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비관

2009/02/12 14:47 Tags »

꾸역꾸역 출근해서 비몽사몽 일을 하고 광화문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퇴근하는 길

자고싶다.... 자고싶다....... 자고싶다.......를 중얼대며.......

 

서울역에서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사님이 축구 중계를 버스 안에 틀어놓았는데 이건 뭐 나이트클럽 수준의 볼륨이다

거의 뒤쪽 편에 자리를 잡았는데도 곳곳의 스피커에서 귀가 떠나갈만큼 관객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는거다

고개를 빼고 주변을 살펴보니 이어폰을 끼고 있는 승객(중계 소리는 이어폰으로 어떻게 가릴 수 있는 수준의 소리가 아니었음),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승객, 눈을 감고 있는 승객 등

하지만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나만 이렇게 괴로운 건가.

아아 도저히 못 참겠다 싶어서 신호대기에 버스가 멈췄을때 앞으로 나가서 기사님에게 말했다

 

"기사님, 소리 좀 줄여주시면 안될까요?"

그랬더니 기사 아저씨는 응?인지 예?인지 모르겠는 그 어느 중간쯤의 외마디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못 들으신 줄 알고 다시 말했다

"소리 좀 줄여주시라고요"

그랬더니 더욱더 눈을 동그랗게 뜬 아저씨는 굉장히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니, 축구 안 들을 거에요?" 그런다 허허....

축구건 야구건 농구건 탁구건 뭔 상관이랴

"너무 시끄러워요" 라고 대답했더니 그제야 운전석 쪽에만 들리도록 소리를 조정했다

내 자리로 돌아가는데 기사님의 중얼거림이 들린다

"세상에... 대한민국 국민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소리다

 

난 내 자리에서 곧 잠에 빠져들었다

몇십 분 지났을까 다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깨어났다

한국팀이 골을 넣자 기사님이 다시 볼륨을 무지막지하게 키운거다...........

꼬~~~~~~~~올~~~~~~~ 꼴입니다~~~~~~~~ 하면서 캐스터와 해설자가 몇분간 악을 쓴다......

아아.................................

얼마나 기쁘셨으면, 이 기쁨을 승객들과 얼마나 나누고 싶었으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하고 싶다;;;;;;;;;;;

 

그게 월드컵 예선이란 건 오늘 아침 신문을 보면서 알았다

난 '대한민국'이 월드컵에 나가는 것보다 내 퇴근길이 편안한 것이 더 중요하단 말이다

 

2002년 월드컵때 "축구가 밥먹여줘요?"라고 묻자

"대한민국 국민의 사기가 올라가고 자신의 일들을 열심히 해서 경제 선진국이 된다"고 대답한 어떤 젊은이.

백날 열심히 해봐라.

부자는 열심히 안해도 살고 서민은 열심히 해도 죽는다

류의 악담을 퍼붓고 싶어지는 느낌.

 

이래서 이노무 축구를 좋아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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