정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떤 사실이 그리 충격적이었나.
“서울에서 한나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 열 군데를 추려봤더니 주민 10명 가운데 8명이 자기 집을 갖고 있고, 9명은 대학 이상을 나온 사람인 반면, 민주당 득표율이 높은 동네들은 집 가진 사람이나 대학 나온 사람이 10명 가운데 4명이 채 안 됐다. 이거야 말로 주택을 매개로 진행 중인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손 전 실장의 작업은 한국에서 소득보다는 자산, 그 중에서도 부동산 자산이 사회정치적으로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유권자가 노동자인지 자본가인지, 노동자라면 생산직인지 사무·관리직인지, 소득은 또 얼마나 되는지 등의 차이보다 자기 집이 있는지 없는지, 다주택자인지 아닌지 등의 차이가 지지정당을 가르는 데 한층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손 전 실장의 분석결과는 전통적인 계급정치 모델에서 이탈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드러내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의 함의대로라면 한국에서 전통적인 계급구획이 정치적 의미를 갖긴 어려울 것 같다.
“단정하긴 이르다. 다만 앞선 책 <부동산 계급사회>에서 이야기하려 했던 것처럼 소득이나 금융자산보다는 주택 자산의 많고 적음으로 집단을 분류하는 게 한국에서 강한 설명력을 갖는 것은 분명하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이다. 주택소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집단 아닌가.
“지방은 특히 그렇다. 이번에 경기 화성(쌍용차가 있다)을 눈여겨 봤는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많은 대공장 지역이라 해서 결과가 다르게 나오지 않았다. 조합원 여부가 투표행위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얘기다. 변수는 역시 집이다.”
 
의아한 점은 손 전 실장이 애초 투표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변수로 주택·학력·종교 세 가지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계급에 기반한 투표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지목되어온 것이 출신지역이란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출신지역은 왜 변수로 안 다뤘나.
“불가능했다. 데이터로 활용한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센서스) 자료에는 출신지 구분이 아예 없다.”
 
-서울·수도권 역시 출신지에 따른 투표경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통계를 돌려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나 역시 궁금하다. 추측컨대 출신지역과 계층이 상당부분 겹치게 나오지 않을까. 일선에서 선거를 치르며 느꼈던 문제이기도 한데, 호남 출신 가운데 무주택·빈곤층 비율이 높고, 영남 출신에선 주택소유·부유층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게 사실이다. 이 문제로 최장집 교수와도 얘기를 나눠봤다. 최 교수도 얘기하더라.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상당부분 겹칠 거라고.”
 
통계 전문가들은 손 전 실장의 분석이 지닌 방법론적 맹점을 꼬집기도 한다. 투표행위의 결과(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를 5개 집단(분위)로 배열한 뒤 각 분위별로 주택소유·학력·종교 등 변수들의 변화 추이를 살피는 방식으로는 어떤 변수가 얼마 만큼 실제 투표 행위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엄밀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변수들 상호간의 간섭을 통제하는 것이 필수다. 회귀분석 같은 전문 통계기법이 동원되는 이유다.
 
-회귀분석 기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내가 사회과학 전공자가 아니지 않나.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위까지만 가보자고 생각했다. 사실 회귀분석처럼 정교하게 들어가면 이번 것처럼 눈에 확확 들어오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장담은 못하겠다.(웃음)”
 
-연구자들 가운데 데이터에 욕심을 내는 사람이 적지 않을텐데.
“분석에 활용한 읍면동 단위 센서스 자료는 국회 보좌관할 때 입수한 공공자산이다. 독점할 이유가 없다.”
 
-연구 지역을 확장하거나 분석을 좀더 심화시켜볼 생각은.
“숫자니 통계니, 징글징글하다. 깊은 연구는 전문가들 몫이다. 난 본업인 노동운동사 연구나 하련다.(그는 올해 대학원 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책에는 지역변수와 정당선호의 관계 못잖게 시선을 잡아끄는 게 있다. 투표율이다. 분석에 따르면 투표율이 낮은 동네는 예외없이 무주택자, 1인가구, (반)지하 거주자, 저학력자의 비율이 높다. 왜 가난한 동네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는가. 원인이 무엇이든 분명한 것은 가난한 자들이 민주주의 이전 사회가 그들에 부과했던 위치, 곧 정치라는 공적 공간에의 참여가 배제된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수 대중의 참여가 제도적으로 관철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이런 현상이야말로 랑시에르가 말한 ‘인민 없는 민주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그렇다면 정작 경각심을 가져야할 대목은 ‘계급의 지역적 구조화’나 ‘계급과 정치적 선택의 불일치’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적으로 뿌리뽑힌 자들의 다수가 ‘정치’라는 영역의 분할선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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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출간은 사건이다" (레디앙, 2010년 03월 11일 (목) 16:28:47 최장집)
[서평] 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다른 각도 노동문제
 
1. 들어가는 말
오늘(3월 10일) 출판기념회는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 많이 있는 출판기념회와는 다르다. 시간적으로는 비슷하지만, 손낙구씨의 저서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를 위한 출판기념회는 색다르다. 일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진 정치인의 저서를 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학계에서 직업적인 학자들이 쓴 저서를 기념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가 그동안 노동운동에 전념했던 노동운동 활동가였고, 진보정당의 중심 활동가였다는 사실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직업적인 정치학자의 한 사람인 저로서는 많은 느낌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이 책이 담는 중심 문제들은, 직업적인 정치학자와 사회학자들에 의해 많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수행됐어야 할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한국사회의 중심 문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학계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직업적인 학자/연구자들이 아닌 노동운동과 현실정치에서 활동하던 사람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은, 저를 포함하여 대학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인 학자들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충격으로 느껴진다. 
 
2. 연구의 정치(학)적 중요성
오늘날 한국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무엇인가? 한국정치의 최대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집약하는 지표로서 극도로 낮은 투표율이다. 평등한 정치참여의 권리가 1인 1표의 투표권을 통해 얼마나 효과적으로 실천되는가? 그와 아울러 정당을 중심으로 한 정치의 제도와 과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이러한 문제를 가장 잘 판별할 수 있는 지표로서 투표율 문제인 것이다.
 
또한 한 사회의 정치질서에 대한 유권자들의 기대와 믿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민주주의가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가장 단순하고도 정확한 지표 역시 투표율이다. 민주화 이후 87/88년 대선/총선에서 각각 89.2%와 75.8%이던 것이 그로부터 20년 뒤 2007/8년 대선과 총선에서 63%와 46.1%를 기록하면서 30% 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이렇게 낮은 투표율은 유럽은 물론 일본과도 비교될 수 없고, 선진국 가운데 가장 투표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진 악명 높은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한국에서 사람들은 왜 투표하지 않나? 민주화가 된 지 20년 남짓 된 신생 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왜 한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투표율이 낮나? 민주화 이후 투표율이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유례를 찾기 어렵게 지속적이고 가파르게 떨어졌나?
 
이들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한국 정치학자들의 최대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손낙구의 연구는 이 질문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가 가졌던 어떤 연구 결과보다도 더 종합적이고 확실하게 그 해답의 윤곽을 제시하고 있다.
 
이 연구는 모든 집을 방문 조사한 전수조사 결과에 의거한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자료를 중심으로 여러 통계 자료 동원한 것으로, 이를 분석한 자료의 방대함과 변수들(주택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 자산의 크기)의 현실정합성은 특기할 만한 것이다. 특히 읍면동 수준까지 내려간 전수조사에 따른 집합자료는, 응답률이 지극히 낮은 개인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방법에 의거한 연구들 혹은 기존의 관행이었던 시군구 단위의 조사결과에 의거한 연구들이 갖는 한계에 비해 훨씬 정확하고 포괄적이라는 강점을 가진다.
 
손낙구의 연구는, 지금까지 여러 정치학자들의 단편적인 연구들을 훨씬 뛰어넘는 업적이며,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하고, 이루지 못했던 개척적인 연구로 높이 평가된다. 이 연구 결과는 너무나 방대하고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그로부터 발생하는 여러 중요 문제들에 대해, 그리고 통계기법을 사용하여 더 많은 문제들에 해답을 줄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한국정치와 민주주의 연구에 있어 연구지평을 넓게 열어줄 것이다. 
 
3. 연구의 사회(학)적 중요성
손낙구의 『대한민국정치사회지도』의 또 다른 중요한 의미는, 주택/부동산 문제를 중심으로 한 정치경제학적 의미뿐 아니라, 주거환경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삶의 조건을 규정짓는 도시사회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손낙구의 연구가 발견한 것은, 전체 국민의 30%, 셋방가구의 52%가 2년에 한번 씩 이사를 다니고,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 셋방가구의 80%, 그리고 수도권은 더 심해서 전체의 65%, 셋방 사는 사람의 82%가 5년에 한번 씩 이사를 간다는 사실이다. 
 
수도권 인구의 35%, 셋방가구의 54%는 2년에 한 번씩, 즉 2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절반을 포함해 동네사람의 1/3이 바뀌고, 5년이 지나면 셋방가구의 82%를 포함해 동네사람의 2/3가 바뀌는 셈이다. 이래가지고는 제대로 된 지방자치는 고사하고 회사나 직장에서 사원들의 주소록을 만들기조차 어렵다. 물질적 자산의 측면에서, 주택소유가 불평등을 만들뿐 아니라, 공동체와 인간관계의 유기적 구조를 해체하고, 인간의 정신적, 정서적 안정성에 기초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조건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참으로 폭력적인 환경이 주는 긴장과 불안, 개개인의 삶의 불안정성은 여러 개인적, 집단적 수준에서 정신적, 사회병리적 현상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저는 이런 점들이 이 연구결과가 사회학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4. 무엇이 이런 업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나? - 열정과 열정의 억제
앞에서 저는 직업적인 학자가 아닌 사람에 의해 수행된 연구가 놀라운 업적을 가져왔다고 말했다. 연구자는 노동운동과 정치영역에서 부여된 역할을 하는 것이 그의 생업이고 사회적 역할이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도 않고, 대학이나 연구소와 같은 데에 몸담고 있는 직업적 학자/연구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구비의 혜택을 받지도 못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부터 받는 혜택은 출판사에서 받을 인세가 전부일 것이다. 나아가 1,660 쪽에 달하는 책의 규모가 말하듯이 연구규모의 방대함으로 인하여 이 정도의 규모는 혼자서 하기가 어렵다. 요즘 학계에서 연구자/학자들이 하는 일반적인 방식대로라면, 연구팀을 구성하고, 프로젝트를 만들고, 연구비를 받아 공동으로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연구비도, 아무런 공동연구자도 없이 혼자서 이를 수행했다. 이것이 저자로서의 손낙구를 완전히 다르게 볼 수 있게 하는 요소다. 손낙구의 방대한 연구결과를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사람은, 모로하시 테츠지(諸橋轍次, 1883-1982)라고 하는 일본의 위대한 한문학자다. 그는 36년간 노고의 결과로 만들어진 대한화사전(大漢和辭典) 13권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사전은 지금까지 나온 한문사전 가운데 가장 크고 완벽한 사전으로, 한문을 하는 사람은 필수적으로 참조하는 사전이다. 벌써 십수 년은 족히 지났지만 하버드 대학교에서 이를 영역하기 위해 수백만 불짜리 프로젝트를 만들어 작업을 진행하다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얘기 들은 적이 있다.
 
모로하시는 인문학자이지만, 또한 손낙구와 유사한 정치사회학적 영역에서 19세기 말 런던의 빈곤실태를 조사 연구한 찰스 부스(Charles Booth. 1840~1916)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리버풀의 유명한 상업 부르주아지로, 부유한 상인이고 선박 소유주였던 그는 평소 보통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향상시키는 데 상당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급진파들이 런던의 빈곤상태를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얼마나 진실인가 직접 조사해보기로 결심했다.
 
런던 빈민지구인 동부지역의 골목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모든 거주자들을 조사하다가, 직접적인 방법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바꾸어서 자료 수집을 끝냈다. 그는 총 17권의 조사보고서를 완성(1901~1902)했다. 그의 연구는 영국에서 경험적 사회학을 개척했고, 1908년 영국 노년연금 도입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무엇이 혼자서 이런 엄청난 작업을 하도록 했나? 무엇이 손낙구로 하여금 이런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나?
 
저는 그것을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열정 없이는 이러한 작업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무언가 일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것은 제어되고 정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사회의 부정의를 보거나, 인권이 유린된다고 생각하거나, 또는 빈곤과 노동 현실이 참담하여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 안으로부터 열정이 발동함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열정이 현실을 바꾸거나 어떤 것을 이루어낼 수 있기 위해서는 이를 절제하고 정련하는 내적 힘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것은 한낱 정서적으로 급진적이 될 뿐이다. 열정을 갖는 사람은 많으나 내적 통제력으로 절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저자 손낙구는 한국사회에서 누구보다도 부동산 자산의 정치경제가 만들어내는 생활조건과 주거환경의 실상을 밝히는데 그의 열정을 쏟아 부었다.
 
그것이 한국사회의 불평등의 핵심적 요소이며, 노동자들, 사회 소외계층들의 삶의 조건을 규정하는 핵심적 문제라고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구가 말하는 핵심적 문제의 하나는 노동문제와 주택문제로 표출되는 부동산 자산의 불평등 구조는 직결돼 있다는 점이다. 즉 그것은 다른 각도에서 접근된 노동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연구를 통하여 노동문제는 개선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 그것이 밖으로 표출되지는 않았지만 강렬한 열정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그동안 학계에서 누구도 하지 않았던 거대한 작업을 만들어내게 했던 힘이라고 생각한다. 
 
5. 연구의 결과가 말하는 것
손낙구의 연구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정치적 갈등구조의 양극화다. 오늘날 우리가 일상적인 정치언어나 레토릭, 정치적 슬로건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에서의 양극화다.
 
한국사회의 중심적인 갈등구조는 다른 것이 아닌, 대표된 영역과 대표되지 않은 영역간의 갈등, 즉 사회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중산층 이상의 제도 내로 통합된 사회계층과 서민으로 통칭되는 제도 내로 통합되지 못한 노동자, 사회적 약자, 소외세력 간의 갈등을 특징으로 한다는 점을 경험적 자료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후마니타스>의 박상훈 박사의 간결한 표현처럼 한국사회에서 제1당은 유효 투표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무당파,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이고, 제2당은 한나라당, 3당은 민주당 등이며, 이것이 갖는 함의는 크다.
 
오늘날 정치 갈등은 대결적이고 격렬하게 공격적인 언어의 홍수로 뒤덮여지고, 보수파와 진보파 사이에 엄청난 이념적 차이와 중대한 정치적 이슈를 둘러싼 타협 불가능의 투쟁처럼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 방향과 보통 사람들의 사회경제적인 삶의 문제를 둘러싼 진정하고 중심적인 갈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단지 가식적인 것이거나,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격렬한 것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대립과 투쟁은 제도권 내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반영할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 민주주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참여의 위기다. 이를 풀어 말하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참여의 불평등과 중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체제로서의 민주주의는, 독자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경제라는 조건 위에서 작동하기 때문에,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동행하는 것은 필연적이고 자연스럽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정치참여의 평등을 원리로 하여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스스로를 정치적으로 조직하고 보호할 수 있는 평등한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의 불평등과 힘의 열세를 일정하게 완화할 수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약자들이 투표하지 않을 때(투표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게 될때)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장경제적 힘의 구조는 그대로 개인과 사회경제적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에게 몰아닥칠 수밖에 없다.
 
이점에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완화하거나 개선하려는 투쟁과 노력 이전에 해야 할 과제는 바로 어떻게 정치적 참여의 평등에 가까이 다가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코자 하는 투쟁과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서 노동문제는 어떻게 접근되고, 그 해결을 위한 실천적 전략이 모색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이 나타난다. 이것은 손낙구의 연구가 노동운동에 대해 말해주는 가장 중요한 함의다.
 
요컨대 노동운동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돼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 핵심은 노동자들, 사회적 약자들이 투표할 수 있는 그들의 정치적 대표의 조직을 건설하는 문제다. 손낙구의 연구는 노동운동이 이 문제에 완전히 실패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는 동네일수록 투표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반면, 민노당/진보신당은 동네별 특성과 지지율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없다. 이 연구는 진보정당은 자신만의 지역기반을 갖지 못한 채 유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정작 누구보다 보호를 필요로 하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수 있는 정당들은 사실상 투표의 대상으로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노동운동이 진정한 노동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해있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언어, 발상, 전략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손낙구는 이 상황을 노동운동의 중심과 지도부의 위치에서가 아니라, 그 반대편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의 조건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노동운동의 정치언어, 이념은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접근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투쟁을 통해 사회경제적 조건을 곧바로 개혁 또는 변혁코자 하는 것을 지향했다. 그것은 급진이념적이고, 정치적 동원을 위한 슬로건의 성격을 강하게 띠었다.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노동운동을 접근하는 것의 핵심은 정치적으로 유효한 집단을 투표를 통해 조직하는 것이고, 정치과정에서 정치적인 행위자가 되는 정도만큼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노동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참여의 평등을 실현하는 노력이 선행되고, 그 다음 이를 통해 사회경제적 문제를 접근하는 우선순위가 전도된 것이다. 민주화운동 시기 대학생, 지식인들에 큰 영향을 가졌던 노동운동과 그 전통은 우리 사회의 유기적 핵심에 침투하지 못했다.
 
추상적 언어와 이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동안, 구체적으로 노동현실을 개선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구체적인 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손낙구가 연구에 임했던 방식은 더없이 중요하다. 그는 무엇을 먼저 주장하기 이전에, 또는 당위적인, 규범적인 문제를 말하기 이전에 사태의 실상을 먼저 규명하고자 했다. 문제가 경험적인 사실을 통해 드러났을 때 우리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많은 부분 저절로 발견하게 된다. 
 
