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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카슨 맥컬러스를 처음 본 건 롱아일랜드의 어느 호숫가에서였다.
이마 위에 가지런히 내린 앞머리, 어깨에 닿을 듯 찰랑거리는 단발머리, 검은 색 단정한 단화, 흰 발목 양말, 이런 것들이 그녀를 여전 소녀처럼 보이게 했으나 그녀의 나이는 막 서른 살을 넘긴 뒤였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과 약간 메부리코 식의 큰 코는 그녀가 꿈꾸는 장황하고도 기괴한 세계를 향해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이 고집스러운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하고 호숫가로 산책을 나온 틈이었다. 비스듬히 누운 두사람은 서로를 바라봤는데, 조지 데이비스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이 소녀 같은 여자가 토해낼 점액질의 무엇에서 어떤 질병이라도 옮아올까. 점액질의 존재감,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그녀 손가락 사이에 담배가 끼어있는지, 펜이었는지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없었다.
앙리 꺄르띠에 브레송 사진이었다. 호숫가에 비스듬히 누운 남녀-사진사를 응시하고 있는 남자, 그 남자를 올려다보고있는 여자. 붙어있는 딱지엔 <작가 카슨 맥컬러스와 에디터 조지 데이비스, 카슨 맥컬러스는 기형인, 꼽추, 거인이 등장하는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그린 작가로,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대표적 미국 남부 작가로 꼽히...> 처음엔 남자가 작가고 여자가 에디터인 줄 알았다. 선입견대로. 그런데 가만, 조지가 남자이름 아닌가.
<슬픈 카페의 노래>는 그렇게해서 읽게된 소설이었다. 재미있을 거라고 만판 기대를 걸며 보았고, 소설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덩치 좋은 남자보다 더 큰 거구의 사시 여인 아밀리아와 그녀가 사랑하는 1미터 14센티의,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열두살인지 마흔살인지 조차도 알 수없는) 꼽추, 그리고 이 꼽추가 한 눈에 사랑에 빠진, 한때 아밀리아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서 버림받고 악마의 화신이 되어 지금은 아밀리아를 저주하는 화려한 체구와 외모의 마빈, 이 세 사람의 사랑. 아, 사랑, 그 고독함.
카슨 맥컬러스는 사랑이 두 사람의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랑은 '두 사람의 공동 경험이다. 그러나 여기서 공동 경험이라 함은 두 사람이 같은 경험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랑을 주는 사람과 사랑을 받는 사람이 있지만, 두 사람은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 속한다.'(49p) 사랑은 혼자의 것이다. 사랑은 원초적으로 고독한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녀가 말하는, 이러한 존재론적 고독을 공감하고 깊이 사유할 여유는 별로 없었다. 워낙 빠르게 전개되고 (또 짧기 때문에) 순식간에 읽어치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라는 느낌. (그래서 소설을 길게 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가봐.)
내가 가장 깊게 음미한 부분은,
... 백지 위에 레몬 즙으로 메시지를 쓰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종이를 잠시 동안 불에 대고 있으면 글씨가 갈색으로 변해 그 내용을 분명히 알아 볼 수가 있다. 위스키가 바로 그 불이고, 메시지는 한 인간의 영혼 속에 씌어진 글이라고 상상해보자. 그러면 (아밀리아가 만든) 술의 진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무심히 흘려 버렸던 일들, 마음속 깊이 은밀한 구석에 숨겨져있던 생각들이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마침내 이해가 되는 것이다. 직조기와 저녁 도시락, 잠자리, 그리고 다시 직조기, 이런 것들만 생각하던 방적공이 어느 일요일에 그 술을 조금 마시고는 늪에 핀 백합 한 송이를 우연히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손바닥에 그 꽃을 올려놓고 황금빛의 정교한 꽃받침을 살펴볼 때 갑자기 그의 마음속에 고통처럼 날카로운 향수가 일게 될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눈을 들어 1월 한밤중의 하늘에서 차갑고도 신비로운 광휘를 보고는 문득 자신의 왜소함에 대한 지독한 공포로 심장이 멈추어 버리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미스 아밀리아의) 술을 마시면 이런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고통을 느낄 수도, 기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이 경험들이 보여 주는 것은 진실이다. (그) 술을 마시면 영혼이 따뜻해지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다.(22p)
오, 술이여.
날아다니는 모기를 탁 잡았다.
아싸.
모기는 제대로 맞지 못해 단숨에 죽지 못하고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가늘은 다리를 드문드문 떨며.
모기를 위한 송사.
모기야 미안해, 니가 미워서 죽인 것은 아니었어.
