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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주차 사노위 주간초점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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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99% 세상을 가져라 OCCUPY WORLD

 

99% 세상을 가져라 OCCUPY WORLD


분노가 행동으로

지난 15일 세계 80여개국 1,500여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시위가 벌어졌다. 그 양상과 규모는 저마다 다르다 하더라도 가장 신속하고 열렬한 국제행동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놓은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인민의 멋진 세계적 화답이다.
불과 한 달 전 9월 17일 소수의 사람이 월가에 집결했을 때 국제 가십기사로 다루어졌던 ‘월가를 점령하라’시위가 한 달 사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분노가 국제적 행동으로 전화되기까지 짧은 시간인 것 같으나 그 휘발성은 이미 노정된 것이다. 2008년 증폭된 자본의 위기는 이미 유럽의 재정위기와 구조조정으로 인민을 위협하였고, 전 세계적 저항은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 유럽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국제 공동행동 제안 이전에도 길게는 몇 천 킬로를 걸어 ‘분노한 사람들’이 유럽 각지에서 유럽연합 본부가 있는 브뤼셀로 향하고 있었다. 세계는 그야말로 체제에 대한 분노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세계적 저항은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불만으로 표출되고 있고, 분노의 화염은 좌충우돌하며 근본적 문제로 치닫고 있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의 균열

재정위기로 인한 유럽 등에서의 투쟁 등과 비교하면 미국의 투쟁이 세계적으로 신속히 확산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운동적 성숙과 무관하게 미국이 차지하는 국제적 위상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기축통화와 세계적 수탈로 자국 인민의 불만을 무마하였던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국의 인민에게도 수탈의 본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가장 보수적인 미국 인민의 저항은 자본주의 역사적 승리 선언이 백일몽에 지나지 않음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심장인 미국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아래로부터 발화되고 있다. 현재의 저항 동력이 오바마의 정치농간에 포섭될 지, 아니면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나아갈지는 지금 국면에서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미국사회에서 금융자본을 비롯한 전체 실업, 주택, 의료 등의 사회문제가 쉽게 봉합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적어도 자본주의 균열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가 되고 있다.     
          
자본주의를 언급하지 않고서 불가능한 현실

미국 시위가 세계로 번지는 한 달 사이 놀랍게도 주류 언론조차 자본주의의 위기를 논하고 있다. 물론 초점은 금융자본의 ‘좀 과한’ 탐욕이다. 이는 전체 자본주의는 충분히 교정될 수 있는데, 그동안 금융자본을 너무 풀어줬다는 정도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시중은행의 2조 원 가량 순이익을 주주에게 배당하지 말고 사내 유보금으로 적립하자고, 정부와 한 목소리를 낸다. 이미 확산된 분노를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에 국한하려 한다. 자본주의를 언급하지 않고는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없는 상황에서 분노의 대상을 제한하려하하니 시중은행에서는 “영업성과가 나쁠 때는 나쁘다 타박하고, 많이 벌면 많이 번다고 타박한다”고 투덜거린다. 왜 나만 가지고 난리냐는 것이다. 문제를 모두 금융자본에게 떠넘기려는 자기모순이 그들 내의 이전투구를 만들어내고 있다. 어찌되었든 상황은 바야흐로 방어하건 공격하건 누구든 자본주의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세상을 다 가져라

순식간에 전 세계에 불어 닥친 “점령하라”. 한국의 인민은 어디를 점령해야 하는가? 여의도에 가야하는 것인가? 아니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상징일 뿐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진원지로서 분노의 일차적 표적에 지나지 않는다. 월가를 넘어 각지로 점령의 표적은 확대되고 있다. 이미 한국에서는 촛불항쟁과 희망버스 등으로 미국 인민의 투쟁과 다름없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인민도 곧이어 깨닫게 되겠지만, 거리를 점거하는 것만으로는 ‘점령’의 이상을 성취할 수 없다. 인민이 취해야 할 곳은 따로 존재하는 일부분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철저히 작동되고 생생하게 발현되고 그래서 대다수 인민이 고통받는 바로 이 세상 전부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이미 우리의 점거의 구호이며, 더불어 “실업 없는 세상, 부채 없는 세상, 야간노동 없는 세상”은 점거의 구호가 되어야 한다. 거리만이 아니라 공장과 학교도 거점이 되어야 한다. 99% 인민이 점령해야 할 것은 1%가 점령한 세상이다. 1%의 세상이 자본주의이고 99%의 세상이 사회주의다.                 

김재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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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OCCUPY WALL STREET 현실과 나아갈 길은?

