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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2007/11/03

반세계화, 세계화에 대한 논란에 일종의 답이 될 수도 있는 책

 

 

사실 모르겠다.

필자의 글쓰기 방식이 가진 모호함 때문에...

이게 비꼬는 건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지

한참을 읽다보면 헤깔려 진다.

 

그 속에 적도 아도 존재하지 않고

가장 가난한 노동자에서부터

가장 부유한 사장들에까지 똑같은 시선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거 참...

 

 

어쨌거나 좀 거칠게 정리하자면

 

전 세계는 시장의 질서 속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단 한번도 완전한 자유무역을 실현한 적은 없다.

미국의 보호무역은 1차 생산물인 목화를 자국의 비교우위로 만들었고,

수많은 나라들을 쿼터로 옭죄여 왔다.

특히 중국을... 오히려 쿼터제로 인해 가난한 국가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섬유, 의류를 판매할 기회를 얻었다는 장점도 있다.

쿼터제가 없어진 2005년 이후 급격히 중국의 독점,

바닥을 향한 경쟁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늘 자유무역의 이상을 주장하면서

섬유업은 예외로 대우해주었다. 업계의 결속력, 정치력이 그것을 가능케하였다.

 

시장의 논리는 가난한 국가에만 적용되었을 뿐이다.

미국의 목화 생산자들을 비롯한 일부 생산자들은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았지만,

대부분의 가난한 국가의 생산자들은 그들의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기대할 수 없을 뿐더러

그 나라의 제도는 대부분 자국 생산자들을 착취하기에 여념이 없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떤 무역이 이상적이냐는 사실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보호무역이냐 자유무역이냐 하는 것은 모두 부유한 혹은 힘있는 국가들의

혹은 선택할 수 있는 자의 특권이다.

이러한 내용을 보면서 자국 노동자 보호를 외치는 것이 어디까지 유의미한 행위일까 하는

의문을 잠시 가져보았지만,

역시 어떠한 제도도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어떻게 어떠한 가치를 지향하며 작동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겠느냐하는....

 

그리하며 더이상 안티 Free Trade 라는 것이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보호무역은 누군가에게만 이득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누군가에게는 생명과 다름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다른 이들의 생명을 담보로 한 것일지도..

 

모든 제도 밑에 그러나 '바닥을 향한 경쟁'이 있다.

또한 '바닥을 향한 경쟁'은 동전의 양면처럼 가난한 노동자를 착취함과 동시에 해방시킨다.

 

아이러니....

 

 

 

 

 

 

ps. 책을 읽고 거칠게나마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자! :)

어차피 거칠게 남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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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16:08 2007/11/03 16:08

<아래는 위 책에 대한 내용 5%와 나머지 사적인 주절거림으로 나열됨>

 

문학평론?

 거의 0에 수렴하는 관심분야다.

 

어쩌다 아는 분의 부탁으로 이 책을 도서관에 빌려다 드리고,

오늘 돌려받았다.

 

이명원의 한국문학탐사라는 부재가 붙은

근현대 작가들에 대한 짤막한 비평글 모음이다.

 

그중 세편을 골라 읽었다.

공선옥, 전경린, 한지혜

 

책을 돌려주며 공선옥과 전경린 부분을 읽어보라 했던 그 분의 말씀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또한 이전 시기의 작가들에 대해 무관심한 탓도 있다.

 

몇달전 공선옥의 소설을 읽고 이런 이야기를 했었다.

"공선옥 소설은 불편해요. 예전의 나라면 어찌 읽었을지 모르지만,

솔직히 지금은 너무 불편하고, 읽기 싫고 숨이 막혀요.

소설에서까지 무거운 세상을 대면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안 팔리는 작가이지 않겠냐고 나 스스로를 애매한 위치에 놓은 채

비판이라기보다 투정을 했었다.

 

공선옥을 그의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무심한 우리 사회의 고통불감증을 규탄에 가까운 어조로 비판했다 한다.

절바간 생의 궁지에 몰려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왜 불감증에 빠져 있냐고...

 

사실 그렇다.

내가 느낀 불편함의 실체 중 하나는 나 자신의 불감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소설을 읽으며 다만 불편했을 뿐 더이상 나는 그들의 편이라고 약자의 편이라고

말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편함의 진짜 원인일지도 모른다.

나는 누구 편인가.

편가르기에 진절머리가 난 나는 계급성을 상실했다.

그것이 어쩌면 학생의 조건... 이라고 나는 속으로 또 자기 합리화를 시도한다.

 

노력한다고 될 일 아니다.

 

그러나 어처구니 없게도 나의 물질적 조건은

겉만 번지르르한 한달 수입 0의 건달일 뿐이다.

공장에서 도망치듯 나왔을 때 그곳에서 20대 절반을 놓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 그보다 다른 것도 놓고 나왔다.

 

그리고 계속 나는 희미하다.

무엇으로도 규정하고 싶지않지만

사실 규정되어진 수많은 a일 뿐임을 순간순간 자각하는 희미한 나일 뿐이다.

나는 버렸다고 생각한 것들도 여전히 어딘가에는 붙어있고,

갖고 싶다고 생각한 것들은 나의 기표가 아니다.

 

그래서 어떠한 계급성을 원하냐고 다시 묻는다.

그것이 원한다고 들러붙는 것이냐고 또 묻는다.

이미 불감증의 수준에 닿아있으니 어쩔 것이냐고 또 묻는다.

 

얼마전 누구와 술을 마시며 얘기했더라...

공부를 죽도록 했는데, 그 결과가 내가 원치 않던 결과가 나오면 어쩔 것이냐고

그럼 무엇을 지향할 것이냐고 했다.

아... 어쩌면 바보같은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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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3 14:42 2007/11/03 1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