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총선 여주·양평 후보였던 최재관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은 벌금 90만원으로 재판을 끝냈다. 같은 사건에서 선거사무원이었던 여현정 전 양평군의원은 벌금 1000만원을 받았다. 여 전 의원은 서울~양평 고속도로 노선 변경 의혹을 공론화한 인물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판결문과 수사기록을 보면 두 사람의 결과는 기소 범위와 진술 태도에서 갈렸다.
수원고법 형사14부(허양윤 고법판사)는 지난달 22일 여 전 의원의 항소를 기각했다. 벌금 100만원 이상이 확정되면 5년 동안 선거에 나설 수 없다. 여 전 의원은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최 이사장은 1심 뒤 항소하지 않았다. 검찰 항소가 기각된 뒤 상고도 없어 90만원이 확정됐다.
강연 둘과 유세 하나, 기소는 달랐다
사건의 뿌리는 지난 2024년 총선을 앞둔 세 행사다. 2월 14일 양평 시국강연과 3월 13일 여주 시국강연, 선거운동 기간 여주 세종로 한글시장 유세다. 강사와 유세 연설자는 김건희 씨에게 디올백을 건넨 최재영 목사였다. 최 목사는 미국 국적자라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검찰은 두 강연을 사전선거운동으로 봤다. 마이크 사용에는 확성장치 문제를 걸었다. 시장 유세에는 외국인 선거운동 규정을 적용했다. 그런데 후보였던 최 이사장은 두 강연으로 기소되지 않았다. 그의 혐의는 시장 유세 한 건뿐이었다. 강연 혐의의 중심에는 후보가 아닌 여 전 의원이 놓였다.
법원은 양평 강연의 최 목사 발언을 문제 삼았다. 올바른 탄핵을 할 일꾼을 뽑아야 한다며 최재관의 이름을 거론한 대목이다. "양평 고속도로 원상 회복하라"는 구호 뒤에 최재관이 일을 수행하라고 말한 부분도 판결문에 적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선거 관련 발언을 할 것을 알고도 강연을 맡겼다고 봤다. 강연 대가 50만원 지급도 유죄 근거로 들었다.
여 전 의원의 설명은 다르다. 그는 경찰에서 양평 강연 사회를 맡고 최 목사에게 강사를 요청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여주는 제가 관여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양평 군의원이라 여주 강연 준비 회의에도 나가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쪽 뜻을 강사에게 전달했을 뿐이라는 주장도 폈다.
법원은 시장 유세 경위도 다르게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최 목사의 제안에 여 전 의원이 전화로 여주 유세장에 먼저 가 달라고 부탁했다고 적혔다. 여 전 의원의 진술과 어긋나는 대목이다. 그는 최 목사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닌 줄 몰랐다고도 진술했다.
벌금 상한 600만원과 4200만원
판결문의 법률상 처단형 범위를 보면 격차가 더 뚜렷하다. 벌금 상한은 최 목사가 4500만원, 여 전 의원이 4200만원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3600만원으로 잡혔다. 최 이사장은 600만원이다. 강연을 도운 시민의 상한이 후보의 6배였다.
이 숫자는 재판부 재량으로 정해진 값이 아니다. 기소된 혐의가 많을수록 상한이 올라간다. 최 이사장의 낮은 상한은 검찰이 시장 유세 한 건만 기소한 결과다. 표를 얻을 당사자는 후보인데도 강연 혐의는 후보를 비켜 갔다.
양형 이유에서도 두 사람은 대비된다. 최 이사장에게는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가 유리한 사정으로 적혔다. 여 전 의원에게는 "대부분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 반성하지 않고 있다"는 평가가 붙었다. 시민단체 관계자들도 부인과 반성 없음을 이유로 불리한 평가를 받았다. 이들 네 명의 벌금은 각각 500만원이다. 기소 범위 차이에 혐의를 다퉜다는 평가가 더해진 결과다.
두 번째 질문은 후보가 아니라 여현정이었다
수사기록에서는 경찰의 관심이 어디를 향했는지 드러난다. 수사는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맡았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 조사에서 경찰은 최재관 후보와 여현정 의원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는지 물었다. 강연장에 민주당 관계자가 여럿 있었지만 후보 외에 거명된 이름은 여 전 의원이었다.
