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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데이즈

하늘이 또래의 아이들이 주검으로 돌아오고

엄마들은 무너지는 가슴으로 오열하는 이 때에

나는 왜 이 영화를 봤을까?

아이들이 생긴 후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상황은

아이를 잃어버리는 일이다.

가끔 아이를 업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앗 아기가 어디있지?'하며 철렁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아기를 잃어버리는 일은 무서우면서도 일상적인 공포이다.

딸을 위해 전력질주를 한 후 더이상 딸이 없음을 알았을 때 느끼는 공포

그 때부터 정말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영화에 온 정신을 뺏겼다.

 

나는 대체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정신에 투철한 사람이라

영화에 나오는 엄마들의 선택을 지지한다.

잠깐 딴얘기를 하자면

언젠가 아침방송에서 왕따를 극복한 아이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아이는 왕따시키는 아이들이 자신을 받아들일 때까지

자존심은 땅에 묻은 채, 그 애들의 청소를 대신 하고

그 애들이 좋아할만한 행동을 하면서 갖은 노력을 다했다고 한다.

그애는 지금 인터넷에서 왕따들을 위한 상담까지 하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 대해서

어른들은 어쩌면 저렇게 무능할 수가 있는지.

가까운 사람의 딸도 학교 일진한테 찍혀서 학교를 그만 두고

몇 군데나 대안학교를 전전하면서 절망스런 상황에 빠져있다.

나는 만약 내 딸이 불합리한 이유로 왕따를 당한다면

<남쪽으로 튀어!>의 삼촌처럼 가해아이를 불러 내어

팔을 부러뜨려 줄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 필요 없겠지만 니가 그동안 한 행동을 생각해보면

이런 일을 당할 이유를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알쏭달쏭한 말을 남긴 채

죽지 않을 만큼 지그시 괴롭혀줄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폭력이 얼마나 사람을 두렵게 만드는지

알게해줄 것이다.



3주일 째 하늘이를 마중나가는데 지난 주부터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다.

그애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건 3월 초,

1번 하늘이 뒤에 서있는걸 보면 2번인 것같은데

사소한 일로 울었다. 그런데 안쓰러울 정도로 우는 게 찌질해보였다.

그냥 짝꿍인 2번 여자애가 팔꿈치로 가슴을 쳤을 뿐인데 울었다.

하도 찌질하게 울어서 웃음이 날 정도였는데

하늘의 짝꿍인 1번 남자애가 웃자 하늘이가 "우는데 왜 웃어!"하며 째려봤다.

그 순간 하늘이 참 좋아졌고 2번 남자애가 잘 지냈으면...하는 바램이 생겼다.

 

그 뒤로 매일 하늘에게 물어본다.

오늘도 2번은 울었어?

2번은 거의 매일 운다.

그림 그리기를 잘 못해서 짝꿍이 도와줬는데 선이 어긋나게 그려졌다고 울고

왕관만들기를 하는데 선생님이 나눠준 종이를 잃어버렸다고 울고

(나중에 그 종이는 쓰레기통에서 찾았다고 한다)

매일매일 운다.

어느 날은 하늘이가 "엄마, 오늘은 2번이 웃었어"하고 얘기해주었다.

가장 안좋았던 날은 "남자애들이 괜히 2번을 막 밀어서" 운 날이었다.

하늘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를 대략 재구성해보면

2번남자아이는 이제 울보로 소문이 나서 남자애들이

장난으로 걔를 울리는 정도까지 되어버렸다.

그 때 여자애들은 2번 남자애를 위로해주면서 남자애들을 비난했다고 한다.

겨우 3주일째인데 어떤 아이들은 약자를 괴롭히는 일에서 기쁨을 느끼고있다.

고정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나는 2번 남자아이의 엄마가 궁금했다.

그냥 하늘이가 2번이랑 친하게 지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고

2번 남자아이의 엄마랑도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어제 하교시간에 "ㄱㅎ야, 나 하늘이 엄마야. 지금 집에 갈 거야?"

하고 물어봤더니 ㄱㅎ는 "나 더 놀다 갈거예요."

엄마는 안오셔? 하고 물었더니 "우리 엄마는 안와요. 나 놀다가 공부하러 가요"

그렇게 말했다. 생각보다 또박또박 말을 잘해줘서 기뻤고 그냥 기분이 좋았다.

