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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한 이야기임.
97년도에 지금의 남편을 만난지 얼마 안되었을 때였다.
그에게 거의 한 눈에 반했던 나는 그 남자와 어디든 싸돌아다니고 있던 때였는데,
그 무렵 그 남자는 하이텔(이란 이름 정말 오랜만이다)에 '록키호러픽쳐쑈 소모임'을 만들어놓고 거기 사람들(어차피 원래 술먹던 사람들)과 술먹고 노는 일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록키호러 픽쳐쑈'도 그남자 덕분에 보게되었군.) 어느날 그 소모임의 한사람이 제안하여 홍대앞 어느 까페에서 에스에프영화 상영회를 하기로 하였다. 불과 (라고 써놓고 보니 어느새 거의 10년전이군) 97년도나 된 시절이지만, 그때에는 인터넷도 그리 쓰이지 않았었고, 디비디란 것도 없어서 누군가 희귀한 비디오테이프를 가지고 있으면 사람들 모여 까페에서 상영회하는 것이 소소한 재미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소소한 게 아니라 나름 큰 재미였다. 지금보다 훨씬. (하여간에 다시 한 번 갓댐 디지털)
약속 시간에 딱 맞춰 그 까페에 들어섰는데, 어두컴컴하고 흰 커텐같은 거에 틀어진 영상에 사람들이 벌써 집중하고 있었다. 간신히 그 남자를 찾았더니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바에 앉아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열화와 같은 반응이구나,하며, 그 사이를 비집고 그의 바로 옆에 앉아 그 영상이란 것을 쳐다보니, 어랍쇼, 축구였다. 아니 야구였었나. 하여간에 무슨 경기였는데 한일전이었다. (그래도 그때에는 대한민국이라고 안했다.) 지루해죽겠는데도, 그떄그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아, 어, 으,하는 탄성에 나도 동반해주며 경기는 끝났고, 까페에 불이 켜졌다. 상영회 시작하기로 한 시간이 훨씬 지나있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 볼 영화 보자,고 사람들이 우르르 담합할 줄 알았다. 근데, 사람들은 우르르 까페 밖으로 나갔다. 죄다 축구인지 야구인지 보러 들어왔던 사람들이었고, 에스에프 상영회에 실제로 참석한 사람은, 나와, 내 남자친구와, 모임을 제안했던 남자와, 그 남자의 추종자로 보이는 서넛이 전부였다. 애게.
그래도 우리는 영화 잘 보았고(지금은 토성의 어쩌구 밖에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당시 그래도 꽤 오래동안 쇼킹한 그 줄거리를 되새겼던 것 같다.), 영화 끝나고 나름 토론회 같은 것도 했고(상영회를 제안했던 남자가 에스에프계 거물인 줄 그 토론회에서 알아보았음. 그 남자가 하는 소리가 뭔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 들었었다), 하여간에 즐거웠다.
내가 이 날의 일을, 그 에스에프 영화의 제목도 까먹은 지금껏 이렇게 기억하는 이유는, 이제부터다.
그 나름 토론회가 대충 끝나고 나와 남자친구는 까페에서 나왔는데, 무슨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아까 보았던 축구인지 야구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나는 축구이건 야구이건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걸 내색하면 이 남자에게 점수를 깎일라, 그냥 스물일곱(내가 그땐 스물일곱살이었다!)해 익힌 눈치대로, 맞장구를 치려하고 있었는데, 이 남자 하는 말이 나에게 복음이었던 거다.
그 -- "너 아까 되게 재미있어하는 거 같던데."
나 -- "아니 그냥....."
그 -- "난 한국져라, 일본이겨라,하고 있었는데."
내가 재미없으면 그냥 재미없다고 해도 되는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었다.
신성불가침 타이틀인 양 구는 한일전, 대학때 그 숱한 경기전들, 아, 거기에 침을 뱉어도 되는거구나.
나는 그때 스포츠를 스포츠로 보는 진정한 깨우침을 얻었다.
거기에 학교가 붙고 나라가 붙는 게 웃기는 짬뽕이구나.
정말 웃기는 짬뽕이다. 그러면 온국민 밤낮없이 축구야구만 열라하면 되겠네.
더더군다나 공식적 여자경기는 없는(지금은 있나?) 거면서.
하여간에 결론은 난 축구, 야구, 싫다, 재미없다.
얼마전 한겨레의 김어준 칼럼에, 김어준이 오바 좀 하자면서, 한국야구가 미국 야구이겼으니, 한국이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얘기인 듯한 글을 썼다. 무슨 주장인가 싶어 읽어보려 했다가, 첫 줄 부터 내가 알아들 을 수 없는 경기용어라서 관둬버렸다. 작년 언젠가, 내가 좋아하는 코메디언 김승대가 개그맨 기획사 문제로 뉴스가 되었을 때 김어준이 썼던 칼럼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 확 휀이 되어버리는 바람에 김어준 칼럼을 꼬박꼬박 읽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황우석부터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었다가(황우석에 대한 기사와 뒷얘기를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지않는 한 김어준의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는 듯한 인상을 받았음) 갑자기 야구 경기 이긴 것을 미국 이겼다고 오바 좀 하자는 건, 으흠....