 

OCCUPY WALL STREET 현실과 나아갈 길은?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는 운동이 짧은 시간에 전 세계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뉴욕 맨해튼에서 시작된 소규모의 캠페인은 9월 26일 경찰의 진압을 거치며 급속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노동조합과 시민사회단체가 참가한 10월 5일의 전국적 대규모 집회를 거쳐, 10월 15일에는 전 세계 1,500여개의 도시에서 공동행동 시위가 진행되었다.

 

악마가 있다면 주소지는 바로 월스트리트일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는 시위에 참여하는 구성원들의 사정과 요구는 다양하다.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오직 1%의 부자만을 위하고 있다는 것과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이 그 1%에 의해 착취당하는 압도적 다수, 바로 99%라는 것만이 시위대의 단일한 정체성이다. 그들이 폭로하려는 것은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이다. 또 리더가 없는 저항운동이라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주요한 타겟으로 삼고 있는 세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일자리의 감소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나는 학자금 대출, 그리고 의료비용의 급등이다. 

미국 실업률은 공식적으로 9%이며, 파트타임 노동자와 구직을 포기한 자들을 포함하면 16.5%에 달한다. 임금은 1년 전에 비하여 2% 삭감되었다. 2009년에 학자금대출을 상환했지만 2010년에는 상환할 능력이 되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진 사람들만 320,000명에 달한다. 이는 2009년에 비해 33% 증가된 수치이다. 가족건강보험의 1년 보험료는 올해 9%가 인상되어 처음으로 15,000 달러를 넘어섰다. 물론 16%의 인구는 아예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에 9%의 인상을 걱정할 필요조차도 없다.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 광범위한 계층의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이처럼 광범위한 삶의 파탄 때문이다.

반면에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주범이며, 전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은 어느 것도 책임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거대 민간은행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구제 금융을 지원했으며, 2차에 걸친 양적 완화를 통해 투입된 유동성 자금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른다. 미국의 금융자본은 이렇게 받은 돈으로 고수익을 노리는 투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고, 미국의 경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대중의 직접행동

이전에 미국 노동조합 집회의 참가자는 거의 다 조합원들뿐이며, 와서 듣고 말하고 노조깃발을 흔들다가 몇 시간이 지나면 집에 돌아가는 것이 보통이다. 그리나 이번에는 달랐다.

대부분의 참가자는 노동조합원들이 아니었다. 노조 티셔츠는 잘 보이지 않았고, 개인들이 집에서 만들어 온 피켓들이 훨씬 많이 보였다. 퇴근시간 이후 많은 참가자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2,000여명의 시위대는 대중집회를 개최하여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가 교차하는 지점까지 경찰 바리케이드를 뚫고 전진하기로 합의한다. 한 블록 밖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까지 행진하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대오는 뉴욕 경찰의 진압에 의해 흩어졌고 작은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수십 명의 시위대가 연행되고 경찰의 탄압에 맞선 이 싸움은 이렇게 전국적인 점거 운동에 불을 붙이게 된다.

이 시위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며 경찰의 잔혹한 폭력에 용감하게 맞서고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사회적 문제만큼이나 집회시위의 권리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극복되어야 할 것들

시위대는 매일 총회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목적의 실현에 집중된 민주주의를 집행하기보다 지리멸렬하게 진행되는 총회 그 자체에 속박당하기 시작했다. 시간 낭비라며 총회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으며, 완전합의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소수 그룹이 동의해주지 않아 결정되지 못하는 사안들도 있다.

예를 들어, 위생팀이 휴지통 구입이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총회는 ‘공정무역’ 상품이라는 것이 확인되는 휴지통만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이를 승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위생팀은 우선 벼룩시장 사이트를 뒤지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핸드폰을 잃어버린 조직팀 활동가에게는 새 핸드폰 구입비용으로 200달러를 지급했다. 이번에는 ‘공정무역’ 핸드폰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리지 않았다. 시위대의 큰 자산이었던 총회가 자의적인 결정을 내림으로써 스스로 장애물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는 운동은 공식적인 요구안을 내걸지 못하고 있다. 토론은 진행되고 있지만 어떤 결론에 도달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초부터 이 시위대에 그러한 공식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순서가 맞지 않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이처럼 대중의 자발적인 결집에 의하여 시작된 운동은 정밀한 요구안에 근거하기보다는 조직적이고 대중적인 실천을 통해서 더욱 많은 성과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천은 바로 시위대의 이름에만 달려 있는 ‘점령’이 아니라 실제로 점령하는 것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공식성은 투쟁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요청될 것이며, 대중의 지지로 부터 권위를 만들어갈 것이다.

