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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은 새만금 막아서 농사지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 없다는 기사를 본지 만 몇 시간 만에 전북도청 팡파레 울리고 경사났네 잔치 벌렸다는 기사.
그치, 원래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백성들을 살핀 적 있던가.
전북도청 팡파레 울렸다는 기사가 실린 신문엔 그 어디에도 일반인의 평/인터뷰 한 꼬다리도 없고. 그냥 전북도청이 팡파레면 그 아래 백성들도 따라서 팡파레라는 식?
그런데, 그 신문에서 더 가관인 건, 고등법원의 판결 기사 중
"식량자주권을 염려하는 정부의 손 들어"줬다는.
이런 개똥 같이 웃긴 얘긴 또...
쌀시장 개방하며 팔아먹은 식량자주권을, 엉덩이에 모자 씌웠다고 얼굴이라고 들이밀면 어쩌시나.
어렸을 때 이렇게 앞뒤 안 맞는 어른들의 큰소리를 들으면 나의 생각; 그래도 무언가 내가 이해못하는 큰 뜻이 있나보지. 그래서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결정한 것이겠지. 나도 어른이 되면 그걸 이해할 수 있겠지. 그걸 이해하면 나도 세상을 알 수 있겠지.
(지금 보니, 아주 정직하고 올바르고 튼튼한 아이였네. 그런 아이가 이렇게 음침하고 불온하게 되다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러나 역시 '직관'이 옳다.
처음에 딱 아니라는 느낌이 들면, 그게 맞는 것이다.
나는 아직 덜 성숙한데다, 여자라는 소수자 시각을 벗어날 수 없는데다, 온통 컴플렉스라서 내 직관을 믿지 않으려 한 세월이 길었지만, 결국 직관이 옳았다.
(얼마전 세계문학포럼에서 최장집 교수의 말을 듣고, 이 컴플렉스를 벗기로 용기를 냄)
아니면 아닌 것이다. 구리면 구린 것이다.
새만금 갯벌막아 농사는 왜 짓느냔 말이지.
농사 지을 땅이 없어서 못 지었냐.
식량자주권 때문이라니.
입 벌려 뱉으면 다 말이냐.
대학교 때 뜬금없이 동네 피아노 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었다.
피아노치기를 그만두고 만 십년이 훨씬 지난 뒤였다.
나는, 내가 음악과 미술에는 젬병,이라고 낙인 찍고 살아왔었다.
미술은 정말 쪽팔릴 정도로 못했고, 음악은, 사실 음악은 내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못 한 것도 아닌데, 시험 공부 하기싫어 그냥 시험봤더니 필기시험이 40점대(두개 중 하나도 못 맞힘, 이렇게 음악상식이 없다는 것 자체가 꽝이라는 증건가...)이고 나니, 실기시험을 아무리 잘 봐도 이미 바닥 점수로 결판이 난 것이었단 말이다. 그리고 노래를 내가 그렇게 못 하나? 내가 듣기에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암튼 나는 '듣는' 음악과 '보는' 미술에 나의 인생을 한정하고 살아왔었다. (사실 이것도 그렇게 풍부하고 심오하게 즐기는 편도 아니다. 오히려 얄팍하고 경박하고 단순하고 무식한 편이지.) 그래도 뭐 살기 불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때때로, 대학교 때 뜬금없이 동네 피아노 학원에 오만원 들고가 등록해야만 했던 때와 같은 그런 순간이 오곤 했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나의 인생은 참으로 가난했다.
나는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르고, 무언가 떠올랐다고 오선지에 끄적거려볼 줄 모르고(무언가 떠올라서 흥얼거린 적은 있었지.), 붓을 들고 색을 골라 펼쳐 보일 줄 몰랐다.
그러나 오만원 들고 등록한 동네피아노 학원에서는 내가 생전 듣도보도 못한 것을 요구했다(물구나무서고 피아노치기 같은 걸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즐기기 전에 질려버리고 학원에 가지 않았더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또 그로부터 거짓말처럼 만 십년이 훨씬 더 지났다.
올해는, 기타치기를 한해소망목록으로 올린 해였다.