6. 맺는말
손낙구의 연구는, 이미 누군가 특히 직업적인 학문 연구자들에 의해 다루어졌어야할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의 중심문제를 다루었고, 열악한 조건 하에서 개인의 혼자 힘으로 누구도 하기 어려운 방대한 경험적 연구결과를 만들어냈다.
 
그의 연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과학계의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의 학문적 성과에 대해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결과가 직업적인 지식인 사회 밖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 또한 커다란 의미가 발견된다. 연구결과는 정치적 실천의 장에서 나왔기 때문에, 정치실천에 있어 보다 직접적인 충격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느껴진다. 특히 노동운동의 방향에 있어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하게 된다. 다시 한 번 저자 손낙구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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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디플로] 계급투표에 관한 불편한 진실 (한겨레21 2010.03.12 제801호, 이종래 독일 뮌스터대 철학박사.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사회학))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3월호] [특집]계급과 투표의 고차방정식
 
선거철이다. 계급투표라는 말을 흔히 듣는다. 하지만 이 단어를 들으면 한편으론 고개를 끄덕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론 묘한 반감마저 들기도 한다. 왜냐면 한국 정치사에서 계급투표라는 말을 쓸 만큼 눈에 확연하게 드러난 선거 결과가 과연 얼마나 존재했을까라는 도발적 질문이 들기 때문이다. 오히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에서 계급의 이익을 배신하는 반(反)계급투표만 끊임없이 반복해온 현실만 머리에 맴돌 뿐이다. 1950~60년대 ‘막걸리 선거’와 ‘고무신 선거’를 거쳐 80~90년대 ‘빨랫비누 선거’와 ‘갈비탕 선거’로 이어져온 각종 향응이나 금품 제공은 부정선거의 화려(?)한 단골 메뉴였다. 고무신 한 짝과 막걸리 한 잔에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면서도 지독히도 지연·혈연·학연에 연연해온 풍토는 우리 선거 문화에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 노동자로 대표되는 서민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는 후보에게 신성불가침한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가문·학교에 따라 줄서기를 하는 전근대적 선거 행태를 지금도 쉽게 접하는 마당에 계급투표 운운하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한 일인지 외려 의문부터 드는 게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냉소적이고 자기비하적 자책 이전에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계급투표는 어떻게 굴절되고 왜곡·변형돼가는지 한 번쯤 따져보는 게 의미 있을 수 있다. 정치사회학에서 계급투표는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하는 집단적 투표 행위를 의미한다. 특정 집단이 기존 조직이나 제도로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선거 공간에서 투표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 바로 계급투표다. 이런 정치적 행위는 궁극적으로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사회적 변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되는데, 계급투표라는 본디 개념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 투표 행위에서 연유한다.
 
계급투표의 구체적 실체는 노동자 집단이 선거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의도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투표 행위를 조직하고 자신이 선호하는 후보가 당선되도록 하는 행위를 말한다. 노동자 계급투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모순으로 파생되는 계급정치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흔히 보편적 이해관계로 포장되는 경향이 있는 자본가적 계급투표에 비해 노동자 계급투표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즉, 노동자가 집단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하는 행위 자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먼저 사회 변혁을 지향하는 합목적적 행위의 연장선상에서 계급투표를 제한할 경우 변혁과 개량의 구분이 우선된다. 이 경우는 노동자계급의 대표가 실제로 획득하는 득표율에 대한 의미보다는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얼마나 철저하게 알리고, 자본가 주도의 계급지배가 만들어낸 사회구조적 모순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문제점을 전파하는 데 의미를 둔다. 이와 반대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대표자를 의회로 진출시키는 일에 심정적으로 동의한 노동자가 손쉬운 투표 행위 정도로만 집단화한다는 의미에 무게중심을 두는 해석도 있다. 이 경우는 노동자 대표가 선거에서 실제 획득한 득표율에 대한 해석에 의미를 둔다. 선거를 선전과 선동의 장으로 보는 해석보다는 후자의 경우가 한국 사회에서도 설득력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노동자의 동질적 투표 행위가 실제 존재하는지는 과연 자신들의 선거구 내에서 진보 정당을 얼마나 지지했는가로 확인할 수 있다. 노동자 계급투표라는 개념은 노동자 지지표의 ‘응집력’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계급투표의 저변에 놓인 노동자 개인의 행위를 규명하기보다 현상으로서 계급투표를 증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계급투표의 원인 분석에는 한계가 있다. 다시 말해 계급투표는 노동자 계급의식의 단편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계급 형성 과정에서 필요한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는 단서가 될 수 있음에도, 이에 대한 해명이 불충분하다. 게다가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해서 계급의식 역시 자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할 수는 없다. 이 모든 의문은 한국 정치사에서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계급투표, 과연 있기는 하나? 
계급의식을 가진 특정 계급이 집단적 투표 행위를 하는 것을 계급투표라고 할 경우,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이 계급투표를 하고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1987년 이후 노동조합운동이 대중화됐지만, 선거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신의 이해관계와 관계없는 몰계급적 투표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해왔기 때문이다. 이른바 ‘즉자적 계급’(Klasse an sich)으로서 산업노동자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노동자의 투표 행위는 다른 계급 혹은 계층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아 ‘대자적 계급’(Klasse für sich)으로서 노동자계급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원론적 의문마저 제기될 수 있다. 지난 17대 대선에서 전국 평균 득표율 약 3%를 올린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는 비록 일부 산업 지역에서 평균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전국 합계 약 71만여 표에 불과했으며, 이 득표수는 80만여 명에 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수보다 적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하다. 물론 제조업 노동자가 밀집해서 살아가는 울산·창원과 같은 산업 지역의 경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자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려는 후보가 꾸준히 당선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계급투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이 경우는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고 예외적이라는 점에서 일반화하기 어렵다.
 
반(反)계급투표, 과연 무슨 의미일까?
사회적 존재인 계급과 무관한 투표를 하는 걸 반(反)계급투표라고 이름 붙일 수 있다. 이른바 계급이라는 존재를 배신한 반(反)계급투표의 경향성은 한국 정치사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된다.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회의 지형은 ‘진보 배제’와 ‘보수 독점’이라고 간략하게 말할 수 있다. 물론 10년 전에 등장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했기에 진보 배제라는 말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지만, 국회에서 진보 정당이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을 감안하면 정치적 배제라는 용어 사용이 그리 무리가 아니다.
 
이런 정치적 현실은 선거라는 장에서 더욱 쉽게 확인된다. 노동자계급이 포함된 서민층은 계급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지역 정체성’에 따라 투표를 해왔으며, 선거 결과는 마치 삼국시대로 되돌아가는 느낌마저 준다. 다시 말해 유권자의 투표 행위는 계급 정체성보다 지역 정체성으로 구조화돼버린 현실에서 과연 노동자의 합리적 선택이란 처음부터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회의도 가능하다. 물론 최근 들어 정치적 주류의 흐름과 관계없이 노동자의 집단적 투표 행위가 현상적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현상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가 선거 시기에 자신의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는 행위로 인해 생기고 있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계급의식 형성의 단서라고 볼 수 있는 ‘노동자 정체성’이 놓여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몰표를 던지는 투표 행위와 유사한 현상이 자본가계급에서도 존재한다. 강남 3구를 주축으로 하는 부동산 자산가인 소부르주아지들의 투표 행위가 대표적이다.
 
노무현 정권 시절 종부세 저항의 진원지였던 강남 3구 소자본가계급의 투표 행위는 자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반영하고 있다. 부동산과 투표 행위 간의 인과성을 실증적으로 증명한 손낙구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 편>에도 나와 있듯이 다주택 소유자, 아파트 거주자, 정상적인 부부 가구 모형이 많은 지역의 투표율은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을 뿐만 아니라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성도 높다. 주택의 소유·주거·가구 형태에 따라 지지 정당과 투표 가능성까지 달라질 뿐만 아니라, 지난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나타났듯이 선거 과정에서부터 부정선거 의혹이 끊이지 않던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부동산 자산을 소유한 유산계급이 계급투표에 몰두하는 데 비해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무산계급의 투표 경향성을 두고 반(反)계급투표의 전형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 주장은 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손낙구의 책에도 이미 나와 있듯이 표의 응집성에선 비록 유산계급에 미치지 못하지만 무산계급 역시 자신의 처지를 조금이라도 대변하는 중도 혹은 진보 정당에 나름대로 열심히 투표해왔다고 보는 게 정당하다. 선거 결과에서 당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투표 행위가 계속되면서 무산계급의 정치적 무관심 역시 높아졌을 개연성을 두고 계급의식의 부재로 인한 몰계급적 투표 행위라고 핍박해선 곤란해 보인다. 쉽게 말해 아무리 열심히 투표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 데 대한 염증과 혐오가 계급 응집력의 저하와 정치적 무관심의 증가로 이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민으로 대변되는 무산계급의 이해관계를 무시하는 유산계급 중심의 정치는 항상 자신들만의 고유 의제인 지역주의를 감초 삼아서 우려먹어왔을 뿐이다.
 
반(反)계급투표라는 말은 한편으론 노동자계급 중심의 계급투표의 허약함을 냉소적으로 극대화하는 효과를 가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자본가 중심의 계급투표를 숨기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중적이다. 하지만 이 언어적 이중성은 자산가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계급투표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하는 현실의 원인마저 찾아보기 어렵게 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계급의식의 빈약함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모든 문제를 ‘내 탓이오’라는 식으로 돌리는 숙명론과 결정론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자산가가 주도하는 계급투표를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본주의적 사회질서를 강화하는 역(逆)계급투표일 뿐, 결코 계급지배 질서에 반(反)하는 계급투표가 아니라는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반(半)계급투표, 무엇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주도하는 계급투표는 제대로 발현되지 못하는데, 자산가 중심의 계급투표는 제대로 꽃을 피우는 희한한(?) 현상이 한국 사회에서 왕왕 생기고 있다.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에선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긍정적으로 답하면서도, 실제 선거에만 들어가면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권자만 선택하는 격차가 존재하듯이 계급투표 역시 의미와 현실에선 큰 차이가 있다. 바로 이 차이가 발생하는 원인을 간단하게 말하면 계급정치의 빈곤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서구사회에서 노동자계급 주도의 계급투표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산업화 초기 시절 형성된 노동자 계급정당에 충성하는 산업노동자의 모습은 서구사회에서는 흘러간 옛 추억의 하나이지만, 한국 사회에선 제발 일어났으면 하는 소망의 하나이고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의 한국 사회에서 계급투표가 발현하기 어려운 점은 우선 자본주의 초창기에 형성된 공장노동이라는 동질적 조건에서 집단적 계급의식을 형성할 수 있었던 서구와는 너무나도 다른 조건의 차이에 기인한다. 멀리는 분단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조건으로 인해 진보와 보수로 대별되는 이념적 균형을 한국 사회에서 만들기 어려운 역사적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압축성장이라는 한국적 발전 모델이 사회운동에도 그대로 투영되면서 경제적 분배 정의에 초점이 맞춰진 노동운동과 탈물질적 가치 다양성이 우선될 수밖에 없는 신사회운동이 동시에 공존해, 계급정치 형성과 내용에 대한 접근마저 너무나 이질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계급정치 형성에서 필요한 주체들이 지속적으로 보수 정당에 몸을 의탁하는 현상이 반복되면서 계급정당의 출현은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노동자계급이 중심이 되어 이웃한 다른 계급과의 연합 혹은 연대를 구축해가는 계급정치가 더디게 발달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노동자계급 내부가 결코 동질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현실에서도 기인한다.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 규모에서 전면적으로 작동하면서 노동자계급 내부의 분화와 이질성 증가라는 현상은 산업화된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먼저 산업화 정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인구학적 측면에서 전통적 노동자계급의 주류였던 제조업·생산직 노동자 수는 점차적으로 줄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 조직화의 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런 현상은 많은 함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면 노조라는 조직으로 모으기가 쉬운 노동자 수는 줄어드는 데 반해, 노조 조직화가 어려운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 정체성을 확인하고 계급의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중간 교두보인 노조의 역할이 점차 약화 혹은 무력화하는 현상이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 고전적 노동자계급의 요새였던 ‘굴뚝산업’이 서서히 사라지고 첨단 정보기술(IT) 산업과 민간 서비스 산업이 신흥 산업으로 부각되면서 노동의 성격이 강제성에서 자율성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등장하고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하면서 남성 주도로 대표되는 기존 노조운동에 변화를 강요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결론적으로 말해 전통적 육체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진 노조운동으로는 정신적 서비스가 가미된 ‘감정노동자’를 포섭하기가 어려운 현상이 산업사회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전 지구적 규모에서 발생하는 공통분모적 현상 이외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 사이에 2배 이상의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노조 조직률이 임금노동자 전체 대비 10% 안팎에 이를 만큼 낮다는 사실까지도 감안해야 한다.
 
노조조직에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 노동자에겐 계급투표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직된 노동자는 열심히 계급투표를 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반쪽짜리 계급투표의 전형일 것이다. 하지만 이 반쪽짜리 계급투표가 노동시장의 변화에 속수무책의 지경에 놓인 노조운동의 무기력에 책임이 있는지, 아니면 능동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화하는 자본의 움직임에 따른 것인지는 한 번쯤 생각해볼 대목이다.
 
계급투표와 민주주의의 함수관계
우매한 대중이 합법적 선거라는 절차를 통해 철저히 반(反) 혹은 비(非) 민주적 지도자를 선출할 때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는 위기에 빠진다. 파시즘으로 대표되는 전체주의 체제의 등장 과정에는 선거라는 절차가 통과의례처럼 있었다. 한 사회에서 일자리 문제가 가장 심각했을 때 대중은 반(反)계급적 투표 행위에 몰입했다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면, 민주주의 위기와 계급투표 사이에 놓인 상관관계의 비밀은 풀릴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은 곧잘 들리면서도 사회·경제적 첫 번째 의제인 일자리 문제는 비켜가거나 굴절되는 기이한 현상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고 있다.
 
새해가 되면 일자리 문제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말하고 있지만, 정작 노동시장에서 늘어나는 일자리란 불안정하고 장래가 없는 비정규 노동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생에서 실업자로 자리를 바꾸는 것 외에 달리 선택할 게 무어냐는 청년층 예비 노동자들의 볼멘소리가 개인적 무능으로 치부되는 현실은 하나의 보기일 뿐이다. ‘88만원 세대’만 있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직업 선택의 기회마저 제대로 없는 노령 노동자를 일컫는 ‘50만원 세대’도 있다고 말을 하면, 그건 나만 아니면 그만일 뿐이고 사회가 개인적 불행까지 감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기묘한 도덕 교육으로 환원되고 만다. 이것도 모자라서인지 청년과 고령 노동자 사이에 놓인 중·장년 노동자 중에서 노조로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에겐 ‘대기업 이기주의’라는 사회적 저주와 비난이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노조라는 울타리에서 보호받는 행운(?)을 걸머쥔 노동자가 계급투표의 주도 세력이라는 사실은 항상 괄호 안의 내용으로 숨겨지고 있다.
 
일자리 문제는 구직자가 눈높이를 낮추면 해결될 수 있다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가진다는 건 또 다른 인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더 이상 전통적인 노동자계급이 계급정치를 주도하기 어려운 현대사회에서 계급이란 과거처럼 생산관계에서 파생된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소비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인식하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계급의식은 과거처럼 작업장에서 유사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동질적 의식이 아니라, 소비를 할 수 있는 상품과 문화의 향유에서 발생하는 의식적 동질성에 따라 새로이 형성·변화하는 과정에 놓인 것으로 보인다. ‘촛불 세대’가 보여준 신선한 문화적 충격에 노조 운동가들이 스스로 변화하려고 몸부림쳤듯이, 우리 시대의 계급의식 역시 새로운 이미지와 모습으로 변형되고 있다면 지나친 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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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당락 ‘아파트 값’이 갈랐다 (한겨레, 송호진 기자, 2010-06-17 오후 09:24:21)
선관위 득표율 공개…오세훈, 압구정동서 최고득표
아파트보급률·소득수준 따른 ‘계층투표’ 양상 뚜렷 
 
주택소유율과 아파트보급률, 소득수준이 비교적 높은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고, 무주택자가 많은 지역에선 민주당 등 야당에 표를 던지는 성향은 여전할까?
중앙선관위가 지난 16일 누리집에 공개한 ‘6·2 지방선거’ 전국 읍·면·동별 득표율을 토대로 서울시 429개 동의 득표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시장 선거에서 이러한 ‘계층투표’가 뚜렷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서 득표율이 50%(47.4%)를 넘지 못한 오세훈 한나라당 당선자는 주택소유율과 아파트보급률이 80%에 육박하는 서울 압구정동에서 가장 높은 77.1%의 득표율을 보였다. 이른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의 강세도 확연했다. 타워팰리스 등이 있는 도곡2동, 주택소유율이 90%에 이르는 잠실7동과 문정2동, 아파트단지인 대치1동 등에서 70% 안팎의 득표율을 챙겼다. 특히 불과 2만6412표 차로 당락이 갈린 이번 선거에서 오 당선자는 도곡2동에서 서울지역 중 가장 큰 차이인 7485표 차로 한명숙 민주당 후보를 따돌렸다. 아파트가 몰려 있는 여의도동에서도 오 당선자는 68% 득표율을 얻어 한 후보를 6418표 차로 제쳤다.
 
반면, 한 후보의 득표율이 제일 높았던 곳은 종로구 창신2동(61.8%)이었다. 이곳은 2005년 뉴타운 지구로 선정된 뒤 후유증을 겪고 있는 곳으로, 주민 상당수가 뉴타운 개발 이익을 누리지 못하는 세입자들이다. 한 후보는 상대적으로 단독·연립주택이 밀집해 있고, 1인가구 비율이 높은 관악구(대학·낙성대·신림·청룡·중앙동), 구로3동 등에서 60% 가까운 득표율을 기록했다. 한 후보가 오 당선자와의 표차를 가장 크게 벌린 곳은 관악구 청룡동(3419표 차)이었다.
 
