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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6/05

6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6/05/27
    그런데 시골에서 살다가(1)
    이유
  2. 2006/05/26
    목이 또 갔다.(2)
    이유
  3. 2006/05/24
    어제 정전(1)
    이유
  4. 2006/05/07
    직관과 직감(3)
    이유
  5. 2006/05/04
    Give peace a chance(6)
    이유
  6. 2006/05/03
    규민이 그림 자랑(8)
    이유

그런데 시골에서 살다가

이제부터 우리 동네에 방파제를 세워, 매일 나가 조금조금 조개를 캐와 국를 끓이고 어느날은 해물전을 해먹고 어느날은 해물칼국수를 끓여먹게 해주던 개펄을 땅으로 바꾸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제부터 우리 동네 얼마만한 땅에 미군 부대가 들어올테니 동의 싸인을 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그래서 들여다보니 동네 한 쪽 몇(십?)만평 땅이길래 이 정도는 나눠써도 되겠다 싶고, 국가에서 하는 일 나도 좀 양보하자 싶어 싸인해주고 났더니 그 땅이 열몇배로 불어 이 동네에서는 이제부터 살지 못 하니 보상금 받고 아예 나가라고 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또 이제부터 우리 동네 한 쪽에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올테니 보상금 얼마주고 도서관도 지어주고 병원도 지어주마, 동의 싸인해라면 어떡하지.

 

이럴까봐 시골로 이사도 못 가겠다.

 

그러면 징글징글하게 싸워야할텐데 끔찍해서 어떻게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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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또 갔다.

오늘오전 열한시경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방금 오분 전까지 마음대로 나오던 목소리가.

 

2004년 12월, 애 낳고 처음으로 어딘가 매일 출근했던 곳이 토플학원이었는데, 매일 3시간씩 떠들어댄 여파로 딱 닷새만에 목소리가 절단났었다.

그 후로, 한 번 절단남을 맛본 성대는 이제 왠만큼 일했다 싶으면 획 나자빠 누워버리는 꾀를 알았다.

처음으로부터 1년 후, 2005년 12월 맛이 가고, 그로부터 5개월 후 오늘 맛이 갔다.

이러다가 확, 목소리가 영영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겁이 덜컥 났음.

 

 

내가 최근에 읽은 소설은 <잘려진 머리>, 벌써 몇개월 전이다.

지금 읽겠다고 집어든 소설은 <만연원년의 풋볼>, 이번엔 꼭 끝까지 다 읽겠다고 들었는데, 1장 반을 읽고 책 덮은 지가 일주일 전. 아니 한 달 후라고해도 1장 반 읽고 있는 중일 것 같다.

 

일기를 쓰려는데 세 줄 쓰고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다.

국민학생처럼 연필 뒷꼭지를 잘근잘근 씹다가, 내 머리가 똥이 됐나,하는 생각마저 멍~하게 하고 있었다.

누군가, 말도 안되는 보스 시집살이에 숨이 턱까지 차오른 채로 한달이면 스무일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 홈페이지를 보니 매일 소설이며 시에 뒤덮혀 살고 있는 것이 순간 짜릿 부럽다.

 

 

거의 영접했네,하고 남편이 놀리기까지 했던 일이었는데, 처음으로(그래봤자 5개월만에) 확 그만뒀음 좋겠다,란 생각을 했다. 나도 이제 마흔인데. 확 그만두고 돈 쬐끔 벌어도 되는 시골로 이사가고(지금은 참도 많이 번다) 애는 학교 안 보내고 그냥 뒹굴뒹굴 살며 나물캐고 시금치 열무 호박 심어먹고 책 보고 시 읽고 글 쓰며 살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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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전

어제저녁 엄마 집에서 저녁밥을 얻어먹고(시간맞춰 퇴근을 못하면 대타 일순위가 엄마. 엄마에게 전화걸어 딸래미 데리고 와달라 부탁하고, 그러면 애 밥까지 먹여주시고, 나도 간 김에 밥 얻어먹고는 설겆이도 안하고 배째라 쉰다. 이 다음에 우리 딸래미가 나한테 그럴까 겁난다. 그 때가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뜩 피곤한 기색을 무기로 설겆이도 안 하고 배째고 규민이가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는 핑계로 길게 누워 쉬고 있었다.

