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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규민이 물음.
" '어차피' 가 나쁜 말이야?"
어린이집에서 나쁜 말처럼 쓰여지나고 있는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고, 'ㅊ'발음에 'ㅍ'발음까지 있어서?
날 때린 친구한테 화가 나서 "야"하고 부른 후, 이를 앙 다물고, "어차피!"하고 외칠 아이들을 상상해보니 웃겼다.
"아니야. 나쁜 말이 아니야."
하고 설명해줄랬더니, 너무 어렵다.
"규민이가 좀더 언니가 되면 알 수 있을거야. 아무튼 나쁜 말은 전혀 아니야."
그 후 며칠이 지나, 규민이가 '어차피'를 정확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엄마, 우리 먼저 밥 먹자. 아빠는 '어차피' 아침 밥 안 먹는다니까."
오, 놀라움 놀라움.
늦게까지 함께 놀았던 친구를 무작정 뒤따라가는 규민.
어차피 그 아이는 아빠가 집으로 데리고 가는 길. 가봤자 돌아서서 우리집으로 돌아오게 될테니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아이 아빠는 집으로 곧장 가는 대신 비디오가게에 들렸다. 그 가게는 폐업한다고 비디오테이프들을 싸게 팔고 있던 중이었다.
덩달아서 비디오가게에 들어선 규민과 나, 그리고 규민의 친구와 친구의 아빠는 문에 들어선 순간부터 각각 갈라져 눈을 휘번덕이며 비디오테이프 꽂이 사이사이를 누볐다.
그 가게는 제법 컸다.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횡재를 만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가게가 자꾸만 문을 닫는 건, 불행이다.
넓어봤자 삼분의 이 쯤의 공간을 만화책에 거의 내어주고 있는, 그래서 비디오 테이프래봤자 구비하고 있는 자산은 없고 죄다 최신프로를 반짝 내놓고 거두고 내놓고 거두기를 반복하는 비디오가게들만이 남아가는 현실은, 불행이다.
그렇다고 사실 내가 영화를 자주 봐주면서, 그들의 생업에 도움을 주면서,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니 비디오가게계의 현실비판은 관두고, 아무튼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펄떡 휘번덕휘번덕 뛰며 이곳저곳을 누볐던 네 명의 사람들로 돌아가자면.....
규민이과 그의 친구는 곧 함께 만화비디오 칸 앞에 서서 하나하나 품평회를 하기 시작했다.
미키마우스 만화 씨리즈라면 규민이는 전문가 급. 친구 앞에서 무어라고 평을 해주는데, 친구가 못 알아듣는다. 친구는 우리나라 만화 씨리즈 '백구'를 규민에게 추천하고 있다. 들려오는 그애 아빠의 목소리, "너 그거 본적도 없잖아."
규민이가 친구랑 시간을 잘 보내주는 덕분에 나는 구석구석 눈을 핑글핑글 돌리고 있는데...(단시간에 가장 많은 글자를 읽어낸 순간일 듯.)
그날밤 나는 횡재하였다.
3개 2,000원 부분에서 <멘>과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그리고 <안토니아스 라인>을 찾은 것이었다.
<멘>은 내가 짱 좋아하는 영화다.
평생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영화.
그리고 남편쟁이를 위해서 한 편의 좋은 작품의 스탠다드를 고르려고 했는데, <안토니아스 라인>이 눈에 딱 들어왔다. 흠, 이 영화는 두고두고 볼 것 같지는 않지만, 발견했으면 왠지 예의상 사드려야할 것 같은 기분에...
그리고 다시 남편쟁이를 위해서... 먼저 <숏컷>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걸 고르면 4편의 영화가 되니(<숏컷>은 비디오 2장), 2,000원 넘는다고 할 것 같아 포기.
그러면 무얼????? 하고 눈을 돌리고 있는데, 저 멀리멀리 꼭대기 구석에서
규민이도 세 편의 비디오를 골라놨음.
<미키마우스의 생일잔치>, (친구가 추천했던)<백구>, 제목은 기억안나고 순정만화 하나.
그래서 엊그제
이 영화, 주인공이자, 씨나리오를 쓴 두 여자배우들이 하나는 70년 생이고, 하나는 71년 생이다. 작정하고 나와 딱 맞는 것이다.
한국/서울 남자 백 보다 지구 반대편 여자 둘이 훨씬.....
이 영화가 동성애로 안내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결국은, 이성애자들을 안도하게 해주지만, 무엇보다 큰 이 영화의 미덕은 동성애를 특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 있다는 것.
영화의 씨나리오를 두 여자가 썼기 때문인데, 무척 세심하고도 유머러스한 관찰의 눈은 분명 훌륭한 것.
