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엉터리 '세계화 찬양' 노래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999년 7월호

원 제목 = 지구화 찬양의 운율(PAEON OF PRAISE TO GLOBALISATION)/ "지구 건설자"의 신화창조(Creation myth of the "geo-architect")

 

<배플러>라는 잡지 편집국장이 쓴 이 글은, 미국 뉴욕타임스의 유명한 국제관계 필자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의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집중 분석했습니다. 이 글은 이 사람이 얼마나 사실을 왜곡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찬양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세계화 또는 지구화는 전세계에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고 사람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며 모두에게 자유를 준다는 식의 말도 안되는 억지 주장이 프리드먼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랍니다. 프리드먼의 이런 생각은 단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가진 자들, 금융자본들, 지배계급의 사고방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글쓴이의 지적입니다.

 



현재 경제체계와 강해지는 시장의 힘을 찬양하는 책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의 유명 필자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처럼 열심인 저자는 찾기 어렵다. 그이의 책은 영향력과는 상관없이, 미국 지배계급의 생각을 거의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미국을 흉내내기를 바라는 다른 지역의 경제,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이기도 하다.

 

많은 독자가 지구화에 대해 들어봤을 것이며 이것이 "자본주의 아니면 대안이 없는"이라는 익숙한 어떤 것을 뜻한다는 것도 이해할 것이다. 아, 그러나 지구화는 그 이상이다. 뉴욕타임스의 국제관계 컬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선언하는 바다. 수많은 찬사를 얻은 베스트셀러 <렉서스(Lexus, 차 이름: 옮긴이)와 올리브 나무> (1)에서 프리드먼이 목표로 한 것은 지구화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화를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해를 돕는다는 것이 뜻하는 바가 우리 머리속에 어떤 개념을 주입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그는 명백하게 보여준다. 그 개념이란, 지구화가 인간 문화의 최종 목표이고 지구화는 사랑할만하고 믿을만하며, 지구화가 우리를 부유하게 만들 것이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전반적으로는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을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최근 몇년동안 이런 류의 보편적 낙관론은 친술해졌으며, 유명 언론인만 하는 소리가 아니라, 기업 최고경영자, 주식시장 분석가, 정치인, 경제학자, 텔레비전 광고, 설교자, 심지어는 팝스타까지 떠드는 것이 됐다. 이런 낙관론은 지난 10년동안 미국의 공식적인 믿음이었다. 그렇더라도, 이 주제에 프리드먼이 기여한 것은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그는 미국에서 아주 존경받는 국제문제 논평자의 하나이며 퓰리처상을 두번 받았고, 한 때는 대외정책 결정기관의 최고책임자와 아주 가까웠던 사람이다. 미국의 주간지 더 뉴 리퍼블릭은 몇년전 그를 "정보 분야의 제임스 베이커 장관"(James Baker ministry of information) 구실을 한다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지구화 문제에 대한 그의 기여는 공식적인 지혜에 가까운 것을 만들어내는 수준에 달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 정도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은, 공식적인 지혜를 표현하는 수사법의 과장과 글쓴이가 지각을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의심할만큼 거만한 어조다.

 