테레비젼에서는 세네갈 대 한국 축구경기 중계.

한 골이 터졌네 으쌰하는 것 같더니, 좀있다 퍽, 테레비가 꺼지고 불이 꺼지고 삑삑하며 전화기가 꺼지고 냉장고 돌아가던 소리도 멈추고, 약 1초 후, 하필이면 이런 때,하는 우리 아빠의 탄식과 동시에 바깥 길거리에서도 웅성웅성하는 소리와 함께 정전이 시작됐다.

 

제일 신난 건 우리 규민이.

(규민이의) 아빠가 잽싸게 켜는 라이터불에 매혹되었다.

정말 불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난 후 얼마간 무서워하는 것 같더니, 할머니가 촛불을 켜주실 때는 촛불처럼 눈을 반짝인다.

 

테레비 소음도 없고, 냉장고 소음도 없고, 구석구석 환하게 여기저기 다 비추던 불이 없으니 식구들이 옆에 옆에 모였다. 규민이는 자기 둘레에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가 둘러앉아 자기만을 바라보니 급속하게 기분이 상승하는 모양, 벽에 생기는 자기 그림자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마구 상승하는 기분에 맞추어 뛸 듯한 춤을 춘다.

그러다가 깔깔 웃고,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돌아가며 뛰어다닌다.

 

그러다 삑삑 다시 전화기가 불을 켜고 냉장고가 웅 돌아가고 불이 타다닥 켜지고 아빠는 전기 들왔다,며 리모콘을 눌러 테레비를 켰다. 고사이 한 골 넣었다고 아쉬워한다. 한 골은 이미 아까 넣었었잖아??!! 그건 옵사이드였어. 나는 못 알아들음. 한 골 아까 넣었었는데.. 그런 옵사이드라니까. 대화가 안된다. 어엉.. 반칙해서 무효가 되었다는 소리인가보다,로 대충 알아듣고 대화 관둠. 그런데 또 퍽 테레비가 나가고 불이 꺼지고 삑삑하며 전화기가 꺼지고 냉장고 돌아가던 소리가 멈춘다. 우리 아빠, 우이 또,하고 탄식하나, 규민이는 으잇,하며 다시 신남.

 

솔직히 나도 신남.

시끄러운 테레비에서 해방.

구석구석 환하여 여기저기 분명히 볼 수 밖에 없었던 눈 앞의 것들로부터 해방.

냉장고, 전화기 끊임없는 소음으로부터 해방.

거기다 촛불은 왠지 낭만적이고 소박하고 따뜻하고 풍성하다.

 

이제 정말 잘 시간이라고 엄마집을 나섰다.

골목으로 나오니 가로등도 다 꺼져있다.

그런데 정말 환하다. 여름저녁 여덟시쯤 된 것 같다. 어둡지만 막 해가 져서 주변 사물이 다 보이도록 환한. 오늘은 보름달인가. 이제야 보름달이 진짜 보름달같네.

보름달이 환해서 옆에 걷는 남편 얼굴과 남편이 안고가는 애기얼굴이 다 보이는 건, 가로등이 다 보여주던 것과 다르다. 왠지 다르다.

한 골목길인데도 오십미터 쯤 지나니 가로등이 켜있다.

달과 별이 비추던 것을 가로등이 대신하니 맥이 빠진다.

달빛과 별빛이 희소하기 때문인걸까.

밤이 되면 불을 켜고 할 일도 많고 많지.

무얼 했던 걸까.

남편얼굴과 아기 얼굴에 닿던 달빛과 별빛이 누에가 짠 명주였다면, 가로등 빛은 싸구려 나일론이란 느낌, 어쩔 수 없이.

지금껏 내 돈과 내 시간과 내 정성을 들여 싸구려로 몸을 휘감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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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직감

이십대, 대학물을 먹고 책 좀 읽은 후부터, 나의 생각과 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가 대충이라도 구색을 갖고있는지에 대해 확인하는, 확인해야한다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었다.

