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소나타

from 잡기장 2008/06/26 15:29

 

아침나절 들어와  온 몸이 실신 상태에서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잠깐 잤을까?

 

그저께 촛불집회에서 참석 후 대국민 토론에 잠깐 듣는 것이 내내 마음이 아렸었는데 

긴박한 정국이 밀려있는 일들을 손에 잡히지 않게 한다.

 

컴퓨터 자판 앞에서 다른 일들을 못하게 가로막으며

한 없이 개인을 나약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광화문 상황이 긴박하다는 문자가 날라온다.

누군가에 날라온 문자에 이미 머리 속에서는 "오늘은 단단히 각오하고 나가라는" 주문을 한다.

마스크와 긴 팔, 조끼, 운동화를 챙겨입으면서

만주로 떠나는 독립투사마냥 아내한테 툭 던진다.

"내 오늘 기다리지 말거라 살아서 내일 새벽에 올테니까"

 

모레 일본을 가는 준비도 거의 안해 놓았는데

갈 수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살수차를 동원해 엄청나게 뿌려대는 골목길에서 시민들은 경찰버스를 밧줄로 당겨 끌어냈다.

함께 당기고, 물벼락을 맞으며,  언성을 높혔다.

계속되는 살수의 공격에도

날카롭게 구호를 외치며 살수에 대항하는 애띤 여성들이 눈에 띤다.

 

쏘아라,

우리도 발악하지만 상대도 오늘의 발악을 한다.

감정이 격해지고 목소리의 함성들과 비명들....

미친 정부, 대통령이 만들어내는 광화문 소나타.

 

 정부, 대통령은 언제나 역사 속에서

시민에게 봉사하는 경찰의 모습이 아니라

국가가 그들에게 충실한 개로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기제장치로서

복무하고 실행하길 강요한다.

국가권력의 충실한 시행자로서 국가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명박정부가 아닌 여타의 정부가 들어와도

똑같은 일은 반복되리라 본다.

불신 명박이 아닌, 불신 국가권력이다.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는 국가권력은 필요없다.

 

이 번 소고기 문제를 통해

시민들을 국가권력,

국가가 개인들에게 어떤 존재로 존재해야 하는지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월드컵때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사람들 중에서도

이 번 촛불집회에 참여하여 애국가를 부르며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과 내가 생각하는 국가라는 틀은 그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조국사랑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소고기 문제도 국가의 주권과 개인의 건강권에서

애국적 차원이 기저에 깔려있다.

 

보수단체의 애국논리와 소고기 문제의 애국은

국가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심신에서는 같을지도 모른다.

역사는 나라를 바로세운다는 대의적 명분을 내세우며 크고 작은 봉기, 혁명, 사건들..

민족적인 애국은 국가를 살찌운다는

가당치않는 생각들은,  또한  그들은 중국인들이 국내에서 벌인 월드컵 성화봉승 광기를 두려워했다.

중국의 중화국가주의는 잘 살아야겠다는 경제 지상주의의 국가에 대한 애국을 만들고 있으며

일본의 우편향적 보수주의는 국가와 개인이 따로 놀면서 어쩌면 우리와 다른 사고를 가진 국가가

바로 이웃에 존재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어떤가? 나는 우리나라의 국가주의 민죽주의 특히 애국으로 점철되는 점에서는

동양의 어떤 나라와도 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이 운동권이던 비운동권이던

국가 운운하며, 애국을 이야기하는 단체나 생각과 행동에는  알러지 반응처럼  반응한다.

통일을 내세우는 운동권 단체에게도 그것이 지상명제라 할지라도 마찮가지 반응이다. 

 

  

누군가 이야기 했다.

탈근대사회에서 계급적 갈등이 흐지부지 해진다고.

계급적 갈등의  존재는 우리 안에서 못 느낄지라도

상대적 양극화로 인한 갈등의 첨화가 심화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노동은 우리에게 새롭게 이 것을 풀 열쇠를 줄지도 모른다.

