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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5형제'라 불리는 대법관들을 보는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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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하는 이와 저녁식사를 하다가 설대 졸업생들의 얘기가 나왔다. 최근 미네르바 체포와 관련하여 학력, 학벌 문제가 제기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은 그와는 조금 다른 차원이다. 얘기의 핵심은 설대 졸업생들은 지금은 운동을 한다고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에게 권력이나 부를 부여잡을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꺼이 그 쪽으로 가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덧붙여 그런 차원에서 자신이나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운동권의 주변부에 있었던 것이 다행이라는 말도 함께...
 
이런 말을 들으니 과거에 지방대, 삼류대 운동권에게는 타락할 권리마저 부여되지 않았다는 구절이 떠올랐다. 사실 학생운동은 수도권의 소위 메이저캠을 중심으로 좌우되어 왔으며, 특히 80년대 초중반의 학생운동사는 말그대로 설대 학생운동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운동진영에도 소위 명문대, 특히 설대를 나온 이들이 많다. 그들은 과연 언제까지 운동을 하게 될까. 권력의 편에 서게 딜 기회가 오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정치적 입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니 정치적 입장은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를 표명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예전에는 그러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자신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하는 동지가 필요하고, 이를 묶어주는 조직이 요구되며,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지속적인 대화와 소통을 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야와 관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하곤 했다. 이러한 것이 없다면 파편화된 개인은 기성사회, 현실 조직의 논리에 휩쓸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과거 열성적으로 운동을 했던 친구들이 기업에 입사하거나 고시를 통해 고급관료가 된 경우 상대적으로 더 조직에 투철한 삼성맨, 현대맨, 기획재정부 관료, 노동부 관료가 되곤 한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갔다가 스스로 호랑이 새끼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 중에 이제 자신은 과거의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변절을 선언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스스로가 노동자, 서민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며, 여전히 운동하고 있는 과거 동료들이 순수성을 잃었다고 파악한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이들이 보기에 그들은 이미 권력의 주구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오늘자 경향신문에, 참여정부 시절 ‘대법원의 다양화’라는 여론에 힘입어 대법원에 진출한 ‘진보·개혁’ 성향의 대법관 5명의 현재를 다룬 기사가 보인다. 그에 따르면, 총 13명 중 5명이 진보로 분류되고, 이를 통해 보통 대법원의 무게중심이 중간으로 이동했다는 평이 있었지만, 그들이 참여한 판결을 분석한 결과, 대법원의 실질적인 변화는 생겨나지 않았고, 그들 또한 기존 보수적인 주류 판결 관행을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법관 개인의 소신이 있더라도 법원 시스템 상 현행 법이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최근 결정된 판례를 거스르는 판결은 내릴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거나 이들 5인의 판사가 실제로는 보수 성향이었다는 평가를 덧붙인다.
 
헌법재판소의 비중을 키우는데 소수의 다양한 목소리를 결정에 반영하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견해를 피력했던 변정수 재판관의 역할이 컸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헌재재판관 임기가 끝난 이후 그가 했던 활동을 보면 그리 급진적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도, 재판관으로 재직시에는 소신있는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독수리 5형제'라고 불리우는 대법관들은 그와는 다른 행보를 보인 셈인데, 그들 대부분이 서울대 법대를 나온 것을 감안하면 앞에서 내가 언급했던 것과 비슷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말을 해놓고 보니 비약이 심한 느낌이다. 소위 '진보성향'으로 알려졌던 5인의 대법관들의 경우 대법관이 되기 전에 이미 운동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기성 조직의 논리에 물들지 않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 나이를 먹음에 따라서 자연스레 보수화되기도 하지만, 과거에 아니면 지금 지니고 있는 정치적 입장이 옳다고 한다면 이를 지켜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스스로 나름 유연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면서 원칙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자신을 정당화하는 핑계거리가 아님은 물론이다. 
 
‘판례에 갇힌’ 진보성향 5인, 새 바람은 없었다 (경향, 박영흠기자, 2009-01-12-18: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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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3 12:19 2009/01/13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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