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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원래 10월29일 토요일 올렸던 것인데, <연애의 목적>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대충 쓰고 말아버린 감이 있어 10월30일 일요일 다시 씀. 정성이다.
'이처럼 어린 여자가 이처럼 의연하게 사랑의 오고 감을 응시하는 영화를 본 적이 있던가. 사랑의 환상과 현실의 냉정함 사이에서 그 아픔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던 소녀. 사랑이 떠난 후, 휠체어를 타고 그녀는 홀로 길을 나선다. 그 슬픈 뒷모습에서 세상을 향해 또 한 걸음 내딛은 여인을 본다. 그 순간, 사랑보다도 빛나던 순간.'
한겨레신문에 어느 평론가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을 자기가 본 최고의 쿨한 멜로영화로 꼽으며 쓴 평.
이 평이 실렸던 기사는, <너는 내 운명>하고 <사랑니>같은 멜로영화가 다시 유행이라고 하면서, 멜로 영화를 '쿨한 멜로'와 '징한 멜로'로 나누자면, <너는 내 운명>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류의 '징한 멜로'이고, <사랑니>는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류의 '쿨한 멜로'라는 얘길 썼다. 그러면서 어느 평론가와 어느 소설가의 각각 '쿨한 멜로'옹호론과 '징한 멜로'옹호론을 덧붙여 놓았었다.
나는, 이것이 나의 개인적 취향의 문제인지, 개별 영화의 내용이나 재미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징한 멜로'보다는 '쿨한 멜로'에 한 표다. '징한 멜로'영화는 나를 잘 설득하지 못한다.
가슴에 악마가 얼음심지를 박아놓았는지, 사랑하는 사이로 설정된 두 사람이 등장할 때 마다, '쟤네 이제 끝나나보다'라는 생각부터 하고 본다. 절절이 사랑한다는 설정이 계속이어질 때마다 나는 번번히 그 근거를 찾으며, 잘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런데 <굳세어라 금순이>의 구재희의 사랑은 그토록 가슴절절하게 봤으니, 이것은 나의 영화관람자세와 드라마관람자세의 차이인가????) 저 신문 기사에서도 소설가의 '징한 멜로'옹호론은 나에게 설득력 빵이었다.
쓰고보니 이것은 실제로 나의 '애정관'과 연관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애정관이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식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사랑이란 그 과정에 있다는 생각이다. 감정에의 응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성찰. 무엇인지 끝까지 알지 못해도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끝없는 질문.
한겨레에 평을 올린 평론가만큼 나도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재미있었다. 내가 본 최고의 멜로영화 탑 화이브 안에 꼽겠다. 사랑영화는, 내 애정관에 맞는 사랑영화는 결국 자기얘기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생선을 굽는 조제의 의연한 얼굴. 식탁에 놓을 생선접시를 향해 뻗어올린 조제의 의연한 팔. '그 순간, 사랑보다도 빛나던 순간.'
일본어 영화를 볼때마다 그 익숙하지 않은 인토네이션에, 배우들이 지금 연기를 잘 하고 있는 건지, 좀 느끼하거나 오바인건지 아리송하며 불편하곤 하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특히 남자주인공이 너무 이쁘게 생겨서 싫었다. 저렇게 잘생긴 남자애가 애인이라면 금새 토라져, 흥, 나 장애인애인 안할거야,하고 삐칠까봐 영화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이쁘장한 남자애는 잘 삐친다는 선입견?)
반면 <연애의 목적>.
그냥 호감가고 좋으면 같이 자는 거지, 쿨하게. 사랑이란 감정은 어차피 3개월짜리인데 사랑은 왜 따져. 라며 추근대는 남자. 여기에서 이 영화는, '사랑은 할인쿠폰이라는' 쿨한멜로처럼 보였다.
때로는 '너를 진심으로 사랑해' 보다 '너 졸라 맛있다'라는 말이 더 정확한 사랑의 고백일 수 있다. 나도 니가 졸라 맛있어,하고 맞붙는 사랑에 무슨 걸림돌이 있겠는가.
