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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는 잡아야죠, 근데..." 밭에 가기도 힘든 아흔 농부의 항변

충남 예산과 당진에 걸쳐 있는 '예당평야'. ⓒ 김지현

"내가 갖고 있던 마지막 보루인 농지마저 뺏기는 건가 하는 공포감이 앞선 거죠."

이재명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농지전수 조사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오마이뉴스>가 만난 충청남도 지역의 농심(農心)은 전수조사의 필요성 자체에는 공감하지만 농민들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세심하지 못한 집행 방식에는 불만이 높았다. 그러면서 상속·임대·고령·한계농지 등 각각 다르게 접근해야 할 농촌의 서로 다른 사정을 정부가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헌법상 경자유전 원칙을 바탕으로 농지 투기를 근절하고 전국 농지의 소유·이용 실태를 데이터베이스화하기 위해 농지전수조사를 진행 중이다. 올해 기본조사(5월 18일~7월 31일)를 마치고 8월부터 연말까지 심층조사를 진행 중이지만 농업계 일각에서는 반발이 나오는 모양새다.

'정부가 농사를 안 짓는 땅에 이행강제금을 부과해 빼앗으려 한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지난 18일 "진실이 아니다"라며 "정부가 하는 일은 명확한 부동산 투기를 가려내겠다는 것이자, 농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한 기초조사"라고 직접 진화에 나섰다.

<오마이뉴스>는 19일부터 21일까지 충남 홍성·예산·청양 농민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들어봤다. 취재 결과 '취지는 공감한다. 관건은 농지마다 다른 사정을 얼마나 정밀하게 가려내느냐'였다.

"필요한 조사"라는 농민들, 그 뒤에 붙은 '그러나'

예산에서 파프리카 농사를 짓고 있는 김영호씨(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는 "총론으로 봐서는 정말 잘하는 일"이라며 "농지전수조사는 꿋꿋하게 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지전수조사가 제대로 돼 나중에는 농사짓는 농민들이 비싸지 않은 땅값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끔해야 한다"라며 "농업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정책의 현실적 집행에 있어서 더 세밀한 접근을 주문했다. 김 전 의장은 "전국 지역에서 조사를 하다 보면 실제적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면서 세부기준을 정교하게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임선택 전농 충남도연맹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만든) 데이터를 통해서 이후 농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향후 10년, 20년, 30년의 그림을 그려가자는 것으로 이해한다"면서 "당장 누구를 처벌하고 땅값을 후려치고 하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논란 이면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불편한 진실은, 농민들이 농업소득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데 있다"는 것. 또한 임 위원장은 "농사 짓는 농민마저도 농지를 자산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짚었다. 낮은 농업소득 때문에 농지 자체가 노후 대비용 자산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내가 갖고 있던 마지막 보루인 농지마저 뺏기는 건가 하는 공포감이 앞섰다"는 이야기다.

농사 짓기가 어려운 산지 밭에는 수수와 깨 등이 심어져 있다. 깨를 심은 밭에는 풀과 깨가 함께 자라고 있다. ⓒ 이재환

예산에서 쪽파 농사를 하는 윤동권씨는 "전수조사는 분명히 필요하다"면서도 "그런데 준비가 덜 돼서 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제도의 필요성과 조사 방식 등을 농민·농민단체와 충분히 협의한 뒤 추진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윤씨는 조상 대대로 상속받은 농지나 농사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한 농지 등 다양한 사정이 농촌에 존재하는데, 투기 근절만 강조되면서 이들까지 제재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사과 과수원을 하는 안장훈씨는 "농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국가에서 관리를 하겠다고 하면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면서 "전수조사 그다음 대책으로 농민이 농촌을 떠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런 저런 것을 하겠다는 이야기라도 나와야 하는데 그게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각기 다른 사정이 있는 농지들

충남 홍성군의 한 야산 밭. 관리가 비교적 쉬운 옥수수가 심어져 있다. ⓒ 이재환

현장에선 '농사를 짓지 않는 땅' 하나에도 상속, 고령, 임대, 한계농지, 낮은 농업소득 등 서로 다른 사정이 있었다. 관건은 전수조사라는 제도가 그 차이를 얼마나 정확하게 가려낼 수 있느냐다.

실제 정부 기본조사에서도 조사 농지의 27%가량이 불법 임대차·무단 휴경·불법 전용·소유제한 위반 등의 '의심 농지'로 분류됐다. 전체 조사대상 중 불법 임대차 의심이 21.1%, 무단 휴경 의심이 11.6%였다(한 농지가 여러 의심 유형에 중복될 수 있음). 다만 이는 위법이 확정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층조사를 거쳐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대상이다.

상속 농지나 임대차 계약 농지 현황이 각양각색이라는 점도 전수조사를 둘러싼 불만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농촌에서는 소유자와 실제 경작자가 다른 임대관계가 일상적이고, 비자경이나 휴경 상태만으로 투기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전국 단위로 진행되는 전수조사가 농지마다 서로 다른 농업조건과 휴경 사유를 얼마나 정밀하게 분간해낼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충남 홍성군 한 야산.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아 밭이 있던 자리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 있다. ⓒ 이재환

충남 청양에서 포도농사를 짓는 노승일씨는 "기계가 들어가기 쉽게 반듯하게 경지 정리가 잘 돼 있고, 비옥해서 농사 짓기 좋은 땅은 지금도 임대가 잘 된다"면서 "그렇지 못한 땅은 임대가 안 돼 놀고 있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예산에서 농사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김영우씨도 물이 부족하고 농기계 진입이 어려운 산골 농지를 '한계농지'라고 표현하며 "농사 짓기 좋은 우량농지는 지금도 농사지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농민 고령화도 또다른 현실이다. 올해 아흔인 충남 홍성 농민 김아무개씨는 "젊었을 때는 밭까지 걸어가서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밭에 올라가기도 어렵다. 그런데 팔려고 내놔도 누가 산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라며 "면사무소에서는 밭을 갈아놓기라도 하라는데 선뜻 부탁할 사람도 마땅치 않다"라고 말했다.

김씨의 밭은 집에서 약 2km 떨어진 선산에 있다. 별도의 진입로가 없는 맹지여서 농기계가 들어가기도 어렵다.

"투기는 잡고, 관행은 정상화"… 관건은 후속조치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정책위의장(오른쪽)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농지 전수조사 추진 방향 당정 협의에서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이번 농지전수조사를 통해 ① 소유관계 ② 실경작 여부 ③ 시설 설치·전용 여부 ④ 휴경 여부를 중점적으로 파악 중이다(농지전수조사 시행지침에 근거).

다만 같은 '임대'나 '휴경'으로 분류되더라도 그 배경은 제각각이었다. 그 때문에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장관도 지난 21일 오전 당정협의에서 전수조사와 관련해 "경미하고 관행적 위반은 계도나 제도 개선 대안 조치를 마련하겠다"면서 "곧바로 처분하는 방식이 아니라 농지다움을 회복하고 다시 정상 이용될 길을 찾겠다"라고 후속조치 원칙을 보다 구체화했다.

당정은 이날 투기 목적이 아닌 상속·고령 농지와 농촌의 관행적 임대차는 자진 정비나 농지은행 위탁 등을 통해 정상화하고, 처분의무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처분유예 등의 근거를 담은 특별조치법을 연내 제정하고 농지연금·농지은행 관련 예산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임선택 위원장은 농지연금·농지은행 관련 재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고, 김영호 전 의장은 매수자를 찾지 못하는 고령농 등의 농지를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매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취재에 응한 여러 농민은 정부와 지방정부가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조사 취지와 후속조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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