또한 그동안 이분법적으로 존재했던 고리들을

이 번 촛불집회에서 새롭게 창조된 것들을 역사는 기억하고 만들어 낼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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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15:29 2008/06/26 15:29

Dankon pro la aldono !

from 잡기장 2008/06/03 12:29
초원님의 [야만의 세상과 비폭력.] 에 관련된 글.

블로그를 찾아가니 맞는것 같습니다.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이라는 부분에 시각차이는 있지만 당신의 생각과 의견이 나의 생각을 넓혀주었습니다. Dankon pro la aldon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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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3 12:29 2008/06/0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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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계속되는 촛불시위는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대한민국은 과거의 잠재되있던 야만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권력을 지키려는 자들과 그에 기생하는 집단들의 야만성에 분노하는 시민들은

자신의 몸조차 방어할 수 없는 비무장인데도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너지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은 자발성에 기인하여 조직화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그와 상응 대는 야만성을 불러오리라 본다.

 

막상 경찰들의 물대포와 진압과정을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입에서도

자신도 모르게 거친 욕설이 튀어나온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정도 없던 그들이 적과 아로 바뀌는 상황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생전 처음 보는 그들에게 반감의 감정이 싹트는 것은 상황이 서로를 그렇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시위대가 청화대로 가자고 외친다.. 

과연 갈 수 있을까?  또 간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의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이명박 정권과 자본이 과연 이런 식의 거리시위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나 역시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역대 정권 중에서 어쩌면 가장 골통같은,

자기가 믿고 있는 신념 앞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강력한 대통령과 대적하고 있는지 모른다. 

서울 시장이었을 때는 서울시를 하나님 궁전에 바치고 싶다는 종교적 신념을 서슴없이 내 뱁은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청계천복개를 뜯어냈다.

 “거 봐라 만들어 놓으니 좋지 않냐  이거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사람 있는 줄 아느냐”식의 자신감으로 똘똘뭉친 고집불통 꼴보수 개발론자이다. 지금 하는 행태로 보아 대운하개발도 밀어 부칠것은 안 봐도 무당 빤스다.


 10대들이 지핀 촛불은 대다수의 시민들을 거리의 광장으로 끌어내었다. 

연행자들이 늘어나고 경찰의 폭력적 진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거리시위는

아직까지 비폭력의 노선을 견지하는 점에서 이 전의 시위와는 다르다고 생각 한다.

 

또한 시위 지도부도 없고 배후도 없다. 그렇기에 전략, 전술도 없다.

막히면 돌아가고 경찰의 진압에도 물러가지 않고 끝까지 밤을 새며 진행한다. 

돌아간 사람들과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터넷 생중계 TV를 통해 현장을 생동감 있게

공유하며 과거의 고립된 시위가 아닌 함께 하고, 함께 분노한다.

 

그동안 뒤에서 관망? 지도하기에 역부족이었던 활동가들 사이에서

방어적 수단의 폭력의 정당성과 전략과 전술을 이야기 한다. 

권력의 습성과 야만성을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두려운 가운데도 자신의 의사와 직접행동을 자신의 수준에서

동참하며 외치고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어린아이를 휄처어에 태워 온 엄마는 자신만의 직접행동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난 국가권력의 폭력에 분노의 파토스를 자신 만의 실천을 통한 직접행동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그들과 똑같은 방식의 폭력적 대응이 아니라

거리에서 넘치는 활력적 요소로소 야만의 가득한 권력과 한 판 승부를 벌리고 있다.

 

과거 거리의 시위를 지도한 운동권 출신은 현재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시민들은 똑똑히 알고 있다. 

현재 야당은 국회에서 시민들의 눈치만 보며 지들의 주판알만 굴리고 있다.

이런 놈들은 한나라 놈들과 이름만 달랐지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운동권 중에 자신의 정치력을 높이려고 주제넘게 나섰다가 망신만 당한 ‘다함께’ 역시 그렇고

광우병 촛불문화제대책위도 이 판을 주도할 능력도 없다.

 

오로지 시민들만 거리의 자유를 느끼며

하나의 촛불이 되어 타오르고 있다. 

방어적 수단의 정당성이 아닌 권력의 야만성에 대응하는

자신만의 비폭력 직접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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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2 04:36 2008/06/02 04:36