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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이방인>의 이정서 번역과 관련된 글에 대해 Waga Jabal님이 페이스북 상에서 비판적 고찰을 적었다. 페이스북 댓글을 남기는 게 가장 낫겠지만 내가 계정을 비활성화 상태로 해놓은 관계로 따로 글을 남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Waga Jabal님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어 charge에도 기소 혹은 기소이유 등의 뜻이 있다. 일반사전에는 잘 안 나오지만 유럽연합 다언어용어 데이터베이스 IATE 및 Robert Herbst가 펴낸 기념비적 역작 Dictionnaire des Termes Commerciaux, Financiers et Juridiques(프랑스어/영어/독일어 법률/경제 용어 사전)에는 이런 뜻이 나온다. 따라서 '기소'의 뜻이 없다며 이정서가 명백히 틀렸다는 블로거의 반박은 꼭 옳지만은 않은 것이다.
예를 들어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제61조 및 주요 언어의 공식 번역은 다음과 같다.
영어 Confirmation of the charges before trial
프랑스어 Confirmation des charges avant le procès
독일어 Bestätigung der Anklage vor dem Hauptverfahren
이탈리아어 Convalida delle accuse prima del processo
스페인어 Confirmación de los cargos antes del juicio
러시아어 Утверждение обвинений до начала судебного разбирательства
중국어 审判前确认指控
일본어 公判前の犯罪事実確認
영어와 프랑스어가 똑같이 charges로 되어 있고 독일어 Anklage 기소, 고소, 고발 따위를 뜻하며 일본어는 범죄사실이다.
우선 '기소'와 '기소이유'는 다른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기소'와 '공소사실'도 다른 의미다. '기소'는 형사사건에 대하여 법원에 재판을 구하는 행위 자체를 가리키는 반면, '공소사실'은 기소가 된 범죄사실을 가리킨다. ('기소이유'라는 용어는 한국 법체계에서 잘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charges'에 담긴 '혐의'라는 의미를 '공소사실'로 넓혀서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재판을 구하는 행위 자체인 '기소'로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혹은 그것만으로는 근거 부족이다.
Waga Jabal님이 예시로 든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제61조의 경우 국내 번역어는 '기소'가 아닌 '공소사실'이고, 일본어 번역인 '범죄사실'도 세부적 법리나 연혁이 다를 수는 있지만 '공소사실'과 궤를 같이 하는 번역어다. Waga Jabal님이 언급한 IATE에 따르더라도 'charges'는 "fait qui pèse sur la situation d'un accusé", 즉 '사실(fait)'에 관한 용어이지 '행위(acte)'에 관한 용어가 아니다.
Waga Jabal님은 "기소 혹은 기소이유"라고 포괄적으로 지칭하지 말고, 'charges'가 정확히 '기소'라는 의미로 사용된 예시를 들어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도 내 단정적인 표현을 철회할 것이다.
덧. 영어에서는 'charge'가 '기소'라는 의미로도 쓰이고, '공소사실'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따라서 프랑스어의 'charge'가 영어의 'charge'에 대응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프랑스어의 'charge'도 '기소'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충분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해당 문맥의 영어 'charge'가 '기소'라는 의미로 쓰였는지, '공소사실'이라는 의미로 쓰였는지부터 확정지어야 할 것이다.
댓글 목록
Waga Ja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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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고 논평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글에서는 charge가 '기소'를 뜻한다고 단정한 것이 아니라 이 말이 여러 언어의 번역에서 드러나듯 헷갈릴 수도 있음을 나타냈고 사실상의 결론은 끝에서 두 번째 단락에 쓴 것입니다.
"Trésor de la langue française에 바로 이 카뮈의 이방인 예문이 나온다. 형법 용어 charge는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실(Fait qui milite en faveur de la culpabilité)을 뜻한다. 즉 일반사전에 나온 대로 '피고에 불리한 진술'이 가장 어울리며 문맥상 '사항/증거/혐의' 정도가 적절할 수 있다는 블로거의 지적이 옳다고 봐야겠고 여러 언어 가운데 독일어 번역 Belastungsmaterial이 가장 올바르다고 볼 수 있겠다"
즉 Dictionnaire des Termes Commerciaux, Financiers et Juridiques에 따르면 프랑스어 charge에 영어 charge, indictment 및 독일어 Anklage, Anklagepunkt, Beschwerdepunkt의 뜻도 있음을 밝힌 것이고, 따라서 여러 언어 번역에서 보이듯 법률 비전문가라면 '기소'로 여길 수도 있다는 것일 뿐 해당 문장에서는 푸우님의 의견이 맞는다고 봅니다.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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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Dictionnaire des Termes Commerciaux, Financiers et Juridiques에서 프랑스어의 'charge'가 영어의 'charge'나 독일어의 'Anklage' 등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고 한 점은 잘 알겠지만, 영어나 독일어의 해당 단어가 '기소'만이 아니라 '공소사실'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는 점을 볼 때, 프랑스어의 'charge'가 이들 단어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고 해서 '기소'라는 의미까지 지닐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 규정 제5장의 제목을 보시면 알겠지만 해당 언어들에서 한국어의 '기소'에 해당하는 부분을 'charge'나 'Anklage'라고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어는 'pousuites', 영어는 'prosecution', 독일어는 'Strafverfolgung') 따라서 로마 규정 제61조의 'charges'가 '기소'라는 의미일지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여하간 말씀하신 대로 법률 비전문가의 입장에서는 영어의 'charge'와의 유사성 때문에 '기소'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정서 씨는 책의 절반 이상을 남을 비판하는 데 할애한 만큼 조금 더 엄격한 잣대로 그 비판을 평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Waga Jab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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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법률용어가 기소/공소(행위/사실) 따위를 세밀하게 구분할 때가 많은 반면 다른 서양어에서 꼭 그렇지는 않다 보니 비전문가가 헷갈릴 수도 있고 실제로 번역에서 그걸 읽는 일반 독자들에게 큰 의미는 없을 수도 있으므로 번역에서는 결국 낱말이라는 나무 하나보다는 전체 숲을 어떻게 그리느냐가 더 중요한데 새움번역에서 마치 사소한 털끝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식으로 오바를 떠니 어처구니없죠.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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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원래 썼던 첫번째 글에도 적었다시피 이런 사소한 법률 용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가 (예컨대 항소냐, 상고냐...)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단어 하나 때문에 작품 이해가 달라진다고 주장하니 상당히 당혹스러웠습니다. 더구나 그 주장이 그다지 정확하지도 않으니 더더욱..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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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간 문학 작품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와는 별개로 프랑스어 'charge'에 엄밀한 의미의 '기소'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약간 바꿔서 말하자면 프랑스어 법률 텍스트에서 'charge'가 '기소'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있는지는 조금 더 찾아봐야 하겠군요.일단 프랑스 법학 교수였던 Jean-Paul Doucet가 작성한 법률 용어 사전에 따르면 'charges'가 행위로서 '기소'라는 의미로 사용된 용례는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프랑스어가 아닌 다른 서양어들의 경우는 조금 더 넓은 용례를 가지는 것 같고요.
http://ledroitcriminel.free.fr/dictionnaire/lettre_c/lettre_c_ch.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