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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리가 취하는 참다운 형태는 이와 같은 학문성이라고 명제화할 때, 똑 같은 의미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진리가 현존하는 터전은 오직 개념이라고 주장할 때, 나의 이런 주장이 우쭐거리는[1] 것 외 기준으로 삼을 만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시대에 확신으로 폭 넓게 퍼져 있는 생각과 그런 생각이 가져오는 결과와 정면 대립하는 것으로 고개를 든다는[2]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래서 이 모순을 좀 설명하고 지나가야 할 것 같다. 이것이 결코 쓸데없는 짓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설명이 지금 이 자리에선 우리의 비판대상이 일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단정 이상의 것이 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우리시대가 진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살펴보면[3] 이랬다 저랬다 횡행하는 사조인데, 이런 사조는 진리가 현존하는 터전이란, 아니 현존진리 자체란 <절대자에 대한 직관이다[4]>, <아니다 직접적인 지다[5]>라고 다투기 일쑤고, 한발 짝 나아가서 <진리는 종교다>, <아니다 존재 자체다>라고 윽박지르기 일쑨데, 여기서 존재라고 떠드는 것도 신이 참으로 사랑하는 참다운 존재가 아니라[6] 단지 있다는 것 그 자체로서의 존재일 뿐이다. 이런 생각아래 철학을 서술하는데 있어서도 개념의 형식보다는 오히려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우리시대는 요구하고 있다. 즉 절대적인 것을 개념적으로 파악해서는 안되고 대려 감지하고 직관해야만 하고, 절대자가 갖는 개념이 아니라 그에 대한 느낌과 직관의 주도아래 그에 상응하는 것들만 허용하는[7] 철학서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1] 원문
[2] 원문
[3] 원문
[4] 원문
[5] 원문
[6] 원문
[7] 원문
댓글 목록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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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적인 지" 보다는 '무매개적인 앎'이 낫지 않을까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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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그렇습니다. 단지,"매개"란 개념이 그리 쉬운 개념이 아닌것 같네요.부가 정보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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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노동을 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사랑이 무엇인지 노동이 무엇인지 말할 수 있지만 사랑을 해 본 적이 없거나 노동을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나 노동의 개념에 접근하기 위해 수많은 매개를 필요로 합니다. 수많은 연결고리 중 하나만 빠져도 그 개념은, 완벽한 개념이 있다면, 완벽하지 않습니다. 직관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고 추론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닿기 위한 과정 아닐까요.부가 정보
주석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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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많은 형사는 한눈에 누가 범인이라는 직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없거나 있어도 축적이 안된 형사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추리를 해야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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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은 1967년 3월에 쓴 놀라운 일기에서 맑스보다 더 뛰어나게 소외된 노동에 대해 썼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맑스는 수많은 글을 읽고 노동자의 상태를 알게 되었지만 전태일은 자신이 직접 경험한 노동을 통해 노동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생긴거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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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태일은 매개 없이 노동의 개념을 얻었지만 맑스는 소외된 노동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노동의 개념에 가닿기 위해 매개들이 필요했던겁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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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헤겔이 비판하는 "직관"(Anschauung)에 대하여 숙고할 부분을 지적해 주신 것 같습니다. 노동에 대한 "직관"없이 노동이 뭐라고 이야기하면 좀 그렇죠..... 그리고 "직관"이라는 것이 어쩌다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고 하면 개념과 직관은 어떤 관계인가 다시 한번 조명해 볼 필요가 있겠네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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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5/"따라서 전태일은 매개 없이 노동의 개념을 얻었지만". 여기서 전 "매개"라는 개념을 "실재적인 매개"(Realvermittlung)로 이해하고 싶네요. 무슨 말인가 하면, 노동의 경험, 소외의 경험 자체가 매개라는 것이죠. 책사아앞에의 사유를 통한 매개가 아니라...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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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전태일전사는 철저한 매개운동을 한 사람이죠.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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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로 돌아가서 헤겔이 말하는 "개념"에 이러한 직관에 스며있는 "실재적인 매개"(Realvermittlung)가 없으면 갖다 버려야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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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매개인가요. 경험은 주체가 대상과 결합하는 방식 아닌가요. 만일 눈이 안보이는 사람에게 사과를 설명했을 때 그가 사과에 대한 개념을 얻었다하더라도 그 개념은 불완전한 것일테고 사과를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사과의 맛을 설명했더라도 사과의 맛에 대한 그의 개념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는것 아닌가요. 하지만 사과를 눈으로 보고 입으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사과가 어떤 것인지 감각적으로는 알지만 사과의 성분을 아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과에 대한 그의 개념 또한 불완전할 수밖에 없겠죠. 하지만 사과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사과의 성분을 상세히 알고 있을 테니까 그는 사과를 먹어보지 않았더라도 사과에 대한 개념을 알고 있겠죠. 전태일은 노동하게 하는 자, 노동수단, 노동자라는 노동의 결합방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만 노동의 역사적 형태는 알 수가 없을테고 노동을 하면서 느끼는 감각적 현실은 알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과학적 개념은 모르고 있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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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노동에 대한 이러저러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지만 노동에 대한 개념은 가지고 있지 않죠. 개념은 대상의 내적 짜임새(자본가, 생산수단, 노동자)와 외적 규정성(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수성)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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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다 맞는 말씀인데요... 저의 관심은 그런 것들을 비트러 버리는 힘입니다.부가 정보
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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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제일 큰 사람"이란 개념은 다 이해하죠. 그런데 그 사람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사실 옆을 시치고 지나가도 그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큰 사람으로 알아 보지 모를 수가 있겠네요.이런 "identification"차원에서의 경험이 있을 수 있겠고, 경험을 "창조"(Poiesis)의 차원에서 이야기 할 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우리가 노동해방과 관련하여 "노동개념"을 이야기 한다면 "참다운 노동"을 이야히기 하지 않을 수가 없겠네요. 여기에는 "노동에 대한 직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