니가 꼬리로 콱 물면 가렵고 아퍼서 그게 싫어서 그런 거였어.
그러니까, 다음엔 모기로 태어나지마.
다음엔 나비로 태어나거나, 힘센 호랑이가 돼라.
옆에서 들여다보고 있던 규민의 말,
그래, 모기야, 다음엔 나비가 되나, 호랑이가 되나, 올챙이가 되나, 개구리가 되나, 음음, 또오, 악어가 되나 잘 생각해보고, 그렇게 해라. 나비가 되어서 훨훨 날아다녀라.
오랜만에 나에게 드라마 바람이 불었다.
마지막 바람이 언제였던가....
제목이... <신(新)황태자전>이던가?
최지우가 재벌집 딸인데, 결혼하라고 닥달하는 부모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영국유학중인) 약혼자가 있다는 뻥을 치고 잠시 그 약혼자가 한국에 왔네, 쑈를 하며 부모에게 잠깐 선을 뵈는 작전을 피우는데, 그 작전용 약혼자로 생수배달원 김승우를 내세웠다가, 둘이 정말 사랑하게 되어 고비를 넘기고 결국 결혼에 골인한다는 이야기.
옆에서 날 한심하게 보는 남편, 오죽하랴, 나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뻔한 유치뽕인 줄 알면서도, 생수배달원 김승우가 이용만 당하고 상처받을까봐 노심초사하며 보았다.
그 전 바람은, <8월의 신부>.
김지호가 쓰러졌다 다시 깨어나는데 다시 깨어나는 바람에 전생을 기억하게 된다. 전생에 그녀와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는 남자의 친구의 배신으로 불운한 죽음을 맞았다. 그때 둘이 못다한 사랑과 억울한 죽음에 한이 맺혀 전생의 모습을 그대로하고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김지호는 그것을 기억하나 남자(정찬)는 모른다. 남자에겐 이미 약혼녀(박상아)가 있다. 김지호는 그를 적극적으로 설득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슬슬 이 남자도 왠지모를 힘에 의해 강력하게 김지호에게 끌림을 느낀다. 아, 전생의 못다한 사랑의 인연과 현생의 또렷한 사랑의 기억, 이 갈림길에 선 자의 선택은...
이건 유치뽕이라고 생각할 틈도 없이 정말 몰입해서 봤다.
김지호가 우수와 비련에 찬 표정을 도회풍으로 세련되게 구사하며 나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었다. 남자주인공 정찬은 지금이나 그때나 어금니로 발음을 씹으며 눈썹 찌푸리는 게 연기의 전부이지만, 지금이나 그때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의 호감을 받고 있다. (지난 총선때 민주노동당 지지자로 커밍아웃을 하여 그나마 떳떳하게(?) 호감을 드러냄)
회사 다닐때 방송되었던 것인데, 회식이 있어 보지 못하는 날엔 엄마에게 신신당부를 하여 비디오 녹화까지 하면서 봤다. (당시 이 드라마가 제법 인기드라마였던 듯, 회식 끝나고 내가 이 드라마를 녹화했다는 소문이 사무실 내에 돌자, 남녀젊은 사원들이 앞다투어 대여해갔다. 나는 김지호와 정찬의 휀이라 그 둘의 사랑을 절찬 지지하고 있었고, 박상아(정찬의 현생 애인)는 거들떠도 안 보고 있던 와중이었는데, 선배사원 하나(남자였음)가 박상아 캐릭터가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아는 인물이라고 침이 튀기도록 칭찬을 하여 잠시, 정말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그때 그 교훈이 가끔 떠오르곤 한다. 사랑이란 무언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가만 생각해보아야하는 것이란 교훈. 그러고보면 그 선배사원, 사랑을 진지하게 생각할 줄 아는 남자였었던 것 같다. 내 타입이 전혀 아니게 생겼다는 게 그와 나 사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하였지만, 검지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니던 그 남자, 지금 누군가를 진지하게 사랑하며 잘 살고 있기를... )
그리고나서 완전히 잦아들어 이제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드라마 바람이 다시 불었다.
뭐, 이 까짓것 이주일에 한 번 볼까말까해도 내용 다 꿰겠고, 봐봤자 성질만 돋구고 안 보느니 못하다,라는 편이었는데, 갑자기 불이 붙었다.
구재희(배우 이름이 강지환이라고 함, 오, 새 인물 발견)의 사랑이 메마른 내 가슴에도 불을 붙인 것이다.
어제는 드디어 내 손으로 테레비를 켜고 보았다.
