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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역게시판 폐지

그동안 제가 번역한 책들의 오역 문제를 논하는 게시판을 운영했습니다만, 이제는 별 의미가 없는 상태이기에 폐쇄합니다.

오역 게시판에 있던 내용 일부는 기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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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근대군주론 관련 내용>

한 서평자로부터 몇가지 지적을 받았기에, 여기에 소개합니다.

 


  • '다니엘 콘벤디트'(33쪽)가 아니라 '다니엘 콩방디'가 아닌가.

    답변: 원문은 Daniel Cohn-Bendit이고, 이 사람은 프랑스 68혁명의 지도자격인 인물입니다. 프랑스에서 발음한다면 콩방디(또는 콘방디)가 맞겠는데, 이 사람은 독일 사람입니다. 그래서 콘벤디트로 표기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사람에 대해 약간 더 소개한다면,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잠깐 이주해 살다가 독일로 돌아갔고 성장한 뒤 다시 파리로 유학을 왔습니다. 이 때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이후 독일로 돌아가서 녹색당에 관여했습니다. 녹색당 소속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현재도 유럽의회 의원입니다. (현재는 프랑스 녹색당 소속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확실한 지는 모릅니다.)

  • 헤겔의 '중재'(79쪽)라고 적기 보다는 '매개'로 적는 것이 어떤가

    답변: 이 부분의 문장은 이렇습니다. “마르쿠제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브라운의 이성 거부였다. 브라운의 “융합” 또는 “신비스런 참여”(254쪽) 곧 주체와 객체, 마음과 육체, 남성과 여성, 정신과 공허함, 의미와 무의미, 개인과 가면의 경계 지움이 이성 숭배를 뒤집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마르쿠제를 따르면, 이는 헤겔의 관념론보다 더 과격한 것이다. 그래도 헤겔은 중재(mediation)라는 어떤 의미있는 개념을 유지했다.” 문장을 다시 보면, 서평자의 지적대로 중재는 잘못된 번역같습니다. 매개라고 해야됐겠습니다.

  • '폴크(국가)'(301쪽)가 아니라 '폴크(민족)'가 어떤가. 헤겔의 '도덕적 국가'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은 곳이 있음. 독일어 Sittlichkeit(인륜성)를 영어로는 ethical life라 옮기는데, 일대일 대응이 잘 되질 않음.

    답변: 잘 모르는 영역이어서, 지적에 대해 언급할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서양의 글을 번역할 때 국가와 민족의 구별이 참 어렵고 항상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서평자가 헤겔 철학을 잘 아는 분이므로 이 지적은 믿으셔도 됩니다.

  • 챕터 1의 발문으로 벤야민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추기에 나오는 말이 인용되고 있는데, 영어판의 옮김이니 오역은 아니겠지만 부정확한 듯함.

    답변: 인용 부분은 이렇습니다. “파시즘은 대중에게 권리를 주는 데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표현의 기회를 주는 데서 자신의 구원을 본다. 대중은 소유물의 관계를 바꿀 권리가 있다. 파시즘은, 소유물은 지키면서 표현만 넘겨주려고 시도한다.”(43쪽)

    강유원 등 7명이 독일어 원본을 번역한 부분은 이렇습니다.
    “현대인의 점진적인 프롤레타리아트화와 대중의 점진적인 형성은 하나이고 동일한 사건의 두 측면이다. 파시즘은 대중이 폐지하고자 하는 소유관계는 건드리지 않은채 새로이 생겨난 프롤레타리아트화한 대중을 조직하려 하고 있다. 파시즘은 대중의 의사를 표현하게(그들의 권리를 찾게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는 데에서 구원을 찾고자 한다. 파시즘은 그들에게 하나의 표현을 제공함으로써 소유관계를 보존하려 한다. 파시즘은 정치적 생의 심미화로 귀결된다. 파시즘이 지도자에 대한 숭배 속에서 전락시킨 대중의 폭력은 파시즘이 제의적 가치의 생산에 봉사하게 하는 기구의 폭력에 상응한다.”

    기존 번역본을 미쳐 확인하지 못하고 그냥 영어를 번역한 부분입니다. 영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우리 말로 옮긴 것보다 독일어 원본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당연히 우선합니다. 그리고 독일어 번역본을 보니, 제가 영어도 제대로 옮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서평자는 오역이 아니겠다고 했으나, 내용을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역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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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자의 지적 부분을 고려해서 읽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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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가 두가지를 지적했습니다.

1. 192쪽 주석 14번에서 “기호표현(시니피앙)과 기호내용(시니피에)”이라고 적은 것은 이상하다. 이미 기표와 기의로 널리 쓰이는데 굳이 기호표현과 기호내용이라고 한 것은 과하지 않은가?

답변: 일리있는 지적입니다. 이런 용어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는 생각에서, 어디에서 본 기호표현과 기호내용이라는 용어를 썼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괄호 안에 기표, 기의도 함께 적으려고 했으나, 그만 지나쳤습니다.

2. 360쪽 의도적인 매트릭스(intentional matrix, 의미를 드러내려는 의도)는 지향적인 매트릭스의 오역이다. 현상학에서 intentional은 지향적인이란 뜻이다.

답변: 오역이군요. 전체 문장은 이렇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탈근대 군주의 건설에 암시되어 있는 요소들의 통일은 일상적 지각의 의도적인 매트릭스(intentional matrix, 의미를 드러내려는 의도)를 닮을 것이다.134) 메를로-퐁티가 보여줬듯이, 각 개별 주체가 세상을 서로 조금씩 다르게 지각하지만 생활세계는 단지 기호들의 자의적인 행위를 위한 게 아니다. 생활세계는 비록 본질적으로 '모호성'을 지니고 있긴 해도, 합의된 의미 이해의 바탕을 제공한다.”

그리고 관련된 134번 주석은 이렇습니다.
“맑스주의가 호소력을 발휘할 무언가가 역사적 영역에 있음이 분명하다. 내가 친구와 함께 산책할 때 [몸짓을 통해서] 친구에게 보여주려는 무언가가 지각 영역의 지평에 비록 모호하게라도 존재하는 게 분명하듯이 말이다.” Albert Rabil, Jr., Merleau-Ponty: Existentialists of the Social World, 124쪽.

사실 번역할 때는 앞 뒤 문맥을 열심히 따져봐도 intentional matrix가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래서 그냥 일반적인 뜻으로 '의도적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현상학에서 intentional이 어떤 뜻인지 알아보는 노력을 게을리해서 생긴 오역인 셈입니다.

의도적인 매트릭스는 '지향적인 매트릭스'로 해야 옳겠습니다. 여전히 남는 건 매트릭스입니다. 이건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요? 현상학에 대해 잘 몰라서... 잘 아시는 분의 조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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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가 오역을 지적했습니다.


"사회주의는 단지 노동 문제가 아니다."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화자는 말한다. "그건 무엇보다 미학 문제이고 오늘날 무신론이 취한 형식의 문제이고, 또 신 없이 걸설한(인용자가 '건설한'을 잘못 입력했군요: 신기섭) 바벨탑의 문제,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이 땅에 하늘을 건설하는 문제이다."(28쪽)


여기서 '미학 문제'는 '무신론 문제'의 오역이라는 겁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제가 atheistic을 aesthetic으로 착각했습니다.

오역 지적 원문은 www.aladdin.co.kr/blog/mypaper/1014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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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