주거생활의 차이, 소득수준 등이 투표율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투표율이 가장 높았던 양천구 신정6동(64.3%)은 주택소유율이 80%를 넘고, 아파트보급률이 95%에 이른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도 투표율이 가장 낮았던 논현1동은 이번에도 35.7%로 최저를 기록했다. 논현1동은 전체 가구의 약 75%가 무주택자이고 혼자 사는 가구 비율이 50%에 육박한다. 오 당선자는 강남인 이곳에서 50.5%의 득표율에 머물렀다.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란 책에서 주택소유, 학력, 종교 등과 정치적 선택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손낙구씨는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학력이 높은 곳에선 한나라당을 지지하면 한나라당이 정책으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해주는 투표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른바 부자동네에선 투표율이 높은데다, 그중 4분의 3가량의 득표율을 한나라당이 가져가지만, 민주당이 야당 성향의 동네에서 한나라당만큼 득표율을 얻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선거에서 한명숙 후보는 429개 동 중 61%가 넘는 263개 동에서 오 당선자를 이겼지만, 0.6% 득표율 차로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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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13:43 2010/02/08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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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을 생각한다 관련기사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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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공화국, 아니 이건희 제국에 대한 폭로.
쉽지 않았을 텐데... 다시 한번 삼성, 이건희 일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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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 바랜 신화의 기록 (한겨레21 2010.02.05 제797호, 정혁준 기자)
[VS] 삼성 비자금 양심선언 사건 책으로 정리한 김용철 변호사…
감춰진 ‘황제경영’과 전략기획실의 전횡 다뤄

 
-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일가와 가신들이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일부를 검찰과 언론 등 국가와 사회 여러 분야에 뿌려 공적 기능을 무력화했다. 대부분의 비자금은 이 전 회장의 영속불변의 권력체계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데 사용했다. 이게 삼성 비자금 사건의 핵심이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대부분이 근거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 물론 일부 조세포탈과 배임에 대해선 유죄가 확정됐지만, 이마저도 4개월여 만에 대통령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정사의 기록은 이렇게 끝났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내가 검찰과 법정, 언론에 말한 진실은 역사도 신화도 아닌 야사로만 전해지게 됐다. 내가 말한 기록이 야사로 남더라도 어떻게든 정리해서 진실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었다.
 
= 무소불위의 전략기획실 얘기다. ‘난다 긴다’ 하는 임원들도 전략기획실 앞에선 꾸벅 죽는다. “여기 (전략기획)실입니다”라는 전략기획실 과장의 전화를 임원들은 거의 부동자세로 받는다. 삼성 전략기획실과 청와대 비서실 중 과연 어디가 더 셀 것 같나. 비교가 안 된다. 삼성 전략기획실의 파워가 청와대 비서실을 능가한다. 물론 나 역시 삼성에 있을 때 삼성화재와 삼성전자에 이름을 걸쳐두고 있었지만 그 회사를 위해 일한 적은 없었다. 오로지 이 전 회장을 위해 일했다.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삼성에선 서비스 사장 하다 제조업체 사장 한다. 전문성은 전혀 상관없다. 이 전 회장에게 충성만 잘하면 승진한다.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에서 제대로 된 경영자 하나 키우지 못한다. 이 전 회장의 눈치를 보기에 급급해 잭 웰치 같은 뛰어난 경영자가 나오기 힘든 구조다.
 
-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을 받았으니, 면책을 받은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는데.
= 주로 그런 주장을 펴는 쪽은 자신들을 보수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병역을 기피하는 보수가 있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들이 보수를 자처하는 것은 더 많은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와 반부패의 문제다.
 
- 검찰과 관련한 얘기도 많이 나온다고 들었다.
= 일본 도쿄지검 특수부와 우리나라 검찰을 비교해보자. 도쿄지검 특수부는 집권 민주당의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 간사장의 정치 자금을 수사 중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칼을 들이댄다. 하지만 우리나라 검찰은 죽은 권력에만 칼을 들이댄다. 이명박 정부의 친인척이나 삼성엔 손도 못 댄다. 물론 검사들이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들에게 혁명가가 되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역사에 부끄럽지 않은 검찰 조직이 돼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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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게 정의'?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프레시안, 이대희 기자, 2010-01-29 오후 6:51:02)
[화제의 책] 김용철이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까닭
  
가장 큰 관심을 불러일으킬 내용은 2부 '그들만의 세상'에 기록돼 있다. 김 변호사가 삼성에 입사할 당시부터 퇴사할 때까지 그가 보고, 듣고, 실행하고, 느낀 삼성그룹의 경영방식이 고스란히 수록됐다. 언론의 찬사를 집중적으로 받는 '총수 경영'이 실제로 어떤 폐단을 가졌는지, 이건희 전 회장의 독단적인 결정이 회사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 비리로 얼룩진 이건희 일가를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가 글로벌 기업으로 뻗어나갈 삼성그룹 조직원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등이 세세한 에피소드를 근거로 소개된다. 특히 그는 삼성 경영 실무의 모든 것을 책임졌던 이학수 당시 그룹 부회장과 김인주 당시 사장과의 대화를 복기해 이들의 불법적 경영 행태를 고발한다. 김 변호사의 눈에 비친 그들은 이건희 일가의 이익이 곧 회사의 이익이며, 나아가 국가의 이익이라 믿는 사람들이었다.
 
총수 일가 보필이 그룹 최고 의사결정기구(구조조정본부)의 최우선 업무가 되다보니 실제 그룹의 미래를 열어가야 할 엔지니어, 전문경영인 등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오직 그룹의 검은 돈을 관리하는 이들만이 가장 높은 보수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조치이기도 했다. 내막을 아는 이들이 이탈해서 김 변호사와 같은 행동을 취하는 것은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황제식 경영이 과연 글로벌 삼성의 성장에 도움이 됐을까. 김 변호사는 "아니오"라고 말한다. 모든 결정을 총수와 구조조정본부 소수 임원이 하는 구조이다보니 계열사 사장들은 '얼굴 마담'이나 다름없었다.
 
삼성 노동자와 소비자들의 돈으로 만들어진 비자금의 또 다른 용처도 있다. 바로 이런 황제식 경영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용되는 '뇌물'이다. '떡값'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각계에 뿌려진 이 돈은 이건희 부자가 무죄 판결을 받을 때, 비자금을 조성할 때, 삼성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데 큰 힘을 발휘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많은 사례 중 김 변호사가 직접 맡았던 에피소드 하나를 공개한다. "대법관에게 150만 원짜리 굴비 선물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 당시 이학수는 내가 직접 전달하라고 했다. 그게 예의라는 게다. 그러나 나는 운전기사를 대신 보냈다. 속으로는 '대법관이 설마 삼성이 보낸 굴비를 받겠느냐'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기사에게 들으니, 굴비 잘 먹겠다고 감사 인사를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검은 돈을 주고받은 한국 사회 고위직은 모두 일종의 '패밀리'처럼 엮여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돈을 받지 않거나 양심에 따라 소신껏 소송을 진행해 삼성에 '찍힌' 검사들 일부는 불합리한 인사조치를 받으며 검찰을 떠나야 했다.
 
김 변호사는 주류사회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인들이 집착하는 인맥 우선주의, 접대 문화 등을 꼬집는다. 그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대신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주목한다.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 역시 재벌의 투명성 제고로 찾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내 생각은 다르다. 정의가 패배했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의가 이긴다"는 말이 늘 성립하는 게 아니라고 해서, 정의가 패배하도록 방치하는 게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나는 삼성 재판을 본 아이들이 "정의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생각을 하게 될까봐 두렵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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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0-01-29 오후 6:51:07)
[인터뷰] <삼성을 생각한다> 출간한 김용철 변호사
 
온갖 흑색선전으로 인해 김 변호사가 입은 상처는 여전히 커보였다. 이번 책에서 충분한 해명과 반박을 담으려 했지만, 어떤 독자들이 보기에는 부족해보일 수 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변호사는 "개인적인 면에 대해서는 더 이상 관심 갖지 말아 달라"는 말을 거듭했다.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보느냐"는 말도 자주 했다. 서점 배포를 앞두고, 인쇄가 진행되는 내내 김 변호사가 걱정한 것도 이 대목이었다. "이번 책으로 흑색선전에 대한 해명은 할 만큼 했다. 그러니 이제는 제발 문제의 본질에 관심을 가져달라"는 게다. 그가 말하고 싶어 하는 '문제의 본질'은 뭘까.
 
바로 '부패'다. 온갖 인맥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는 탓에 다들 그 심각성에 대해 둔감해져 있는 부패구조다. 그의 말은 이렇다. "부패에 너무 둔감해져 있는 세태가 안타까웠다. 책을 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삼성에서 내가 겪은 일들은 이런 부패 구조의 아주 작은 단면에 불과하다. 내가 공개한 내용이 부패 구조의 전체라는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다만 이번 책 출간이 전체 부패 구조에 대한 각성의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희 전 회장은 세금을 탈루했을 뿐 아니라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보수 세력이 먼저 이 전 회장을 비판하고 나서야 마땅한데 현실은 달랐다. "나도 어쩌면 보수 세력일 수 있다. 사회에서 누린 게 많으니 말이다. 내가 이야기 한 것도 주로 보수적인 가치였다. 법을 지키자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이 나를 비난하고 나섰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우리 사회에 제대로 된 보수 세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고 본다. 단지 부패 세력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 덜 부패한 세력이 이들과 맞서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부패 세력은 상대적으로 덜 부패한 세력에게 종종 '좌익, 빨갱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운다. 우스운 일이다. 둘 사이의 차이는 그저 부패한 정도 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다가 만약 통일이 되면, 부패 세력이 어떤 빌미로 덜 부패한 세력을 공격할지 궁금하다."
 
오랫동안 검사로 지냈던 그는 모든 일이 법과 제도를 통해 풀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가 직접 겪은 일들이 법과 제도에 따른 공적 절차를 거치는 동안 깡그리 무시됐다. 그의 심경을 들었다. "검찰만 제 구실을 하면, 큰 문제는 없다. 법을 어긴 자들에게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법과 제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한국 검찰은 그렇지 않다. '살아있는 권력', 또는 재벌처럼 '죽지 않을 권력'에 대해서는 그저 눈치만 볼 뿐이다.
 
이대로 가면, 법에 따른 공적 수사 절차를 아무도 믿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 한마디로 후진국이 된다는 이야기다. 한국 검찰이 '거악'과 싸우기는커녕 '거악'과 결탁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거악'에 맞서려는 이들은, 결과적으로 검찰과 싸우게 된다. 검찰과 '거악'이 한 몸이 된 상태니 말이다. 이게 정상일까. 그렇지 않다. 정의를 좇는 이들이 국가기구를 적으로 돌리는 상황은 혁명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일이 법과 제도에 따라 풀려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이런 상황을 원치 않는다. 그래서 책이 나오는 이 시점까지도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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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상가 갈 때 ‘이건희 전용기’ 내줘 (한겨레, 김남일 기자, 2010-02-01 오전 08:41:08)
김용철 변호사 책에 드러난 ’관리의 삼성’
삼성사건 재판장은 2002년 관리 대상
검사 처남 주식손실 보전해 준 적도
이 전 회장 “공짜제품 뿌려 경쟁사 망하게” 

 
2007년 10월 이른바 ‘삼성 비자금 의혹’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 29일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를 냈다. 이 책에는 ‘관리의 삼성’이 그동안 법원·검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상대로 어떤 형태의 로비를 펼쳤는지와 경영권을 세습하는 과정에서 증거 조작도 마다하지 않는 행태가 반도체 회로도처럼 세밀하게 묘사돼 있다.
 
김 변호사는 다시 들어도 충격적인 법조계 관리 실태를 털어놓고 있다. 그동안 언급되지 않았던 인사들의 실명을 그대로 써 논란도 예상된다. 한 예로, 참여정부 때인 2007년 김 변호사의 폭로 뒤 청와대 쪽에서 국세청장 후보 3명의 ‘검증’을 그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결론은 “모두 삼성의 관리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법관도 예외가 아니었다. “판사의 고교 동창인 계열사 부사장이 관리를 맡았다. 2002년에는 나와 부사장, 판사 셋이서 함께 골프를 치기도 했다”고 김 변호사는 밝혔다. 이 판사는 6년 뒤 터진 삼성사건에서 재판장을 맡았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매각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진도가 나가지 않던 당시, 지검장 집엔 삼성 관계자가 드나들며 선물을 갖다줬다는 내용도 실렸다. 삼성 관련 사건을 맡은 부장검사의 처남이 삼성증권에 투자했다가 본 손해를 삼성이 보전해줬다는 주장도 있다. 또 한 대법관에게는 150만원짜리 굴비세트를 보낸 일도 있다고 한다. 보내면서 ‘설마 받기야 하겠나’라고 생각했지만, 굴비는 반송돼 오지 않았다고 한다.
 
책은 이 전 회장의 제왕적 모습도 자세히 소개한다. 이 전 회장은 삼성 제품의 판매량이 경쟁사에 뒤처지자 ‘모든 가정에 삼성 에어컨과 냉장고를 공짜로 나눠줘서 경쟁사를 망하게 하라’는, 선뜻 믿기지 않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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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김용철 변호사 신간' 온라인 기사 삭제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2010-02-02 오후 3:15:37)
네이버 등 포털 검색도 안돼…<경향닷컴> "본사 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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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철 변호사 “삼성, 절대로 변할 수 없는 조직” -이건희 전 회장, 복귀 하나 안하나 영향력은 똑같아 (노컷뉴스, 2010-02-02 07:46, 진 행 : 양병삼 PD)
-삼성 비자금 공익에 쓰겠다? 말장난에 불과
■ 출 연 : <삼성을 생각한다>의 저자 김용철 변호사

 
▶양병삼 PD> 법조계 인맥 뿐만 아니라 언론계 인맥 관리, 이 부분에 대한 문제제기, 또 국세청도 마찬가지구요. 이런 데는 어떻습니까? 
▷김용철 변호사> 언론은 뭐 잘 아시잖아요. 광고량, 단가에 비례하지 않은 광고비 협찬, 이런 형식으로 해서 사실상 조직적인 관리를 하고 있고 그 다음에 뭐 구성원들 여러 보직을 담당하는 부장이니 차장이니 기자 여러분들한테는 사실 크지 않은 비용이죠. 그런데 단지 그런 부스러기 그걸로 관리가 되고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건드리기 힘든 조직으로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고 그렇게 인식되지 않았습니까, 이제. 최근에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삼성 같은 경우에는 홍보실을 폐쇄해야 하는 게 아니냐, 할 일이 없어졌다, 뭐 이런 우스운 얘기까지 돌던데요.
 
▶양병삼 PD> 삼성의 인맥관리 그 산물이기도 할 텐데요. 그러다 보니까 삼성의 로비력이라고 하는 부분 또한 막강하다고 알고 있는데.
▷김용철 변호사>특검같은 경우는 수사결과 조직적인 로비는 없었다, 이런 결론을 내렸는데, 제가 조직적인 관리를 일부 관여했던 사람이니까요, 나름대로 기준이 있지요. 그러니까 퇴직공무원에 대해서도 제가 책에서도 일부 썼는데 퇴직한 고위직공무원에 대해서도 공직에 다시 기용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포섭해두지요. 돈이죠. 결국은. 돈으로.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공정위 독점국장으로 뇌물로 구속되고 실형을 살았던 사람 이런 사람은 삼성전자의 감사로 채용을 하지요. 뇌물문제로 뇌물수수로 파면된 사람, 국세청 공무원, 삼성에서 세무대리인으로 사실상 쓰지요. 그런 것들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주는 싸인이기도 하지요. 부패, 독직으로 문제가 되더라도 우리가 보은을 하고 보호를 한다, 이런 싸인이지요. 또 대법관 중에 삼성카드 세금관련해서 삼성 쪽에 유리한 판결을 한 대법관 영원히 삼성에서 보은, 은혜를 갚지요. 그런 싸인을 보내기도 하고. 퇴직자에 대해서도 그럴진데 현직자들에 대해서도 여러단계로 검증을 해서 명문고, 명문대 출신으로 해서 성장가능이 있는 사람들 중심으로 해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 두지요.
 
▶양병삼 PD>현재 삼성하면 세계 초일류기업을 지향한다, 또 글로벌기업이다, 이런 얘기들 많이 하는데. 이런 브랜드 네임에 걸맞게 뭔가 바뀌어야 한다, 그런다라고 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 여러 가지 문제제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어디에서부터 바뀌어야 된다고 보시나요?
▷김용철 변호사> 삼성에 바란다, 또는 뭐 어디 검찰에 바란다 이런 이야기가 참 어려운 것이 바뀔 수 없거든요. 예를 든다면 이씨일가나 가신 그룹이라고 할 수 있나요, 못 바꿔요.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져있는데 어떻게 바꿉니까? 저는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이 그 정도의 자본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왜 그렇게 비난받을 일, 부도덕한 일을 계속 저지르냐 이거지요. 존경받아도, 명예롭게 해도 될만한데, 그건 탐욕이거든요. 제가 딴 나라사람라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을 하면서 이제 깊이 생각을 안 해보면 그렇게 될 수. 그래서 저는 삼성에 바란다, 이 소리 하고 싶지 않거든요. 안 변할 거니까요. 변할 가능성 없어요. 저는 그래서 경영쇄신안 나오면 아니 뭘 쇄신한다는 겁니까? 쇄신의 주체가 아니라 쇄신의 객체인데. 그 다음에 삼성이 예를 들자면 중앙일보 계열분리라고 대국민 선언을 몇 번을 했잖습니까. 실제로 그게 안 됐잖아요. 하다못해 비자금 얘기 나올 때도 뭐 유익한 곳에 쓰겠다, 사실 말장난인데 저는 뭐. 예를 들자면 우리 언론이 이건희 이 양반이 딸 손을 잡고 다녔다, 그거를 손잡은 모습을 찍어서 보도를 하고 그러던데 아버지가 딸 손잡은 게 뭐 그리 대단한 보도거리인가요? 그게. 그렇게 보도를 해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고 경영복귀 이야기 하던데, 경영복귀...
 