김어준처럼 '공식적으로' 전제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언론사들이 이미 오바하고 있다. 시청앞 광장에 왜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건 왜 카메라로 찍고 있으며, 왜 뉴스 앞대가리 다 경기이야기로 채우는냐 말이다.
나는 당신들이 외치는 대~한민국이 싫다.
새만금도 그렇고(그래도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다), 에프티에이도 그렇고, 비정규직법 통과된 것도 그렇고, 최연희인지 뭔지가 국회의원인 것도 그렇고, 애들은 성추행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도 그렇고, 평택에 들이미는 미군은 어떡할꺼며 또또..........................................
야구, 볼 생각도 없었지만, 지금은 한 집에 같이 사는 그 옛날 그 남자는, 겐이치로처럼 야구를 '우아하고 감상적'이라고 생각('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도 내게는 어려운 소설)하는 야구 휀이라서 우리집 티뷔에도 열두시부터 야구가 중계되고 있었던 바람에 보지 않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나는, 정말 마음 속으로, 한국 져라, 일본 이겨라, 하고 응원했다.
여기서 이기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오바한다. 제발 져라.
원래, 하지말라는 것이 더 재미있고, 어른들 하는 짓은 다 재미있어 보이는 것이다.
우리 딸래미는 빨래가 너무 재미있다.
조그만 손으로 조물락조물락, 입고 있는 바지 다 적셔가며, 비누곽을 물로 채워놓으며, 화장실 바닥을 비누끼로 온통 미끌미끌 만들어가며 빨래를 즐긴다.
오늘, 빨래를 하다가 흥이 난 규민은, 엄마, 솔 꺼내줘,하더니 쓱쓱 빨래비누 몇 번 긁고서 바닥을 싹싹, 변기 속도 싹싹(변기 안으로 거의 들어갈 자세), 목욕 의자도 싹싹, 삶는 통도 싹싹, 뭐든지 싹싹 닦는다.
노래를 해가면서('봄은 언제 오나요?'), 작은 엉덩이를 바삐 돌리며, 샤워기를 잡고 물을 틀었다가 껐다 하면서 솔을 놀리는 폼은 제법이지만, 사실 청소는 커녕 뒷정리 할것만 산더미로 만들어놓는 것이다.
"우리 딸, 힘들지 않아? 왜 이렇게 열심히 빨래하고, 청소해?"
대답도 능청스럽게 잘 한다.
"으응, 엄마 사랑하니까. 엄마 도와주는 거야."
3월1일, 입학식.
엄마아빠 다 오시라, 이날 입학식을 한다고 함.
시간 외 근무는 절대사절이고 싶은데...
전날부터 무대(!)세팅이며, 식순 정하고 쓰고, 사회자 뽑고 예행연습을 한다만다, 거의 결혼식 수준. 그러나 실상은, 각 교실에 떠도는 커텐자락 같은 천쪼가리 모아 바닥에 깔고, 꽃잎 뿌려놓고, 촛불 켜놓고, 색상지 오려 환영합니다 글자 만들고, 조잡유치한 학급 학예회 수준.
신입생 한명 한명 엄마나 아빠, 혹은 둘이 손을 잡고 등장.
아이에게는 화관이 씌워져있다. (겨울이라 꽃 한다발을 사서 만들었지만, 작년 9월 편입식에서는 주위에서 칡넝쿨 캐고 꽃 꺾어 만들었다. 이거 만들기가 손품도 만만치 않고, 바뻐죽겠는데 앉아서 이짓거리나 하고 있냐 싶어서 이번부터는 반드시 화관을 회수하기로 하였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이름표를 달아주고, 촛불을 켜서 쥐어준다.
한명한명 그렇게 입장한 후, 한명한명 엄마나 아빠가 아이에게 선물을 주고(꽃씨와 화분) 무언가 덕담을 한 마디 한다.
다음에는 담임이 선물을 주고 덕담을 한다.
사람들도 버글버글(신입생 가족들과 재학생 가족들)하고, 비좁은 강당과 초라한 학교 시설이라는, 전체적으로 후진 배경에서, 부모와 선생의 선물과 덕담, 아이의 긴장된 행복한 표정이, 그런데 극적이고 놀라운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엄마나 아빠의 덕담은 상투적이고도 상투적이다.
"건강하고, 행복하거라", "푸른 나무가 되길 바란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거라."식의.
