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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진철님의 [공부 잘하는 게 자랑인가?, 똑똑한 게 좋은 일인가? 라는 질문을.] 에 관련된 글.
다른 분들 글 보다가 문득, (살짝쿵 관련 없을지도 모르지만) 난 왜 공부하고 싶을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봤다.
초, 중, 고등학교 제도권 교육을 특출나게 잘 수행했던 것 같지는 않다. 한 중간 정도 될만치 했고, 어차피 소설 쓰는데 학벌 같은거 필요없다고 생각했었다.
소설 공부 한답시고 대학에 가고 나서도 (소설 쓰기 위해 대학을 갔다?) 특별히 열심히 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기껏 하는 운동권 공부는 한 적이 있지만.
그러다 여차저차 시간이 지나고 나서, 학생운동을 업(?) 비슷하게 하고 있는 많은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어쩌면 이런 공부(!)에 살짝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재능이라는 표현대신, 적성? 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러다 여차저차해서 소설 때려치고, 사회학 하려다가 계속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여전히 소설도 쓰면서, 공부도 하고 싶어 한다.
여전히 이데올로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쉬운 것은, 대학원에 가서 업으로 공부를 해서 세상과 싸울 수 있는 저항수단? 무기? 를 얻으려고 하니 나에게 지방대생이라는 레떼르가 붙어 있는 걸 발견했다.
소위 명문대에 몸담은 분들 중에 대단한 분들도 있을터이다. 다만 똑똑하거나, 역량이 뛰어나다는 증거는 '명문대생'이 아니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였다.
학벌이(정확히는 출신 학부가?) 어떤 출신성분 같은 것이 되서, 그 사람을 규정하는 걸 보게 됐다.
여차저차하다가, 어차피 배우는거 더 많이 보고 싶어서 외국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는건. 지금은 특정대학의 특정 대학원에 가고 싶어 한다. 사실 난 그 대학원에 교수가 누가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가고 싶어 한다.
어차피 가서 공부는 내가 하면 되는거지만, 저쪽 오른쪽 혹은 하여튼 내가 적(!)이거나, 아니면 대항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방법이 좋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런 욕망은 여전히 학벌주의 프레임 (한국사회에서 공고한? 아니면 여전히 인터내셔널한?) 안에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에서.
어쩌면 여러가지가 뒤섞인 내 욕망의 발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나는 여전히 이데올로그가 되고 싶다. 그래서 사회적 약자 편에 서서, 왼쪽에 서서, 저 사람들이 말하는 온갖 말도 안 되는 논리를 부수고, 외국말 잘 모른다고 감언이설 하는 사람들에게 그거 아니지 않냐고 외국말 척척 번역해서 보여주고 싶기도 하다.
저항의 방식으로 공부하고 싶은건데, 그걸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은 심장이 그렇게 시키니까. 여전히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아직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역량도 안 되지만) 계속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은. 정말로 그거냐? 라고 물어보는 것과, 계속 그렇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지. 갑자기 끝임없이 물어보고 싶어졌다.
덧) 이게 뭔 소리인지 ㅡ_ㅡ
덧) 이걸 고민하다보니 비슷한 고민인데. 어릴 땐 막무가내로 서른 안에 등단 못하면 할복(응?)!!! 이라고 생각을 했더란다. 문제는... 그 때는 10대였으니 상관없지만, 지금은 시시각각으로 할복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거다 ㅡ_ㅡ
근데... 문득 드는 생각인데. 왜 '등단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하는걸까? 내가 원하는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쓰고 싶은거 아닌가? 싶어서...
하여튼 지금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야겠다. 좋은 글을, 써보자 +_+
라빛왕자님의 [에밀리오님 글을 읽고 고민이 생겨서 몇자 적어봅니다.] 에 관련된 글.
두 가지 질문해주셨는데, 개별적이든 묶어서든 대답하고 나서 제 주장을 펴면 더 오해 돋을 것 같아서 그냥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지하시다시피 민족주의는 근대의 기획이고, 정치적 견해, 정치적 필요에 의해 발전된 산물입니다. 그리고 국민국가는 근대성과 민족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입니다.
