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민주화 이후 더 나은 민주주의를 요구해 온 시민들의 정치개혁 요구와 끊임없는 제도 개혁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은 정당이 검은돈으로부터 독립하라고 국고보조금을 늘려 주었고, 정책정당이 되라고 경상보조금의 30%를 정책연구소에 쓰도록 법에 못 박았다. 여성·청년 대표를 훈련하고 키우라고 여성추천보조금과 청년정치발전비를 만들어 주었다. 민주당 계열의 당비 납부 당원은 1997년 1만 4천 명에서 2024년 131만 1천 명으로 늘었고, 2018년에는 당비 수입이 국고보조금을 처음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기 두 당의 운영 경비는 시민들의 세금으로 충당되었다. 온갖 법적 보호장치와 세금으로 유지되어 온 정당 조직, 그리고 탄핵 국면마다 정당의 문을 두드린 시민들의 선택이 만들어낸 것이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정당이다. 요컨대, 오늘의 거대 당원 정당은 그 당 내부자들만의 창조물이 아니라 40여 년에 걸친 시민들의 기대와 투자의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두 당은 지금 그 기대와 투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가?
더불어민주당이 지금 금과옥조처럼 붙들고 있는 당원주권의 첫 번째 실험은, 국민의힘에서 이미 실패했다. 국민의힘이 앞서간 당원주권의 길은 그 당을 망가뜨리는 것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렇다면 더불어민주당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선, 당원을 권리에 부합하는 책임의 주체로 세우는 제도와 실천을 당장 설계해야 한다. 입당할 때부터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역사, 정당의 규율과 규범에 대한 교육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한, 매년 정기적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이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당원이 민주주의자일 때, 윤석열 같은 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비극을 막을 수 있다. 경상보조금의 일정 비율을 당원 교육·숙의 프로그램에 의무 편성하고 집행 내역을 매년 공개하도록 제도화해서 일회성 이벤트가 아닌 제도로 안착시켜야 한다.
둘째, 모든 당원은 지역위원회나 전국위원회 활동을 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 정당의 일상 활동에 참여할 책임을 부여해야 당원에 의한 정당이 가능해진다. 당직 선거, 공직후보자 선거 때 투표만 하는 당원으로 당원주권 정당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일상적으로 당원이 정당의 활동을 책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당원의 권한은 책임에 비례해 설계해야 한다. 정기교육 이수 여부와 정당활동 참여 정도에 따라 지역위원회, 시도당위원회, 중앙위원회 등 참여 권한을 차등화해야 하고, 당직 및 선출공직 후보자 출마와도 연계해야 한다. 책임을 크게 지는 당원일수록 권한도 커야 하고, 반대로 책임을 지지 않는 당원은 권한도 줄여야 한다.
셋째, 당원이 당내 정치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적 시야를 갖고 한국 민주주의의 책임 주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 연금과 돌봄, AI 시대 산업구조 재편, 지역 소멸 등 국가적 의제에 대한 학습의 기회를 제공하고, 당원들이 정당의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직원들에 대해 매년 정기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대한민국 원내 제1당이자 집권당인 정당에서 신입교육도, 정기교육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국고보조금은 이런 데 쓰라고 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152만 권리당원은 더불어민주당만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에너지가 계파 동원의 연료가 될지 민주주의의 저력이 될지는 지금부터의 설계에 달렸다. 더불어민주당이 1인 1표제를 정당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경고로 읽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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