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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귀환'(Homecoming)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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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기븐 선데이'에 이어 케이블 방송에서 본 영화가 '병사들의 귀환'(Homecoming)이다.

사실 폭력영화나 전쟁영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 영화 또한 제목부터가 별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채널을 이리저리 틀다보니 그 새벽에 볼 만한 것이 이것밖에 없었다.  

물론 항상 하던 것처럼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말이지.

   

알고 보니 이 영화는 좀비 영화가 아닌가. (스포일러가 당연히 있다)

게다가 내용도 심상치 않고... 대충 지나치며 본 바로는 반전영화에다 부시행정부를 비판하는 반정부영화였다. 이라크에서 전사한 군인들이 좀비로 되살아나 전쟁반대를 외치며 투표권을 행사하는데, 이를 그냥 넘길 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인터넷에서 조금 찾아보니 꽤 유명한 영화이더라. 2006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고, 7월 25일부터 8월 24일까지 진행된 씨네 바캉스 서울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나왔다. 데일 베일리의 단편 ‘죽음과 선거권’을 '그렘린'을 만들었던 조 단테가 각색하여 만들었는데, 호러 영화 전문감독들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마스터즈 오브 호러' 시리즈 중의 여섯번째 작품이다. 사실 좀비영화들은 대부분 인종차별이나 계급갈등을 암시하고 있다는데, 이 영화는 확실하게 자신의 정치색을 밝히는 '본격좀비정치영화'이다. 듀나는 너무 노골적이어서 분석의 재미가 없을 정도라고 얘기한다. 물론 "케이블 TV용으로 만들긴 했지만 장르영화로 정치를, 그것도 9·11을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올리버 스톤이나 스파이크 리도 조 단테 앞에서는 '형님'하고 한 수 접어야 한다"고까지 얘기하는 이도 있긴 하지만(장익준, 에둘러 말할까? 대놓고 말할까?).

    

처음에 워싱턴으로 향하고 있는 상이군인이 목박을 짚은 채 걷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초반분위기부터 심상치 않다. 

(스틸사진은 다음영화에서)     

하지만 이를 사람이 아닌 좀비라고 보고 그냥 차로 치어버리는 두 남녀 앞에 다시 한 트럭 가득 좀비 병사들이 나타나고, 이들의 다리를 총으로 쏘는 여자를 향해 남자는 "문제는 당신"이라며 갑자기 권총으로 쏴버리고, 시간은 4주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대통령선거를 3주 남겨둔 2008년 미국. 앞에서 등장했던 두 남녀가 티브이 정치대담프로에 등장하여 얘기를 나눈다. 집권당의 대통령선거유세 특별고문위원인 데이빗 머치는 유화적으로 얘기를 하지만, 극우 저널리스트 제인 클리버는 "전쟁반대"를 외치는 여성들을 두고 이들은 얼굴도 못생긴 주제에 티브이에 나오고 싶어서 저런 쇼를 하고 있다고 반전론자들을 조롱하면서 과격한 주장을 늘어놓는다. 이 점에서 제인 클리버의 모델이 미국의 보수논객이자 작가인 앤 쿨터(Ann Coulter)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집권당 또한 부시의 공화당 정권이며, 언급되는 전쟁이 이라크 전쟁이라는 것도 금방 알 수 있다.

   

아무튼 데이빗 머치는 시청자질문을 받는데,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듯한 한 여성이 "내 아들의 죽음을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나요. 어디서 내 아들을 찾을 수 있나요" 하면서 전사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자,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를 위로한다.

“저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작은 소원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부인의 아들이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입니다. 미국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죽음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정말로 병사들이 돌아온다. 미군시체안치소에서 커다란 성조기로 덮힌 관 속에 누워있던 병사들이 관뚜껑을 열고 일어나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관을 지키던 군인이 두려움에 이들을 향해 권총을 쏘지만, 그들은 끄떡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군인의 어깨를 다독이며 "쉬게나"라는 말을 남기고 어느 곳으로 향한다. 그리고 국립묘지에서도 그들은 돌아온다. 왜 다시 돌아왔을까.

 

집권당에서는 이들의 정체를 분석하고 이들을 이용하고자 한다. 아무리 총을 쏴도 죽지 않으니 말 그대로 천하무적의 병사들 아닌가.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좀비병사들을 영입하기 위한 정치권의 암투가 펼쳐지고...