그리고는 얼마나 질질 짰는지 모른다. 박인환의 연기 때문에.
박인환은 금순이의 시아버지인데, 아들이 죽은 후, 손자를 낳아 제 집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 금순이가 이제 재혼을 하려하자, 금순에게 손자를 이 집에 놔두고 결혼하라고 협박, 호통, 애걸, 간청한다. 그 때까지는 고집쟁이 이기주의자 같기만 했는데, 오밤중에 몰래 죽은 아들 사진을 가슴에 부비며 눈물을 철철 흘리는 장면에서 그만 나도 같이 울어버렸다.
금순이도 그걸 봐버렸다. 시부모와 대적 상황이기만 했던 금순의 마음은 이로써 대선회하여, 시부모가 가엾어 그들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 금순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또한 괴로워하는 남자, 구재희(강지환).
오늘 그는 금순과 차라리 헤어질 결심을 하며 전화를 걸어 일부러 잔인한 말을 내뱉는다.
그때 그의 그 일그러지며 오열을 삼키는 표정, 아!
이 표정 때문에 드라마 끝나고도 한동안 멍했다.
구재희랑 금순이랑 정말 헤어질까봐 내 가슴이 쓰라리다.
둘이 헤어지면 얼마나 그들 가슴이 찢어질까.
아니야, 현실에 저런 사랑이란 없어, 하고 의도적으로 냉정한 말을 뱉었다.
드라마에 빠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일침을 주기 위한 것이었지만, 사실 그렇다.
실제로 저런 식의 사랑은 드라마 식의 드라마틱한 사랑인 것이다.
실제 사랑이 아니라, 실제 사랑을 그럴싸하게 흉내낸 밀랍 장식 같은.
그런데도 왜 나는 정신을 빼앗길 정도로 설득당하였는가.
사랑이란 그런 것인가.
아무리 비현실적이라고 한들, 그래서 엔터테인먼트용이거나 혹은 장식용라고 한들, 없느니 차라리 존재하여야할 것인가.
그래서 보이면, 아주 희미하게 보여도 보이기만 하면 거기에 매달리는가.
그리하여, 그러나, 그래서, 그럼에도 사랑은 결국 .... (이하 생략)
나는 혼자 각본을 썼다.
그래서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러나 두 사람은 헤어지지 못한다. 너무도 괴로워하는 모습에 주변 사람들이 둘을 다시 엮어준다. (아이를 두고가라던 시아버지가 결혼까지 포기할 뻔하는 금순의 모습에 반성하며 아이를 보내기로 결심한다.)
이렇게 혼자 해피엔딩의 각본을 쓰며 내 마음을 달랬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다음 싸이트 우표사진 뉴스에 금순이 웨딩드레스 입은 사진이 걸렸다. 마지막회 사진이란다. 둘이 결혼에 결국 성공하는 것이다. 그걸 보고 내 마음이 비로소 정말 달래졌으니, 결혼은 사랑의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평소의 믿음도 드라마 앞에서는 말짱 헛 것.
젊은 연순의 생활.
연순은 십대 후반이나 이십대 초반 쯤의 여자.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가족이라면, 부모의 모습은 콧배기도 보이지 않고, 도시로 유학간 동생이 유일한 듯. 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생활비와 동생 학비를 버느라 생빠지게 고생하고 생활고에 지친 모습이 아니다.
돈을 버느라 여기저기 눈치 보는 곳도 없고, 일 하고 싶을 때 일하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빠져 사랑에 열중하고, 파전을 한 번 부치면 동네에 죄다 돌리고, 나그네도 몇날며칠 재워주고 먹여주고.
그녀의 경제력은,
1. 넉넉한 집 한 채가 있다.
신을 신고 들어가야하는 어두컴컴한 부엌(과 신을 신고 들어가야하는 어두컴컴한 화장실)이 흠이랄 수 밖에 없긴 하겠지만, 마루 양 쪽에 방 두 칸, 넓직한 앞마당이 있는 넉넉한 집.
2.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먹고, 물질을 하여 돈을 마련한다.
(물질하는 그녀)
(오, 쭉 뻗은 다리 봐라.)
집은, 아마도 그녀 부모의 부모의 부모부터 그냥 죽 살던 집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집 옆의 빈 땅에 나이가 되어 독립을 준비하며 몇 년을 걸쳐 흙을 올려 지은 집. 평당 얼마짜리가 아니라 그냥 아침에 밥 해 먹고 낮을 보내고 밤되면 몸 누이는.
