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되는 논쟁에 약간 개입하였었는데,
이후에 약간의 자기 반성과 함께 그냥 한발 물러나 있기를 택하였다.
이 복잡한 논쟁 속에서 난 계속 왠지 모를 답답함이 있으며, 그것을 찾고 싶지만, 쉽지는 않다.
그냥 이후의 지속적 고민을 위해 몇가지만 정리해두련다.
여성의 성적대상화: 여성은 누구인가.
여성의 성적대상화는 왜 문제가 되는가.
일단 여기서의 여성이 자칫 생물학적 여성 그 자체로 말하여지는 것에 대해 조금 우려스럽다.
대상화되고 있는 것은 실제 여성일까, 아니면 성적인 것으로 재현된 여성인가.
이 논쟁에서도 김모씨 개인에 대한 성적 묘사와 여성에 대한 대상화에 대한 논란이 존재한다.
또한 지배계급에 대한 희화화냐, 여성에 대한 대상화냐 하는 논란도 있는 것 같다.
문득, 아주아주 오래전에 한 십여년 전에 모대학에서 있었던 논란이 떠올랐는데,
어느 노조가 농성을 하다가 공권력에 의해 내쫓기게 된 사건 이후
공권력에 의한 '강간'이라는 묘사를 어느 단위에선가 했었고,
이 묘사는 학내를 뜨겁게 달구었다.
물론 이 묘사에서 '강간'당한 것은 여성이 아니라
여성으로 재현된 노동조합이었다.
문제는 실제 어떤 여성을 대상화한 것이냐가 아니라
무엇인가가 '여성'의 위치에서 대상화될 수 있다는,
다시말해 지배계급이 '여성'의 위치에 놓이면서
혹은 남성이 '여성'의 위치에 놓이면서 극적인 희화화가 가능해지는 구성은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다시, 지배계급과 관련된 부분으로 돌아와서
설령 김모씨의 자리에 이모씨가 있다고 치자.
그 묘사는 지배계층을 '여성'으로 재현하면서 희화화하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즉, 우리가 글 속에서 재현시키는 여성은 그래서 희화화되고 조롱할 수 있는 여성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 재현된 여성이다.
성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표현할 수 있고, 무엇을 표현할 수 없는가.
실제 표현가능한 것은 재현가능성을 말하는가.
재현가능하다는 것은 곧 이미 규정된 어떤 것을 상정하고 있는 것인가.
상상에는 규제가 없다. 상상 속에서 나는 어떤 남성, 혹은 어떤 여성 (여기서는 생물학적, 구체적 누군가)를
대상화하기도 한다. 이런 내 상상은 완전 자유로운 내 것인가. 아니면 사회의 것인가.
상상의 영역 속에서는 매우 과도하게 재현된 남성성과 여성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이를 다 발화하는 것이 나의 자유를 보장하는가.
아니면 나는 이런 나를 끊임없이 수정해야 하는가.
그래서 난 여성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어떤 규정성에 저항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에게 있어 여성(women)은 버틀러가 얘기하듯 재현불가능한 어떤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대상화될 수도 없고, 호명될 수도 없고,
당신이 재현하고 있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할 수 없을까.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하고 나면 실재는 모두 사라진 채 관념만 남아 있는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여성연대를 이야기한다면, 그 여성은 누구를 지칭하는가.
나는 그 안에 포함되는가.
혹은 그 말에 화답한 자들이 포함되는가.
여성주의 논란은 늘 어려운데,
사실 조금 알면 더 어렵다.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이 무언가에 걸려있는 느낌이 든다.
여성주의/반여성성이라는 잣대를 스스로에게도 들이대게 되고,
뭔가 어떤 식으로 말하는 것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 여성주의야 라고 규정되어 있는 것 같아서
(물론 아니다!)
마치 맑스주의 교리에서 벗어나면 맑스님은 그렇게 얘기 안 했거등?
이런 것과 비슷한 갑갑함이 있다.
물론 아닐 것이다.
이건 내가 느끼는, 대학 때부터 학내 여성운동을 그냥 바라보는 사람으로 있었던 위치에서 느끼는
일종의 경외감일지도 모르겠다.
오답 말하기의 공포.
이건 내가 넘어서야 하는 부분이다.
오답도 없고, 정답도 없고,
사람이 있을 뿐이다.
어떤 방식으로 재현된 여성에도 나 자신을 동일시할 수 없다.
주류가 재생산하고 구성하고 있는 젠더,
소위 여성주의가 구성하는 젠더
그래서 난 여전히 여성주의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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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여성과 젠더의 문제
Tracked from 2010/08/10 16:16 delete니나님의 [관념적 글쓰기?] 에 관련된 글. 페미니즘 저서들을 읽으면 읽을 수록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섹스와 사회적 성으로서의 젠더, 성애적 성으로서의 섹슈얼리티의 구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주디스 버틀러가 말하듯 이 모든 개념을 '젠더'로 규합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여성연대라고 말할때의 여성은 젠더로서의 여성이며, 이는 생물학적 성으로서의 여성을 뜻하기도 한다. 이들간에는 차이가 없다. 젠더를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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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니나님의 글을 읽으니 제가 그 논의 속에서 아무런 의견도 내지 못한채 방관했던 게 '논리'를 가지지 못함의 공포에 더해서 '오답말하기의 공포' 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페미니즘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지도 못했고, 뭔가 논리적으로 말하지도 못할 것 같지만 '기분이 나쁘다'는 감정은 갖고 있었는데 그게 오히려 절 괴롭히고 있었거든요. '거봐 결국 너는 이런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아무런 말도 못하자나~!' 라면서요... 에퓨...