▶양병삼 PD>복귀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다.
▷김용철 변호사> 마찬가지죠. 이 양반이 경영을 하는 게 아니고 책임을 지는 일이 없이 권한, 권력만 누릴 뿐인데. 지금도 인사문제랄지 사장단 인사 일괄적으로 인사되어 나오는 보도를 보면 누가 인사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일사분란하게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발령을 누가 냅니까? 실질적인 권력을 그대로 행사하고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별 의미가 없다는 거지요. 이게 삼성에 바랄 게 아니고 사실은 금융감독 기관이라든지 수사기관이든지 언론이라든지 사회 각 기능의 소속된 사람들이 제 역할하면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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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삼성 내부 문서는 정부 보고문서와 거의 같았을까 (오마이뉴스, 10.02.01 20:34  구영식 (ysku))
김용철 변호사, <삼성을 생각한다> 펴내다
 
삼성의 지휘통제소(control tower)로 불리던 '구조조정본부'(구조본)의 공식문서에는 '이건희'라는 표현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대문자 'A'가 쓰였다. 이건희 전 회장 부인인 홍라희씨는 'A''로 표현된다. 이 전 회장의 자녀들도 'JY'(이재용), 'BJ'(이부진), 'BH'(이서현) 등으로 적었다. 이렇게 이름을 독특하게 적은 이유는 삼성 안에서는 이름을 직접 쓰는 것이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김용철 변호사는 "봉건제 시절, 중국에서는 공문서에 황제의 이름과 같은 글자를 함부로 쓸 수 없었다고 한다"며 "그런데 이런 관행이 21세기 민주사회에서 버젓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삼성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기업이었다. 이 전 회장의 이익 앞에서는 삼성의 이익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삼성을 움직여온 비서실이나 구조본 등은 '참모집단'이 아니라 그의 '사조직'이나 다름없었다. "삼성 사장단 회의에 참석한 사장들은 회의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물을 마시지 않는다. 소변이 마려울까봐서다. 이건희가 화장실에 가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도 화장실에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 비리에 관한 검찰수사가 안건으로 올라오면 사장들이 일제히 충성맹세를 한다. 자신들이 회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가겠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도 삼성에 입사해 3개월간의 입문교육을 받았을 당시 1주일 내내 이건희 전 회장의 육성어록을 청취했다. "구조본 팀장회의에서 결정을 내릴 때 적용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였다. 이건희의 이익이 그것이다. 삼성의 이익과 이건희의 이익이 충돌할 때면, 늘 이건희의 이익이 우선이었다. 구조본 팀장들이 기업경영자가 아니라 이건희의 가신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그래서다."
 
김 변호사는 "이학수와 김인주가 삼성의 실세인 이유는 그들이 이건희로 통하는 '언로'를 장악했기 때문"이라며 "이건희를 수시로 만나 삼성 안팎의 문제를 상의하는 사람은 이학수와 김인주 뿐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에서 19년간 근무한 김병윤 두레스경영연구소 대표도 "실제 삼성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이건희 회장이 아니라 이학수 사단"이라며 ""이학수 사단에는 인사와 관리·재무를 맡고 있는 인맥들이 포진돼 있어서 누구도 꼼짝할 수 없다"고 증언한 바 있다.
 
"삼성이 공무원 로비 전용으로 쓰는 안양 베네스트 골프장에서 나와 골프를 쳤던 어느 검사는 나를 가리켜 '전관(轉官)했다'는 표현을 썼다. 법원에서 검찰, 혹은 검찰에서 법원으로 옮길 때 썼던 표현이 '전관'이다. 공직사회 안에서 소속만 바뀔 때 쓰는 표현이다. (중략) 그런데 삼성 법무팀을 공직으로 여긴다면, 법원이나 검찰 혹은 다른 정부기관에서 일하던 공무원이 삼성 등 재벌로 옮기는 것도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닌 셈이다. 공무원이 삼성을 위해서 일하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어차피 공직수행이긴 마찬가지니까 말이다."
 
실제 삼성은 자신들이 국가를 움직이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의 증언이다. "그들은 삼성 회장 비서실이 대통령 비서실을 능가한다고 믿었다. 그들은 청와대 비서실이 삼성 비서실을 흉내내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삼성 내부 문서양식은 정부의 보고문서와 거의 같았다. 내가 공무원을 하다가 삼성에 가서도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삼성과 노무현 정부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직후 구조본 팀장회의에 '노무현 정부의 명칭'건이 올라왔고, 당시 회의에서 '참여정부'로 의견을 모았는데, 그것이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공식명칭이 됐다. 김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 정책 가운데 삼성에 불리한 것은 거의 없었고 대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안한 정책을 노무현 정부가 채택한 사례는 아주 흔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임기를 마칠 때까지 삼성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쯤 되면 한국사회도 김동춘 교수의 지적처럼 '미국형 기업사회' 즉 "대기업이 정치권, 언론, 정부, 학계를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또다른 실체를 "반도체 기술자 위에 있는 비자금 기술자"라는 비유로 꼬집었다. 삼성이 반도체와 휴대폰 등 제조업 분야의 성과를 바탕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열매는 이 전 회장의 사조직인 '구조본의 임원'이 차지한다는 것.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희생을 치르고 조직에 기여한 사람과 성과를 챙기는 사람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삼성 구조본에서 일해본 사람은 그 이유를 안다. 삼성에서 가장 높은 대우를 받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서 회사의 위상을 높인 사람이 아니다. 이건희, 이재용의 사적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대개 회사가 저지른 비리의 공범들이다. 삼성에서는 비리 공범이 돼서 수뇌부와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돼야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 '반도체 기술자'보다 '비자금 기술자'가 위에 있는 구조인 셈이다."
 
김 변호사는 "삼성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반도체 기술자' '휴대폰 기술자'보다 이건희 일가를 위해 비리를 저지른 '비자금 기술자', 공무원을 타락시키는 '로비 기술자'들이 더 높은 대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삼성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의 성장에 큰 공을 세운 윤종용 전 부회장이나 반도체 신성장이론인 '황의 법칙'을 만들며 반도체 신화를 일구어낸 황창규 전 사장이 각각 상임고문과 상담역으로 물러난 것은 이러한 지적을 잘 뒷받침한다. 특히 최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자살한 이아무개 삼성전자 부사장도 반도체 메모리 분야 최고 엔지니어였다는 점은 삼성의 조직문화와 관련해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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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성 폭로는 야사로 남을 것이다" (오마이뉴스, 10.02.03 17:07  김종철 (jcstar21))
[인터뷰] <삼성을 생각한다> 들고 세상밖으로 나온 김용철 변호사
 
- 2009년 말에 이건희 전 회장이 사면복권되면서, 마치 삼성문제가 모두 끝난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데요.
"(고개를 흔들며) 정말 코미디야. 단군이래 이렇게 큰 규모의 탈세사건이 있었나? 유죄판결을 받은 지 얼마나 됐다고, 자신의 딸들 손잡고 유유히 웃는 모습이 대부분의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말야."
"자신들의 사적 이득을 위해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것으로 국가와 사회를 부패시키고, 검찰이나 법원 등의 공적기능을 마비시키면서 그들만의 문화와 기득권을 유지해나가도록 놔둬야 하는지 말야.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지. 부패와 반부패인데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는 순간 빨갱이가 돼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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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김용철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 광고 대신하다 (미디어스, 2010년 02월 04일 (목) 10:01:52 도형래 기자)
삼성도 막을 수 없는 트위터 RT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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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왜 '아이폰'을 만들지 못할까?"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0-02-03 오후 12:02:03)
[삼성 직원에게 김용철 책을 권하는 이유·①] 꼭두각시 사장들
 
기사 속 직원은 "(삼성은) 뒤늦게 A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제품 개발에 뛰어들었다. 왜 우리는 꼭 성공모델이 있어야 도전하는 것인지, 과연 우리가 진정한 1등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말했다. 성공모델이 없으면 도전하지 않는, 보수적 기업문화가 삼성의 덫이라는 지적이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런 문화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에 묘사된 삼성 계열사 경영진은 구조본(옛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삼성 사장들은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날 직원들에게 오후 휴가를 주는 일조차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다. 투자와 인사에 관한 결정은 말할 것도 없다. 아주 시시콜콜한 결정까지 구조본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 구조본에 유능한 인재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계열사와 동떨어진 곳에 있는 구조본 임원이 계열사를 제대로 이끌기란 쉽지 않다.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를 찾아서 그대로 적용하는 경영 방식은 이런 상황과도 관계가 있다. 구조본이 모든 결정을 도맡는, 원격경영 구조에서는 권위 있는 매뉴얼을 구해서 계열사가 따르도록 하는 게 가장 편한 선택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런 방식이 부분적으로는 성공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더 이상 따라할 대상이 없어진 지금, 삼성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느냐는 말이다.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게 삼성 경영진의 역할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전문경영인에게 중요한 결정을 맡기려 해도, 훈련된 경영인이 없다는 것. 유능한 경영인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면서 숱한 시행착오를 거쳐야만 경영인의 소양을 닦을 수 있다. 모든 결정이 구조본에서 이뤄지고, 구조본은 오로지 총수의 눈치만을 살피는 삼성 식 경영구조에서는 계열사 경영진이 독자적으로 판단하면서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다. 삼성 그룹이 오랜 역사와 방대한 규모에도 불구하고, 스타급 전문경영인은 많이 배출하지 못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김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런 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재무팀이 작성한 보고서 끝에 의견란이 있는데, 모든 임원에 대한 평가를 반드시 쓰도록 돼 있다. '임원 누구누구는 즉시 조치함이 상당하다, 사장은 연말에 재평가함이 상당하다'라는 식으로 쓴다. 여기서 조치나 재평가란 해고를 뜻한다. 구조본 재무팀은 그룹 계열사 사장이나 임원에 대해 목을 쥐고 있는 자리인 것이다.
 
예컨대 그룹 내 어느 화학 계열사 사장이 명절에도 출근해서 안전점검을 할 정도로 열심히 일한다고 하자. 그런데 재무팀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하자. 이런 경우, 재무팀에서 ''계장급 사장'이며, 리더십이 부족하다'라고 적어 보고하면 그만이다. 꼼꼼하게 실무를 챙긴다는 점을 거꾸로 비난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반대로, 사장이 굵직한 일만 챙기고 실무는 아랫사람에게 위임한다면? 역시 트집 잡을 방법은 많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자의적인 평가가 이루어져온 셈이다.
 
내가 재무팀에서 일하던 시절, 궁금한 게 있어서 소환하면 누구든지 바로 왔다. 이렇게 불려온 사람들은 사장에 대한 고자질을 밥 먹듯 했다 '어차피 사장은 회장이 파견한 사람일 뿐'이라고 여기므로 사장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리 없다. 충성을 바칠 대상은 오직 회장뿐인 것이다."
  
김 변호사 재직 시절, 구조본 재무팀은 비자금 조성, 불법 로비 등 비리를 주도했을 뿐 아니라 삼성 그룹 내 최고 실세 집단으로 군림했다. 재무 관련 부서가 전권을 휘두르는 구조는 지금도 여전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런 구조에선 당장의 수익성과 거리가 먼 지표를 개선하는 일에는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혁신을 주도하는 기술 리더십이 망가진다는 뜻이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삼성이 최근 수년 간 거둔 성공은 기술 리더십(technology leadership)에 기반한 게 아니라 신속한 대응(speed and agility) 덕분이었다"며 "그러나 결국에는 진정한 혁신의 부족이 수익성을 해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통상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는 매출의 10% 수준이다. 이 정도면 결코 적은 게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이런 반박에서도 '혁신'을 '연구개발비 지출'이라는 재무 지표로만 이해하는 태도는 반복된다. 충분한 연구개발비 투자는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미디어 삼성>에 실린 "1등 기업의 함정"이라는 기사에 소개된 한 개발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우리는 뭔가 창조적 제품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만들어서도 안됐다. 과거 다른 기업들의 성공 사례들을 좇는데 익숙하다보니 후발주자로서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기사에 소개된 다른 연구원은 "개발하다 보면 가끔 정말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 아이디어를 내면 '뜬구름 잡지 말고 다른 걸 생각해 봐! 바로 시장에 낼 수 있는 걸로…'라는 반응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신용인 박사는 "윗사람 지시 없으면 머리 안 쓰는 문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지나치게 엄격한 관리와 통제 문화가 창의적인 혁신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다. 최인철 삼성전자 차장은 제도의 문제도 함께 지적한다. 직원의 창의성이 낳은 결과물에 대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그는 천지인 자판 발명으로 회사에 천문학적 수익을 안겨줬지만, 삼성 측은 그에게 고작 10만 원 조금 넘는 상여금을 줬을 뿐이다. 불법 로비, 비자금 조성 등에 가담한 이들이 누리는 혜택에 비하면 너무 보잘 것 없는 금액이다.
 
최 차장은 "과거의 삼성전자는 지금보다는 혁신을 장려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재무부서가 전권을 쥐면서, 모든 게 변했다. 철저하게 재무적인 지표로만 평가하는 문화가 일반화됐다. 이런 문화 속에서는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자산은 설 자리를 잃는다. 기술과 서비스의 혁신이 가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게 된다. 혁신의 기풍은 사라지고, 위에서 할당한 재무적인 목표에 맞춰 쥐어짜는 일만 남는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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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부사장 자살이 남긴 숙제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0-02-04 오후 12:05:06)
[삼성 직원에게 김용철 책 권하는 이유·②] '관리'의 한계
 
'보통 체형에 유행을 타지 않는 정장 차림 남성'을 떠올리게하는 기업 문화. 이런 보수적인 문화는 삼성 자동차, e-삼성 등 그룹 차원의 치명적인 경영 실패에도 삼성이 견뎌낼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우선, 너무 엄격한 관리 문화 속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어울리는 창조적 혁신이 어렵다는 점이 있다. 특히 총수의 눈치를 살피기에 급급한 비서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를 무시하기 쉬운 재무부서가 주도하는 관리 문화 속에서는 더욱 어렵다.
 
다른 문제점은 임직원이 느끼는 피로와 스트레스다. 너무 심하게 옥죄는 문화를 오랫동안 견뎌내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다. 최근 자살한 삼성전자 부사장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평균적인 '삼성맨'들이 느끼는 피로감은 이미 위험 수위다. 고려대 경영학과 장세진 교수 역시 '조직 피로감'을 삼성의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꼽았다. 혹독한 취업난 속에서 삼성에 입사한 젊은이들이 금세 사표를 내는 경우도, 대부분 극심한 피로감이 원인이다.
 
삼성 임원들은 정기적으로 정밀 건강진단을 받는다. 직원들의 심각한 피로감에 대해서도 경영진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문제를 임직원 건강 '관리' 차원에서 접근하는 삼성 식 해법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무노조 경영'이 문제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는 탓에 관리부서의 임직원 쥐어짜기를 견제할 세력이 없다. 그리고 관리부서는 비서실(구조본, 전략기획실 등)이 지휘하는데, 비서실은 합리적인 경영판단보다 총수의 뜻을 앞세우곤 했다. 직원 입장에서는 굳이 할 필요가 없는데, 총수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억지로 하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사무직, 연구개발직 등 이른바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달리, 생산직 노동자가 겪는 문제다. 이들이 겪는 것은 그저 피로감, 스트레스 정도가 아니다. '생존'이 위협받는 환경이다. 반도체 부문은 아니지만, 삼성 공장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는 김용철 변호사가 자세히 이야기했다.
 
"OJT를 받으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삼성전자 수원공장의 가전부문 조립라인을 꼽고 싶다. 여성 생산직, 남성 생산직이 컨베이어 벨트에 예속돼 두 시간에 10분씩 휴식하면서 꼼짝 없이 일하는 모습을 봤는데 혹시 배탈이 나더라도 화장실에 갈 수 없는 정도였다. 또 복도는 전등이 희미하여 앞을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두웠다. 화장실에는 손 닦는 수건이 없어서 자기가 갖고 있는 손수건으로 닦도록 돼 있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깨끗한 공장 풍경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 일류 기업이라는 삼성 직원들이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구나 싶었다. 북한에서 외부인이 구경하는 평양 거리는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실제로 주민들이 생활하는 곳의 환경은 엉망이라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외부에는 '지상천국'이라고 홍보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북한과 무엇이 다른가 싶기도 했다. 직원들이 기계 부품처럼 묶여 일하는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파서 오랫동안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같은 직장에서 본사 직원이나 관리직은 쾌적한 공간에서 대접도 받고 권세도 부리는데, 생산 현장에서는 해마다 생산성 향상 30% 구호 아래 경비를 줄이기 위하여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내핍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렇게 고생해서 만든 텔레비전이 미국으로 적자 수출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3000억 원 대금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지나치게 엄격한 관리 문화는 직원 경력 개발에서도 문제를 낳는다. 관리부서의 힘이 지나치게 세다보니, 전문성을 쌓는 쪽으로 경력 개발을 하는 임직원이 손해 보는 느낌을 갖는다는 것이다. 상당수 삼성 직원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 이유이기도 하다.
 
삼성이 '세일즈 머신'에서 벗어나 '기술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다른 형태의 경력 개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최근 자살한 삼성 부사장을 놓고서도 비슷한 설명이 있다. 연구개발 업무의 정점에 있던 삼성 부사장의 자살은, 삼성 조직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구조직 구성원들이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삼성에서 관리조직이 지나치게 큰 힘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게다. 바로 '비리'다. "구조본에 있는 비자금 담당자는 계열사에 일정 금액씩 비자금을 할당했다. 경영이 어려운 회사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과거 삼성엔지니어링은 부실 규모가 1조 원에 달하고 수주 실적도 없어서 심한 적자에 시달렸다. 당시 이 회사 관리담당(경영지원실장)이었던 김능수가 '회사가 너무 어렵다'며 내놓을 돈이 없다고 버텼지만, 구조본은 그에게 위협하다시피해서 매년 50억 원을 받아냈다.
 