지금의 국면에서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에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계급이 합류하고,  금융뿐 아니라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미 청원을 넘어선 99%의 다수가 할 일은 1%의 독재자들을 몰아내는 것이다.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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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바보야! 문제는 금융이 아니라 실물위기야

 

바보야! 문제는 금융이 아니라 실물위기야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를 비롯한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 세계증시 폭락 등으로 세계 경제는 연일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지금 국내 경제의 상황도 세계 경제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작년 이명박 정부가 ‘2007-9년 세계 경제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의 경제가 빠르게 극복되고 있다’고 주장할 때만 해도 국내 시장은 그 주장의 옳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하지만 올 초부터 시작된 저축은행들의 영업정지,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도 증가, 주식폭락 등은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 국내 경제도 예외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은 대체로 30%에 이르는 외국인 투자 비중과 높은 단기 외채 비중 등으로 인해 항시 불안정성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세계경제가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이러한 불안정성은 더 커질 것이다. 지난 8월 초 외국인 투자자가 10일 동안 5조 넘게 주식을 팔아치우는 것만을 봐도 이러한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밖에도 현재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높이는 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저축은행 사태이다. 올 들어 저축은행 16곳이 구조조정 결과 영업정지를 받았다. 이 중 자산규모 업계 2위인 토마토저축은행을 비롯한 저축은행 11곳이 자산규모 상위 30위 이내였다. 피해규모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고,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아직 또 다른 6곳의 저축은행의 생사가 확실하지 않다. 만약 추가적으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되고, 이 사태가 신협이나 새마을금고로 이어질 경우, 위기가 제1금융권으로 옮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증가되고 있는 가계대출(올 상반기만 2조3천여억 원 증가)과 감독당국에 대한 예금주들의 불신, 전체 금고 1천464개 중 108개가 자본잠식 상태라는 점 등이 거론되며 위기설에 휩싸였다. 신협과 새마을금고의 위기설과 관련해서 금융위원회는 김석동 금융위원장의 “다음 단계로 우리가 시장안정을 위해 더욱 관심을 기울일 부분은 신협과 새마을금고”라는 발언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사태를 진정시키고 있지만, 김 위원장의 발언 직후 지난 10월 5, 6일 이틀 동안 새마을금고에서 1조2천억 원 이상의 예금이 인출돼 뱅크런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이러한 국내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낮추는 대안으로 금융규제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2007-9년 세계경제위기 때도 다수의 국내외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금융규제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외쳤다. 현재 유럽연합(EU)에서도 투기성 자본거래를 제한하고자 ‘토빈세(금융거래세)’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고삐 풀렸던 금융자본들에게 다시 고삐를 매고자 하는 것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금융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이는 자칫 잘못하다가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자본주의의 생명줄만 연장해주는 꼴이 된다. 왜냐면 대다수의 금융규제 강화론자 주장처럼 현재 세계경제의 위기는 단지 금융위기도 아니고 금융위기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금융부문은 매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물에 있다. 즉, 자본들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저하하여 수익성이 떨어지면 자본들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강화하고 금융부문으로 이동하게 되는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투기의 증가, 자산가격 거품 형성, 민가소비 감소, 가계대출 증가 등). 2007-9년 세계경제위기도 그렇고 지금의 위기도 그렇다. 단지 어디서 분출하느냐만 다를 뿐이다.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자본주의를 철폐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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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박원순 뒤에 숨어있는 진보정당 거기에서 뭐하고 있니?

 

박원순 뒤에 숨어있는 진보정당 거기서 뭐하고 있니?

지난 10월 15일, 반 월가 시위로 촉발된 국제행동이 서울 대한문 앞에서 있었다. 그 곳에서 한 시위자는 우비를 입고서 아래와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각하, 이번 선거엔 꼬옥 투표하겠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를 겨냥한 말이다.

 

이처럼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MB와 한나라당이 대변하는 이윤의 정치, 탐욕의 정치에 대한 심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분명, ‘각하’는 박원순이 서울 시장으로 당선되면 가슴 아파할 것이다. 하지만 가슴 아픈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박원순이 당선된다고 해서 바뀔 것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박원순은 어떤 사람인가? 재벌 후원을 받아 만든 아름다운 가게에서 알 수 있듯이 박원순의 비전은 1%가 99%에게 베푸는 것으로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그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이다. 그는 99%를 대변하지 않는다. 1%와 99%의 갈등을 봉합하려 할 뿐이다. 그러한 점에서 민주당이 그와 후보경선을 하고, 그가 민주당 입당을 생각했다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진정 비판받아야 할 것은 거기에 휩쓸리고 있는 소위 진보세력들이다. 민주노동당은 후보까지 내며 민주당과 박원순의 야권후보단일화에 들러리를 섰다. 진보신당 독자파는 박원순의 선거대책위에 함께 하며 스스로의 생각을 드러냈다. 이러한 야합은 반MB의 이름으로 반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박원순의 뒤에 숨어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당신들의 진보가, 반신자유주의가 그런 것이냐고. 한진중공업에서 유성기업에서 노동자민중을 짓눌러 죽이려고 하는 자본이 자신이 착취한 것의 몇 프로도 안 되는 것을 생색내며 다시 노동자민중에게 돌려주는 세상이 당신들이 말하는 반신자유주의의 세계냐고. 만일 그렇다면 당신들의 진보는 민주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안철수-박원순의 인기에 붙어가려는 진보세력은 이를 대중 앞에 명확히 말해야 한다.