둘은 그래서 불같은, 뜨거운, 멋진 사랑이 될 수 있었다. 이제부터 결국 감독이 원했던 건 징한멜로였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랑이 할인쿠폰같은 세상에서 이런 징한 사랑이 있단다,라고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거다. 애타게 부르짖는 남자 목소리의 '우리의 불같은 사랑' 어쩌구란 노래는 노골적으로 반복된다.
그러나 결말에, 최홍이 학원강사 유림을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확 깼다.
앗, 저것은....
저것은 무엇인가.
최홍은, 유림에게 있어 이제 그녀 자신이 '손발을 잘라버리고 그의 아내도 죽여버리고 죄없는 애새끼까지 죽여버리고 싶'던 그 가해자가 되었으면서, 유림 앞에 다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한껏 감정이입했던 주인공의 새 사랑이기에?
더구나 한 번 당했던 피해자였으니 동종 범죄에 있어서는 면책특권을 주자는?
(강간당한 여자들은 강간하면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는 새로운 논리?)
(나 이제 잘자,하는 최홍의 대사는, 순간 이 영화가 호러영화였나 싶게, 소름이 좍 끼쳤다.)
여관 앞에 쌓인 첫 눈을 처음 밟았다며, 우리 관계는 이렇게 깨끗하게 새 시작이야,라는 넉살좋은 표정을 짓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모든 걸 덮어버린다는 그 투는, 오히려 이 영화의 최고의 순정이었던 최홍을 더럽히는 결과이다.
영화는 공들여 최홍을 사랑의 유일한, 따라서 빛나는 실천자로 만들어왔다(<클로저>의 나탈리 포트만같은, 조제같은, 내가 좋아하는 <멘>의 숀 영같은). 사랑이 무엇인지 묻기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려하는, 그럼으로써 막 움트는 사랑의 감정과 그것에 기대고 싶은 자기가 있었으나, 그것이 설혹 후에 진짜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할지라도 서슴없이 포기되는 사랑은 단호히 부정하는, 정직하게 실천하는 용기있고 아름다운 그녀.
이렇게 고귀한 캐릭터를 애써 만들어놓고는 팔짱을 끼며 배시시 싸구려 웃음을 흘리게 만드는 건 무언가.
사랑의 고갱이에 애써 다다라 놓고는 똥을 한 바가지 퍼 싸지르고 이게 사랑이야,하는 꼴이다.
사실, 똥 한 바가지 퍼 싸지르는 게 필남필부의 사랑일지도 모른다. 고갱이 같은 사랑을 실천하는 빛나는 실천자는 천사 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 궁색맞고 저열하지만 모두가 끄덕이는 우리의 냄새나는 사랑, 그것을 영화는 이야기하려 했던 것인가.
그러나 그것이기에는, 감독은 홍상수도 아니고,
더구나 최홍을 음해하는 인터넷때문에 꼭지가 돌아 애들을 패대는 이유림과 당시 아무것도 모르고 이유림이 좋아하는 닭강정 도시락을 싸서 둘만의 아지트에서 행복하게 님을 기다리는 최홍의 교차편집이 사건의 절정에서 숨막히게 펼쳐지며, 이 천상의 연인들에의 연민을 최대한으로 호소했던 감독이, 막판에 인간의 너절한 사랑을 난데없이 메인주제로 떠올렸을 리는 없을 것 같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야했다. 이유림이 경찰차에 태워지고(왠 경찰차? 여자의 '저 남자가 성추행한거에요.'란 말 한 마디에 경찰차 오는 나라였던가, 여기가?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학교홈페이지가 야동익명게시판 같은 모양새나, 경찰차 출동이나 좀 오바다, 감독이.), 최홍은 설겆이를 하다가 설겆이통에서 불어터진 닭강정을 보며 오열하고, 약혼자와의 대화,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잤어? 그럼.하고 끝. 딱 거기가 좋았는데. 마지막 강혜정의 표정도.
<연애의 목적>이란 제목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게 더 어울렸었을...
하여간에 박해일은 여전 멋졌음.
특히, 그 부분, 최홍이 무단결근하자 집으로 다짜고짜 찾아가 창문을 간신히 여는 장면.