관계를 묻는 순서도 눈에 띈다. 경찰은 최 목사 다음으로 여 전 의원을 아느냐고 물었고 최재관 후보는 그 뒤에 물었다. 어떤 조사에서는 최재관과의 관계를 아예 묻지 않고 여 전 의원과의 관계를 물었다. 다른 피의자의 정당 가입 경위 문항에서는 최재관 이름이 먼저 나온 경우도 있다. 강연의 주축을 정리한 경찰 질문에는 여 전 의원이 앞에 놓였고 후보 이름은 없었다.
경찰은 여 전 의원이 양평 강연 도중 "선거법"이라고 말한 대목도 파고들었다. 경찰은 이 말을 근거로 위법 소지를 알고도 여주 강연을 추진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예상 밖 발언을 걱정한 말로 읽으면 사전 모의가 없었다는 정황이 된다. 수사기관은 알면서 진행한 고의 쪽으로 질문을 몰았다. 한 관계자는 최 후보가 올지 몰라 행사 순서에 임의로 적었다고 진술했다.
1심에서 네 피고인을 함께 변호한 변호인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표적 수사를 의심했다. 그는 고발인을 물었더니 고발인 없이 상부에서 내려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여주·양평은 김건희 씨와 관련이 깊고 여 전 의원이 앞장선 인물이라는 이유도 들었다. 수사기관이 이를 확인해 준 것은 아니며 변호인이 전해 들은 내용이다.
최재관 "여현정이 물어보니 답하게 된 것입니다"
최 이사장의 피의자신문조서는 여 전 의원의 입장과 반대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여주 강연에 다시 간 주된 목적이 사람들에게 자신을 알리는 것이었다고 진술했다. 양평 강연도 선거 복장을 입고 홍보 인사를 하러 갔다고 말했다. 강연이 자기 선거에 쓰였다는 경찰 구도를 후보 본인의 진술이 뒷받침했다.
경찰은 여 전 의원 등 선거사무 관계자에게 연락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연락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여 전 의원을 연락자로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질문 속 이름을 바로잡지도 않았다.
결정적 대목은 여주 강연장 인터뷰다. 조서에는 그가 "김선교도 심판해 주십시오"라고 말한 인터뷰가 나온다. 경찰은 여 전 의원이 최재관을 응원해 달라고 한 것이 선거운동 아니냐고도 물었다. 왜 인터뷰를 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현정이 물어보니 답하게 된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선거에 도움이 되기 위해 한 것은 맞습니다"라고 했다. 후보가 선거운동 성격을 인정하면서 질문자로 여 전 의원 이름을 남긴 기록이다.
변호인은 시장 유세 혐의 인정을 두고 챙기지 못한 불찰을 도의적으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소하지 않은 이유로는 이미 정치적 생명을 지킬 벌금액을 받은 점을 들었다. 시민단체 관계자의 조서에도 청중은 지지 호소로 인지했을 것이라는 불리한 답변이 남았다. 같은 취지의 질문이 되풀이된 뒤 나온 답변이다.
벌금 90만원 뒤에 남은 공방
항소심 뒤 여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 최 이사장을 향한 글을 썼다. 공동 피고인 일곱 명 가운데 혼자 90만원으로 정치 생명을 지켰다는 내용이다. 그는 지역위원장 자리를 "팔고 가셨다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최 이사장은 지난 1월 공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지역위원장 자리는 최성원씨가 직무대행을 거쳐 이어받았다.
최 위원장은 이 글이 허위사실 유포라고 페이스북에서 반박했다. 그는 직무대행 시절 녹취에서 양평 군의원 하나가 자신에게 맞선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녹취에는 "여현정이 정치생명 끊을 수도 있어"라는 말도 담겼다.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실제로 여 전 의원의 출마길은 5년 동안 막힌다. 최 이사장은 항소심 선고 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여 전 의원은 지난달 24일 "대법원은 오세훈과 똑같은 잣대로 판단해주십시오"라고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여론조사비 3300만원 대납 혐의로 1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달 23일 명태균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특검은 상고 방침을 밝혔다. 두 사건의 혐의와 증거는 다르다. 다만 오 시장 사건의 핵심 진술은 의심받았고 여 전 의원의 부인은 반성 없음으로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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