세계 곳곳의 금융위기와 시위가 보여주듯 약자를 배려하기에 자본주의는 너무나 위태롭다. 노동자 ‘따위를’ 배려했다가는 자본주의 자체가 위험해질 상황에 빠져있다. 이 세계가 인간의 얼굴을 하고 약자를 배려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부터 버려야 한다.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서는 아쉽게도 이러한 사회를 보여줄 세력은 없다. 그러나 비판적 지지로는 노무현을, 정동영을 반복할 뿐이다. 꼭 필요한 일을 하는데 늦은 시기는 없다. 지금이 바로 자본주의를 갈아엎을 세력을 만들어낼 때이다.

 

김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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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희망버스의 성과와 과제

 

희망버스의 성과와 과제


5차까지 이어진 희망버스, 질긴 연대의 힘

지난 10월 8일 5차 희망버스가 부산에서 있었다. 경찰은 물대포와 최루액을 쏘며 희망버스 탑승자들을 연행하는 등 탄압을 가하였으며, 어버이연합 등의 보수단체는 절망버스 운운하며 폭력만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희망버스에는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가 철회되기를 바라고,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원하는 4,000명의 인파가 모였다.
희망버스가 시작될 때 누구도 횟수로는 5차까지 기간으로는 100일도 넘게 이어질 것이며,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까지의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때문에 희망버스는 대중의 역동성이 연대로 현실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운동이며, 동시에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인 유의미한 운동이다. 때문에 우리는 희망버스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희망버스의 성과

우선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이란 하나의 사업장의 정리해고 철회에서 시작하여 정리해고 철폐로까지 나아가고 있는 운동이다. 정리해고가 일상적으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정리해고는 어느새 당연한 것,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절망의 벽에 부딪쳐 있었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투쟁 속에서 확대강화 되며 절망의 벽을 뛰어넘어 정리해고 철폐는 가능하다는 희망을 보여주었고, 또한 그것이 필요하며 정당하다는 것을 환기시켜 주었다. 구조조정이 만발하고 정리해고와 부당징계, 비정규직 확대 등의 온갖 자본의 공세가 거센 지금 노동자 투쟁의 요구와 방향은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 노동탄압 분쇄일 수밖에 없다. 희망버스는 자본과의 타협을 운운하며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것은 노동자의 생존을 자본에게 팔아먹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또한 희망버스는 노동자 투쟁이 어떻게 연대를 만들 수 있는지 그 단초를 보여준 운동이다. 노동자 투쟁이 시작되면 자본과 정부, 언론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공익을 운운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가한다. 이는 투쟁을 움츠러들게 만들거나, 더욱 심각하게는 이러한 공세를 이유로 투쟁을 하면 안 된다는 노동자 내부의 분열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이것이 답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대해서 노동자들이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다면, 희망버스 운동이라는 거대한 연대가 생겨날 수조차 없었다. 동시에 이는 노동과 무관한 다른 무엇이 아닌 정리해고,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의 핵심적 사안이 전사회적 연대의 구심이 될 수 있고,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희망버스의 과제

하지만 희망버스는 끝나지 않았다. 희망버스가 현재진행형이며, 이를 채워넣을 수 있기에 더욱 중요하다. 이는 한진중공업에 대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권고안에 대해 보여준 희망버스의 입장에서 단초를 찾을 수 있다.
권고안의 내용은 한진중공업 해고자 94명을 1년 안에 재고용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마치 조남호가 엄청난 것이라도 양보를 한 듯 보도를 해대고 있지만 이는 결국 정리해고를 단행하겠다는 것이며, 조남호는 단 한 발자국도 물러선 것이 없다. 이는 지금도 복직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현실을 보면 명확히 알 수 있다. 더구나 권고안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의사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으며, 정치권의 협잡을 통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심지어 민주당의 정동영과 같은 자본가 정당의 인사가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내용 역시 딱 그러하다.

