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렸던 지난 월요일의 일이다.

 

아침부터 비가 왔지만 중간중간에 비가 그친 터라

 

퇴근 길에 보니 우산이 없는 이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게다가 빗줄기도 굵지 않은 부슬비라 사람들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했다.

 

 

오랫만에 느껴보는 빗속의 정취라 유유히 우리집 단지에 들어서는데,

 

어느 유치원 꼬마 아이가 자기 몸통만한 가방을 들고 비를 맞고 가는 것이 보였다.

 

안쓰러운 마음에 우산을 씌워주려 했다가, 어린 아이인데다가 여자아이여서 괜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것 같아 그만 두었다.

 

그래서 얼른 빠른 걸음으로 아파트 입구까지 왔는데, 알고보니 같은 동의 아이였다.

 

아이에게 어찌나 미안하던지...그리고 용기를 내어 도와주지 못한 내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그날 저녁 사촌 동생들과 오랫만에 식사를 함께 하기 위해 옆동네로 걸어서 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고, 역시나 우산 없는 이들이 몇몇 보였다.

 

신호등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졌다.

 

그때 내 옆에서 초등학교 3~4학년으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팔을 머리 위로 올려 힘겹게 비를 피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까 오후에 있던 일도 있고 해서 슬그머니 다가가 우산을 씌어주었다.

 

아이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길래 씨익 웃어주면서 잠깐만 비를 피하라고 나긋나긋 이야기해 주었다.

 

순간 아이는 무슨 위험(?)을 느꼈는지,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고

 

때마침 신호가 바뀌자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거리가 벌어졌다고 생각한 아이는 멈춰 서서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는 것을 발견하자 더 빠른 속도로 뛰어갔다.

 

그리고 몇 번 더 뒤를 돌아보더니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아마도 그 아이는 낯선 이를 경계하라는 교육을 가정과 학교에서 지겹게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연일 계속되는 납치, 유괴, 실종 뉴스도 접했으리라.

 

이 모든 것이 보잘 것 없지만 순수한 선의을 위협으로, 악의로 착각하게끔 만들었으리라.

 

 

언제쯤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있을까?

 

언제쯤 우리는 힘들이지 않고 착하게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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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5:54 2009/09/23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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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칭개  2009/09/25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씁슬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