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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의 미술세계

동시변조:감미로움과 숭고함을 위한 디지털 가상실험

백남준&노만 발라드/2000년/로뎅갤러리

 

백남준 화집을 뒤적이다 오랜만에 감흥이 밀려온다.

그걸 같이 느껴야 한다.

 

2000년 그의 개인전이 로뎅갤러리와 호암갤러리 두곳에서 동시에 전시되었다.

백남준은 책에서나 봐오던 작가였다.

한국작가로서 유명세를 탄 유일한 미술가..비디오미술가, 로봇TV.. 그 정도의 기본적

지식과 무심함으로 전시장에 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전시장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난 그에게 매료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이야 설치미술이 주류미술로 자리잡아 입체적 작업에 대한 거부감이라든가 생소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대학을 다녔던 당시 설치미술이란 초기 생성기정도였고

나또한 평면이 아닌 입체, 캔버스와 물감이 아닌 다양한 재료들에 매료되어 붓을 꺽고

새로운 재질들을 찾아 실험하던 때었다. 설치미술이 주류로 등장할 것이라는 예감은 적중했고

난 지금 그 작품들을 감상하는 입장에만 있으니...씁쓸할 따름이다.

여튼...

설치미술, 그 이전에 비디오미술이 있었고 더 이전에 플럭서스, 아방가르드 미술, 다다이즘의

뒤샹이 있었다. 남자변기를 전시하면서 미술계의 파문을 일으켰고...그 이후 독일의

프랑크프르트에서는 몇명의 작당들이 모여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때려부시는 등의

퍼포먼스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 작당들 중에는 백남준이 있었다.

과선후배들이 독일로 공부하러 몰려가는 이유중에 하나가 백남준때문이라면?

많았다..지금도 독일에 수두룩 빡빡...^^

 

TV정원을 보면서 황홀했다.

미디어의 차가움보다는 빛과 칼라의 움직임이 오히려 포근함을 주었다면?

그랬다. 21세기 미디어의 홍수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노스텔지어처럼 보였다.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꼈다면 난 어쩔수없이 미디어에 길들여진

세속인이고 전체화된 기계속의 초라한 너트가 될지언정...황홀했다.

또 맛볼 수 있다면 간이라도 내놓겠구만..ㅎㅎ

백남준미술관 추진위원회가 국내에서 추진중이라 하니 모...기대해야지..

참!! 가끔 빌딩로비에서 백남준 작품을 볼 기회가 있지만 상시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다반사여서 맥빠질떄가 많았다.

그런데 얼마전 삼성동 포스코 빌딩앞을 지나는데 건물안에서 반짝반짝하는 무엇이

내눈에 띈것이다. 낮에는 몰랐는데 밤이 되니 빛나는 작품들때문이었다.

황홀경에 한참을 서있었다. 기회되면 저녁무렵 포스코앞을 또 서성이고 싶네...^^

 

글 맨아래는 백남준의 작업실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슴돠~


3원소/2000/로뎅갤러리


3원소

 

밤이 되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포스코빌딩에 설치된 작품은 요거...큰 그림이 엄따..우씨..

비디오깔데기

 


프로젝션 스크린/2000/로뎅갤러리

 

 

<백남준과 멀티미디어>

정용도/백남준미술관 건립추진팀 학예연구원

 

들어가는 말
백남준으로 인해 20세기 세계 미술의 역사에서 비디오와 TV가 예술작품의 매체로 편입되었고, 예술작품 창조의 중요한 도구이자 재료가 되었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멀티미디어 아트, 뉴미디어 아트 논의의 시발점에 언제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존재한다. 

 