그리고 선발국에서 시작된 (보통은 독일? 프랑스?에서 태동했거나, 정립했다는 의견이 다분합니다.) ‘민족-국민국가-자본’의 삼위일체는 제국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빠르게 후발국과 후후발국 등으로 전파, 수입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말씀하시는 바를 수용하거나, 아니면 서술의 편의를 위해서) 20세기 초에 이 나라에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형태로 민족주의가 수입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를 거쳐서 국민국가 형태와 민족주의가 강제로 이식 되었고, 근대의 주체가 미처 형성되지 못한 상태로 진행된 근대화 (국민국가와 근대성 형성 과정은 같이 가니까요.) 는 많은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그 근대화의 폐해 중 하나가 National histories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국내 역사학계의 인식은 ‘군부독재시기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역사인식을 만들어냈었던 부분을 경계하고 있고, 그래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라는 그룹이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역사의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역사발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차를 두고 운영되는 정치적 그룹<표현하자면 국가?>인 A와 B가)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을 통해 ‘연속성’을 가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 “서로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다시 말해서 여전히 역사의 연속성을 규정하는 근거는 동일한 공간 (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 심리적, 추상적 공간)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특정지점 A부터 B까지’ 라는 임의의 공간설정이라는 전제를 지워버린다면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을 이어주는 정치문화경제사회의 영향력과 연속성은 인근의 다른 그룹(논의를 위해 굳이 쉽게 표현하자면, 동일한 시대의 중, 일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듯 말씀하시는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간에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과 그래서 역사성이 이어진다는 주장은)은 오로지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라는 임의의 폐쇄된공간을 설정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폐쇄된 공간을 ‘내부’로, 그 이외에 타자를 ‘외부’로 전제하여 <내부의 동학을 통한 역사성의 연속>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부’와 ‘외부’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지금 이 순간, 국민국가 속에 살아가는 현재의 ‘관찰자’가 과거를 돌아보며, 임의의 폐쇄적인 공간을 설정 (이 경우에는 추상화 되어 있는 영토 - “지금 현재 우리 영토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 중에서 역사라고 할 만 한 것은 우리의 역사이다!” 라는 선언) 하여 “역사의 영속”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여전히 < 국민국가 / 영토주의 / 민족주의 > 회로판 속에서 사고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국내 역사학계의 인식은 민족주의에 입각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지만 그 사고의 회로판 역시 여전히 National histories의 영역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근대국민국가에서 설정한 ‘자국’의 역사세우기는 지극히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정상국민국가를 만들기 위한 과정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다분히 정치적 행위, 혹은 견해입니다.그리고 말씀하시는 역사 설정 또한 이 것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에 대해 이미 대답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여전히 민족주의 회로판에 입각한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하신다면 사족을 겸해서 말씀드립니다.) 이마뉴엘 월러스틴은 유럽에서만 자본주의 형태가 출현한 이유를 순전히 우연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유를 크게 네 가지로 들고 있는데, 1) 유럽의 도시국가형태, 2)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인한 교류, 3) 원격지 무역 활성화, 4) 몽골족 침략에 의한 (강제적) 교류입니다.
그냥 핵심만 말씀드리면, ‘우연히’, ‘특정한 조건이 충족되어’ 유럽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했을 뿐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다만, 이러한 ‘인과관계’를 역사의 연속성으로 규정하신다고 하더라도 (말씀하신대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 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영향력), 이러한 ‘인과관계’ 때문에 이를 “우리의 것” 이라고 하는 것은 적절하지도 않고, 다분히 정치적인 견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여전히 민족주의 회로판 속의 사고이며, 영토주의에서 벗어나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문제제기에 답변이 충분히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논의 중 오해 돋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댓글이든, 트랙백이든 다시 이야기 풀어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부득이 회사에서 나가야해서 우선 이렇게 갈음하겠습니다.)
K님께.
얼핏 기억하기로 제법 오래 전 언젠가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은 별개의 존재이며, 연속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쯤 되는 논지의 이야기를 한 걸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와 인식이 다르신 부분이 있어 포스팅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게 말씀하신 적이 있고, 또 저는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길 했는데 어쩌다보니 (바빠서?) 포스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티타임 가지면서 대충 이야기가 오가긴 했습니다만 포스팅 남겨볼까 합니다.
