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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간들 - 제1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최지월 한겨레출판, 2014 |
벌초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게 엄마 산소를 관리하는 공원 측에서 주기적으로 벌초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데에 뒤늦게 생각이 미쳤다. 일년에 세네번 가면 잡초나 좀 뽑을 뿐 항상 깨끗하길래. 하지만 겨울에 쌓인 눈까지 치워주는 것 같진 않다. 흰 눈에 덮여 십센치쯤 높아진 무덤은 왜 그렇게 추워 보일까. 어느날 ㅁ이가 무슨 얘기 중이었는지, 무덤 속에 너네 어머니가 계시냐고 핀잔을 줬던 일이 있다. 개숑키야...<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서도 마치 그런 듯 느껴왔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그러니까 무덤 위 꽁꽁 언 눈을 맨손으로 쓸어내렸겠지. 책을 읽으면서 엄마를, 엄마가 죽고 내가 겪었던 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가 갑작스레 돌아가셨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있었던 건 아니다. 장례행위의 주체가 되기에 사회적으로 나는 어렸고, 그래서 나는 사회적 죽음으로서 엄마의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었다. 엄마의 죽음은 나에게, 우리 가족보다도 나에게 닥친 지독하게 개인적인 불행이었다.
죽은 사람이 정말로 죽기 위해선 그가 죽은 뒤 사회적으로 그를 살아있는 사람들이 죽여줘야 한다. 사망 신고를 하고 보험을 해지하고 인터넷 아이디들 삭제하고. 시신을 깨끗이 닦아주고. 장례식을 치르고 왼갖 방문자들을 맞이하고. 나는 어떤 행위에도 관여한 바가 없어서(있다면 장례식장에 와서 우는 내 친구들을 웃겨 주려고 노력했던 것 정도) 책을 통해 알게 된 과정들이 흥미로웠다. 수동적으로 겪어냈던 과정을 반추하며 그때 이런 게 있었겠구나 아빠가 혼자 이런 걸 다 겪었구나.. 아빠는 내게 언제나 아빠고 처음부터 어른이어서 그냥 당연하게만 생각했었는데.
너무 내 얘기만 하는데ㅡㅡ 소설 속 엄마, 우리 엄마랑은 전혀 다른 엄마의 죽음 통해 우리 엄마의 죽음, 내가 제대로 겪지 못했던 죽음을 다시 겪을 수 있었다. 단지 간접체험이 아니라, 소설을 읽으면서야 내가 엄마의 죽음을 지금까지도 받아들이지 못 하는 게(마치 화자 석희의 아빠처럼 말이다) 내가 그걸 한 번도 직시하고 마주한 적이 없어서라고, 제대로 겪어내서 소화(?)하고 화해한 적이 없어서라고 알게 됐다. 이젠 뭐 다 겪은 것 같고 이런 게 아니고ㅡㅡ 엄마의 죽음을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어른이 되며 엄마의 얼굴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엄마가 궁금해지고 그런 엄마를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아쉬워하긴 했지만, 여전히 엄마는 나에게 우리 엄마로,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내게 존재하고 있었고 그래서 여전히 엄마의 죽음은 내 가장 개인적인 사건이고 고통이었다. 나는 엄마를 잃은 경험을 한 이들과도 나의 경험을, 고통을 나누는 것을 너무나 끔찍하게 여겨왔고 전애인의 조언에 따라 이걸 남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조금씩 얘기하며 무게를 덜어보고자 시도한 적도 있었지만 다 실패한 상태였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얘기할 순 있는데 그 이상은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 그게 이십년 가까이 내가 엄마 죽음을 내 개인의 불행으로 규정하고 그걸 꽁꽁 싸매고 있었을 뿐이란 거, 죽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시간을 겪어보지 못해서라는 거, 우리 엄마라는 사회적 존재가, 나하고, 언니하고, 아빠하고, 엄마 친구들하고 관계를 맺고 이 나라의 국민으로, 현대사를 담지한 결과물로, 인류가 쌓아온 관습 속에 존재해 왔던 유적 존재가 소멸했다는 거, 내가 세계의 일부이자 세계가 나의 일부이고 엄마는 내 세계의 일부이고 반대도 마찬가지고 세계가 붕괴되지 않은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거. 몇날 며칠을 몇년을, 몇십년을 생각하고 곱씹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의 죽음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한 것 같다.
