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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창립과 단협1

 

2010년 7월 27일 언론노동조합 보리출판사 분회 창립총회를 했다. 보통 창립총회를 하고 나서 외부 손님들을 초대해서 축하받는 자리를 따로 만드는 거 같은데, 우리는 한꺼번에 진행했다. 언론노조, 창비, 작은책, 출판노협 들에서 축하를 하러 와 주었다. 덕분에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손님들한테 많이 보여줬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터져나왔을 때, 그걸 판단하기 위한 준거가 회칙이 될텐데, 아직 의결하지 않은 회칙이 유효한지 같은, 그야말로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들이 터져나온 거다. 우왕좌왕하긴 했어도,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논의를 해서 잘 처리해 넘겼다. 대부분이 노동조합 결성을 반기는 분위기였기때문에 잘 풀어갈 수 있었지, 만약 나쁜 마음을 가지고 노동조합을 방해하려는 사람이 한 명만 있었어도 총회가 파행으로 치달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했다. 

 

창립총회는 회칙 인준, 집행부 선거, 공연(초대 가수와 조합원들 공연), 축하인사 들로 이루어졌다. 당시는 아직 단협을 맺기 전이라 오픈샵 형태를 띠고 있었는데, 수습사원과 계약직 직원을 제외한 모든 평직원이 가입했다. 간부급(부장 이상) 이상에서는 경영지원실장만 가입서를 냈고, 노동조합을 만드는 동안 계속 애매한 태도를 취했던 부장과 실장들은 가입하지 않았다. 간부급들은 나중에 단협에서 유니온샵 규정이 통과되면서 자동으로 가입이 되었고, 계약직 직원은 역시 단협에서 노조와 회사가 조합원 범위를 합의하면서 가입하게 되었다.

 

총회를 준비하면서 작가들에게 노동조합 창립축하 메세지를 받았다. 보리와 작업을 하는 작가들 뿐만 아니라, 보리와 책을 낸 적은 없어도 조합원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작가들에게도 연대 메세지를 받았다. 박노자, 이계삼, 서정오, 하민석, 김수박, 김성희, 박건웅, 서선미 같은 작가들이 창립축하 메세지를 보내주었다. 이거는 참 잘한 일이라 생각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의 방패막이가 되어달라는 요청이나 마찬가지였다. 막 출범하는 노동조합이 무슨 힘이 있겠나. 작가들이 공개적으로 지지해주면 회사 밖으로도 우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혹시나 불안해하는 조합원이 있다면 그 마음을 다잡아줄 거라 생각했다. 물론 정중하게 거절의 뜻을 밝힌 작가들도 있었다. 작가들 역시 생활인이기 때문에 그 판단을 존중해주자고 노조 준비위에서 이야기가 되었다. 

 

보리출판사 분회를 만든 뒤 가장 중점을 두었던 것은 단협 준비였다. 단협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조언을 들었다. 그 가운데 오마이뉴스 노조 지부장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보리와 비슷한 규모(10명은 넘고 100명은 안 되는)에다가 회사가 나름의 진보성을 표방하는 곳이어서 들을만한 이야기가 많다고 생각했다. 당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고, 단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은 딱 한마디 밖에 기억이 안난다. 막상 단협이 시작되면 회사의 바닥을 볼 수 있을 거라는 말... 그 말은 150% 진짜였다. 

 

본격으로 단협 준비를 시작한 것은 10월로 기억한다. 우리는 신생노조여서 단협을 하기 위해 단체협약 초안부터 만들어야 했다. 조합원들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보리 노조에 바라는 점은 무엇인지, 단협을 맺는데 무엇을 중점적으로 맺는 게 좋을지 등을 물었다. 많은 의견이 모였다. 외박을 해야 하는 회사 의무 교육에 대한 문제제기,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인사 발령, 그리고 수습사원에 대한 처우 같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조합원들 의견을 바탕으로 단체협약 초안을 만들어야 했다. 음으로 양으로 다른 출판사 노동조합들의 단체협약을 다 모으고, 언론노조에서 단체협약사례집도 받았다. MBC나 한겨레처럼 언론노조 안에서 노동조합이 활발한 곳들 단체협약과, 언론노조에서 만든 모범 단체협약, 다른 출판사의 단체협약들을 살피면서 가장 좋은 것들을 추리되, 보리의 실정에 맞게 수정하기로 했다. 어차피 단협 자리에서 합의를 하면서 양보를 해야할 것이기에 일단은 최선의 안을 만들자고 했다. 

 

대의원들이 수차례 회의와 토론을 하면서 단협 초안을 만들었다. 이때는 참 즐거웠던 거 같다.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이 회사가 더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말에 따로 시간을 내 대의원들이 모였는데도, 모두들 싫은 기색이 없었다. 단체협약 초안을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노동조합이 회사의 경영권과 인사권을 견제하는 부분이었다. 복지와 관련된 것들은 지금도 과히 나쁜 수준이 아니기때문에 회사에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구병 대표이사가 거의 회사 결정의 전권을 휘두르고, 주주들이나 이사들이 윤구병 대표이사를 견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노동조합이 대표이사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인사권 같은 경우는 조합원들이 바로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 있는 사안이라서 더더욱 신경을 쓰고 우리 힘을 이곳에 집중시키자고 했다. 실제로 우리가 들어오기 직전에 보리 직원들이 회사를 단체로 나갈 때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도 대표이사의 인사발령이었던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사권 견제는 이상적인 선언이라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보호하자는 현실적인 측면이 더 컸다. 

