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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123회 – 풍요롭고 활기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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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밑바닥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들
- 09/28
1
마을 안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확장공사가 끝났습니다.
3년이 넘는 큰 공사가 이어지는 동안
누군가의 집은 일부가 허물어졌고
누군가의 마당은 사라져버렸고
누군가의 밭은 한쪽 뭉텅이가 잘려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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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희생의 결과
고즈넉했던 시골길은
시원한 2차선 도로로 바뀌었습니다.
누구는 시골의 정취가 사라졌다고 아쉬워할 것이고
누구는 시원한 도로로 인해 마을을 드나들기가 편해졌다고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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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확장 공사를 기념하기 위해 멋들어진 표지석도 만들어졌습니다.
표지석에는 30억이 넘는 공사비가 들어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는데
이 조그만 시골마을에 그런 큰돈이 들어간 만큼 마을이 발전할 건진 모르겠지만
‘차들이 조심해야 하는 시골길’에서 ‘사람이 조심해야 하는 도로’로 바뀐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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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맹렬하게 이어지는 더위에 조금 지쳐가는 요즘
한겨울 설경사진을 보며 잠시 마음의 피서를 떠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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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과 여름 중에 어느 계절이 그나마 견딜 만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망설임 없이 겨울을 선택합니다.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이라 여름 더위를 견디는 것이 너무 힘들고
겨울은 추웠다 풀렸다를 반복하며 숨 쉴 여유라도 주는데
여름은 한번 더워지면 두세 달은 쉼 없이 달려가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견디는 것이 힘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농사를 짓다보니 여름의 풍요로움을 알게 되어 이 계절이 견딜만해지고 있습니다.
겨울에도 각종 채소들을 다양하게 재배하기는 하지만 여름처럼 폭풍성장 하는 모습을 매일 볼 수는 없습니다.
겨울에는 식물들의 성장이 주춤해서 하는 일도 많지 않기에 방안에서 웅크리며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여름에는 병충해 방제, 잡초 뽑기, 열매 묶어주기, 물주기 등 해야 될 일들이 많기 때문에 더워도 일을 하며 활력을 얻습니다.
겨울에는 웅크리며 지내다보니 몸과 마음이 쪼그라들어 견디는 힘이 오히려 줄어들지만
여름에는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순환이 원활해서 개운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하려다보면
날이 밝아오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새벽 5시면 동이 터오면서 일을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5시 30분은 돼야 동이 터오기 시작합니다.
7월보다 8월 기온이 더 올라서 폭염을 견디는 것이 더 힘들기는 하지만
병충해나 잡초들도 힘이 겨운지 요즘에는 수고가 조금 덜한 편입니다.
텃밭에 심어놓은 채소와 과일들도 왕성한 생명력이 조금씩 줄어들어 수확량이 줄어드는 시기도 8월입니다.
폭염은 더 맹위를 떨치지만 자연은 조금씩 여름의 후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3
아는 분의 부고 소식을 또 들었습니다.
한창 왕성하게 활동할 나이에 쓰러져서 떠나는 분들의 소식은
이제 너무도 익숙한 현실이 됐습니다.
황망한 죽음이 익숙해지는 이 어의 없는 현실 앞에서
어떤 마음을 가져야하는지 모르겠더군요.
제가 아직도 그들과 함께 일선에 있었다면
저도 지금쯤 병들었거나 죽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버림받아 쓸모없는 존재로 내팽겨 쳐졌고
그렇게 외톨이가 된 저는 이곳에서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장자에 나오는 ‘쓸모없는 나무’ 얘기가 생각나더군요.
줄기가 곧고 가지가 활짝 핀 나무는 목수에 의해 베어져서 사람들의 쓸모로 사용되지만
줄기가 울퉁불퉁하고 가지가 비비 꼬여있는 나무는 사람에게 쓸모가 없어서 오래 살아남는다는 얘기였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쓸모 있는 일을 하던 이들은 일찍 떠나나고
세상에서 떨어져 혼자만의 삶을 즐기는 저는 건강하게 살아간다는 얘기여서는 안 될 텐데
제 마음은 자꾸 그런 식으로 기울고 있더군요.
아직도 제 마음 속에 그들에 대한 원망이 남아있나 봅니다.
그 원망이 황망한 죽음 앞에서도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못하게 방해를 하는 꼴입니다.
제 마음에 스며든 먼지를 쓸어내면서 주문을 외우듯 조용히 주절거려봅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이해타산을 샘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타인의 죽음 앞에서 나의 살아있음을 축복하지는 말자.”
(김선아의 ‘넌 겨우 내가 죽지 않을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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