장황하게 쓰자니 쑥스럽구만.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부모가 죽을 때마다 엄마를 생각하며 속이 문드러지게 한 번씩 울었었는데 소설을 읽으면서는 문드러지게 울지 않고 조금씩만 울 수 있었다. 굉장한 경험이었다, 오히려 이 글 쓰는 게 더 눈물이 나네ㅡㅡ
이게 가능했던 것은 소설의 화자 석희가 신랄하리만큼 꼼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비슷한 과정들, 모든 것이 엄마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모든 종류의 생각들을 적당한 슬픔으로 뭉개지 않고 꼼꼼하게 꼼꼼하게 더듬어서 기원을 추적하고 맥락을 구체화하고 현재적 의미를 되짚고 연결 고리를 찾아내고 그렇게 찾아내서 피하지 않고 적어내려간 글들이다 이게 다 읽어 꼭 읽어봐봐 ㅠㅠㅠㅠ 엄마의 죽음을 내가 비겁하게 회피해 왔구나, 나 원래도 어리광 개심한데 자기한테도 어리광(우웩) 부리며 슬픔과 고통에 날 방치하며 변명해 왔구나.. 참 많이 깨닫네 ㅡㅅ ㅡ
신랄함은 아버지에 대한 평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데, 그래서 석희는 두루뭉술 엄마를 잃은 아버지를 연민하거나 효심 돋으면서 적당히 타협(!)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찰나생 찰나멸, 아빠의 삶과도, 엄마의 죽음과도 꼼꼼한 화해를 하는 것이다.
소설을 두 번 읽었는데 처음 읽을 때는 매일 팔레스타인에서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었고 세월호 관련 작업을 (지금도) 하고 있어서 죽음과 애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두번째엔 내 생각을 어째 더 많이 했고 결과적으로 책에서 배웠던 소설의 순기능을 문자 그대로 경험했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이것저것 메모해놨었는데, 특히 주옥 같은 문장들. 넘 주옥이 많아서 세 개만 적는다. 나중에 또 다른 얘기를 적어야지.
- 엄마는 목숨을 잃었다. 남편을, 자식을, 친척들을, 친구들을, 고향산천을, 평생을 살아온 원주를, 집을, 기억을, 감각을, 욕망을, 시간을……, 엄마는 생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 엄마는 원래 엄마로 태어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만나 우리를 낳아서 키우느라고 엄마인 엄마가 되었다. 모든 존재엔 역사가 있다. -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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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읽다가 | 2015/10/16 |
얼마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퀴어들이 만나는 공간, 예루살렘의 '슈샨'이라는 게이바를 중심으로 이-팔 몇몇 퀴어들의 삶을 찍은 다큐 [성스러운 도시] 상영회가 있었다. 주요인물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유대인 레즈비언 커플,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에 사는 유대인 게이, 서안지구에 살다 미국으로 이주하는 팔레스타인 최초의 드랙퀸, 예루살렘에서 시의원을 지낸 슈산 사장 등 다섯 명이었다. 나는 영화감독이 '슈샨'이라는 바를, 이-팔의 다양한 퀴어들이 민족과 분쟁을 뛰어넘어 퀴어로서 화합하는 해방구로 오인하고 영화를 찍었는데 막상 인터뷰를 진행하고 내용을 살펴보니 딱히 해방구도 아닌지라 공정한 체 이-팔 퀴어들의 이야기를 나열하는 수준에서 어정쩡하게 영화를 마무리했다고 보았다. 슈샨이 해방구가 아니라는 것은 영화 스스로 입증했다. 같은 공간에서 팔레스타인 퀴어들이랑 논다고 해서 식민자로서의 정치가 후퇴하는 건 아니라는 걸 불법 정착민이 인터뷰와 행동을 통해 드러낸다. 소소하게는 어깨에 총을 메고 클럽에서 춤 출 수 있는 건 오직 유대인 뿐이라는 것, 슈샨에서 발언하는 팔레스타인인은 영어를 써야 하지만 슈샨이 문을 닫을 때 고별사는 히브리어로만 이뤄졌다는 데서도 슈샨이 다른 이스라엘 사회보다 덜 억압적이더라도 여전히 점령 문제와 무관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헌법상 권리라는 것을 배운 뒤 권리를 분절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자유권이라는 게 있고 평등권이라는 게 있다. 양심의 자유가 있고 표현의 자유가 있다.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지만 접근권은 침해하지 않는 게 있다. 권리는 여집합 관계일 수 있다.