 

사실 이런 식의 관심은 지나치게 주관적이고 또 어설프다는 것을 안다.

견성한 스님들이 쌀쌀맞고 선무당이 다정한 이유는

어떤 존재에 대한 진정한 염려는 무관심일 수 있다는 진리에 대한 태도때문이니까.

매일 밤, 2번 남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하늘에게

"혹시라도 그 애가 부당하게 괴롭힘을 당한다면 네가 말려줘"라고 부탁했고

하늘은 당연하게 "부당하다는 말뜻이 뭐야?"라고 물음으로써 이야기가 길어졌다.

어느 날 내가 "오늘도 ㄱㅎ가 울었어?'"하고 물으니

하늘이가 "엄마, 오늘은 내가 울었어."라고 말했다.

자기는 열이 나서 아파 죽겠는데 1번 남자아이가 거짓말하지 말라고 그랬단다.

그렇게 울고 있으니 1번 남자아이가 미안하다고 했다고한다.

그런데 1번 남자아이는 하늘에게 침도 뱉었다고 한다.

그래서? 너 울었니? 하고 물었더니 하늘은, 아니, 선생님한테 일렀어.

그애는 나한테만 그런 게아니라 다른 애들도 괴롭혀. 라고 말했다.

 

그말 끝에 남편이 말한다.

하늘아, 선생님한테 일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네가 그 애한테 말해.

너 그러지 마라. 나는 니가 그러는 게 싫다.

그렇게 화도 내면서 힘있게 행동을 해야 해.

누가 너한테 잘못된 행동을 하면 너도 맞서서 그러지 말라고 말해야해. 알았어?

하고 말했고 하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이 생각보다 잘 학교다니는 일을 잘해내는 것같아 대견스럽다.

 

1년 전, 어린이집의 모든 친구들이 유치원으로 옮겼다.

어린이집의 이모도 그것을 권장했다.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단체생활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히늘은 어린이집에 남기를 원했고 우리들은 그 선택에 따랐다.

학교라는 곳에 적응을 잘하기 위해서 1년을 미리 연습한다는 게 이상해보였다.

우리는 하늘이가 현재를 즐기고 지금 행복하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렇게 지낼수록 하늘은 스스로의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다.

두번째 주에 학교에 가기 싫다고 눈물을 보인 이후

하늘은 이제 학교가는 일을 두려워하지않는다.

 

오늘 아침, 하돌이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자

하늘이 "나도 학교에 그렇게 가고 싶은 건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래도 다니다보니 재미있었어. 하는데 어떻게 말해야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처음 나는 "아빠도 일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노는 거 더 좋아하고

누나도 학교보다 집을 더 좋아하지만 나갔다가 다시 집에오면 더 재밌잖아"

라고 말하다보니 뭔가 이상했다.

그 말에 이어 남편이 "나는 밖에서 일하는 게 더 좋아"라고 말했고

하늘도 "나도 학교에 가는 게 이제 좋아"라고 말했으니까.

그럼 행복해하지 않는 하돌을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는 건 잘하는 건가?

갑자기 머리가 띵~해졌고 결국 다시 내가 해야할 일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지금,앵두를 돌보는 일 외에는 다른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이 상황이 길어진다면 하돌과 집에 있는 편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하돌은 오늘도 헤어지며 눈물을 훔쳤고 아침마다 집에 있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 요청을 거절하면서 나는 낮동안 헤어져있어야하는 이 가족의 모습이

적절한 것인가, 잠깐 의문에 빠졌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무엇을 준비하는지 근본적인 의문에 빠지게 된다.

<세븐데이즈>의 엄마는 아이가 사라진 후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자는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가끔 이 시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좀 두려워진다.

아이의 소원을 왜 들어주지 못하는 건가. 뭐가 중요한 건가 그런 생각.

2층의 하돌이네 반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내려오는데

1층 영아반에서 한 아이가 목놓아 울고있다.

흐느끼며, 보이지 않는 엄마를 향해,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을 달래려고

"엄마, 빨리 오세요. 엄마 나 빨리 데리러오세요~"하며 목놓아 울고 있다.

저 시간이 자연스럽게 거쳐야하는 게 맞는지 갑자기 의문스러워진다.

지금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 건가.....우울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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