때때로 터지던 갈망이, 이제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다(그게 젊음이던, 인생이던)는 조바심 때문인지 시시각각 터졌다. 아니, 그것은 시간이 별로 남지않았다는 조바심 떄문이 아니라, 나의 인생이, 혹은 누구나의 인생이든 인생이란 것 자체가 사실은 원래부터 유희가 원천근거이기 떄문이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말하기 쪽팔리게 나는 한 번도 기타 배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것도 내가 스스로에게, 직접하는 음악/미술의 문외한으로 낙인찍은 불행한 결과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직접 연주하며 부르려고,하고 이유를 댔더니, 전수찬이 그거 치려면 꼬박꼬박 매일매일 연습해서 3년은 쳐야된다고 말했다. 이미 넌 글렀다는 뉘앙스였다. 어쩌면 난 평생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를 칠 수 없을지도 모른다(이렇게 생각하니 순간 서글프네).
하여간에 본격적으로 '하는'음악의 원년으로 삼은 올해, 단지 의식적인 한해소망으로서가 아니라, 인생을 다시 잡아보려는,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보려는 인생 전환점에서의 오묘한 무의식의 힘처럼 나는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됐다.
국민학교 담임은 원래 노래반주를 풍금으로 하지않은가. 풍금도 없는 가난한 학교에는 강당에 조율되지 않은 오래된 영창피아노와 누가 퇴직금으로 기증한 디지털피아노가 한 대 씩 두대 있는데, 강제적인 음악연수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 두 대의 피아노를 만져보게 된 것이다.
이미 밝혔듯 이것은 강제적인 것이었다. 나는 늦은 퇴근을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음악연수 선생님은 일주일에 딱 한 번 오셔서 선생님 전부에게 레슨을 해주시기 떄문에 나같은 신임은 당연히 끄트머리 순서를 받아 퇴근이 무지하게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더더군다나 끄트머리에 레슨을 받으면 피곤해질대로 피곤해진 음악선생님은 딸랑 5분짜리 레슨만 해주었고 이걸 받으려고 한달에 5만원을 내야한다는 것도 억울했고 하여간에 나의 자발적인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런데, 피아노 건반에 손가락을 대고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손가락은 내 머리가 잊고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피아노 건반과 감동적인 해후를 하였다.
자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라고 욕을 먹다가 결혼식에서 최종민과 유영이의 애무를 끝으로 내 곁에서 사라진 나의 낡은 영창피아노, 이거 2학년떄 올백 맞은 기념으로 사주신 거였는데, 그 피아노가 어찌나 그리운지 내가 발등을 찍는다. 도로 찾아올 수 없을까.
디지털 피아노는 정말 사고 싶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싸니까 디지털 피아노를 살 수 밖에 없겠지.
마르그리트 뒤라스, 이 여자 나랑 이란성 쌍생아 아닐까?
문장 하나하나가 마치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것 같다.
(하긴, 이렇게 느낄 사람이 한둘이겠는가, 그래서 세계적 작가이겠지.)
사실 문학의 감동, 예술의 정화(카타르시스, 지금 이 말이 생각 안나며 별별 단어가 머리에 떠오름, 클라이막스는 그렇다쳐도 코르크, 클리토리스,..) 이런 거 없다.
좀 달착지근하려고 한다,하다가도 확 건조하고 권태롭게 나가떨어지는 그 맛. 그거 때문에..
이런 게 그렇게 좋다니, 문득 나는, 관계에 관한 한(?), 너무 건조하고 무기력한 인간 아닌가, 란 생각이 들어 기운이 빠졌다. 이미 그렇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나의 이런 말을 들으면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자기 소설을 잘못 읽고 있다고 쯧쯔 혀를 찰 지도 모르겠다. '나는 관계에 관한 열정을 그린 것이지. 그게 너무 강렬해서 현실은 항상 무기력하고 마는 것이라....' 그러나 나는 관계에 관한 열정은 하나도 모르겠다. 단지 작품해설이랍시고 나온 글에 하나같이 관계, 열정 운운하고 있어서 그런가보다 하고 있을 뿐, 애초부터 주인공들은 건조하고 권태롭고 무기력하다. 관계에. 일상보다 관계에.