창문이 신통찮게 열리자, 차에서 거울을 떼어와 창문에 대고 이리저리 비추며 "아, 저기 있네. 거기 그러고 있으면 못 찾을 줄 알았지?"하는 그 장면. 으하하.
술은 왜 그렇게 많이 마시는거야? 저렇게 술을 막 퍼먹어본 것이 정말 오래전 일 같다.
그렇게 마구 퍼마시고 필름도 확 끊기고 그래보고 싶었다. (저 사진봐라, 정말 맛있겠지.)
(그러나 숙취는 여전히 무서워.)
지난 주 한겨레 신문을 들어 펼쳤다가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일이 있었다.
첫 장을 펼치자마자 손바닥보다 더 큰 사이즈로 들어앉은 정운영씨 사진때문이었는데, 사진이 어찌나 섬세한지, 진짜 그 사람이 들어와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정운영하면 따라붙는 '큰 키에 깊은 눈매'란 수사, 딱 그런 모습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그냥, 죽으면 죽었지,했던 느낌이 새삼 동요했다.
새삼 쓸쓸했다.
새삼 인생이 덧없고, 새삼.....
내가 가방에서 <저 낮은 경제학을 위하여>를 꺼내자, 전수찬이 "추모독서라도 하는거야?"했다. 정말 나는 '추모독서'를 하고 있었다.
80년대 끝, 90년대를 소망하는 시점에서 쓰여진 이 글들을 보고있자니, 반짝반짝 그 소망들이 띤 빛이 너무 순진해서 가엾다. 그 때만해도 이런 소망들을 품고 있었구나. 품을 수 있었구나. 자본이 귀신과 악마의 회오리가 되어 모든 걸 휘어삼킬 줄 모르던 때였구나. 그런 때도 있었구나.
아마 그는 2000년대를 견디지 못 했었을 것이다.
그가 해석할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2000년대를 살고있다.
인간은 이미 다른 종(種)이다. 소비인간 쯤으로 명칭할 수 있는.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아지면서 내가 익숙하게 된 것은 <지금은 여성시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다(쓰고보니 이름이 웃기군).
명망있다고 표현할만한 여자엔터테이너와 그에 약간 못 미치는 명망의 남자엔터테이너를 디제이로 해놓고(전 환경부장관 손숙과 김승현 식의 커플. 다른 프로와는 달리 여자엔터테이너를 더 명망있는 사람으로 해놓은 건 이제보니 제목과도 연결이 되어있나보군) 사람들이 보내는 사연들을 읽어주는 프로인데, 처음에 등장했었을 당시(벌써 십몇년 전 일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아침 9시대에 버스를 타고다니는 날이 많았었던 나의 이십대초반이었다.) 인기집중이었던 것이 기억난다.
하여간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총체적 기념의 의도는 없으니 대충 짧게 해두자.
원래부터 이런 프로그램에는 별 관심도 없다. 버스 운전기사가 틀어놨으니 그냥 듣는 것이다. 그러다 웃기면 따라웃기도 하지만(그렇게 듣다가 따라 웃는 프로로는, 강석 김영혜의 싱글벙글쑈가 제일이지).
이 프로그램은 그러니까, 사회자가 원하는 대로 내 감흥을 따라가 줄 수 있기도 하지만, 저런 소리는 좀 그만 듣고 싶은데, 하는 것이 30분마다 등장하여 결국 내 손으로 라디오 채널을 맞추어 들을 리는 없는 프로인 것이다. 예를 들면 허리케인 카트리나 얘기를 하면서 다른 나라 출신의 사람들은 보호소에 있는데 한국사람들은 보호소에서 찾아볼 수가 없었다, 왜, 다른 지역의 한국 이민자들이 자기 집으로 불러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있으니까, 자기 집을 거의 내준 사람도 있다더라.라는 소리를 한다던가...
사실 이 얘기를 하려고 한건데, 얘기가 주절주절 길어졌음.
오늘 아침 들은 사연 하나.
어느 부부의 남편인 자가 보낸 사연인데, 자기가 청소하다가 뼈골이 빠진다는 얘기.
