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이듬해 대장으로 진급한 데 이어 1983년 육군참모총장을 지낸 뒤 1985년 예편했다. 전두환의 육사 11기 동기로 하나회 주축 멤버였던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내무장관·국방장관을 역임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뒤에 대구에서 13,14대 의원을 지냈으나 1996년 과거사 청산 당시 구속돼 1997년 대법원에서 내란모의 및 내란목적살인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대법원은 그의 내란목적살인 혐의에 대해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공수여단에 대한 행정, 군수지원 등의 지원을 하는 한편, 전교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특성이나 부대훈련상황을 알려주거나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가발·수류탄과 항공사진 등의 장비를 준비해 예하부대원을 격려하는 등 광주재진입작전의 성공을 위해 측면에서 지원했다"고 판시했다.
정호용은 당시 특전사령관을 맡고 있었음에도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부대가 전투병과교육사령부 등 현지 지휘계통에 배속돼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할 권한이 없었다며 책임을 회피하려 했다. 즉 자신은 광주에 배속된 부대원들을 행정적으로 지원하는 명령만 내렸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이후 5.18진상조사위원회 조사 과정을 통해 정호용이 1980년 5월 20일부터 27일까지 네 차례에 걸쳐 약 81시간 동안 광주에 머물렀던 사실이 확인됐다.
진상조사위는 정호용이 처음 광주에 내려간 5월 20일 작전 현안을 보고받는 회의를 주재했다는 복수의 진술을 확보했다. 당시 장세동 특전사 작전참모가 회의를 진행했고, 광주에 투입된 3·7·11공수여단장이 참석해 시위 진압 상황을 논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회의는 정호용이 광주를 방문할 때마다 열린 것으로 파악됐다. 전교사 상황실 2층에는 특전사가 별도로 사용하는 상황실도 설치돼 있었다.
5월 22일 박충훈 당시 국무총리 서리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 촬영된 영상에는 정호용이 군 관계자들과 함께 회의하는 장면도 담겼다. 이 영상은 자신이 광주에서 열린 주요 작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설명과 정반대였다.
정호용은 전남도청 재진입작전을 하루 앞둔 5월 26일 밤에도 광주로 내려왔다. 법원과 진상조사위는 그가 공수여단의 특성과 훈련 상태를 현지 지휘관에게 설명하고, 작전에 사용할 가발과 수류탄, 항공사진 등 장비를 마련해 배분한 사실을 확인했다. 작전 투입을 앞둔 예하부대원들을 격려한 사실도 인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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