이에 대해 희망버스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철회 투쟁위원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였다. 하지만 희망버스는 처음의 시작으로 보더라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철회를 향해 시작된 것이다. 또한 희망버스의 정리해고 철폐의 방향성은 올바른 것이며, 희망버스가 가지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물론 희망버스가 단일한 정치성을 가진 집단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에 관한, 그리고 정리해고 철폐에 관한 방향성은 희망버스의 시작점과 같은 것이다. 이를 스스로 무너뜨릴 이유가 없으며, 이는 희망버스를 길을 잃고 표류하게 만들 뿐이다. 때문에 희망버스는 지금이라도 이러한 방향성을 다시 곧추세울 필요가 있다.

동시에 희망버스는 더 넓어질 필요가 있다. 물론 희망버스는 주체적 측면에서 본다면 크게 확장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하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일정 정도 막힘이 있다. 우선 정리해고 철폐의 측면을 보아도 그러하다. 정리해고의 문제는 이미 전사회적 문제이며, 동시에 자본의 전반적인 공세의 양상이다. 물론 시작이 한진중공업이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쌍용자동차를 비롯한 정리해고 투쟁의 전반적 현실이 이와 궤를 달리하지 않는다. 이렇게 투쟁을 확대할 수 있을 때 희망버스는 정리해고 철폐를 향해 좀 더 힘차게 전진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정리해고 철폐라는 희망버스 운동의 의미를 굳건히 할 수 있는 토양 역시 제공할 것이다.

또한 좀 더 나아간다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연대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고공농성을 진행하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한진중공업에서도 2008년부터 비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 사태가 있었으며, 이에 대한 안타까움과 지금이라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연대와 대책, 원하청 연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실을 봐도 한국에서 정리해고가 행해지고 그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우는 것은 자본의 공세의 수순과도 같은 것이다. 더불어 한진중공업에서도 볼 수 있듯이 비정규직의 해고는 정규직에 대한 해고에 대한 문제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정리해고를 행하듯이 비정규직 역시 확대해나간다. 그리고 여기서 자본이 오직 고려하는 것은 자신의 이윤뿐이며, 노동자의 생존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때문에 노동자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리해고를 철폐해야 하듯이 비정규직 역시 철폐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일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는 희망버스에 참여했던 노동자민중들이 희망버스라는 공간에서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 현장에서 이를 실천해나가는 가능성을 크게 확장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자!

정리해고 철폐, 비정규직 철폐라는 요구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희망버스가 자신의 투쟁을 통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냈듯이 단결과 연대의 힘으로, 올바른 투쟁의 방향을 가지고 나아간다면 분명 가능하다. 물론 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국가권력의 힘으로 보장받아 자본가가 독재하는 소유의 문제를 건드리는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노동자의 생존보다 중요한 것일 수 없으며, 이는 일말의 정당성도 없다. 그렇다면 이는 자본가의 소유뿐만이 아니라 이를 비호하는 모든 세력과 맞서더라도 분명히 쟁취해야 할 우리의 요구이다.
희망버스가 훌륭히 견지해온 원칙이 있다. 희망버스는 다른 누구도 아닌 투쟁하는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편이라는 것이다. 희망버스는 자본이 자신의 이윤을 위해 노동의 생존을 위협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의 편에 서야하는지를 훌륭히 선택한 것이다. 그 초심을 기억하며 좀 더 담대하게 정리해고 없는 세상,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자!

이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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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분노의 '도가니' 복지시설의 사유화를 넘어서야

 

분노의 '도가니' 복지시설의 사유화를 넘어서야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영화 ‘도가니’의 열풍이 뜨겁다. ‘도가니’는 주목받지 못했던 한국사회의 아픈 단면을 드러냈다. ‘도가니’의 흥행 이후 정치권과 언론은 성폭력 가해자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성폭력 피해자들의 보호자가 된 양 강력한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성희롱 국회의원의 징계를 부결시켰던 여야 국회의원 모두가 도가니 앞에서는 게거품을 물며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사회적 관심이 6년이라는 아픔의 시간을 지나 지금이라도 상처를 드러내고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찝찝하고 염려스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도가니’를 접하고 겹쳐져 떠오른 이름은 ‘에바다’였다.

광주 ‘인화학교’와 평택의 ‘에바다학교’는 여러가지 면에서 닮았다. 96년 12월 성탄절을 얼마 앞 두고, 배고픔에 지친 어린 농아원생이 개밥을 훔쳐 먹다 들켜 구타당한 사건을 계기로 에바다 투쟁은 시작되었다.