마누라가 청소의 ㅊ자도 모르고, 쓰레기 봉투도 자기가 직접 묶고, '심지어는' 분리수거까지 하고 있다고. ('심지어는'의 단어는 그 남자가 직접 쓴 표현임) 게다가 여자가 둘째낳고부터 팔이 아프다며 걸레질까지 자기가 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자기부부는 원래 맞벌이여서 부엌쪽은 아내 담당, 청소는 남편 담당이라고 결혼때 결정했단다(참으로 용기있고 솔직한 고백이다).
나는 지금 이 남자가 웃으라고 이 글을 써보낸건가, 헛갈렸다.
원래 청소담당이라면서 청소하는 일이 힘들다는 투정은 국민학생도 아니고 뭐 하는 소리인가. 둘째낳고부터 여자가 걸레질을 못한다고 했다면 그 전까지 걸레질은 마누라가 했다는 소리인데. 진공청소기 한 번 돌리고 청소 끝 하셨나. 분리수거하는 것도, 쓰레기 봉투 묶는 것도 참으로 큰 일 하신다는 그 자세는 무언가. 그러고 계속 나오는 이야기에 여자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리가 없는 걸로 보아(이 남자, 여자가 전업주부인데도 자기가 청소하면 집에 폭탄이라도 떨어뜨릴 양반이다), 여전 맞벌이인가본데, 어떡하면 청소에서 도망갈까,하는 궁리 태세였다.
나는 프로그램 피디나 디제이가 <지금은 여성시대>인데, 이러시면 안된다는 훈계를 하려나보다, 중년대상의 프로그램이라지만 이런 식의 농담은 좀 시시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엇. 남자사회자는 그렇다치고, 옆에서 듣고 있는 양희은을 보라. 남자의 하소연에 동조하는 추임새를 넣고 자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 이것이 액면 그대로 통하고 있다는 말인가.
정말 아연실색했음.
어느 남자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주 자상하고 세련된 말투. 당장 만나보고싶은 욕구를 느끼게 하는. 연이어 다른 편지를 건네받았다. 조잡하게 프린트된 꽃무늬의 작은 수첩이었다.
편지가 아니라 개인 수첩같았다.
수첩을 열었더니, 내가 아는 이름들이 적혀있다. 내가 아는 이 사람들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 기록 수첩. 내용을 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이 아주 유치했다. 누구누구와 ****(강남의 나이트클럽이름이라고 생각하였음)에 감, 이것 밖에 없었다. 그게 매일 매일 적혀있었다. 이런 사람 만나보지 않아도 뻔하다,란 생각을 하면서도 이 수첩을 나에게 보낸 이가 내가 지금 짐작하고 있는 그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나는 수첩의 맨 마지막 페이지까지 공들여 넘겼다.
맨마지막에는 핸드폰 전화번호가 하나 적혀있고 그 옆에 원래의 이름이 볼펜으로 죽죽 덧그어진 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름 하나가 적혀있었다. 볼펜으로 죽죽 그어진 속의 원래 이름을 살짝만 보고, 내가 짐작하고있었던 그 이름이 맞군, 대번에 확신하고 수첩을 접었다.
