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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간' 대통령직…명태균·김대남 사태 진짜 문제는?

[박세열 칼럼] 브로커에 협박당하고 부하에게 '꼴통' 소리 듣는 대통령의 위상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10.12. 05: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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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통치 불능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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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체제에서 권력은 정당성에서 나온다. 대통령에게 정당성이 있다는 믿음 자체가 중요하다. 대통령의 실제 힘이나 능력과는 상관없다. 공직자가 공직에 복무할 수 있는 동인 역시 그 무형의 권위에서 나온다. 막스 베버는 전통적인 권위와 합법적인 권위를 분리했지만,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합법적 권위가 작동하기 위해선 통치자의 '카리스마'가 일정 부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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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이 '비선'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는 것보다 더 문제인 건, 대통령의 권위가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영(令)은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를 잃으면 영이 서지 않는다. 영이 서지 않으면 대통령직은 무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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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 스캔들'이라는 스토리가 어떻게 끝날 지는 알 수 없다. 선거 기술자의 탈법적 마키아벨리즘과, 법망을 뚫는 비선 실세의 활보, 리더를 우습게 아는 공직자들이 얽히고 설킨 이 이야기는 법정 드라마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한 쪽에선 '다소 부적절하지만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할 것이고, 다른 편에선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친다'고 맞설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싸움은 부질없다. 대통령의 신뢰자본이 파산했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어떤 게 대통령의 진짜 모습인지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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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명태균을 두 번 만났다고 해명했으나 거짓으로 드러났다. 최소 네번을 만났다. 거짓말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스토리에 등장하는 대통령의 모습을 대중들이 상상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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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균은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자택을 "셀 수도 없이 방문했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 명태균을 '명 박사'로 호칭한다는 말도 이준석에 따르면 거짓이 아니다. 김종인에 의하면 김건희가 명태균의 전화기로 자기 남편을 만나달라 말했다고 한다. 이 증언들에서 상상되는 건, 부인이 주선한 정체 불명의 선거 브로커 앞에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앉아서 '선거 기술'에 대해 경청하고 있는 초라하고 심약한 초보 정치인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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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일 텐데 감당되겠나“라고 대통령을 향한 협박이 백주대낮에 버젓이 방송을 탄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다. 명태균의 사설 업체가 3억7000만 원어치 여론조사를 했다는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될 수 있다. 여기에서 상상되는 건, 웬 선거꾼에게 멋 모르는 대통령이 구질구질하게 인질로 잡혀 있는 형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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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집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중앙일보> 강찬호 9월26일자 칼럼)라고 말했다는 대통령의 모습은 심하게 얘기하면 부두술사에게 사로잡힌 인형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수석들이 있는 자리에서 김 여사가 대통령에게 민망한 언행을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목격했다"(<중앙일보> 이하경 10월7일자 칼럼)는 전언에서 상상되는 건 수석들 앞에서 영부인에게 면박 당하는 대통령의 어리바리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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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게 지금 꼴통 맞아. 본인이 뭘 잘못했냐고 계속 그러고 있대"(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란 증언에서는 널리고 널린 직장 내 욕받이 상사의 모습이 연상된다. 김대남이 전한 용산의 풍경은 "십상시 같은 몇 사람이" 있는데 "김 건희 여사와 네트워킹이 돼가지고… (대통령실을) 쥐었다 폈다" 하는 곳이다. 청와대를 박차고 들어간 용산은 간신이 드글거리는 구중궁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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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꾼에게 휘둘리는 허약한 대통령, 부하들이 우습게 보는 대통령, 최소한의 권위마저 땅바닥에 떨어진, 위엄과 신망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민낯들이다. 이런 단편적 이미지 조각들이 기워낸 누더기같은 대통령의 'PI'는 온갖 비선들의 복마전 위에 선 채, 선거 요행이나 바라는 세상물정 모르는 노년의 한 남성이다. 자신의 운명조차 개척할 힘이 없어 보이는 이런 대통령을 받아들여야 할 유권자들의 심경은 어떻겠는가. 참으로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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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날리면' 사태에서 MBC를 향해 으르렁대며 방통위원장을 세번이나 탄핵으로 몰아넣은 그 집요한 카리스마는 어디로 갔나. 채상병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을 '항명 수괴'로 몰던 대통령의 기개, '공산 전체주의'에 일갈하던 근원불명의 신념들은, 노조를 '건폭'으로 몰던 자신감은 모두 어디로 갔나. 명태균과 김건희, 김대남 앞에선 왜 그 기개를 보여주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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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권위를 잃은 순간 정치 생명은 끝이 났다. 영이 서지 않는 대통령을 따를 공직자는 없다. 스스로 위신을 팽개친 대통령을 존경할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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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에메랄드 시티에 오스카 조로아스터라는 사람이 열기구를 타고 불시착한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줄여서 '오즈'라고 불렀다. 그는 서커스단에서 배운 복화술과 여러 조악한 기구들를 이용해 오즈의 사람들을 속이고 스스로 '대마법사'가 돼 에메랄드 시티를 통치한다. 도로시에게 서쪽 마녀를 없애면 '마법'을 사용해 집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허풍을 치지만 그의 조악한 속임수는 곧 탄로나고 만다. 우린 지금껏 서커스단원 오사카 조로아스터를 오즈의 마법사로 모시고 살고 있었던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영부인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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