 

누군가 한 번 해준 말이거나,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한 번 흘깃이라도 본 것이거나, 무슨무슨 수치 자료가 덧붙어 있어야 그것은 비로소 생각과 말이 되는 것이었지, 내 직감/직관은 절대 어디 갖다댈 것이 아닌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상물을 나름대로 더 먹고는, 내가 가진, 나름대로 적나라한 사회학적 인류학적 고찰이 단지 누군가 아직 아무 말도 안 해주었고, 신문에서나 어디에서나 흘깃 흘려써있지도 않았고, 무슨무슨 수치로서 증명된 바가 없었기 때문에, 사회학적 인류학적 가치 제로이며, 개인의 소소한 잡념일 따름이라고 치부되기 쉽상인 순간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그 후에, 개인의 소소한 잡념이 진실이 되는 소설도 있었고,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훼미니즘이 있어서, 나는 촌스럽고 각박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의 협박에서 비켜 사는 유연함을 배워갔지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나의 직감과 직관을 인정하지 못 하는 병은 여전하였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가 책이나 소설 디게 많이 읽은 것 같다. 탱자탱자 놀면서 가끔 읽은 것도 내 인생에서는 읽은 것이니 그냥 그렇게 쓴 것임.)

 

그랬던 내가 그 병을 싹 고친 것은, 이 블로그에도 올렸지만, 최장집 교수 덕분이었다.

(나의 직감과 직관을 불신하는 병을 고친 것도, 결국 누군가 유명한 사람의 코멘트를 근거로 하였으니 나도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그 때 내가 무릎을 쳤던 내용은 북한인권문제에 관한 것이 었는데, 최장집 교수라하면 누군가, 북한인권문제라 하면 무엇인가, 그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 속의 인물과 주제 아니겠는가.

 

 

그 때 그 내용을 다시 찾아보라고 하면 실례일 것이고(이게 무슨 옛날 페이지 들춰가며 봐야하는 토지도 아니고),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가자면, 그날 최장집 교수의 발표 제목은 <한반도 평화의 조건-칸트의 '영구평화론'의 퍼스펙티브에서>였는데, 제목 봐라, 제목에서부터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에 살고 죽는 세계가 징하게 느껴진다.

 

논문 내용은 아주 잠깐잠깐 무슨 소리인지 알 것 같기도 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지금으로선 전혀 기억 안난다. 암튼 알수없는 조건과 퍼스펙티브의 논문발표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논문 내용 안에 있던 '북한/북한핵'이란 표현에 대한 시비가 일었다. 최장집 교수의 명확한 대답은 국민학생도 이해할 만한 것이었는데, 말꼬리를 잡는 사람들은 또라이들인지 그것을 이해할 수 없는 듯 피폐한 논쟁을 계속 이어간다. (아, 정말 안기부 사람들한테서 고문받는 사람들 얼마나 괴로웠을까... 또라이의 말꼬리 언쟁은 잠깐 들어도 진저리가 나는데..) 그러고나서 '북한인권문제' 질문이 있었다.

 

최장집 교수의 대답은 이랬다.

정치는 매우 다이나믹한 것이다. 인권문제의 개입은 그 자체가 될 수 없고, 반드시 정치의 일면으로서 위험한 것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명쾌한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지 못했다.

북한/북한핵 말꼬리를 논리와 사실과 수치의 이름으로 지지부진 끌어가던 또라이들 위에 빛나던 그 명쾌한 직관이란!!!!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으로부터 나오는 직관과 직감의 세계, 나는 그제서야 그 세계를 제대로 보게된 것이다.

그것이 맞다.

사람의 오래묵은 판단력,지혜, 거기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에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라니.. (그리고나서 미안하다, 우리 엄마, 엄마 말이 옳아요. 잘난 척한 딸이 죄인.. )

 

 

'오래묵은'이란 표현을 썼다고, 노인네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다섯살 먹은 아이의 직관과 직감도 다섯해나 묵은, 오래묵은 판단력, 직관, 직감이다.

 

그것이 진실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듣는 이의 오래묵은 판단력에서 나오는 직관과 직감이다.