“어느 날 농아원 학생들이 마을의 개 밥그릇을 뒤지고, 기숙사 천정이 내려앉고, 화장실은 고장나도 방치되고, 미군들의 성폭행, 학생들의 실종과 의문의 변사체 발견, 장애학생의 주민등록 이중 등재로 보조금을 이중으로 받고, 부모가 있음에도 보호자가 없음으로 등록해 지원금을 챙겨, 이미 사망한 아이를 살아있는 것으로 해서 지원금을 받아내…”

과거 ‘에바다학교’와 관련된 끔찍한 기사들이다. 처음 ‘에바다’사건을 접한 사람들은 너무도 끔찍한 사건에 놀라고, 이 끔찍한 사건이 7년 동안 해결되지 않은 것에 또 놀랐다.

인화학교와 에바다는 농아학교, 친족에 의한 비리, 성폭력 등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공통의 원인이 있다. “우리 엄마가 세운 학교인데 왜들 그러세요?” 인화학교의 초기 이사장의 딸이자 현재 이사장의 부인이 한 말이다. 그렇다. 근본적인 원인은 복지시설과 복지정책의 사유화다. 과거 에바다 학교의 최성창은 재단의 사적재산과 법적 권리를 내세워 비리를 방어했고, 정치권은 이를 비호했다. 비리시설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비호는 그들이 비리에 연루되어서만이 아니라 복지시설 운영과 복지 정책도 사적 재산권의 보호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기에 발생한다. 사회복지 시설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국유화도, 문제시설의 폐기도 아닌 장애인, 교사, 학부모, 학생, 노동자민중이 사회복지 시설과 사회복지 정책의 직접적인 운영자이자 정책입안자가 될 때 가능하다. 그 가능성을 ‘에바다’가 보여주었다.

‘에바다’와 ‘인화학교’의 다른 점은 무엇일까? 7년여를 끌던 에바다는 2003년 5월 새롭게 구성된 이사회와 연대세력이 비리재단과 공권력의 폭력을 뚫고 농아원에 진입해 최씨 일가를 퇴거시킴으로써 정상화시켰다. 분노의 눈물뿐 아니라 투쟁과 승리의 과정을 함께 한 수많은 눈물, 진정 에바다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로 여겼던 감격의 눈물이 있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제 ‘에바다’는 정상화를 넘어 노동자민중이 직접 운영하는 민주화된 시설의 상징이 되었다. ‘인화학교’의 진정한 해결은 정치적 실리를 얻기 위한 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 ‘인화학교’와 같은 비리시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길 염원하는 사람들의 결집과 투쟁에 의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제 분노의 ‘도가니’를 넘어 투쟁의 ‘도가니’, 마침에 승리의 ‘도가니’를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

 

최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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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반 MB 정서의 총화‘나는 꼼수다’대중의 열광과 반MB의 덫

 

반 MB 정서의 총화 ‘나는 꼼수다’ 반MB의 덫


무엇이 열광하게 하는가

이미 기존의 방송과 통신으로 해소되지 않는 또 다른 여론도구가 형성되고 있다. 이러한 시대에 떠오른 프로그램이 있으니, 바로 ‘나는 꼼수다’이다. 아이튠즈 팟캐스트 뉴스, 정치부문 다운로드 1위, 이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으나, 다운 건수가 하루 170만 건, 지금까지 1천만 다운 건수를 자랑하고 있다. 각종 블로그 등에서 재 다운로드를 고려하지 않은 수치가 이 정도니 가히 “기염을 토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10년 만에 만난 친구가 “너 나꼼수 듣냐?”라고 물어 보고 공감과 연대감을 표할 정도이니 대중의 여론을 형성하는 프로그램임이 분명하다.

 

도대체 대중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열광하는 것일까?

‘나는 꼼수다’는 시원하다. ‘각하 헌정방송’ 이라는 타이틀과 “각하는 섬세하다, 꼼꼼하시다”를 주억거리며 이명박을 조롱할 뿐 아니라 BBK, 도곡동 땅, 이명박 개인의 쫀쫀함까지 폭로하면서 대다수가 듣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은 욕을 썩어 가며 대리 배설하고 있다. 시사잡지 기자, 전 국회의원, B급 문화인 김어준으로 형성된 그들의 수다는 나름의 정보력을 겸비하면서 여론 파장력을 만들고 있다. 방송이 시작되던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청취했다면 20회가 넘어가면서 ‘나꼼수 폐인’을 만들고 있다. 열광의 핵심적 기제는 갈수록 살기 팍팍해지는 이 시기, 미로 속에서 방황하면서도 피폐된 원인을 찾지 못했던 대중에게 악의 근원을 거침없이 제공하고 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 복잡하게 얘기할 것 없이 세상의 악의 근원은 이명박과 경제, 정치, 언론, 방송, 종교계에 포진된 그 일파들이다. 이들이 우리를 나락으로 내몰고 있다. 얼마나 선명하고, 거침없으며 시원한가? 맞아! 이명박만 없으면 돼!!

