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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구성안 일부를 끝냈고 이제 두번째 시기 족보를 보고 있는 중이다.
2부라고 쓰고 초반부분을 구성하다가 '나 지금 대하다큐만드는 중인 거야?'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출산휴가가 끝나고 사무실에 돌아오면 항상 수익사업을 먼저 했었는데
이번엔 동료들이 시간이 없다고 본작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그래서인지 영 감도 떨어지고 더디다.
수익사업은 사무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작업자들이 윤리적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상태에서 작업에 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DW선배 말 처럼 내내 작업만 죽어라 하면 숨막혀서 어떻게 사냐고...
그래서 누군가의 대변자가 되어서 그 분들의 요청만을 충실히 수행하다 보면
그래서 행사 때 상영하는 자리에 있다 보면 세상에 도움이 되었다는 기쁨에 빠져들기도 한다.
어쨌든 이번에는 그런 워밍업 없이 바로 작업에 들어갔다.
나의 작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첫번째 부분에 대한 정리는 어제 끝났다.
작업 시작 하루만에 끝난 건 아니고
사실은 4월부터 내내 1부를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걸린 시간만으로는 7개월 가까이 된다.
발견 없는 다큐멘터리는 실패다.
다행히 나는 이번에도 어떤 발견을 했고 그 발견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오케이들을 고르는 중이다.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나씩 뽑아내다보면 어느 세월에 끝내나 하는 한숨이 나지만
일단 다듬은 재료들을 작업대에 다 모아놓아야만
응용도 변주도, 구성의 묘도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항상 나는 생각한다.
나는 정말 재능이 없어. 감각도 없고. 그러니..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성실 밖에 없잖아.
성실하다면 열심히 한다면 최소한 기본만은 할 수 있지 않겠어...
기본만 하는 것도 나한테는 벅차니까.
얼굴에 책임을 질 나이라는 마흔.
트라우마라는 것에 대해서 더이상 말하지 말아야할 나이.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서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마운 분이 게장을 주셔서 아이들한테 발라주다가 손에 가시가 박혔다.
손끝이 자꾸 아파서 보니 살갗 아래로 까만 가시가 보였다.
장미가시에 찔려죽었다는 어떤 시인을 생각하면서 이거 어떡하지? 걱정했더니
남편이 그냥 가시는 저절로 나온다고 했다. 그말이 맞는지 이제 손은 아프지 않다.
모든 가시들이 다 그렇게 저절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언젠가 동생이 말해주기를 이를 뽑은 후에 상처가 아무는 단계가 있는데
그 중 어느 단계에서 잘못되면 상처를 후벼파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단다.
이를 뽑은 후에 술 마셔도 되냐고 물으니 그렇게 말해서 좀 겁을 먹긴 했었다.
상처라는 게 단계별로 순순히 아물지 않으면 나중에라도 후벼파서 원점으로 돌려야 한다는 말일까?
상처라든지 트라우마라든지 그런 말을 이젠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제 내년에 마흔이 되는데 저절로 밀어내지는 게장 가시같은 게 아닌
내내 살 속에 파묻힌 가시를 내 마음에 남길까 봐 조금 걱정이 된다.
세영감독의 <버라이어티 생존 토크쇼>를 보다 다섯 번 정도 자리를 떴다.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보고...
내 안 저 깊숙한 곳에 제대로 빼내지 못한 가시같은 게 있어 자꾸 건드려지는 느낌이었다.
상영이 끝나고 세영감독한테 그런 얘길 했더니
사는 데 지장없으면 그냥 살아도 된다고 얘기해주었다.
사는 데 지장이 없는 것같긴 해. 가끔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긴 하지만 괜찮아.
솔직히 20년 가까운 세월의 더께가 쌓여있는데
그걸 파헤치고 가시를 빼내려면 피도 날 것이고 많이 아플 것이다.
내가 영위하는 일상이 깨뜨려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피를 흘려가면서 깊은 곳까지 파헤쳤는데
그 가시가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어서 살을 꼭 붙잡고 있으면 어쩌지?
<...토크쇼>의 누군가는 성폭력의 경험이 진로를 바꿀 만큼 큰 영향을 미쳤지만
나는 바로 다음날 잊자고 생각했다. 이 일은 잊어야한다고.
나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그렇게 믿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건 꿈이었다고 그냥 꿈이었다고 생각해야 한다.
내가 입밖에 내는 순간 그건 현실이 되어버린다고 그 현실을 나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20년 가까운 세월동안 나는 딱 한 사람에게만 그 얘기를 했었는데
<...토크쇼>를 보다가 나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다른 얘기만 실컷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그 얘기를 꺼낸 후 나는 생각보다 많이 상처 받았다.
'그 사람도 무척이나 괴로워한단다'
거기서 더 나아가면 나는 더 큰 상처를 받을 것같아서 그냥 멈췄다.
그냥 잊자. 그동안 괜찮았는데... 사는 데 지장없었으니 그냥 살아가자고 생각했다.
그 가시는 그냥 두는 게 낫겠어. 하지만 영원히는 아니고 당분간만이다.
게장 가시처럼 그냥 스르르 빠져나가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2. 유이카와 케이
균질성이 떨어진다. 어떤 책은 너무 성기고 어떤 책은 적당하다.
<어깨 너머의 연인> 중 일부를 옮겨적는다.
"왠지 요즘은, 남자들한테 아양떠는 게 싫어졌어요."
"어머나, 웬일."
"아양 안 떨어도 나, 인기 있어요. 그건 알고 있어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서비스를 하게 된다니까요.