뭔가 원초적 자연스러운 모습, 전문가랍시고 째진 오징어 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오징어 발로 그래프를 그려대고 성장률이 어쩌고 실업률이 어쩌고를 터진 입으로 질질 먹물을 흘려대며 꾸역꾸역 뱉어낼 필요, 대체 뭐 있겠는가(오징어한테는 미안하지만, 최근 읽었던 <포항>이란 단편에서 따온 은유임).
세계화란 똥물 이론이 어찌 나오겠는가.
학교 다닌 적 없고, 나이도 파랗게 젊은, 한 여자가 싱싱한 그 생명력 그대로, 거칠 것 없이 사는 그 모습이 환타지.
거기에 잠시 취했었다.
(물론 지금 쓰는 글의 내용에 맞기에 사진을 올리고 있긴 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전도연이 정말 예뻐. 자꾸 보고싶어.)
한 때 노래방에 가게 되면 '미워요'를 불렀었다. 아는 노래가 별로 없는 내가 노래방에서 마이크 붙잡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좋아하는, 좋아했던 노래들이다. 심수봉의 '미워요'도 정말 좋아했었다. '그 때 그 사람'도 가만 부르고 있자면 가슴이 울렁한다. 명곡인 것 같다. 국민가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도 그녀의 곡이고, 생각해보면 심수봉은 훌륭한 뮤지션인 것 같다.
'음악에 관한 한' 나의 스승인 나의 남편은, 그가 음악(과 영화)에 관하여 여러가지 점 영향 받았던 한 사람(이미 고인이 되신 그 분의 명복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빕니다.)이 좋아했던 뮤지션 중 하나가 심수봉이었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었다. 사실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심수봉은 정말 훌륭한 뮤지션인 것이다.
심수봉 콘서트 티켓이 생겼다. 오만원 씩이나 하는 표 두 장이.
민우회 후원콘서트라서 내 돈 주고 사야할 것인 것을.. (언젠가 십만원 짜리 두 장 사는 날이 오겠지.) 하여간에 이게 왠 떡인가.
어린이는 7세부터 관람이 가능하다고 표에 써있었지만, 딱히 맡길 데도 없고, 평소 라이브 콘서트 비디오를 보며 콘서트 관람자세를 익혀온 터라 규민이도 데리고 일찍 집을 나섰다.
이번 민우회후원콘서트는 심수봉 단독 콘서트가 아니라, 심수봉/김범수 콘서트였다. 김범수가 누구야?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이 사람 싼 맛에 불렀나보다. 심수봉 먼저 하면 심수봉만 보고 갈까봐 김범수가 먼저 나올 것 같은데, 그럼 심수봉 때까지 어떻게 참냐, 했는데, 왠걸 심수봉이 먼저 나왔다. 앗, 다행.
아, 이런 조명, 이런 라이브, 5년 전 쯤에 '차게&아스카'공연를 공짜표로 본 거 이후 처음이다. (과부 딸라빚을 내어서라도 부에나 비스타 쏘셜 클럽 공연을 봐야 했었다.) '차게&아스카'라니??? 어리둥절한 이름이시겠지만, 나도 어리둥절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인데도 공짜표 맛에 갔었다. 일본의 조용필급 가수라더니, 정말 수백명의 일본사람들이 올림픽공원까지 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 생판 알지도 못하는 가수라 그냥 대충 앞대가리만 보다가 나올 심산이었는데, 왠걸 끝까지 손뼉치며 잘 봤다. 차게와 아스카 두 사람이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열심히 노래하는 데 감동하였다. 같이 봤던 남편은 그 후로 이 두 사람 노래를 엠피쓰리 다운 받아 듣고다니기까지.. 열심히 하는 사람에겐 다 감동하기 마련이라는 교훈이 지금까지도 가슴에 남아있다. (남편은 그로부터 몇년 전 에릭 클랩튼 공연을 거금주고 보러갔었는데, 좀 성의 없이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했었던 경험이 있어, 이 날 차게&아스카의 교훈은 더욱 빛이 난다.)
역시 '그 때 그 사람' 첫곡. 아, 가슴을 울린다.
이런 노래를 갓 스무살 처녀가 만들다니.
그리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이 노래에 대해 좀 외설스런 이야기도 있던데, 그런 뜻은 아니에요. 실제로 제 친척분 중에 누가 외항선원이었어요. 그 분 배타러 가실때 부부를 제가 인천항까지 태워드린 적이 있는데, 인천항에서 남편이 떠나고 돌아오는 길에 신도림까지 그 부인이 우시더라구요. 그걸 보고 만든 노래에요." 창작자는 이래서 부럽다. 그 순간, 그 감흥, 손으로 만들어 남기다.
