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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내전과 나토개입의 유형이 뭔가 새롭다. 알듯하면서도 손에 잡히는 것은 없다. 헤르프리드 뮌클러(Herfried Münkler)의<제국들/Imperien, Berlin, 2005>이 도움이 될 듯해서 한 부분 소개한다. <제국들>을 제대로 소개하려면 제국의 정의에서 시작하여 현재의 현상까지 두루 관통하는 분석을 다 소개해야 할 것이다. 능력부족으로 그러지 못하고 서술 그 자체가 자명하고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부분 몇 군데를 연재식으로 소개하려고 한다.
뮌클러는 제국이란 현상의 분석에서 지금까지의 분석이 중심부에 주목하였다고 지적하고 제국의 현재와 미래는 주변부에서 결정된다는 입장을 취하는 것 같다. 이런 맥락에서 주변부를 향한 제국의mission을 다루고 (132쪽 이하) 이어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과 제국 영역의 구성(Der Barbarendiskurs und die Konstruktion des imperialen Raumes)”제하 “야만인(der Barbar)과 “야만적인 것(das Barbarische)”이 어떻게 구성되고 이런 담론이 제국영역 구성과 어떤 상호관계가 있는지 살펴본다(150쪽 이하).
제국이 통치영역과 주변부를 중심부엘리트주도하의 개화(Zivilisierung)의 대상으로 규정하는데 있어서 이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빠질 수 없는 구성요소라는 것.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의 핵심적인 기능은 “제국의 경계선(Grenze)을 비대칭적인 충돌이 야기되는 공간으로 표시하는데 있다”는 것. 제국의 경계선에선 국경에서와 달리 원칙적으로 동등한 국가들이 맞서 있지 않다는 것. 이런 담론에선 이쪽은 선하고 우수한 세계고 저쪽은 혼돈과 믿을 수 없는 세계,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하는 세계라는 것. 이쪽은 코스모스고 저쪽은 카오스라는 것.
이런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에 의해서 생성되는 비대칭은 무엇보다도 이쪽은 정치의 주체로 다른 쪽은 정치의 객체로 서술되고, 그리고 오로지 이렇게 구별되어 중심부의 정치적 상상력에서 작동하는 데에서 드러난다는 것.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에 의한 주체와 객체의 구별은 그저 사실적인 중심부와 주변부의 힘의 차이, 즉 잘 조직된 군사기구와 느슨한 부족연합간의 차이를 정당성의 차이(legitimer Unterschied)로 변화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정당성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야만인/족이 제국의 개화노력에 응해야 한다는 것. 즉 탈야만인화할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 제국에 출입하려면 제국의 거주민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 안 그러면 오직 포로로서, 즉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한편 야만인/족의 위협을 보란 듯이 내놓는 포로로서 제국의 영역에 끌려들어간다는 것. 이런 현상은 로마의 포로에서 미국의 포로가 된 탈레반까지 이어진다는 것.
이어 뮌클러는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이 민족과 민족간의 구별로(ethnographisch), 아니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혹은 인종차별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그 유형을 정리하고, 하지만 비대칭적인 기본구도(Grundkonstellation)는 어떤 경우든 유효하다고 함.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이 제국의 주변부에서 제국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선을 엄연하게 긋는데, 이런 선은 사실 존재하지 않고, 주변부의 방대한 영역에선 대려 안과 밖의 구분이 유동적이고 그 드나들기의(Übergänge) 폭이 넓다는 것. 그래서 한 부족 혹은 클랜(Clan)의 반제국 아니면 친제국적인 입장은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이런 상황에서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불투명하고,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의미론적으로(semantisch) 확고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야만인/족에 대한 담론은 „가상적인 분단선(imaginäre Trennungslinie)“을 생성하여 사실 윤곽이 불투명한 제국의 경계선을 보완한다는 것. 이렇게 “공론화된 비대칭(kommunizierte Asymmetrie)”은 사실 제국의 경계지역에 찾아볼 수 없지만 중심부가 통치영역의 경계선에서도 통제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시도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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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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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hnographisch는 종족간의 구별로, clan은 씨족으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부가 정보
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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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야만이 갖고 있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서양에서 문명과 야만의 대립은 계속 변화되어왔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바르바로이라고 했지만, 이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는 없었습니다. 인류가 보편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가 이른바 선발대들이 민족국가를 수립하면서 문명은 보편적인 것, 야만은 씨족, 혈족, 종족, 부족에 속하는 후진적인 것, 호전적인 것, 미개한 것, 잔인한 것 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문명을 주장하는 프랑스민족도 고대에는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이에 대항하여 맑스가 미개하고 야만적이라고 개탄한 독일은 문화를 주장하며, 독자성, 특수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주어가 인류라면, 독일의 주어는 민족이었습니다.우리는 문명/야만의 가치판단적인 용어를 배제하고, 과연 씨족, 종족, 부족, 관습, 문화, 혈통 이런 것들이 그 사회의 발전과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지 조사해봐야합니다. 도시인들은 대부분 독립을 하면 친가나 처가와 될 수 있으면 먼 곳에 살고싶어합니다. 개인의 행복에 방해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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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_top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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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이 단어에 부정적인 의미는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만”은 “이 사과는 빨갛다”란 문장에서의 “빨갛다”와 같이 그저 구별해주는, Strawson 등을 따르자면 “sortal”이죠. 문제는 야만이란 개념이 이런 sortal로 사용되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으로 충전되어 그리스가 헤게몬에서 제국으로, 즉 원칙적으로 동등한 위치를 갖는 여러 [도시]국가 중 한 도시국가에서 다른 국가를 제압하는 제국의 위치로 넘어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뮌클러의 "제국" 분석은 폭로 보다 제국의 세계지배논리의 작동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맑스가 자본의 논리에, 자본의 논리가 관철되는 메카니즘에 주목했듯이. 그래서 제국의 분석도 가치판단은 차지하고 분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리고 제가 소개한 부분을 가지고 reverie님이 제시한 문제를 만족스럽게 다룰 수 없을 것 같네요.