그런데 놀랍게도, 그 말에 배어있는 진심, 정말 마음 깊숙한 곳으로부터 올라나왔을 그 진심이 가슴을 울리고 뭉클하게 하였다.
곳곳에서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또 1학년 담임의 선물.
1학년 선생님은, '이제 이곳에 발을 잘 디디라'는 의미로 버선을 준비했다. (수공예 선생님이 직접 만들어서 모양도 앙징맞고 예뻤다.)
아이 하나하나 선생님은 그 버선을 신겨주었다.
아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아이 신발을 벗겨 버선을 신기면서 그 아이 발을 만지게 된다.
이상한 모습이었다.
저런 선생님이 있던가.
선생님의 그런 모습 자체가 보고있자니 기기묘묘하게 극적이었다.
아이들은, 기기묘묘하게 감동을 준다.
어른도 생각하지 못 했던 배려, 웃음, 시선.....
개학 후 며칠, 아이들을 만나면서 나는 몸살이 났다.
아이들과 만난다는 것은 더이상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덜컥 부담이 되었나보다.
직장에서는 적절하게 웃고 적절하게 말하고 적절하게 대응하고 적절하게 관심과 무관심을 섞고 적절하게 처신해야하는 사회의 법칙이 이 곳 직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또 이곳에서도, 어른 대 어른의 공간; 교사 대 교사의 공간, 부모 대 교사의 공간에서는 위의 사회의 법칙이 다시 칼날처럼 엄숙하게 등장한다. 어른이란 정말이지 비굴한 존재다.
나는 직장에서도 거짓말을 할 수 없고, 집에 돌아와서도 규민을 만나면서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곤란한 세계에 살게 되었다.
규민을 보면, 나는 다시 새직장에 출근이다.
아침에 아이가 깨기도 전에 엄마 먼저 일을 나가야 하고, 삼일절에도 나가야하고, 일주일에 몇번은 늦어야하는 엄마가 너무나 미안하다.미안할 수록 나의 곤란한 세계는 혹독하다.
참, (입학식에 쓰인 화관은 아이들이 절대로 벗지 않겠다고 하여 처음의도와는 다르게 도저히 회수 불가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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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감입니다.^.^ (글구, 대법원도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노동자들은 이미 숱한 경험으로 알고 있답니다.ㅠ.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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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제 꿈이 '주말에 스포츠 중계 안하는 세상에서 사는 것'이었죠.일요일엔 애들하고 놀고있는데 엄마가 오셔서 미장원에서 동네 아줌마랑 모여서 봤는데 6-0이로 졌다고 막 안타까워하고 계시더라구요. 그런데 남편이 들어와서 그 얘길 듣고 "아이 참 시원하다" 해서 대략 어색한 분위기가...tv를 켜면 야구얘기밖에 안하고 라디오 토론이라는 게 병력특례갖고 왈가왈부..어쩌면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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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은 좀 정확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함. (찬반 논쟁에서는 좀 비켜나 있는 판결인 듯.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긴 했지만...) 난 이놈의 "대~한민국"이니, 애국심이니 하는 게 저열해서 얼굴이 달아오를 지경이지만 좋아하는 선수들이 한 팀으로 나와서 경기하는 것은 너무나 흥분되었음. 물론 이기거나 지거나 상관없고. (져라! 하는 사람들도 이해하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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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 선수들 입에서 "국가가 불러서......"하는 말이 나오면 아이고, 차라리 눈을 감아야지, 하는 심정인데, 야구선수에게 너무 많이 바랄 수는 없는 일이라...... (이건 야구선수에게 너무 무례한 말인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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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그 록키호러픽처쇼 소모임 대장이 고*희 아니었냐?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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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97년도에 너랑 만난 네 낭군이 소개해주신 회사의 회장님이 잡지 원고료를 반으로 줄이라는 바람에, 혼자서 매달 130매 써대며 편집도 해야하는 초유의 사태가 다음달부터 예상된다. 머리가 터엉 빈 듯. 다음달 내가 갑자기 사라지면, 국외로 도피했다고 생각하려무나.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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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감비; 그러게요. 대법원은 다를 줄 알았다고 감히 지껄였습니다.to 알엠; 저도 순진한 우리엄마까지 울궈먹는(?) 스포츠가 싫어요.
to 지기; 대법원 판결 좀 정확히 들여다보았음. 찬반논쟁에서 비텨나있다고 생각하지 않음. 원초적 자세/아이디어의 문제 아닐까.(당신꿈이 야구선수이면서... 너무 무례한거야.)
to 올모; 마지막 댓글보고 거의 거품. 그 회장님 정말 말년에 곱게 사시지. 고*희는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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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폭 빠져서 눈이 멀어버린 스물일곱의 이유를 생각하며 츠츠츠... 혀를 차고 있어.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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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멀은 게 아니라, 현안이 되지 않았어?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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쯔쯔쯔....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