I. 예술작품의 새로운 조건들
백남준은 동경대학교에서 미학과 현대음악을 공부했다. 그의 예술적 경향이 음악에서 시각예술로 변화하는 것은 1958년 콜론(Cologne) 대학에서 존 케이지(John Cage)를 만나고 나서 시작되었다. 현대음악의 거장으로 무조음악의 창시자 쉔베르그(Arnlold Shoenberg)의 제자인 존 케이지는 1950년대에 동양철학의 선불교를 공부하면서 우연성(chance; 찰나)의 개념을 그의 음악의 대주제로 도입하였다. 그는 선을 그의 음악이론을 정립하는 도구로 이용하였는데, 그에게 음악은 어떤 인상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받은 인상을 지워버리는 불교적인 그런 것이 되었다. 결국 존 케이지는 소음일지라도 모든 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는 백남준이 그의 비디오 작품에서 TV속의 이미지를 조합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즉 백남준 작품의 영상 이미지들은 전통미술에서 볼 수 있는 완성된(defined) 이미지 혹은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영상 작품들의 속성인 완결된 이야기가 관객들에게 주는 결정적인 인상이 아니라 계속 진행적인 가변적 상황을 제시한다. 그러므로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통해 어떤 고정된 강한 인상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과 과정으로서의 이미지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케이지의 우연성 개념이 백남준에게는 이미지의 우연성과 이미지들의 우연한 조합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백남준 작품의 기반이 되는 미학적 배경과 기술적 발전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선 현대미술의 본격적인 출발점은 프랑스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으로부터 기원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뒤샹은 3가지 점에서 현대미술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일상 오브제의 도입을 통해 그동안의 예술이 향유하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19세기까지의 전통 미술이 대부분 사회적 권력 계층의 고급 취미(taste)를 대변하는 미술이었다면 뒤샹의 미술은 그런 고급 취미를 거부하며 일반 민중의 일상적 삶에 예술적 상징성과 역할을 부여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found object(남성소변기, 부삽, 자전거 바퀴 등 우리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용도 폐기된 물건들)는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현대미술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을 내포하는 상징적 지표이기도 하다. 이런 뒤샹의 시도 이후 20세기 현대미술에서 나타나는 일상으로의 복귀는 우리 일반인들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의식의 지평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기술매체는 기술매체들은 20세기 이전의 예술처럼 우리의 존재를 숨막히게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기술은 우리 인간들에게 마치 신화처럼 군림한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분리되어 이용되어왔던 매체들이 하나의 매체로 통합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이것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용어는 멀티미디어다. 멀티미디어는 그동안 각각 단일 매체에 의해 재현되어(represent) 왔던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의 세 요소가 하드디스크나 다른 기술매체를 통해 하나의 통합된 형식으로 재현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런 통합과정을 통해 기술은 다시 우리 인간의 삶 속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리고 기계적인 신호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아날로그와 기술적인 코드 시스템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디지털과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것은 멀티미디어의 범주에서 볼 때 다른 문제가 된다. 백남준의 작품은 멀티미디어 작품의 가장 기초가 되는 작품이고, 그는 멀티미디어 아트를 통해 이 세계가 예술적으로 하나의 커뮤니티로 재탄생할 수 있는 그런 꿈을 보여주었다.

백남준의 오브제 작품은 크게 3가지 범주로 묶어볼 수 있다. 우선 초기 60년대 작품에서 그는 시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1960년대 TV-Clock(1963), Moon is the Oldest TV(1965) 등의 작품들에서 백남준은 그동안 미술의 대주제였던 공간적인 구성(composition)의 문제를 시간성(temporality)의 문제로 전환시킨다. 즉 그는 이런 작품들을 통해 미술의 대주제를 시간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리고 1970년대 TV-Buddha(1973) 등의 작품을 통해 백남준은 이미지의 문제를 다룬다. 카메라에 의해 TV 속에 나타난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부처와 TV 속의 부처 이미지와는 어떤 관계가 설정된다. 그 관계는 부처의 가르침 “空卽是色 色卽是空”의 논리를 응용한다면 이미지의 비존재성과 물리적인(physical) 실제 부처는 차이가 없다.

그러므로 이 두 존재 사이에 남는 것은 결국 두 존재가 지향하는 의식의 장(field)일 뿐이다. 이 작품이 만들어내는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 삶의 장소에 대한 의미와 무의미 - 위계적인 질서는 없고 단지 뒤섞여 있을 뿐인 - 의 복합적인 상황이다. 그러므로 모든 소리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케이지의 신념처럼 그리고 뒤샹(Marcel Duchamp)의 모든 물건들이 예술작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작가적인 행위처럼 백남준에게도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상황 자체가 예술일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970-80년대 TV 위에 화초를 놓고 그것을 카메라로 비추어 TV화면의 이미지로 나타나게 한 Real Plant/Live Plant(1978), 한대의 TV에 물고기 어항을 만들고 그 어항을 카메라로 비추어 옆에 놓여있는 TV에 이미지를 나타나게 한 Real Fish/Live Fish(1982) 등의 작품은 TV의 탄생과 관련된 정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정보는 예술작품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 그 가치를 잃는다. 그러나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회화 조각 같은 예술작품은 시간이 갈수록 그 가치를 더해간다. 이런 ’80년대 작품에서 백남준이 다루는 주제는 모순을 내포한 듯 보이지만 실제적으로는 현대미술의 딜레마인 경제적 가치의 문제와 더불어 의미부여의 가치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가 부여되는 정보는 경제적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이고 다양한 해석과 응용이 가능한 정보는 말할 것도 없이 가장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게 된다.