그런데 나는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에 입문하고 있어서인가(이, 뭐, 썰렁한 표현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그림에 전념하고나선 후의 제시카, 그리고 신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에 나선 조쉬(뉴욕 여피의 전형이었던 제시카와 조쉬의 복장이 달라졌다. 촌스러운 원피스에 청자켓을 입은 제시카, 빵꾸난 티셔쓰를 입은 조쉬)가 더 궁금해지는 기분.
그것은 마치 그녀 제시카 역시 여자의 시기를 지나 인간의 시기로 옮겨가고 있음처럼 느껴진다. 너무 내 식대로 해석인가.
다니던 회사 관두고 아티스트로 전념하면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삶에 입문했다는?
엉터리 도식이겠지만, 여전히 일면 일리가 있다고 믿는다.
회사와 아트 ---- 그것은 정녕 생활과 삶의 차이인 것이다.
그것은 정녕 하루하루와 인생의 차이인 것이다.
으흡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자리에 누워서 옛날 이야기 시작. 규민은 늘 '긴 이야기'를 원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그 시간 즈음 늘 피곤하다. 나는 이야기를 하다가 곧잘 존다. 그러면 말이 꼬이고 섞이고 끊긴다.
이 밤도 규민은 긴 이야기를 원했지만, 번개가 치고 천둥이 치는 밤엔 '귀신이 더 잘 돌아다니기 때문에' 짧은 이야기로 하고 자기로 합의를 보았다.
옛날에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번개만 치는 나라가 있었대.
이 나라는 천둥도 안 치고 비도 안 오는데, 번개만 쳤대.
규민 --- 그럼 <번쩍 나라>겠네.
그래, 맞아, 번쩍나라야. 번쩍나라에서는 번쩍번쩍 번개만 쳤대.
그런데 그 옆에는 천둥만 치는 천둥나라(이게 뭐냐, 이름이.. 상상력 빈곤)가 있었대. 비도 안 오고 번개도 안 치는데, 천둥만 치는거야.
규민 -- 그럼 <우당탕 나라>겠다.
그래, 그 말이 더 맞다. 그 나라 이름은 천둥나라가 아니라, 우당탕 나라래.
그리고 그 옆에는 비만 오는 나라가 있었대. 천둥도 안 치고, 번개도 안 치는데 비만 오는거야.
규민 -- 그럼 그 나라는 <후두둑 나라>겠다.
와, 맞아, 맞아. 후두둑 나라야. 이 세 나라는 서로서로 사이 좋게 잘 지냈대. 오늘 이야기 끝.
잘자, 달링 규민. 쪽.
규민 : 순데('수'인데-'수'로 시작하는데), 두 글자야.
나 : 수영
규민 : 아니야.
나 : 수염
규민 : 아니야.
남편 : 수찬
규민 : 아니야. 초록색에 까만 줄이 있어.
남편 : 수박
규민 : 맞았다.
규민 : 두 글잔데, 차야.
나 : 자동차라고?
규민 : 아니.
남편 : 그럼 마시는 차야?
규민 : 아니.
찬데(그러니까 이게 ''차'로 시작하는데'란 뜻이었던 것), 노란색에 줄이 있어.
나, 남편:??????? 뭐야, 말해줘.
규민 : 참외 (규민 발음으로 '차메')
이러고 한참 놀았음
오월 초 짧은 방학 중 은행에 갔다.
이제 은행은 방학 중 아니면 갈 수가 없다. (수수료 떼이기 싫어서 주말에 못 가.)
은행에 앉아있을 때 난 항상 게걸스럽게 잡지책을 뒤진다.
먹고나면 꼭 후회하는 미원 잔뜩 든 떡볶기를 그래도 주기적으로 먹어줘야하는 것처럼, 뒤지고 나면 꼭 후회하면서도 눈 앞에 보이면 한 번 훓어줘야하는 게 여성잡지지.
그러면서, 아직도 연예인가십과 화장법으로 도배를 하냐, 하고 꼭 혀를 차지.
근데 오월 초 짧은 방학 때 갔던 은행에서 본 잡지에는 나의 수준높은, 인간에 대한 지적 탐구력을 충족시켜줄 만한 근사한 기사가 있었는데, 백지영에 관한 것이었다.
뭔 잡지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데, 되게 고급스러운 척 하며, 기자도 되게 멋 부리며 글을 쓴 잡지였다. 백지영 인터뷰는 딱 한 페이지였는데, 중간에 백지영의 전신 사진이 있었고, 양 싸이드에 인터뷰 글들이 한글 9pt 정도 작은 글씨로 빽빽하게 차있었다.
