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장에서 양주 처먹으며 민중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들의 세상이 아니라, 피땀흘려 일하는 농민·노동자·민중이 제 대접받는 세상, 농민 해방의 세상을 위해 죽지않고 살아서 끝까지 쉼없이 투쟁해 나갈 것이다. 열사여, 부디 다시 태어난다면 농민이 주인되고, 생산의 기쁨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다시 부활하소서."
전농 문경식 의장이 오추옥 열사를 추모하면서 했던 말이다.
나는 이 말을 직접 듣지는 못했고, 나중에 매체를 통해 읽게 되었지만 그 말의 절박함과 진실됨 그리고 무거움을 충분히 느끼게 되었다.
요즘 처럼 수 많은 말들이 난무하는 시절에 내가 진정으로 기억해야 할 말 몇 마디를 찾아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말을 나는 가슴에 새겨넣었다.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이 썩어빠진 세상을 완전히 바꾸는 실천을 함께 벌여나가기 위해 노래로 만들 결심을 했다.
이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천이다.
그리고 피흘리는 세상의 모든 자매들이 나에게 부여한 사명이다.
이것을 인식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고, 나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괴감 때문에 섣부르게 실천에 옮기기도 힘들었다.
이제는 나의 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다.
그 한계를 넘어설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내가 가진 능력의 한계까지만 움직이면 된다는 것을, 그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자신의 능력이 많든 적든 가진 것만이라도 잘 활용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가진 음악적 능력이라는 것이 정말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을 타고 흐르는 선율들을 조금씩 뽑아내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저녁 6시가 가까워오자 나는 촛불추모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향했다.
먼저 문경식 의장을 만나서 내 의사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추웠고, 1시간 30분을 가만히 앉아서 또는 서서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더 줄어있었다.
차라리 행진이라도 했으면 좋으련만...
촛불집회 막바지에 이르러 문경식 의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내가 매일 먹는 이 쌀이 완전히 수입개방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몬산토니, 카길이니, 콘티넨탈이니 이런 초국적곡물기업들이 대량으로 만들어낸 유전자 조작 쌀을 먹게 되겠지.
이것은 너무도 끔찍한 일이다.
이미 쌀을 제외한 다른 먹거리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음을 난 안다.
그리고 이제는 쌀마저 그렇게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내가 농민회 회원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절박하게 싸워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윤밖에 모르는 더러운 대기업들이 내가 먹는 것까지 모조리 좌지우지하는 꼴을 나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그런 심정으로 문경식 의장에게 다가갔다.
멀리서 그를 쭈욱 지켜보았지만 쉽게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그에게 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일뿐이다.
누가 불쑥 나타나 내 말을 노래로 만들고 싶다면 난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생각해보았다.
...
당신의 말을 노래로 만들고 싶다고, 나는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소개하면서 문경식 의장 앞에 섰다.
그는 두 손을 내밀어 내 두 손을 덥썩 잡았다.
그의 손은 차가웠다.
"당신 같은 젊은이들이 있어서 그래도 세상엔 아직 희망이 있어요."
라고 문경식 의장이 내게 나즈막한 소리로 이야기했다.
눈물이 나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그리고 나는 몬산토 쌀을 먹지 않기 위해, 가진자들의 몽둥이에 더 이상 힘 없는 민중들이 쓰러지지 않기 위해 기타를 들었다.
조그만 희망의 싹이라도 틔워내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