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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수원에서 모임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평택생협을 방문했다.
평택생협은 우리주변에 활성화된 생협과는 다르게 생협초기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생협이다. 초기에는 시장경제를 넘어선 자급자족의 경제를 갖자라는 문제의식에서 먹거리생협으로부터 출발을 하는데,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탈학교운동을 하는 교육생협으로 발전을 했으며, 지금은 이웃과 교류를 하고 뭔가를 나눌 수 있는 구조를 가지는 주거환경에 대한 고민으로 주택생협까지 발전을 시켜왔다.
앞으로 평택호가 보이는 야산에 자리 잡은 생협 사무실은 사무실이라기보다는 작은 공동체였다.
니것내것없이 그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모든 걸 나누어 쓰는...
그곳에 계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주고받던 중 탈학교운동 얘기가 나오자 대뜸 옆의 친구에게 물으신다.
“학교에서 뭐 배웠어요?”
“... ...”
순간, 아무 말도 못하는 일행들에게 우리가 살아오면서, 교육과정을 통해 경쟁등의 자본주의적 습관을 가장 많이 받아들인다면서 그것을 깨달은 이 순간, 단 일분일초라도 그런 잘못된 교육을 더 받을 이유가 있겠냐고 하신다.
그리고 탈학교와 비자본주의적인 삶을 말씀하시며 이해하기 쉽게 예를 하나 들어주시는데, 내 삶이 그렇지 않았나 싶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우리가 수렁이나 똥통에 빠지면 일단 나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오고 나서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나와야 그다음이 있는 건데...”
자본주의적 삶을 계속 유지할 이유가 뭐냐면서, 그리고 학교에서 자본주의에 적응하는 그런 교육을 받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냐면서,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학교나 그런 삶을 중단하면 그 이후에 뭘 할지 이런저런 걱정 때문에 결국 그만두지 못한다고 한다. 그러나 소수로 남는 두려움을 버리면 그때부터 무한한 자유가 시작된단다.
순간 지금까지 살아왔던 나의 삶들이 머릿속을 휘리릭 지나간다. 맨날 ‘자본주의 박살내자’고 외쳤던(?) 내가 자본주의적 삶을 중단한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경험들을 접한다.
그런 경험들은 나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경험을 하나씩 쌓아 갈 때마다 나의 삶 역시 조금씩 바꾸었으면 하는 바램인데, 역시나 쉽지 않다.
우리는 누구나 좋은 세상을 바라고 있지만 나의 삶을 조금씩 바꾸지 않는 한 그런 좋은 세상은 오지 않으리란 게 내 생각이다.
내 삶은 바꾸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은 잘못되었으니 바꾸라고 한다면 뭔가 불공평하지 않은가?
과거 보릿고개에 대한 경험이 있는 어르신들은 잘 알 것이다. 물질적 풍요, 돈만 있으면 행복해 질 것 같았지만,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용산참사 현장을 찾은 난쏘공의 작가 조세희씨는 그날 인터뷰에서 그런 말씀을 하셨다.
“가난하고 없이 사는 70년대엔 앞으로 풍요로운 세상이오면 낙원이 올거라 믿었어요~ 그런데 지금의 세상을 보세요~ 물질적으로는 몇배, 몇십배 좋아졌지만 이것이 사람사는 세상입니까? 난쏘공이 쓰여진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30년 동안 세상은 아름다워졌습니까? 세상은 훨씬 더 잔혹해지고 폭압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보다 더 지금 이 현실이 무섭고 공포스럽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석달이 훌쩍 넘어서고 있다. 아직 장례식도 못치르고, 유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대한 올바른 진상규명이라도 해야 한다며 거리에 나서고 있다. 집회나 문화제를 할 때마다 유가족들이 경찰들에게 봉변을 당해 실신하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경찰들에게 욕이 튀어나오고, 다섯을 죽이고도 사과 한마디 없는 현 정권에 분노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용산참사는 수조원의 개발이익을 둘러싼 건설업체와 용산구청, 정부, 그리고 공권력의 합작품이다.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서 강제로 쫓겨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불에 태워 죽인 무소불위의 공권력, 그리고 개발업체...
누가 그들에게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주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이 불안정한 노후대비로 ‘내집마련’을 손꼽는다. 그러나 직장인들이 월급을 모아서는 결코 내 집을 장만할 수가 없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부동산 가격은 일반 월급쟁이들이 20년 이상 매달 받는 월급의 전부를 저축을 해야 겨우 살 수 있는 정도인데, 그 20년이 지나면 집값은 두배세배로 뛰니...
그래서 집을 장만하려면 개발의 붐을 잘 타야하고, 그런 내 집 마련을 위한 소규모 부동산투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일반시민들의 욕망이 건설자본에게 살인까지 가능하게 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준 것이 아닐까?
지금 일어난 용산참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런 일들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남한사회는 하루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는데, 생계문제와 맞물려있는 노동현장의 해고가 요즘은 많은 화두가 되고 있다.
비정규직 대량해고, 정규직 구조조정이 그것인데, 수원인근만 하더라도 몇 개의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를 앞두고 있는지 모른다.
캐리어 노동자들이 공장폐쇄에 반대하며 옥쇄투쟁을 하고 있고, 평택의 쌍용자동차, 도청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는 파카한일유압, 비정규직이 정리해고당한 명지대와 88CC...
까페와 블로그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정리해고 되지 않은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무조건 옥쇄파업을 풀라고 한다. 노조이기주의를 들먹이며 자본에게 선택된 내가 살아야하니 그만 나가죽으란다.
적자생존의 법칙, 밀림의 법칙이 인간 세상에 더더욱 철저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밀림의 법칙을 강제로 적용시키는 자본, 그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은 무엇을 보장받기에 그렇게 동료를 죽이는 일에 앞장서는 것일까?
자본주의의 최고의 덕목인 ‘경쟁’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초등학교때부터 배웠더라면 사회가 이렇게 각박해졌을까?
다시금 우리의 삶이 무엇을 기준으로 돌아가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한다.
이렇듯 우리주변의 사건들을 일일이 나열해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암묵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삶의 방식으로 인해 결국 나와 주변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 당장은 투쟁을 통해 그들의 눈물을 닦아준다고 하지만, 그런 일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지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다. 그런 역사의 악순환을 막는 것은 ‘사회적인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고, ‘사회적인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기위해서는 나의 삶을 성찰하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한다.
우리들 하나하나의 그런 노력이 모였을 때, 미래는 우리들이 바라는 좋은세상,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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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평화인권연대 소식지에 기고한 글이다. 전에 써놓은 글들을 조금씩 짜깁기하기도하고... 암튼, 이런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실천을 조금씩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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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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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시오...행복한 세상을 만들려면, 행복한 신체를 만드시오...술쟁이~~~부가 정보
어리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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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내 신체도 술을 좋아하는것 같아... ㅋㅋㅋ~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