위키에 있는 적절한 그림을 가져옴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과 유대인 레즈비언 커플 사미라와 라빗의 대화 중 이런 게 있었다. 이스라엘군은 중동지역에서 동성애자가 군대에 갈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되냐며 "민주주의 국가"임을 자랑한다. 유대인 라빗은 뭐 그건 팩트지 않느냐고 말한다. 그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게 아니고 그건 그냥 팩트라고. 사미라는 순간 말문이 막힐 만큼 황당해하며 중동에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이스라엘 내 아랍 시민으로 나에겐 한 번도 표현의 자유가 있었던 적이 없다고. 하지만 라빗은 적당히 웃어넘기며 누가 널 말 못 하게 하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라 한다.
가자 침공을 규탄하는 집회에 함께 가는 길에 사미라가 이스라엘 거리에서, 아랍어로 이스라엘을 규탄할 때, 라빗은 마치 공중질서를 생각하는양 집회장에 가서 얘기하라고 말한다. 사미라가 목소리를 높이자 라빗은 매우 곤란해하는데, 이스라엘 공공장소에서 팔레스타인인들이 아랍어로 얘기할 수가 없다고, 그러면 유대인들이 테러범인양 쳐다본다는 인터뷰를 읽었던 게 떠올랐다. 누가 널 말 못 하게 하니. 누가 널 소리치지 못 하게 하니. 영화화된 자신의 행동들을 보고 라빗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우리가 법정에서 권리를 분절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민주주의를 숫자로 환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삶에서 그래도 유대인 동성애자는 군대에는 갈 수 있어 제대하지 않을 경우 입을 불이익을 피할 수 있으니 법적 제도적 아랍인에 대한 인종차별 시스템이 있는 이스라엘도 이런 면에선 민주국가이다,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 잡채 자체가 쉰 게 아니고 당면과 시금치만 쉬었고 당근과 양파는 쉬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만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소리다. 그런 잡채 너나 쳐먹어
영화를 보면서 내내 영화에서 다루지 않는 팔레스타인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가 여기서 얻은 유일한 교훈은 해방이라는 것은 절대 분절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는 거다(전략상 단계적 접근이 가능할 수 있다고 여전히 생각하지만). GV 때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서 아쉬운데.. 나는 점령 문제를 사회의 여러 억압 중 하나로 다루는 게 옳지 않다고, 점령을 차원이 다른 억압이라고 얘기했다. 점령이 다른 억압과 차원이 다르다는 건 비교급으로 퀴어 탄압보다는 점령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팔레스타인 퀴어가 받는 사회적 탄압은 영화에서 보여주듯 이스라엘에도 있고, 서구 사회에도, 한국에도 있지만 팔레스타인 퀴어가 사는 점령 현실은 다른 데에 없다. 이 얘기 하긴 했었지만... =ㅅ=;;
이스라엘 퀴어도 이스라엘 사회에서 차별받고, 팔레스타인 퀴어도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차별받는다. 그래도 이스라엘에는 텔아비브라는 게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동네가 있으니 그나마 좀 괜찮다? 이런 얘기는 의도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의 핑크워시-팔레스타인은 퀴어들을 미개하리만큼 탄압하고, 이스라엘은 민주국가라 퀴어에게 자유가 보장된다는 이스라엘의 게이 PR 캠페인-를 위한 발판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억압받는 자들끼리 연대? 이-팔 퀴어는 절대로 똑같이 억압받는 자들이 될 수 없다. 개개인을 공격하는 게 아니라, 이스라엘의 유대인으로 산다는 건 점령자로 산다는 게 될 수밖에 없다. 거의 모든 유대인이 군대에 가서 점령군의 일부로 기능을 해 본다. 점령이 가져다준 수자원을 펑펑 쓰고, 점령이 파괴한 팔레스타인 집터에 집을 짓는다. 셀 수 없이 나열할 수 있다. 피점령자로 산다는 건 뭔가. 불도저를 이끈 군인들이 새벽에 쳐들어와 우리집을 15분만에 부술 수 있고, 그 부순 비용을 내가 내야 하고, 잔해물 치우는 비용도 내가 내야 한다. 밤에는 잠자다 가택 수색중이라는 군인들한테 끌려가 기약없이 재판도 없이 몇 년간 수감된다. 코앞에 생긴 장벽때문에 5분 거리를 30분간 돌아가야 하고, 슈퍼에 갈 때마다 검문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살해당해야 한다. 셀 수 없이, 셀 수 없이 많다. 점령자와 피점령자의 연대가 왜 기만적인 수사가 될 수밖에 없는지