 

단협 초안을 완성하고회사에 단협을 시작하자고 공문을 보냈다. 2010년 12(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안 남)에 보리출판사 노사가 첫 모임을 가졌다단협은 예상 외로 길어졌다우리는 사실 약간의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윤구병 대표이사가 진보인사로 이름난 자기 명예 때문에라도 밖에다 자랑할 수 있는 단협을 맺어줄 거라고그리고 노조가 생기고 처음 하는 임금협상인데다 작년에 한 푼도 임금이 오르지 않았으니 이번 임금협상은 크게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우리 기대는 산산조각이 났다단협에 들어가면 회사의 바닥을 볼 수 있을 거라던 오마이뉴스 지부장의 이야기가 딱 맞았다.

 

2011년 1월 12일에 첫 단협을 해서, 5월 13일까지 10차에 걸쳐 단협을 했지만끝내 결렬되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재까지 가게 되었다그 과정을 간단하게 복기해보고자 한다.

 

사실 단협 처음부터 갈등이 심했던 것은 아니다노사가 의견이 다른 부분도 있었고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서로 양보하면서 절충안을 찾아가고 있었다복지나혹은 세세한 부분들은 거의 이견이 없거나한두 번 토론으로 합의점을 찾았다주로 의견이 충돌했던 부분은 역시나 우리가 가장 중점적으로 준비한 부분바로 인사권과 경영권에 대한 조항들이었다그동안 합리적이지 않은 인사발령이 많았기 때문에노동조합에서는 노동조합이 최소한 징계성 인사발령이라도 막을 수 있게 단협에 넣으려고 했다문구 하나하나를 가지고 여러 차례 토론을 했다. ‘모든 인사발령으로 할지 징계성 인사발령으로 할지노동조합과 합의해야한다로 할지, ‘협의해야한다로 할지징계와 해고에 대해서도 날선 토론이 이어졌다회사는 조금이라도 해고의 여지를 두려고 하고노동조합은 해고의 여지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했다징계에 있어서도 징계를 내릴 수 있는 사안을 엄격하게 제안하고징계의 절차도 까다롭게 하려는 노동조합과 사유나 절차 모두 좀 열어두려는 사측이 끊임없이 대립했다인사권만큼은 아니지만경영권에 대한 부분도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다우리는 회사의 정보를 노동조합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했고회사는 기밀이라면서 그것을 차단하려고 했다결국 관련 법령을 보여주고 나서야 우리 뜻대로 조항을 삽입할 수 있었다또 회의 구조가 투명하지 않았는데 그것을 투명하게 하려고 한 부분에서도 노사가 대립했다.

 

아무튼 단체협약을 만드는 일은 10차에 걸친 단협 가운데 5차 만에 모두 끝났다차수로는 5차지만 4차 단협이 사측의 불참으로 결렬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네 차례에 걸쳐서 단협을 맺은 것이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노동조합 입장에서는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단협 과정에서 자잘한 기싸움도 많았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통크게 양보해줘도 될 거를 기싸움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뭐 결과로 보자면단협을 잘 맺었으니 좋은 전략이었다고 할 수도 있지만필요 이상의 기싸움은 노사 모두에 안 좋은 거 같다지금 드는 생각은 싸움은 최소로제대로확실하게 하는 것이 좋다자잘한 거 싸워서 이겨봤자내 기분 좋은 거 말고는 남는 게 없는 것 같다모든 싸움이 그렇듯 잘 지는 게 단협에서도 정말 중요하다.모든 걸 노조의 뜻대로 할 수는 없다회사와 싸워 이겨 무언가를 따 내는 것만큼이나회사에 양보하고 져 줄 것을 잘 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게 말로는 쉽지만 지금 다시 단협을 한다고 해도 자신이 없다. 막상 단협에 들어가면, 피부로 느끼는 공기나 회사의 태도 이런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것은 노조 혼자서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회사와 노조 양쪽 모두 감정 싸움을 자제하려고 노력해야 그나마 겨우겨우 피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간혹 노동조합이 서툴다며 질책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현실에서도 그게 맞는 거 같지는 않다. 노동조합이 어느 정도 힘을 가지고 회사와 동등한 입장이라면 노조가 서툴게 임하는 것이 단협에 큰 영향을 끼치겠지만, 현실에서는 회사가 훨씬 더 큰 권력을 가지고 있다. 결국 회사의 의지가 단협의 성패에 영향이 큰 상황에서 노동조합의 태도만을 문제 삼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힘을 아끼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나는 그래도 에너지가 넘치는 편이라 회사와 싸운다고 지치지 않았는데다른 사람들은 나와 다르다다른 사람들은 단협에 임하는 책임감부터 분회장과 다르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장 후회되는 것은물론 그리해서 좋은 단협을 맺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내가 너무 많은 발언을 독점했다는 것이다언론노조에서 교육 받을 때도 한 사람만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말고돌아가면서 역할을 맡아서 말을 해야한다고 들었다그런데 실제 단협에서는 순발력 있게 치고나가거나 법 같은 정보를 들먹어야 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말을 다 하게 되었다단기적으로보면 그게 그 싸움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노조를 장기적으로 볼 때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조직은 건강할 수가 없으니까.

 

다음 글에서는 임금 협상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그런대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던 단협이 임금협상을 하면서 급속도로 파탄났다. 아마 지금 다시 그 시점으로 돌아가도 결과는 똑같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당시 왜 단협이 파탄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은 어땠는지 살펴보고 싶다. 지금 노동조합을 열심히 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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