구조본 재무팀 관재부서에 있는 30대 초, 중반 과장들은 프랑스제 델시 청회색 초대형 여행용 가방에 들어 있는 현금을 수시로 본관 지하주차장에서 27층 비밀금고로 날랐다. 물론, 다른 직원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서 운반하지만 구조본 직원들은 대개 운반 장면을 보게 된다. 대부분 애써 눈을 돌리고, 못 본 척한다. 현금이 너무 많아서 운반하기 힘들 때는, 화물운반용 트롤리(trolley)를 사용하기도 했다. 비자금을 운반하는 관재파트 과장들은 주로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었는데, 미래의 사장감으로 분류됐다."
 
이처럼 노골적으로 비자금을 만드는 구조에서 임직원 관리를 느슨하게 했다간 도저히 뒷감당을 할 수 없다. "로비 기술자, 비자금 기술자가 반도체 기술자보다 위에 있는 구조" 역시 필연적이다.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서 '무노조 경영'을 고집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노동조합이라면, 자신들에게 돌아오거나 회사에 재투자돼야 할 부(富)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용납할 리 없다. 비자금이 사라지고 투명한 경영구조가 갖춰지지 않는 한, 감시와 통제 위주의 삼성 문화는 바뀔 수 없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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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식 '공포 경영', 언제까지 통할까"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 2010-02-05 오후 4:28:49)
[삼성 직원들이 김용철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③] 기업 보안의 그늘
 
"삼성에서 도청에 얽힌 일화는 많다. 삼성이 관계사에 도청기를 설치하고, 그 회사가 그걸 잡아내는지를 검사한 적이 있다. 관계사의 보안 능력을 파악하는 절차다. 이런 일을 하다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국정원에서 운용하는 도청기에 자꾸 이상 전파가 잡힌다는 것이다. 국정원과 삼성이 경쟁적으로 도청하는 것이었다. 일상적으로 도청을 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도청을 막는 기술도 발달했다. 구조본에서 근무할 당시, 내 방 유리창에는 난반사 필름이 부착돼 있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레이저 광선으로 유리창 진동을 감지하는 도청 기술이 있다. 이걸 막기 위해 부착된 필름이다.
 
구조본 사무실이 있는 삼성 본관 26, 27층부터 회장 집무실이 있는 28층까지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녹음돼 기록으로 남겨졌다. 천장에는 카메라가 설치돼 있고, 에스원 당직자가 그걸로 늘 감시했다. (…중략…)
 
한 고위 임원이 회사 본관 1층 안내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을 좋아한 적이 있다. 그가 여직원에게 보낸 메일에는 낯 뜨거운 내용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 임원이 보낸 메일 가운데 문제가 있는 부분을 출력하니까, 100장이 넘었다. 노인식이 그걸 들고 와서 내게 보여줬다. 찬찬히 읽어보니, 그 여직원에게 보낸 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당시 유행하던 아이러브스쿨 홈페이지를 통해 만난 초등학교 동창 유부녀와 주고받은 연애편지도 있었다. 실제로 그 임원은 일을 시키려고 보면, 자리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여직원은 다른 곳으로 발령 냈다. 그리고 그 임원은 계속 진급에서 누락시켰다. 그는 자신이 왜 진급을 못하는지를 모르는 듯했다. 결국 그는 회사를 떠났다."
 
여기서 더 감시와 통제가 강화된다면, 임직원들의 내면에는 어떤 감정이 자리잡을까. 바로 '공포'다. 언제든 도청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어디서 누가 감시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불안감. 이런 감정은 상당수 임직원들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삼성과 소니> 저자인 고려대 경영학과 장세진 교수는 "비서실의 역할이 너무 커지면서 삼성 구성원들이 비서실에 의해 감시와 통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로 인해 조직의 피로감이 높아지고 '공포 경영(fear-based management)'이라는 기업문화까지 생기고 있다"고 적었다.
 
지난해 말 이건희 전 회장 사면 이후, 삼성에 불리한 언론 보도가 뚜렷한 까닭 없이 삭제되는 일이 흔해졌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소개한 <경향신문> 기사가 온라인 판에서 삭제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이 SK텔레콤 측에 아이폰 도입을 유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한국일보> 기사 역시 같은 운명을 맞았다. 집행유예 중인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이건희 전 회장의 미국 방문을 수행했다는 <서울경제신문> 기사 역시 삭제됐다. 심지어 광고를 거절하기도 했다. 김 변호사의 책을 낸 사회평론이 주요 일간지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총수 일가가 아닌 이상, 평생 '삼성 가족'으로 남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젠가는 회사를 떠나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삼성과 어쩔 수 없이 부딪힐 수도 있다. 그 때도 법 위에 군림하는 삼성의 힘이 자랑스럽기만 할까. 그럴 리는 없다. 삼성 근무 시절 겪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공포를 피할 수 없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뒤, 회사 측과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 노동자들처럼 말이다. 그들 역시 한때는 '삼성 가족'임을 자랑스러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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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본의 국가지배 삼성을 보면 알게돼” (한겨레, 이세영 김경호 기자, 2010-02-04 오후 02:44:00)
‘삼성공화국’ 분석 박사논문 낸 이종보 연구원
“힘의 차이 간과한 민주주의, 불평등 지속시킬 뿐”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한 2005년 6월의 일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로 집권 민주세력의 한계를 자인했다. 왜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던 한국의 민주화는 한층 진전된 사회경제적 민주화로 이어지지 않고 삼성이라는 대자본의 지배로 귀결했는가. 이종보(37·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씨가 <민주주의 체제하 ‘자본의 국가 지배’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규명하려는 것도 이 문제다. 말하자면 이 논문은 ‘삼성공화국’이란 현상을 국가·제도정치권·시민사회라는 민주주의의 제도 영역에서 진행되는 자본권력 대 민주화 세력의 경합과 각축이라는 틀을 통해 파헤치려는 시도다.
 
-왜 삼성에 주목했는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자본의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려면 삼성을 보면 된다. 강압과 매수라는 전근대적 전략에서 담론·이데올로기를 통한 동의 확보라는 선진적 수단에 이르기까지, 지배의 모든 전략이 삼성에게서 드러난다.”
 
-삼성의 지배전략이 제도정치권과 국가기구, 시민사회 영역에서 각기 다른 형태로 구사된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인가?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권에 대해서는 여야,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자금을 통해 포획하거나 관료와의 대립구도를 활용해 주변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국가의 행정·사법 관료들 역시 매수·포획의 방식이 사용된다. 주목할 만한 건 대(對)시민사회 전략이다. 가능한 모든 전략이 동원되는데, 삼성 사회봉사단 같은 조직을 통해 시민사회의 비판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학계·언론계·시민운동단체 등에서 활동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해선 임원 특채나 사외이사 기용, 기금지원, 상찬사업 등을 통해 유인·포획하거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기업 하기 좋은 나라’나 ‘2만달러 시대’ 같은 담론을 유포해 시민사회 내부의 동의를 확보하거나, 노조 세력에 대해선 강압과 파괴공작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엑스파일 사태나 경영권 편법승계에 대한 집요한 문제제기에서 보듯 대시민사회 전략이 전적으로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물론이다. 자본의 지배전략이 일방적으로 관철될 수는 없다. 민주주의 체제는 자본이 민중세력의 저항과 상호작용하면서 내적 긴장을 만들어내는 체제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지배블록과 저항블록의 모순은 심화되고 결국 정치·사회적 갈등은 의회의 영역을 넘어 사법기구로 확대된다. 최근의 ‘사법전쟁’이 이를 잘 보여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민주주의를 ‘테이블 민주주의’로 규정했다. 테이블 민주주의가 삼성공화국을 불렀다는 얘기인가?
“테이블 민주주의는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할 세력조차 대화 테이블로 끌어앉혀 개혁의 방향성과 방법론을 논하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꼬집기 위한 말이다. 이런 민주주의는 테이블상에 엄존하는 쌍방 간 힘의 차이와 불평등을 간과함으로써 결국은 지배와 불평등을 지속시키는 데 일조할 뿐이다. 방법은 하나다. 기존의 형식화된 민주주의의 틀을 넘어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결합을 통해 민주주의의 실질적 진전을 모색하는 것이다. 그래야 삼성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날 희망도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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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호암의 가르침에서 비롯" (프레시안, 김봉규 기자, 2010-02-03 오후 12:44:09)
이병철 전 삼성 회장 탄생 100년, 재조명 기사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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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부끄럽지 않은가 (미디어오늘, 2010년 02월 05일 (금) 17:26:50 이재현(문화평론가))
김용철변호사 사건부터 '반올림'까지…비판 겸허하게 수용해야
 
삼성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가 최근 펴낸 책 <삼성을 생각한다>의 일간지 광고가 ‘원천봉쇄’ 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삼성의 기업문화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작년 연말부터 삼성 기업문화의 빛과 그림자를 잘 드러내주는 몇 개의 사건들이 있었다. 하나는 이건희 전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씨가 삼성전자의 부사장 겸 CCO(최고 운영 책임자)로 승진한 것, 둘째는 이건희 전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서 특별 사면 받은 것, 셋째는 얼마 전에 삼성전자의 부사장 한 분이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것, 넷째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1등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그런데, 삼성의 조직문화는 기업의 상층부만 쥐어짜 온 것은 아니다. 아래도 쥐어짜 왔다. 이건희 전 회장이 특별사면 되던 날 아침에, 이종란 노무사라는 분이 불법 강제 연행된 사건이 있었다. 이종란씨는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삼성의 약점으로 공통적으로 꼽고 있는 것은 창의성과 혁신성 부족이다. 이런 점을 스스로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이건희 회장은 과거에 가족을 빼고는 다 바꿔야 한다고 아주 인상적으로 말한 바가 있다. 이건희 전 회장과 이재용 부사장에게 있어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고 이병철 회장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 해야 할 일은 삼성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혁신과 창의로 가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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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먹이는 이건희" 낯뜨거운 이병철 100주기 보도 (미디어오늘, 2010년 02월 06일 (토) 07:25:51 조현호 기자)
 
5일은 고 이병철 전 삼성 회장 탄생 100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호암아트홀에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소식을 담는 데엔 모든 신문이 지면을 크게 할애했다. 중앙일보와 국민일보는 1면에 사진과 함께 기사를 실었고, 한국일보와 서울신문 등은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이 울먹였다는 대목을 기사와 제목(한국)에서 강조했다. 이밖에도 대부분의 신문들은 "정직해야 한다" "싸우지 말자" "삼성이 약해지면 도와줄 것"이라는 이 전 회장의 언급을 일종의 어록처럼 실어줬다. 남 잔칫상에 재는 뿌리지 말자는 뜻에서였을까. 체육대회 유치라는 명분으로 죄를 짓고도 재력과 권력에 기대어 4개월 만에 국민과 대중앞에 거리낌없이 등장한 회장님에 대해 한마디의 언급을 한 신문은 한 곳도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 탄생을 이렇게까지 기념하는 행사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될까.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5일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타냉 100주년 기념 행사장에 참석해 경영 복귀 가능성에 대해 "회사가 약해지면 해야죠. 복귀라기 보다 도와줘야죠"라고 말했다. 이 전 회장은 또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 거짓말 없는 세상이 돼야 겠다" "싸우면 절대 안된다" 등의 언급을 하기도 했다. 신문들은 이 같은 이 전 회장의 말을 제각기 해석해 크게 실었다. 사진은 이건희 전 회장과 동생 이명희 신세계 회장이 손을 잡으며 웃는 모습 등이 주로 실렸다.
 
가장 크게 실은 곳은 중앙일보였다. 1면 가운데에 3단크기의 사진과 함께 <이건희 전 회장 "회사 약해지면 도울 것">이라는 제목으로 비중있게 실렸다. 중앙(과 국민일보)은 사진 기사의 크레딧을 자사 기자 이름으로 달았다. 동아일보는 14면 머리기사 <삼성 창업자 고 호암 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이건희 전회장 "사우면 경제도약 절대 못해">라는 기사를 통해 행사 소식 행사 전반을 소개하며 이 전 회장의 말을 옮겼다.
 
서울신문은 5면 머리기사 <호암 탄생 100주년 기념식 참석…이건희 전삼성회장의 화두/"경영복귀 아직은 빠르다">에서 "이 전 회장이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이 전 회장이 인사 도중 감정이 복받친 듯 잠시 목이 메 말을 잇지 못했다는 대목도 기사에 넣었다. 한국일보는 아예 11면 머리기사 <'호암 탄생 100주년' 범 삼성가 한자리에…"아직 부족한 점 많다" 울먹인 이건희>에서 기사 문장에서부터 이건희 전 회장이 울멱였다고 보도했다. 세계일보도 11면 머리기사 <삼성 창업주 고이병철 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 "호암 경영철학은 영구한 기업철학">을 통해 행사 소식을 크게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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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19:40 2010/02/0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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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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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부터 10년만에 다시 케이블TV에서 방영되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속편까지 나왔다. 전편이 그냥 신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준이었기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김숙현 기자의 리뷰를 보내 그건 아닌 모양이다. 물론 꿈보다 해몽이 낫다고 할 만큼 지나치게 지지발언이 과잉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주유소 습격사건>을 주목하는 건 배우들 때문이다. 당시에는 그저그런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상당히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다. 그 만큼 캐스팅이 잘 되었다고 해야 하나. 거기에 출연했던 이들이 지금처럼 뜰 줄 누가 알았겠나.
 
사장 박영규, 노마크의 이성재, 페인트 유지태, 무대포의 유오성, 당시 아침 청소년 드라마에 나왔던 정준 정도는 당시에도 그럭저럭 했지만, 딴따라 강성진, 주유소 알바인 이요원, 철가방 김수로, 양아치 유해진, 김학철, 이종혁, 경찰 역의 이원종. 지금 다시 이런 멤버로 영화를 찍을 수는 없을 거다. 제작비 때문에...
 
한국에서는 드라마의 시즌제 또는 속편을 제작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전편이 별 볼 일 없으면 당연히 속편이 나오지 않을 것이고, 전편이 호평을 얻고 인기를 끌면 주연배우를 더이상 캐스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유소 습격사건2>에서 박영규를 제외하고 모두 배우가 바뀐 것도 그러한 이유일 터이다.
 
내가 10년 전에 봤던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양아치들인 유해진 패거리들이 '작은 사랑'을 부르는 장면이다. 딴따라 강성진의 강요에 의해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그 속에서 스스로 몰입되어 버리는 장면.
 
이 노래를 부른 가수는 Shell이라는 그룹인데, 이 노래 외에 알려진 것이 없다. 노래 중의 여성 목소리는 Shell의 멤버인 김민경이라고 하고... 작곡도 Shell이 한 것으로 나오는데, 거기까지는 모르겠고...
 
보고 싶은 영화가 많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나서도 김숙현 기자와 비슷한 의견을 갖게 될지는 의문이지만... 다들 자기 생각대로 읽는 것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겠지.
 
<주유소 습격사건 2>를 지지하는 이유 (프레시안, 김숙현 기자, 2010-02-06 오전 12:56:12)
[뷰포인트] <주유소 습격사건 2>에 대한 뒤늦은 리뷰
   

 

Shell - 작은사랑(주유소 습격사건 OST)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제발 슬픈 눈으로 내게 말하지마

너의 맘까지 읽을 순 없잖아

내가 너의 곁에 있는게 아냐

항상 내 곁에 있는

 

너의 소중함을 몰랐던거야

눈부시게 기쁠땐 너의 하늘이 되어

온 세상 가득히 축복을 함께

너와 노래하고 싶어

내 작은 가슴에도 사랑은 있어

하나가 아닌 수 많은 의미되어

하나 둘 깨져버린 내 마음의 조각들을

니 맘속에 사랑으로 채우고 싶어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우리 처음 만난 그 날을 기억하니

나를 영원히 사랑해 준다던

너의 그 약속을 잊으면 안돼

나도 너를 사랑해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그대 내게 줄 수 없겠니

내가 준 것 보다

더 큰 사랑을 내게 보여줘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힘들고 외로울 땐 너의 그늘이 되어줄께

언제나 어디서나 내 숨결 느낄 수 있어

아무런 꾸밈없는 그런 사랑을 난 원해

사랑은 누구나 필요한 선물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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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16:17 2010/02/07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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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홍주환,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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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다시 보니 내용이 또 새롭다. 이와 관련된 글을 읽거나 글을 쓸 때면 왜 이런 글이 막상 머리에서 생각이 안나는지... 항상 관련된 논의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홍주환. 2003. 이론적 논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 신광영 외. 「공무원노동조합운동: 조직과 사회적 역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생각나는 점 몇 가지 정리.
 
우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떠한 함의를 가지고 있는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남아공 사례보다 동유럽의 노동조합을 다룬 Ost(2002)의 논의가 흥미로울 듯하다. 오스트에 따르면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보다는 전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개입에 선차성을 두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은 점차 노동조합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되었단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적인 문제보다 현장 내의 분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분리에 대해 좀더 고민이 요구된다. 비정규직 문제를 전체 사회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타당하겠지만, 이것과도 조금은 괴리가 있다.
 
‘작업장에서의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명암을 좌우할 것이라고 한 점에 동의를 하나, 이는 지나치게 어려운 과제다. 
 
신사회운동과 노동조합주의를 연결시킨 대목은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다지 중요한 논의는 아닌 것 같다. 특히 한국의 현실에서는... 한국에서 신사회운동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었는지도 의문이고, 지금도 있지는 않다고 본다. 순전히 서구의 논의.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주민의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이를 왜 깊게 다루지 않았는지... 사실 공공부문 노조는 전형적으로 각 지역에 조직을 가지고 있고, 지역밀착사업을 하기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비단 공무원노조 뿐만 아니라, 전교조, 사회보험, 지방의료원 등이 그러하다. 여기에서 공공성의 계기를 찾아내면 좋았을 텐데...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처음부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체현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주환 선배는 얘기한다. 우리끼리야 이를 수긍하지만, 대체로 이를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다. 실증적인 뒷받침이 필요한 지점이다. 이를 보편적인 인식으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진전이라 할 것이다. 
 