"그러니 외설스러운 뜻은 아닌데, 아무튼 좋습니다." 외설스러운 것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는 줄 알았는데 아무튼 좋다니, 역시 진정한 창작자는 자기 손을 떠난 창작품 앞에서 겸손하다.
이어지는 노래와 이어지는 이야기.
'남자의 나라'라는 노래에 관한. 남편이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가사. (가사를 읊음)
남자의 여자로 길들여진 척박한 이 땅
오늘밤도 마음 몇번이나 이별잔을 든다
선녀가 왜 떠났는지 나무꾼은 아직도 모르나...
하루가 천년같이 어이~어이~ 어이~
저 선비 왜 공부했나 사투리 나라 패싸움말고
자손들에겐 인색과 분노도 대물림 마오
---(중략)--
허기진 고독만 미끼처럼 칭칭 감아
이곳은 여자가 노예처럼 묶여지고 부려지는
남자들의 나라다
우뢰와 같은 박수.
민우회 후훤콘서트라서 일부러 한 이야기이겠지만, 실상 털어버리고 싶은 응어리였을 것이다. '사랑밖엔 난 몰라'자서전도 냈으니까(그러고보니 내가 심수봉에 관해 많이 아네) 이미 털어버려진 사연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런 말 하면 박수치고 응원해줄 듯한 사람들 앞이라 일부러 맘먹고 그런 이야기를 꺼내었을 그 심정이 정말 위로받았기를...
첫째 남편에게 너무 무섭게 맞았던 이야기, 둘째 남편의 언어폭력과 의처증, 세번째 남편은 자기에게는 무척 자상하나 아이들을 때려서 헤어질 결심을 했던 이야기..
정녕 훌륭한 예술가는 신의 질투를 사, 삶이 고달플 수 밖에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신의 질투를 받아 삶이 고달플지언정 나의 예술혼을 불태울 예술적 천재성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예술혼과 천재성을 팔고 젖과 꿀이 흐르지는 않더라도 눈물과 피는 흐르지는 않는 삶을 택할 것인가(삼십대 후반에 이런 고민).
맘먹고 아픈 과거사를 털어놓아서일까,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종종 눈가를 닦았다.
모두가 평화롭게 살기를 기원한다는 마지막 말과 함께, 자기가 가장 좋아한다는 '백만송이 장미'를 불렀다. 이 노래 왠 신파야, 했었는데, 갑자기 좋아졌다. 가사가 정말 평화지향적이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그리고 앵콜송은 '무궁화'.
심수봉씨, 앞으로는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노래 감사합니다.
김범수로 바뀌기 전 사이 시간에 '민우회 18년 ' 비디오가 나왔다.
민우회는, 아주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음에도 애증이 겹쳐있는 이름이다.
그곳에서의 실망은 다른 곳에서의 실망보다도 열배 백배 얼얼했었다.
혀를 내두르고 고개를 내젓고 몸을 확 틀었지.
그러나 '민우회 18년' 비디오를 보고있자니, 지지고볶으면서 저렇게 해왔구나, 싶었다.
그리고 김범수 차례, 무대 양 옆 거대화면에 무슨 사극 드라마 장면들이 끊임없이 나온다.
최수종이 오방 오바하며 투구를 쓰더니 여전 오바하는 눈빛, 상대는 누군지도 잘 모르겠지만 계속되는 칼싸움, 그걸 멀리서 지켜보는 아련한 눈빛의 아씨, 아씨의 한숨, 밤길, 최수종과 아씨와의 포옹, 아씨의 고전무용, 이번엔 아는 드라마인 것 같다, 본 적은 없지만, 인기가 많았다는 '다모', 배우들의 표정은 최수종의 오바 저리가라다. 노래는, 어디선가 들었었던 것 같은, 500만번째 똑같은 스타일과 똑같은 목소리 똑같은 표정 똑같은 가사 똑같은 멜로디..
과도한 얼굴표정의 배우들과, 과도한 액션들, 500만번째 듣는 저 판에 박힌 목소리와 가사와 멜로디의 노래, 이것들이 합쳐져 몽롱한 기분을 만들더니 배멀미를 하듯 어느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은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제발 그런 식의 극과 노래는 이제 그만 만들었으면 좋겠다. 공해다.
잘 달리던 말들을 수없이 넘어뜨리던데 저런 극을 위해 희생되어야하는 말들에게 너무나 미안하였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가끔은.