내 머리 속에서 나온 것 같은 문장의 이 소설들이, 그래서 난 대단한 세계적 소설로 도통 느껴지지가 않는다. 어쩔 땐 부끄럽기마저 하다. 아이고, 이런 걸 남한테 어떻게 보여줘.
마르그리트 뒤라스 때문에 나는 소설가 되긴 글렀다. 내가 소설 쓰면 이거 다 뒤라스 소설 흉내낸 거 아니야?할 것이다.
내년도 수첩을 샀다.
내 뜻과 상관없이 아주 멀쩡한 걸로 샀다.
회사 로고가 찍힌 것은 아니되 최대한 헐값인 걸로 장만하려하였으나, 나의 계획과는 상관없이 아주 삐까하고 고급스러운 수첩이다. 이 수첩에서 칼라프린트 빼고, 양장 겉표지빼고, 빠닥빠닥한 종이 질 빼고하면 내가 원하는 수첩이 되겠는데, 수첩 만든 사람 말로는 만드는 단가는 얼마 안 들었고 후원금이 더 많이 포함된 거라고 한다. 후원금 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 안에 다달이 적힌 비장한 문구들을 보면서.
해마다 새 수첩을 사면서 어떡하면 회사 로고 찍힌 것은 아니되 최대한 싸구려를 살 것인가 궁리한다. 수첩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내 취향이 싸구려 취향이기 때문이다. 마분지 겉표지에 갱지 속종이면 딱이겠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공산품은 없고(2,000원 쯤 하는), 예술인이 만들어 벼룩시장에 내놓고 만오천원을 받는다. 꽥.
이런 궁리를 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이 있다.
영화 <청춘스케치(리얼리티 바이츠)>, 위노나 라이더가 두꺼운 수첩(분명히 내용도 이리저리 정신없이 빽빽하게 차여있을 거라 상상이 되는)과 펜을 들고 골몰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벤 스틸러가 뒤에서 허리에 팔을 두르며 껴안는다. 그러면서 2년 전 수첩을 쓰고있냐고 놀라고(그 영화에서 벤스틸러는 잘나가는 여피였지) 위노나 라이더는 흐흐흐흐 하고 웃음을 터뜨리는데, 당시 영화를 본 모든 x세대 여자들이 위노나 라이더와 자기를 등치시켰던 것처럼, 순간 나도 당장 2년 전 수첩을 찾아써야겠다는 충동이 일었었다.
매번 수첩을 살 때마다 새로 사지 말고 올 해 것 그대로 써볼까,하는 갈등을 25초 쯤은 한다.
꼭 위노나 라이더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대로 올해 수첩은 무용지물이 되는 연말이면 곳곳에 텅빈 수첩이 무척 아깝다. 내년에도 쓴다고 해도 넉넉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새 수첩을 사서 새로 적기 시작하는 기분도 삼삼하지. 핸드폰이 있기 전엔 해마다 주소록에 이름들을 새로 적어가며 그 명단들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곤 했는데, 이젠 핸드폰이 줄줄이 번호를 기억하고 있으니 주소록 명단들의 의미가 시들시들하다. 핸드폰이야말로 깔끔이 관둬버리고 싶은 흉물이다. 나만 없애는 게 아니라, 전 지구상에서 싹 사라져버렸으면 싶은.
얼마전에 <라빠르망>을 다시 보며, 불과 얼마전의 영화인데도 단지 핸드폰이 없다는 차이점 하나로 공중전화를 찾아 뛰어다니고 무지 찾아헤매지만 늘 엇갈리는 걸 보고,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쟤네들 금방 다시 만나 사랑의 재회를 했을텐데 싶은 것 보다, 핸드폰 하나만 없어도 저렇게 풍성한 우연과 비밀과 이야기와 로맨스가 나오는데 핸드폰이 다 잡아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갓댐 핸드폰.
한 해가 가고 새 수첩을 사는 이 즈음이면, 곧 서랍에 쳐박히거나 쓰레기통에 쳐박힐 올 해 수첩을 1월부터 넘기며 '올해 베스트 영화'나 '베스트 액터/액트리스'를 꼽는 행사를 가져줘야하는데, 벌써 몇 년 째 못 하고 있다. 덩달아 이거 하면서 술먹는 재미도 잃고.
내년엔 할 수 있을라나.