이러면 상대방이 좋아하겠지. 하면서 나도 모르게 한다니까요."
후미는 그 굵은 목을 천천히 앞으로 내밀었다.
"당신 말이지, 부모님 사랑 못 받고 자랐어?"
루리코는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애교떨고, 떼 부리고, 울고, 그러지 않으면 부모님이 쳐다보지도 않았던 거 아냐?"
"글쎄요."
"그런 어린 시절을 보내면, 당신 같은 어른으로 크는 법이야. 음, 그러니까 그런 걸 뭐라더라?"
"트라우마요?"
"아아, 그래 그거."
루리코는 멍하니 부모의 얼굴을 떠올렸다.
둘 다 일이 있고, 애인이 있고, 자유를 무엇보다 존중하고,
아내와 남편이기 보다 아버지와 엄마이기보다, 개인으로서의 삶을 지금도 여전히 살고 있다.
나이가 이쯤 되니까, 그런 두 사람의 삶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가족들이 사는 모습에 신경을 쓰던 시절에는 왜 이혼하지 않을까, 왜 자식을 낳았을까,
의문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다른 가정과는 정말 달랐다. 관심이 적었던 것이리라.
하지만 모든 것을 부모에게서 받은 트라우마 탓으로 돌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 가령 닥치는대로 남자하고 잔다던가,
툭하면 도둑질을 하고 싶어진다든가, 화가 치밀면 폭력을 휘두른다든가, 사람을 죽이는 것도
모두 트라우마 탓으로 돌리면 그만일 것이다.
모든 주위 사람들에게 애지중지 소중하게만 여겨진 과거 따위 있을 리 없다.
악의는 어디든 존재하고, 모두들 악의에 노출된 채 살고 있다.
완벽한 부모 따위 없다.
부모 역시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다.
그 부모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지면 자기도 트라우마를 짊어지고 있다고 고백할 것이다.
결국은 책임 전가일 뿐이다.
"난 그런 거 싫어요."
사소한 일로 상처 입고, 그것을 무슨 깃발처럼 높이 쳐들고, 따뜻한 곳으로 도망치려 한다.
포근한 이불에서만 자면 등뼈가 굽는다.
부드러운 것만 먹으면 치주농루에 걸린다.
3. 기록하기
<어게인>의 영탁은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기 위해 삭발을 한다.
나는 기록을 통해서 변화를 감지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할 수가 없다.
하늘에게 항상 미안했는데 기록들을 보니 지금 앵두에게 하는 것만큼 하늘에게도 극진했더라.
물론 촬영을 했다는 건 그 순간만큼은 여유가 있었다는 얘기겠지.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가 없잖아. 지금 이 순간이라도 더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자.
4. 캐비넷 싱어롱
어제 밤 불을 끈 후 하늘이 물었다.
"엄마. 엄마한테 전화하면 "물론 누구도 끝까지 갈 수 없어"라는 노래가 나오잖아.
그 사람들 어디 가는 거야?"
하루를 마감한 후 잠자리에 들기 위해 불을 끈 그 시간에
딸과 함께 좋아하는 노래 가사의 의미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 나는
성심성의껏 설명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하고 물었더니 하늘..
응 알겠어. 근데 잠깐만.
야! 너네 조용히 안해? 무슨 소린지 하나도 안들리잖아?
옆에서 하돌과 앵두가 레슬링을 하고 있긴 했었지만...들리는 줄 알았는데.
다시 얘기하려고 하니 그 전 컬러링이었던
엄마, 그 렛잇비라는 말 뜻이 그냥 내버려두라는 말이면
개그콘서트에 아저씨 둘이 나와서 "내비둬~" 그거랑 똑같은 거네.
그렇게 듣고 보니까 또 그렇네.
그래서 그렇다고 대답한 후
우리는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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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ra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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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마흔? 엄청 동안이군요...부러워~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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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이라기 보다는.....옷이며 신발이며 하고 다니는 게 그래서...옷을 별로 안 사서 10여년 전 옷을 그대로 입어서...그런 거 아닐까요? ^^
칭찬이라 생각하고 기뻐할께요.
사실 요즘 거울 보면 주름도 너무 많고 기미가 많이 생겨서 약간 슬퍼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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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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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엠~ 건강하죠? 오랜만에 왔더니 아즈라엘도 있네효!! 나도 빨리 마흔이 됐으면 좋겠어효.(퍽 퍽;;)부가 정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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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되기 전에 빨리 블로그를 여시오... ^^부가 정보
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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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좋아하는 김해자시인의 시한편 남깁니다..^^마흔즈음,
김해자
한몸인 줄 알았더니 한몸이 아니다
머리를 받친 목이 따로 놀고 어디선가 삐그덕
나라고 생각하던 내가, 내가 아니다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언제인지 모르게
삐긋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가슴을 따라주지 못하고
충직하던 손발도 저도 몰래 가슴을 배반한다
한맘인 줄 알았더니 한맘이 아니다
늘 가던 길인데 바로 이 길이라고,
이 길밖에 없다고, 나에게조차 주장하지 못한다
확고부동한 깃대보다 흔들리는 깃발이 살갑고
미래조의 웅변보다 어눌한 현재진행형이 나를 흔든다
후배 앞에서는 말수가 줄고 선배 앞에서는
그가 견뎌온 나날만으로도 고개가 숙여진다
실행은 더뎌지고 반성은 늘지만 그리 뼈아프지도 않다
모자란 나를 살 뿐인, 이 어슴푸레한 오후
* 김해자 시집 '축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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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형... 두고 두고 읽을께.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