그 두 편의 영화는,
전도연이 나와서 무조건 보고싶었던 <인어공주>와 아녜스 자우이 감독이 찍어서 무조건 보고 싶었던 <룩앳미>.
아, 전도연 너무 이뻐.
전도연, 나는 <접속>부터 그녀의 휀이었다.
<접속>은 후진 듯 하면서도 때때로 생각나는, 그래서 아주 가끔 (이 년에 한 번) 다시 보면 그 당시(1990년대 후반) 냄새가 조금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거기서 전도연, 그다지 눈에 뜨이는 연기를 보여준 것은 아니지만, 나는 그녀를 두고두고 기억했었다. 신경숙의 <깊은 슬픔>을 떠올리는 슬픈 캐릭터였기 때문인지, 그녀의 외모가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는지, 마침 전도연의 휀인 남자와 내가 데이트를 시작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다음 영화, <약속>은 보지 못했고, 지금도 볼 생각은 없지만, 예고편에서 보았던 전도연의 표정 하나가 여전 기억남. 진료실에서 처음 박신양을 보고 첫눈에 훅 반해버렸지만 자기 감정을 애써 감추려던 그 표정. 그 표정, 참 그럴 듯 했지.
그리고 그 다음 영화, <내 마음의 풍금> 이거 진짜 전도연 영화다. 전도연이 있어서 산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뭐 특이할 것 없으면서도 보는 짬짬이 눈물도 짜고, 헤벌쭉 웃고 했던 것이 순전히 전도연 때문이었다. (그런 면에서 <인어공주>가 딱 제2의 <내 마음의 풍금>.) 촌스러움을 가장했지만 실상 이래도 이쁘지 않느냐?를 의도한 전도연의 저 분장과 의상, 정말 저래도 이쁜 전도연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으흐흐, 나는 계속 웃음.
<피도 눈물도 없이>, <스캔들>을 아직 보지 못 했는데, 아무래도 전도연 때문에 보아야할 것 같음. <해피엔드>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무리 전도연이래도 살릴 수 없는 꽝 영화. 하지만 <해피엔드>에서 딱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아내(전도연)의 불륜을 알고 이를 갈고 있는 남편(최민식) 앞에서, 아직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전도연의 저녁밥 먹는 장면. 남편이 끓여논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숟갈씩 입에 퍼넣는 그녀. 다리 한 짝은 식탁의자에 걸치고, "콩나물국, 시워~ㄴ하다."라며, 여전 실업자 남편을 꼬나보면서.
이 장면, 나는 감히 한국영화 명장면 베스트 5 안에 꼽겠음.
(괜히 또 하나 꼽는 명장면을 얘기하자면, <오아시스>에서 설경구가 공주(문소리)를 어머니 무슨 생일잔치에 데리고 가서는 밥 먹으며, 먹은 밥의 반은 다시 튀어나오며, 무슨 이야기를 킬킬대며 지껄이던 장면 있잖습니까. 그거. 지금도 자다가 가끔 꿈에 나옴.)
<인어공주>는 전도연의 영화다. 그녀가 1인2역을 하면서 극중 대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녀의 연기, 그녀가 내뿜는 매력, 그것 없으면 영화 없었다.
어머니와 딸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삼 가슴 절절한 것도 없고, 몇십년을 울궈먹은 그 타령이다. 목욕탕 때밀이를 하며, 욕도 잘 하고, 바닥에 침을 탁탁 뱉는 억척 아줌마인 엄마. 빚보증에, 월급 한 번 큰소리치며 마누라 갖다 준 적 없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아빠. 그런 부모가 끔찍한 현실인 딸. 고두심의 연기도 식상하다. 판에 찍어놓은 대로 나열하는 듯한 연기. 밋밋한 캐릭터와 단선적인 스토리.
박해일의 목소리와 선과 악이 겹친 그 얼굴, 그리고 전도연, 이 것이 없었다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 했을 듯.
그리고 연이어 <룩앳미
<타인의 취향>에 이어 정말 재미있었음.
권력자와 그 주변의 인간들. 그러나 권력자가 정말 그런 식이라면 사랑스럽지 않은가.
나는 사실 그 아버지, 독재자 캐릭터 좋았다. 그의 독설 스타일도 좋았다. 나는 권력도 없고, 원체 소심한 인간이라 그런 말들을 하지 못하지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직설적이고 싶다. (물론 짜증덩어리는 되지 말고.)
까페에서 어떤 소설가와 밥을 먹는데, 누군가 다가와 말을 시키는 장면
그 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 : 오, 책도 읽으시나보네.
다가와 말 시켰던 지나가던 사람 : 말이 좀 심하시군요.
