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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정치학자, 다른 눈으로 같은 곳을 보다
서평문화 변화 시도한 푸른역사아카데미‘논쟁-대담’
[교수신문] 2011.6.21.
지난 15일, ‘박정희 체제와 새마을 운동’을 주제로 푸른역사아카데미에서 주최하는 ‘논쟁-대담’ 첫 번째 서평대회가 열렸다. 동일한 대상을 역사학과 정치학이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 이번 논쟁은, 학제 간 소통을 통해 한국 사회의 영원한 쟁점인 박정희와 1970년대를 들여다봤다.
『그들의 새마을 운동』(푸른역사, 2009) 의 저자 김영미 국민대 교수(국사학과)와『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메이데이, 2011)의 저자 이광일 성균관대 강사(정치학)가 이날 논쟁의 대표 주자였다. 최형익 한신대 교수(국제정치학부)와 이준식 전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정치학계와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논평자로 나와 두 저자와 함께 난상 토론을 벌였다.
이광일은 박정희 정권을 평가하는 데 있어 경제 성장과 민주주의를 분리해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노동자와 민중들의 삶과 노동의 고통이 곧 경제 성장의 열쇠였다”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자유주의적 이분법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준식 상임위원은 그의 주장에 역사성이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계급 관계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태도와 모호한 개념을 사용한 점도 비판했다.
이날의 ‘논쟁-대담’은 두 저자의 책 소개에서부터 마지막 질의응답에 이르기까지 장장 3시간여 동안 치러졌다. 휴식 시간도 없이 진행될 만큼 치열하고, 흥미진진했다는 후문이다. 실증적인 연구로 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훈상’을 수상한 김영미 교수의 저작『그들의 새마을 운동』에 대한 흥미로운 논쟁을 요약· 소개한다.
□ 김영미 국민대 교수( 『그들의 새마을 운동』저자) “새마을운동은 중층적이다”
박정희 체제가 그런 것처럼 새마을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은 양극단화 돼있다. 박정희 정부의 탁월한 리더십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보는 시각의 대척점에 국가주도의 운동으로 농촌 풍경 및 문화를 획일화·파괴했다는 시선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 해석들이 종종 간과하는 것은 실제로 그 시기를 살았던 역사의 주체들이다. 새마을운동을 이야기 할 때도 그 운동을 이끌어간 주체인 농촌 현장과 농민은 없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새마을운동은 정부가 주도한 전략인 한편 농민 스스로 잘 살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박정희 정부는 준비 없이 새마을운동을 시작했고, 예상치 못한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확인하면서 대대적인 국가 시책으로 정립·확대 발전시켜나갔다.
사실 새마을운동 전에도 잘 살기 위한 농촌의 움직임이 존재했다. 마을 공동체는 느린 속도였지만 근대화되고 있었다. 30대 전후 나이의 근대 교육을 받은 청년 이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바탕이 있었기에 새마을운동은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또한 새마을운동이 개인이 아닌 생활공동체 ‘마을’을 대상으로 했다는 사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마을 엘리트에게 고향 마을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에 이들은 정부의 시책에 공감하며, 주체적이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때로는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정부의 눈을 속이기도 했다. 새마을운동기 농민들의 눈속임에 대한 사례 연구는 농민들의 자율성과 관련해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이처럼 동질적이면서 또 이질적인 주체들은 각자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다면적인 결과물을 생산해냈다. 때문에 새마을운동의 성과와 한계는 단순하지 않다. 지금과 같은 단순한 이분법에 파묻힐 것이 아니라 그 시기를 다각적으로 바라보는 연구가 필요하다.
□ 최형익 한신대 교수,“새마을운동은 정부‘만’의 운동일 뿐이다”
『그들의 새마을운동』은 일부의 사례를 가지고 국가프로젝트의 성격을 일반화시킨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 글의 제목은‘새마을운동 사례연구’가 적절하다고 본다.
저자가 주장한 ‘근대’의 개념은 개방과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우리나라 농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개방’이다. 새마을운동은 필자도 언급했듯이 근대화 전략이었다. 따라서 새마을운동은 근대적 주체로서 농민의 성격을 변화시킨 역사적 파고였던 것이다.
또한 저자는 일제하 농촌 진흥운동과 새마을운동을 병치해 유비하는 연구전략을 택했다. 정치학적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유비는 정치적 주체로서 국가 성격의 근본적 차이를 간과한다. 저자가 사용한 ‘자소작농’이라는 개념 역시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견지에서 새마을운동은 관제정치프로젝트의 성격이 강하다. 때문에 농민들은 유신체제가 몰락하자마자 새마을운동을 놀랠 만큼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웠다.
박정희 정권의 전반적 농업 정책이 농민 내지 농촌 사회에 그나마 기여하려고 했던 점이 있다면, 새마을운동이 아니라 국제 분업 내지 시장 개방의 파고에서 농민들의 생존권 문제를 고민했던 유일한 정권이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그들의’새마을 운동이 아니었다. 그들‘만’의 새마을운동이었다.
박정희체제, 자유주의적 비판 뛰어넘기 이광일 메이데이, 20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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