이 책의 표면상 주제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프리드먼은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승리가 온 세상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선사했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우리에게 "기술의 민주화"를 말한다. 그 민주화 덕분에 우리 모두 컴퓨터와 전화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그는 "금융의 민주화"에 경탄한다. 우리가 모든 것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기적적인 "정보의 민주화"를 우리앞에 그려준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텔레비전 채널이 생겼다며. 이 모든 힘은, 소련 인도네시아의 기업이든 구식 미국기업이든 모든 종류의 상명하달식 위계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서로 결합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인터넷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민주적인 장소이며 "완전 경쟁의 모형" 바로 그것이라고 찬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프리드먼이 가는 길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과 해석의 오류로 더렵혀진 길이다. <뉴욕타임스>는 논외로 하더라도 어떻게 출판사 편집자가 이를 그냥 넘어갔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를 들면, 그는 계속해서 1930년대에 자리잡은 복지국가와 규제정책이 사실 냉전의 압력 때문에 이룩된 것이라고 신비스럽게 암시한다. 그는 "과거에는" 외국의 증권이 "결코 공개시장에서 거래된 적이 없다"고 잘못된 주장을 한다. 지금은 "당신과 나, 내 숙모 베브"가 남미의 채권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물론 이 사실을 소유권 민주화의 눈부신 증거로 묘사한다. (프리드먼은 아마 1920년대 미국 중산층 전체에게 판매된 그 악명높은 페루 채권에 대해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나보다.) 그는 또 홍콩과 싱가포르가 남한보다 더 "민주적"이라고 잘못 쓰고 있다. 그는 1차 대전이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음모라고 즉석에서 비난한다. 그는 또 책의 한장 전체를 맥도날드 식당이 있는 나라간 전쟁은 한번도 없었다는 바보스런 주장에 할애한다.

 

오류는 단지 문제의 하나일 뿐이다. 의도적인 선전선동은 또 다른 문제다. 프리드먼 책 제목에 나란히 등장하는 차(렉서스: 옮긴이)와 올리브나무 이야기로 시작하자. 이 둘은 지구화하는 뛰어난 경제세력과 바보스럽고 퇴보적인 지역주의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이는 독창적인 묘사가 아니다. 사람들은 금방 1995년에 똑같은 주제를 비교할 수 없이 균형되게 다룬 벤자민 바버(Benjamin Barber)의 책 <지하드 대 맥월드>(Jihad vs. McWorld) (2)를 떠올릴 것이다. 프리드먼은 바버의 책을 읽었는지 여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지구화에 대한 의문을 세련되게 표현한 최근 몇년사이 출판된 책, 예를 들면 존 그레이(John Gray), 윌리엄 그레이더(William Greider) 또는 더그 헨우드(Doug Henwood)의 책 (3)을 읽었다는 흔적도 없다.

 

지구화에 대한 의문은 그가 완전히 깨부시려고 하는 정서이며, 그래서 그는 이런 정서가 독재자, 완고한 광신자, 정치인, 프랑스인들과 기타 미국이 전통적으로 혐오하는 대상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우긴다. 어떤 상황에서도 시장에 대한 회의가 합리적으로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는 말 그대로 천년왕국적 작업이다. 세상이 너무나 빠르게 바뀌고 있다고 프리드먼은 멍하고 경탄에 가득찬 어조로 말한다. 아니오, 잠깐, 세상이 변했소. -미국의 이발소에서도 타이의 통화에 대해 논하는 상황이요. 전세계 어디든 개인들이 "엄청난 힘을 얻었소." 일본인들은 사람의 노동을 거의 들이지 않고도 뛰어난 차를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지구화적이요(globalorious)! 책 표지가 모든 것을 말한다. 도드라지게 처리된 황금빛 활자와 공모양의(globey) 지구 위로 떠오르는 주황빛(orangey) 새벽빛으로 치장된 종교적인 땅같은 느낌을 주는 사진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폭리를 탐하는 새로운 족속들을 위한 심리요법 다이어네틱스(Dianetics, 해로운 심상을 제거해 치료한다는 심리요법: 옮긴이)다.

 