백남준이 그의 작품을 통해 제기한 시간, 이미지, 정보 이 세 가지 화두는 현대 멀티미디어 아트에서 작품의 성격을 좌우하는 가장 기본적인 구조틀(framework)이 된다. 이런 차원에서 볼 때 그는 우리에게 앞으로의 미술이 그동안 인간이 창조한 문명의 모든 가치들을 종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화두이자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현재의 우리 삶과 관련하여 더욱 시대를 통찰하고 또한 미래를 관통하는 작품들은 1973년의 Global Groove, 1984년의 Good Morning, Mr. Orwell 등 TV와 인공위성을 통해 생중계되었던 영상작품들이다. 그의 전자고속도로 개념을 이처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들은 현재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서로 이미지와 사운드 정보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상황을 예감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우리는 가상현실 개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영상작품은 예술적인 창조물을 물질적인 매체가 아니라 물질적인 기반을 가지지 않는 매체를 통해 관객들에 전달한다. 가상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특성은 그것이 물질적인 특성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언어적으로 모순적인 어의(oxymoron)를 가지고 있다. 가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말하고 실제는 우리가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상현실은 가상적인 것이 우리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해 현실과 전혀 다름없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현실을 모방한 이미지는 가상현실로서의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므로 가상현실은 예술작품이 작가의 정신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인 것처럼 예술적 창조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0세기 중반 독일의 철학자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이라는 글에서 사진의 발명이후 예술작품의 고유성(authenticity)이 사라지고 작품의 유일무이한 존재성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라(aura)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특히 사진으로 인해 전통적인 예술작품이 가지고 있던 제의적인 가치(the ritual value)로부터 전시가치(the exhibition value)로 중요성이 옮겨갔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상황을 종합해주는 개념을 여론의 형성이 가능해지는 ‘정치성’이라고 말한다. 즉 새로운 매체의 발명은 새로운 개념의 탄생을 가져오거나, 그동안 존재하고 있었지만 다른 것들과의 의미연관적인 고리를 발견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해석될 수 없었던 것들에 새로운 중요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해준다는 요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백남준이 창조한 작품들이 우리의 문화에 새로운 미학적 개념들이 가능하게 하고 또한 인간의 미래를 기존의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백남준의 오브제 작품, 영상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갈 세계에 대한 새로운 가치체계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II. 백남준미술관과 뉴미디어 아트의 예술적 비전
경기도 용인에 백남준미술관이 설립된다는 것은 한국에서 태어나 일생을 전세계를 대상으로 자신의 예술적 창조성을 끊임없이 발휘해 왔던 한 작가의 예술적 오디세이를 자신의 고향인 한국 땅에서 정리한다는 면에서 예술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남준은 1932년 일제 식민지의 한국인으로 태어나 유럽과 미국을 주요 무대로 자신의 예술적 여정을 시작했고 현재 전 세계 미술사 서적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작가가 되었다. 백남준의 예술적 여정의 특성은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항해로 자신의 개별적인 인간적인 가치들을, 즉 한국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인식론적 특성을 예술이라는 수단을 통해 글로벌한 차원의 언어로 변화시키고 또한 자기 개인의 생각들을 보편적인 예술언어로 끊임없이 재해석하는 그런 것이었다.

백남준의 예술작품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사람들의 인식론적 지평을 끊임없이 넓히는 그런 작업이었다면, 그가 단순히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상당한 행운이다. 언어와 사고의 일치라는 다분히 상식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특히 그의 모국어가 한국어기 때문에 우리는 그를 통해 세계의 예술적 언어를 우리 한국의 시각을 통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술의 문제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삶 속에서 보고 듣는 수많은 대상들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넘어가면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통해 문화적 상식을 터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백남준의 작품이 시각문화의 지평과 개념을 변화시키고 또한 넓혀놓았듯이 엄밀한 의미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의 백남준미술관 설립은 우리 한국 미술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백남준미술관이 단지 그의 주요 작품을 한 곳에 모아 놓은 수동적 의미의 미술관(Mausoleum)이 된다면 불가능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백남준미술관이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장소로서 그리고 새로운 뉴미디어 아트의 창조가 가능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작가들을 위한 전문 예술교육이 실현될 수 있는 장소가 된다면 이는 한국 미술의 미래를 위한 최고의 가치 있는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백남준미술관이 미술관의 기능은 물론 새로운 예술작품 창조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가장 첨예하게 창조성의 본질과 예술적 비전을 실험하고 또 실현하고 있는 미국의 “MIT 미디어 랩”, 독일의 “ZKM” 같은 전시와 예술교육,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미디어 아트센터의 발전과정과 경험으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어야만 한다. 

 

나가는 말
백남준미술관은 단순히 미술관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뉴미디어 아트의 연구 장소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백남준미술관의 설립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전문화예술 2003년 3•4월호>


TV시계/2000/로뎅갤러리

 

백남준 온라인 전시장~

http://www.hoammuseum.org/exhibition/paik2/exb/laser/index.html

 

사족

예술가의 작업실_백남준

대학재학시 작업실도 모 과히 이곳 풍경과 다르지 않아서 너무나 정겹다.

작업실=공구실. ㅋㅋㅋ

예술이나 회화제작과정에 대해 환상은 버려라. 두들기고, 조이고, 붙이고...

이런곳에서 물론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하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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