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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답 : '이'
전수찬이 얼마전 규민에게 '이'字를 가르쳐주었다. (선행학습 시키는 것 아님. 영리한 딸내미를 보고 부모가 선행학습 시키는 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단지 딸내미가 영리해서 그런 것임) 엄마나 아빠가 글씨쓰는 것을 보고 흉내내기를 하는 규민에게 재미있으라고 가장 쉬운 글자(엄마이름에도 있으니까 친근하기도 하고)를 가르쳐준 것이었다.
위 사진은 규민이 만든 작품이다.
'방울에다 볼펜을 끼웠네'라고 평가했던 어른들에게 규민의 작품 설명 ; "'이'자 만든거야."
오호라, 신퉁방퉁 딸내미.
딸래미와 놀다가 장난을 한 번 쳤다.
동그랗게 말아놓은 양말을 옷 속에 집어넣어 '찌찌 생겼다'하는 장난.
내 딸래미는 아직 다섯살 밖에 되지 않았다.
엄마 찌찌를 애기였을 때의 친구처럼 느끼는 딸래미와 그냥 그런 식으로의 찌찌 장난을 할 생각이었다. 좋아하는 인형을 애기라고 하고 젖을 물리며 놀 수도 있겠고...
그런데 나는 양말 말아놓은 덩어리를 찌찌라고 옷 속에 밀어넣었다가 아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다섯살 아이 얼굴 하고 불룩 튀어나온 가슴이 전혀 뚱딴지 같지 않고 어떤 '그림'을 자연스럽게 연출해 놓는 것이었다.
그 그림은, 초등학생들 사이에 유행했던 캐릭터, 그래서 아동용 종합장이나 필통이나 스티커 등등에 수도 없이 찍혀있는 캐릭터, 베리베리 뮤뮤나 마법전사 ****(이름을 까먹음), 이누야샤의 누구누구(이름 또 까먹음) 바로 그것이었다.
이제보니 그 캐릭터들의 이미지가 바로 이것이로구나.
얼굴은 십대, 아니 십대 중에서도 초초반, 아니 십대도 될까말까에 가슴은 c컵 쯤 불룩.
바로 딱 이것이었다.
으악 구역질이 나왔다.
이런 이미지는 누가 만들어놓는 것일까.
초등학생들이, 얼굴은 자기 또래의 친구를 원하지만 가슴은 불룩해서 엄마같은 여자가 좋다고 하는 것일까.
앳된 얼굴이 유행이네 어쩌구 하던데,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얼굴이 악세사리인 수준을 넘어, 나이는 또 왜 무작정 어려야 되는 걸까.
얼마전 민씨 모녀의 자살미수 때문에도 이 나라의 맹목적 배타성, 주변으로 밀려나면 그대로 추락이고 마는 맹목적 중앙집중형 배타성 때문에 비참한 기분이었는데, 이 나라가 집중하는 그 '중앙'은 정말 재수없게 유치하고 질이 낮구나,하는 생각이다.
하루, 내면이 성장했다고 고요하고 평화롭다가 바로 그 다음날 입에서 욕만 튀어나오니, 내가 아직 성장이 덜 된거야, 누가 내 성장을 막는거야!!!!
한때 카메라에 집착했던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내가 아니라 렌즈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준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내 앞에 카메라를 매달고, 어딘가에 렌즈를 갖다대면서.
나는, 사진이 아니라, 그 착각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성장하면서 사진을 잊었다.
사진을 잃어 아쉽지만, 다행이라면 다행, 나는 성장하였다.
내가 찍은 사진을 어떻게 '전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잠시 나를 착각하게 해준 기특한 렌즈의 결과물인데- 에 집착하면서 스캐너를 샀었다. 없는 돈을 쪼개쪼개 반드시 사야만 했었다.
스캐너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잭 한 쪽이 떨어져나간지 오래됐다.