 

 

사람들이 한 입으로 공권력 타도를 외칠 줄 알았던 나는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다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보상금 문제라는 얘기부터, 행정법상 행정권 행사가 당연했다는 소리, 시민단체가 반미선동했다는 얘기 벼라별 소리가 다 있다.

이것이야말로 논리/과학/사실/학문적 배경이 독이 되는 경우 자체다.

그렇다고 군대 보낸다는 게 말이 된다는 말인지......

 

그런 말을 떠드는 자, 그곳에 직접 가서 얼마나 논리/과학/사실/학문적 근거를 찾았는지 묻고싶다. 평택의 ㅍ에도 가지 않은 자들일 것이다. 청와대와 국방부 윤 데스크가 전화 한 통 통화한 것처럼.

 

 

한명숙 총리, 옛날부터 왠지 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말 왕재수다.

정당한 공권력 행사에 대해 적극적 폭력행위를 한 경우에 대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거쳐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라니... 이 사람, 박근혜야?

사람들이 절대자처럼 할렐루야 추종할 때 무언가 구리다고 느꼈던 내 직감이 맞았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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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ve peace a chance

달군님의 [대추리를 지키기위해 블로거가 할 수 있는 일들] 에 관련된 글.

몇 십년 묵은 저 지루하고 지루한 가사가 아직도 유효하다니....

 

 

아침에 아이 손을 잡고 어린이집으로 가려고 대문을 열었다가 대문 앞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추리 오늘 병력 투입"이 제목인데, 제목 위 사진에는 한 농민(여자?)의 약간 흔들린 촛불 집회 사진이 있었다. 그 농민의 주름진 이마, 주름진 입가, 두껍고 꺼칠한 손, 흔들리는 촛불이 비친 푹꺼진 눈동자....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얼굴은 누구나 다 촌스러운 내 엄마같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사람 앞에서 나는 항상 객관을 잃는 심정이 되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 밥 먹지 말고 컴퓨터랑 핸드폰만 먹고 사시오,하고 말하고 싶다.

 

벌컥 눈물이 나왔고, 어이쿠,하는 소리가 나왔다.

규민이가 왜애?하고 물어서, 몇 초간 무어라 말해야하나 유난히 우왕좌왕했다.

결국, 규민이 학교에 많이 늦어서...하고 말았다.

노무현은 두고두고 규민이에게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대통령이 될 것이다.

나중에 규민은 그 이유를 알겠지.

전두환을 그렇게 기억하듯, 노무현을 치욕스럽게 기억할 것이다.

 

 

오늘은 사실, 나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이다.

오월 첫 주가 잠깐 방학인데, 말이 좋아 일주일 휴가지, 월요일 노동절, 금요일 어린이날, 규민이 어린이집 안 가는 이틀 빼면 남는 날은 고작 화/수/목 딱 3일. 3일의 금쪽같은 휴가 마지막 날인 것이다.

 

이 3일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무한대천대 (규민이가 가장 많은 것을 표현할 때 쓰는 수)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뒤로 하고 폭탄을 맞고 또 맞고 또 맞아 너덜너덜해진 집을 원상복귀해야하는 의무가 휴가 중에 버티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쓸고, 닦고, 버리고, 다시 닦고, 서랍을 열었다 닫았다, 물건을 이리로 저리로, 설겆이 4번, 빨래 3번, 이불 3장 빨래 하느라 멀미와 진저리를 반복하며 화요일을 보내고,

그동안 엄마 얼굴을 덜 봐, 아침에 눈 뜨자 여전히 자기 옆에 있는 엄마에게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기 작전을 피우는 규민에게 나도 못 이기는 척 넘어가 규민과 하루종일 뒹구느라 수요일을 보낸 나는

목요일은! 목요일은! 하고 벼르고 벼르고 있었던 것이다.