 

열광의 그림자, 나꼼수의 꼼수 

‘나는 꼼수다’는 시원하기는 하지만 위험하다. 이명박이 불구대천의 원수라 해도, 이명박을 중심으로 포진되어 있는 기득권층을 민중의 흡혈귀라고 해도 시비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명박이 기득권에 정점에 서있기는 하나 그 일파가 없어진다고 해서 팍팍한 삶의 근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수다 속에서 말하고자하는 것이 있다. 바로 튼튼한 반MB 전선과 구 집권세력인 자유주의 분파의 정치적 복원이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항과 구 집권세력의 복원은 철저히 분리되어야 할 명제이다. 그들의 수다는 이명박에 대한 조롱임과 동시에 정치적 실체로 서지 못하는 ‘운동권’에 대한 야유다. 여론을 구 집권세력에 대한 향수로, 향수를 대안으로 만들어 나가려하고 있다. 물론 ‘나는 꼼수다’에게 이러한 비판은 무의미하다. 그들을 포함한 민주대연합론자들은 충실히 자신의 정치전망을 선전선동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위험하고 아프다. 노동자민중의 고통이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임이 선전, 선동하고, 대중은 이에 감동해야 하는데 노동자계급의 정치, 사회주의 정치는 이것을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 반MB라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에서 노동자계급은 주체로도 대상으로 서있지 못하다. 이러한 정치구도 하에서 민주대연합은 당연한 것이 된다. ‘나는 꼼수다’에 대한 비판의 시선만큼 사회주의를 대중화할 방안이 절실하다.   

 

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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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우리는 민주노조 삼화고속지회입니다!

 

우리는 민주노조 삼화고속지회입니다!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은 아니었다.

새벽 4시 첫차를 몰려면 3시면 일어나서 집에서 나와야 하고 막차까지 몰고 집에 들어가면 다시 3시다. 인천에서 서울로 왕복하다보면 출퇴근시간이 아니어도 막히기가 일쑤니 배차시간보다 늦게 들어가는 일도 허다한데 그렇다고 다음 출발 시간을 미뤄주는 것도 아니니 화장실도 못가고 다시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밥 먹을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서 알아서 먹어야 해서 김밥을 사서 먹으며 운전하는 일도 있다. 강남방면 같은 기점은 화장실도 여의치 않아 주변 아무 건물에 들어가 욕먹으며 써야 한다. 시간이 빡빡하다보니 과속에 신호위반이 기본이라 사고가 다반사여서 월평균 100여건의 사고가 발생한다. 이 또한 많은 수가 개인부담으로 지워져 왔다.
노동조합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매년 교섭이 있었지만 시급을 올렸다고 해서 도장을 찍었지만 결국 받아든 임금을 보면 제자리 걸음. 수당이나 상여금이 깎인 것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노조민주화는 당연한 결론이었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7년 전 ?노위라는 이름으로 현장조직을 만들고 어용노조의 부당한 행태들을 조합원들에게 알리는 지난한 과정이 시작되었다. 숱하게 유인물을 배포하고, 명예훼손으로 고발도 당하는 시간들이 경과했다. 결국 한 번의 낙선도 있었고 더욱 거센 탄압도 당했지만 노조민주화에 성공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총파업이 성사되었다.

농성장에 모여든 조합원들은 감개가 무량할 수밖에 없었다. A, B조로 나뉘어 있던 조합원들이 삼화고속 역사상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집회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며 동지애를 다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개인적으로 투쟁기금을 내기도 한다.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일만하다가 당당하게 인간임을 선언하고 투쟁에 나선 총파업이라 투쟁과 농성장이란 공간이 사람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한 조합원은 얘기한다. “전 위원장은 양복을 입고 사측에서 내준 차를 타고 다녔다. 그게 무슨 위원장이냐. 조합원들은 죽어나는데..” 사소하다면 사소한 이런 문제들부터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전엔 찍소리도 못했던 조합원들이 말이 되거나 안 되거나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 총파업 전 부분파업 과정에서 조합원들 스스로 노동시간과 휴게시간을 조절 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심야운행 중단과 준법운행, 협정편도 준수(고속) 등의 부분파업을 진행한 이 기간 동안 한 달 평균 100여건씩 발생하던 사고가 40%가량 줄어든 것도 경험하였다.
당장은 조합원들의 총의를 모으는 논의과정도, 확대간부니 대의원이니 하는 노동조합의 민주적인 논의를 위한 논의체계도 아직은 혼선이 있기도 하고 민주노조라는게 민주노총 소속을 의미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조합원들도 있다. 지난 7월 사흘 만에 전면파업을 중단하고 교섭을 하게 되었다고 했을 때 그간 쟁의기금은 걷어놓고 실제 투쟁은 하지않고 적당히 타협한 경험에 숱하게 있었기에 사측과 내통한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조합원들이 있었다.