  

하지만 좀비병사들은 바로 자신들을 사지로 내몬 정당에 반대하는 투표를 하기 위해서 살아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군번줄로 본인을 확인시키고 나서 자신의 소중한 한표를 행사한다. (여기에서 유권자 명부에 그들의 이름이 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투표 후 다시 죽는다. 물론 모든 병사가 다 부활한 건 아니고, 자신의 죽음이 억울한 병사들만이, 더이상의 전쟁에 반대하는 병사들만이 정부에 항의하기 위해 살아난 것이다. (전쟁에 찬성하는 병사들은 그대로 잠들어 있다. ㅋㅋㅋ)

“우린 봤다. 거짓 때문에 죽은 사람들. 나도 마찬가지다….. 우린 투표를 원한다. 전쟁을 종식시키는 자에게 투표할 것이다.”

 
 
 
 

투표를 위해 부활한 그들은 당연히 다른 좀비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거나 어깨

ⓒ 쇼타임
를 물어뜯지 않는다. 그들은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자신들도 투표를 하겠다는 피켓시위에도 참여하고, 정치광고에도 출연한다.

   

하지만 결국 이들은 기만당하고, 집권당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 거리로 몰려나와 승리를 자축하는 보수꼴통들 앞에서 새로운 사태가 발생한다.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국립묘지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것.

열세에 몰린 이라크전 참전 용사들 앞에 거대한 지원군이 나타나 쿠데타를 일으키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국회의사당도 장악하고, 전 미국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이렇게 통쾌한 결말을 가진 '병사들의 귀환'은 호러영화의 틀을 가지고 현실 정치에 대해 직설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결말이 마냥 좋은가 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 설득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듀나의 다음과 같은 언급에 동감한다.

    

솔직히 [병사들의 귀환]의 정치적 힘은 미미해요. 앤 쿨터나 극우기독교 목사들을 놀려대는 건 너무 손쉽습니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쪽도 오래 전부터 내성에 길들여졌고요. 결국 이 영화의 풍자는 할리우드 좌파들의 자위 행위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죽은 병사들의 좀비들이 기어나와 쿠데타를 일으키는 결말 역시 그렇게까지 좋게 느껴지지 않아요.

이게 꼭 조 단테의 잘못은 아닐 겁니다. 아마 세상의 잘못이겠죠. 세상이 졸렬하면 풍자도 자연스럽게 졸렬해지거든요. (듀나, 마스터즈 오브 호러 - 병사들의 귀환 Masters of Horror - Joe Dante: Homecoming (2005))

    
추석 때 쏟아진 유해성 영화들에 비해 '병사들의 귀환'은 볼만한 영화였음에는 틀림 없다. 그런데 이런 정치영화를 보고나면 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투표를 통해서만은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은 당연하다.

게다가 쿠데타를 통해서도 마찬가지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그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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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8 15:05 2006/10/08 15:05

6 Comments (+add yours?)

  1. 홍실이 2006/10/08 17:40

    추석 연휴도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계획하신 일들은 다 끝내셨어요? 부럽다.. 영화도 보구.. ㅡ.ㅡ

     Reply  Address

  2. 새벽길 2006/10/08 18:35

    계획한 것들을 전혀 끝내지 못해서리 절망의 몸부림으로 영화도 보고, 이렇게 영화감상문도 쓰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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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행인 2006/10/09 02:18

    흠... 요즘 TV를 거의 못보다 보니 공중파는 커녕 케이블도 못보네요... 이거 괜히 솔깃해지는 영환데요...

    영화가 좀비들을 등장시키면서 설득력을 잃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이라는 존재가 하고 있는 짓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무력하게 앉아서 당해야만 하는 세계 모든 인민들이 바로 살아도 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죽은 것도 아닌- 말 그대로 좀비 신세가 아닐런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Reply  Address

  4. 새벽길 2006/10/09 03:05

    전세계 민중들을 좀비 신세에 비유하는 것도 그럴싸 하네요.^^
    행인님의 글을 보니 지금 이 시기에 좌파라면 이런 '자위행위'라도 필요한 것은 아닌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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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에밀리오 2006/10/09 09:52

    이 형화 찾아봐야겠군요 >_< 크 >_<:

     Reply  Address

  6. 새벽길 2006/10/10 01:49

    나름 재미 있습니다. ^^

     Reply  Add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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