 

목요일에 나는,

소설을 한 권 봐야하고, 영화 한 편을 봐야하고, 수업준비를 한 달치 해놔야 하고, 밀렸던 교육자료를 훑어야하고, 도서관에 가서 빈둥거려야하고, 꽃과 풀 사이 산길을 거닐어야 하고, 이제 봄이 되어 딱 입기 좋은 때가 된 내가 만들다 만 치마를 완성해야하고, 작년부터 구상만 하던 원피스 하나를 만들었으면 좋겠고, 기타 연습을 해야하고, 짧은 ** **를 하여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이 터진 것이다.

으악 씨발놈(욕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 것이지).... 

 

나는 먼저 열린우리당에 전화를 걸었다.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하고 연신 굽신거리는 민원담당 당직자.

그러면 그 당에 있으면 안되지. 이제 열린우리당은 끝장이오. 2번 잡으면 정권이 넘어간다더니 정말 영락없네. 하긴 열린우리당이 무슨 관련이 있겠오.

 

나는 청와대에 전화를 걸었다.

청와대는 전화도 직접 안 받는다. 어떤 번호를 눌러도 자동응답기가 답한다.

하는 수 없이 민원청구 번호를 누르고 녹음기에 대고 하소연을 했다.

지금 청와대에 전두환이 있는지, 노태우가 있는지, 박정희가 있는지 좀 알려달라, 내 전화번호는 010-****-어쩌구다. 이름은 뭐다. 꼭 전화해라. 딸이 계속 묻는데 무어라고 할 말이 없어 그런다. 딸에게 무어라고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너무 창피하다.

 

다시 한명숙 국무총리실에 걸었다.

얼마전에 신문에서 장관회의를 열어 대추리 논의를 했다더니 그때 탱크보내자고 결의했소?

자기들은 아는 바 없으니 국방부에 걸어 문의하란다.

아니 국방부 장관보다 국무총리가 하급공무원이란 말이오?

그걸 국무총리실에서 모르고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합니까?

모르니까 국방부에 전화걸어보시라니까요. (전화 뚝)

그래, 니들도 쪽팔리니 나한테 화풀이구나....

 

다시 민주노동당에 전화를 걸었다.

(뜬금없이) 평택에 가려면 어떡하지요?

네, 일단 주차장에 모였다가 이동하시구요. 지금 워낙 유동적이라 장소 어디다, 라고 말씀 드릴 수가 없네요. 초등학교에 많이들 계시구요.. 일단 가보시면 판단하실 수 있을거에요.

(정말 뜬금없이) 나는 눈물이 줄줄 나왔다.

제가 너무 슬퍼서 창피하게 이렇게 전화를 하네요. 이해해주세요.

네, 이해해요.

사실 저는 애기엄마라서 평택에 가기 힘들어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민주노동당 밖에 믿을 데가 없네요.(이제 정말 감정적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저희도 열심히 하려고 해요.

 

이 짓 하느라 오전 다 보냄. 금쪽 같은 하루.

다시 어제 먹은 밥 설겆이, 만 이틀 사이에 다시 폭탄 맞은 집 쓸고 닦기, 남은 빨래에 오후 3시간 반을 보냄. 금쪽 같은 하루.

그리고 남은 시간 인터넷에 들어와 여기저기(청와대, 국방부, 총리실, 열린우리당.....) 죄다 돌아다니며 게시판 글 쓰느라 한 시간 여 보냄. 아아, 금쪽 같은 하루.

 

 

그러나 휴가가 무슨 상관이랴,

밤새 내 세금으로 먹고 산 공무원과 군인들이 나에게 총을 겨누고 다가왔는데...

  (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는 경찰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한겨레 신문에서 가져옴)

 

 

제발 평화에 기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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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민이 그림 자랑

2006년 2월 작품

<윙크하는 언니와 그녀를 바라보는 노랑머리 오빠>


 

 

2월 작품 하나 더

이것은 규민이 붙인 이름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보석죽염강천, 돌멩이 강천, 홀라이 강천(홀라이강천은 쑥스러워 말을 못하고 있음)>

대체 이 이름들이 무슨 뜻일까? 나도 몰라.

 


 

 

최근 작품(4월)

<공주와 오빠>

(옆에 오빠를 그리던 중 남자인데 속눈썹을 그리는 바람에(남자는 긴 속눈썹을 그리면 안된다) 망쳤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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