이쑤시개 보다 작은 쪼가리가 부러진 건데, 그럼으로써, 스캐너는 아주 무용지물이 됐다.
그런 스캐너를 가지고도 평화롭게 산지 몇개월이 넘었다(일년이 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곱살에 영구치를 얻고, 열네살에 성호르몬을 얻고, 스물한살에 방탕을 얻고, 스물여덟에 독립과 살림을 얻고, 이제 서른다섯. 구불구불 칠년마다 돌아오는 나의 자아는 지금 성장을 얻고 있는 듯. 그것이라면 정말 좋겠다.
설겆이 하면서는 라디오가 제격.
씨디를 고르는 것도 설겆이 전초 행위로서는 너무 과하다.
그저 전원만 켜면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하는 라디오가 최고의 설겆이 친구.
나는 10시에 <김갑수의 아름다운 당신에게>부터 11시 <신지혜의 영화음악> 씨비에스 고정, 12시 이후엔 케이비에스 클라식 에프엠 (12시 클라식 방송에는 한국 근대 소설가나 시인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줌), 한동안 이 시간의 설겆이를 양도받은 남편은 그냥 이비에스만 냅다 틀어놓는 쪽이라함. 한영애가 진행하는 음악시간이 끝나면 무슨 교육상담이 있고(상담프로그램은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거 같음), 또 무슨 (방송대) 강의 같은 것이 있고, 그거 끝나면 어떤 음악하는 사람이 게스트를 한 명 초청해서 마구 수다를 떠는 프로가 있는 것 같고(왕수다판), 또 소설가 한강의 오디오북 어쩌구하는 프로(한강 목소리 너무 깜).. 이걸 그냥 다 듣는다고 한다(그의 의외의 느긋함?).
어제는 11시 쯤 내가 설겆이를 하고 있었는데, 라디오 주파수가 도무지 잘 맞지 않아 그 잡음을 피하려고 어디 잡히는 데 아무데만 나와라하고 있었다.
에프 알 데이빗의 <워즈>가 잡혔다. 음, 뭐 들어줄만 하지. 옛날 생각도 나고.
노래가 끝나고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김기덕.
이 양반 장수한다.
사랑사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려는데 말이 안나온다, 이런 노래가 워즙니다.
여전히 김기덕식 강의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4*위, 스모키의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엘리스!!!!
이러고 있는 거다.
아니, 김기덕 식 강의가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이란 오백년 묵은 챠트를 아직도!!!!!
그는 이 챠트만 벌써 몇년째 하고 있는 것일까.
몇년 째 거기서 거기 팝송을 틀면서 몇년 째 똑같은 썰을 풀고있는 저 대단한 집념.
엘리스네 집에 어느날 리무진이 들어갔어요. 죽었다는 거죠. 사랑하는 엘리스가 죽었다는 겁니다. 이런 노랩니다, 이게.
하면서 이어지는 비지스의 할러데이.
...정말 이 노래를 틀어달라고 했는지, 스콜피언스의 할러데이를 틀어달라고 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있었던 경찰이 아닌 다음에야 그걸 어떻게 확인하겠습니까. 근데 그냥 비지스의 할러데이를 틀어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노래가 히트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41위까지만, 내일은 40위부터..
김기덕의 저 마구리가 먹혀드는 방송계란 나로선 알 수 없지.
그 나물에 그 반찬도 도가 있지, 이십년전에 끓인 국 한 냄비를 물만 더 붓고 내내 계속 끓여내놓고 있는 저 뚝심은 무얼까.
사람이란 원래 무슨 챠트 씨리즈를 좋아하는 본능을 갖고 있는 것인지도..
나도 베스트 어쩌구하는 거 좋아하잖아?
아무튼 김기덕에게는 두손 두발 다 들었다.
언제까지 하는지 한 번 보자.
이왕지사 내년에도 십년후에도 이십년후에도 계속 하시길.