백지영은 나에게, 오히려 그놈의 비디오 사건 때문에 호감을 주었었다.
사건 당시에는 그 여자를 잘 알지 못했었는데(흔한 여자땐스가수 중 하나), 사건이 나고 일 년 쯤 후에 우연히 테레비에 나온 걸 봤었다.
웬간하면 그런 일 있고 테레비에 나오겠나. 근데 그 여자는 허허 웃으면서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자기는 반드시 재기해서 테레비 방송에 다시 나와야만 한단다. 그래야 자기 가족이 살 수 있단다. 거기까지 의연하게 이야기를 하더니, 막상 사건을 정확하게 상기시키는 단어가 나오자 그녀는 카메라 앞에서 홱 등을 보이며 황급히 일어서서 나갔다.
그 모든 장면 하나하나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런 사건이 있었던 그녀였기 때문에, 나에겐 '진짜'로 보였다. 테레비 방송을 타겠다,라는 속된 목표도, 그리고 '그래야 가족이 살고 죽는다'는 상투적 표현도, 속이 상해 울컥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 나가며 보이는 등도 모두 '진짜'로 보였다.
그후 컴백을 했다고 잠깐 테레비에 나오는 듯 하더니, 곧바로 나이트 클럽 전단지로 얼굴을 옮겼던 것을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도 같고...
그러다가 지난 오월 초 은행에서 뒤적였던 잡지에서 본 것이었다.
두 세네번 페이지 잡아 넘기고 잡지랙에 다시 쳐박아둠이 마땅할 호들갑스럽게 고급인 척 하는 그 잡지를, 호감을 품고 있던 이에 대한 예의로, 한줄한줄 읽기 시작하였다.
역시, 백지영, 이 여자, 나, 좋아.
비디오 사건이 난지 이제 얼마가 지난 건가.
이제 이 여자는 이런 말도 하였다.
그 사건이 있어서 좋았다고. 그 사건이 있어서 떠날 사람들은 진작에 떠났고, 자기 곁에는 진정 있을 사람들만 있게 되었다고. 자기는 인기에 연연하는 가수가 되지 않았다고. 정말 노래(음악?)를 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게 되었다고.
이것도 얼마나 상투적인 소리인가.
그런데, 다른 사람이 아니고 그녀였기 때문에, '진짜'로 들렸다.
이 여자가 이런 말을 하기까지 그녀, 얼마나 깨고 깨야했을까.
그러나, 아무튼, 그 잡지는 끝까지 마음에 안 들었다.
백지영을 이렇게까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니, 우리 잡지, 특별하고 대단하지?하는 자세 같았고, <사랑 안해>라는 노래에 대해 기자가 여러 번 이야기 하던데, 이것도 기자의 음악에 대해 뭐 쫌 알지,하는 자세 같았다.
그랬더니, 얼마 후에 백지영이 테레비 가요프로그램에서 일 위 했다는 기사가 인터넷에 뜨더라니!!!!
이미 백지영은 은행 비치용 잡지들의 인터뷰 타겟 일 위였던 것이다.
나는 <사랑 안해>라는 노래가 진심으로 듣고 싶어졌는데(그 전에 그 여자 노래 다 싫었음), 오늘에서야 비로소 들었다. 진보넷 블로그에 누가 뮤직 비디오를 실어놨다.
비디오는 정다빈이 레즈비언으로 이쁘게 나왔다. 마치 휀씨 제품처럼 나온 레즈비언 코드를, 그래도 백지영 때문에 용서한다.
노래는 뭐 그저그렇다. (벌써 까먹었다.)
그냥 백지영이 좋다.
근데 북한이 미사일을 무더기로 쐈다는데, 이런 한가한 소리만 하고 있어도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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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야 맨날 딸래미 자랑만 하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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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ㅎㅎㅎㅎ '어차피'라는 단어 속에 은근히 묻어 있는 부정의 감을 규민이는 어찌 느꼈던걸까? '어차피' 우리 어른들이 알 수 있겠어?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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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 이태리 피렌체 근처 바닷가로 바캉스를 다녀왔어. 돌아오니 이쁜 규민이 얘기.. 우리 아이도 많이 컸다. 바캉스를 함께 간 친구들이 모두 주렁주렁 아이들을 달고 왔는데 애들 소리를 듣고 자기도 빨랑 커서 나와 놀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나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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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박 담아왔던 그릇을 놓고갔네. 안보내도 되나?즐거웠어. 얼굴보니 좋네. 실컷 수다를 떨지는 못한것 같지만, 내 마음이 참 즐거웠어. 연수 잘 다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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