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를 비켜간 허리케인과 서방언론
9월7-8일께부터 일주일 이상 카리브해와 미국 남부를 휘젓고 지나간 허리케인 아이번에 관한 이야기가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전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유독 빠져있는 이야기가 쿠바다. 쿠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쿠바를 비켜간 것은 서방 언론뿐 아니다. 아이번 또한 쿠바를 비켜갔다. (영국 비비시방송이 만든 아이번 진로)
그런데 서방 언론이 집계한 사망자 숫자를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을 느낄 수 있다. 미국: 최대 33명, 그레나다: 최소 37명, 베네수엘라: 5명, 자메이카: 최소 20명, 도미니카: 4명, 케이먼군도: 1명, 토바고: 1명. 아이번의 이동 경로와 상당히 떨어진 도미니카, 베네수엘라에서도 숨진 이들이 나타났는데, 아이번이 서쪽 끝을 스치고 지나간 쿠바에서는 사망자가 없다. 공산주의 국가라 집계가 안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망자가 전혀 없었다. 쿠바에서는 왜 사망자가 없었을까?
어렵사리 찾은 영국 로이터통신의 기사 한 것이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마크 프랭크(Marc Frank) 기자가 16일에 쓴 '쿠바인들은 아이번의 피해를 보지 않은 데 대해 신과 카스트로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Cubans thank God and Castro for surviving Ivan)는 기사는, 아이번이 쿠바를 비켜간 데 대한 주민들의 반응 뒤에 유엔 재해 감소 연구소 (UN Institute for for the Reduction of Disasters)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쿠바는 재해 예방 정책을 모범적으로 수행하는 국가이며 이 덕분에 다른 카리브해 연안 국가들보다 피해가 항상 적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나라들이 배울 만하다는 것이다. 쿠바는 재해예방 교육을 학교의 정규 과목에 포함시켜 어려서부터 가르치며, 훌륭한 민방위 교육과 기상 예보제도도 갖추고 있다고 한다.
아이번이 북상하는 동안 카스트로 대통령은 직접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에 나와서 장장 4시간동안 기상 전문가들과 함께 주민들에게 대비 요령을 설명했고, 아이번이 쿠바를 지나가는 순간에는 쿠바 서부 지역에 직접 가서 주민 대피 업무를 독려했다고 한다. 쿠바 국영 언론인 그란마(www.granma.cu)의 기사를 보면 유엔의 한 관리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결여되어 있는 것은 확고한 (재해 대비) 행동 계획과 이 계획을 이행할 정치적 의지”라고 평했다. 카스트로가 방송에 나와서 특히 강조했다는 한마디는 정치적 의지가 뭔지를 짐작케한다. 그는 “이번 허리케인은 보통 때와 전혀 다르다. 핵 폭탄과 같다.”면서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존하라. 나머지 모두는 다시 복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쿠바에서 허리케인으로 숨진 사람이 없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그란마가 전하는 자세한 대비책을 보면, 이 나라가 얼마나 신속하게 자연재해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인구 1100만명 가운데 피해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 서부 지역 주민 189만명을 안전 지대로 대피시켰다. 또 기숙사에 사는 학생 36만명, 외국인 관광객 8천명도 대피했다. 전체 인구의 20%에 가까운 사람들을 대피시키면서 단 한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그란마의 기사는 자랑하고 있다. 어쩌면 전세계로부터 고립되고 서방 언론으로부터도 외면받기에, 쿠바는 스스로 자신들을 지키는 것밖에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아는 게 아닐까?
11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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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허리케인 어마 관련 쿠바 상황
먼 댓글 보내온 곳 밑에서 본 세상
2017/09/11 10:08
marishin님의 [쿠바를 비켜간 허리케인과 서방언론] 에 관련된 글. 지난 주말부터 허리케인 어마가 쿠바에 얼마나 피해를 입혔을지 궁금했는데,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 영문판을 빼고는 정보를 얻을 곳을 잘 모르겠다. (이 글은 13년전에 쓴 위의 글을 검색해 들어오는 이들이 꽤 있어서 간단히 써보는 것이다.) 그란마의 구조 상황 보도에 따르면, 쿠바 중부의 피해가 극심하고 구조·수색 작업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쿠...
neoscrum 2004/09/19 21:20
쿠바보다 훨씬 월등한 시설로, 훨씬 많은 자금을 투여해서 인재를 막을 수 있었던 다른 나라들과 쿠바를 비교해보니 로자의 '사회주의냐 야만이냐'가 생각나네요.
Cuba에서는 2004/09/19 23:00
AIDS도 비켜는가 봅니다. Monthly Review 2004. 9월호 Notes from the Editors에 그런 말이 있군요. http://www.monthlyreview.org/nfte0904.htm
슈아 2004/09/20 01:46
아 눈물이 날라고 그랍니다. 에공..감사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야 하는데..
아거 2004/09/20 12:30
지난 번에 허리케인 챨리 보도를 보면서 미 언론의 쿠바 외면을 언급한 적이 있었습니다.
http://gatorlog.com/mt/archives/001850.html
그 뒤로 연거푸 허리케인 2개를 더 보면서 TV를 계속 지켜봤는데, 일단
미국 언론에서 쿠바 소식이나 관련 장면 보는 것은 정말 가뭄의 콩나듯 합니다.
최근에는 위에 언급한 관점에서가 아니라 마치 이북의 땅굴 소식 전하는 것처럼
쿠바의 대피 시설을 미국의 폭격 대비용으로 둔갑시키더군요.
그리고 사상자 이야기는 없이 서쪽의 담배 농업이 모두 망했다는 소식만
들었습니다. 사망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marishin 2004/09/20 14:13
Cuba에서는/ 저도 그 글 봤습니다. 에이즈 대책에서도 쿠바가 모범적이라고 하더군요.
슈아/눈물까지... 대통령이 텔레비전에 나와서 생명을 최우선으로 보존하라고 말하는 건, 보기에 따라 감동을 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아거/찰리에 대해 쓰신 거 봤습니다. 역시 미국에서는 쿠바에서 사망자가 없었다는 게 거의 보도가 안됐나보군요.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겠죠.
hi 2004/09/20 17:47
쿠바라... 함 가보고 싶은 곳이긴 한데... 과도한 기대가 작동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갔다가 실망하면 어쩌나 겁나기도 하고... 그런 곳이네요...
kingdumb 2004/09/20 18:29
저도 쿠바에 관한 작은 소식을 들을때...정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쿠바에 대해 모르면서동...저는 쿠바가 식량 자급을 위해...유기농법을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그것역시 감동이었답니다.
파피루스 2004/09/21 02:50
이 글 퍼가도 될까요?
marishin 2004/09/21 10:40
파피루스님 물론 퍼가셔도 됩니다. 정확한 정보를 위해서 웬만하면 영어 원문도 함께 퍼가시면 좋겠습니다.
파피루스 2004/09/21 13:02
앗! 고맙습니다. 제 허접한 홈피에 쿠바를 포함한 남미에 관한 코너가 있습니다. 자료도 모으고 공부도 해서 (물론 돈도 모아서) 언젠가 쿠바엘 가야겠습니다. 게으름과 돈벌이에 밀려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탈이지만서도요. 님 덕분에 오랜만에 업글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또 놀러오겠습니다.
인디 2004/09/21 13:13
저두요...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