아래의 지적은 지금까지 한 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공공성, 공공부문, 공공영역을 분석할 때 명심해야 하는 사항이다. 이걸 다시 생각하게 된 것만 해도 이 글을 읽은 의미가 있다고 해도 좋다.
현실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경찰, 소방, 교육, 위생, 운동 등은 거의 대부분 사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공적 기구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본래적으로 공적인 서비스” 또는 “공중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의미의 공공서비스 개념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산 및 공급되어야 하는가가 별개의 문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Brill, 1989, 24).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 또는 범위, 그리고 구조 변화는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 시장의 복원/국가의 축소라는 일련의 과정, 즉 서구에서의 복지국가의 형성 및 쇠퇴,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의 전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주요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구조변화는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극대화 전략과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의 효율성 추구 전략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축 사이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Naschold, 1996). 
 
아직까지는 공화주의적 관점보다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이 현실을 설명,이해하고 비판하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 이것은 전공이 행정학이라는 것에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 공화주의적 관점에 친화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공적 영역의 성격 규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국가를 공적인 활동의 일부로 봐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 공적 영역을 계급투쟁의 장으로 보고, 여기에 어떻게 개입하고 바꿀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정치적 상황성”(political contingency) 개념에도 주목하자.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은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논의에서는 이 사실이 은폐된다. 사실 공기업 사유화는 그 무엇보다 정치적인 과정이 아닌가. 이에 대해서는 배병인 박사(2007)가 잘 논의하고 있다.
정치적 상황성 개념은 그것이 공기업의 전략 구성을 민간부문의 기업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서 공기업의 행위 논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Batstone, et al., 1984). 그리고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학교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주환 선배는 이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홍주환. 2003. 이론적 논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이론적 검토. 신광영 외. 「공무원노동조합운동: 조직과 사회적 역할」.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1. 들어가며
공무원의 노동조합 결성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반(反)노동조합 세력의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도 있었던 정부 또는 공공서비스 부문에서도 노동조합이 결성됨으로서 자주적(민주적) 결사의 원리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자주적 결사체로서의 공무원 노동조합이 사회적 연대의 원리를 어느 정도 체현하는가에 있다. 사회적 연대를 부정하는 자주적 결사체는 사회의 진보적 발전에 역기능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글은 이상과 같은 맥락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을 이론적으로 검토함으로써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따져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노동조합운동론의 최근 동향
1)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
90년대 들어서 전지구적 차원의 노동조합운동의 상황에 대한 토론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논의들이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대체적으로 사회운동적 노조주의가 주장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그 활동 영역과 대상을 노동조합 및 그 조합원의 틀에 가두지 않고 비조합원 노동계급 전체와 근로인민 대중으로까지 넓히고, 또는 좁은 의미의 경제적 이해관계의 문제들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의 문제들에까지 확대시켜야(outreach)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일국적인 차원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에서 더 나아가 전지구적인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global social movement unionism)가 주장되기도 하였다(킴 무디, 1999; 피터 워터만, 2000; Robinson, 1993; Seidman, 1994; Nissen, 1999; Lambert, 2000).
* 일반적으로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강조하는 경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social movement unio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나, 노동조합운동이 노동조합의 틀, 즉 조합원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문제에만 활동영역을 협소하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틀을 넘어서 전 사회적인 문제를 노동조합운동이 포괄해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자 하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social unionism)와 개념상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그것의 사회적 기반인 공공부문이 사회적으로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구조적으로 사회적 또는 사회운동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운동이 공적 조직들(국가 또는 정부 기구들)에 기반하여 전개되고 있다는 특징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을 공적인 의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공적 이슈 또는 사회 전체의 문제를 자신의 이슈 또는 문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사회적 노동조합주의 또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본래적으로 그 특징으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Johnston, 1994; Ponak et al. 1995; 신광영, ; 홍주환 외, 2001).
이렇게 볼 때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적으로(또는 계급적으로 또는 대중적으로) 어떠한 위상을 차지할 것인가 하는 점과 관련되어 있다. 로빈슨(I. Robinson, 1993: 21)은 노동운동의 구성원들, 리더들 또는 그 지지자들의 도덕적인 헌신성이 노동운동의 발전에 중요하다고 보고 그 맥락에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를 주장하는데, 그에 따르면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다음의 두가지 측면에서 “사회적”이다. 첫째로 사회적 노동조합주의는 전체 사회의 변화와 노동조합원이 아닌 다수의 이해관계 증진을 추구하기 때문에 스스로 정한 목표와 그에 대한 의무감의 적용 범위에 있어서 사회적인 것이다. 둘째, 현존 사회질서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가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분파적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소수 집단보다는 대부분의 근로 인민의 가치와 경험과 공감할 수 있는 비판을 결집해 내고자 한다는 점에서 사회적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운동이 조직률의 저하와 사회적 영향력의 약화라는 위기적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모색한 하나의 지향으로서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내용은, 노동조합운동의 역사를 볼 때, 사실 그렇게 새로운 것이라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운동적 성격이 새삼 강조되는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주로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한 경제주의적, 실리적 이익추구, 즉 노동조합의 “서비스 모델”에 몰두하면서 점차적으로 그 사회운동적 성격이 탈각되어 가고, 특히 정치, 경제, 사회적 조건이 기존의 노동조합 활동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방향으로 변화함에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이 전반적으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운동 내부 또는 노동자계급 대중 내부의 균열, 이질성, 잠재적 갈등 등이 외부적 상황 - 억압적 권위주의 사회(남아공이나 브라질과 같은 경우. Seidman, 1994 참조) 또는 사회주의적 전체주의적 사회(소련 또는 동구의 구사회주의와 같은 경우, Ost, 2002 참조) 등 - 에 의해서 감추어지거나 또는 억압되어 있는 상황 조건에서 비로소 가능하였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러한 상황 조건이 해소되는 경우 노동조합운동 진영을 하나로 묶어주었던 힘이 약화됨으로써 잠재되어 있던 내부 균열이 파열되어 다양한 세력들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von Holte(2002)는 남아공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그것을 배태하고 있었던 바로 그 구조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즉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서 있던 구조적 조건이 침식됨에 따라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고 본다. 남아공의 노동조합은 단순히 노동자들의 계급 조직이 아니라 비계급적인 연대에 기초한 대중운동이기도 했던 것이다. 남아공 노동조합의 이러한 사회정치적 구조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투성과 생명력의 근거였다고 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사회정치적 조건의 급격한 변화(아파트헤이트에서 민주주의로)가 기존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위기를 낳은 것이다(287-98).

Ost(2002)에 따르면, 동유럽의 노동조합들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기본적인 특징으로 하였다. 이 동유럽판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이 작업장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에 복무하도록 하였다. 결국 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기보다는 전체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개입에 선차성을 두게 됨으로써 노동자들은 점차 노동조합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게 된 것이다. 조합원들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것에 우선적인 관심을 갖는 노동조합 활동, 노동조합의 서비스 모델이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가 노동에 유리할 것인지의 여부는 노동조합들이 스스로를 그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사회운동의 성격이 어떠한가에 달려있다”(37)고 할 때, 노동조합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운동에 대해 조합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는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는 경우라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들에게 좋을 것이 없는, 또는 오히려 부정적인 것이 되어 노동자들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다.
‘작업장에서의 조합원들의 직접적인 문제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의 명암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문제는 노동조합 그 자체의 특징에서 비롯된다. 노동조합은 운동과 조직의 모순적 결합체(Flanders, 1970) 또는 운동과 제도화의 긴장관계(von Holte, 2002: 298)로 간주될 수 있으며, 노동조합의 이러한 특징을 무시하는 경우 노동조합운동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2) 신사회운동과 노동(조합)운동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노동조합운동이 “개념적으로” 작업장 안에 매몰되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주의에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독특성은 운동과 조직의 결합체라는 노동조합의 모순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문제를 구조적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 완화시킨다.
노동조합운동과 신사회운동의 관계에 대한 관심은, 과연 노동조합운동과 신사회운동은 서로 달라서 갈등적인 관계에 놓일 것인가 아니면 서로 (지향하는 바가) 같아서 협조, 호혜, 공생적인 관계에 놓일 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만약 전자라면 노동조합운동은 노동조합운동에 적대적인 또는 갈등적인 또 하나의 큰 세력에 부딪히게 되는 것이어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고 만약 후자라면 노동조합운동은 새롭게 등장한 지원세력을 맞이하여 더욱더 강력한 사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신사회운동의 등장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맥을 같이 한다. 여성운동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체제에, 생태환경운동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반생태적인, 지속가능하지 않은 성장 경제에, 지역운동은 중앙집권적이고 위계적인 (국민)국가중심의 정치질서에, 반핵평화운동은 핵에너지와 전쟁가능성에 기초하고 있는 위험사회에 대해서 전혀 다른 대안을 추구하는 신사회운동의 핵심적인 흐름이다. 문제는 이러한 운동들이 기존 질서에 대항하는 그 만큼 노동운동 등 기존의 사회운동 및 정치역학과 갈등관계에 놓일 가능성에 있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대체적으로 이전에는 잠재되어 있었던 사회구성의 다원적인 구조의 활성화, 즉 기존에 지배적이었던 의제에 의해서 억압되었던 사회적 의제들과 관련된 요구의 분출을 의미한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노동조합운동에 부과되는 중요한 과제는 시민사회의 활성화 내지 신사회운동의 전개와 스스로를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 또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와 관련된다. 만약 ‘조직노동’(organized labor)이 이미 기존 질서의 한 구성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그에 따라 새로운 사회운동들에 의해 비판적인 토론의 대상이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상황 하에서 노동조합운동이 (적극적인 의미에서) 자신을 변화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신사회운동의 흐름이 노동조합운동에 대해 주는 함의는 노동조합운동을 여러 사회운동들 중의 하나인 것으로 ‘절대적으로 상대화’시키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노동조합운동이 여전히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또는 진보적 사회발전으로의 지향에서 다른 ‘부문’운동들에 대해 우위를 점한다고 상정되는 경우조차도, 노동조합운동이 한 사회에서 고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매우 단순한 사실에서 출발한다. 특히 ‘조직노동’의 영역이 축소되고 있는 상황과 그로 말미암은 근로계급 대중 내부의 분화, 그리고 (좁은 의미의 전통적인) 노동 이외의 영역에서 새로운 운동 축이 활성화하는 상황과 그에 따른 운동들의 분화는 노동조합운동으로 하여금 자기 정체성의 확립 및 타자들의 정체성과의 접합(articulation) 가능성에 대해 심사숙고하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운동은 최소한 “생존”을 위해서라도 사회적으로 고립되지 않아야 하고 따라서 연대의 틀을 확장시켜야 하는 바, 이를 위해서는 모종의 자기 변화를 위한 다양한 모색과 과감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 요약 : 노동조합운동과 공공성 문제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조합운동의 지평을 확대함으로써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재확립, 재강화하고자 한 중요한 흐름이지만,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는 그것의 ‘사회운동적’ 성격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경우 자칫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적 기초가 취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신사회운동의 전개는 새로운 사회운동 공간의 확장으로 인해 노동조합운동의 공간이 상대적으로 협소해지는 한편 노동조합운동과 여타 사회운동이 서로 경쟁하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을 크게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지역주민의 대중적인 지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노동조합-지역공동체의 호혜적인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노동조합운동이 조합원의 협소한 이해관계만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그 기능이 축소되지 않고 지역주민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이해관계를 대변하거나 또는 그것을 위한 운동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노동조합이 지역 주민의 삶에 뿌리내리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노동조합운동은, 일차적으로는, 작업장 또는 일터에서의 협소한 의미의 이익 실현에 소홀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지역공동체와의 유기적 관계 형성에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면서, 이에서 더 나아가, 직접적인 이해관계의 틀을 벗어날지라도 전체 지역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제반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직과 운동의 유기적 결합을 실현하는)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운동은 민간부문보다 공공부문이 구조적으로 유리하다. Johnston(1994)이 지적하였듯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의제는 그 자체로 공적 영역의 의제가 된다. 공공부문 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아무리 협소한 이해관계의 실현을 위한 의제를 제출하는 경우에조차 그것이 공적인 의제가 되는 구조적인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지역주민과의 유기적 관계 형성에 성공적인 경우와 그렇지 못한 경우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운신의 폭이 유의미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처음부터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민간부문 노동조합운동이 그 활동의 공적 성격을 외면하고 자신의 협소한 이익실현만을 위해서 ‘공장 문’을 굳게 닫을 수도 있는 반면,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의 경우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조건은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협소한 자기이익 실현을 위한 활동에만 몰두할 수 없도록 함과 동시에 자기이익 실현을 위해서라도 공적 영역에서의 적극적인 활동을 추구하도록 한다.
 
