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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핏세, 2040 대책, 신용카드 수수료율 규제. 10.26 재보선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이 연일 내놓고 있는 정책이다. 각 정책들은 ‘부자 정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해 수준의 절망적 시도다.
이념도 정치도 아무것도 없다!
먼저, 버핏세. 간단히 말해 부자들에게 세금 더 걷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소득층에 대한 고율의 세금이 투자 저하로 이어져, 일자리가 축소되리라는 그간의 논리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다.
2040 대책. 재보선 참패 원인이었던, 20~40대 유권자를 공략하기 위한 정책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시 대출 금리 공짜, 만 2세까지 양육수당 지급, 만 12세 이하 필수예방접종 무상실시 등의 정책을 내세운다. 그러나 벌써부터 재원 마련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 규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상점 규모와 업종에 따라 차별해선 안 된다는 법안이다. 시장에 최대한의 자율을 부여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경제 효율성의 원천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나라당 아니었는가?
정작 포퓰리즘에 경도된 것은 한나라당
이성규 안동대 교수는 포퓰리즘을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호소할 목적으로 내놓는 근시안적인 정책들’이라고 정의한다. 매일경제 포퓰리즘 감시단은 포퓰리즘 지수를 계산하기 위해, 재원 확보 타당성, 경제효과 및 우선순위, 허위·과장 정도를 살핀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기준에서 최근 한나라당이 내놓는 정책들 모두가 ‘포퓰리즘’적이다. 모든 정책이 경제적 취약 계층에 호소한다. 동시에 모든 정책에서 재원 확보의 타당성, 경제 효과 등에 대한 장기적 고려가 결여되어 있다. 야당의 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가장 맹렬하게 비판해왔던 당 내부에서조차, 포퓰리즘은 피할 수 없는 강렬한 유혹처럼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진정한 문제는?
이는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른바 ‘선거 혁명’의 승리를 의미하는가? 10.26 재보선에서 쏟아진 젊은 세대의 표가 한나라당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인가? 불길한 것은, 여당이 표를 위해 그간의 정체성을 탈피하려는 이 순간에도, 포퓰리즘에 대한 비판의 논리는 ‘건드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한나라당 나성린 의원은 “부자들이 버핏처럼 착한 사람들이라면 문제가 안” 되지만, “부자들은 이미 세금을 많이 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더 내라고 하면 투자 감소 등의 저항이 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쩔 것인가? 각종 복지 정책들이 부유층의 투자 감소와 같은 저항을 불러오고, 바로 이 현실을 매개로 하여 정치인들이 자신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버린 역사가 우리에게는 없는가?
포퓰리즘의 진정한 문제가 여기에 있다. 부유층의 투자 감소와 같은 저항을 ‘주어진 현실’로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의회주의 정치의 한계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대안은 무엇인가? ‘주어진 현실’을 자기 투쟁의 문제로 정확히 인식하는 노동자 정치요, 투자 감소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자본주의가 아닌 소유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회주의다.
이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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