수첩을 접을 땐 어느새 이 남자를 빨리 만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편지도 아니고, 특별히 나에 관한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닌, 이 코딱지만큼 정도 가치의 수첩을 나에게 보낸 이유는 그가 당장 나를 만나야하기 때문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얼른 그 핸드폰전화번호를 눌렀다. 그랬더니, 몇십년만에 듣는 목소리가 나왔다. 누구라고 상대가 밝히지도 않았으나 나는 대번에 알아들었다. 그녀는 몹시도 짜증난다는 투로, 그 남자의 전화번호가 아니라 이것은 자기의 전화번호라고 대꾸했으며, 그에 대해서 자기가 아는 바는 없다고 했다. 자기가 들은 것은 사람들이 그가 (이 부분에서 나는 깜짝 놀랐는데) 자살했다고 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과외에 가야했다.(절박한 순간에 꼭 과외에 가야하는 이 구성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런 제기랄,하고 화를 잔뜩 내면서 과외에 갔다. 수학문제를 많이도 풀었다. 무슨 문제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풀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약간의 짜릿한 쾌감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전화를 받았던 사람들이 무대에 서있는 양 일렬로 죽 서있었고, 스무명이 넘어보이는 할머니들이 관중인 양 맞은편에 둥그란 대형으로 앉아있었다. 할머니들은 그 남자의 실종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이 할머니들이 그 남자의 실종신고를 했던 최초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할머니들의 중구난방 증언에 이어 나의 증언 순서가 돌아왔다. 나는 입을 떼었다. "그 남자와 저는 고등학교 때 잠시 사귀었었습니다. 잠시 뿐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엔 거의 연락이 없었습니다. 꼽자면 한 서너번 정도 만난 것도 같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한지 이십년(이 부분에서 할머니들이 티뷔 토크쇼 방청객들마냥 '오오~' '와~' '우우~'하는 괴성을 내었다)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 서너번 보았으니 거의 보지 못했던 셈입니다."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는 형사라고 하는데, 가래침을 연달아 뱉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역겨워 말을 못 잇고 있었으나, 내가 갖고있는 그의 수첩이 큰 단서가 될거라는 예감에 심장이 크게 쿵쿵 뛰고 있었다. 그러나 모두들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마음이 급했다. 할머니들은 어느새 하나 둘씩 방청석을 떠나고 있었고, 형사들은 오히려 나를 설득하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이 부분은 참으로 전형적이다). 나를 후랑스 레스토랑으로 데려갔다. 그들이 나에게 무얼 사주려한다기보다는 내가 가야한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여기저기 테이블에 남겨있는 음식들을 죽 돌아본 후 디저트 메뉴를 하나 골랐는데, 그 돈이 있을까,하고 가방 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후랑스 후랑 동전이 잔뜩 들어있었다.
내 옆에 어느 남자는 지금 미국에서 포르노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강수지(그는 '보라빛'이라고 불렀다)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성전환수술을 받아 남자의 성기를 몸에 달고 영화에 출연 중이라고 했다.
할머니들이 인상적이어서 할머니들에 대해 적어두려고 했었는데, 지금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간 도봉도서관에서 타블로이드신문판만한 사진첩을 발견했다.
한국판 제목
이 유명한 사진은, 그냥 사진기자는 절대 찍을 수 없었을 사진이었을 것이다.
친구가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이 사진을 찍은 해리 벤슨은 1964년 비틀즈의 빠리 공연부터 인연을 맺어 그 뒤로 미국공연이며, <어 하드데이즈 나이트>영화촬영이며 그들과 '밀착생활'하며 사진을 찍었다고 했다.
사진기자, 해리 벤슨은, 처음에 비틀즈 공연 동행취재 기사를 맡았다가 다시 또(미국갈때라고 했었나) 신문사가 동행취재 기사를 자기에게 맡기려고 하자, 비틀즈말고 다른 것을 찍고싶었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일견 이해가 간다. 나 같아도 사진기자가 되었으면 인기가수말고 다른 사진을 찍고 싶겠다. 하지만 계속 동행을 했고, 그러다가 비틀즈랑 가까워지고, 심지어 조지 신혼여행을 몰래 따라가서 찍기도 했다는 둥, 결국 해리 벤슨에게 비틀즈 사진은 대대로 가문의 영광이 되었다. 사진집에서도 자기가 얼마나 비틀즈와 가까웠는지 왕 자랑 일색이다. 자랑할만하다. 나 같아도 대대로 가보로 물리고 죽을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이미 했던 얘기도 수백번 되풀이하며 비틀즈 뒷얘기만 하였을 것이다.
이 유명한 베개싸움 사진은, 해리 벤슨 말에 의하면, 비틀즈의 방에서 사진기자며, 수행원이며, 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자기와 비틀즈만 남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을 찍은 거라는데.
해리 벤슨은 그들이 베개싸움을 하는 동안 사진기를 들고 필름 한 통을 다 찍고
그걸 목욕탕에서 열심히 현상하고 자르고 오리고 인화하느라 밤을 샜다고 한다.
근데 난 사실 스타의 이런 사생활 사진을 보면 왠지 이상하더라.
