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경제위기는 극한상황에 이르렀고 국가부도 가능성도 있다. 그리스 경제위기를 보고 한국의 보수진영은 복지병이 원인이라고 하고 진보진영은 오히려 복지가 적어서 그렇다고 한다. 누구의 말이 맞는가? 사실 양쪽 모두 자기들 이해관계를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그 사람들은 믿고 싶은 대로 믿을 뿐이지 근본 원인을 모른다.
그리스 말고도 스페인·프랑스·이탈리아 등도 국가부채가 늘어나고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으니 사실 경제위기는 유로존 전체의 문제다. 그리고 그것은 유로의 문제다.
유로는 유럽을 통일하려고 만들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유럽은 갈등이 고조되면서 분열되고 있다. 한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갑질이 국제적인 규모로 확장됐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케이스가 그리스 경제위기다. 독일은 갑이고 그리스는 을이다. 돈은 독일에 쌓여 있고 순환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지금 유로존 경제위기는 유럽 각국의 돈을 유로 하나로 통일할 때부터 정해진 일이었다. “액면가가 불변하는 돈”은 골고루 순환하지 못하고 소수의 경제주체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낳는 기본이자는 실물자본의 생산을 억제하여 주기적인 경제위기를 낳게 된다. 유럽 각국은 애초에 모든 국가통화를 국제화할 것이 아니라 무역에 쓰는 통화만 국제화했어야 했다. 지금 상황에서 유로존 경제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유로를 무너뜨리고 자기 나라 통화로 돌아간 다음 국제통화를 도입하여야 하는가? 아니다. 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유로 자체를 실비오 게젤이 제안한 공짜돈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아도 그 방법 하나로 유로존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유로를 공짜돈으로 전환하면 지금 쌓여있는 유로잉여금들이 모두 유럽의 경제위기 지역으로 흘러갈 것이다. 가만히 쌓아둬서 감가상각되느니 대출을 하여 원금을 보전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이다. 유로가 순환하면 경제위기는 사라지고 유럽은 하나가 될 것이다.
유럽은 지금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쓰다가 양적완화를 하고 있다. 유럽의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게젤의 이론을 수박겉핥기로 이해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공짜돈은 마이너스금리가 아니다. 공짜돈은 모든 돈의 액면가가 규칙적으로 감가상각되는 것이고, 마이너스금리는 은행에 맡긴 예금에만, 그것도 불규칙하게 적용되므로 완전히 다르다. 공짜돈은 마이너스금리가 아니라 금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 둘을 혼동하면 안된다. 가장 비슷해 보이는 개념이 대중들에게는 가장 위험하다. "공짜돈이 마이너스금리"라는 주장은 새로운 개념을 받아들일 때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려는 것 같지만 오히려 혼란만 자아내고 있다. 마이너스금리는, 은행에 맡기지 않은 돈의 액면가는 불변하므로 여전히 교환되어야 하는 강제에 종속되지 않는다. 즉 돈은 쌓일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쓴 다음에도 여전히 유럽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유럽은 그래서 양적완화를 더했다. 이처럼 마이너스금리 정책은 효과를 보증할 수 없다. 실비오 게젤의 경제이론을 정확히 이해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유로를 공짜돈으로 개혁하면, 유로존 물가는 안정되지만 환율은 지금처럼 여전히 변동할 것이다. 그것은 유로의 문제가 아니라 비유로존 물가가 변동하기 때문이다. 이 때 유로존은 비유로존 나라들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 때 비유로존은 유로존 경제가 이미 공짜돈으로 회복되어 전례 없이 성장하는 것을 보았을 테니 유로존을 따라서 공짜돈을 도입할 것이다. 그 다음 국제통화를 만들어 무역을 하면 환율도 안정될 수 있다. (여기서, 유로가 공짜돈이 되면 유로소지자가 다른 나라 돈으로 갈아탈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빠져나간 유로는 다시 유로존으로 곧바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그 돈은 액면가가 감가상각되기 때문에 어디에 있건 쌓아둘 수 없다. 쌓아두는 건 손실을 의미하니까. 그 돈을 쥔 외국인은 다시 그 돈으로 유럽의 상품이나 노동을 사든지 아니면 유럽의 기업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비유로존 나라들이 유로를 쌓아두었다가 적당한 때에 투기의 목적으로 유로를 시장에 풀어서 유로존 물가를 변동시킬 수는 없다. 환율변동으로 인한 타격은 비유로존이 받을 것이다. 그들이 공짜돈을 도입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