1달러에 1표

프리드먼의 수사학 전략은 미국의 요즘 주식시장 광들의 문학판이다. 아마존(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 옮긴이)의 주가에 따라 뛰어다니는 초단기 투자자들처럼 프리드먼은 지난 10년동안 유행한 다양한 변덕스런 생각들을 단순히 강화해서는, 약간 값을 올려놓는다. 프리드먼을 미국 이외의 다른 나라로 데려가자. 그는 계속해서 독자들에게 자신이 "전자적 무리"라고 이름붙힌 증권 구매자들의 손에 창피를 당하는 것을 상상해보라고 요구한다. 그리고는 이 "무리"가 한 나라에 먼지만 뿌린 채 떠날 때 써먹을 만한 수치를 유발하는 짓거리들을 고안한다. 한 장에서는 전세계 모든 나라가 일간지의 주식시세표 목록처럼 자신 앞에 펼쳐지는 것을 상상한다. 그는 몇몇을 "사고" 다른 것들은 "팔라"고 추천한다. 이제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정의를 보자. 민주주의는 시민권이나 공동의 선이 아니라 단순히 돈 문제다. 이는 "1달러에 1표" 곧 시장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강요하는 체계다. 그래서 프리드먼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소리칠 때조차, 진짜 상전인 시장은 자신이 허용하는 아주 좁은 범위의 신념을 넘어서는 어떤 정치적 활동도 허용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지구적 영광에 참여하려는 나라는 프리드먼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 이외의 어떤 시장 규제조처나 가난한 이들에게 무언가 제공하는 조처가 허용되지 않는다. 그들의 "정치적 선택은 펩시냐 코카냐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약간의 맛 차이, 약간의 정책 차이 수준인 것이다. 핵심 황금률에서 많이 벗어나는 것은 결코 안된다." 그는 심지어 (국민들이: 옮긴이가 추가) 투표를 잘못하면 한 나라에 가해질 다양한 처벌을 서술한다. 그 처벌이란 투자자들이 후다닥 도망치고 주식시장이 무너지는 것 따위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프리드먼이 미국을 이해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시장은 이 미국의 이미지에 맞춰 세상을 다시 만들고 싶어한다. 마지막 장에서 그는 자신과 함께 몇가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보자고 요구한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지구의 건설자"(예를 들면 신)라면 궁극적인 국가를 어떤 모습으로 구상할지를, 또 그가 어떻게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노동시장이 유연하다"고 주장할지를 말이다. 또 모든 반란과 익살스런 삶의 부속품들을 창조성의 상징으로 중역회의가 받아들이도록 어떻게 그가 보장할지를 생각해보자고 한다. 그러나 또한 (바로 몇문장 뒤에서) 기업 경영자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노동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것"을 그가 어떻게 보장할지도 의문을 품어보자고 말한다.

 

우리의 "열매가 풍성한 들판"에서 섭리를 보고, 록펠러(Rockefeller)가 주장했듯 "신이 나에게 돈을 주었다"고 주장하는 것만으로 더 이상 충분하지 않음이 명백하다. 이런 문구에서 프리드먼은 신이 지상으로 내려와 경영 각본을 작성하고 파업을 파괴하는 구사대를 보내고 `인력'(Manpower)을 이 땅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고용주로 만드는 것을 상상해보자고 실제로 요구한다.

 

멋들어진 표현 측면에서 보면, 이 책은 최근 몇년동안 소프트웨어와 금융 중개업계가 내보낸 광적으로 승리감에 도취한 텔레비전 광고류에 해당하는 것같다. 우연이 아니지만, 프리드먼은 자신의 책 전반에 걸쳐 이런 광고들을 인용한다. 그는 이를 순수한 기업광고로서나 물건을 팔아먹으려는 예로서가 아니라, 특별히 수용할만하고 믿을만한 주술적 예언으로 기술한다. 또 이런 예언을 열정적인 `아멘' 소리와 함께 높게 평가한다.

 

토마스 프리드먼이 텔레비전 광고처럼 글을 쓰지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그는 자랑스럽게 우리에게 알린다, 자신이 막강한 힘이 있는 국제 투자금융가인 "헤지펀드 관리자"처럼 생각한다고. 그가 밝혔듯,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 헤지펀드 관리자를 뺀 나머지가 세상을 5 "차원" 또는 4 "차원" 또는 3 "차원"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6차원적으로 세상을 생각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5) 프리드먼은 자신의 문화 사고 방식을 "시세차익 보기"라고 부른다. 미래의 1990년대 연구자들은 그의 책을 "미래주의"(futurism)로 불리는 장사속 글쓰기 분야로 분류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이 분야 글의 특징은 계속 올라가는 "변화"율에 대한 경탄으로 가득찬 언급, 신조어의 나열, 사회계급처럼 낡고 불쌍한 처지가 된 범주를 대체할 운명을 띤 내국산 "메타 이야기체", 지정학이나 경영전략 또는 소비자들의 열광을 대중심리학 범주의 계산법에 따라 설명하기 위한 차트다.