뮌클러의 핵심개념은 비대칭인데, 이 비대칭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곳은 제국전쟁에서 발생하는 중심부와 주변부의 희생자수의 비대칭이라고 합니다. 1차 이라크전에서 미군 사망은 몇 명 안되었는데, 이라크 군 사망자 수는 10만을 넘었습니다. 수단에서 키처너가 이끄는 영국군 몇 명이 수 만의 수단군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영국군 사망자는 50명을 넘지 않았습니다. 차이는 영국군이 가지고 있는 기관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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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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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 제국이 퍼뜨리는 야만인/족 담론 못지않게 위험한 것은 제국에 대항하는 반/주변부 담론입니다. 이른바 문명의 침입을 막기 위해 자기 영토내에서 개인의 자유를 질식시키는 행위, 이를테면 호메이니는 립스틱은 립스틱이 아니라 무기라고 햇습니다. 제국의 무기라는 말이죠. 그래서 여성에게 화장할 자유를 박탈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양의 문화가 자국에 들어오지 못하게 단속하는 것은 오직 서양의 미개한 종족에게 덜빠진 민족이라고 공격할 구실을 줄 뿐입니다. 존중해야할 것은 개인의 자유지, 공동체나 문화나 관습이 아닙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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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클러의 "제국들"을 읽는 저의 관심은 "failing empire"에 있습니다. 즉 약한자가 어떻게 제국의 중심부와 싸워 이길 수 있는지... 그래서 약한자의 대항은 이데올로기적인 냄새가 나는 담론이라기 보다는 대항 수단이란 맥락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합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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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에게는 약자의 대항수단이 자국의 약자들에게는 지배, 혹은 억압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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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헤겔에 따르면, 자연적이고 자신이 선택할 수 없고 무매개적이고 직접적인 가족, 민족 등은 자신이 선택하고 어떤 목적에 의해 결합하고 매개적인 부부, 조직, 당 등 보다 열등한 것입니다. 헤겔 생전에 국가는 수립해야할 무엇이었기 때문에 민족보다 우세한 것이었지만, 현재 국가는 애매합니다. 선택할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고.부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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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적군파 말러(Mahler)는 감옥에서 헤겔을 읽고 국가의 의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하고, 이어 국가를 상대로 벌인 전투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신나치의 이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U등 초국적인 구조가 형성되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민족주의를 고수하죠.뭔가 어지럽기는 어지러운 것 같습니다. 이란을 대하는 소위 "진보진영"의 국제연대도 그렇구요. 현 이란지배세력이 "진보적" 세력? 반미란 구호아래 이란지배세력 지지? 이 문제는 이북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머리가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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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클러는 미샤엘 만(Michael Mann)의 “권력의 역사(Geschichte der Macht)”에 기대어 제국이 형성되는 원동력을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구분하고 (79쪽이하) 이어 제국이 형성되는 단계를 살펴본다. 제국형성과정을 크게 확장단계와 안정화 단계(Konsolidierungsphase)로 구분하고, 확장단계에서 안정화 단계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주목한다. 이 단계에서 대부분의 제국들이 실패했다고 지적하고 마이클 도일(Michael Doyle, Empire, Princeton, 1986)에 기대어 이 과도기를 “아우구스투스 문턱(Augustan Threshhold)이라고 부른다.제국이 “아우구스투스 문턱”을 넘어서면 확장단계에서의 착취에서 개화(Zivilisierung), 식민지화 등으로 변신한다는 것. 이렇게 변신한 제국은 제국이 담보하는 평화, 제국의 미션 등 확장단계에서와는 다른 담론을 전개한다는 것.
뮌클러는 소위 해양제국(“Seaborne empire”)이 대륙제국(Territorial/Steppenimperien)보다 “아우구스투스 문턱”을 잘 해소했다고 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해양제국’(Seeimperien)은 특정지역을 물리적으로 지배하는 것보다 상품, 자본, 그리고 정보의 흐름 및 경제허브(wirtschaftliche Knotenpunkte)지역의 통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항구, 안정적인 무역항로, 자원공급, 그리고 거래인/국간의 국제통용화폐에 대한 신용 등에 더 집중하기 때문. 무역구조(예컨대 Terms of Trade)와 세계경제의 지배로 요약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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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제국의 순수한 형태는 몽골제국일 것 같고 조그만 나라였지만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포르투갈이 해양제국의 순수한 형태에 가까운 것 같다. 미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다 갖춘 이상적인(?) 제국의 모습이 아닌가 한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