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골이 송연해지다
살아 꿈틀거리는 아나키 2004/10/06 09:54
2004년 10월 4일 월요일 오후 서울 시청 앞 광장
우연히 나는 이날 이곳에 가게 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모른 채.
나는 거기서 '모골이 송연해지다'가 뭔지 실제로 느꼈다.
그곳에는 10만 명 이상의 보수우익들이 집결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국가보안법 절대 사수를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군복을 입고 서로 경례를 주고 받는 늙은 아저씨들,
단체 관광이라도 온 듯 시끄러운 아줌마들,
그리고 의외로 화사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녀들도 눈에 띈다.
그들의 다양한 모습과는 달리 하나같이 눈에서는 살기가 느껴진다.
이날 '파병철회'라는 검은색 구호가 크게 적힌 가방을 매고 자전거를 타고 신촌에서 명동성당으로 가던 나는 의례 시청 앞 광장을 지나가려 했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왠 군복을 입은 할아버지들이 서성거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나는 거대한 악마의 소굴에라도 들어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글쎄, 착각이었을까...
나는 두려웠다.
난생 처음 그렇게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만 완전히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동질감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수십만의 인파들.
그들이 내가 타고 가던 자전거를 잡아 채고는
'이봐라, 여기 빨갱이가 한 마리 있다'고 소리 지르며 집단으로 날 린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나는 만약 그런 상황이 오면 어떻게 위기를 헤쳐 나가야 하나 고민했다.
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그냥 그 군중들에게 두들겨 맞으며 발길에 채이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느끼며 나는 그들 사이를 천천히 빠져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뿜어내던 집단적 살기에 완전히 기가 질려버린 나는 이렇게 많은 이들이 극우의 목소리에 공명하고 있음에, 그 암담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그저 그곳을 빠져나가고만 싶었다.
하나의 정치적 이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이렇게 끔찍해지는 것일까.
좌파들이 외치는 '권력 쟁취'라는 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 곰곰히 생각해볼 때다.
권력을 먼저 쟁취하지 않고도 현실 권력을 해체하는 방법을 깊이 고민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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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노동자권력
* 이 글은 돕헤드님의 [모골이 송연해지다]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가 작동하는 공간이다. 어떤 투쟁이든지, 그렇다. 더 나아가 사회 자체를 바꾸고자 한다면, 궁극적으로 권력 - Tracked from 2004/10/06 20:04 DELETE
Subject: 조갑제, 굉장하다!
조갑제,"한나라당은 무생물 정당"에 대한 트랙백자신이 보수세력이라고 생각하는과격한 아저씨들,결국은 운동권 아이들처럼거리로 옹기종이 모였다.운동권 애들이 한 거그대로 따라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