전수찬 말이, 얼마전 염승주를 만났는데, 그는 여전히 올해 베스트 무비가 어쩌고 베스트 액터가 어쩌고 떠들며 술을 마신다고. 뭐라더라, 귀여운 로맨스물을 하나 꼽으며 올해 베스트 영화라고 했다는 것 같은데, 영화 제목 기억이 안난다. 그가 <도니 다코>를 두고 올해 최고 영화라고 떠들었던 몇 년 전이 기억난다. 그 말에 나도 그 영화를 보았고, 무지하게 재밌어서 나도 올해 베스트 탑 5안에 꼽았었다. 나의 2005 베스트 무비는 본 것이 없어서 꼽기도 어렵지만, 아녜스 자우이의 <룩 앳 미>가 문득.
한달에 들어가는 공과금이 너무 많다.
공과금 벌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정작 내가 먹고 입는 데는 배추 꼬다리만큼이면 다 되는데, 그놈의 공과금이 다 잡아먹는다.
(근데 갑자기 공과금이란 무슨 단어일까, 란 생각이 듦. 공적으로 부과된 금액이란 소린가. 그렇다면 내가 지금 불평하고 있는 돈들에게는 공과금이란 이름이 어울리진 않는데. 사과금인데... 생각해보니, 내가 불평하고 있는 돈들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다. 이것들도 어차피 내가 먹고 입고 사는 데 필요해서 소비되는 돈들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들을 쓰면서 내 생활 어디가 보수되고 유지되고 있다는 것인가. 그냥 물 새듯 새고 있는 돈이다. 이런 돈이 너무 많다. 이런 돈들을 위해 허걱허걱 일을 해야하는 처지가 불쌍하다. 도시의 생활에 왈칵 혐오감을 느낀 것도,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살고 있다는 명제가 바로 내 꼬락서니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신문을 끊었다. 돈의 액수로 보자면 순위가 낮은 편인데, 가장 먼저 체크당했다.
신문 볼 시간도 없고.. 가 이유다.
전화를 걸었다. 신문 끊기위해 배달원이랑 실갱이를 벌이는 짓 따위는 없이 우리회사는 깔끔하고 쿨하다는 듯이 전화상담원은 상냥하고 친절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 신문은 계속 왔다.
아침마다 집 앞에 놓여있는 신문 잡아드는 재미를 마지막으로 느껴보지, 뭐. 알아서 끊어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는데, 알아서 끊어주는 게 아니라 알아서 계속 보내고 있다.
뭘 끊나, 그러면.
건강보험료가 눈엣가시인데, 이거 어떻게 처치하는 방법 없을까.(이것은 진정 '공과금' 아닌가.)
그러나 그 다음 순위는 인터넷이란 걸 나는 내심 알고 있었다.
인터넷을 끊을 수는 없었다.
아, 내 친구 인더넷.
1996년부터 우린 찰떡사이였지. 집에서도 널 만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몰라.
밤새 넌 날 냉철한 시사의 세계, 몽롱한 예술의 세계, 그리고 축축한 지하의 세계까지 멋진 여행을 시켜주었었지.
니가 없이 난 어떻게 살겠니. 벌써부터 열손가락이 근지러워지는걸.
그러나
인터넷을 끊기로 했다.
일전에도 인터넷 가격이 문제되었을때, 더 싼 것으로 바꿀 방법을 찾았었지, 아예 없애버리는 것은 고려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번엔 어째 아주 명료하게 곧장 해지로 결정했다.
결정하고 나니, 그 후는 아주 고요한 바다였다.
해일이 몰려오고 폭풍이 범람하고 하늘과 바다가 엉켜 울부짖을 줄 알았는데, 고요한 바다였다.
인터넷이 없는 것이 정답인 것이다.
인터넷으로 신문 보면 되지, 뭐, 하고 생각했었는데, 신문을 끊으려 했다니, 갑자기 신문에게 미안해졌다.
그러나 아마도 난 인터넷이 있는 곳에 가게 되면 언제나 그 앞에 달려가 앉아서 어느새 입은 헤 벌리고 있겠지. 하여간에 지금의 정답은 인터넷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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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에 대한 믿음, 부럽소. 난 늘 회의만 한다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