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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장되 자본주의로서의 지식사회

 
생활정보지에 정보 없듯 포털에도 지식 없다..ㅎㅎ
생활정보지 = 생활광고지
지식검색 = ???? 보나마나한 잡다한것만 공짜로 보여주고 좀 괜찮다 싶은건 죄다 유료로 보도록 하니.......지식의 상업화...지식은 공유되어야 더 큰 가치를 지니는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 측면에서 인터넷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업이 야속하기만 할뿐입니다.
아울러 문화사회, 생태사회 진짜 공감합니다. 솔직히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 보면 쎄빠지게 일만-그것도 자신이 하는 일이 이웃과 자연에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같은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 호주머니만 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이기주의자들... 진짜 죽이고 싶습니다.- 하다 어쩌다 책을 보거나 텔레비전 시청하는것 또 그러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나면 놀러다니는걸로 시간을 때우는데 그렇게 사는건 좀 인생이 아깝다는 생각밖에 안 들죠 왜 그래야 합니까 돈 많이 벌기 위해서??그래봤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채우기 위한 소비에 써 버려 결국 자본가 호주머니에 넣어주기나할뿐인데 차라리 먹고 살 정도의 벌이를 위해 일하고 나머지는 문화활동..이를테면 독서라든지 영화 음악 감상, 레저 스포츠 활동 등 이런걸 하면서 문화적 힘을 키워 나가는게 훨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또 그건 금전적으로 계산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가치를 지니고요.. 그런 의미에서 아마츄어를 높이 사고 싶습니다.. 먹기 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동을 하고 남는 시간으로 활동을 하는것..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프로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죠. 우리 모두 아마츄어가 되자 Be the amateur??
야구 축구 농구 스키 같은 운동이든 문학 영화 방송 같은거든 상관 없이..... 근데 정부는 시민들이 이런 활동하는데 시설 같은거 지원해줘야 하지 않나 맨날 올림픽 금메달을 위한 전문 선수들만 지원하지 말고.... 그놈들 지원해봤자 어차피 지들 몸값 올리는데만 이용할뿐인데 뭘.. 프로..전문 선수..직업 삼아 하는 것에 대해선 그넘들이 시자에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두고 일반 시민들이 그러한 것을 여가활동 삼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죠
몇 년 전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지식검색’, ‘○○도 지식이다’, ‘**를 알면 나도 지식인’ 등의 말이 등장하였고, 지금은 포털 광고마다 나오지 않을 때가 없는 유행어가 되었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사이트에서 말하는 ‘지식’이란 사실 ‘잡다한 상식’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강남역의 맛있는 갈비탕집’이라든가 ‘지하철 가장 빨리 갈아타는 방법’이라든가 ‘여름에 예쁘게 피부 태우는 방법’ 등이 ‘지식’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한다. 포털사이트는 어떻게든 유저들이 자기 포털에서 오래 머물게 하려고 눈길을 끄는 갖가지 잡다한 상식들을 전면에 배치하고, 그럼으로써 검색 빈도수를 높이고, 그렇게 해서 광고 단가 역시 높인다. 포털의 ‘지식’은 이렇게 상업적 이익과 긴밀히 연관되어 ‘탄생’한 개념이다.

인터넷 포털의 ‘지식’이 사기성 짙은 개념이라면, 80년대 중반 이후 90년대를 거치며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앨빈 토플러, 다니엘 벨, 피터 드러커 등 소위 ‘미래학자’들의 저서들은 도래 중인 새로운 사회의 대표적 가치창출자원으로 ‘지식’을 자리 매겼다.

이제 지식과 정보의 시대가 올 것이고, 그 ‘제3의 물결’은 온 세계를 휩쓸 것이며, 지식과 정보를 지배하는 자가 성공하게 되고, 따라서 현재의 산업 자본주의는 혁명적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니 노사갈등이나 자원고갈, 빈부격차 등은 모두 낡은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담론, 이들이 만들어낸 담론은 각자 다소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지식사회’ 담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김영삼 정부가 ‘제 경쟁상대는 덴마크 농부예요’ 등의 카피를 통해 세계화를 지상과제로 설정하고, 뒤이은 김대중 정부가 90년대 후반부터 ‘신지식인’ 운동을 벌이면서 지식이나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것은 이런 담론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노무현 정부 역시 ‘능력 있는’ 진대제 정통부 장관의 허물을 덮어주고, 황우석 교수를 국민스타로 만들면서 지식이나 정보를 통해 성공한 인물들을 국민들의 ‘롤 모델’로 삼고 있는 등 앞선 정부들의 기조를 이어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 책, 정부, 언론, 심지어 냉장고나 아파트 광고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지식’을 외치는 사회를 ‘지식사회’라고 부르지 않을 도리가 없다.