어차피 연대가 불가능함이 영화에서 끊임없이 드러나지만. 식탁에서, 불법 정착촌에서, 게이바에서, 집회 장소에서. 하지만 연대가능성을 봉쇄하고자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다만 특정한 억압을 매개로 다른 상황을 다 지우고 연대가능성을 제시하다 말아버리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더 많은 말은 나중에 추가하겠음 추석이라 나가야돼 -ㅅ-
영화가 이스라엘 내 팔레스타인인 사미라 사라야씨한테 포커스를 맞춰 그를 찍었으면 훨씬 이백배 좋았을 것 같다. 아쉬웠다. 그가 한 얘기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어느날 술을 마시고 라빗과 섹스를 하는데 갑자기 점령과 섹스하는 것 같았다고. 내가 그렇게 느끼니 걸 라빗도 분명 느꼈다고. 라빗은 점령이 아닌데, 오히려 내가 사랑하는 여잔데, 그런데. 그래서 둘이 같이 울었다고. 아 정말... ㅠㅠ 다음에 더 얘기할 기회가 있으으리. 이 분 뭐하나 궁금해서 찾아보니 작년에 팔레스타인 힙합 그룹 DAM의 랩퍼랑 같이 랩한 게 있넼ㅋㅋㅋ 귀여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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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GV에서 충분히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을 글로 읽으니 좋네요. 권리는 분절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일부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해서 일부만 민주주의 국가라고 말하는 건 쓸모 없는 소리라는 이야기도 곱씹어보게 되구요.(사소하지만 보통은 인권을 쓰는 자리에 권리를 갈음해서 쓴 이유도 궁금합니다)하지만 쓸모 없는 소리라는 이야기엔 생각이 다릅니다. 요컨대 이 나라는 민주주의다, 혹은 독재국가다, 혹은 상한 잡채다, 라고 하는 말은, 현 상황을 진단하는 말이죠. 진단은 (간결함을 희생하지 않는 한)상세하고 정확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잡채에서 당면과 시금치가 쉬었고 당근이랑 양파는 괜찮네? 그럼 지금 배고프고 멀쩡한 거 버리기도 아까우니 당근이랑 양파만 골라내서 비빔밥 해먹자.(물론 먹기 싫은 건 알겠지만 알다시피 우리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가 않잖니?)거나
우린 종교의 자유와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제법 갖춰졌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아직 개떡같아. 그러니까 AA BB한 슬로건으로 투쟁하자!
라는 식으로, 쓸모있게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더 상세한 진단은 좀더 상세한 액션을 끌어낼 수 있다 싶은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GV와 이 글에서 나온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전체적인 내용엔 공감이 가지만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어서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영화는 감독이 감독 나름으로 적절하고 찍고 싶은 정치적인 방향으로 찍었던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이 간 친구는 다양한 게이의 생활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식의 영상보다 더 만족스럽기도 했죠. 물론 점령상황은 어떤 배경설정으로만 깔았고, 더 심각하고 본질적인 문제일지도 모르는 그것을 전면적으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동시에 아쉬웠고, 그런 점에서 GV때의 이야기도 공감이 갔지만요.
