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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딴지일보가 트렌드를 형성하던 시설이 있었다. 그리곤 김어준 총수의 외도. 그 다음부턴 그 똥코누르기 페이지가 나오는 딴지일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오히려 목을 맸던 것은 프레시안. 익명에게 다중지성이라는 금관을 씌어주지 않고 기자의 이름이 또박또박 박힌 언론으로서 프레시안이 주로 방문하는 언론이 되었다. 해서 경향-프레시안 라인.
거기다 구독중인 '시사인'. 그런데 지난 주였던 고종석 선생이 칼럼에서 '딴지일보'에 대한 호감을 표명한 관계로 가끔 눈팅하다가, 당게시판에 심상정 인터뷰가 실렸다는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들어가서 보았다.
이 정도면 포스팅을 하지 않겠는데... 오늘 유시민이 선거연합과 관련된 입장을 발표했고, 그것이 평소 RSS했던 것에 떴다. 그리곤 얼른 가서 읽어보았다.
질감의 차이는 바로 '댓글'.
딴지일보의 댓글은 그야말로 노무현 살인 0적 중 1인으로 심상정이고,
프레시안의 댓글은 널 어떻게 믿냐로서 유시민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느꼈던 것은, 인터넷 언론사마다 이를테면 '구독자'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평소엔 드러나지 않다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휘발성 높게 드러난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딴지일보 댓글보다 프레시안 댓글에 공감이 갔던 것은 나의 정치적인 입장에 기인한 바도 있겠지만, 댓글의 수준문제였다. 뭐 맞춤법 맞추고 정중하며...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오프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온라인으로 한다는, 온-오프 일체형 댓글을 의미한다.
온라인은 실질적인 인간관계의 다른 형식이지, 그것을 대체하거나 혹은 그것을 이원화시키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것은 나의 이데올로기다)
그런면에서 심상정의 인터뷰에 대해, 노무현을 갖다데는 사람한테는 최소한 자신에 대한 반성을 했던 '진보의 미래'를 읽어보지 않았냐고, 당신같은 사람이 인간 노무현을 두번 죽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고 진보의 확신에 대해 비웃는 사람에게는, 수십년간 한우물을 파왔던 바보를 존중하는 마음이 없냐고 힐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노무현과 그 일당들은 어찌되었던 4년 동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세금을 받아왔던 사람이며, 국민의 종복인 공무원 위에서 군림했던 이들이다. 그런데 그것을 마치 훈장처럼, 유일한 경험처럼 내세우는 것을 보면 당연히 그 떳떳함의 이유를 물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늘 만난, 서울 모 구에서 구청장만들기를 하고 있는 노빠 선생은 진보신당의 입장이 '혹독하다'고 평했다. 이유는 민주당보러 먼저 버려라라고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깨달았는데, 그들이 해왔던 정치는 언제나 +의 정치였지 -와 +가 발랜스를 맞춘 균형의 정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서 손안에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 설사 진보진영과 나누는 것이라 하더라도 한나라당에 빼앗기는 것과 동일한 감정경험이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정치의 진정성을 말한다면, 적어도 지역정치의 진정성을 말한다면 나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그 당파가 그 지역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발언을 해왔는가라는 점이다. 평소의 관심은 전혀 없었던 이가 1년 동안을 학습용으로 허송세월 할 만큼 지방정치가 만만한 게 아니다. 평소 오세훈 시장에 대해서는 논평 한줄도 내놓지 못했던 민주당이 서울에 대한 지분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지지율이라.
이에 대해선, 어제 노회찬이 내놓은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책표지를 보면서 아내와 다투었던 내용과 연관됨으로 다음 포스팅에서 메모해둘 것이다.
아무리 엠비라도, 특정기사를 빼라 넣어라 하진 못한다. 취임초기 국민일보에 대한 기사개입으로 얼마나 욕을 쳐드셨나? 그대신 경영진이라 불리는, 밸도 없는 세력들을 순치시키는 간접적인 방식을 동원한다. 이 때의 부상은 대개 이력서의 한줄이다.
그런데 이런 엠비조차도 삼성이 해내는 공력에 비하면 조족지혈도 댈게 없다. <경향신문>이 삼성에 대해 작성한 '삼성을 생각한다'는 원고가 망명을 보냈다. 프레시안으로...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7155315&Section=02
글을 쓴이는 김상봉 교수로, 충격이 매우 크셨던 것으로 보인다. 해서 언론사를 끼고 토론회를 하자고 하지만, 선뜻 나서는 데가 있을리 없다.
경향신문의 사례는 나름 건전하고 원칙적인 신문이라 하더라도, 삼성이라는 이름앞에선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참 고약한게, 삼성은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았는데, 그냥 언론사가 알아서 기는 거다. 이럴 경우 삼성을 욕하는 게 매우 어색해 진다.
아니나 다를까, 김상봉 교수의 칼럼엔 예의 '국가대표기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최고는 흠집나지 않아야 한다는 영웅무오류주의는 사실 김일성의 사례에서나 박정희의 사례에서 똑같이 발견되는 한반도 정치의 특징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절망스럽다는 것
이었다. 스티브 잡스 정도의 간지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버핏처럼 파격을 요구하는 것도, 게이츠처럼 혁신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최소한 양아치 수준은 벗어난 대한민국 최고기업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려운 일인가 싶다.
그런 주제에 국민에겐, 정직하라고? 국민의 부정직보다는 이건희의 특권이 우리 사회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역시, 삼성을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 마지막 포스팅이 2009년 5월이라... 그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더라...
2. 북마크가 되어 있는 진보블로그를 슬쩍 눈팅하면서도, '널 버리고 다른 블로그는 하지 않아'라며 안심시키는 것에 만족해왔다. 그런데 이제 슬며시 가슴에 손을 얹고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블로그를 쉰 이유가 없듯이 갑자기 시작하는데도 이유가 있을리 없다.