 

그러나 실제로 프리드먼이 쓴 것은 무서울 정도로 포괄적인 우리 시대 구호의 진정한 사전이다. 모든 것이 들어있다. 영국을 "다시 포장"하려는 열정, 복지국가를 유지하려는 프랑스의 노력에 대한 천박한 욕설, `위대한 사회 미국'을 소련과 쉽게 동일시하는 것 등등. 이 각각은 괴물같으며 바보스럽고 터무니없지만, 여기 한꺼번에 쏟아져나와서 진정으로 낙담하게 한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은,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가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것을 듣고 이것이 지배계급이 `생각함'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가련하고 명백하게 거짓인 몇가지 편견이야말로 그들이 안내자로 삼는 것이라는 점이 처음으로 분명해지기 시작했을 때 받은 충격 이외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은 이 편견을 안내자로 삼아, 외무부(국무부)와 위대한 두뇌집단 사이를 오가며 우리와 관계가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을 논하고 이 나라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토론한다.

 

*글쓴이: 시카고에서 발행되는 잡지 배플러(www.thebaffler.com)의 편집국장이며 <쿨의 정복>(The Conquest of Cool)(시카고대 출판부, 시카고, 1997)의 저자임.

 

<주석>

 

1. Thomas Friedman, The Lexus and the Olive Tree: Understanding Globalisation, Farrar Strauss and Girouz, New York, 1999, 416 pages, $27.50. 본문으로 돌아가기. ( 토마스 프리드먼,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지구화에 대한 이해>, 패러 스트라우스 앤드 지루즈, 뉴욕, 1999, 416쪽, 27.5달러. )

 

2. Jihad vs. McWorld, Ballantine Books, New York, 1996. 본문으로 돌아가기 ( <지하드 대 맥월드>, 밸런타인 북스, 뉴욕, 1996. )

 

3. John Gray, False Dawn, New Press, New York, 1998; William Greider, One World, Ready or not: the Manic Logic of Global Capitalism, Simon & Schuster, New York, 1997; and Doug Henwood, Wall Street, Verso, London 1997. 본문으로 돌아가기 ( 존 그레이, <잘못된 새벽>, 뉴프레스, 뉴욕, 1998; 윌리엄 그레이더, <하나의 세계, 준비가 됐나: 범세계 자본주의의 광적 논리>, 사이먼 앤드 슈스터, 뉴욕, 1997; 더그 헨우드, <월스트리트>, 버소, 런던, 1997. )

 

4. See Thomas C Frank, "France, an unforgivable exception", Le Monde diplomatique, English Internet edition, April 1998. ( 토마스 프랭크, "프랑스, 용납할 수 없는 예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영문 인터넷판, 1998년 4월을 보라. = 원문에 주석 4번의 위치가 빠져있어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음: 옮긴이 )

 

5. These "dimensions" are politics, culture, national defence, financial markets, technology and environment. 본문으로 돌아가기 ( 이런 "차원들"은 정치, 문화, 국가방위, 금융시장, 기술, 환경이다. ) 원문은 영어로 작성됐음.

 

원본: mondediplo.com/1999/07/07frank (등록 사용자만 볼 수 있음.)

번역: 신기섭

2004/07/19 15:50 2004/07/19 15:50
댓글0 댓글

트랙백0 트랙백
먼 댓글용 주소 :: http://blog.jinbo.net/marishin/trackback/52

앞으로 뒤로

외국 진보 진영의 글을 번역해 공개하는 걸 주 목적으로 하지만 요즘은 잡글이 더 많습니다. mari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