3. 공공서비스(공공부문) 노동조합주의의 이론적 기초
공공서비스는 국가 또는 정부의 역할, 기능을 담당하며, 그 성격에 대한 검토는 국가가 사회 또는 시민사회와 맺는 관계의 성격 또는 국가 그 자체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공공성, 공공부문, 공공영역 등과 관련된 논의를 내포한다.
1) 공/사 구분의 문제
구체적으로 한 사회에서 공공부문이 무엇 또는 어디까지이고 민간부문이 무엇 또는 어디까지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은 공공부문이나 민간부문에 대한 완전히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과도 관련되어 있다. 사회과학에서 이 문제는 공/사(public/private) 분리/구분의 문제와 관련되어 논의되어 왔다.
사회적 관계는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공적 생활(공동의 이익을 위한 공동의 부, 타자에 의한 관찰에 대한 개방,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로 인해 초래되는 다양한 이해관계와 행위들에 대한 관용 등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영역)과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생활(개별적/개인적이고, 주민들에 의해 통제되고, 격리되어 있으며, 가족이나 친구들과 관련된 은밀한 생활 영역)의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적 생활과 사적 생활이 상호 고립되어 있지 않다. 즉 공적인 이해관계(public interests)가 사적 생활의 영역에 침투하고 반대로 사적인 이해관계(private interests)가 공적 생활 및 그 환경을 상당한 정도로 변화시킴으로써 양자의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있는 것이 현대 사회의 발전 과정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Brill, 1989: 20; 고길섶, 2000).
이러한 사정을 반영하여 사회과학 이론들은 일반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특정한 사회적 상황 하에서 그 자체로 변화하거나 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으로 인식하여 왔다. Turkel(1992)에 따르면, 공/사(public/private)의 구분은 사회과학적 논의에서 매우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한다. 현대에 들어와서, 페미니즘(“개인적인 것은 정치적이다”)과 좌파 이론(“민주주의 사회는 공적인, 사적인 제도, 담론 등이 통합된 사회이다”) 등에 의해서 공/사의 분명한 구분에 대한 이의제기가 이루어지기 시작하였고, 현실적으로도 기존의 공/사 구분이 더 이상 쉽지 않게 되었다. 특히 전통적인 공/사 분리적 사고의 결과인 국가/시장의 이분법적 사고도 현실적으로 공적으로 규제되지 않는 시장이 존재할 수 없고 또한 사적인 질서도 공적 규제 양식의 한 표현이라는 것이 점차로 분명해짐에 따라서 더 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현실적으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서 변화한 것이었다. 예를 들어 경찰, 소방, 교육, 위생, 운동 등은 거의 대부분 사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이었으나 이제는 대부분 공적 기구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 변화는 비교적 최근의 일인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본래적으로 공적인 서비스” 또는 “공중의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제공되어야 하는 서비스”라는 의미의 공공서비스 개념이 존재하는 것과 그것이 누구에 의해서 생산 및 공급되어야 하는가가 별개의 문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Brill, 1989, 24).*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 및 각각의 특징에 주목하는 논의는 다양하게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Weintraub(1997)은 이를 네 개의 큰 흐름으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자유주의적-경제학적(the liberal-economistic) 모델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공공정책 분석이나 일상적인 법적, 정치적 논쟁에서 지배적인 담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따르면 공/사의 구분은 국가(state administration)와 시장경제의 구분과 관련되어 있다. 둘째는 공화주의적 또는 고전적 접근으로서, 이에 따르면 공적 영역은 정치적 공동체 또는 시민사회의 영역과 관련되어 논의되며 이것은 한편으로는 시장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에 대응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셋째는 주로 사회사나 인류학 쪽에서의 공/사 구분 방식으로, 여기에서 공적인 영역은 유동적이고 다양한 형태를 하고 있는 사회성(sociability)의 영역으로서 주로 문화적이고 연극적인 관행의 분석 적용된다. 넷째는 페미니즘 분석들의 주요한 경향으로서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구분은 가족과 그 외의 경제적, 정치적 질서의 구분과 관련되며 특히 시장경제가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구분을 고려할 때, 공공부문 및 공공부문 노사관계와 관련된 기존의 논의들은 주로 첫 번째의 모델 하에서 전개되어 왔다고 할 수 있으나, 최근 전개되고 있는 공공부문의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대두되고 있는 논의들의 핵심은 오히려 두 번째의 접근 방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정 시 특정 사회에서 특정한 부문이 ‘공공부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 상황에 의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공공부문의 사회적 역할 또는 범위, 그리고 구조 변화는 시장의 실패, 국가의 실패, 시장의 복원/국가의 축소라는 일련의 과정, 즉 서구에서의 복지국가의 형성 및 쇠퇴, 신자유주의적인 정치경제의 전개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주요 국가들의 정치경제적 구조변화는 한편으로는 국가의 복지극대화 전략과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경쟁의 효율성 추구 전략이라는 두개의 커다란 축 사이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라고도 할 수 있다(Naschold, 1996). 국가와 (시민)사회, 국가와 시장, 정치와 경제 등의 이분법적 설정을 두고 이루어져 온 논의들은 한편으로는 그 양자를 대립적으로 배치하는 것이었고(고전적 자유주의의 문제설정이 이에 해당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양자를 상호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설정하는 것이었다(공적 영역을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설정하는 하버마스 등의 논의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전자는 공공부문을 국가의 사회적 역할 및 기능과 관련된 공적 영역의 것으로, 그 외의 것을 사적 영역의 것으로 설정하는 한편 국가(또는 정부)로 대표되는 공적 영역이 최소화되고 민간의 자율적인 영역인 (시장으로 대표되는) 사적 영역이 최대화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후자는 반대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명확한 구분 가능성을 의문시하면서, 그것의 명목적인 구분을 전제로 하면서도,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작용, 특히 (국가를 주요한 제도적 구성요소로 하는) 공적 영역의 활성화 및 영역 확대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국가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의 증대, 즉 복지국가 또는 혼합경제의 등장, 특히 이와 관련된 사회적 또는 공적 서비스 영역의 등장 및 확대는 이와 같은 전통적인 구분 또는 뚜렷한 분리를 실질적으로 어렵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Kaufmanm, 1991: 4). 그런데 실질적으로 한 사회에서 공공부문 또는 공적 영역의 지위는 사회의 영역별 배치 또는 그 역할을 둘러싼 제 사회세력의 갈등과 그것의 “잠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국가와 시장의 관계, 국가와 시민사회와의 관계, 정치와 경제와의 관계 등은 미리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회의 제 집단들의 이해관계의 대립과 타협, 일방적인 강요 또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해서 (비록 장기적일지라도) 일시적으로만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관계 및 그것의 변형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한 대표적인 학자로 J. 하버마스와 H. 아렌트를 들 수 있다.
우선 하버마스(2001)는 부르주아 공론장의 형성 및 발전 과정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상호 침투 경향을 논하고 있다. 국가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이 확대되면서 국가는 기존의 일상적인 기능을 넘어서 사적 부문에 속해 있던 제반 활동을 자신의 것으로 삼게 된다. 즉 “국가는 사인들에게 공적 임무를 위임하거나 기본 계획을 통해 사적 경제활동을 조정하거나 아니면 스스로가 생산자와 분배자로 활동하기 시작”(252)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근대(현대) 사회에는 공적으로 또한 사적으로 중요한 사회적 영역이 형성되고, 그 위에 세워진 국가 제도와 사회 제도들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라는 기준으로 더 이상 세분할 수 없는 하나의 단일한 기능복합체”(254)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제 이 공적 영역은 “조직된 사적 이해관계”가 서로 경쟁적으로 침투하는 공간이 되고, 그에 따라서 공론장은 사적 이해관계가 조정되는 공간, 더 나아가 국가의 공권력에 대한 논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정치적 공론장, 즉 민주주의의 원리가 적용되는 공간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하버마스가 공적 영역의 형성, 발전, 변화 및 그것의 사회적 함의를 주로 다루고 있다면, 아렌트는 사회적 영역 또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등장과 함께 공적 영역 및 사적 영역이 어떠한 방식으로 변용되었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렌트(1996)에 의하면, 본래 인간 생활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으로 구분되어 영위되었다.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이라는 구분은 가정과 정치적 영역의 구분에 상응”하는데, 이 때 사적 영역은 개인의 유지와 종족의 보존과 관련된 “경제”의 영역 또는 필연성의 영역으로서 “정치”의 공간 즉 자유의 영역인 공적 영역과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정치의 공간인 공적 영역에서는 힘과 폭력이 작용하는 영역인 사적 영역에서와는 달리 말과 설득을 통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근대의 출현과 함께 “사적인 영역도 공적인 영역도 아닌 사회적 영역”이 출현하였는데, 이 사회적 영역의 출현은 사적 영역의 관심사, 특히 경제 또는 필연성의 문제가 공적으로 다루어지기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등장으로 인간 생활의 제반 과정이 여러 가지 통로를 통해서 공적인 영역의 문제가 되었다. “살기 위해서 상호의존한다는 사실이 공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단순한 생존에 관련된 활동이 공적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사회인데, 이러한 특징을 갖는 사회에서 “공적”(public)이라는 말은 첫째, “공중 앞에 나타나는 모든 것은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으며 그러므로 가능한 가장 폭넓은 공공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고 둘째, “세계가 우리 모두에게 공동의 것이고, 우리의 사적인 소유지와는 구별되는 세계 그 자체를 의미”한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사회(사회적인 것, 사회적 영역)의 등장은, 정치적 영역의 핵심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성을 본래적인 특징으로 하는 사적 개인들을 소멸시키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적인 것이 공적 영역을 지배하게 됨으로써 필연성의 영역에 속해있던 경제가 지배적 담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되고 따라서 공적 영역이 소멸할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하버마스와 아렌트의 공적인 것(공적 영역)과 사적인 것(사적 영역)에 대한 논의는 서로 논의의 초점이 다르긴 하지만 공적 영역의 의의 즉, 하버마스의 경우에는 민주주의적 공론이 이루어져야 하는 곳으로서, 아렌트의 경우에는 사적 이해관계의 침투로부터 보호받아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곳으로서의 공적 영역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에서 공적 영역 또는 공공부문에 모아지는 사회적 관심을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활동 공간이 공적 영역이라고 하는 점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공적 영역에서 공적인 것을 다루는 조직, 제도의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조직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의 제반 활동은 그 자체로 공적 논의의 대상이 되고, 그 구성원들의 사적인 이해관계만을 추구하는 것이 처음부터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이 한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담론을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의 유무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입지에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다.
 
2) 국가-시민사회 관계와 공공서비스(공공부문)
자유주의적 관점의 국가-시민사회 관계에서 국가는 시민사회를 보호해야 하는 것으로 설정된다. 자유로운 시민들로 구성되는 공간인 시민사회가 우선하고, 그로부터 나타나는 제반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국가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시민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는 ‘유일한’ 장치이다(함재봉, 1995). 문제는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설정된 국가가 주어진 권한 밖의 힘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가 우위에 있고 국가는 그것을 보호하기 위해 부수적인 역할만을 수행해야 한다.
맑스주의적 관점은 기본적으로 계급국가론적 입장에서 국가-시민사회를 바라보며, 시민사회는 계급투쟁의 공간이고 국가는 지배계급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기구가 된다. 이렇게 볼 때, 만약 공적 영역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배계급이 계급지배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헤게모니 행사의 공간이, 다른 한편으로는 피지배계급이 계급지배에 대항하기 위한 대항헤게모니를 행사하려는 공간이 된다. 즉 공적 영역은 계급투쟁의 장이 되는 것이다.
공화주의적인 관점에 따르면, 공적인 영역은 자유의 공간이다. 공적인 영역은 자유의 공간인 시민사회를 보호하는 소극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공동체의 구성원들인 시민들이 공공선, 또는 공적 이익을 구성하고 추구하기 위해 논쟁하고 합의를 도출하는 곳이다. 더욱이 그러한 토론의 공간은 시민들의 자기실현을 위해서 필수적이다. 개인적 또는 사적인 것들은 분명히 보호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공적인 노력에 의해서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Honohan, 2000). 이 때 국가는 공적인 활동의 일부가 된다. 국가는 공적 이익을 앞세워 사적인 영역을 규제하는 기구가 아니라 자유로운 시민들의 공적 토론을 통해서 ‘잠정적으로’ 규정되는 공적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 된다.
결국 각각의 관점에 따라서 국가의 사회적 역할 변화 또는 국가의 제자리 찾기에 대한 접근이 조금씩 또는 크게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최근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과도한 개입주의적 국가를 고전적 자유주의 국가의 이상에 맞도록 강력하게 변화시키고자 한다. 공공서비스의 기존의 확대된 역할은 상당한 정도로 축소되거나 시민사회 영역으로 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맑스주의적 관점에서는 국가가 지배계급의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투쟁(전복)의 대상이면서, 피지배계급의 이익을 보호, 확대하기 위한 보루가 될 수 있고 또 그렇다는 측면에서 투쟁의 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경우 구체적으로 공공서비스는 시민사회에 대해서 모순적인 위치에 놓여 있는 것으로 설정된다. 공화주의적 입장에서는 공공서비스가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공적 담론의 과정과 그 결과들을 수용하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공적 담론의 영역에 참여하기도 하는 것으로 설정될 것이다.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의 성격, 즉 국가권력의 강력함 정도와 시민사회의 활성화 정도의 상호관계의 양상에 따라서 공공영역의 성격은 차이를 보여왔다. 예를 들어 영국같은 경우 자유주의적 시민사회가 발달하여 공공영역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담보함으로써 국가권력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약화되었다면, 동아시아와 같이 권위주의적인 국가와 미발달한 시민사회가 결합된 경우 공공영역은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담아내는 공간으로서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서 장악되는 타율적인 공간이었다. 특히 한국의 경우 공공영역은 타율적 공공영역과 자율적 공공영역으로 이중적으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시민사회의 성장은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장과 타율적 공공영역의 축소, 권위주의적 정치체제의 극복, 포괄적인 의미의 민주화와 관련되어 있었다(신광영, 1994).*
* 김호기(1998)는 공공영역을 제도적 공공영역과 비제도적 공공영역으로 구분한다. 공공영역은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정치적 의사가 결집되는 사회적 영역”이며, 이때 제도적 공공영역은 국가와의 중첩영역이고 비제도적 공공영역은 시민사회와의 공공영역이다. 신광영(1994)의 경우에는 공공영역의 자율성 확보, 즉 타율적 공공영역의 축소와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대가 민주화의 관건이 된다면, 김호기(1998)의 경우에는 제도적 공공영역과 비제도적 공공영역의 유기적 연계, 즉 제도적 공공영역의 시민사회에의 개방 및 국가의 비제도적 공공영역에의 개방이 관건이 될 것이다.

민주화는 시민사회의 형성와 활성화, 자율적 공공영역의 확장과 동시적으로 전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이 민주화 이전으로 회귀하지 않는 한 공공서비스는 이제 더 이상 발전주의 국가가 보여주었던 방식으로 타율적 공공영역을 주도적으로 형성하기도 쉽지 않고 또한 자율적 공공영역을 억압할 수도 없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공공서비스가 공공영역에서 모종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공공영역의 행위자로 참여하는 길 뿐이다. 그리고 그 때의 공공영역은 자율적 공공영역일 터이다. 그리고 이것은 공공서비스가 사회운동의 목소리를 공공영역에서 같이 토론함을 의미한다. 공공서비스는 - 그것의 타율적 공공영역의 주도적 형성자로서의 기능을 논외로 한다면 - 사실상 국가와 시민사회를 연결시켜주는 매개고리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
사회운동은 ‘국가의 구조변화(the transformation of the state)’를 위한 주요한 힘, 추동력으로 작용한다(Quadagno, 1992). 그것은 반드시 공적 토론의 시공간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통해서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성격을 방향지우고 그 관계의 변화를 추동해 나가는 중요한 매개체 또는 행위자를 필요로 한다. 그 중에서도 공공서비스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국가-시민사회 관계에 있어서 공공서비스의 위치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그 위에서 공공서비스가 진보적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기여할 수 있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공공성의 확대 강화의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역할과 과제
1)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구조적 조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론을 모색할 때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할 것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가 불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과 특히 최근 몇십년간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지위가 계속적으로 변화하여 왔다는 점이다. 그것은 국가-(시민)사회 관계의 양적, 질적 변화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힐 수 있다.
우선 공공서비스에 대한 국가론적 접근의 필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역할이 구체화되는 영역이 공공서비스이고 그것은 국가-사회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설정되는가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공공서비스에 대한 논의는 국가에 대한 논의의 틀, 특히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리고 국가-사회관계라는 맥락에서 국가와 공공서비스를 바라보는 것은 국가의 제반 행위가 국가-사회관계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국가-사회관계는 계속적인 발전 및 변화하는 유기적인 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대처리즘 하의 영국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급격한 모습을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다. 영국에서의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민영화는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홍주환 외, 2001: 54-57).
국가-사회관계의 구조변화는 공공서비스의 공급과 관련해서 기존의 관점들 간의 경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Naschold, 1996). 하나는 시장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실패와 관련된 것이다. 전자는 복지국가론과 관련된다. 복지국가론은 국가가 공공이익을 위해서 복지를 극대화하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공부문의 확장을 통해 공적인 사회보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며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서구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 형태들이 복지국가론이 구체화된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신자유주의 국가론과 관련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가 수행한 대내적 역할은 한편으로 경제활동의 기반을 구축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력의 재생산 기반 또는 사회복지제도의 기반을 확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최근 30여년간의 국가 역할의 변화는 기존의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가 자유주의적 국가로 그 형태를 변화시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서비스 내지 공공부문의 구조변화는 국가-사회관계의 신자유주의적 개혁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사회관계 재편은 민영화와 공공서비스 혁신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민영화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직접 개입을 철회하는 것이었으며 공공서비스 혁신은 공공서비스에 기존의 행정 개념 대신에 경영 개념을 도입하여 효율성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도 결국 국가 실패 또는 시장 실패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며, 이것은 국가-사회관계에 대한 위의 두 관점 사이의 갈등이 더 이상 유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적 소유와 그 처분권, 시장 메커니즘, 국가의 시장 규제 등의 전체적인 관계를 재조정하는 것이 요구되는 것이다. 최소국가론이나 국가 개입주의의 문제점을 모두 극복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역할, 즉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의 역할을 재조정하는 것, 이를 위해서 기존의 관료주의적 행정주의와 다른 한편의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중심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결합시키는 것 등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Naschold, 1996).
한국의 경우 기존의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중심적 국가-사회관계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에 따라서 국가와 시장의 관계는 국가의 “시장에 대한 개입이 간접적인 형태와 협상을 추구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이제 국가는 “시장의 질서를 지배하기보다 시장의 질서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김윤태, 2003: 321). 현재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기존의 국가-사회관계가 새로운 방향으로 변화하는 구조적 조건에 처해 있다. 소위 공공부문 “상시개혁체제의 구축”에 따라서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의 조직개편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성과 및 능력 위주의 인사제도가 도입되고 있다. 행정기관에 대한 경영진단을 추진하고, 책임운영기관 제도를 도입하는 등 공공서비스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혁이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한편, 성과주의 예산제도, 성과주의 급여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조직간 구성원간의 경쟁제도를 확산시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도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공공서비스 구조조정은 국가-사회관계를 시장중심적인 방향으로 재조정하는 것이었는바, 이것은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가 어떤 사회적 함의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공서비스의 구조조정에 따른 공공서비스 종사자들 즉 공무원들의 노동조건의 변화와 관련된 의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의 근거가 된다. 특히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특성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노사관계를 통해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와 구체적으로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기제의 모색을 좁게는 공공서비스 노사관계상의, 넓게는 전 사회적 범위의 의제로 삼도록 한다.
 
2) 공론장으로서의 공공서비스 노사관계 - “공공성의 정치”의 제도화
케인즈주의적 개입주의 국가나 신자유주의 국가의 “사회 관리 기능”이 의문시되고 있고, 따라서 국가 및 공공부문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사회적인 차원의 재조정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의 공식 또는 공리로서의 ‘공공부문의 핵심 활동’이라는 개념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게 되었으며, 그것은 일종의 민주적 정치결정 과정의 결과로서만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분석적이고 경험적인 현대 과학의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여 뒷받침하여야 하는 것이다(Naschold, 1996).
이제 필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의 성격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공공서비스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다. 무엇보다도 국가-사회관계의 성격에 대한 사회적 규정은 그 사회의 공공서비스 및 공공부문의 지위와 그 위에 서있다고 할 수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에 대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공공서비스와 그 수혜자 간의 유기적이고 균형있는 결합에 관한 밑그림을 제공하며, 이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의 목표설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근거가 된다. 공공서비스 개혁은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함의에 대한 재규정을 의미함과 동시에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문제는 국가-사회관계의 전환이 국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특히 노동배제적으로 이루어져 왔으며 한국사회의 통치구조 또는 지배구조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생략된 것이었다는 점에 있다.
“정치적 상황성”(political contingency) 개념은 “각 공기업들의 목표와 그것의 운영 규칙, 정부 부처의 개입, 정당들의 정책, 대중의 여론, 여타 국가기구들의 요구, 그 공공기관이 생산하는 재화 및 서비스를 사용하는 공적 기구들 및 민간부문의 이익입단들의 제반 압력 및 요구 등”을 함축하는 개념으로서, 공공부문을 둘러싸고 있는 구체적인 조건들이 계속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황을 의미하며, 서구의 주요 공기업들에서 노사관계 갈등이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상황을 공기업들이 운영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의 변화에서 찾고자 했던 Ferner(1988) 등의 논의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정치적 상황성 개념은 그것이 공기업의 전략 구성을 민간부문의 기업들에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불확실하게 만들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서 공기업의 행위 논리가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Batstone, et al., 1984). 그리고 또한 그것은 공공부문 및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정치적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사회관계 변화의 방향과 내용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회적 차원의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의 관철을 위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에 있어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무엇보다도 관건이 된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는 공공성의 정치가 구체적으로 전개되는 다양한 영역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공공서비스가 갖는 사회적 함의는 공공성의 정치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공공성의 정치에 관련되는 제반 사회세력의 각축은 그것을 특정한 내용으로 고정시키지 않는다. 한 사회의 공적 영역은, 특히 민주화 이후 점차 확대되고 있는 자율적 공적 영역은 사실상 국가-사회관계의 형식과 내용을 시시때때로 규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공적 영역과 공공서비스 노사관계 및 노동운동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하는가이다. 공공서비스 노사관계가 의제로 삼는 것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공적 형태와 내용을 취하지 않을 수 없으며, 따라서 그 자체로 공적 영역에 발을 딛고 있다고 하겠다.
중요한 것은,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공적 영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의제설정자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비로소 (비록 그것이 협소한 이해관계의 발로로 비쳐지더라도) 공공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생활 조건의 향상을 위한 요구도 같이 의제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공성의 정치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의 합리적 핵심을 체현하는 것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특히 공공부문 노동조합운동은 그 특성상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를 내포하고 있다. 결국 공공성의 정치는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의제로 삼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틀 위에 있는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에게 중요한 전략적 지침이 되는 것이다. 단체교섭이라는 합법적이고 공식적인 틀의 제한에 매몰되지 않는다면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노사관계의 제반 수준, 영역에서 자신의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사회적 의제를 자신의 문제로 지속적으로 전환시켜 제기할 수 있는 특수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은 공공서비스 노사관계를 둘러싸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공세적으로 주도할 수 있는 구조적 역량을 담지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운동으로서의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시민사회의 활성화된 자율적 공적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사회적 의제를 노사관계의 영역으로 유입시키고 이를 통해서 국가의 민주적 전환을 끊임없이 시도해가는 것을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5. 결론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중요성을 무기로 삼아 협소한 자기이해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공무원 노동조합들의 선언들이 주장하는 바람직한 공공서비스의 사회적 실현을 위한 주체로 자리잡을 것인가는 공무원 노동조합의 주체적 역량에 달려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은 민간부문의 노동조합운동과는 달리 상대적으로 ‘운동과 조직’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데 있어서 유리한 구조적 위치에 있다.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운동이 어떻게 사회적 시민권을 확고하게 하는가는 공공서비스를 둘러싼 정치적 상황을 그에 유리한 방향으로 주도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주체적 능력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국가-사회관계의 매개적 위치에 있는 공공서비스가 공적 영역에서의 담론 의제를 자신의 것으로 하고 비권위적인 조정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 노동조합이 조직의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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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7 05:02 2010/02/07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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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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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은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들이 한국에도 널려 있어서 내가 감히 내색을 못하겠다. 나도 나름 그의 책을 읽었는데 말이지. 그의 경향신문과의 신년인터뷰를 읽은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타계 소식을 듣게 되어서 안타깝다. 뒤늦게나마 명복을 빈다. 여유가 되면 그가 쓴 책들 중에서 읽지 않은 것들을 중심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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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 타계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 2010-01-28 오후 3:53:00)
노엄 촘스키 "스승이 필요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에 있었다"
 
그를 대표하는 저서 <미국민중사>는 1980년 출간해 2003년까지 100만 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기존 역사 서술과는 달리 노동자들을 역사의 주역으로 끌어올려 미국 사회에 지적 충격을 주었다. <미국민중사>에서 하워드 진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정복'을 찬양하는 기존의 역사학적 관점을 뒤집고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투쟁에 주목했고, '프론티어 정책'에 대한 칭송 대신 그로 인해 희생된 가난한 사람들과 노예제도의 희생자들을 살폈다.
 