3. 2010년. 이제 터닝포인트가 필요한 시기다. 떠날 사람들은 모두 떠난 벌판에 서 있지만, 이젠 추워서 계속 있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4. 아무래도... 사적으로 침윤해가는 내가 꼴뵈기 싫어서 블로그를 쉬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1. 목수정은 개인적으로 매우 잘 알던 이다. 그래서 그이에 대한 호불호를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2. 마리신님이나 민노씨네나, 그리고 규항넷에서 관련 글을 보았고, 언뜻 언뜻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들과 많이 다른데 그것이 나와 목과의 관계 때문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심리적인 거리두기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논리적 혹은 이성적인 방법에서라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3. 결국, 블로그에 메모를 남기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 많은 훈수쟁이들과 내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민노씨의 글에 대해서는 발제를 하듯이 밑줄을 치며 반박하고 싶은 내용이 많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무의미 했기 때문인데, 이미 사태의 본질 -국립오페라단 문제-를 가리키는 이에게 손가락을 보라고 주문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4. 진보신당 당게시판에서의 논란에서, 규항넷이 말했듯, 목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국립오페라단의 문제로 확장해주는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것이 내내 걸렸다. 생각 외로 수준낮은 논란에 당황했다는 것이 금새 떠오르는 변명거리이지만, 사실은 실망했고 짜증났다.
내 스스로 아쉽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진흙탕에서 나도 난타전을 하면서 깨지고 깨고 했어야 했다는 자책이 들었기 때문이다.
5.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민노씨가 말하는 '상위 10% 진보를 위한 말'이라며 이야기 하는 행인의 말을 나는 이렇게 오독하고 싶어졌다. 따라서 진보는 모든 문제에 대해 즉, 인간관계에서 부터 그로 파생되는 인간적 예의, 또한 스스로를 100점 척도에서 어느 한 점에 위치지우는 성찰, 핵심을 전달하는 말하기 등등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부족하다'는 한계를 염두에 두라는 뜻으로 말이다.
적어도 내가 목이라면 나도 정명훈에 대해 그렇게 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한계가 많은 사람이며, 시위현장에서도 아무 책임이 없을 것으로 확신하는 전경에게 이런 저런 말을 내뱉는다.
6. 민노씨의 블로그에 인용된 명예훼손과 관련된 법적 논의는 '법학 개론'시간을 연상시키는 지루한 것이며, 말에서 말하는 대상을 분리시키는 편리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생활인으로서 말하자면, 정명훈 개인이 명예훼손으로 느낀다면 고발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판단은 법원에서 내려진다. (신영철 사건은 법이 법문의 형식논리가 아니라 사람이 관여하는 이해타산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7. 이제 기억을 위해서 정리하자면,
난 정-목의 논란을 보면서, 강준만의 실명공개 논쟁이 떠올랐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이한우가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라는 표현에 근거해 명예훼손을 걸었고 승소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리고 점잖은 척 많은 이들이 강준만의 활동에 대하여 목적은 공감하지만 방법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둥의 궤변을 늘어놓고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도 보았다.
이번엔 그 정도 수준은 아니지만,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는 경우를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가지는 편리한 위치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편하다.
동의한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되었다 던가,
동의여부를 떠나서 방법상에 문제가 있었으니 문제다
등등의 태도는 솔직히 '구역질'이 난다.
8. 개인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최대한 세심하고 섬세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사람을 설득하는 것이 일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욕을 할 땐 욕을 하는 사회가 더욱 좋다. 저잣거리에서 무도회의 매너를 요구할 수는 없지 않은가.
9. 목이 탈당했다. 좋다. 목이 탈당을 하고 그이를 욕하던 10명의 당원이 남고, 그이를 못마땅해하던 진보연 하던 이들이 진보신당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득인가?
10. 난 왜 진보를 언급하는 이들이 언제부턴가 보이지 않는 대중이나 90%의 국민들을 말하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운동은 같은 지향의 동지와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다. 민노씨가 진보신당에 얼마 만큼의 지지도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지만, 목의 글에 가슴시원해 했던 오페라단의 해고 노동자들과 대비해, 그의 지지가 하등 고맙지가 않다. 난 오히려 오페라단과 함께 하는 이들의 요구로 정명훈을 만나러 가겠다고 결심한 목의 행동이 어떤 연대활동보다 우월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11. 이제 기억으로 남겠고, 목은 같은 당원은 아니지만 동지로서 계속 남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같은 당원이지만 동지가 될 수 없는 이들이 많아 지는 것도 고민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개인적인 호불호일뿐이다.
12. 사족이지만, 왜 난 괜히 점잖떠는 사람이 있으면 맘에 들지 않을까. 인격의 수양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한다.
- 역시 문제는 전달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만화가는 얼마나 위대한 직업인지.
- 익숙한 나조차도, 새롭게 이해가 되었다.
정부에서 발표한 뉴딜-녹색 일자리때문에 말이 많다. 특히 일자리의 질에 대해 이런 저런 논란이 있나본데, 재정기획부도 맨날 해명 기자회견 하느라 정신이 없나 보다.
해명 중 주요 내용이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단순노무직'이 다수가 아니다라는 변명이 있었나 본데, 이에 대한 댓글이 기가 막히다.
최고의 추천글인, 아, 단순노무직이 아니면 "복잡한 노무직이구나"라는 댓글이다. 눈물을 뺐다.
그리고 그 밑에 '용어의 정의'라는 댓글!!
사무실에서 눈치없이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 즐겁다. 세상이 명랑하다는 증거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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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머 이말 밖에 노회찬대표 글덕에 여기에 온건지...가물가물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