 

과도기를 헤쳐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투쟁에서 어떤 성과가 있을지 어떤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인간다운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이제 겨우 시작이다.
복수노조 시행이후 곳곳에서 특히 버스사업장에서 복수노조 건설이 매우 활성화 되고 있다. 삼화에서도 사측과의 전선 뿐 만 아니라 어용노조와의 전선도 치열하다. 사측보다 어용노조에 이를 갈고 있는 조합원들도 많다. 그간 쌓인 게 많은 탓이다. 그리고 아직도 의심쩍은 태도로 현 집행부를 바라보고 있는 조합원들도 있다.
때문에 삼화고속 투쟁은 중요하다. 민주노조라는게 무엇인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단순히 민주노총 깃발을 꼿는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민주노조를 조합원들이 스스로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삼화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해야 할 때다.

 

조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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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주간 정치신문 사노위21호>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의 역사를 환기하자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의 역사를 환기하자


비정규직 철폐 노동자 대회의 의미와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2003년 10월 26일 열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노조의 이용석동지가 행진도중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이후 매년 10월 26일을 전후로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10월 22일, 전국비정규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올해 열리는 비정규전국노동자대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예전 주요시기 열린 비정규노동자대회를 돌아보며 대회의 의미, 비정규직철폐투쟁의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비정규직 차별 철폐하라 - 2003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1998년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후, 자본은 자신들의 이윤창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을 끊임없이 늘려왔다. 특히 2000년대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전체 노동자의 50%를 넘어가면서 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3년 10월 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양대 노총 공동주최로 비정규직 차별철폐, 노동기본권 쟁취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린다. 이 대회에 참석한 근로복지공단 이용석동지가 행진도중 분신하게 된다. 이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는 매년 열사가 분신하신 10월 26일을 전후로 열리게 되었으며 2005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자발적 연대체인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출범하는 시초가 되었다.

 

파견법 개악안 국회 상임위 상정시 총파업 결의를 이끌어낸

열린우리당사 점거투쟁


2004년 9월, 16일 열린우리당 대회의실에서 파견법 관련 ‘노·사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비정규노조 간부와 조합원 다수가 공청회를 참관하였고 노동부 측의 기조발제 직후 40여명의 조합원들이 열린우리당 당 의장실 점거농성에 돌입하였다. 점거농성은 1주일간 진행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열린 민주노총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파견법 개악안 국회 상임위 상정 시 총파업” 결의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이어 10월 10일 양대 노총 주최로 열린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에 전국에서 3000여명의 비정규노동자들이 참가하여 대회장을 “개악안 저지! 권리입법 쟁취!”의 요구가 담긴 손피켓으로 붉게 물들였다.

 

비정규직투쟁, 단결과 연대의 대오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출범

2003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 이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5년 비정규노동자들의 자발적 연대체인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가 공식출범하였다 전비연은 출범식을 통해 △기간제법안 폐기와 기간제 엄격 사유제한 △파견법 완전 철폐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과 노동3권 보장 △불법하도급 근절과 원청의 사용자 책임 인정 △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과 노동허가제 쟁취를 주요요구로 확정했다. 이후 전비연은 비정규직철폐투쟁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으며 매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주도적으로 치러왔다.   

 

무엇을 할 것인가!

2003년 이후, 때로는 양대노총의 공동주최로, 혹은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주관이나 민주노총 주최로 매년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 내에 만연해 있는 개량주의와 노조관료주의 비정규직 철폐투쟁을 비정규직 처우개선투쟁으로 끊임없이 후퇴시켜 왔다. 더구나 민주노동당은 지난 2006년 파견법수정동의안을 제출하는 등 자본과 정권의 요구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였다.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는 정권과 자본에게 타협하면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압력용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전개할 때만이 요구를 쟁취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정리해고제가 도입된 지 13년, 비정규법이 도입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전국비정규노동자대회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전국 곳곳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서로의 상황과 요구를 주장하고 공유하며 ‘노동자는 하나’라는 것을 확인하고 투쟁하는 대회가 되어야 한다. 자본의 위기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자본과의 투쟁을 통한 비정규직 철폐 이외의 것이 될 수 없다. 동지들! 조직하자. 연대하자. 나아가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야만의 자본주의를 갈아엎자.

 

박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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