노엄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하워드 진의 저술은 한 세대의 의식을 바꿔 놓았고 우리 삶의 중요한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며 "우리의 활동이 신뢰할 만한 사표(師表)를 요구할 때 그는 언제나 맨 앞줄에 서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워드 진은 그의 자서전격인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에서 "나는 다른 관점에 공정하고자 했지만 '객관성' 이상의 것을 원했다. 내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보다 많은 지식을 얻어가기보다 침묵함으로써 안락해지는 삶을 포기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에는 언제나 맞서 싸울 자세를 가지길 원했다"고 말했다.
 
하워드 진은 지난 주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에 생애 마지막 글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1년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미국인들은 지금 오바마의 화려한 언변에 현혹되어 있다. 오바마를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하는 전국적인 운동이 없다면 그는 그저 그런(mediocre) 대통령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시대에 '그저 그런 미국 대통령'이란 위험한 대통령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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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소수의 시선’ 실천적 지식인 영원히 잠들다 (경향, 워싱턴 | 김진호 특파원, 2010-01-29 00:16:38)
ㆍ‘미국 민중사’ 출간 진보 역사학자 하워드 진 타계
 
그는 “비록 우리가 이상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못하더라도 내 주위의 작은 세계만큼은 충분한 기쁨이 되기를 원한다”면서 “유머 감각을 지닌 좋은 친구들과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려 한다”는 생활철학을 들려주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변화는 모두 조직적인 시민운동으로 이뤄졌다. 버락 오바마도, 미국의 제도정치도 아닌, 사람이 희망”이라던 그의 말이 여전히 귓가를 맴돈다. 그 말이 언론과의 마지막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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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병합 100년]하워드 진 “강렬한 시민운동만이 역사와 사회를 바꾼다” (경향, 워싱턴 | 김진호특파원, 2010-01-04 17:52:33)
ㆍ미국 원로 사학자 하워드 진 인터뷰
 
미국의 원로 사학자인 하워드 진(87)은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이다. 유대인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일생을 반전과 노동운동에 바치고 있다. 정작 그의 삶을 관통하는 반전·민권 사상은 미국 주류 학계·언론계로부터 외면당했고, 진보진영조차 과격하다는 평가를 내릴 정도다. 그런 그가 경제위기로 고단해진 미국민들의 안방 속으로 파고 들고 있다. 보통사람들의 애환을 기록한 그의 저서 <미국 민중사>가 한 케이블 TV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재조명된 이후다. 지난달 22일 보스턴 자택에 머물던 진과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주류 미국사에서 배제된 인디언, 흑인, 백인 블루칼라, 여성의 육성으로 구성한 <미국 민중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습니다.
“(1980년) 몇천 부로 소박하게 시작했죠. (지난달 13일) 히스토리 채널이 다큐멘터리를 방영할 즈음 200만부를 돌파했습니다. 책은 우리가 지금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전쟁을 치르고 있고, 너무 많은 사람이 굶주리고 있거나, 깨끗한 물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중요한 변화를 가져올 사회적 운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전통적인 역사관이 대통령과 장군들, 산업주의자들의 행동을 강조했다면 나는 그 책에서 보통사람들의 에너지와 행동에 주목했습니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인 만큼 사람들이 역사에 대한 다른 관점을 목말라하는 것 같습니다.”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취임을 환영했습니다만 1년이 지난 지금, 그가 약속한 ‘변화’와 ‘담대한 희망’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미국인들은 조지 부시의 정치를 끝내기 위해 오바마를 뽑았습니다. 부시는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엄청난 부를 날려버렸습니다. 또 많은 국부를 가장 부유한 계층에 안겨준 조세정책을 펼쳤죠. 오바마는 변화를 외쳤습니다.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부시 행정부의 군사주의 정책을 선택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더 많은 군대를 보냈고, 무인비행기를 보내 파키스탄과 같은 곳을 폭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방예산은 부시 행정부보다 더 많이 늘렸습니다. 우리는 오바마가 세계의 분노를 야기했던 군사주의적 태도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9·11 테러의 원인은 다른 나라에 개입한 미국의 대외정책 때문이었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군사적 힘을 마구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건의료개혁을 추구하고 관타나모 폐쇄를 약속하는 등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요.
“오바마는 자신이 약속했던 희망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미국을 심각한 경제적 난국으로 몰아넣었던 경제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필요한 사람들이 아닌, 은행과 금융업체에 주었고요. 많은 사람들은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법대교수를 했던 오바마가 최소한 헌법적 권리에 관심을 둘 것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몇가지 중요한 권리를 수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관타나모는 여전히 존재하며 수감자 학대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7, 8년 동안 재판정에 가보지도 못하고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입니다. 오바마는 아직 유죄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사람들을 관타나모에서 빼내 다른 감옥에 보내려 할 뿐입니다.”
 
-올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다시 의회를 장악한다면 상황은 더 나빠지지 않을까요.
“공화당으로부터 공포를 체험한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달려갔지만 하나의 끔찍한 상황에서 다른 끔찍한 상황으로 바뀌었을 뿐입니다. 민주당은 미국민의 필요와 열망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하원의 다수를 이루고 있으면서도 공화당이나 만족할 보건의료개혁안을 내놓았고요. 미국 정치시스템은 진정한 진보적 진전을 위한 여지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오바마가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희망을 저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닫고 있습니다. 자각의 초기 단계에 진입해 있다고 봅니다.”
 
-미국 정치제도에 희망이 없다는 말인가요.
미국 역사에서 어떠한 중요한 변화도 순전히 선거와 투표행위의 결과로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노예, 노동조건 개선, 남부의 인종차별, 베트남전 종전 등이 그랬죠. 제도 정치권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운동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제도정치는 늘 사회운동이 일종의 국가적 분위기를 조성한 뒤에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제도정치는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지 않습니다. 시민의 요구가 충분히 강할 경우에만 반응합니다.”
 
-경제위기 1년 만에 월가는 신속히 회복하고 있지만 미국과 세계의 보통사람들은 여전히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월가의 성공을 잣대로 미국 경제시스템의 성공 여부를 측정해왔습니다. TV뉴스는 매일 밤 다우존스평균지수나 증시의 시세를 보도하고 있고요. 하지만 대다수 미국민이 처한 상황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다우존스지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가장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미국 역사를 통틀어 늘 그래왔듯이 경제시스템이 부유층에 유리하게 작동하는 한 보통사람들은 쉽게 회복하기 힘들 겁니다.”
 
-월가발 금융위기로 많은 젊은이들이 직업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변화를 가져올 시민운동을 만들어 나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자리를 민간부문에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정부가 주도해야 합니다. 미국이 대공황을 겪었던 1930년대에 배운 교훈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실업자가 생겨났을 때 이른바 자유시장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었습니다. 루스벨트 행정부는 800만 일자리를 제공했고 많은 젊은이들이 다리와 도로 건설에, 숲과 호수 복원을 위한 공공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정부만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가졌습니다. 개인기업은 이익이 충분치 않다면 사람들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큰 정부’에 대한 의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는 오바마가 ‘미국의 필수적인 이익’이라고 강조한 아프간 파병을 결정했습니다.
“아프간에 군대를 보내는 건 미국은 물론, 한국의 국익도 아닙니다. 양국의 군사·정치·경제 엘리트들의 이익일 뿐이죠. 남한 사람들은 정치지도자들이 북한과의 화해를 추구하고 냉전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매우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가능할 겁니다. 독일처럼 한반도 역시 영원히 분단돼 있을 수 없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통일이 목적이 돼야 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인권탄압을 받는 동시에 먹을거리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늘 먹는 문제가 우선입니다. 사람은 충분히 먹기 시작해야만 비로소 인권상황에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을 빌미로 북한에 대해 적의를 유지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북한 정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나는 걸 먼저 도와야 합니다. 그때서야 북한 주민들이 인권을 요구할 수 있게 될 겁니다.”
 
-2010년의 세계를 전망하신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구 행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깨닫고, 분노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특히 하늘과 땅, 물에서 일어나는 지구온난화를 깨달아야 합니다. 미래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각국 정부로 하여금 지구온난화 과정을 중단토록 하는 범세계적인 시민운동이 필요합니다. 과학자들의 경고대로 많은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2010년은 변화를 가져올 좋은 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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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위대한 영혼 "하워드 진"을 추모하며 (프레시안,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2010-02-02 오전 10:51:27)
[김민웅 칼럼]<49> 폭력, 착취, 거짓에 항거하여 진리와 자유를 옹호한 한 평생
 
사실은 권력이 만들어낸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생각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대중의 생각이 괴물 같은 이데올로기가 되고, 권력의 수단으로 작동할 때 대중은 결국 스스로를 억압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자신의 진정한 이익은 그로써 박탈된다. 권력은 대중의 뇌를 조종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인 것처럼 믿게 만든다. 이걸 부수려는 시도와 행위는 모두 권력의 견제와 압제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이런 일에 나서는 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걸 깨기 위해 온 몸을 던져 자기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역사가 변화하고 대중이 눈을 뜨는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하워드 진은 역사가 변화하는 것은 위대한 영웅의 출현에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고 소소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용기 있는 선택을 하는 순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중의 생각을 문제 삼았으나 대중을 멸시하지 않았으며 이들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찾았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인간이라면 마땅히 살아야 할 방식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에 저항하여 지금 이 순간 자신이 가치를 둔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곧 놀라운 승리"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작은 행동이기도 하고 때로 엄청난 용기를 요구하는 선택이기도 한 일들이 미국의 역사를 바꾸고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생명을 구해냈다. 흑백으로 분리된 레스토랑의 식사 규칙을 깬 사람들, 버스에서 백인이 요구하면 자리를 내줘야 하는 관습에 도전한 사람들, 징집영장을 보관한 사무실에 들어가 영장을 모조리 태워버린 사람들, 전쟁을 정당화시킨 국가최고기밀 문서를 몰래 유출해 복사한 뒤 언론에 공개한 사람들, 대학의 관료적 횡포에 저항한 사람들, 이 모두가 다 미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한 몫을 한 이들이다.
 
<미국 민중사>는 콜럼버스의 미 대륙 상륙의 역사적 해석을 완전히 바꾼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미국 역사의 출발선에 놓여 진 야만적 약탈과 전쟁, 정복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미국인 자신의 자화상을 고통스럽게 목격하도록 만든 책으로 이제는 필독서가 되었으니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독립선언서들>은 미국의 이데올로기부터 법과 정의, 경제적 평등과 역사 등에 대한 날카로운 그의 비판의식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독립 선언서들(오만한 제국)> 첫 장의 한 구절,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단지 흥밋거리이거나 지적 토론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된다고 충분히 결론내릴 수 있다."라는 대목은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은 단지 고정관념의 비 융통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폭력이 되고 죽음의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깨우침은 지금까지 의미 있게 내면화하고 있는 철학의 하나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You can't be neutral on a moving train)>에서 그가 자신의 뜻과 다를 바 없다고 여기고 소개한, 베트남 전쟁 징집 거부로 4년형을 받고 투옥된 그의 보스턴 대학 제자인 필립 서피나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건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 철학자 미구엘 우나무노가 한 말의 인용이다. "때로 침묵하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다."
 
침묵하지 않는 양심, 그것이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하워드 진은 그 침묵을 깨는 용기와 의지, 그리고 지적 성실함의 가치를 이 시대의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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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진 선생님 (한겨레21, 2010.02.05 제797호, 정인환 기자) 
[출판] 가지지 못한 자의 ‘편향된’ 시각으로 쓴 <미국민중사> 등을 남기고 떠난 하워드 진
 
미국 진보 진영의 큰 별이 졌다. <미국민중사>(국내판 이후 펴냄)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하워드 진 보스턴대 명예교수가 1월27일 숨을 거뒀다. 향년 87살.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그가 여행지인 캘리포니아주 샌타모니카에서 수영 도중 심장마비를 일으킨 뒤 회복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작가이자 언론인인 나오미 클라인은 진보적 인터넷 매체 <데모크라시나우>가 마련한 추모 방송에서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교사를 잃었다”고 애도했다.
 
하워드 진은 1922년 8월24일 뉴욕의 브루클린에서 유대계 이민 2세대로 태어났다. 1940년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18살 나이에 조선 노동자가 됐고, 이 무렵 그의 독서 목록엔 카를 마르크스가 더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이 불을 뿜던 1943년 젊은 진은 “파시스트와 맞서 싸우기 위해” 입대를 결심한다. 유럽 전선에 배치된 그의 주특기는 ‘폭격수’였다. 종전이 다가오던 1945년 4월 중순 프랑스 루아얀 지방에서 나치 잔당 소탕을 명분으로 사상 첫 네이팜탄을 퍼부었던 경험담은 <오만한 제국>을 포함한 그의 책에서 유독 자주 등장한다.
 
“아무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우리는 좋은 편이고 적은 나쁜 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슨 짓이든 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옳다고 믿는다. …하늘에선 지상의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폭격이 만들어낸 유혈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무슨 짓이든 저지르게 된다.”
 
군 복무를 마친 뒤에도 삶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는 양조장에 취직을 했고, 브루클린의 지하 셋방을 전전했다. 그러다 운 좋게 공공임대 주택을 얻게 됐고, 내처 제대군인 장학금을 받아 뒤늦게 대학에 진학하기에 이른다. ‘우리가 아는 하워드 진’ 탄생의 서막이었다.
 
1951년 뉴욕대를 졸업한 그는 컬럼비아대학으로 무대를 옮겼다. 석사학위 논문에서 1914년 콜로라도주 탄광 파업 사건을 추적한 그는 대공황의 끝자락에서 뉴욕시장을 지내며 ‘뉴딜 시대’를 이끌었던 피오렐로 라가디아의 정치와 삶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써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56년 학위를 마친 그는 ‘흑인 여성을 위한 고등교육 기관’으로 유서가 깊은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스펠먼대학에 둥지를 틀었다. 당시 미국 남부를 휩쓴 민권운동의 열정 속에 진은 ‘활동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학교 당국은 그런 그를 못마땅해했다. 1963년 그를 해고하면서 앨버트 맨리 당시 총장은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을 이유로 거론했단다. 이듬해 그는 동부의 명문 보스턴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관심도 ‘민권운동’에서 ‘반전운동’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과 1968년, 그는 반전 메시지를 담은 <베트남: 철군의 논리>와 <불복종과 민주주의>를 잇따라 펴냈다. 이후 희끗희끗한 머리에 사람 좋게 웃는 그의 모습은 각종 시위 현장에서 단골이 됐다. 1980년은 로널드 레이건의 대통령 취임으로 시작됐다. 미국 사회가 급격히 보수화하던 그 무렵, 진은 자신의 대표작인 <미국민중사>를 펴냈다. 15세기 말 바하마제도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원주민인 아라와크족을 어떻게 살육했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기존의 역사관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으며 밀리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편향된 시각”이란 비판이 나올 때마다 진은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는 가진 자 편에서 기술돼왔다. 나는 소외된 이들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봤을 뿐이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그는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티의 대지진을 바라보며 “야만적이고 불의한 미국의 정책이 아이티 비극의 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취임 1주년을 맞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그저 평범한 대통령에 그칠 공산이 큰데, 위기의 시대에 그런 대통령은 위험하기까지 하다”며 “그를 올바른 쪽으로 견인하는 건 오로지 시민의 몫”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인생은 ‘달리는 기차’였고, 그에게 ‘중립’이란 있을 수 없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자서전 제목이 꼭 그의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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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6 22:16 2010/02/06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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