그렇게 되면 오호, 한국인이 좋아하는 팝송 챠트계에 독보적인 기록이 되시겠다.
뭐야, 세상에, 어제 신문 보다가 기가 막혀 울음.
마흔 된 여자가 딸 죽이고 자기도 죽으려다가 딸이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바람에 다 실패하고 말았다고.
이영표가 일부러 먼 길 돌아 드리블 연습하며 가슴에 품는다는 대한민국이 이런 나라다.
자칫해서 주변으로 빠지면 되돌아 살아올 길 없는 황천길 되는 나라.
마흔몇살이라는 민씨 그녀, 대학도 다녔던 엘리트에, 왠만큼 사는 집 자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오토바이에 한 번 치였던 것이 시각장애인으로 빠지는 삐걱이었고, 서른 즈음에 연애했다가 임신했을 때 낙태하지 않고 애 낳은 것이 미혼모로 빠지는 삐걱이었다.
내가 그녀가 아니될 것이란 보장이 어디있는가.
배 아프지 않는 약이라며 애에게 수면제 먹일 때 어미 심정이 어떠했을까.
딸은 보호소로 보내지고, 어미는 정신치료원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해발 5만 피트의 상처를 치료하려면 정신치료원이든 어디든 가서 쉬어야겠지만, 정작 정신치료원에 보내져서 정신치료 좀 받아야할 사람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며 정치입네, 나랏일하네하고 있는 데 정말 멀미가 난다.
그리고 바로 하루 지나고 오늘은 책을 보다가 심폐를 찌르는 곳곳의 문장들 때문에 기절함.
아이리스 머독의 <잘려진 머리>, 왜 이리 재밌는 거야. 진작 볼걸. 마틴 때문에 웃겨죽겠네.
오늘의 숱한 명명문장들 중 하나: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은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사람됨이 밖으로 흘러나와 형성된 모든 것을 함께 잃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하여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경우, 우리는 그렇게나 많은 것들, 그림들, 시들, 노래들, 장소들도 함께 잃게되는 것이다. 단테, 아비뇽, 셰익스피어의 노래, 콘웰의 바다, 그 방이 그대로 안토니어였다.
흠, 이것을 보고 문득 얼마전에 보았던 영화 <이터널 썬샤인 오브 스폿리스 마인드>가 생각남.
이 영화, 짐 캐리와 케이트 윈슬렛 두 배우 덕분에, 그리고 (올모여사가 지적했던) '날고 뛰어봤자 운명의 짝은 돌고도는 윤회의 동일자'란 사랑에 대한 냉소(난 영화보다 여사의 이 표현이 더 좋았던듯)적 자세를 감상하는 맛이 나쁘지 않았으나, 찝찝하게 뒷통수에 남은 것, 바로 기억의 말소에 대한 부분.
대상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고 그게 그렇게 말끔하게 되나. 대상과 관련된 일기, 사건, 장소, 타인과의 대화 등등은 어떡할건가. 그것까지 지워버리면 남은 기억은 너덜너덜해져있을텐데.
<메멘토>도 그렇고, 나는 기억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어쩐지 대충 그렇다고 치고 넘어가자는 것 같아 보고나면 좀 민망하다.
그래서 야심차게 <이터널 썬샤인> 비디오를 빌려본 후 괜히 머쓱해져서 영화 보기가 쭉쭉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 아무래도 나에게 있어 영화는 막을 내린 듯. <청연>, <그대는 내 운명>, <사랑니> 등등 보고싶어 좀이 쑤시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 싶게 맹맹하다. 이것도 청춘의 막이 내리고 중년의 막이 오름의 한 증상인지 싶다.
하여간에 민씨 모녀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다.
그녀들을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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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라, 신퉁방퉁. 우리 고은이는 오늘 "엄마" 라고 했어. 생후 93일째라네. 더 신퉁방퉁하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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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야, 자기 딸래미 자랑하고 있자나.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