아무튼 시작하자면,
조선왕조 혹은 그 이전 시기에 있었던 단체(Group, 국가라든지 나라라는 말이 혼선을 가져올 우려가 있어서 흔히 쓰는 그룹의 한글 표현을 쓰겠습니다.)가 지금의 국가(즉 대한민국?)와 연속성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일반적으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은 동일한 민족이라는 인식(민족주의)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 중에 특히 단일민족 신화입니다. 허나 우생학적으로 순혈이라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는 이미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입증된 것이니만큼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서적으로 「우리 안의 그들 역사의 이방인들」(이희근, 너머북스, 2008. 12.) 등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단일민족 신화의 허구성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민족’을 언급하면서 혈통주의에 입각하지 않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재 이 나라에서 쓰이는 것이 보통 언급하는 “같은 말, 같은 풍습, 같은 문화 등을 공유하는 집단” (아시다시피 민족주의 등에는 이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을 민족(Ethnic)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실 Nation과 Ethnic은 상당히 유사한 개념이긴 하지만, 여하튼 한국적 용법(이라고 방금 그냥 제가 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위와 같이 구분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일 위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같은 말, 같은 풍습,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을 민족이라고 정의할 경우는 헤르더가 언급한 “사회공동체를 문화공동체로 받아들인 것”인데, 멤버쉽을 획득하는 과정이 사회구조와 관련 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민족은 일종의 정치적 공동체이며, 민족주의는 정치적 견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은 실체가 아니라, (베네딕트 앤더슨의 표현대로) 머릿 속에서 추상화 된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 is to say imagined by the people who perceive themselves as part of that group.)라는 학설은 설득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정리하면,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 동질성을 획득하기 위해 존재해야하는 매개체인 <민족>이라는 개념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의 개념이며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입니다.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의 공간이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가정을 하겠습니다. 이 경우, 과거 어느 시점인 A에서 발생한 조선왕조의 사건과, 대한민국은 2011년 1월 4일 현재인 B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이 있고, 공간적으로 완벽히 일치한다고 하더라도 행위자도 다르고, 인식을 공유하지도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A와 B 시점에서 각각의 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이 각각 유의미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것”으로 인식된다고 하더라도 개별 사건은 연관성을 가지지 않습니다. 또한 본질적으로 A 시점의 조선왕조와 B 시점의 대한민국이 공간상 완벽하게 겹친다고 해도 이 또한 우연에 지나지 않습니다. 개연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근대민족국가(Nation state)는 <민족-국가-자본>의 삼위일체로 작동하고 있으며, 그 근저에 구성원들이 국가를 인식하기 위한 기제인 실체이자 기념물로 국토(영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국토는 실체이지만, 동시에 A에서 A' 이라는 임의의 테두리를 그어놓고 개념화(추상화)한 허구의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국민국가, 민족, 영토주의는 함께 갑니다.)
민족주의는 근대의 기획이며, 서구에서 수입된 개념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이라는 개별적인 단체가 ‘민족’이라는 형태의 동질성을 획득하지 않으며, 지정학(Geopolitic)적 공간의 일치가 연속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조선왕조’와 ‘대한민국’을 놓고 <우리>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연속성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본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우리? 냐라고 여쭤보신다면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요.)
혹시 제가 서술 중에 괄호 안에 용어나 개념 등을 가두어놓고 미쳐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차후에 댓글, 의견 등을 남겨주시면 후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
사실은 며칠 안 됐지만 작년의 일이다.
어쩌다보니 안타깝게 자살로 내몰린 모 노동조합 위원장님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문득 그 분에 대해서 잘 아는 바가 없어서 안타깝다는 의미로,
"난 모 위원장님 잘 몰라. 성함도 모르고, 남자인지, 여자인지 성별도 몰라."
밥 먹다말고 뒷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내 머릿 속에 대화 속의 노동조합 위원장님은 당연스럽게도 4~50대, 짙은 남색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다니고 빨간 머리띠를 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모 위원장님께서 남성인지, 여성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위원장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남성이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괜히 오해 돋을까봐 사족을...)
#2.
이건 오늘 있었던 이야기.
오늘 점심시간 이후에 이를테면 폭주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눈길에 헬멧을 쓰지 않고 폭주중이던 일단의 젊은 사람들이 사고가 났고, 동공이 풀린 채 사지가 늘어져 있는 사고 현장을 보았다는 이야기...
어그부츠를 신고 있더라는 이야기가 나오기 전까지, 사고가 난 폭주족은 내 머릿 속에서 당연히 남성의 이미지였다.
#3.
스테레오 타입인지 어떤지 몰라도 내 안에서 어떤 이미지나 성역활을 정해놓고 사고하고 있는 회로판을 발견하게 되서 놀라기도 했고,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얼른 바꿔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다.
써야지 써야지 하고 고민하고 있던 동안에는 좀 더 잘 전달 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어쩐지 잘 안 써지는 분위기..
#덧.
이건 그냥 내 이야기.
왜 "멋있다" 혹은 "잘 생겼다" 라는 것이 남성을 수식(?)하는지, 나를 표현할 때 "예쁘고 싶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건지 고민이다.
#덧덧.
요즘 심력낭비(??)가 심해서 뭔가 하기가 참 애매하다. 영던 돌기와 진로크 파밍 외에는...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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