▲ 『지식사회 비판』
ⓒ2005 문화과학사
상지대 홍성태 교수의 <지식사회 비판>(문화과학사, 2005)은 ‘지식사회’, 그 환상적인 외피 아래의 본질을 따지고 들어가는 책이다. 일단 그는 지식사회를 “지적재산권제도의 확대ㆍ강화를 통해 지식의 사유화와 상품화가 고도로 촉진되는 사회”(6쪽)로 정의한다. 오늘날 강조되는 ‘지식’은 국민들의 인문적 교양이나 전문적 식견을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 “사유화”될 수 있고 “상품화”될 수 있는 지식이라는 말이다.

각 대학의 철학과와 어문학과들이 문을 닫는 사례에서 알 수 있듯, 돈이 되지 않는 지식은 이 시대에 ‘지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 않는다. 돈이 안 되는 지식을 망하게 만드는 반면 돈이 되는 지식은 독점해야 하고, 따라서 지적재산권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미국과 미국을 본거지로 하는 초국적 자본들이 지적재산권을 그토록 강조하는 것은 지식이 돈이 되기 때문인 것이다(3장 ‘지구화와 지식의 위상 변화’, 8장 ‘지식사회와 정보제국주의’).

벨ㆍ드러커ㆍ토플러 등의 ‘주류 정보사회론’, ‘벤처 이데올로기’, ‘지적재산권’, ‘신지식인론’ 등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 홍성태가 주장하는 것은 분명하다. “정보사회나 지식사회는 단순히 정보나 지식의 사회적 구실이 중요해지는 사회가 아니라 사유화를 통해 정보나 지식의 경제적 가치가 인위적으로 커지는 사회”(25쪽)라는 것이다. 즉, 지식사회는 지식과 정보 안에서 모두가 잘 사는 미래의 혁명적 이상사회가 아니라, 사실 자본주의가 지식까지 완전히 사유화ㆍ상업화ㆍ환금화하는 “자본주의의 정보적 확장”(46쪽)일 뿐이다.

인터넷과 개인 모바일 미디어가 거의 완벽하게 전파된 ‘정보사회’이자 지식이 이토록 화려하게 대접받는 ‘지식사회’인 한국에서 여전히 노동자 탄압이나 재벌의 탈세가 일상화되고, 노동시간이 야만적으로 늘어나며, 실업문제가 심각하고, 인문학 대학강사가 자살을 하며, 대학원생들이 학원강사를 해야만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이유는 ‘지식사회’의 본질이 '지식'이 아니라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지식사회를 만든 자본주의는 그 전보다 훨씬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성격을 가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이처럼 지식사회의 자본주의적 본질을 천착한 저자가 새로운 사회의 대안으로 내놓는 모델은 ‘문화사회’와 ‘생태사회’다. 그에 따르면, 세련되고 샤프한 이미지로 덧칠된 ‘지식사회’는 돈과 성공을 찾아 “마치 난민들의 집합체 같은 일대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는”(248쪽) ‘난민사회’이고, 이런 난민사회에 대한 대안이 “시민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자생적이고 창발적인 사회…. 노동이 아니라 문화가 삶의 기축원리로 구실하는 사회”(249쪽), 즉 ‘문화사회’이다(9장 ‘지식사회에서 문화와 산업’).

또, ‘지식’이 마치 ‘비물질’이자 ‘무형’일 뿐이라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궁극적으로는 경제활동에 이용되어 생태계 파괴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지식의 파괴적 속성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지 않은 점에 대해서 저자는 ‘생태사회’를 주장하고 있다. ‘문화’가 기본적으로 자연에 대비되는 인간활동을 의미하고, ‘생태’가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모색하는 개념이라면, ‘문화사회’와 ‘생태사회’는 인간과 자연 모두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각종 지면에 발표된 글들을 모은 이 책에는 아쉽게도 각 글의 발표시기가 전혀 표기되지 않았다. ‘지식사회 비판’이라는 전체 주제를 분명히 하는데 문제는 없지만, 각 글이 태어난 시기별 맥락을 독자가 제대로 짚어줄 수 있게 글의 발표시기를 표시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또, 논문 모음집의 맹점인 ‘반복’ 역시 빈번이 나타난다. 1부 ‘지식사회와 지구화’에 묶인 네 편의 글에는 주류 정보사회론에 대한 분석이 곳곳에서 반복되어서 가독성을 떨어뜨린다(반복이 확실한 개념정리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장점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몇몇 편집상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지식사회 비판>은 자본의 첨병으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지식과 정보가 유일한 등대가 되어버린 이 시대에, 제대로 된 항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나침반 구실을 해주는 중요한 책이다. 지식이니 정보니 벤처니 디지털이니 하는 말들에 깃든 사악한 정치적 의도를 탐지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짜 새로운 시대를 꿈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문강형준 님은 무크지 <모색>의 편집위원이고, 홈페이지는 http://blog.naver.com/caujun.do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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