갑자기 확, 얼굴 뾰루지가 눈에 달려들고, 겨드랑이 냄새가 달려들고, 땀구멍이 숭숭하고 거기로 숭숭 털이 난 몸체가 달려들어...
뭐, 하여간에.
어디선가 들은 얘기 같은데(보나마나 최종민이나 전수찬에게서 들었겠지), 해리 벤슨 말에 의하면 가장 휀 레터를 많이 받은 사람은 링고였다고 한다. 역시 귀염동이 링고. 그리고 그 다음으로 조지. 미소년의 수줍음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존. 그 다음에 폴. 폴은 왜 그랬지? 얼굴도 이쁘게 생긴데다 비틀즈의 마술상자였는데.
조지는 막 비싼 새차를 사놓고, 할부금이나 제대로 부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으며, 링고는 미용실을 차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한다. 하하하, 미용실. 아이고 귀여워.
해리 벤슨이 전하는 귀염동이 링고의 재치 한토막:
달려드는 기자들 중 하나: 베토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링고: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의 시(詩)가!
해리 벤슨이 주장하는 비틀즈에 내린 자신의 영향력:
극성휀들 때문에 호텔방에서만 머무르며 테레비만 보고있던 비틀즈들과 함꼐 테레비만 보고 있던 해리 벤슨은 당시 헤비급(맞나?) 도전자였던 캐시우스 어쩌고가 테레비에 나와 챔피언 소니 어쩌고를 당장에 쓰러뜨리겠다 어째버리겠다 큰소리 왕왕 치는 걸 보고, 이 사람과 비틀즈가 만나면 그림이 되겠다는 반짝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비틀즈 멤버들은 도전자를 만나다니, 챔피언을 만난다면 모를까,란 반응이었고, 해리 벤슨은 비틀즈를 속여 챔피언을 만나러 간다고 뻥을 치고 도전자 캐시우스 어쩌고를 만났다. 캐시우스 어쩌고 이 남자는 폴이 여자같이 생겼다는 둥 링 위에서 비틀즈를 데리고 놀았다. 비틀즈 멤버는 이 일로 해리 벤슨에게 무척 화를 내었다. 캐시우스 어쩌고 도전자는 소니 어쩌고 챔피언을 당장에 때려눕히고 헤비급 챔피언이 되었으며, 챔피언이 되고는 이름을 무하마드 알리로 바꾸었다.
펀치가 직접 얼굴에 닿은 조지 표정은 그렇다치고, 폴은 뭐야(저러니 휀레터도 안왔지).
존은 여전 바보짓. 어쩔 수가 없어(너무 사랑스럽지 뭐야).
링고는 뚱 화난 귀염동이.
이 사진은 해리 벤슨이 비틀즈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뉴욕에 (비틀즈에게도 첫 미국행이었고, 해리 벤슨에게도 첫 미국행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긴장된다는 얘기를 비행기에서 주고받았다고 했다.)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는 비틀즈를 찍은 것인데, 해리 벤슨은 미리 비틀즈 멤버들에게 비행기에서 나갈때 꼭 뒤돌아 자기를 보아달라고 부탁을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까먹고 비행기 사다리를 거의 다 내려갔는데, 링고가 다시 그걸 기억해내고는 멤버들을 불러 뒤를 보게 했다고 한다. 링고가 그랬을 것이다. "아, 맞아, 해리가 뒤돌아보라고 했잖아. 얘들아, 얘들아." 아, 귀엽고도 자상한 링고.
어제 아침 지하철 안. 바로 옆자리에 아무리 많이 봐줘야 열여덟, 열아홉살인 소녀 셋이서 한껏 멋을 내고 앉아 타블로이드판 공짜 지하철신문들을 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엿들어 미안하지만, 그들 대화에서 빠지지않는 핸드폰에 관한 것, 훼션에 관한 것으로 미루어 간단히 짐작하건대, 그들은 최신식세대였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영락없는 구세대다. (그들에 안 비해도 구세댄가.)