정말 조심스럽지요. 전 사실 정말 깨지기 싫거든요. ㅎㅎ
뭐 하지만 학문적 글쓰기도 아니고, 정치적으로 올바르기 병도 좀 고쳐볼 겸 머리 속에 떠오르는대로 글 쓰기도 뭐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재밌습니다.
요즘 저 스스로에게 계속 불편했던 것은 어떻게하면 까이지 않을까 궁리하다 이만하면 되겠지라고 정리가 되고 나서야 글을 쓸 생각이 들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정작 무엇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가 남아있지 않아요.. 오히려 가만 있으면 그것이 '오답'이 될까봐 두려워서 뭐라도 말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낀 건 아니었는지 싶어요....
흥미로운 질문꺼리입니다..
글을 읽으면서 그냥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높임말은 생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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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반에 oo라는 친구가 있었다고 하자. 반 아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를 따돌린다. 그리고 자기네들끼리 누군가 바보같은 행동을 하면 "쟤좀봐. oo같애."라고 말하면서 자기네들끼리 깔깔거리면서 비웃는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어떤 아이 둘이, oo를 대상화하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고 나섰다고 생각해보자. 두 아이는 oo가 이런 식으로 대상화 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유는 다르다.
한 아이는 oo라는 아이가 전혀 이상한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도 나의 평범한 친구일 뿐인데, 다른 아이들에 의해서 그런 식으로 이상하게 취급되는 것이 매우 기분이 나쁘다. 이 아이의 경우 oo가 다른 아이들과 좀 다르다는 현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반대를 하는 또다른 아이는 oo라는 아이가 이상한 아이로 취급받는 것은 이미 기정화된 현실이라고 받아들인다. 이 아이에게는 oo가 자꾸 아이들에 의해서 대상화가 되는 것이 이런 현실을 고착화시키고 더욱 심화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문제의 원인은 이 아이가 왕따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 그 자체에 있다. 이 아이에게 있어 반대의 논리는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oo가 놀림감이 되는 것에 대해서 똑같이 반대하는데, 논리가 어째 좀 다르다. 한명은 oo가 대상화될 이유가 전혀 없다는데서 출발하고 있고 또다른 한명은 oo가 왕따가 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에서 반대의 이유를 찾는다. 가령
친구 1 : "왜 거기서 oo를 언급하니? 걔가 우리하고 뭐가 다르다고. 웃지마. 하나도 안 재밌어."
친구 2 : "깔깔깔. 근데, 너희가 자꾸 그런 얘기를 하니까 oo가 더 이상한 애처럼 되버리잖아. 우리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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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화에 대한 비판은, 특정한 맥락을 인정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두가지 방식으로 모두 이루어질 수 있다. 사실 이번 논란에서 특정한 맥락이란 성적인 대상화이다. 성적인 대상화가 일반적으로 남성들에게 갖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권력의 희화화를 묘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어떤 분이 쓰셨지만, 이런 사람들에게 문제는 '비윤리'이다. 혹은 상황을 더욱 나쁘게 만드는 '동조'이다.
하지만 그 특정한 맥락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 성적인 대상화는 권력의 희화화와는 전혀 무관하다. 이번 사건에서도 잘 보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논란이 된 텍스트를 권력의 희화화 혹은 조롱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글에서 드러난 특정한 맥락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이며 대상화 자체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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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히 생각해보면 글쓴이가 의도한 특정한 맥락을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입장의 차이로 인해 "대상화되고 있는 것은 누군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다른 대답을 내놓을 수 있다.
가령 문제가 된 텍스트에 내포되어 있는 특정한 맥락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대상화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여성이 아니라 글쓴이 개인이 생각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정한 여성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그것은 '실제 여성'이 아니라 글쓴이의 머리속에서 '성적인 것으로 재현된' 여성이다.
반면에 특정한 맥락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대상화되고 있는 것은 보편적인 여성일 수 있다. 그들은 대상화가 희화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그렇기에 그것이 지배계급이든 뭐든 간에 대상화를 통한 희화화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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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두가지 논리 사이에 어떤 모순이 존재하는가? 혹은 그 차이가 중요한가? 개인적으로는 Yes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두 논리는 현실을 인식하는데서부터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문제가 된 텍스트의 특정한 맥락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은 지극히 명확하다.
하지만 특정한 맥락을 인정하지 못하는 입장이라면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과 마주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현실인가?"
성이 대상화될 수 없는 그 무엇이라면, 사회적 맥락 속에서 규정될 수 없는 대상이라면, 그것을 특정한 맥락 속에 놓고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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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주저리주저리 생각나서 적어봤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성, 즉 섹슈얼리티에 대한 논란은 늘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항상 이것도 저것도 택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 빠진 느낌이 들어요. 결국 관념적 글쓰기라고 한 것은 이런 저의 질문들이 어떤 정치적 급진성도 갖기 어렵다는 점이지요. 그래도 좀 파고들고 싶긴 합니다....
예전에 업쌤이 사회과학 혹은 인문과학이 자연과학보다 더 힘든 것이라고 하셨었는데.. 자연과학은 딱딱 떨어지지만 인문과학은 '민족주의'이 개념 하나로도 복잡하다고. 그냥 이 글 읽고 든 생각. 아흐..
음.... 그래서 난 수학이 좋아.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응 ㅋ
오호라 왠지 얘기하고 싶은 주제군!!
조만간 린다 제릴리 읽기를 시작할까해. 뭐 이 문제와 연관이 될지는 봐야겠지만...
아. 나도 수학 좋아하는데.. 문과를 왜 왔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