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 :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렇지 않아요.
캬, 올 하반기에 본 영화 중 명대사 베스트 5에 꼽음.
그리고, 그런 부녀 관계는 한국에서라면 제법 성공한 관계 아닌가.
영화를 다 보고, 같이 본 사람과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나온 말,
"난 세바스티앙(딸의 새 남자친구)과 카린(권력자인 유명소설가 아버지의 부인)이 눈 맞는 줄 알았어."
이게 프랑스 문화와 한국 문화의 갭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인가 보다.
난 정말정말 둘이 눈 맞는 줄 알았다.
요번 주 월화수는 지난 주 감회를 올렸던 '오늘 수업'과 다른 현장이었습니다.
***
여긴 아주 아주 작은 학교였던 지난 주 '오늘 수업'의 학교 보다는 쫌 크다.
이 학교에서는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보고따라할 교과서로 잡고 있어서 (주먹구구 마구잡이 기분내키는대로 소지가 다분히 있는 방식의) 내 맘대로 수업은 안된다. 생전 처음으로 알게된 그 무슨무슨 교육철학을 덕분에 초스피드로 배우고 있는 중인데, 역시 몇백년 묵은 철학은 몇백년을 살아남은 이유가 있기 마련인지, 이 철학을 배우는 재미가 제법 괜찮다. 나 정도의 나이가 되면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 인생이 이러하지 않겠는가,(그래서 교육은 이러면 좋지않겠는가)를 만나며 곳곳에서 무릎을 탁 친다. 그리하여 다행히, 내가 속한 조직과 아직은 어떠한 트러블도 맞지않은 채 한 달 여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국민학생을 붙잡고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무지하게 싫어하였다.
(사실 국민학생이든 누구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은 다 싫다. 외국어 배우는 일은 좋다. 매력적이다. 그런데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당연한 소리지만. 매력적인 일을 하고나서는 고작 이렇게 짜증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가끔 환멸을 느끼곤 했지만, 실상 덕분에 거미줄 칠 뻔한 목구멍에 풀칠을 하기도 하였으니 할 말 없다. 그리고 이것 아니라면 그 매력적인 일을 어디 써먹을 데도 없다. 내가 그렇게 외국어를 잘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대충이 통하고 사기가 통하는 건 이 짓 밖에. 아, 이 심심한 현실. 불어처럼 도태되고 말 것이다. 나의 생활에서 불어는 사어(死語). 이렇게 아까울 데가... 어쨌든 나는 환멸을 느끼는 이 일을 조만간 그만두리라, 조만간 그만두리라, 결심하면서 이날까지 오고 말았다. '진중하게' 일을 맞는 기회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결국... 암튼)
처음에 이 학교에 지원한 것도 영어선생 자리가 아닌, 담임선생 자리였다.
여차저차해서 난 그냥 영어선생질 할 수 밖에.
그런데 초스피드로 학습해오던 그 교육철학이, 오, 심오하게도 외국어를 가르치는 일에서 또한 내가 외국어를 공부하며 느꼈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몇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었다.
확, 호기심이 불 붙는 걸 느꼈다.
실제로 이렇게 매력적일 주 있을지 직접 알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갑자기 이 일에 열심하게 되었다.
영어선생 노릇하면서 어깨넘어 담임선생 자리를 넘보려던 생각이 휙 바뀌고.
나는 수십가지의 교육자료들을 사고, 복사하고, 제본하고, 찾아내어, 모든 다른 책들을 보류하고 읽기 시작했고, 읽은 걸 다시 보고 고민하고 생각했다. (참 열심이네. 이런 선생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tolerance of ambiguity, 모호함에 대한 인내
머리가 굵어지면서 오히려 언어감각은 무뎌진다.
언어는 곧바로 의사소통의 수단일 뿐이고, 따라서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의 외국어는 피곤하다. 그러나 모국어를 익히기 전에 언어는 그냥 소리였다. 뜻을 모르는 단어와 알 수 없는 문법들. 그것을 그냥 받아들임. 관대하게. 긴장하거나 불안하거나 불쾌해하지 않으며. 그러면서 언어를 습득한다. 나로서는 (당연히) 기억하기도 전에 잃어버린 능력이다. 나는 언어 앞에서 뻣뻣하다. 긴장한다. 단어의 뜻을 생각하고 문법을 여기저기 끼워맞춘다. 외국어가 아니라 사실 모국어 앞에서도 뻣뻣하다. 긴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해보다 오해가 많다는 경험 때문에도 그렇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잘 듣지 못하는 성질 때문에도 그렇고, 나이를 먹어가며 나의 언어감각은 기름을 쳐도 유연해지지않는 고철고물이 되어간다. 물처럼 유연했을 나의 언어감각, 볼 수는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아름다웠을 것 같다.