그렇다면 영상을 다시 찍어서 상영할 수는 없으니, 아쉬운 이야기를 뎡야핑님이 채워주시면 되는 겁니다. '어깨에 총을 메고 클럽에서 춤 출 수 있는 건 오직 유대인 뿐이라는 것, 슈샨에서 발언하는 팔레스타인인은 영어를 써야 하지만 슈샨이 문을 닫을 때 고별사는 히브리어로만 이뤄졌다는' 것, 결국 '슈샨이 (완전한) 해방구가 아니라는 것은 영화 스스로 입증했다.'는 것을 지적하고(뎡야핑님 같은 관심 많은 분이 아니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점들이겠죠. 그런 걸 짚어주신 건 중요한 지점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영화에 드러나지 않은 점령상황에 대한 현실은 어떻고, 어떤 자료를 찾아보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는지, 그리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액션은 어떻게 있는지 조목조목 짚어주셨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하는 뭐 사실은 다 지난 이야기긴 합니다만.~_~
어휴 잘 읽었다는 말 한 마디 하려고 쓴 게 길어졌네요. (http://blog.jinbo.net/house/3) 요기 들어갔다가 들어본 적 있는 별명이 보이길래 혹시나하고 들어와봤는데 GV이야기가 딱 나와서 반가워서 그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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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스팸 아닌 댓글이 달렸네요 가끔 들어와서 스팸이나 지우고 있었는데...-_-;;;;상한 잡채를 저는 점령 문제와 관련해서 언급했던 건데요, 점령과 피점령의 관계에서 이스라엘의 시스템이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보장된, 그리고 상대적으로 서안과 가자의 팔레스타인인들보다 이스라엘내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조금 더 보장되는 표현의 자유가, 점령 문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느냐면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해왔는데요. 이스라엘로서는 21세기에 얼마 남지 않은 노골적인 식민 국가로 존재하기 위해 정당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여러 작업들이 민관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이해하시는 바처럼 '민주국가'라는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위해 수행되는 것들이) 팔레스타인 점령을 지속하는 데에 수단으로 존재하고 있다면, 저는 그 수단이 허구이고, 점령에 봉사한다는 점을 드러내고 싶지, 그 장점을 살리고 극대화 해 문제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쓸데없는
특히 아랍인은 표현의 자유가 없는데 유대인은 있으니까 표현의 자유가 일부 있는 나라라는 말 자체가 저는 성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건 그냥 인종차별 시스템 아닌가요? 발전시켜야 할 무엇이 아니고요. 백인들만 자유를 누리던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처럼 말예요.
제가 말하는 건 "우린 종교의 자유와 표현과 언론의 자유는 제법 갖춰졌지만 사상과 양심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는 아직 개떡같아"가 아니고 "유대인에게는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 등 모든 것이 제법 갖춰졌지만 아랍인에게는 아니야" 그리고 이 아랍인들은 (GV 때 언급한대로) 이스라엘 내에서 50여개 법으로 공식적으로 차별받는 팔레스타인인과 군사점령당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인 거고요.
GV에 임하는 태도는 미숙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 쓸데없이 분노를 드러냈던.. 앞에 있는 사람이 그런 식이면 마음이 편치가 않죠 마치 재밌게 본 게 잘못이라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고.. 저는 그런 점이 미숙했다고 생각하지만요, 이미 찍어서 공개된 영화를 얘기할 때 정치적으로 입장차를 드러내고 영화를 비판하는 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만 더 정제된 언어로, 분노하지 않고-_- 건조하게 얘기하는 게 훨씬 좋았으리란 생각이 듭니다, 몇달간 이스라엘의 가자 공습으로 격해져 있던 감정이 괜한 자리에서 폭발했던 것도 같습니다-_-;;;
그리고 점령 현실은 설명했다고 생각하고요, 그거 하러 갔던 거니깐요-_- 더 찾아보실 수 있게 안내하지 않은 것은 아쉽고..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항상 BDS를 얘기하고는 있는데, 더 구체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게 연대운동 차원에서 좀더 준비하겠습니다.
참 인권과 권리는 명확히 나눠서 쓰고 있지는 않고, 기본적으로 시스템 얘기를 하는 거라 권리라고 썼던 것 같습니다. 법 민주주의 그러면 저는 권리 쪽으로 단어를 쓰게 돼서요. 암튼 스팸 아닌 댓글 정말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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