그들이 마침 넘긴 신문 새 면엔 <너는 내 운명>영화 광고 전면 포스터가 있었다. 그들은 앞다투어 전도연과 황정민에 대해 뭐라뭐라 품평회를 했다. 전도연 너무 이쁘지 않냐, 너무 어려보이지 않냐(여자가 어려보인다는 것은 왜 이렇게도 절대가치적인 걸까). 그러더니 황정민더러 너무 아저씨 같다, 사십대는 돼보인다, 아니다, 늙어보이는 스타일이라 그렇지 실제로는 삼십대후반으로 보인다(뭐냐, 황정민이 나랑 동갑인가 아니면 한 살 어린가 하는데)...
그래서 그들은 너무 어려보이는 여자와 너무 늙어보이는 남자의 커플이라는 것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되었다. 그 순간, 뱉어내는 그들의 말, "그래서 더 멋있잖아."
그럴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남자와 앳된 여자의 커플은 멋있어보일 수 있다. 중후한 나이의 여자와 앳된 남자의 커플은 도발적일 수 있다,라는 개념을 제공하듯이. 그런데 내가 그 순간, 어리둥했던 건, 그들의 자연스럽고도 거침없이 순식간에 후다닥 결론을 내리는 태도였다. 마치 착하게 사니까 복받은 거야,란 말을 중얼거리는 노인네들마냥.
그들 대화에 속해있지도 않았고, 속할 수도 없었던 나만 혼자 계속, 그런가?를 갸우뚱했다.
그래? 그래서 더 멋있나?
황정민과 전도연 캐스팅에 그런 계산도 있었나?
실제로 황정민과 전도연은 나이 차이가 별반 안나거나, 혹은 어쩌면 확실히는 모르지만 전도연이 연상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그거야 배우 사생활이고, 배우 이미지로서는 전도연이 연상으로 보일 수는 없는거니까.
그들의 나이, 많아야 스물. 바로 그 절대가치 절정을 앞으로도 몇년은 구사할 느긋한 나이라서, 그들에겐 또래의 십대후반, 이십대후반의 남자들부터 삼십대 혹은 사십대까지의 남자들이 전부 시장에 나와있으니, 어린 여자와 늙은 남자의 커플이 멋있어보이건, 실제로 멋있건 안 멋있건, 만약 아니라면 왜 그런 이미지가 나오게되었건 쥐뿔, 콧방귀 뀔 관심조차 쥐어짜도 없을테니, 껌이 입에 들어가면 씹고 단물 빠지면 뱉듯 들어가고 나온 말일 것이다.
그 뒷끝을 붙잡고 이리쿵저리쿵 뒤집고 앉아있는 나는, 절대가치 절정을 이미 주욱 타고 내려와 거의 펑퍼짐해질라고하는 둔덕께의 나이. 남녀커플의 나이상관관계에 상대적으로 예민해져있다고 지적해도 할 말이 없지.
그러나, 착하게 살면 복받아? 착하게 사는 게 뭐야? 그게 착한 거야?라고 노인네들 결론에 항상 꼬투리를 잡고 싶듯...
아, 또, 인간성 혹은 사회성 기질상 '착함'에 상대적으로 예민하다고 지적해도 또한 할 말 없지.
광명시는 야심차게 음악축제를 벌였다.
덕분에 공짜로 멋진 구경을 하였다. (가샛골댁에게 고마움을...)
오늘은 인디밴드공연.
수찬은 코스모스가 제일 멋진 밴드라고 하였다.(아시는 분?)
더더 출신의 보컬이 꾸린 푸른새벽도 인상적이었지만, 오늘의 하일라이트, 규민의 춤.
규민과 내가 손을 마주 잡고 춤을 추었는데, (나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 규민이 나를 리드하였음. 나는 너무나 황홀하였다. 그녀의 춤에 홀딱 반하였다.
나는,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뻔뻔스럽게도, 인간은 과잉이라고 믿고있다.
그러나, 나에게 규민이 없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 존재, 존재 자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게 될 줄이야.
지금 술 만빵 먹으며 이 글 쓰고 있다. 옆에서 전수찬 왈,
"그거 내일 되면 지울걸."
음주접속 벌써 십여년차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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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 사진 보고 잠깐 철렁했더랬어. '큰 키에 깊은 눈매' 보다 긴 손가락이 기억에 오래 남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