콤플렉스처럼 규민 앞에서는 절대로 영어 운운 하지 않겠다는 촌스런 방침도 걷었다. 내가 규민에게 처음으로 들려준 영어는 짧은 동시. 노래로도 부르면서 규민이 학교에 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흥얼흥얼, 몇번 했더니 규민은, 거짓말처럼 그 동시를 스르륵 외웠다.
아, 정말 맞다, 언어는 아름다운 것, 심오한 것, 본능처럼.
나, 예전에, 한반에 육칠십명 들어있던 교실 한자리에 앉아있을때, 말도 안되게 산만한 아이를 보면 싫었었다. 나까지 정신없게 만들고, 선생님 말씀하시다가 딴길로 새게 만드는(누구누구 조용히 해라, 누구누구 딴 짓 하지 말아라,란 잔소리 하게하는) 아이들 싫었었다.
난 모범생이었다. 수업시간에 정말 수업내용을 들으며 공부를 했고, 그땐 과외니 학원이니 하는 것들이 없던 시절이라(아, 정말이지 그때 학교를 다녔던 건 천만다행) 그 정도만 해도 성적이 나쁘지 않았었다. 성적에 관한 한, 그러니까 '학습수행' 면과 '학습성과' 면에서 이야기하자면, 나의 학창시절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학교를 되돌이켜 생각할 때마다 매번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의미였던가, 싶지만, 하여간에) '학습수행'이 덜 방해받길 바랄 것 같다. 지금도, 내가 다시 학교로 학생으로서 돌아간다면. 그 마음도 이해가 간다. 존중해주고 싶다. 너는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데, 이 상황이 널 방해한다면, 다른 교실을 마련해줄께. 한 번 하고싶은 껏 열심히 해봐라,라고 그 학생에게 말해주고 싶다.
통합교육에서, 장애아로 인해 비장애아의 학습이 방해되고 학습성과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학습이란 단면만 놓고 보면 틀린 소리는 아닐 것이다.
언뜻 나는 이것을 제일 먼저 생각했다.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데 아이 부모는 무슨 생각일까, 싶었다.
뛰어난 학습 성과, 엘리트 지향 의식은 이토록 지배적이다.
12년간 국민교육을 받고, 4년간 고등교육을 받고, 10년간 사회생활을 한 나를 지배하는 엘리트 지향 의식.
그래, 니가 걱정하는 게 공부 못 할까,라면, 공부 잘 해서 무얼 하는데?
공부 잘 하는 것으로 무얼 의도하고자 하는 건데?
(할 말을 못 찾음)
물론 지적욕구의 실현이 방해받지 않았으면 바란다.
그러나 내가 추구하는 지적욕구의 실현은 자아의 충족이다.
착착 진행되는 교과 진도에 맞추어 시험문제 풀기로 뇌와 손을 정비하고 몇명 중에 몇명 당락 선의 이 쪽 안에 들어가도록 노련하게 익혀가는 기술이 아닌 것이다.
그 기술이 사람을 얼마나 잡는다고 한탄해왔던가.
당락 선 저 쪽으로 나가 떨어진 몇명 중의 몇명 뿐아니라 당락 선 이 쪽에 들어간 몇명 중의 몇명 또한 모두 다 잡아 먹고야마는, 그래서 시스템 신봉자나 시스템 낙오자나 만들 뿐이어서 결국에 살아남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 뿐인 짓거리라고 얼마나 한탄해 마지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막상 '학습수행과 학습성과'를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올리다니.
장애아 통합교육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이유는 이렇다.
그 효용이 어떻고 인도적 이유가 어떻고 간에, 사람은 없고 시스템인 사회가 싫어서다.
모든 것 앞에 존재하는 '이것은 이러해야한다'.
모든 것의 원리, 방식, '이것은 이러해야한다'.
착착 진행되는 모든 시스템에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싶은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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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진이 보고 싶은걸. 공교롭게도 나 역시 카슨 맥컬러스의 소설을 읽고있는 중인데. 이심전심, 일심동체인 것인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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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껀 뭐지?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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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예닐곱때 보고, 또 작년 백수 시절에 한번 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 그 어린 나이에, 사람에 대해서나 사랑에 대해서나 손톱만큼의 환상도 없이 통찰하는 눈을 가졌었다라는 게, 좀 슬프게 느껴지지 않더냐.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